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땅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

(3)

정 철

×

 

불안하고 어수선한 날이였다.

쿵쿵ㅡ 남쪽가까이에서 둔중한 포소리가 간단없이 들려오고 앞벌을 에돌아간 큰길로는 아침부터 한밤까지 북으로 가는 사람들의 대렬이 끊어지지 않고있었다. 마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짐을 꾸려가지고 북으로 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섰다.

하지만 형섭은 안해와 함께 그날도 어뜩새벽부터 벼가을에 달라붙었다. 2~3일만 있으면 벼알이 잘 여물것 같았으나 더 기다려낼수 없어 일을 시작한것이였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들내외는 일하는 정신에 적비행기가 날아든것도 몰랐다. 논에서 멀지 않는 둔덕에서 요란한 폭음을 울리며 흙기둥이 날아올라서야 그들은 논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기총탄이 그들옆을 누비며 물방울을 튕겨올렸다.

《여보, 점박이가…》

안해의 다급한 소리에 머리를 든 형섭은 마을쪽으로 미친듯이 뛰여가는 소를 보았다.

형섭은 허겁지겁 소를 따라갔다. 그가 가닿기도 전에 소는 기총탄에 맞아 내물옆에 쓰러지고말았다.

형섭은 소를 살려보려고 여기저기 다니며 약도 얻어오고 갖은 정성을 다했으나 소는 끝내 죽고야말았다.

살붙이처럼 애지중지하던 점박이의 죽음, 소때문에 흘러보낸 시간, 아직도 논에 남아있는 벼이삭들,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흉흉한 소문들…

주형섭은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는듯 했다.

어느날 아침 《치안대》완장을 팔에 둘러감고 보총을 거꾸로 둘러멘 용구가 주형섭의 집대문을 부실듯 걷어찼다.

《주서방, 우리 어르신님이 찾수다.》

《무슨 일로 날 찾는달 말인가?》

《가보면 알게 되겠는데 뭘 그래요. 빨리 가자구요.》

용구에게 떠밀리다싶이하여 성인학교로 쓰던 지주집대문에 들어선 형섭은 대청마루에 비단요를 펴놓고 앉은 지주 최웅배를 보자 불시에 풀숲에서 뱀을 본듯 소름이 끼쳐졌다.

《내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었겠는데 인사법도 잊었나보군. 그래도 이 동리에서 남아있는 젊은 사람이란 자네뿐이더군.

땅임자가 올 때까지 기다린건 잘한 일이지. 그게 의리야. 안 그런가?》

형섭은 억이 막혀 컴컴한 얼굴로 서있기만 했다.

《자네 내 땅을 다섯해째나 부쳐먹었겠다?》

《예, 그 땅을 분여받은 덕에 황소도 생기구 새집도 짓구… 부자가 되였지요.》

용구가 두손을 맞잡고 허리를 굽석이며 신이 나서 지껄여댔다.

《그래그래. 내 땅의 기름으로 네놈들이 살졌단 말이지. 내 오늘을 얼마나 기다린줄 아느냐?

긴말할게 없다. 묵은 소작료는 한푼도 에누리없이 다 받아낼테니까 그리 알고 준비하게.》

최웅배의 말에 형섭의 눈에서 불이 번쩍 일었다.

《뭐요? 소작료를 받다니… 그렇게는 못하오.》

형섭의 뜻밖의 태도에 마당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최웅배는 이발을 사려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이놈, 네놈은 한생 머슴을 살아도 네 애비에미가 진 빚을 다 못 물어. 해방덕에 모든걸 너그럽게 잊자구 했더니 오히려 제편에서 큰소리를 쳐. 에끼 이 고현놈, 네놈이 뭐 애국미와 전선원호미도 선참으로 바쳤다지. 그것만 해도 네놈은 죽어야 해. 그러지 않아도 군〈치안대〉대장을 하는 애들애가 네놈을 잡아가겠다는걸 옛정을 생각해서 말렸더니…》

《어서 잘못했다구 말씀올리라구요.》

용구가 이러며 형섭의 등을 총구로 꾹꾹 찔러댔다.

형섭은 용구를 쏘아보았다. 침을 퉤 뱉아주고픈 심정이였다.

과연 무엇을 잘못했다는건가. 지금까지 자기가 한 모든 일은 땅을 준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노력에 불과한것이였다. 머리칼을 베여 신을 삼아드린들 그 은혜를 어찌 다 갚는단 말인가.

땅, 땅은 그의 소원이였고 생활이였고 목숨이였고 미래였다. 그 모든것을 안겨준 나라에 응당 바쳐야 할 애국미를 바쳤는데 그게 무슨 죄로 된단 말인가.

형섭은 밤낮 술에 절어 건달을 부리던 용구가 요즘 왜 그리도 기세가 등등해졌는지 이제야 깨도가 되는듯 했다.

