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꺾쇠아바이

김재호

 

고향으로 돌아오는 제대군인 최청림은 창덕탄광청년갱 권양기운전공인 정옥수와 함께 창덕으로 가는 뻐스에 올랐다.

《옥수로구나. 넌 언제 봐야 물찬 제비같다니까. 여기 와 앉거라.》

먼저 뻐스에 올라 자리를 잡은 녀인들이 저마다 자리를 권했다.

《고맙습니다.》

옥수는 녀인들에게 모두거리로 인사를 하고 청림이 지고있는 배낭을 벗겨주었다.

녀인들은 청림이 제대군인임을 제꺽 알아보았다.

《어쩌면 제대군인들은 하나같이 끌끌할가. 오빠냐?》

녀인들의 눈길은 청림이에게 쏠렸다.

《아니예요. 제대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동창생을 우연히 만났어요.》

옥수는 붉어진 뺨에 볼우물을 파며 수집어했다.

《름름하구만. 어느 집 아들인가?》

녀인이 옥수가 들고있는 청림의 배낭을 받아주며 물었다.

《아시겠는지… 아버님의 성함은 최억만입니다.》

청림이 대답하였다.

《듣던 이름 같은데 아리숭하다.》하고 녀인은 옥수를 돌아보았다.

《꺾쇠아바이라면 아시겠는지요?》

옥수가 웃으며 말하였다.

《꺾쇠아바이야 탄광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지.》

《바람난 탄차에 동발목을 들이대서 넘어뜨렸다는 호랑이갱장 말이우?》

앞자리에 앉은 녀인이 뒤를 돌아보며 참견을 하였다.

《그게 언제때게. 그때 다리를 상해서 지금은 청년갱 로동안전원으로 일하지요.》

옆에 앉은 녀인까지 끼여들었다.

《새로 온 지배인이 그 아바이를 만났을 때 꺾쇠동무가 있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했다지 않아요. 지배인은 로동안전원의 이름이 꺾쇠인줄 알았던 모양이예요.》

녀인들은 이러며 청림이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두서없이 펼쳤다.

《갱문세라면 첫손가락인 기사장도 꺾쇠아바이가 안됩니다 하면 돌아선다더군요.》

《자네 아버진 갱에선 정말 귀신같다더군.》

하고 처음 말을 건 녀인이 청림의 어깨를 철썩 쳤다.

《갱벽이나 천정에 맺힌 물방울이나 돌순만 보고서도 붕락이 올지, 석수가 터질지 알아낸다더군.》

《충전등을 대충 준비한 탄부는 영낙없이 잡아내서 쫓아버리고 신끈 풀린 탄부는 안전교양실로 보낸다지 않아요. 우리 조카가 바로 청년갱 제대군인소대 소대장이라네.》

청림은 녀인들이 아버지의 별명을 부르는것이 싫지 않았다.

《그렇지만 꺾쇠아바이도 한사람한테만은 꼼짝을 못한답니다.》

옥수가 녀인들의 입방아에 맞절구질을 하였다.

《호랑이같은 꺾쇠아바이를 절절매게 하는 사자는 또 누군고?》

옥수는 미처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뻐스가 정류소에 멎었던것이다.

손님들이 다 내리고 뻐스가 떠나려 할 때 옥수가 운전사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미안합니다. 우리도 내리겠어요.》

《왜 내리자는거요? 아직 멀었는데…》

청림은 어리둥절해졌다.

《글쎄 내려요.》

옥수는 청림의 배낭을 들고 먼저 내렸다. 뒤따라 내린 청림은 옥수의 기색을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이요?》

옥수는 곱게 눈을 흘겼다.

《이제 우리가 집앞에서 내려보세요. 숱한 사람들이 나를 놀릴게 아니예요. 처녀가 역에까지 나가 총각을 마중했다구…》

《동문 이모네 집에 왔다가 나를 우연히 만났다고 하지 않았소. 사실대로 말하면 되겠는데…》

뻐스는 떠나고 정류소에는 그들 둘만이 남았다.

순진한 청림의 말에 옥수는 웃음을 지었다.

《동무나 그 말을 곧이 듣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해요.》

옥수는 청림의 름름한 모습을 다시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초소로 떠나는 동무를 역에서 바래울 때 동문 뭐랬어요. 돌아올 때도 역에서 마중해달라고 했지요? 난 잊지 않고 이렇게 동무를 마중했어요.》

《나 역시 옥수가 역에서 마중해주리라 믿었댔소!》

청림은 앞서 걸으며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럼 됐어요. 우리 동무의 군사복무이야기랑 어릴 때 추억이랑 하면서 걷자요.》

옥수의 목소리는 소녀때나 다름없이 옥수천여울물소리처럼 또랑또랑했다.

