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1호에 실린 글
수 필
맹 세
김 무 림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모임을 가졌다.
누구는 인민군대로, 누구는 돌격대원으로…
모두가 희망도 크고 포부도 큰 맹세를 다진다.
나는 어떤 맹세를 다질것인가?
문득 할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진다. 좋은 시들을 많이 쓴 할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으랴.
얼마전 추석을 계기로 애국렬사릉을 찾았던 일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날 우리 온 가족은 애국렬사릉에 있는 할아버지를 찾아갔었다.
그 이름만 불러보아도 한없이 경건해지고 숭엄해지는 애국렬사릉!
여기에는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싸운 애국렬사들이 영생의 모습으로 있다. 그것으로 하여 우리의 가슴은 한없는 격정으로 뜨겁게 부풀어올랐다.
우리 가정은 어느덧 할아버지의 묘비앞에 섰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속에서 오늘도 밝게 웃고 계시는 나의 할아버지!
자기의 생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것이라고, 그래서 자기의 몸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위하여 한덩어리의 석탄처럼, 한줌의 거름처럼 다 바쳐야 할 몸이라고 늘 외우시던 할아버지였다.
림종을 앞둔 어느날 나의 손을 꼭 잡고 마디마디에 깊은 뜻을 담아 이야기해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어제런듯 생생히 떠오른다.
그날 우리 가족은 아침일찍 집을 떠나 할아버지가 입원해있는 병원에 도착하였다.
층계를 올라 호실의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서니 할아버지가 그날의 당보를 정히 가슴에 안고 눈을 감은채 침상에 누워계셨다. 잠든것이 아니였다.
얼마후 할아버지는 《너희들이 왔구나!》하시며 우리의 부축임을 받아 일어나 앉으시였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신문을 내보이였다.
로동신문 2면에는 할아버지가 쓴 시가 크게 실렸던것이다. 서정시 《어머니》였다.
할아버지의 시가 출판물에 실린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였다. 특히 서정시 《어머니》는 창작된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출판물은 물론 TV와 방송에도 많이 실리였던것이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실리게 될줄이야.…
할아버지의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나의 심장을 크게 울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내가 병과의 싸움에서 쓰러질가봐, 내 마음이 약해질가봐 오늘 이런 명약을 보내주신것 같구나. 이보다 더 큰 사랑,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어디에 또 있겠니.
이 한몸 다바쳐 경애하는 장군님을 이 세상 끝까지 받들자고 했는데 이제는 힘이 진해 안될것 같구나. 그러니 너희들이, 너희들이 대를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을 잘 받들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할아버지의 눈물, 그것은 한생을 두고 받아온 사랑과 믿음에 대한 감사의 눈물, 경애하는 장군님을 다시 뵙고싶은 절절한 그리움의 눈물이였다. 그것은 또한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리 세대가 대를 이어 영원히 받들어모실것을 바라는 간곡한 당부의 눈물이기도 하였다.
또다시 당보에 실린 할아버지의 시는 놀랍게도 기적을 가져왔다.
의학적으로는 며칠밖에 더 지탱할수 없다던 할아버지가 다시 생의 활력을 얻었던것이다.
힘을 내라고, 일어서라고, 더 좋은 시를 기다린다고 고무해주시고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사랑이 할아버지의 생을 연장시켜준것이다.
한생 시를 짓는 일밖에 한것이 없는 평범한 시인을 한품에 안아 때로는 엄하게 꾸짖기도 하시고 때로는 대견하다 치하도 해주시며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은 진정 할아버지와 우리 가정의 어머니이시였다, 우리 인민모두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다.
렬사릉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신다.
할아버지의 눈빛은 살뜰하다기보다 엄하시다. 더 많이 타이르고 더 많이 깨우쳐주지 못한것을 후회하는것만 같은 걱정이 담겨진 눈빛이다.
할아버지뿐만아닌 애국선렬들이 우리 세대를 지켜본다. 그리고 절절히 당부한다.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변함없이 높이 추대되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더 잘 받들어모시라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주체혁명위업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라고.
그렇다, 그들의 당부는 우리 새 세대가 받아안아야 할 유산이며 정신적재부이다. 우리 새 세대들의 맹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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