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고향에 온 첫날밤에

(1)

정 순 성

 

 

 

22시 05분

 

군복을 입고 초소로 떠났던 제대병사 한창호는 드디여 이밤 고향도시의 역구내에 발을 내려놓았다.

아, 고향아.

한껏 부풀어오르는 감개에 한창호는 《아!ㅡ》하고 힘껏 목청을 내지르고싶었고 이 그리웠던 땅에 막 딩굴고싶었다.

역에서 이제 한 20분간 걸어들어가면 창호가 나서자랐고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탄광마을이 있다. 20분걸음이라야 제대병사 창호에게는 히쭉 웃어넘길 거리다.

그런데 비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기쁘다. 하늘도 이 한창호를 비줄기로 축하해주려나부다 하고 생각하며 한동안 감회깊은 눈길로 고향을 둘러보던 창호는 뚜벅뚜벅 밤의 정적을 깨치며 탄광마을을 향해 발자욱을 뗐다.

기차에서 내린 손님들마저 여기저기로 흩어지고보니 거리엔 인적이 뜨음했다.

뚜벅뚜벅 한창호의 발자국소리만이 공간에 부딪쳤다가 다시 돌아오군 한다.

드디여 탄광마을입구에 들어섰다.

한창호는 가슴뿌듯이 정회를 느끼며 고향탄전을 바라보았다.

모든것이 깊이 잠든 시간이였건만 고향탄전은 잠들지 않고있었다. 승리갱쪽에서와 청년갱쪽에서 석탄을 실은 전차들이 드나드는지 푸른 섬광이 번쩍인다.

빨리 집에 가 아버지, 어머니와 만나고싶었다.

탄광에 오는것때문에 늦어졌으니 내가 나타나면 아이구, 이제야 왔구나 하고 무척 반가워하실테지.

이렇게 생각하니 벙글서 웃음이 떠오른다.

탄부들의 교대시간도 퍽 지난 때라 길가엔 인적이 아예 없었다. 그런데 비발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창살같은 비줄기가 좍좍 내리퍼부었다. 지나가는 소나기일테지 하고 창호는 길가의 상점처마밑에 닁큼 뛰여들었다.

비를 긋고 서있느라니 군사복무시절 전사때 일이 떠올랐다.

한창호는 입대하여 처음으로 행군에 참가하였다.

중대에는 한창호처럼 어깨에 빨간 령장을 단 전사들이 세명이나 있었다.

무기장구류를 메고 눈이 허리를 치는 북대봉의 험한 산악을 극복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전사들은 몇번이나 눈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때마다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이 달려와 전사들을 부축였다.

드디여 휴식을 알리는 구령소리가 앞대렬에서 쟁쟁히 울려왔다.

세명의 전사들은 배낭을 멘채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앉았다.

이때 중대정치지도원이 그러는 전사들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창호! 철남이! 맥을 놓으면 안돼. 그러다 잠들기만 하면 얼어죽어. 자, 기운을 내라구. 우리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향자랑이나 하자구.》

《고향자랑!ㅡ》

세명의 전사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듯 입속말로 고향자랑을 되뇌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모닥불이 활활 피여났고 전사들은 저마다 젖은 신발과 발싸개를 말리우며 무슨 고향자랑을 할가 속구구해보며 정치지도원을 바라보았다.

정치지도원이 자기곁에 바싹 붙어앉은, 유별나게 흰머리카락이 다문다문 섞여 일명 할아버지병사로 불리우는 전사에게 첫 발언권을 주었다.

병사는 담차게 일어났다.

《우리 고향은 함경북도 연사군입니다. 우리 고향에는 어버이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의 불멸의 투쟁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사적지가 있습니다.

우리 고향으로는 한해에도 수많은 답사생들이 찾아와 백두의 혁명전통을 따라배웁니다. 그리고… 또 우리 고향에는 감자가 유명한데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우리 아버지 분조에서는 호박만한 감자를 캤습니다. 그때 평양에서 연구사들까지 내려왔댔습니다.》

처음에는 비둘기처럼 가슴을 쑥 내밀고 담차게 이야기하던 그가 감자자랑을 하고는 멋적은듯 뒤더수기를 쓸었다.