여름은 한껏 무르녹아 신록은 짙고 매미들은 여문 청을 돋구어 합창을 하고 길가에 심은 꽃들은 만발하여 벌과 나비를 부른다.

《청림동문 어째서 비행사나 땅크병이 되지 못하고 공병이 되였어요?》

들꽃 한송이를 꺾어 입에 문 옥수는 청림의 기색을 살피며 목에서 붉은넥타이를 날리던 그 시절처럼 물었다.

옥수는 중학교시절에도 이렇게 언질을 걸어 청림이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기 좋아하였다.

오늘도 청림은 그 시절처럼 즉시에 열을 올렸다.

《공병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동문 다 모를거요. 어떤 갱이든 덩지 큰 철근구조물이든 내 손에서는 꼼짝 못하오. 산을 통채로 날려보낼수도 있고 봉우리를 뭉청 들어서 골짜기에 옮겨놓을수도 있소.》

《그게 정말이예요?》

《학교때처럼 박쥐를 보여달라오?》

청림의 말은 그들을 잊지 못할 어린시절로 이끌어갔다.

《넌 내가 오소리굴에 들어가 박쥐를 잡아오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지!》

청림은 다시한번 다짐을 받았다.

《그랬다. 아버지들도 못 들어가는 오소리굴에 네가 들어가?!》

《난 들어갔댔다.》

《거짓말.》

옥수는 청림의 말을 곧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손바닥을 내대. 약속을 지켜야지.》

《박쥐가 어디 있어?》

청림은 책가방에서 박쥐를 끄집어냈다.

《자, 봐라. 이건 오소리굴에서 잡은 박쥐다.》

《흥, 그게 어데서 잡은 박쥐인지 알게 뭐야?》

옥수는 청림에게 지고싶지 않았다.

열이 오른 청림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렸다. 종아리에 퍼렇게 된 회초리에 맞은 자욱이 있었다.

《아버진 날 때리면서 뭐랬는지 알어? 〈그게 어떤 굴인지 아느냐? 해방전 그 굴에서 숱한 탄부할아버지들이 생죽음을 당했다. 굴안에서 흐르는건 물이 아니라 피다. 억울하게 숨진 할아버지들의 피야.〉하더란 말이야.》

《너 정말 들어갔댔니?》

옥수는 눈이 올롱해졌다.

《너하고 내기를 걸지 않았으면 난 뛰쳐나왔

을게다. 얼마나 무섭던지…》

옥수는 어린시절에 남긴 추억을 더듬으며 즐겁게 웃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청림이였다.

들길에는 새소리가 유정했고 꽃향기가 넘쳤다.

《참, 우리 아버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요?》

옥수는 입을 싸쥐고 웃었다.

《몰라서 묻나? 우리 아버지지.》

《동무 아버지?!》

《그렇지 않으문 누구겠어요.》

옥수는 자기 아버지의 억양을 그대로 흉내내였다.

《〈자네 그게 뭔가! 부뚜막수릴 청림이 에미한테만 맡기다니, 임자가 손을 대게.〉 하면 〈거뭐… 맡기기야 뭐… 알겠수다.〉〈임자 무슨 일을 그렇게 하나?〉 하면 제 잘못도 알아보지 않고 〈고치겠수다. 잘못을 말해주시우.〉 하시거던. 동무가 친 전보를 들고 제일먼저 찾아온것도 우리 아버지한테예요. 그래서 이모네 집에 일이 있다는 핑게를 대고 동무를 마중온걸 알기나 해요?》

청림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동무 아버진 신입병사시절 우리 아버지에게 목달개 다는 법, 발싸개 감는 법을 배워준 첫 분대장이였고 또 입당보증인이였으니까.》

청림은 이러며 옥수의 웃음실린 얼굴을 지켜보았다.

옥수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그뿐인줄 알아요. 동무 아버진 우리 아버지가 제대배낭을 풀어놓은 여기 창덕탄광으로 뒤따라왔고 굴진소대장이였던 우리 아버지에게서 착암기다루는 법을 배웠다는것을 잊지 말아야지요.》

어릴 때 낯익힌 길을 걸으며 추억을 더듬는것은 즐거웠다.

옥수는 문득 생각난듯 청림을 쳐다보았다.

《동무 아버진 엉터리예요. 이제부터는 날 보고 아버지라고 불러라 하잖겠어요.》

《응당 그래야지.》

청림은 벌씬거렸다.

《동무도 같고같은 엉터리예요.》

옥수는 주먹으로 청림의 어깨를 때렸다.

그들은 어느덧 옥수천가에 이르렀다.

옥수의 아버지는 탄광마을의 자랑인 옥수천이름을 그대로 딸의 이름으로 지었다.

