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삶의 보람

 

인 란 희

연희가 살고있는 범산리는 먼 옛날 범들이 자주 오르내렸다는 심심산골이다.

여기서 연희는 리인민병원 의사로 일하고있다.

나서자란 도시를 떠나 산골마을의 의사가 된 연희, 산골마을 사람들속에서 우리 의사선생님이라고 사랑속에, 존경속에 불리워질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는 이 산골이 고향처럼 더없이 귀중한 곳으로, 떨어져서는 못 살 어머니품으로 소중히 자리잡게 되였다.

 

×

 

대학을 졸업한 연희가 범산리인민병원 의사로 배치받아온것은 바로 2년전이였다.

배치를 앞둔 졸업생들은 누구나 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날들을 보냈다.

연희도 매일, 매 시각 이러저러한 공상의 나래를 끊임없이 펼치고있었다.

가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새마냥 날아예던 공상은 드디여 날개를 접게 되였다. 오늘은 졸업생들의 배치가 결정되는 날이였던것이다.

연희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동무들을 둘러보았다. 이번 졸업생들모두가 도병원이나 군병원들보다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리인민병원 의사로 갈것을 희망하고있었던것이다. 연희 역시 그러했다.

그것으로 하여 지금 그의 마음은 더욱 근심스러운것이였다.

《연희동무, 웃소.》하는 말에 연희는 머리를 들었다.

학급에서 익살군으로 소문난 김동무가 긴장감이 뚜렷한 연희의 얼굴에 눈길을 박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동무야 무슨 걱정이 있소? 도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인 큰아버지가 있는데…》

그의 능청스러운 말에 둘러선 동무들의 시선이 연희에게로 쏠려졌다.

연희는 순간에 얼굴이 종이장처럼 하얘졌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며칠전 연희는 배치문제때문에 큰아버지를 만났었다.

《뭐, 배치때문에 왔다구?!》

큰아버지는 놀라운 눈길로 한동안 연희를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알지 못할 그늘이 짙게 어리였다.

《넌 대학공부를 헛했다. 배치때문에 날 찾아오다니…》

실망어린 그의 말에 연희는 가슴이 뜨끔했지만 이왕 온김에 말이라도 하고싶었다.

《꼭 가고싶은 곳이 있어서…》

《도대체 그곳이 어데냐?》

《범산리예요. 알아보니 그곳은 우리 도에서 제일 먼곳이래요. 그래서 아마 누구도 그곳엔 가려고 하지 않는가봐요.》

《그러니 너 자원해가겠다는거냐?》

큰아버지는 그때에야 얼굴에 웃음을 그리며 연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자원까지야 뭐… 그런데 그런 곳엔 나같은것은 대상이 안되나봐요. 그래서…》 이러며 연희는 간절한 눈빛으로 큰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런 일은 내 발벗고 도와주마. 아무렴, 우리 연희가 누구라구.》

사실 범산리인민병원은 남자가 가게 되여있었는데 대학에서는 연희의 절절한 호소도 있고 하여 고려하였다.

여기에 큰아버지의 도움이 있어 연희는 소원대로 범산리인민병원 의사로 배치받았던것이다. 그는 이렇게 되여 머나먼 산골마을의 의사가 되였다.

 

×

 

범산리로 떠나는 연희의 심정은 흥분으로 가득찼다.

자기의 꿈이 실현되였다는 기쁨과 새 초소에서 본때있게 일해보겠다는 결심으로 더욱 충만되였다. 하여 그는 높은 목표를 세웠다.

누구도 오기를 저어하는 산골에서 청춘의 리상을 꽃피우려는 랑만적인 연희의 생각은 범산리에 들어서는 첫 순간부터 아득히 저 멀리로 달아나고 말았다.

부모님들과 동무들의 따뜻한 바래움을 받으며 떠난 렬차는 새벽녘에야 범산역에 도착하였다.

한치앞도 분간하기 힘든 산골의 새벽공기는 청신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걸어서 60여리… 새벽이여서 그런지 여기로 다니는 차들은 별로 없었다.

연희는 주저없이 짐들을 지고 걸었다. 각오한 길이여선지 별로 놀랍게 생각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안개에 묻혀있던 병풍처럼 늘어선 높은 산발들이 아프게 눈에 안겨들었다.

얼마 가지도 못하였는데 얼굴은 온통 땀투성이였다. 지름길은 생각보다 더 험했다.