《저런, 준호동무 고향은 뜻깊은 고장이구만. 이번에는 철남동무가 해보오.》

얼굴이 해말쑥하고 처녀처럼 곱게 생긴 철남이가 기다린듯이 일어나며 고향자랑을 했다.

《저의 고향은 평안남도 덕천시입니다. 우리 고향은 세가지 자랑으로 유명합니다. 첫째는 고인화석의 발견! 그 이름은〈덕천사람〉, 둘째로 신인화석의 발견! 그 이름은〈승리산사람〉 그리고 세번째 자랑은 우리 고향에 우리 나라 굴지의 자동차생산기지가 있는것입니다.》

그는 손을 꼽아가며 마치나 력사학자라도 된듯 간단명료하게 고향자랑을 했다.

고향자랑을 하고난 두 병사의 얼굴은 자랑도 많은 고장에서 사는 긍지로 붉게 상혈져있었다.

이번 차례는 한창호였다.

저 병사는 손가락 몇개를 꼽아야 그 자랑을 다할가, 병사들은 호기심이 잔뜩 어린 눈길로 창호를 바라보았다.

《저, 우리 고향은 탄광마을입니다. 우리 고향에는 석탄이 무진장합니다. 그리고… 저…》

한창호는 말끝을 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얼굴이 수수떡처럼 달아올랐다.

탄광에서 나서자란 그가 석탄을 내놓고 더 무엇을 자랑하랴. 그저 보이는것이 석탄, 또 흔한것이 있다면 버럭돌뿐이니 말이다.

그때 고향자랑을 하다말고 털썩 앉아버리던 창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하던 정치지도원의 실망의 말…

《창호! 아니야, 동무의 고향자랑은 그게 전부가 아니야.》

천천히 도리머리까지 젓던 그 심각해보이던 얼굴표정…

고향에 첫 발자국을 찍고보니 전사때 그 일이 제일먼저 추억되는것이였다.

비는 내리기도 무섭게 내리더니 언제 그랬더냐싶게 뚝 멎어버렸다.

한창호는 상점처마밑을 나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러던 그의 걸음은 탄광당위원회청사앞에 세워진 영예사진판앞에서 멈추어졌다.

사위는 칠흑같은 어둠으로 꽉 뒤덮였지만 사진판을 비치는 형광불빛은 사진속의 자그마한 김까지도 알아볼수 있게 환했다.

한창호는 영예사진들가운데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

창호는 반가움에 아버지를 부르며 한걸음 다가섰다. 사진속의 아버지는 금시 달려나와 아들을 힘껏 포옹할듯 환하게 웃고있었다.

한창호의 아버지는 탄광마을이 자랑하는 공훈탄부였다.

아들이 초소로 떠날 때 아버지는 공훈탄부의 칭호를 받고 이렇듯 영예사진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했던것이다. 그때는 흑백색사진이였는데 오늘은 천연색사진으로 바뀌였다.

《아버지! 이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한창호는 경건한 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사진속의 아버지도 말하는듯싶다.

《창호야! 아버지는 널 기다렸다. 이 아버지와 손맞잡고 더 많은 석탄을 캐자!》

《그래요. 이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자고 고향탄전으로 왔습니다.》

《그래 그래, 이 탄전이 너희들의 활무대가 될게다.》

《…》

한창호는 오래도록 아버지와 마음속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눈길은 다른 사진들에로 이어졌다.

아, 이건 명국이 아버지, 저건 철혁이 아버지구나.

그러던 창호는 한 사진앞에서 눈길을 멈췄다.

사진속의 주인공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박속같은 흰이를 드러내고 벙실벙실 웃고있었다.

퍽 낯익은 모습이였다. 그렇지, 수밤송이…

그는 학창시절 머리총이 남달리 뻣뻣하여 수밤송이같다고 하던 분명 그 국철이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체육단에 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가?…

반가움과 의문속에 창호는 사진판앞을 떠났다.

