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1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밝은 웃음

(1)

김 철 남

푸른 하늘은 류달리 맑았다.

목화송이같은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봄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파랗게 단장한 나무아지들이 춤을 추듯 하느적거렸다.

모내는 벌판에서 울리는 흥겨운 포전방송소리가 산속에까지 들려왔다.

저 멀리 아름답게 펼쳐진 농장마을은 인남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지금 통신선로검열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였다.

단독임무를 맡고 나와보기는 처음이였다.

인남은 분대장인 동철에게서 책임성을 높이고 사고없이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선로구간은 별일이 없었다. 모든게 정상이였다.

마지막구간까지 갔다가 돌아서며 시계를 보니 11시까지는 능히 초소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래서 갈 때와는 달리 걸음을 늦추며 오다가 쉬는 길이였다.

이제 앞에 있는 나지막한 등성이만 올라서면 정든 초소가 보인다.

인남이 모자를 벗어들고앉아 땀을 들이는데 눈앞에서 무엇인가 날아다녔다.

처음에는 별치 않게 생각했는데 마리수가 점점 많아져 자세히 보니 벌들이였다. 어디서 오는지 무리지어 인남의 눈앞을 지나간다.

(이게 무슨 벌이야?)

벌떡 일어난 인남은 벌떼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자세히 보니 분명 꿀벌이였다. 솜털이 보시시하고 작은것으로 보아 방금 세간난 벌들이였다.

지금은 벌이 한창 세간날 철이였다. 이놈들은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도주한 벌들이였다.

인남은 기가 막혔다. 이 벌을 기르던 주인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벌이 세간나는줄 미처 몰랐을가, 아니면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생겨…

인남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인남의 집은 자강도 산골의 림산마을이였다. 그의 집에서도 벌을 많이 쳤다. 해마다 얻은 꿀을 탁아소와 유치원 그리고 인민군대에도 많이 보내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군과 리에서는 인남이네 집을 꿀집이라고 불렀다.

자강도 림산마을에 벌치는 집이 많다 하지만 인남이네처럼 벌통이 많은 집은 드물었다.

벌이 세간날 때마다 아버지는 그놈들을 잡아 새 벌통에 이사시키느라 땀깨나 흘렸다. 벌통이 늘어날 때마다 그리도 기뻐하던 아버지였다.

세간날 때 제때에 잡지 못하면 놓쳐버리기 쉬운게 벌들이였다. 보나마나 이 벌들도 그렇게 놓쳐 버렸을것이다. 그렇지 않으면야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는가? 인남은 저도 모르게 한발자국, 한발자국 벌들이 가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어딘가 내려앉았겠는데…)

벌들은 초소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날아갔다.

그가 잡관목을 헤치며 따라가니 오랜 참나무주위에 벌들이 뭉쳐돌아가는게 눈에 띄였다.

(왕벌이 여기에 내려앉았구나.…)

참나무는 자기 품에 날아온 벌들이 대견한듯 팔뚝같은 아지들을 사방 넓게 펼치고 보호자인듯 위엄있게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리 높지 않은 부위에 작은 수박만 한 뭉치가 달라붙어있었다. 그 주위를 숱한 벌들이 떠돌며 붕붕거렸다. 온통 벌천지였다. 얼마나 많은지 와글와글한게 정말 볼만 하였다.

벌들은 계속 날아오고있었다.

인남이 좀더 가까이 접근하여 벌떼를 보려는데 눈앞으로 무엇이 확 날아오더니 이마가 따끔했다.

《아이쿠!》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벌 한마리가 각성있게 근무를 서다가 무리를 향하여 접근하는 인남이에게 공격을 가했던것이다. 이어 벌들이 련달아 공격해왔다. 기겁해서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서던 인남은 떨기나무가지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거나말거나 벌들은 용서가 없었다.

한놈은 어느새 목덜미로 기여들었고 또 다른 놈은 오른쪽볼을 공격했다. 나머지 놈들은 잘한다고 부추기듯 붕붕거리며 기회를 엿보더니 공격의 도수를 높이며 위협했다. 인남은 바빠맞아 모자를 벗어 휘저었다. 벌들은 더 성이 났다. 또 눈섭부위가 따끔했다.

《아가…》

인남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죽은듯이 엎어져서 꼼짝도 안했다. 그 어떤 방어도 필요없었다.

얼굴을 가리고 그저 가만있는게 상책이였다.

얼마후 벌들은 인남이 움직이지 않자 승리의 개가를 부르듯이 붕붕거리며 사라지고말았다.

인남은 사방 휘둘러보며 조심조심 뒤걸음쳤다.

(에… 혼났다. 이거 어쩐다, 분대에 웃음거리가 되겠는데… 분대장동지가 철없다고 욕하겠지.)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벌에 쏘인 자리들에 침을 발랐다. 벌써 부어오르는게 알렸다. 목덜미도 따끔거렸다.

허지만… 놓쳐버린 벌을 두고 속상해할 주인을 생각하니 벌에 쏘인 아픔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문득 집에 있을 때 일이 생각났다.

어느해인가 세간날 벌이 달아난 일이 있었다.

그날 군에 회의갔다가 돌아온 아버지는 너무도 분하고 속이 상해 한숨만 푹푹 내쉬였다.

밥맛까지 잃은 아버지를 보며 인남은 자신을 원망했다. 자기만 있었어도 일이 그렇게 안되는건데…

그런데 뜻밖에도 도망쳤던 벌들이 며칠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줄이야…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군인들이 벌통을 차에 싣고와서 집에서 도망친 벌들이 아닌가고 하며 마당에 내려놓는것이였다.

인남이와 아버지가 놀라와하자 군인들은 중대주변 수림속에 벌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었기에 이 주변에서 놓친 벌이라는것을 알고 벌치는 집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는것이였다.

그들이 드디여 주인을 찾았다며 밝게 웃으며 돌아갈 때 인남은 눈굽이 다 젖어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 일을 잊을수가 없었다.

그런데 군복입은 자기는 두눈을 뻔히 뜨고서도 도망쳐나온 벌을 잡아 주인에게 돌려줄수 없으니… 그들이 이 일을 안다면 나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인민의 군대가 맞는가고 물을것이다.

인남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돌아서자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초소로 오면서도 눈앞에서는 벌떼들이 뭉쳐 돌아갔다. 그래서 뒤를 자주 돌아보았다.

그는 앞에서 《인남동무.》라고 찾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분대장동지가?…)

인남은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뛰여가기 시작했다.

단독임무를 처음으로 받고나간 인남이가 걱정되여 마주오던 동철이였다.

헐떡거리며 달려와 경례하는 인남을 보는 순간 동철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왜 이렇게 됐소?》

《저…》

《도대체 무슨 일이요? 이런… 얼굴이 말이 아니구만.》

《벌한테 쏘였습니다.》

인남은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벌?!》

동철은 어이가 없었다. 군대라는게 아이들처럼 벌을 따라다니나니? 저 얼굴을 해가지고 어떻게 분대앞에 나선단 말인가.

동철은 머리를 숙이고 발끝만 비비적거리는 인남을 바라보며 괜히 그를 혼자 보냈다고 자신을 자책했다. 그는 인남의 얼굴상태를 가늠해보며 다정히 물었다.

《힘들었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나서 벌하고 놀았어?》

동철은 저도 모르게 웃으며 인남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제가 따라갔던 벌은… 꿀벌이였습니다.》

인남의 말에 동철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뭐, 꿀벌?!》

《예, 지금은 벌이 세간날 때입니다.》

《벌도 세간난단 말이지.》

동철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인남의 말에 귀를 강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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