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밤길에 만난 사람
박 춘 학
며칠간의 취재길에서 돌아오니 나의 책상우에 편지 한장이 놓여있었다.
겉봉에 씌여진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일가?
의문을 품고 속지를 꺼내여 읽어보니 ○○대학의 녀학생이였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저는 얼마전에 선생님이 쓰신 기사 〈과학자부부〉를 읽고 감동이 컸습니다. 그들이 나라의 과학기술발전과 인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길에서 서로 돕고 이끌면서 난관과 애로를 박차며 한생을 빛나게 장식하고있는 참모습에 가슴이 더워나고 머리가 숙어졌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 과학자부부의 청춘시절에 대하여 더 알고싶습니다.
물론 기사에서 언급이 되기는 하였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알려줄수는 없겠는지요?》
편지를 읽은 나의 가슴은 저으기 달아올랐다. 오랜 세월 기자생활을 해오면서 독자로부터 이런 저런 질문이나 의견을 담은 편지를 한두번만 받아오지 않았지만 이런 간절한 청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였다.
물론 기사의 목적에 따라 주인공의 한생을 또는 그 한 부분을 보여줄수 있지만 이 독자의 의사에 따르면 나의 기사는 뿌리 잘린 나무와도 같다는것이 아닌가.
녀학생의 청을 성의껏 들어주어야 한다. 이것은 기사의 필자인 나의 마땅한 도리이다.
1
박철훈은 군대에서 제대되여 대학을 졸업하고 강좌에 배치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임교원이였다.
점심시간이면 다른 교원들은 실내탁구장이나 마당의 정구장에 앞을 다투어 달려갔지만 철훈은 시간에 쫓기우는 사람처럼 책상을 마주하고앉아 강의안이나 자료카드를 뒤적이군 하였다.
《철훈선생! 좀 쉬염쉬염 하구려. 그러다간 〈안정소자〉가 튀겠소.》
강좌의 좌상격인 조영걸이 사무실에 들어오며 롱을 걸었다. 그에게서는 운동으로부터 오는 혈기와 젊음이 흘러넘쳤다.
철훈은 흘끔 마주보고는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원… 좀 받아주는척이라도 하구려.》
조영걸이 웃으며 말했다.
철훈은 그제서야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일손을 멈추고 빙긋이 웃어보였다.
《선생님, 바빠서 그랬는데 안됐습니다.》
량해를 구한 그는 책상서랍에서 학습장을 꺼내들고 방에서 나갔다. 오후 첫시간에 교무과에서 조직한 신임교원들의 강습이 있었던것이다.
그가 나가자 교원들이 그를 두고 말들을 했다.
《원 성미두…》
《신임교원이여서 그러겠지요.》
《학생들에 대한 요구성은 얼마나 높은지 압니까? 며칠전에는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준 설계를 저녁늦게까지 받아내고야 퇴근을 했는데 학생들이 두손들고 진땀을 뽑았다고들 한답니다.》
《그게 얼마나 좋습니까. 교육에서 교원의 요구성이 중요하다는거야 다 알고있는것이 아닙니까.》
강좌에 한명뿐인 녀성교원 라연옥이 씨박힌 말을 하자 맞은켠에 앉은 백용남교원이 《그거야 옳은 말이지요. 그런데 좀…》하며 눈을 껌벅이였다.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나갔다. 강의를 다 끝낸 교원들이 학생들의 과외학습지도를 하고 다음날 강의준비를 하고있었다.
출입문에서 손기척소리가 나더니 철훈이 담당한 학급의 학급반장이 들어와 인사했다.
그는 학급학생들의 하루생활정형을 보고한 후 이렇게 말하였다.
《동일동무한테 전보가 왔습니다.》
《무슨 전보입니까?》
《갑자기 어머니병이 위급하다는 전보입니다. 통신원이 가져온걸 제가…》
《본인이 그걸 압니까?》
《모릅니다. 방금 받았습니다.》
《알리지 마십시오.》
《예?!》
학급반장은 놀라운듯 눈이 둥그래졌다.