그러니 용구, 저놈은 지주 최웅배와 한배속이였구나. 이 막된 놈, 은혜도 모르는 너절한 놈, 그래 나라에서 네놈에게 땅을 주지 않았단 말인가.

아, 내가 영세의 말을 듣지 않고… 이게 무슨 꼴이람.

그는 너무도 상심하고 자신이 저주스러워 머리를 들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형섭에게로 다가선 최웅배는 들고있던 개화장으로 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불의의 타격에 형섭은 맥없이 쓰러졌다.

그러자 용구가 달려들어 그의 온몸을 차고 밟고 하며 짓뭉갰다.

형섭의 머리와 입에서는 선지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히히닥거리며 물러가는 그놈들을 쏘아보며 짓밟힌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이, 자기의 모든것이 너무도 한스러워 땅을 치며 통곡했다.

《아, 영세!》

형섭은 세포위원장 영세가 몹시 그리웠다. 늘 자기를 깨우쳐주고 이끌어주던 그 나날들이 자기에게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 나날이였던가를 이제야 똑똑히 알게 된것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곁에 영세가 없었다.

그 시각 땅도 형섭을 끝없이 저주하는것만 같았다.

형섭은 그때야 영세를 따라서지 않은 자기의 행동이 살붙이처럼 아끼고 귀중히 여기던 땅앞에 죄되는것이였음을 깨닫고 다시금 가슴을 쳤다.

그날 저녁 량용구는 《치안대》완장을 두른 놈팽이 셋과 함께 형섭의 집 창고에 있던 쌀가마니를 몽땅 실어가버렸다. 눈을 펀히 뜨고서도 제집에 있는 식량도 지키지 못한 자신이 저주로워 그는 구들장을 쾅쾅 두들겼다.

쌔근쌔근 잠을 자던 아들애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두눈에 눈물이 글썽한 안해가 아이를 안으며 애원조로 말했다.

《여보, 난 어쩐지 무서워요. 이제라도 양덕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가시자요. 날 밝기 전에 떠나자요.》

《아니, 아니야, 그렇게는 못 가.

인간의 권리와 존엄마저 짓밟힌 내가 이제 가긴 어디로 간단 말이요.》

형섭은 안해의 손을 꼭 잡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보, 난 잘못 살아왔소. 지킬줄 아는 사람만이 땅의 영원한 주인으로 살수 있다고 하던 영세의 말을 스쳐지났거던. 그때 군복을 입었어야 하는건데… 여보, 아이를 데리고 먼저 떠나오.

내 여기 일을 마무리하고 따라가겠소. 그러니 걱정말고 어서 먼저 가오.》

주형섭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며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안해를 우격다짐으로 떠나보내고야말았다.

안해가 떠나가자 그는 벌떡 일어났다. 날이 밝을 때까지 썩썩 낫을 갈아 시퍼렇게 날을 세웠다.

 

×

 

이튿날 아침이였다.

놈들은 남아있는 마을의 늙은이들과 녀인들을 강제로 끌어내여 식량 묻은 곳을 대라고 온갖 만행을 다 저질렀다.

한쪽에서는 《치안대》놈들이 집집마다 샅샅이 수색하여 빼앗아낸 얼마 안되는 쌀가마니들을 창고안에 넣고있었다.

음산한 마가을바람에 짚검불이 창고앞에서 이리저리 흩날렸다. 형섭은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창고안에 쌓인 쌀가마니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최웅배의 말에 의하면 미군의 식량보장을 위해 곧 실어간다는것이였다.

《형섭이, 이 사람.》

누군가가 그를 찾았으나 형섭은 듣지 못하는듯 하였다. 마치 온넋이 그의 몸에서 빠져버린듯 하였다. 여기저기서 땅이 꺼지도록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매캐한 연기냄새가 불길한 앞날을 예고하듯 꾸역꾸역 몰려왔다.

형섭은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날 밤이였다.

별 하나 없는 캄캄한 하늘은 먹물을 뿌린듯 했다. 축축한 이슬이 땅에 내려앉는 새벽 2시였다.

창고앞에서 보초놈이 끄덕끄덕 졸고있었다. 그놈도 아침부터 매 집들과 창고로 왔다갔다한터여서 초저녁에 량용구가 졸지 말라고 꽥꽥 소리질렀어도 몰려드는 졸음을 어찌할수가 없었던 모양이였다.

여기로 조용히 다가가는 한 농민이 있었다. 허리춤에는 낫이 끼워있었고 어깨에는 망태기가 메여있었다. 망태기에는 삐죽이 내민 한리터들이 큰 병이 보였다.

형섭이였다. 그는 느릿느릿한 걸음 그대로 창고마당에 들어섰다.

요즘에 와서는 볼수 없던 침착한 몸가짐이였다.

그는 아무렇게나 총을 메고 자고있는 보초놈에게로 다가섰다.

《여보게.》

대답이 없었다.

형섭은 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마개를 뽑았다.

그것은 석유였다.