산골길이여서 그런지 걷기가 몹시 힘들었다. 돌투성이에다 울퉁불퉁하고 얼마나 구불구불한지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연희는 긴 한숨을 호― 하고 내그었다. 그의 가슴속으로 괜히 이 길에 들어서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감이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그는 가까스로 큰 길에 들어섰다. 걷기가 한결 쉬웠다. 한걸음한걸음 힘을 주며 걸음을 내짚는데 뒤에서 뜨락또르의 발동소리가 울리였다.

연희는 돌아볼념도 못하고 내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지나칠줄 알았던 뜨락또르가 퉁탕거리며 멎어서더니 운전칸에서 웬 청년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보아하니 운전수인듯 싶었다.

《어디까지 가오?》

운전수청년의 굵은 목소리가 산골길에 울렸다.

아마 힘겹게 걷는 연희의 모습이 애처로와 뜨락또르를 세웠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연희는 고마왔다.

그 청년은 이 산골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였고 자신을 도와주려는 고마운 사람이였다.

《범산리까지 갑니다.》

그는 가까스로 힘을 내여 웨치다싶이 말했다.

《뭐요?! 범산리에?…》

청년은 무엇이 그리 놀라운지 갑자기 말끝을 삼키고는 뜨락또르에서 내렸다. 그는 천천히 연희에게 다가와 아래우를 거듭 훑어보았다.

도시풍이 짙은 이 처녀가 범산리로 간다는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거긴 왜 가오?》

청년의 호기심어린 물음에 연희는 곱게 웃으며 물었다.

《그건 무엇때문에 물어요?》

그러자 청년은 씩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참… 안됐소. 자, 어서 타오. 난 범산리에서 사는 사람이요.》

연희는 청년의 성의를 뿌리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온몸은 말그대로 물주머니가 되였다.

《고마워요.》

뜨락또르는 또다시 퉁탕거리며 길을 달렸다.

한동안 말이 없던 청년이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연희에게 물었다.

《난 김웅진이라고 하오. 실례가 아니라면 대답해주. 혹시… 기자선생이 아니요?》

맵시있는 굽실굽실한 고수머리와 정기도는 두눈은 청년의 젊음을 한결 더해주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청년의 두눈이 반짝였다.

《범산리병원 의사로 배치받아옵니다.》

연희는 할수 없다는듯 입가에 엷은 웃음을 피여올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청년의 얼굴이 뜻밖에도 어두워졌다.

《제길… 또 녀자로군. 얼마나 있겠는지…》

혀아래소리로 혼자말처럼 내뱉는 청년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 어리였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닙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희는 범산리에 도착할 때까지 웅진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의문을 풀지 못하였다.

고수머리청년 웅진은 아무 일도 없었던듯 밝은 표정으로 연희를 리인민병원까지 안내해주었다.

리인민병원은 양지바른 언덕아래 아담하게 자리잡고있었다.

척 보기에는 보건기관이라기보다도 살림집들을 방불케 했다.

크지 않은 마당에는 여러가지 약초들이 자라고있었다.

연희는 건물우에 큼직하게 써붙인 《범산리인민병원》이라는 간판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공상속에서 그려보던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였다.

연희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출입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50대가량 나보이는 의사가 치료실에 앉아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자, 설매 어머니, 내 말대로 하시우. 진단도 비교적 정확한것 같은데… 여기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래일 당장 군병원에 올라가시오. 그렇지 않다간 큰일이 나오, 알겠소?》

사정하는것 같기도 하고 강요하는것 같기도 한 그의 말에 녀인의 얼굴에는 더욱 수심이 어리였다.

《글쎄… 군병원에 가면야 좋은줄 모릅니까? 그런데 애들 셋을 두고 어떻게 그 먼데까지 가서 치료받겠습니까.…》

《허지만 어떻게 하겠소. 다른 방도야 없지 않소?》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

녀인은 소리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걸 보는 연희의 마음은 괴로왔다.

녀인이 나가자 의사는 무너지듯 다시 주저앉더니 긴숨을 내그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연희의 맑은 목소리에 흠칠하더니 몸을 돌리였다. 그리고는 도시옷차림을 한 연희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요? 어떻게 왔소?》

《저… 여기 의사로 배치되여왔습니다.》

《뭐요?! 그게 사실이요?》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 기쁨과 놀라움이 가득 실리였다.