청림은 몰라보게 달라진 고향산천을 가슴속에 새기듯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많이도 달라졌는걸, 우리가 학교로 다니며 아침저녁 건느던 돌다리는 없어졌겠지?》

청림은 예나 다름없이 무성한 잎새들이 설레이는 구름나무밑에서 옥수에게 물었다.

《그대로 있어요. 새 포장도로를 내고 다리를 놓을 때 동무 아버지가 사람들앞에서 뭐랬는지 알아요? 돌다리는 다치지 맙시다, 이 고장을 떠났던 사람들이나 군대에 나간 우리 아들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이 구름나무아래서 몰라보게 변한 탄광마을을 보고 돌다리를 건너 집에 들어서게 합시다라고 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그랬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논벌의 벼포기는 아지를 쳐 무성해지고 낮게 뜬 제비들은 먹이를 찾아 재주를 부리였다.

내가 잔디밭에서는 아이들이 씨름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씨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옥수는 느닷없이 청림에게 물었다.

《청림동무, 이길수 있어요?》

《저 애들한테 말이요?》

청림은 어이가 없다는듯 옥수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아버님한테 말이예요.》

청림은 씩 웃어버렸다.

《왜 웃어요. 동무의 전보를 가지고 우리 집에 온 아버님이 뭐랬는지 아세요? 이제 동무가 집문턱을 넘어서면 팔씨름부터 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번까지 지면 갱엔 얼씬도 못하게 하겠대요.》

《허 참.》

《동무가 표창휴가를 왔을 때 아버님과 팔씨름을 했지요?》

《우리 아버지가 그런 말까지 했소?》

《물음에 대답하세요.》

《했소. 그런데 왜?》

《졌지요?》

청림은 말없이 웃었다.

옥수는 청림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가에 웃음을 담고 말했다.

《솔직히 대답하세요. 동무가 아버님을 따라 갱에 들어왔을 때 함께 계셨던 부지배인동지가 막장휴계실에서 팔씨름을 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무가 졌다고 했어요.》

억만은 아들이 표창휴가를 왔다는 말을 듣고 만나자바람에 아들을 데리고 갱으로 나왔다. 아버지를 따라 갱을 돌아본 청림은 막장휴계실에서 탄부들과 만났다.

그들이 청림이와 반갑게 이야기를 하고있을 때 억만은 뜻밖에도 아들에게 팔씨름을 하자고 했다.

당황해난 청림은 《아버지, 이러지 마십시오.》하며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이녀석, 군대로 나갈 땐 나한테 졌지! 그러니 오늘은 군사복무를 착실히 했는지 봐야겠다.》

억만은 뒤걸음치는 아들을 끌어당겼다.

부지배인이 심판에 나섰다. 이리하여 막장휴계실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팔씨름경기가 진행되였다.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억만의 이마에도 청림의 이마에도 땀발이 돋혔으나 마주쥔 두손은 굳어진채 기울어지지 않았다.

탄부들은 두패로 나누어 응원에 열을 올렸다.

시간이 길어지자 억만은 누구도 볼새없이 팔굽을 들고 청림의 손을 내리눌렀다.

《이겼다!》

억만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휴계실이 들썩하게 웃음판이 터졌다.…

그때를 생각했는지 청림도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날 아버지가 반칙을 하지 않고 부지배인동지가 편심을 서지 않았으면 난 지지 않았을거요.》

청림의 승벽 또한 아버지에 못지 않았다.

옥수는 청림이 그러는 모습이 더 우스웠다.

《모르겠어요, 이번엔 내가 심판을 서봐야지.…》

《동무가 심판을 서면 안되오. 동문 보나마나 우리 아버지편에 설테니까.》

《자신이 없는 모양이군요.》

《보오, 돌다리요.》

청림은 마치 새로운 창조물을 보듯 한동안 돌다리를 보며 서있었다.

어린시절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한 돌다리는 청춘으로 자란 그들을 반겨맞는듯 했다.

물량이 많아서인지 돌다리는 거의 물에 잠겨있었다.

《청림동무, 싸락눈이 내리던 날 돌다리를 건느던 생각이 나요?》

그날도 돌다리는 물에 잠겨있었다.

《동무도 잊지 않았구만.》

청림이와 옥수가 소학교 3학년때였다.

청년갱이 새로 개발되던 때여서 옥수천너머 청년갱쪽에는 집이 몇채밖에 없었다.

새로 개발된 탄전으로 제일먼저 이사를 온 부모들때문에 옥수와 청림은 옥수천을 건너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날은 밤새 내리던 비가 좁쌀같은 싸락눈이 되여 떨어지던 한겨울 어느날이였다.

