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실화소설
자매들
2
박 련 희
《언니!》
순금은 복도에서부터 둘째언니를 부르며 문을 열었다.
《오, 순금이구나, 어서 들어와.》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빨래를 하던 안순희는 순금을 반겨맞았다.
《빨래를 하댔어요?》
《응, 방에 들어가. 내 인차 들어갈게.》 순희는 일손을 서두르며 이렇게 말했다.
《난 빨리 가야 해요. 언니하고 한가지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말끝을 얼버무리는 순금의 얼굴에 빨갛게 홍조가 비꼈다.
《?…》
《언니, 어제 그 제대군인청년에게서 받은 쪽지편지 말이예요. 내 생각엔…》
《쪽지편지라니?… 응, 맏언니의 전보 말이냐? 참, 아버지랑 그 전보를 보았겠지. 우리 미향이 아버지도 철훈이 엄마가 리발배우러 온다니까 얼마나 좋아하던지. 이제 우리 다섯자매모두가 리발사를 하면 우리 집에 그 이상의 긍지와 보람이 없을것 같다나.》
순희의 갸름한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어렸다.
《아버지도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어제 저녁엔 기쁜김에 노래까지 한곡 불렀다니까요.》
순금은 어제 저녁 그리도 기뻐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방긋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아버지가 노래까지 불렀니? 아이참, 아버지도… 호호》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가 노래를 했다는 소리에 순희도 명랑하게 웃었다.
《순금아, 생각나니. 어머니가 내리내리 딸만 다섯을 낳았을 때 아버지가 했다는 말이?…》
한참동안 웃고난 순희가 물었다.
순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그 말을 잊을수 있으랴.
병원에서 순금이를 안고 퇴원하는 어머니를 만난 아버지는 《여보, 수고했소. 난 내 집 딸 다섯이 남의 집 열아들 부럽지 않소. 이제 이 애들을 우리모두 리발사로 키우기요.》 하고 말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순금은 언제인가 아버지가 막내딸도 리발을 배우라고 하면서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했다. 그날 순금은 언니들이 모두 리발사들인데 자기만은 제외될수 있지 않는가고 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리다가 노한 꾸중을 들었다.
《내 너희들에게 이 말만은 하지 말자고 했다만 오늘은 해야겠다. 내가 너희들을 리발사로 키우려는데는 이 아버지에게 남다른 사연이 있기때문이다. 내가 총각시절에 있은 일이다. 그때 너의 어머니와 난 서로 깊이 사랑했지. 우리들의 사랑이 무르익어 이제는 부모들의 승인을 받으려고 내가 너의 외가집에 갔던 날이다.》
아버지는 잊지 못할 추억을 되새기는듯 두눈을 가늘게 쪼프렸다.…
안현관은 장인 될 사람앞에 무릎을 꺾고 앉아있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사위 될 사람의 지나온 경력을 자세히 듣고난 처녀의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초조한 심정으로 령감의 눈치를 살피고있던 처녀의 어머니가 따라나섰다. 마당비를 들고 마당을 다 쓸고나서 오물을 초롱에 담을 때까지 아무 말도 없던 처녀의 아버지는 가까이 다가서는 로친에게 말했다.
《안되겠어.》
《예? 아니, 그건 무슨 소리예요? 그 앤 청년이 갱적으로도 이름난 혁신자라고 했는데.… 어디 그만한 사위감이 있을듯싶어서 그래요?》
처녀의 아버지는 서운한 눈빛으로 로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일터에서는 혁신자일는지 모르지만 생활은 그렇지 못하거던. 글쎄 그 머리가 그게 뭐요. 사회주의근로자답지 않거던. 이 땅에 사회주의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은 응당 외모부터 단정해야 하는거야. 그건 그 사람의 정신의 반영이기때문이야.》
마당에서 오가는 내외간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안현관은 얼굴이 화로불을 뒤집어쓴듯 달아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딸애에게 잘 말해서 돌려보내도록 하오.》
로인은 호미를 들고 뒤울안밭으로 가며 안해에게 그루를 박았다.…
《그날 너의 어머닌 나를 이끌고 곧장 리발소로 갔다.〈보세요. 내가 그만큼 일렀는데 바쁘다면서 끝내 고집하더니…〉너의 어머닌 함께 걸어가면서도 계속 중얼거렸지. 리발을 하고나온 난 버드나무밑에서 기다리고 서있는 너의 어머니에게로 걸어갔단다. 내 몸을 이리러지 돌리며 머리모양을 보고난 너의 어머닌 〈가자요.〉하며 내 손을 이끌었다.〈어디로 말이요?〉 내가 물었지. 〈어디긴 어디겠어요. 집으로 가야지요 뭐. 이제 다시 나서면 아버진 분명 승낙하실거예요.〉〈정말 승인하실가?〉난 솔직히 말해서 그때 또 퇴박을 맞지 않을가 걱정이 앞섰단다.〈응, 사내가 그렇게 용해서 뭣에 쓰겠어요. 어서 가자요.〉 너의 어머니가 고운 눈을 할기며 말했지.