《난 여기 의사요. 림시로 소장사업을 하고있소. 이젠 됐소. 참, 내 이름은 김정석이요.》

《전 임연희라고 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도움은 내가 받아야 할것 같소. 지금 인원이 모자라서 이러지 않소, 허허… 사실…》

허거픈 웃음을 지은 정석이 말을 이었다.

《있기야 다 있었지요. 의사도 있고 준의도 있고… 그런데 왔다가는 다 철새처럼 날아가더란 말이요. 남편을 따라 군으로 가, 또 시집을 가.… 그래, 동무는 몇년을 기간으로 이곳에 왔소?》

《예?!》

연희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그의 입에서 또 다른 말이 튀여나왔다.

《하긴 그들을 탓할것도 못되오. 누가 이런 산골을 좋다 하겠소? 앞에도 산, 뒤에도 산, 들리는건 새소리, 시내물소리뿐이요. 철새라고 사람들을 욕할것도 못되지, 자기의 리상을 찾아 날아가는데… 관리위원회에는 들렸댔소?》

《아직…》

《그럼 갑시다. 리당비서동지도 만나야지…》

연희는 그를 따라나섰다.

(과연 내가 여기에 정을 붙이고 살수 있을가? 나도 철새라고 부르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가?)

거듭되는 생각은 일을 잘하라 당부하며 역까지 나와 바래주던 그리운 부모님들과 동무들의 모습을 연희의 눈앞으로 떠올렸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 동무가 새로 온 의사선생이요?》 하는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연희는 머리를 들었다.

관리위원회건물에서 나온듯 한 풍채좋은 50대의 사람이 연희를 맞아주었다.

《내 범산리 관리위원장입니다.》

《임연희라고 합니다.》

연희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관리위원장이 마음에 들었다. 써글써글한게 산골사람특유의 체취가 풍겼다.

관리위원장의 너부죽한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셔질줄 몰랐다.

《연희선생, 이 산골도 정들면 살기 좋은 곳입니다.

어떻습니까, 어떤 측면에서는 도시보다 낫지요?》

연희는 그의 말에서 자기가 사는 마을을 사랑하고 지켜가려는 이곳 일군들의 심정을 엿볼수 있었다.

《먼길을 왔는데 좀 쉬십시오. 정석선생, 저녁에 연희선생과 함께 우리 집으로 오시오. 내 리당비서동무와 기다리겠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전…》

관리위원장이 떠나가자 정석의 순박해보이는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우리 관리위원장동무도 여기가 고향은 아니요. 하지만 고향처럼 이 땅을 사랑하지요. 작업장에 나간 리당비서동무가 있으면 아마 누구보다도 기뻐할거요. 참, 피곤하겠는데 내가 이거…》

《아니, 일없습니다. 차라리 마을을 구경시켜주세요.》

정석은 연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갑시다.》

 

×

 

연희가 범산리인민병원에서 일을 시작한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치료실에서 마을사람들의 건강관리부를 보고있던 연희는 인기척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돌멩이같이 날아드는 한 청년때문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리는 얼굴은 수수떡빛이 되여있었다.

씩씩거리는 청년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연희는 눈에 웃음을 담고 그를 쳐다보았다.

며칠전에 연희를 실어다준 고수머리청년 웅진이였다. 그는 웬일인지 앞에 있는 연희를 외면하며 정석에게로 다가갔다.

《선생님, 빨리 갑시다. 아버지가… 지금 막… 의식이… 빨리요.》

청년의 토막말은 정황이 몹시 급함을 알려주고있었다.

연희는 구급가방을 들고 헤덤비며 방을 나서는 정석의 뒤를 말없이 따라섰다.

환자의 병은 뇌졸중이였다. 상태는 위험하였다.

환자를 진찰해본 정석의 얼굴은 컴컴하였다.

이윽토록 환자를 들여다보던 정석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청년에게 일렀다.

《웅진이, 어서 뜨락또르를 준비하게. 군병원으로 가야겠네. 현재는 다른 방도가 없네.》

정석의 립장은 허물수 없는 장벽처럼 명백하였다.

《예, 뭐라구요?! 이런 상태에서 언제 퉁탕거리며 그 먼 수십리길을 갑니까? 우린 왜 이 산골에서 살아가지고…》

의사들이 무맥하다고 퍼붓는 웅진의 가차없는 비난이였다.

