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실화소설
자매들
4
박 련 희
함박눈이 내린 뒤여서 그런지 날씨는 푸근했다.
탄광 종합지령실처마에서 떨어져내리는 락수물 소리는 별스레 유정하게 울려온다.
순금은 이동리발장에서 흥성이는 탄부들을 맞고 보내면서도 줄곧 그 청년이 오지 않겠는가고 안타까이 살폈다.
《여, 동무! 동무!》
흰 천을 앞에 두른채 순금에게 머리를 맡기고있던 부갱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허리에 찬 안전등을 철썩이며 뛰여가는 청년을 불렀다.
《부갱장동지, 야 좀 가만히 앉아계십시오.》
순금은 그의 어깨를 누르며 부탁했다. 옆에서 리발을 하던 언니들이 즐거운 웃음을 피워올린다. 아마도 동생의 속상해하는 모습이 퍽 재미있는 모양이였다.
《아, 이거 미안하게 됐소.》
부갱장은 처녀앞에 선 총각처럼 어줍게 웃으며 사죄했다.
《왜 그럽니까? 부갱장동지!》
가까이 다가온 청년이 꾸벅 인사를 하며 성급히 물었다.
《오, 잠간 기다리오. 내 동무와 의논할게 있어서 그러니 머리를 마저 깎고 보기요. 자 처녀동무, 좀 서둘러줄수 없겠소?》
부갱장이 재촉했다.
《예, 인차 됩니다.》
순금은 안전모밑에 드러난 더부룩한 청년의 머리를 힐끔 곁눈질해보고나서 가위를 재게 놀렸다. 면도가 끝나기 바쁘게 자리에서 일어난 부갱장은 청년을 의자에 앉히며 순금에게 당부했다.
《이 친구를 좀 멋쟁이로 만들어주오. 생산만 생산이라고 하면서 도무지 자기를 가꾸려고 하지 않거던. 그러다 장가는 어떻게 가려는지 쯧쯧…》
별생각이 없이 자리에 앉던 청년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하소하듯 말했다.
《부갱장동지, 우리 소대가 지금 돌격전을 벌리고있다는거야 부갱장동지도 잘 알지 않습니까. 지금 모두가 생산때문에 뛰고있는데 한가하게 여기서…》
느닷없이 던진 청년의 말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는 차거운 눈빛으로 청년을 보았다. 순금의 표정을 어느새 감촉한 부갱장이 능청스런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그러며 그는 청년을 나무랐다.
《이녀석 말투를 좀 보지. 그러고도 뭐 영웅이 되겠다구… 어림없는 일이지. 영웅이 되자면 인간적면에서 누구보다 아름다워야 하는거야. 누가 보지 않는 천길막장에서 일한다고 외모가 텁텁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건 그릇된 견해야. 그런 곳에서 일할수록 모든게 단정해야 해. 그게 바로 시대의 맨 앞장에서 달리는 탄부의 자세거던. 그러니 잔말말고 머리를 깎아. 그리고 막장에 들어가면 소대장에게 이르라구. 자매리발사들이 이동리발을 왔으니 모두 나오라구.…》
부갱장의 말을 심중히 듣고있던 청년의 얼굴이 벌깃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고개를 돌려 순금을 쳐다보며 자기가 한 말을 시정하는듯 어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안합니다. 제 성미가 좀 거칠다나니… 리해주십시오.》
청년의 순진한 말에 순금은 방금전의 고까운 감정이 훌 날아가버리는것을 느꼈다.
《괜찮아요. 어서 리발을 합시다.》
순금은 리발준비를 하며 말했다. 청년은 공손하게 앉아서 말을 계속했다.
《사실은 오늘 우리 소대장동지와 내기를 걸었습니다.》
《예?》
순금은 무중 호기심이 동했다.
《무슨 내긴데요?》
《소대장동진 오늘 동무가 꼭 이동리발을 나온다는거지요. 그러니 오늘중으로 모든 소대원들이 리발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소대장동지 모르게 렴탐을 나왔었는데 이렇게 자매리발사들이 다 올줄은…》
《고마워요. 믿어주어서…》
순금은 고마운 생각이 들어 진심으로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전 사실 반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아무러면 뭐랍니까. 이렇게 리발의자에 앉았으면 되는거지요 뭐.》
순금은 리발가위를 집어들고 청년의 머리모양을 가늠해보면서 말했다. 순금은 탄부들이 진정을 담아부르는 자매리발사라는 말을 입속으로 조용히 불러보았다.
얼마나 정답고 소중한 부름인가, 세상에 부부연구사, 5부자탄부 하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네자매리발사로 불리우는 우리들만큼 행복한 사람들도 있을가, 아니 이제 맏언니까지 리발사가 되면 다섯자매리발사가정이 된다, 비록 맏언니와 샛째언니는 탄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리발사를 한다 해도 어쨌든 한피줄을 나눈 자매리발사들임은 분명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에 잠기느라니 다섯 딸을 키워 오늘에로 내세워준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우렷이 떠오른다.