형섭은 창고문에 대고 석유를 뿌렸다. 이어 성냥을 득 그어대자 인차 불이 당겼다.

창고앞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형섭은 여전히 잠에 취해있는 보초놈에게서 총을 빼앗아냈다. 그바람에 눈을 뜬 보초놈이 와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엉?! 이게 뭐야, 넌 누구냐?》

《주형섭이다. 이놈아, 살고싶거든 썩 사라져라.》

보초놈은 형섭의 손에 든 총과 시퍼렇게 날이 선 낫을 보자 기겁하여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을 놓았다.

불길은 널름거리며 지붕으로 오르고있었다.

형섭은 다 타버린 문짝을 총대로 제껴버리며 창고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쌓여있는 쌀가마니들을 솥뚜껑같은 투박한 손으로 살뜰히 쓸어만졌다.

《날 용서해라, 어찌겠니.…》 형섭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병에 남은 석유를 쌀가마니에 쏟았다. 인차 불길이 당겼다.

《다 타거라.》

그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눈물은 불빛에 진한 피처럼 보였다.

한동안 쌀가마니가 타는 모습을 지켜보고있는데 《빨리 불을 꺼라, 불을 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허우적거리며 달려온 최웅배와 《치안대》놈들이였다.

형섭은 밖으로 나섰다.

《네놈이 여기 있었구나. 저놈을 묶어라.》

형섭을 본 최웅배는 미친 승냥이마냥 날뛰였다.

여러놈이 형섭이에게 달려들었다.

형섭은 마주오는 량용구를 발기로 차버렸다. 량용구는 뜻밖의 타격에 나자빠졌다.

《달려드는 놈은 죽여버리겠다.》 형섭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가 추켜든 낫이 불길에 번뜩였다.

《뭐야? 이 머슴놈의 새끼가… 죽고싶단 말이지.》

최웅배가 권총을 꺼내들고 다가들었다.

형섭은 마주가며 최웅배놈의 낯짝을 찍으려고 낫을 들었다. 순간 《땅.》하는 굉음이 울리더니 헉하는 숨소리에 이어 형섭은 흠칫 몸을 떨었다.

《치안대》놈들이 달려들었다.

《가만!》

최웅배가 그놈들을 제지시켰다.

《머슴놈이 주인이 되고싶단 말이지.》놈은 음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그러뜨린 형섭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형섭은 배를 움켜쥔채 머리를 들고 가까스로 다가갔다.

《그래, 진짜주인이 되고싶었다.

이놈들아, 똑똑히 알아둬라. 이제 이 땅의 진짜주인들이 다시 돌아와 네놈들을… 모두 쓸어버릴게다. 아, 땅이란 가꾸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지켜야 한다는걸 내 미처 몰랐구나.》

형섭은 안깐힘을 모아 낫으로 최웅배놈의 목덜미를 찍었으나 힘이 진한 탓에 그만 어깨에 박히고말았다.

《아이쿠, 저놈을 죽여라.》

최웅배가 발악하며 연거퍼 총탄을 퍼부었다.

형섭은 귀중한 이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는듯 두팔을 힘껏 벌려 그러안은채 더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성혁이는 눈물이 흐르는 비장한 얼굴을 한옆으로 돌리며 터치지 못하는 심정을 억제하고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성혁이가 동수의 어깨에 기대며 나직하고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버지, 오늘같은 날 우리 집안의 가정사를 이야기해주시는 그 마음을 일생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틀어잡아야 할 총대우에 내 고향의 기름진 땅을 그리고 조국을 얹어준 아버지의 그 뜻을 말입니다.》

동수는 아들의 어깨우에 손을 얹고 빨간 령장이 빛나는 군복입은 그의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혹시 너의 할아버지는 해마다 집살림을 풍성하게 해주고 사람답게 살게 해주던 그 땅이 너무도 쉽게 차례져 땅의 금새를 미처 몰랐던것은 아닐가. 그 땅이 우리 수령님께서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백두산총대로 찾아주신 땅인줄 정말 몰랐단 말인가.

할아버지는 머슴군에 불과한 자기에게 평생소원이였던 땅을 주신 우리 수령님과 공화국의 고마움이 어떤것인지까지는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을 지켜야 한다는것, 땅을 빼앗긴 원쑤들이 어둠속에서 칼을 갈고있다는것을 몰랐던것이다.

할아버지는 때늦게나마 그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래서 그 땅을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는 피의 교훈을 자기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깨우쳐준것이 아닌가.

동수는 아들과 수로제방우에 말없이 앉아있었다.

넓은 관개수로로 반짝이며 흐르는 물면을 스칠듯 제비들이 휙휙 날아예고 버드나무는 점차로 짙어가는 록색빛을 물우에 실으며 하느적이고 먼 들판엔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여나고있었다.

아들은 정든 고향의 모든것을 오래도록 티없이 맑은 눈동자에 가득 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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