《저… 제가 한번 볼가요?》

뒤에 서있던 연희가 앞으로 나왔다.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연희를 지켜보는 웅진의 시선이 더욱 그러했다. 거기에는 오랜 의사인 정석이도 어쩌지 못하는것을 대학을 갓 졸업한 처녀가 꽤 해내겠는가 하는 우려심과 함께 환자를 꼭 살려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어려있었다.

연희는 그 모든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환자의 생명지표를 다시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 혈압, 맥박, 체온…

여기에 기초하여 그는 필요한 구급대책들을 침착하게 세워나갔다.

환자는 점차 위험한 고비를 넘기였다.

연희는 그날부터 환자의 침상에 붙어살다싶이 하면서 신약과 고려약치료를 적절히 배합해나갔다.

정석이 날마다 달라지는 환자의 상태를 보며 연희를 다른 눈으로 보았다.

《선생의 실력이 보통 아니구만.》

연희는 수집은듯 고개를 숙였다.

《무슨 그런 말씀을…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저를 자각시켰을뿐입니다.》

《선생은 보기와는 영 다르구만.》

정석은 두눈을 슴벅이며 중얼거렸다.

그로부터 며칠후 리인민병원 마당에서 약초밭김을 매던 연희는 뜻밖에 나타난 웅진을 보고 긴장해졌다.

혹시…

호미를 들고 일어서는 연희를 보며 웅진은 면구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저… 용서를 빌려고 찾아왔습니다.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사실 또 철새가 하나 날아온다고 생각하면서 비웃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아버지를 치료하겠다고 선뜻 나서니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한 햇내기라는 생각에… 용서하십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웅진의 얼굴은 흥분으로 하여 붉게 상기되여있었다. 그는 왔던 길로 힘있게 걸어갔다.

아무러한 가식도 섞이지 않은 웅진의 솔직한 말이 연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그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시원히 펼쳐진 푸른 하늘에 눈길을 던졌다.

파아란 하늘이 눈에 확 안겨들었다.

수리개 한마리가 억센 날개를 자랑하듯 높이 떠서 날고있었다.

(수리개야, 너 높이 난다고 자랑말아, 나도 이제 높이 날련다.)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싶었다.

긍지와 보람이란 이런것인지…

 

×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리인민병원에 새로온 선생이 웅진의 아버지를 살려냈다는 소식이 해면에 스며드는 물방울처럼 집집마다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이 리인민병원으로 찾아왔다.

병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에서 산골로 자진해온 고마운 처녀선생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속에는 설매 어머니라는 그 녀인도 있었다.

《병이 좀 어때요?》

설매 어머니는 연희의 물음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병은 이젠 나은거나 같애요.

집이 그리울 때마다 우리 집에 오세요. 선생이 와서 모두가 기뻐해요.》

녀인은 연희의 손목을 꼭 잡고 놓을줄 몰랐다.

그 녀인뿐만이 아니였다. 많은 사람들이 연희를 친딸처럼 여겼고 사랑해주었다.

연희는 더욱 분발하였다.

예방의학을 기본으로 하는 리인민병원의 사명에 맞게 정확한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행해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여러 환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도 세워나갔다.

오전에는 리인민병원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오후에는 환자들이 있는 집집들을 찾아다녔다.

왕진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산골이여서 한동네, 한동네가 골짜기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자리잡고있어 계획된 왕진을 다하자면 시간이 모자랐다.

도시에서 뻐스를 타고 오고가던 연희에게 있어서 이것은 여간 힘에 부치지 않는 일이였다.

그러나 연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싶었던것이였다.

장마철의 어느날이였다.

잠시잠간 내릴줄 알았던 비는 오후가 다 지나가는데도 멎지 않았다.

창밖을 내다보며 망설이던 연희는 마침내 결심을 내리였다.

차비를 하고 밖으로 나서니 대줄기같은 비가 삽시에 연희의 온몸을 물주머니로 만들어버리였다.

코등과 두볼로 비물이 쭉쭉 흘러내리였다.

손바닥으로 연방 비물을 훔치며 달리던 연희는 얼어붙은듯이 멈춰섰다.

늘 건느던 실개울이 불어나 사품치며 흐르고있었다.

물살도 얼마나 빠른지 들어서면 눈깜짝할 사이에 휘말려들것만 같았다.