순필언니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평성상업학교가 아니라 도시경영기능공학교를 추천받았을 때 그리도 괴로와하던 아버지, 그런 언니가 홀로 리발소를 지키는 순희언니를 보고 자책의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리발가위를 잡았을 때 그리도 기뻐했던 아버지였다.
땅속의 석탄을 땅우에 끌어올려 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탄부들은 누구보다 아름다워야 한다는것을 한생의 지론으로 삼은 아버지가 있었기에 자기들이 이 세상 가장 값높은 이름으로 불리우는 탄부들속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매리발사로 자랄수 있었다는 후더움에 눈굽이 젖어들었다.
청년이 막장으로 들어간지 얼마 안있어 쪽지편지의 주인공인 그 소대장이 소대원들과 함께 이동리발장에 나타났다.
《얘, 순금아, 강남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야.》
순필이 또 놀려댈 차비를 서두른다.
아무래도 좋았다.
《순금동무,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순금의 리발의자에 앉으며 소대장청년이 어줍어하며 말했다.
《인사는 무슨… 전 저탄장에 솟아나는 석탄산이 바로 우리에게 보내는 동무의 인사로 생각하겠습니다. 그 석탄산이 높아갈수록 새로운 혁명적대고조로 들끓는 조국의 미래는 더 아름다워질테니까요.》
순금은 무슨 말인가 더 하고싶었다. 아니, 끝없이끝없이 속삭이고싶었다.
시대의 선구자로 서있는 이런 탄부와 낮도 없이, 밤도 없이 한생을 두고…
《언니, 저길 봐요. 맏언니가 와요.》
순필이 영양제식당쪽에서 걸어오는 영애를 먼저보고 소리쳤다. 갸름한 얼굴에 보조개가 곱게 패인 안영애가 동생들을 향해 손을 저으며 뛰여오고있었다.
《너희들 여기 있는걸 온종일 찾아다녔구나.》
《글쎄 우리 막내가 제 님 보러 가자면서 이 언니들에게 이동리발을 호소하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호호.…》
순필이 순금이와 소대장에게 눈길을 보내며 깔깔 웃는다.
순금은 얼굴이 꽈리빛으로 물드는것을 느끼면서도 한마디 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난 그저… 순화언니의 모범을 따르고싶었을뿐이예요.》
리발을 다 하고난 소대장은 수첩을 꺼내 무엇인가 적더니 북ㅡ 찢어 순금에게 내밀었다. 순금은 넷째언니의 눈치를 살피며 잠시 머밋거렸다.
《얘 순금아, 뭘하고있니? 앞날의 행복을 약속하는 증서인데 어서 받아.》
리발을 하면서도 어느새 청년의 행동을 보았는지 순필이 재촉했다.
어느덧 탄광마을에 하루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오늘일을 두고 웃고 떠들었다.
《얘 순금아, 네가 받은 그 쪽지편지를 좀 보자꾸나.》
영애가 궁금한듯 순금의 곁에 다가서며 물었다. 순금은 망설이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낸그는 서슴없이 내밀며 말했다.
《자, 어서 봐요. 이젠 비밀이 아니니…》
맏언니의 어깨너머로 머리를 기웃거리며 순필이 큰소리로 읽었다. 《〈래일 또 이동리발을 나와줄수 없습니까?〉 어마나, 무슨 련애편지가 이래?》
순필이 재미있다는듯 명랑하게 웃었다.
《너같으면 언니들이 있는데서〈난 동무를 사랑합니다. 오늘 밤 공원에서 만납시다.〉하고 쓰겠니?》 하고 지금껏 깊은 생각에 잠겨 걷던 순희가 동생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러주며 퉁을 주었다.
《듣고보니 정말 그렇구나.》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순필은 또 깔깔 웃음발을 날린다. 저녁노을처럼 아름다운 리발사자매들의 웃음소리가 탄광마을에 메아리쳐올랐다.
《둘째언니, 이제부터 이렇게 하는게 어때요. 우리 순금이를 생각하는 청년의 부탁대로 래일부터 순금이와 내가 이동리발을 나오는것이.… 그리고 둘째언닌 리발소에서 손님들을 맞으면서 맏언니의 견습을 주란 말이예요.》
한동안 들까불며 웃고난 순필이 순희의 손을 잡으며 정색해서 말했다.
《그러자꾸나. 그러고보니 우리 리발소의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은 결국 순금이가 지핀셈이구나. 그렇지 않니? 순필아!》
《어마나! 언니들은 그저 나보고만…》
순금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행복의 미소를 지었다. 인생의 행복이란 이런것일가? 하는 생각에 잠기면서도 순금은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아름답고 고상한 행복의 세계를…
(순천지구 청년탄광련합기업소
천성청년탄광 3갱 로동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