아침일찍 학교로 가던 청림이와 옥수는 강가에서 멈춰섰다.

지난밤에 내린 비로 옥수천은 불어나 돌다리는 물에 잠기고 살얼음진 물우엔 싸락눈이 덮였다.

《어쩌면 좋아?》

옥수는 울상이 되였다.

《눈물은 왜 짜니? 집에 돌아가면 될게 아니야.》

청림은 옥수의 팔을 끌었다.

청림이 집뜨락에 들어서며 털모자를 벗어 눈을 터는데 억만이도 밤교대를 끝내고 집에 들어섰다.

《학교엔 안 갔느냐?》

억만이 엄하게 물었다.

《돌다리가 물에 잠겼어요.》

《그래서?》

《그래서… 돌아왔어요.》

《시라소니같은 녀석, 가자!》

억만은 청림의 손목을 잡아끌고 옥수천으로 갔다.

《바지를 걷어올려라, 신은 벗고.》

억만은 이러면서 자기도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신발을 벗었다.

《추운데… 싫어요.》

《뭐라구?》

억만은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리고도 크면 인민군대가 되겠다구…》

억만은 청림의 신발을 벗기고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렸다.

《어서 들어서지 못하겠어?》

살얼음을 깨며 먼저 물에 들어선 억만은 아들의 손목을 잡고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청림은 아버지의 힘을 당할수가 없었다.

찬기운은 살을 어이는듯 했으나 청림은 아버지에게 끌리여갔다.

그들이 끌며 끌리우며 옥수천가운데 들어섰을때였다.

《이 우둔한 곰아!》

뒤에서 울리는 옥수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억만은 머리를 돌렸다.

옥수의 아버지 정병철은 딸을 업고 기슭에 서있었다.

《당장 청림일 안아올리지 못할가!》

《우리가 도하훈련때 얼음장을 깨며 강을 건느던 생각이 나지 않소?》

《잔말말고 냉큼 안으라구.》

억만은 병철의 기세에 이마살을 찌프리며 할수 없는듯 아들을 끌어안았다.…

《그날 우리 아버지가 아니였더라면 동문…》하며 옥수는 돌다리에 올라섰다.

청림이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리 그날처럼 바지가랭이를 걷고 물을 건느는게 어때?》

《좋아요.》

옥수는 박수까지 쳤다.

그들은 옷을 적시며 옥수천을 건넜다.

《청림동무, 여기서 헤여지자요.》

《그건 무슨 소리요?》

《이젠 더이상 함께 가면 안되겠어요, 사람들이 보겠는데… 동무는 버들방천으로 해서 오솔길로 가세요.》

《그럼 언제 또 만날가?》

옥수는 까르르 웃었다.

《그것도 모르겠어요?! 저녁이지.》

《저녁?! 어데서?》

《어디긴 어디겠어요, 우리 집에서지. 전보가 와도 우리 집으로 뛰여오는 동무 아버지인데 이제 동무가 나타나면 너무 기뻐 우리 아버지앞에 척 나타나지 않나 보세요.》

옥수의 말이 그럴듯 했다.

청림은 배낭을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버들방천은 옛 페갱인 오소리굴앞에서 끝난다.

청림은 오소리굴옆으로 해서 마을로 통하는 오솔길에 들어섰다. 올리막길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나무와 돌로 든든히 막아버린 오소리굴입구는 떨기나무에 가리워 보이지 않았다.

별로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오솔길이여선지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했다. 그 길로 해서 둔덕우에 올라서자 한눈에 안겨오는 탄광마을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청림은 새롭게 전변된 고향마을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청년갱쪽에서 갑자기 자동차들의 경적소리가 울리더니 양수기들을 실은 화물자동차들이 들이닥쳤다. 발전발동차도 보이였다.

(무슨 일일가?)

청년갱쪽을 지켜보던 청림은 한다리를 절며 달려오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아버지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아버지!》

《청림아!》

억만은 불쑥 나타난 아들을 놀란 눈길로 바라보다가 힘껏 그러안았다.

뜻밖의 상봉이였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느냐?》

《집으로 가던 길입니다. 옥수천을 건너 이 오솔길로 해서 집에 들어서고싶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됐다. 빨리 가봐라.

네 에미가 기뻐할게다. 난 급한 일이 있어서…》

청림은 사색이 된 아버지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알았다.

억만은 부둥켜안았던 아들을 풀어놓고 또다시 뛰여갈 차비였다.

《무슨 일입니까?》

청림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청년갱에 석수가 터졌다.》

《그런데 아버진 어데로 가십니까?》

억만은 머뭇거리며 대답을 피했다.