《어머니가 위급하다는데… 또 집에는 돌봐줄 사람도 없답니다.》
《알고있습니다. 지금 그는 졸업론문변론준비에 분초가 새로와합니다. 마음에 충격을 주어 사고를 분산시키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내가 대책을 세워보겠습니다.》
담임교원의 단호한 말에 학급반장이 머리를 숙이고 방에서 나갔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옆에서 듣고있던 조영걸이 난감한듯 입을 다시고나서 철훈에게 말을 건네였다.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인에게 알려주어 집에 갔다오게 하는게 도리상 옳을것 같군요.》
철훈은 대답을 않고 묵묵히 앉아있었다. 이윽해서야 《선생님 의견대로 하면 좋겠지만 그 학생의 변론날자가 박두해서 그럽니다.》
《그거야 교무과에 제기하여 변론을 추가로 조직할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막연한 생각이 듭니다. 추가로 조직해준다고 해도 그 학생이 론문변론에서 어쩐지…》
조영걸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글쎄, 그건 그렇지만 그 반대의 립장에 선다면?… 아들이 쓴 론문이 높이 평가되기를 고대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말입니다.》
《그럼 선생은 어떻게 하겠다는겁니까? 학생은 물론 그의 부모문제까지도 다 책임지겠다는데…》
《그것이 학생의 실력과 전도와 관련되는것이라면 힘이 자라는껏 책임져야 한다고 봅니다.》
《매우 책임적이군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철훈은 처지가 딱해졌다. 선배교원의 충고를 밀막는것 같아 송구해났다. 그렇다 하여 그의 의사를 무작정 따를수는 없었다. 그는 걸상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념려해주어 고맙습니다. 어떻게 하든 이 문제를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책상우에 벌려놓았던 교재와 자료카드들을 거두어 서류함에 넣고 사무실을 나섰다.
고집기가 어린듯 목을 세우고 곧은 자세로 나가는 그의 모습을 쳐다보던 백용남이 머리를 기웃하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참고하라고 주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군. 할수 없지.》
그 소리에 조영걸이 덧걸이했다.
《그러게 말이요. 무슨 별다른 대책이 설것 같지 않은데…》
《신임교원이고 사회경험이 적어서 그러겠지요. 잘 도와줍시다.》
지금껏 강의안을 펼치고 이 대목, 저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머리속에 익히던 라연옥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도와주는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철훈선생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교육자로서의 립장을 밝혔는데 조금도 흠할게 없지 않습니까?》
웃음섞어 보내는 말이였지만 백용남은 모난 방망이에 맞는것 같아 응대를 않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딴전을 피웠다.
《이거 퇴근시간이 지났군요.》
조영걸은 말없이 일어나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들은 서둘러 문밖을 나섰다. 라연옥은 생각이 깊어진듯 묵묵히 앉아있다가 뒤늦게 자리를 일었다.
2
도소재지에서 ○○군방향으로 굽이쳐간 포장도로로 자전거 한대가 달리고있었다. 자전거는 희미한 불빛으로 어둠을 헤집으며 힘겹게 전진했다.
형체없는 어둠이 온 천지를 먹어삼킨듯 캄캄한 밤이였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황철나무들의 잎새흔드는 소리만이 고요를 깨치며 자지러지게 귀전을 울린다.
조영걸이의 권고를 마다하고 강좌사무실을 나서던 일이며 밤길을 걱정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리였다.
《얘, 날이 저물었는데 어델 가려고 그러느냐?》
《꼭 다녀올데가 있어 그래요. 아침전에 돌아오겠으니 근심마세요.》
《근심을 안하게 됐니?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명심하겠어요.》
이렇게 떠난 길이였다. 울적한 기분을 가실수 있게 함께 갈 길동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문득 앞쪽에서 환한 불빛들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촉수높은 전등을 주런이 켜달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다리보수공사를 하고있었다. 불도젤이 용을 쓰며 흙을 파올리고 한쪽에서는 석축을 하고 다른쪽에서는 콩크리트혼합물다지기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며칠전 폭우때 불어난 물살에 다리가 피해를 본 모양이였다.
철훈이 앞길이 막혀 난감한 표정으로 자전거에서 내려 엉거주춤 서있는데 공사를 지휘하던 사람이 마주서며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물었다.
철훈은 자기 소개를 하고 목적지를 대주었다.
그 사람은 철훈의 말을 듣더니 왼쪽으로 돌아서며 손으로 가리켰다.
《저쪽으로 내려가 조금만 가면 가설다리를 놓았습니다.》
《아―그렇습니까?》
천만다행이였다.
그때 등뒤에 새형의 뜨락또르 한대가 와서 멈춰섰다. 운전칸에는 한 녀인이 앉아있었다. 운전수가 내리자 그 녀자도 내렸다. 평범한 잠바를 입고 까만 편리화를 신은 미모의 젊은 녀인이였다. 은은한 눈빛, 여유있는 거동은 어딘가 정돈되고 세련된 인품이 엿보였다. 얼핏 보면 갓 출가한 가정부인 같고 어찌보면 처녀같기도 했다.
철훈에게 길을 가리켜준 사람이 녀인에게 말했다. 이미전에 알고있는 사이였던것 같았다.
《아니― 어델 갔다옵니까?》
《룡담농장에 갔다옵니다.》
《밤길에 혼자서 참… 인젠 저 선생님과 함께 가십시오.》
그의 말에 녀인이 철훈을 할끔 마주보았다.