산골물이다보니 폭우에 이렇게 물량이 엄청나게 불어나는것이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도가 나지 않았다.

예까지 와서 돌아설수도 없고…

부지중 자기를 친딸처럼 여기고 사랑해주는 설매 어머니와 믿음을 가지고 새롭게 대해주는 웅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실망을 줄수 없었다.

그것보다도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하고싶었다.

연희는 주저없이 사품치는 물가로 들어섰다.

온몸에 준 힘을 조금이라도 늦추면 물살에 떠밀려갈것만 같아 가슴이 활랑거렸다.

드디여 건너편에 이르니 순간에 온몸의 맥이 풀리고 다리가 매시시해져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물속에서 구으는 돌에 맞았는지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그때야 아픔이 느껴졌다.

한참 숨을 돌린 연희는 이를 사려물고 일어섰다.

이렇게 그가 웅진의 집과 설매네 집을 비롯하여 계획한 여러 집들을 빠짐없이 돌아보고 리인민병원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밤이 퍽 깊었을 때였다.

리인민병원에서는 뜻밖에도 정석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아니, 선생님이 어떻게?》

《밤이 이렇게 깊었는데 좀 일찌기 다니오. 얼마나 기다린줄 아오?》

연희는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온몸이 떨려나는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정석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채 말을 이었다.

《자, 어서 가기요. 우리 집사람이 오늘 찰수수지짐을 해놓고는 선생을 데려오라고 자꾸만 떠밀기에… 이렇게 기다렸소. 어서 가기요.》

정석은 이러며 연희의 손목을 잡았다.

《아니, 이게 뭐요? 열이 있는게 아니요?》

정석은 말릴새도 없이 손등을 이마에 가져갔다.

연희는 온몸을 떨고있었다.

《안되겠소. 몸상태가 좋지 않소.》

그날부터 연희는 자리에 누웠다.

연희가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범산리의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설매 어머니는 일이 끝나면 연희곁에 있으면서 그를 간호해주었고 웅진은 마을청년들과 함께 산속을 헤매면서 산꿀을 얻어왔다.

관리위원장과 리당비서는 저녁마다 들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시간을 보내였다.

연희는 무척 행복하였다. 이런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싶었고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싶었다.

드디여 자리에서 일어난 연희는 병석에서 무르익혀온 리인민병원건설문제를 정석에게 이야기하였다.

얼굴에 느슨한 미소를 함뿍 머금고 연희를 대해주던 정석은 연희의 말에 놀란 망둥이처럼 펄쩍 뛰였다.

《병원을 새로 건설한다구?! 지금 제정신이요?》

《예, 제정신이니 이런 제기도 하는거지요 뭐. 전 이번에 아예 입원실과 치료실도 지금보다 더 많은 병원을 짓자는겁니다.》

열정에 넘쳐 토로하는 연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석은 긴숨을 내쉬였다.

《이보오 연희선생, 기분 나빠하지 말고 내 말을 듣소. 동문 그렇게 떠들썩하다가 훌 가버리면 다지만 우린 여기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요. 그러니 치료나 잘하면서 조용히 있다가 가시오. 병원을 새로 지으면 좋다는걸 우리도 아오. 하지만 거기에 드는 로력, 자재, 설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게 아니요. 잘 생각해보우.》

불시에 눈앞이 콱 흐려졌다.

(날 그렇게 생각한단 말인가? 그러니 정석선생의 태도는… 아니, 이대로 물러설수는 없어. 일단 결심한 일이니 끝장을 봐야 해.)

연희는 정석의 말대로 갈 땐 가더라도 마을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놓고싶었다.

연희는 그날부터 리인민병원건설을 위한 준비를 더욱 치밀하게 짜고들었다.

군의 해당 부서와 합의를 본 연희는 관리위원회의 지지밑에 작업을 시작하였다. 먼저 이 고장에 흔한 진흙과 석비레를 가지고 벽체를 쌓을 블로크부터 찍을 결심이였다.

힘이 들었다. 오전에는 치료사업을 하고 짬시간을 내여 블로크를 찍는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손가락이 터지고 피가 졌다.

그러나 마음은 즐거웠다.

연희가 앓는다는 련락을 받고 출장길에 범산리에 들렸던 큰아버지는 자체로 리인민병원을 짓겠다는 연희의 말에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장하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선군시대의 면모가 그대로 비끼게 멋있게 지어보자. 나도 힘껏 돕겠다.》 이러며 웃동을 벗어던지고 많은 블로크를 찍었다.