딸과 함께 다시 들어온 나를 자세히 여겨보던 너의 외할아버진〈음!〉 하고 흐믓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였단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지. 〈우린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야 하는거야. 그건 바로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사회이기때문이지. 그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외모에서부터 표현된다고 볼수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것이고…〉 결국 내가 너의 어머니와 행복한 가정을 이룰수 있은것은 바로 그 리발사의 덕이라고도 볼수 있지. 그래서 이 아버진 이 세상에 직업은 많지만 구태여 너희들을 리발사로 키우고싶었단다. 화원의 아름다움이 원예사의 손에 달려있듯 이 땅의 불밝은 창가와 약동하는 공장들에 숨결을 더해주느라 묵묵히 땅속을 내리는 탄부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가꿔주는 그 길에 바로 우리 딸들이 서있기를 바라고있을뿐이란다. 물론 전차운전공을 하다가 시집을 간 너의 맏언니는 리발사로 키우지 못했다만…
이 아버진 너희들이 내 나라의 번영을 위해, 조국을 위해 한몸을 내댄 녀성영웅들처럼 살기를 바랄뿐이다.》…
아버지의 권고로 리발사가 된 순금은 견습을 받으면서 어느 한 총각의 머리를 제대로 깎아주지 못한 날 저녁 아버지에게 리발사만은 못하겠다고 투정을 했다. 한동안 막내딸의 투정을 말없이 듣고있던 안현관은 책상앞에 놓인 걸상을 끄당겨 들고 마당에 나가며 순금을 일으켜세웠다.
《리발도구를 들고나오너라.》
의자에 앉은 안현관은 거역할수 없는 엄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깎아라!》
《아버지…》
리발가위를 매만지며 순금은 오도카니 서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서!》
순금은 아버지앞에서 더는 어쩔수 없는 자신을 느꼈다.
갓 리발을 배우기 시작한 실습생의 서툰 가위질에 잘리운 반백의 머리카락이 순금의 발끝에 떨어져내렸다. 그는 조심히 가위를 놀리며 눈물을 삼켰다. 그 눈물은 아버지의 진정을 알게 된 자책의 눈물이였고 영원히 리발사로 살겠다는 맹세의 눈물이였다.
리발이 끝난 다음 안현관은 순금에게 말했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사랑과 성실성만이 담보해줄수 있지. 리발사는 사람들의 머리를 깎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우리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탄부들의 젊음을 가꾸는 원예사와 같다고 말할수 있지. 원예사가 꽃을 아름답게 피우자면 정성이 있어야 하듯이 리발사는 능력이나 재간보다도 사랑을 먼저 간직해야 한다. 그건 바로 우리가 건설하는 부강조국이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사람을 위해 복무하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이기때문이다.》
순금이 가위를 매만지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있을 때 순희가 순필이와 함께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어마나, 언니, 아버지머리를 좀 봐요. 퍽 젊어지셨네. 그렇지요?》
순필이 웃으며 아버지의 목에 매여달렸다.
《아이구 간지럽다, 이 괄랭이야.》
《아버진 순금이에게도 머리를 내댔군요!》
순희가 뜨거운것을 삼키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허허, 이젠 우리 순금이도 고급리발사 찜쪄먹겠는걸. 봐라, 난 이제부터 앞날의 인민리발사감인 우리 막내에게서 머리를 깎겠다.》
안현관은 장알박힌 마디굵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 그러다 둘째언니가 울겠네. 단골손님을 놓쳐서…》
순필이 끼여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울긴… 난 즐겁게 양보한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마당을 그득히 채웠다.…
《그런데 토론할게 있다는건 뭐냐?》
문득 순금의 생각을 깨치며 순희가 물었다. 언니의 물음에 순금은 귀뿌리를 빨깃하게 물들이며 주머니에서 청년이 주었던 쪽지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물론 자기가 했던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슬쩍 스치고…
《언니, 그 동문 분명 오지 않을거예요. 난 리발소에서 여기로 오면서 길옆에 세워놓은 전투속보를 통해 그것을 더더욱 확신했어요. 그래서 난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이 타오르는 탄부들의 일터로 이동리발을 나갔으면 해요.》
《순금아!》
순희는 물묻은 손으로 빨간 뜨개장갑을 낀 순금의 손을 꼭 잡았다.
《네가 다 자랐구나. 리발을 처음 배울 땐 응석받이이던 우리 막냉이가 이렇게 돋보이는 처녀로 성장했으니… 가자, 우리 함께… 순필이도 데리고 말이다.》
순희와 순금은 서둘러 순필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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