《아버진 로동안전원이 아닙니까. 그런데 갱을 지키지 않고 어데로 가십니까?》

《갈 곳이 있어 가는거지. 넌 몰라도 된다. 어서 가보아라.》

억만은 오소리굴인 페갱으로 들어가 폭파하려한다는것을 청림에게 말할수 없었다.

청년갱은 페갱인 오소리굴의 허리를 자르며 지나갔다. 때문에 오소리굴에 들어가 청년갱이 지나간 외벽을 터쳐놓으면 청년갱에 차오르는 석수는 쉽사리 빠질것이다. 지금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억만과 병철이밖에는 없었다.

탄광일군들에게 오소리굴로 들어가 청년갱 외벽을 뚫겠다고 제기하여도 승인하지 않을것은 불보듯 명백하였다. 설사 승인한다 해도 억만은 누구도 이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고싶지 않았다.

이 일은 생명을 내대야 하는 모험이기때문이였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청림은 무슨 기미를 느꼈는지 아버지의 팔을 든든히 붙잡았다.

《시끄럽게 굴지 말아.》

억만은 팔을 빼려고 했으나 아들의 힘을 당할수 없었다.

《이럴 때 아버지를 돕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아들이겠습니까!》

억만은 누구의 도움도 받고싶지 않았다.

《빨리 가라는데.》

억만은 짜증을 내였다.

《네 에미가 눈이 빠지게 기다려.》

청림은 아버지가 자기를 떼버리려고 할수록 더욱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다리를 몹시 저시는군요. 내가 부축해드리겠어요.》

청림은 아버지의 팔을 더욱 힘껏 붙들었다.

《됐다, 애비가 가라면 갈것이지!》

《요 내리막길만이라도 함께 가시자요.》

청림이 고집을 부렸다.

떡판같이 넓은 잔등이며 단단한 어깨는 믿음이 갈뿐아니라 더욱 의지가 되였다.

《녀석두…》

아버지와 아들은 운동회때 사람찾아 달리는 선수들처럼 서로 허리를 붙안고 걸었다.

《아버지! 급한 일이란 뭡니까?》

청림은 다시 물었다.

《넌 몰라도 된다.》

《그렇지요. 비밀은 아들이라 해도 함부로 말해선 안되지요.》

그들은 경사지를 내려섰다. 오소리굴앞이였다.

《됐다. 인젠 가봐라.》

청림은 아버지가 진 배낭에 눈길을 돌렸다.

(혹시 이 페갱과 무슨 관련이 있는것이 아닐가?) 하고 생각한 청림은 배낭을 만져보며 서둘러 물었다.

《여기에 화공품이 있지요?》

(이녀석이 눈치를 챈게 아니야?)

억만은 이런 생각을 하며 일부러 화를 냈다.

《애비 일에 시시콜콜 간섭할테냐?》

《폭파수에게 조력공이 있으면 좋지 않습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억만은 드디여 손을 들었다.

이제 더 속임수를 쓴대야 시간만 허비할것이다.

《사실은 청년갱 외벽에 구멍을 내련다!》

《페갱에 들어가서요?!》

《그래.》

《신통한 생각입니다. 아버지가 받은 단독임무입니까?》

《그런건 묻지 말아. 자, 서둘러야겠다. 옥수 아버지도 나하고 같은 생각을 했을건 뻔한데 그가 오기 전에 일을 마무리해야 해. 아직도 30대청춘인가 하거던. 요새는 자주 쿨럭거리면서도…》

《아버지는 뭐 젊은줄 아십니까? 어째서 나한테 그 일을 맡기지 못하십니까?》

《안된다. 넌 이 오소리굴이 어떤 굴인지 다 몰라!》

억만은 등에 진 배낭끈을 잡아당겼다.

《아버지, 제가 오소리굴에 들어가 박쥐를 잡았다고 종아리를 친 일은 잊었습니까?》

청림은 더욱 힘껏 배낭끈을 그러쥐였다.

《코흘리던 때하군 달라. 단방에 구멍을 내야 하는 이런 폭파는 나도 조련치 않아.》

《아버지, 저는 조선인민군 공병이였습니다.》

《애비 말도 거역할테냐?》

억만은 반세기 하고도 10여년이 넘은 이 페갱으로 제대배낭도 벗지 않은 아들을 들여보낼수가 없었다.

《청림아, 폭약대신 내 이 로동안전원완장을 주마. 너야 군인이였으니 누구도 얼씬 못하게 할수 있지 않느냐. 옥수 아버지가 떼를 쓴대도 말이다.》

억만은 아들의 마음을 늦춰보려고 했다.

《그거야 로동안전원인 아버지가 쥐고있어야 누구도 범접을 못합니다.》

(이녀석아, 거긴 위험해!)

억만은 이 말을 입밖에 내지 않고 버럭 소리쳤다.

