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9호에 실린 글

 

수 필

아버지의 사랑

리 성 룡

 

어느 한 집 마당에 자전거가 서있었다.

그 자전거에 앉은 군관이 발디디개를 열심히 돌린다.

뒤에 앉은 총각애가 환성을 지른다.

《아버지, 이쪽으로!》하며 가상적인 정황도 제시한다.

아버지는 《그래, 그래.》하며 어린 아들에게 어떻게 하나 기쁨을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도 아버지도 만족한 표정들이다.…

이것이 내가 받아안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지금도 기억되는 유년시절 추억의 한 토막이다.

군관인 아버지는 그때 집에 있은적보다 부대에 나가 있은적이 더 많았고 자식들의 이름보다도 병사들의 이름을 먼저 입에 올리군 하였다.

아버지는 어쩌다 집에 들어온 밤이면 그동안 아들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공회전하는 자전거에 함게 타는 식으로 쏟아주군 하였다. 그 시절에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였다.

소학교시절 나는 아버지에 대해 새롭게 느낀적이 있었다.

어느날 나는 동무들과 강에 꾸려진 수영장에 나가서 물놀이를 하였다. 그때 학교에서 수영을 배워주었지만 원만히 할줄은 몰랐다. 물장구나 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물놀이를 몹시 즐겨하던 나는 동무들과 매일같이 수영장으로 나가군 하였다.

그날도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수영장변두리에서 맴돌던 나는 그만 안전구역을 벗어나 키를 넘는 깊은 곳에 들어섰다가 큰일날번 하였다.

지금도 당황하여 꿀꺽꿀꺽 물을 마시면서 허우적거리던것밖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여간 이 일때문에 나는 어머니한테서 대단히 졸경을 당했다.

어쩌다 집에 들어왔던 아버지는 한참이나 말이 없더니 《래일 출장을 가는데 도중식사 두끼분을 준비해주.》하고는 웃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눈을 감고 자는척 했다. 아버지의 욕이 무서웠던것이다.

오늘은 이런 식으로 넘겼지만 아버지가 집에 올 때마다 계속 자는척 할수는 없었다.

출장길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뭐라고 욕하실가. 차라리 오늘 욕을 콱 먹는게 좋지 않을가. 혹시 용서해줄지도 몰라, 내가 우정 빠진것도 아닌데…

이렇게 절망과 희망이 엇바뀌는새에 아버지는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온 날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쓸어주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네 마음을 몰랐구나. 아버지가 너에게 구명대를 사왔다. 성룡아, 동무들과 마음껏 놀아라.》

어머니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수영을 배우다 그렇게 된 일인데 욕을 해서 될일인가? 제 동무들은 다 가서 수영을 배우는데 우리 애만 못하면 뭐가 되는가, 이것은 애를 잘 키우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 이 구명대를 사왔는데 성룡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수영장에 나가 마음껏 놀면서 꼭 수영을 배우라고 했다는것이였다.

나는 아버지가 사온 구명대를 안고 너무 좋아 어쩔줄을 몰라했다. 이 아들의 심정을 알아주는 아버지가 고마왔던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드물게 한번씩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여운을 가지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었다.

중학시절이나 대학시절에도 아버지의 사랑은 여전히 그때처럼 드물게 나타나군 했다. 아버지들의 사랑이란 이러한것인지…

대학시절에도 가끔 그때를 추억해보군 했다. 그러면 그 나날들이 그리워 우정 시간을 내여 대동강에 꾸려진 수영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던 주체98(2009)년 10월 1일이였다.

나는 실습지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학생들에게 안겨주신 수영관을 또다시 돌아보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하게 꾸려진 수영관의 외부와 내부, 현대적인 설비들을 갖춘 수영장, 물놀이장… 나는 신문에 실린 사진들을 보았다.

정말 멋있구나! 이제는 우리 대학 학생들이 더 좋은 수영장에서 남부럽지 않게 수영을 하겠구나 하고 환희에 잠겨있는데 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소학교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새겨졌다.

이제는 대동강기슭에 꾸려진 수영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현대적인 최상급의 수영관을 통채로 안겨주시였기때문이였다. 어찌 그뿐이랴. 전체 교직원, 학생들에게 사랑의 수영복과 물안경까지 안겨주시였으니 마치 나의 가슴속 사연을 다 헤아려보신것만 같았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이런 사랑을 뭐라고 해야 할지…

갑자기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표현이 제일 먼저 나의 머리속에 떠오른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야 이보다 더 적중한 표현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나의 눈가에 맑은 눈물이 맺혔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고마움의 눈물이였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달리는 표현할수 없었다.

그렇다, 그이는 정녕 아버지이시였다.

한 자식의 아버지만이 아닌 우리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온 나라 전체 인민의 친어버이이시였다.

나는 마음속 결의를 다졌다.

보답하자,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에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자!

나는 오늘도 그렇게 살고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전체 대학교직원들과 학생들이 그리고 졸업생들이 그렇게 살고있다.

나는 확신한다.

이런 크나큰 사랑만을 안겨주는 아버지가 있고 그 사랑에 보답할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우고있는 천만의 아들딸들이 있는 한 우리 조국은 반드시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고 당당히 들어서리라는것을…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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