서산에 노을이 비낄 때 관리위원회일군들과 마을사람들이 연희선생을 도와주러 왔다.

그들은 큰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코노래를 부르며 블로크를 찍는 연희를 지켜보며 제나름의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윽고 연희에게 다가온 웅진이 씩씩대며 황소숨을 내불었다.

《선생은 정말 너무하오. 그래 병원을 새로 건설하는 일은 뭐 우리 일이 아니요? 우린 여기서 치료받는 사람들이란 말이요.》

형언할수 없는 기쁨이 연희의 가슴에 마쳐오며 눈굽이 찌르르해났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농사일에 바쁜데 어떻게 건설일까지…》

더 말을 하지 못하였다. 목구멍이 꽉 메여올랐다.

그러는 연희의 모습을 지켜보며 머리를 끄덕이던 관리위원장과 리당비서는 말없이 일손을 잡았다.

《자, 우리 마을 병원인데 우리 손으로 건설합시다.》

관리위원장의 말에 사람들은 일손을 다그쳤다.

이렇게 날들이 흘렀다.

범산리인민병원은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번듯하게 꾸려졌다.

해빛이 잘 드는 방들에 꾸려진 치료실과 입원실, 눈처럼 흰 벽에 하얀 백포까지 전개해놓으니 정갈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든것을 바라보는 연희의 마음속에서는 끝없는 희열과 자부가 그들먹이 차오르고있었다.

범산리에 인민병원이 새롭게 꾸려졌다는 소식은 군을 거쳐 도에까지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범산리사람들은 군에까지 가지 않고도 마음편히 가족들가까이에서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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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범산리인민병원에 3명의 대학졸업생들이 배치되여왔다.

동시에 연희에게는 소환장이 왔다. 그는 도인민병원 의사로 소환되였던것이였다.

《연희선생, 그동안 여기 와서 정말 수고가 많았소. 선생은 떳떳하게 이 범산리를 떠나는 첫사람이 되였구만. 축하하오.》

이렇게 말하는 정석의 눈에도 눈물이 반짝이였다.

《그래 언제 떠나겠소?》

《막상 떠나자니 섭섭한게…》

《내 군에 올라가는 차가 없는가 알아보려고 웅진이를 불렀소.》

범이 제소리하면 온다더니 정말 웅진이 뜨락또르를 퉁탕거리며 달려왔다.

《저… 저를 찾았습니까?》

웅진은 연희에게 살뜰히 눈인사를 하며 물었다.

그의 고수머리가 봄바람에 흩날리였다.

《여보게, 인차 군에 올라가는 차가 없나?》

《갑자기 그건 왜 묻습니까?》

《연희선생을 군에 좀 태워다주게!》

《연희선생 일이라면야 우정 시간을 내서라도 가야지요. 군에 회의가 있습니까?》

《그런게 아니라 연희선생이 도병원으로 소환되였네.》

《예?!》

순간 웅진의 두눈이 커졌다. 그는 말없이 서있는 연희를 한동안 지켜보더니 푹 꺼진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니 연희선생은 여길 떠나겠다는거지요? 하긴 여기가 무슨 미련이 있어서… 당장은 군에 올라갈 차가 한대도 없습니다. 안됐습니다.》

《챠, 이 사람 말하는걸 좀 보지.》

정석이 무안해서 손을 내저었으나 웅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씽하니 달려갔다. 이어 퉁탕거리는 뜨락또르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연희선생, 너무 마음쓰지 마오. 웅진이도 선생과 헤여지는게 섭섭해서 그럴거요. 딴생각말고 어서 차비하오. 내 그동안 선생에게서 보건일군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이 배웠소. 새 사람들도 왔으니 여긴 걱정하지 말고 어서 떠날 준비를 하오.》

정석은 연희의 마음을 안심시켜주느라 무진 애를 썼다.

밖에서는 여전히 퉁탕거리는 뜨락또르소리가 들려왔다.

연희가 애써 마음을 진정하며 창가로 다가서는데 문앞에 서있는 웅진의 모습이 안겨왔다.

그는 창가에 비낀 연희의 모습을 보자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래일 아침 일찍 떠나기로 합시다. 이왕 갈길인데 빨리 가야지요.