철훈이 《함께 갑시다.》하며 웃음을 보내였다. 녀인이 해사한 볼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목뒤로 쓸어넘기며 명랑한 목소리로 《그러자요.》하고 받았다.
운전수는 강을 건너갈 방도를 알아보고 운전칸에 올랐다. 철훈이 자전거를 적재함에 실었다.
그들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뜨락또르가 발동을 걸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훈이 옆으로 말을 건넸다.
《우연히 밤길을 함께 가게 되였는데 혹시 또 만날 기회가 있겠는지 알겠습니까? 서로 알고 지냅시다.》
녀인이 뒤로 흩날리는 철훈의 말마디를 귀에 강구어 담으려고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군인민병원 외과의사 차금옥입니다.》
《아!》
철훈은 웨치듯 했다.
(왜 저다지 놀랄가? 나의 직업과 이름에 알길 없는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것일가?)
금옥은 순간 의문에 싸였다.
철훈이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러세요? 그런데 왜 먼 밤길에 오르셨나요?》
《한 학생의 어머니가 병이 위급하다기에 급히 떠났습니다. 전 그 군이 생소합니다.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또 치료대책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하고 마음을 조이며 오는중입니다. 방금 동무가 의사라고 했을 때 제가 왜 그처럼 감격해했는지 이젠 알만 하지요?》
《리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오지 않고 왜 선생님이 오십니까?》
《그 학생은 이번 졸업생들 가운데 성적이 제일 우수하고 졸업론문으로 기후탐색에서 매우 가치있는것을 론증했습니다. 요즘 그 변론준비에 바빠합니다. 그를 집에 보낸들 갑자기 닥친 정황을 제대로 처리하기가 힘들겁니다. 어려운 일에 막내동생을 내세우기보다 맏형이 나서는게 옳지요. 이런 생각을 하고 떠났습니다.》
《맏형…》
금옥은 이 말을 입속으로 외웠다.
《그랬군요. 그 학생의 어머니는 어디서 사십니까?》
《금정리 7반이라고 합니다.》
《마침이군요. 이 길로 읍에 가기 전 시오리 못미처 있는 리입니다. 가다가 들려서 대책을 세웁시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우리 군 주민인데 마땅히 제가 맡아 치료대책을 세워야지요.》
한동안 말없이 들추는 뜨락또르에 몸을 맡기고 있던 철훈이 말했다.
《선생은 무슨 일로 그 농장에 갔다옵니까?》
《농장에 지원나온 사람들속에 환자가 생기지 않았나 해서 돌아보고 옵니다. 이번 농촌지원전투기간에 제가 그곳에 나온 지원자들을 의료상으로 돌봐줄 분공을 받았거던요. 다행히도 환자는 없었어요. 자고 가라는걸 제가 수술한 환자상태가 근심스러워 부득부득 떠났어요.》
《그러니 의사라는 직업도 몹시 바쁘고 책임이 무겁군요.》
《그러믄요. 그래도 전 자기 직업을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원래 교원을 희망했습니까?》
《아닙니다. 군대에서 포병으로 복무하고 제대되여 대학을 다니면서 우주탐색분야의 과학자가 될 꿈을 꾸었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교원으로 배치되지 않겠습니까. 고심했지요. 교원을 하겠는가 말겠는가?
그러는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주를 탐색하는 과학자도 좋겠지만 그런 과학자를 키워내는 교원도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뜨락또르가 덜컹 들추는 바람에 이야기가 끊어졌다. 철훈이 자리를 바로하고 앉으며 끊었던 말끝을 이었다.
《선생은 처음부터 의사를 지망했습니까?》
《그래요. 의학대학을 다니면서 인간을 괴롭히며 생명을 앗아가는 병마를 제거하고 건강과 기쁨을 주는 의사로 한생을 바칠 각오를 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고보니 사회와 인민앞에 지닌 사명감이 더욱 무거워갑니다. 그럴수록 힘을 내여 환자치료와 과학탐구에 열중하게 되는군요.》
과학탐구라는 말에 철훈은 귀가 솔깃해났다.
《어떤것을 탐구합니까?》
대답하기를 망설이던 금옥이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복강의 장기수술에 리용할 새로운 의료기구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합니다. 한 의학자와 협동하여 연구를 추진하고있어요.
그것이 성공되면 병원들에서 환자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으면서도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수술을 할수 있습니다. 의학계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의 하나입니다.》
《감동이 됩니다. 꼭 성공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금옥이 웃으며 말했다.