《너 아직두 애를 먹이겠니?》

《아버지,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뭐가 되는지 알아요? 어머니는 나를 낳은걸 원망할것이고 전우들은 너절한 비겁분자라고 경멸할것입니다. 모교의 선생님들은 나같은 제자를 둔것을 수치로 여길것입니다. 그리고 옥수는 눈물을 흘리며 내 얼굴에 침을 뱉을것입니다.

아버지, 제가 이런 꼴이 되는걸 바란다면 어서 저 페갱으로 들어가십시오.

젊고 혈기왕성한 제가 나이가 많으시고 다리도 불편한 아버지를 페갱으로 들여보냈다는 수치를 안고 평생 모대길 속물이 되게 해주십시오.》

억만의 손아귀힘이 풀어졌다.

(장하다. 내 아들아, 너를 탄광의 어엿한 기둥으로 키우려는 이 아버지의 소원을 한시도 잊지말고 훌륭한 기둥감이 되여주렴.)

억만은 청림이가 쓴 군모를 벗기고 자기의 안전모를 씌워주었다. 그리고는 충전지가 달린 혁띠를 넘겨주었다.

《청림아, 똑똑히 기억해라. 네가 폭파해야 할 지점은…》

억만은 페갱략도를 종이장에 그려주며 아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페갱에선 호랑이처럼 날뛰지 말고 구렝이가 바위짬을 빠지듯 해야 한다. 알겠니?》

《아버지, 걱정마세요.》

이윽고 그들은 페갱입구를 파헤쳤다.

《불을 달고 돌아서기 전에 한번 더 확인하거라. 그리고 여유를 넉넉히 두거라.》

잔걱정이 없기로 소문난 억만이 지금처럼 다심하기는 처음이였다.

그는 지휘관이 전투에 나가는 전사를 바래울 때처럼 아들을 포옹하였다.

《실수없이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청림은 페갱으로 들어섰다.

억만은 아들의 안전모에서 비쳐지는 불빛이 더는 보이지 않았으나 굳어진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의 얼굴에 굵게 패인 주름살이랑에 진땀이 괴여 번들거렸다.

억만은 스적스적 갱입구에서 물러섰다.

(로친이 이걸 알면 나를 몹시 원망할테지!)

억만의 가슴은 납덩이가 들어앉은듯 무거웠다.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그는 몇번이나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헐떡거리며 뛰여오는 병철을 보았다.

억만이 예측한 그대로였다.

그는 로동안전원완장을 더 올려끼고 옷매무시를 바로하였다.

《임자는 왜 여기서 서성거리나?》

병철의 반기지 않는 말투였다.

《난 지금 임무를 수행하고있습니다.》

억만이 또한 무뚝뚝하게 대답하였다.

《지배인이 자넬 부르네. 로동안전원이란게 갱에 물이 찼으면 거기에 있어야지 왕청같은 곳에…》

병철은 억만의 등을 밀었다.

《내가 그 속심을 모를줄 아시우, 안됩니다. 감춘 폭약이나 내놓으시우.》

억만은 병철의 앞을 막았다.

《이보게 꺾쇠, 서로 숨박곡질은 그만하자구. 어느 하가에 갱에 찬 물을 양수기로 다 퍼내겠나?》

《퍼냅니다.》

《점점 더 불어나는데? 임자도 갱벽에 구멍을 내자고 왔지?》

《전 로동안전원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게, 누구도 얼씬 못하게. 내가 들어가 제꺽 한방 먹이겠네. 자네 다리가 성하면야 내가 아니라 임자가 들어가야지.》

병철은 억만을 구슬렸다. 자기 청이야 거절하겠는가 하는 배심도 있었다.

《안됩니다. 그 누구도 들여보낼수 없습니다. 또 나도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억만은 물러서지 않았다.

병철은 억만을 한옆으로 밀려고 했으나 그는 끄떡도 안했다.

오히려 억만이 병철의 어깨를 붙잡고 능청을 부렸다.

《이거 누가 보면 싸우는줄 알겠습니다.》

《그러게 비켜서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 올리굴엔 제대군인소대가 갇혀있어. 생명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왜 못해.

우리 옥수가 권양기실에 갇혀있는걸 알기나 해. 청림이가 그렇게 됐다면 자넨 절뚝거리는 그 다릴 끌고서라도 들어갔겠지?》

병철은 얼굴을 잔뜩 찌프렸으나 억만은 너털웃음을 쳤다.

《제대군인소대는 다 철수했습니다. 그리고 옥순 시간을 받고 읍에 갔습니다. 오늘은 권양기운전을 명숙이가 했고 그는 나와 함께 갱을 나섰으니 근심마시우. 갱엔 사람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병철은 억이 막혔다. 이렇게 떡떡 맞서기는 처음이다. 막돌을 감자라고 해도 삶아먹겠다던 꺾쇠가 아닌가!