그리고 이자 내가 한 말은 다 잊어주시오. 원래 성격이 돼먹지 못하다보니… 그럼 전…》

퍽 안정된 웅진이의 목소리였다.

연희는 멀어져가는 웅진의 뒤모습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순박한 산골사람들… 정들은 그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눈에 밟혀왔다.

저녁녘에는 설매 어머니를 비롯한 마을녀인들이 연희가 떠날 때 가져가라며 이곳 특산물을 한아름씩 안고 찾아왔다. 그들은 몹시 섭섭해하였다.

《이젠 선생이 보고싶으면 도병원까지 가야겠구만. 그동안 선생과 정이 푹 들었었는데…》

《우릴 잊으면 안되우다.》

사심이 없고 가식이 없는 순박한 산골사람들의 말은 연희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가슴속은 불뭉치를 넣었다 꺼낸것처럼 화끈 달아올랐다.

이른아침 떠나는 연희를 마을사람들이 멀리까지 따라나와 바래워주었다.

연희는 자신을 친딸처럼, 친동생처럼 위해주던 마을사람들과 헤여지자니 가슴이 저려났다.

그는 이렇게 범산리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와 도병원에 수속을 하였으나 마음은 안정되지 못하였다.

연희의 생각은 꿈속에서도 계속 범산리로만 나래쳐갔다.

그곳에는 연희를 위해주고 아껴주던 다정한 사람들과 연희의 땀이 깃들어있는 리인민병원이 있었다.

모대김속에서 헤매던 연희는 도병원의 책임일군들을 만났다.

어느날 그는 병원원장과 마주앉았다.

《원장선생님, 도와주십시오. 전 아무래도 범산리로 가야 할것 같습니다.》

《비서동무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소. 인민을 위해 자신을 바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연희동문 정말 좋은 생각을 했소.》

부모들도 그의 결심을 지지해주었다.

《철부지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다 자랐구나. 옳다, 연희야, 그래야 한다. 너도 선군시대 청년이 아니냐. 용타. 그 길이 우리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는걸 명심해라.

그리고 범산리사람들도 우리 장군님께서 아끼고 사랑하시는 인민이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알겠니?》

가슴속에서는 이름못할 감정이 출렁이며 솟구쳤다.

연희는 큰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 범산리에 고려약생산기지를 새로 꾸릴 의향을 내비쳤다. 큰아버지는 무등 기뻐하면서 필요한 설비들을 해당기관과 토론하여 다 해결해보내겠다고 약속하였다.

도병원에 들려 작별인사를 한 연희는 곧 떠날 준비를 하였다.

며칠 더 있다가 떠나라는 동무들의 권고도 뿌리치고 연희는 그날밤 역으로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가고싶었다.

범산역에 내리자 하늘에는 신비로운 별세계가 펼쳐져 연희를 반겨맞아주었다.

보름달도 길을 따라 비쳐주며 환히 웃고있었다.

문득 비오는 날 온몸이 물참봉이 되면서도 불어난 내물을 건느던 때가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단지 범산리사람들앞에 떳떳하기 위해 사품치는 물속에 들어섰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보건일군으로 키워준 우리 당앞에 떳떳하기 위해, 이밤도 우리 인민의 행복을 위해 머나먼 전선길을 걷고계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발걸음에 자신을 따라세우며 이 길을 가고있었다.

얼마쯤 갔을가, 앞에서 호박만 한 두 왕눈알을 켠 뜨락또르가 퉁탕거리며 달려왔다. 뜨락또르는 웬일인지 연희앞에서 멈춰섰다.

뜨락또르를 보는 순간 혹시나 하던 기대가 끝없는 기쁨으로 바뀌였다.

운전칸에서 뛰여내리는 사람은 웅진이였다.

《아니, 이 밤중에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웅진은 말귀를 고르는지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그의 짐을 받아들었다.

《리당비서동지와 관리위원장동지가 련락이 왔다면서 빨리 가보라기에… 내가 이렇게 왔소.》

연희는 행복에 겨웠다. 그는 마음속으로 웨쳤다.

(아름다운 사람들… 이들을 위해 사는것이 내 삶의 보람이 아닐가. 그들을 위해 모든것을 바치리라!

우리 장군님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는 인민, 여기 산골사람들을 위해 청춘도 희망도 사랑도 다 바치는 그 길에서 참된 삶의 보람을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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