《우린 서로 다르군요. 선생님은 우주를 탐색하려고 하늘을 날아오르고 전 땅우에서 인간의 생명을 위한 연구사업을 하니 말이예요.》
《왜 다르다고만 보겠습니까? 우주를 탐색하든 인간이 생명을 탐구하든 그것이 인류의 문명과 사회와 인민을 위한것이라면 같은 하나의 숭고한 리념에 뿌리를 박고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공통된데가 없겠습니까?》
《그 말에는 충분히 리해가 됩니다. 웅심깊은 고찰이군요.》
말을 주고받으며 가니 마음이 흥그러워지고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한 마을앞을 지나려는데 금옥이 불현듯 운전수에게로 얼굴을 돌려대며 《좀 세워주세요.》하고 소리쳤다.
뜨락또르가 멈춰섰다. 금옥이 《이 마을입니다.》하며 일어났다.
금옥이 운전수에게 당부했다.
《잠간 기다려주세요. 환자를 보고 오겠어요.》
그들은 뜨락또르에서 내려 마을 첫집 토방으로 다가갔다. 《주인 계십니까?》
한참 지나서야 나온 녀인이 동일학생의 집을 가리켜주었다. 동일학생의 집토방에 다가가 《어머님 계십니까?》하고 찾았다.
집안은 잠잠했다. 아무리 찾아도 대답이 없었다. 옆집로인이 나와 사연을 이야기했다.
《병원에 가구 없수다. 동일이 에미가 배밑이 뜨끔거린다면서도 진통정을 먹으며 참아오드랬는데 밤에 갑자기 아픔이 심해서 모대기였다우. 진료소장이 달려와 보고 위급하다면서 군병원으로 실어갔수다.》
《할아버님, 알려주어 고맙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그들은 다시 뜨락뜨에 올랐다.
《군병원으로 빨리 몰아주세요.》
급한 금옥의 목소리에 운전수가 머리를 끄덕이고 속도를 높이였다. 잠시후 뜨락또르는 병원에 당도했다.
금옥이 운전소에게 《저때문에 밤고생을 하셨군요.》라고 하자 《고생이랄게 없습니다. 새벽에 항에서 비료를 실어오게 되여있었는데 내친김에 곧장 항으로 가겠습니다.》하고 례사롭게 대꾸했다.
《그럼 마침이구만요. 잘 가세요.》
금옥은 인사말을 건네기 바쁘게 돌아서서 수술장이 있는 병동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철훈이 뒤따랐다. 그들은 나는듯 층계를 올라 수술장앞 복도에 들어섰다.
우람진 몸집에 위생복을 걸친 원장이 금옥을 보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금옥선생! 충수천공성복막염환자가 들어왔는데 위급하오. 금옥선생이 집도해야 마음을 놓겠구만.》
《제가 맡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오.》
금옥은 수술준비를 하고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둥근 하늘에 별무리가 내려 불타는듯 무영등빛이 수술장을 대낮처럼 밝히고있다.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는 의사들과 간호원들… 그들의 번뜩이는 눈빛은 사뭇 진중하고 엄숙하고 단호해보였다.
수술대에는 동일학생의 어머니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금옥이 환자에게 다가섰다. 간호원이 그의 곁에 붙어서서 반짝거리는 수술도구를 연방 갈아섬긴다. 수술이 시작되였다. 날래고도 유연하고 정확한 수술동작은 의사의 담기와 숙련된 수술기능을 엿보게 했다.
간호원이 금옥의 이마에 돋은 땀방울을 수건으로 찍어내군 한다.
수술은 긴장한 분위기에서 두시간나마 걸리였다.
금옥이 환자에게서 물러났다. 소독수에 손을 씻고 마스크를 벗으며 그는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철훈이 반색하며 일어섰다.
《정말 수고했습니다.》
《수고랄게 있습니까. 의사의 본분인데요. 어머니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전 마음놓고 떠나겠습니다.》
《병원에 침실이 있어요. 이밤중에 어떻게 가신다구…》
《수술하느라 수고하신 의사선생님이 어서 들어가 눈을 좀 붙이십시오. 몸이 말이 아닌것 같습니다.… 전 아침에 강의를 해야 하겠구…》
《참 딱하군요.》
그들은 정문으로 나왔다. 접수실창문으로 불빛이 환하게 내비치고있었다.
철훈이 세워놓았던 자전거의 손잡이를 잡아 앞으로 내밀었다. 그를 뒤따르던 금옥이 주춤 걸음을 멈추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안되겠습니다. 선생님, 자전거를 보세요.》
철훈이 멈춰서며 자전거를 살펴보았다. 초저녁부터 먼길을 달리다보니 자전거가 말이 아니였다. 이대로는 도저히 갈수가 없었다. 그는 가슴이 섬찍하고 짜증이 났다.