《이보게, 어째서 청년갱에 석수가 터졌는지 생각해봤나?》

《오소리굴에 차있던 물이 그쪽으로 쏠린가봅니다. 지금까지 아무 탈 없더니만…》

병철은 억만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바로 그거네. 우리 머리통이 글러먹었소. 천년을 보증하고 만년을 책임지겠다는 그런 투철한 관점이 없었거던. 그때 우리가 청년갱바닥에 물길을 쨌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게 아닌가!》

《옳습니다.》

《우리 그때 진 죄를 씻자구. 어떤가?》

《안됩니다.》

《뭐라구?! 자넬 친형제로 여겨온 내가 어리석었지.》

그들이 한창 옥신각신하는데 제대군인소대원들이 달려왔다.

그들속에는 옥수도 있었다.

《모두 여기에 계셨군요.》

《동무들은 왜 왔소?》

억만은 병철에게서 물러서며 그들에게로 마주갔다.

《갱에 찬 물을 빼자고 왔습니다. 이 오소리굴로 들어가면 청년갱 벽과 맞다든다지요?》

갈수록 험산이라더니 이제는 제대군인소대까지 페갱으로 들어가겠다는것이다.

억만은 일부러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로 웨치듯 말했다.

《누가 그런 허튼소리를 하오. 페갱이 청년갱과 마주쳤다면 우리가 왜 가만있겠소.》

《아버지!》

주춤거리는 소대원들앞으로 옥수가 나섰다.

《아버진 언제인가 이 오소리굴을 자르면서 청년갱을 뚫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그러고보니 옥수가 제대군인소대를 끌고온것이 분명하였다.

《옳다! 그건 사실이야.》

병철이 선뜻 긍정해주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우리가 못 들어가게 꺾쇠를 박았네. 우리 이 꺾쇠아바이를 뽑아버리세. 붙들고있어도 좋고 묶어놓아도 좋아. 그러면 내 제꺽 한방 먹이고 나오겠네.》

병철은 소대원들을 부추기며 키질을 하였다.

《고문아바이, 우리가 들어가겠습니다. 지시만 주십시오.》

소대원들은 저저마다 굴에 들어갈 차비를 하였다.

《안돼!》

억만의 부릅뜬 눈은 무섭게 번뜩이였다. 누구도 감히 범접할수 없는 기상이다.

《자네들은 갱에서 끌어낼 때도 성화를 먹이더니 또 이럴텐가!》

억만의 말에 소대장은 대답이 궁해졌다. 사실 그때 소대원들은 어떻게 하나 침수되는 갱을 살려보려고 작업을 중단하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아바이, 저희들은 탄전을 지켜선 제대병사들입니다. 그러니 저희들을 좀 도와주십시오.》

소대원들이 억만아바이를 둘러싸고있을 때 옥수는 풀숲에서 딩구는 청림의 배낭과 그우에 놓인 군모를 보았다.

억만의 머리에는 안전모가 없었고 허리에 차고다니던 충전지도 없었다.

(그렇다면 안전모는 누가 썼겠는가? 그러니 청림동무가?!)

옥수는 청림이가 페갱에 들어갔다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청림동무!)

옥수의 눈굽은 젖어들었다. 그는 눈언저리를 문지르며 소대장의 앞을 막아나섰다.

《동무들! 우린 그가 누구든 로동안전원의 요구에 응해야 해요.》

《아니, 옥수동무, 어떻게 된거요?》

소대장은 놀라운 표정으로 옥수를 지켜보았다.

옥수는 눈물이 고인채로 병철에게로 다가갔다.

《아버지, 페갱에는 청림동무가 들어갔어요.》

《무슨 얼빠진 소리냐? 청림인 아직 오지 않았다.》

병철은 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청림의 어머니와 뻐스정류소에서 청림을 기다렸던것이다.

《왔어요.》

옥수는 달려가 풀숲에서 청림의 배낭과 군모를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억만이앞으로 다가갔다.

《말씀하세요. 청림동무가 들어갔지요?》

억만은 옥수의 어깨를 어루쓸었다.

그는 옥수의 머리에서 안전모를 벗겼다.

《충전지도 이리 내거라.》

이때 페갱안쪽에서 《쿠궁―》 하는 폭음소리가 울려나왔다.

병철은 소대원들과 함께 페갱앞으로 다가섰다.

《분명 누군가가 들어갔습니다.》

소대장의 말에 병철은 억만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그러니 청림이가…》

드디여 굴입구로 석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점점 물량이 많아졌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청림이 나오지 않았다.

혹시?!