점점 집이 가까와지고있었다. 가슴이 마냥 설레인다.

그러던 한창호는 어느 한 덩지큰 건물앞에서 또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 건물은 탄부들을 위한 공업대학이였다.

수많은 탄부들과 함께 한창호의 아버지도 이 공업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채굴기사의 자격증을 받았고 오늘은 탄광의 지배인으로 일하고있다.

한창호는 생각깊은 눈길로 대학현판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의 주머니속에는 제대되기 몇달전 아버지가 보내온 편지가 들어있다. 그 편지의 구절구절이 다시금 떠오른다.

…창호야, 이제 얼마 안있어 제대된다니 생각이 많겠구나. 어제 너의 정치지도원이 써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중대정치지도원은 중대에서 너를 상급학교에 추천하려 한다더구나.

창호야!, 축하한다. 너는 군사복무를 잘하여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녔고 또 대학추천까지 받게 되였으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 바랄게 없다.

창호야, 네가 군대에 나간 뒤 우리 탄광은 몰라보게 달라졌단다. 갱도 늘어나고 아버지가 갱장으로 일하던 5갱은 벨트콘베아를 갖춘 현대적인 갱으로 꾸려졌단다. 탄광마을도 도시부럽지 않게 잘 꾸려놓았단다.

어디 그뿐인줄 아니, 몇달전에는 우리 탄광에서 자란 청년들이 군사복무를 마치고 모두가 고향인 탄전으로 돌아왔단다. 지금 그 억대우같은 제대군인들이 착암기를 틀어잡고 굴진속도를 높이니 석탄은 무진장 쏟아진단다.

며칠전에는 많은 탄부들이 한날한시에 탄광공업대학에 입학했단다. 이제 그들이 대학을 마치고 저마다 한가지씩 기술혁신을 하면 우리 탄광이 얼마나 발전하겠니.

이 아버지는 그 미더운 청년탄부들을 볼 때마다 널 보는것만 같아 네가 더 그리워진다. 창호야, 이 아버진 그들속에서 너의 모습을 찾군 한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본 창호는 며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의 편지내용이 생생할수록 그 제대군인들과 함께 땀을 동이로 쏟고싶은 욕망을 느꼈다. 또 몰라보게 변모된 탄광마을이 눈에 삼삼 어려왔다. 때없이 청춘의 흥분이 흥떡흥떡 심장을 놀래웠다.

가자, 아버지가 기다리는 고향탄전으로 가서 탄도 캐고 공업대학에서 배움의 나래도 펴자.

결심이 선 한창호는 중대정치지도원을 찾아갔다.

《정치지도원동지! 전 제대되여 고향탄전으로 가겠습니다. 정치지도원동지도 생각나시겠지요. 전사때 고향자랑을 하던 일 말입니다. 그때 전 탄밖에 자랑할게 없다고 창피를 느꼈댔습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탄전은 지금도 우리 제대군인들을 부르고있습니다.》

정치지도원은 창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난 창호동무의 결심을 굳게 지지하오. 어서 그래주오. 그리고 탄전을 보란듯이 꾸려주오.》

두사람은 뜨겁게 손을 맞잡았다.

이제 한창호도 이 공업대학에서 공부하게 될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설레인다.

한창호는 가슴후더움을 느끼며 집으로 발걸음을 다시 옮기는데 가까이에서 와르르ㅡ 철써덕 하고 무엇인가 묵직한것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사위를 둘러보니 자기가 석탄적재장 가까이에 서있었다.

창호는 전지를 비치며 소리난쪽을 찾아갔다.

드디여 창호는 뚝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아이쿠, 이게 뭐야! 사선으로 무섭게 들이친 비살에 적재장 한귀퉁이의 블로크짬새기에서부터 솔솔 허물어내린 탄에 허우룩했던 담이 통채로 무너져내린것이다.

그 량은 거의 한차분이였다.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