그가 맥을 놓고 두팔을 축 늘어뜨리는데 금옥이 《잠간 기다리세요.》하며 돌아서서 총총히 청사로 갔다.
좀 있어 그는 자전거 한대를 끌고 왔다. 윤기나는 까만색의 새 자전거였다.
《이걸 타고가세요.》
《이건 과의 어느 선생님이 타시는것이 아닙니까?》
《일없습니다. 제가 량해를 얻었습니다. 저의 집에 아버지가 타시던 새 자전거가 있으니 그걸 대신 내오면 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 말은 마십시오. 그럼 잘 다녀가십시오.》
이윽고 빨깃한 불빛이 어둠속으로 멀어져갔다. 금옥은 그쪽을 오래동안 바라보았다.
지친 몸, 머나먼 밤길, 별일없이 제시간에 가닿기나 할가. 그가 어찌 자전거의 불빛으로 간다고 하랴.
학생을 위한 교원의 밝고 뜨거운 마음의 등불을 켜달고 아무리 멀고 험한 밤길이라도 주저없이 달려가는것이 아닌가.
금옥은 간절한 마음을 안고 돌아섰다.
읍거리를 벗어나 기본도로에 오른 철훈은 도소재지를 향해 달리였다. 그는 외롭지 않았다. 금옥이가 뒤에 앉은것 같았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은 그의 부드럽고 따스한 숨결처럼 느껴졌다. 더우기 동일학생의 어머니가 소생하게 된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두어시간나마 달리니 대기가 서늘해지고 머리우에 도글거리던 뭇별들이 높이 떠오르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어둠자루속에 갇혀있던 대지가 기여나오는듯 희붐한 공간에 푸르스름한 자태를 드러내고있다.
그때 멀리 앞쪽에서 밤부엉이눈같은 두개의 붉은 빛덩어리가 벙긋거리며 마주오고있었다. 그것은 점점 확대되면서 다가들어 덮칠듯 강렬한 빛을 확 뿜었다.
철훈은 어망결에 한손으로 눈을 가리며 오른쪽으로 비키였다. 그 순간 그는 자전거와 함께 길아래로 굴러나가 떨어졌다. 아찔했다. 온몸이 뻐근하고 팔다리를 움직일수 없었다. 그는 안깐힘으로 무릎을 꺾어짚고 일어나 자전거 본체를 잡아 옆구리에 끼고 뚝으로 올라왔다.
자전거는 탈수 없게 되였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남의 새 자전거를 이렇게 만들다니…
푸름푸름 날이 밝아왔다. 대학까지는 아직 멀다. 그러나 부지런히 걸으면 첫 강의에 들어갈수 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전거손잡이를 부여잡고 앞으로 밀며 걸음을 옮기였다. 다행이 바퀴는 제대로 굴었다. 순간도 멈춰서지 않고 걸었다.
마침내 시내에 들어섰다. 잠에서 깨여난 시가는 아침해살을 받아안고 번뜩이며 활기에 넘쳐있다. 출근길에 오른 어른들, 학교로 가는 학생들의 씩씩하고 명랑한 모습들…
철훈은 번화하고 활기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걷고걸어 대학정문에 이르렀다. 그는 자전거를 보관장소에 세워놓고 강좌사무실앞 복도에 들어섰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강의시작까지는 20분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는 제모습을 훑어보았다. 덞고 찢긴 바지가랭이, 피멍이 든 손등, 조여드는 이마는 어떨는지…
출입문을 열고 선뜻 들어설수 없었다.
그가 머뭇거리는데 벙긋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강의에는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였다. 그것은 교원에게 있어서 조금도 드틸수 없는 법적의무가 아닌가. 그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철훈은 뜻밖의 광경에 우뚝 멈춰섰다. 사무실에는 강좌장을 비롯한 강좌교원들이 다 모여있었다. 그들은 철훈을 보자 하나같이 《야! 왔구만.》하며 와락 다가서는것이 아닌가!
그들의 눈에는 존중과 믿음, 기쁨의 빛이 넘치고있었다. 철훈이 당황하여 주춤거리는데 조영걸이 전에없이 정중한 자세로 마주서며 그의 팔을 잡아이끌어 걸상에 앉히였다.
그날 아침 강좌교원들이 출근하여 류다른 느낌을 받았다. 늘 먼저 출근하여 사무실청소를 하고 강의에 들어갈 준비를 하군 하던 철훈이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마주보는데 《따르릉》전화신호소리가 울리였다.
조영걸이 다가가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귀에 선 녀성의 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리였다.