억만은 절뚝거리며 굴입구로 들어섰다.

《함께 가자구.》

병철은 억만의 뒤를 따랐다. 사품치며 쏟아져나오는 물을 맞받아가기란 조련치 않았다.

굴천정에서 돌덩이들이 떨어졌다.

《조심, 조심.》

병철은 억만의 뒤에서 굴천정을 살피며 따라섰다.

억만은 멀리에서 깜빡이는 불빛을 보았다.

불빛은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

《왜 저럴가요? 분명 청림이같은데…》

《심상치 않아. 빨리 가보자구.》

청림이 비칠거리며 다가왔다.

《청림아!》

억만은 아들을 부축해주었다.

청림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렀다. 병철은 늘 차고다니던 수건으로 청림의 이마를 감싸주었다.

《정신차려라.》

억만은 아들을 잡고 흔들었다.

《아버지,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정신이 드느냐?》

《예, 떠내려오는 동발목에 그만…》 이러는데 소대장이 다가왔다.

《이런 법이 어데 있습니까!》

그는 억만에게서 청림을 받아업었다.

그들은 번갈아 청림을 업고 한치한치 굴을 빠져나오고있었다.

페갱입구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적을 울리며 달려온 병원차에서 의사와 간호원들이 내렸다.

당비서를 비롯한 탄광일군들도 모두 와있었다.

굴안을 들여다보던 옥수가 소리쳤다.

《나옵니다.》

억만은 등에 업은 청림을 꾸짖었다.

《내 뭐라던, 구렝이가 바위짬을 빠지듯 하라고 하지 않더냐.》

《잘못했습니다.》

《이젠 좀 그만하라구.》

그들의 뒤에서 병철의 지청구가 들렸다.

드디여 그들은 밖으로 나왔다.

모여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처치를 하고있는 의사들을 지켜보고있었다.

《어떻습니까?》

당비서가 청림의 상처에서 손을 떼는 의사에게 물었다.

《타박상입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청림은 담가에서 머리를 들고 아버지를 찾았다.

억만은 말없이 청림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가 근심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녀석두…》

청림의 배낭과 모자를 든 옥수는 억만의 곁에서 입술을 감빨고있었다.

옥수와 눈길이 마주친 청림은 웃었으나 처녀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는 탄광병원으로 떠나갔다.

억만은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솜뭉치같은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도는 하늘에서 백학이 너울너울 날았다.

병철이도 억만의 곁에 앉아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제길할.》

그는 물에 범벅이 된 담배갑을 던지고 억만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대 주게.》

억만이 꺼내든 담배갑도 물에 푹 젖어있었다.

《태우십시오.》

누구인가가 그들에게 불붙인 담배대를 주었다.

그들은 누가 담배를 주었는지 알려고도 않고 담배만 걸탐스럽게 빨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물구멍을 낸 사람이 누구요?》

《누구긴 누구겠어. 우리 꺾쇠아바이 아들이지.》

《오, 우리 로동안전원.》

《우리 아바이 아들이야 군대에 가지 않았소!》

사람들은 억만을 부를 때마다 우리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저 부름이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억만이와 병철은 목소리를 가려듣고 그제서야 머리를 들었다.

탄광당비서가 그들의 곁에 와앉았다.

《동발이 흔들리지 않게 든든히 박아놓은 꺾쇠처럼 탄광을 떠받들고 탄부들을 위하는 아바이같은 탄부들만이 들을수 있는 부름입니다.》

억만은 머리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놈은 저 젊은이들한테서 뺨을 맞아 마땅한 놈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비서는 의아하여 물었다.

《청년갱을 뚫을 때 우리는 천년을 보증하고 만년을 책임지겠다는 그런 정신이 없었기때문에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억만은 지난날의 잘못을 두고 이렇게 가슴아파하였다.

《이 사람은 오늘 울었습니다.》

병철은 억만의 손을 잡으며 계속했다.

《내가 억만동무를 알게 된 때로부터 수십여년이 흘렀는데 우는건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눈물은 보이지 말자던건데…》

억만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제대군인소대원들과 우리 탄광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탄광의 젊은이들은 갱을 떠받드는 나무동발이 아니라 강철동발로 벼려지고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 아들녀석을 보며 저녀석도 그 대오에 들어설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나더군요.》

당비서는 억만이와 병철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 강철동발들은 아바이들같은분들이 벼렸고 벼리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충정의 한길을 걸어온 전세대들이 말입니다.》

당비서의 목소리는 감동에 젖어있었다.

《우리 새 세대들도 전세대들처럼 우리 탄전을 믿음직하게 지켜갈것입니다.》

맑은 하늘에서는 불덩이같은 태양이 이들의 머리우에 밝고밝은 빛을 뿌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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