《○○군인민병원 의사 차금옥입니다. 전화로 실례합니다.》
《무슨 일인지 말하십시오.》
조영걸이 의문어린 대답을 주자 그 의사는 저으기 흥분된 어조로 간밤에 있은 일을 알리고 철훈이 무사히 도착했는가고 물었다. 조영걸이 그 말에 놀랐다. 그는 송수화기를 놓기 바쁘게 강좌장과 여느 교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철훈이 문을 열던 그 시각 강좌장이 교원들과 마주하고 대책을 취하고있던 참이였다. 누구는 마중을 가고 누구는 철훈이 들어가게 되여있는 강의에 들어가고… 일은 그렇게 된것이였다.
강의시간이 되였다. 모두 흩어져 강의안을 집어들었다.
철훈이 강의안을 꺼내려고 책장을 여는데 조영걸이 웅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철훈선생, 교무과와 토론이 있었소. 그러니 선생의 첫번째 강의를 내가 하겠소. 그동안 몸을 씻고 식사를 하오. 배고프지요?》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자기의 밥곽을 꺼내 책상우에 놓아주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러나 첫 강의는 제가 하겠습니다.》
조영걸은 감동어린 시선으로 철훈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백용남은 말없이 원탁우의 보온병에서 고뿌에 물을 따라 철훈의 책상우에 놓아주고 방에서 나갔다.
그사이 라연옥이 세면비누와 수건을 들고 철훈에게 다심한 누이같이 정겨운 눈짓을 해보였다.
이틀이 지난 오후 첫 시간이였다. 동일학생의 론문을 변론할 시간이 다가왔다. 변론장의 뒤켠자리에 방청으로 앉은 철훈은 조마조마한 마음에 가슴에 더워나고 울렁거리였다.
흰 머리의 리교수가 너부죽한 이마밑에 도수높은 안경을 끼고 앞상가운데 앉고 반백의 허박사, 검은 머리에 혈색 좋은 학부장, 강좌장, 그리고 나이지숙한 세명의 교원들이 좌우켠에 앉았다.
동일학생이 변론종이철과 걸그림을 들고 들어왔다. 이윽고 그의 변론이 시작되였다.
긴장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도 동일학생은 당황해하지 않고 기후탐색에서 나서는 문제를 가지고 침착하게 해설론증했다.
그의 변론이 끝났을 때 심사석에서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후에 리교수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동일학생을 찬찬히 쳐다보며 두손을 올려 박수를 치는것이였다. 여느 심의위원들도 박수를 쳤다. 변론심의에서 보기드문 광경이였다.
리교수는 언제나 그러하듯 짤막하게 자기 의사를 표명했다.
《가치가 큽니다. 학위심의에 넘기면 좋겠습니다.》
모두 기쁨에 넘친 눈으로 동일학생을 쳐다보았다.
강좌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을 마주한 철훈은 부풀어오르는 흥분을 누를수 없었다. 얼마나 고심어린 탐구로 이끌며 가꾸어준 열매인가!
사실 동일학생의 론문은 철훈이 대학시절부터 남몰래 탐구를 거듭해오던 연구과제와 꼭 같은것이였다. 그래서 처음엔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교원이 지닌 사명감의 견지에서 훌륭한 과학자를 키워내는데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리라 결심하였다.
동일학생은 철훈의 마음을 끌었다. 명석한 두뇌와 열정적인 탐구력, 강의한 의지가 엿보이는 학생이였다. 철훈은 그에게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다. 지도교원으로가 아니라 론문의 주인이 되여 적극 떠밀어주었다. 기차로, 자전거로 인민대학습당이나 연구기관들에 오르내리며 최신 세계과학기술발전에서 주목되는 자료들을 뽑아 동일학생에게 넘겨주었다. 그와 마주하고 지새운 밤은 또 얼마였던가.…
철훈은 창가에 다가가 철새들이 긴 날개를 펴고 훨훨 날으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동일학생도 저 새들처럼 과학의 상상봉으로 나래쳐 오르리라. 나는 그에게 작고 연약한 애기날개를 달아준셈이다. 하지만 그는 강의한 의지와 꺼질줄 모르는 열정으로 탐구의 날개를 크고 억세게 자래우면서 우주를 탐색하여 우리 조국과 민족의 강성부흥에 이바지할것이다.
철훈이 창가에서 물러나 자기 자리에 와 앉는데 뜻밖의 일이 생기였다. 그가 담당한 학급학생들이 예고도 없이 강좌사무실에 밀려들었다.
교원들이 영문을 몰라 눈들이 커졌다. 그런데 학급반장이 철훈에게 다가가 《선생님! 오늘 동일동무의 변론이 대성공입니다. 우리 학급의 자랑이고 영예입니다. 선생님을 축하하려고 학급전체가 왔습니다.》라고 했다.
철훈이 일어나며 《하― 이러지 마시오. 축하야 동일학생이 받아야지요.》하며 두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동일학생이 《선생님이 성심성의로 지도해주신 결실입니다. 받아주십시오.》하며 꽃묶음을 두손으로 받쳐들었다. 학생들이 목청을 합치였다.
《선생님, 받아주십시오.》
철훈이 꽃묶음을 받아안고 동일학생의 팔을 잡아끼였다.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학급반장이 조영걸, 백용남, 라연옥선생들에게도 꽃송이를 하나씩 안겨주었다.
조영걸이 《허― 이거 너무 과분하오.》하며 받기를 사양했다. 학급반장이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시니 실력있는 과학자, 기술자들이 배출되지 않습니까. 저희들의 진정입니다.》
학생들이 받으라고 간청하며 박수를 쳤다.
조영걸이 실한 몸을 일으켜 두손으로 정중히 꽃송이를 받았다. 학생들은 제 할일을 다 한듯 들어올 때처럼 우르르 밀려나갔다.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들이 남기고 간 꽃송이들에서 유정한 향기가 그윽하게 풍기고있었다.
3
이즈음 강좌교원들은 새 학년도 교수준비로 긴장한 나날을 보내고있다. 당의 요구와 매일 매 시각 달라지는 세계과학기술발전추세에 따라 강의안들을 개작해야 하였고 학위론문, 소론문집필도 다그쳐야 했다. 분초를 쪼개여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런 속에서 철훈의 가슴안에 자리잡고 때없이 솔깃거리며 마음을 괴롭히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금옥에게 자전거를 돌려보내지 못한 죄스러움이였다.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것은 혐오스러운 행위이다. 그의 사심없고 깨끗한 마음앞에 그늘을 던져주다니…
철훈은 고심끝에 금옥에게 편지를 써보내였다.
《…환자치료에 수고가 많겠습니다. 동일학생의 어머니가 수술을 받은 후 경과가 어떻습니까. 한가지 용서를 빌겠습니다. 자전거를 고스란히 돌려보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분간 참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치료사업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철훈은 편지를 보내고 회답이 오기를 기다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라연옥이 말쑥한 얼굴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고 《선생, 기쁜 소식 하나 전해달랍니까?》하며 다가서는것이였다.
철훈이 짚이는데가 있어 《그래주십시오.》하며 손을 내밀었다.
연옥이 편지봉투를 쥐여주었다.
《…편지를 반갑게 받았습니다. 동일학생의 어머니는 회복속도가 빠릅니다. 마음놓으십시오. 자전거가 못쓰게라도 되여 보내지 못하는것 같은데 그보다 저는 선생님의 몸이 걱정되였습니다.
나라의 훌륭한 과학기술인재들을 키우려고 땀도 마음도 지혜도 사심없이 깡그리 바치시는 선생님의 남모르는 수고에는 그 무엇도 갖다댈수 없습니다.
저는 어려운 수술환자를 맡아 집도할 때면 선생님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군 합니다. 환자후송이나 다른 일로 도에 가면 선생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차금옥 올림.》
철훈은 편지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의협심이 강한 처녀… 넓고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정신세계에 그가 살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날로부터 두주일이 지나갔다. 철훈이 오전강의를 마치고 강좌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조영걸이 무슨 중요한 일을 알려주려는듯 가까이 고개를 주며 귀를 대고 속삭였다.
《접수대기실에 녀의사가 와 기다리오. 얼른 가보우.》
철훈은 가슴이 화끈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다급히 사무실에서 나와 층계를 내려 접수대기실로 갔다.
걸상에 앉아있던 금옥이 상큼 일어나 《선생님!》하며 반기였다.
철훈이 그의 손을 부여잡고 놓지 못했다. 더없이 순결하고 존엄스러우면서도 자석처럼 마음을 끌어당기는 예쁜 처녀…
금옥이 손을 뽑으며 말했다.
《도인민병원에 환자를 후송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렇습니까, 언제 가겠습니까?》
《저녁차로요.》
《시간적여유가 있군요. 더운데 밖으로 나갑시다.》
《그러자요.》
그들은 밖으로 나왔다. 철훈이 잠간 머뭇거리더니 《바다가로 가면 어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금옥은 망설였다. 그러나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능수버들이 머리우에서 흐느적이며 그늘을 던져주었다.
철훈이 길옆에 있는 매대에 뛰여가 여러가지 빵과 과자, 과일들과 사이다를 사서 비닐구럭에 불룩하니 담아들고 돌아왔다.
그들은 바다기슭으로 나와 모래불둔덕에 나란히 앉았다.
묘연히 펼쳐진 푸른 바다, 그우를 갑자르듯 《끼익―》, 《끼익―》하며 날아예는 갈매기들, 그것들은 휘뿌린 깃털처럼 기웃기웃 붐비며 날아돌다가는 먹이를 견주고 화살같이 내리꽂혔다 파도를 차고 뻗어오른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갈매기들의 엇갈리는 울음소리는 현악중주의 아름다운 선률처럼 가슴 흐뭇이 흘러들었다.
철훈이 바다에 주었던 눈길을 금옥에게로 돌리였다.
《금옥선생! 바다풍경이 마음에 듭니까?》
《퍽 마음에 들어요. 전 산골에서 자랐고 지금은 바다가 먼곳에서 일하다보니 어쩌다 바다와 마주서면 막 날을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산골풍치를 좋아하십니까?》
《물론이지요. 울창한 푸른 나무숲, 빨갛게 타오르는 단풍, 바위를 차며 골짜기로 굴러내리는 맑은 시내물, 그것을 싫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린 욕심많은 관광객이군요. 바다풍경도 산골풍치도 다 좋아하니 말예요.》
철훈이 빙긋 웃었다.
《우린 공통된데가 있습니다. 앞으로 가깝게 지냅시다.》
그 말에 금옥이 맑은 눈을 또렷이 떠올리며 마주보았다.
《좋습니다. 그걸… 우정으로 간직해도 되겠지요?》
이 물음에 철훈은 짜릿한 자책감을 느끼였다. 왜 속에 품고있는것을 씨원스레 내보이지 못하고 에둘렀는가? 그것이 아무리 입밖으로 내기 힘든것이라 해도…
몇번이나 속다짐했던가. 만나면 툭 터놓고 말하리라고. 그는 분명 어딘가 석연치 못한 나의 의사표현을 야속해한다. 철훈은 저도 모르게 어줍어져서 더듬거리였다.
《우정이란 표현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있지요. 거기에는 사랑이란… 뜻도 스며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우정이란 있을수 없으니까요.》
《글쎄… 너무 철학적인 해석이군요. 그런데 전 의사랍니다. 째고 붙이는… 그래서 선생님처럼 그렇게 깊이 사색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철학〉문제를 풀어보고 편지로 대답을 드리겠어요. 그런데 선생님, 현실적으로 전 배가 고픕니다.》
철훈이 놀라며 옆에 놓인 간식구럭을 쳐다보았다.
《하―이거 말장단에 까맣게 잊었댔군요.》
그는 구럭에 들어있는것을 다 꺼내놓고 《이거야 금옥선생을 위해 사들고 온건데 듭시다. 어서요.》하며 권했다.
금옥이 《그렇게 잊기를 잘하니 어떻게 녀성을 세심히 보살펴줄수 있겠습니까. 어느 처녀가 안해로 되겠는지…》하며 웃는다.
철훈이도 껄껄 웃으며 응수했다.
《아― 너무 속단하지 마십시오. 잘못이야 꼬집어주면 받아들이고 고치면 될테니까요.》
《너그럽긴 하시군요.》
그들은 흥에 겨워 롱을 걸어가며 맛나게 먹었다.
금옥은 저녁차로 떠나갔다. 철훈이 역에 나가 바래주었다. 그는 서운한 심정에 싸여 렬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금옥이가 떠나간지도 한달이 되여오고있었다. 철훈은 그에게서 편지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였다. 행여나 하여 대학접수실에 자주 들리였다. 그랬지만 기다리는것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환자치료와 연구사업이 바빠서 그럴테지, 아니, 아무리 바빠도 짤막하게 몇글자 써보낼 틈이 그리도 없을가? 그가 받아들일수 없는 과분한 기대를 거는것이 아닌지?…
철훈은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일학생이 사무실에 들어와 그에게 인사했다.
《선생님, 집에 갔다왔습니다.》
《그래 어머니의 병은 일없습니까?》
《선생님,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완쾌되여 며칠전에 퇴원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인사전해달라고 몇번이나 당부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완쾌되였다니 정말 기쁘군요.》
《차금옥선생이 선생님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래요? 봅시다.》
철훈이 흥분을 누르며 받아서 편지봉투를 뜯으려는데 동일학생이 《선생님! 전 가보겠습니다.》하며 방에서 나갔다.
《…선생님, 그 〈철학〉문제를 풀었습니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련관속에서 말입니다. 전 선생님을 영원한 길동무로 생각합니다. 차금옥.》
철훈은 편지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금옥의 정깊은 목소리가 귀가에 쟁쟁히 울리며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것이다.…
공학박사 박철훈과 의학박사 차금옥은 청춘시절에 이렇게 한마음으로 희망을 닻을 올리고 함께 노를 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