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비 료
김 하 수
비료는 흰눈처럼 하얗고 티없이 깨끗하다.
도글도글한 구슬마냥 흰빛을 발산하며 알알이 하조장에 떨어져선 제 모양을 드러내는가싶더니 농장벌로 실려가선 하나같이 땅속으로 들어간다.
비료는 그 어떤 땅도 나무라지 않고 땅속에 들어가서는 알찬 열매를 맺어준다.
이 비료의 진가를 알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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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검수원들속에는 환갑이 다된 김초령이라는 아바이가 있다.
유별나게 굵고 긴 눈섭, 창백해보이는 얼굴, 눈을 올려뜰 때마다 깊숙이 고랑을 지으며 물결치는 류달리 벗어진 이마의 주름살… 늙은이의 완고성이 엿보이는 이 아바이한테서 나는 견습을 받았다.
여기로 오기 전까지 나의 생활은 방향없이 출렁이는 파도와 같았다.
중학교시절엔 눈에 띄고 귀로 들은것이면 무엇이든 다 해보고싶었고 그래서 남먼저 두각을 나타내려는 욕망이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쇠물을 다루는 영화의 주인공들을 보면 용해장으로 달려가고싶었고 붉은 별을 많이 새긴 자동차를 보면 그 별을 나의 가슴에 다 달고싶었다.
하나같이 미츨하게 자란 형들과는 달리 걷잡을 새없이 헤덤벼치는 삼형제의 막내인 나의 앞날을 놓고 오죽했으면 부모들의 얼굴에 걱정의 잔주름이 잔뜩 어렸겠는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능공학교를 거쳐 사회에 첫발을 떼면서는 그 욕망이 더욱 커졌다.
남들이 싫든좋든 제 하고싶은 일은 언제든 하고야마는 고집스러운 성미를 천성처럼 굳혀온 나는 뭇사람들을 경탄케 할 커다란 위훈을 세우든가 아니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긍지스러운 일을 해서 자신을 내세우고싶었다.
이러한 때 자재검수원이라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배치장을 나는 받게 되였다. 나는 로동과 부원의 팔에 매달렸다. 어렵고 힘들어도 좋으니 같은 값이면 비료생산의 심장부인 합성직장에 가겠다고 떼질했다. 그러자 로동과 부원은 나를 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해보지도 않고 직업을 가려? 기능공학교에서 배운 전공과목이 버리면 그만인 휴지장이 아니야. 검수가 뭐 헐한 일인줄 아는게지. 합성직장과 같은 심장부를 지켜선 공장의 관문이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가보면 알게 돼.》
나의 검수원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처음에는 녀자들의 일처럼 보여 싱겁기도 하고 제딴의 창피감까지 느꼈었다. 그러나 며칠 있어보니 로동과 부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온 공장에 들어오는 수많은 자재를 드다루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라는것을 알았을 때는 긍지가 은근히 차올랐다.
비료생산은 자재검수로부터 시작된다고 볼수 있다.
포장으로부터 무게와 개수, 색갈과 모양, 분석결과에 따라 자재의 가치와 구입실적이 평가된다.
한동안 견습을 받으며 초령아바이를 따라다녀보니 자부심이 고무풍선처럼 하늘높은줄 모르고 날아올랐다. 품질이 떨어지거나 공장의 실정에는 관계없이 들여오는 자재는 검수원앞에서 영낙없이 재판을 받는다. 이런 경우 자재를 들여오는 사람들이 이 초소에서 애를 먹는다.
보통때에는 푸근하고 온화한 초령아바이였지만 자재를 검수할 때에는 눈섭을 곧추 세우고 털끝만 한 융화도 없다. 그런것으로 하여 아바이의 주위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줄지어 따라다닌다. 이럴 때면 내가 아바이가 된것처럼 흐뭇해지고 발걸음도 건드러진다. 생각지 않게 호박을 안은것 같은 기분에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아바이는 한쪽다리를 절고있었다.) 수십년동안 초령아바이가 이 한 초소를 지켜온것은 이런 남다른 긍지때문이리라.
《명일이가 있겠지?》
사무실 출입문이 열리는것과 동시에 초령아바이의 노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오늘 여러 사람들의 시선앞에서 자기를 시위하며 대범하게 직경이 각이한 환강을 어림짐작으로 평균치를 잡아 검수하였다.
이것이 아바이의 얼굴에 서슬을 쳤던것이다.
《못된 송아지 엉치에서부터 뿔 나온다더니 누가 그렇게 검수를 하라고 했어?》
《아바이, 나도 검수원이예요, 아바이와 동등한… 검수원이 뭐 그쯤한 권한도 없습니까?》
《명일동무, 아바이앞에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나는 눈길을 옆에 앉아있는 동갑나이인 쌍태머리 경희에게로 보냈다.
나보다 한해 먼저 들어온 선배랍시고 훈시질을 곧잘하더니 이젠 너까지…
내가 쥐고있던 책을 책상우에 놓으며 우둘렁거리자 아바이의 눈섭이 빳빳이 일어섰다.
《권한? 그 권한이 어떤건지 내 똑똑히 보여주지.》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은채 노기어린 얼굴로 서있던 아바이가 절룩거리며 들어오더니 무작정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퇴근길에 오르려던 나는 어쩔수없이 강재장에 무둑히 쌓아놓은 환강더미앞에 아바이와 함께 섰다.
《자, 똑똑히 보렴. 너의 권한이 그래 이 환강들을 한가지 규격으로 만들어놓을상싶으냐?》
창고에 넣고 출고할 때 용도에 따라 주면 될것이 아닌가.
대장의 글은 정자로 쓰되 먹으로 쓰라, 혹 수자를 정정할 때에는 지우지 말고 빨간줄을 그어라, 분석시료를 뜰 때에는 한점에서 뜨지 말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말하고도 내가 검수한것은 따지고든다. 마치 학생에게서 시험을 받아내듯이.
결국 나는 재검수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배률높은 확대경같은 아바이의 눈에 빠질세라 환강을 하나하나 헤치며 검수를 끝냈을 때는 어둠이 꾸역꾸역 구석쪽으로 밀려가고 나무잎들에 이슬이 내려앉은 새벽이였다.
한쪽다리를 끌며 함께 거들어주던 아바이는 그제야 후― 하고 안도의 숨을 쉬는것이였다. 온몸이 쑤시고 허리가 지끈거리며 아파났으나 아바이앞이라 엄살도 부리지 못하였다.
반복작업이 더 힘들다더니…
활등처럼 구부정한 아바이의 허리가 이밤 더 꼬부라진것 같다. 눈에는 피로가 한껏 실려있었다.
이윽고 환강더미에서 눈길을 돌린 아바이가 머뭇거리는 나를 엄하게 바라보았다.
《다신 그러지 말라구.》
이렇게 한마디 하고난 아바이는 불협화음과도 같은 발자국소리를 내며 사무실로 향했다.
언젠가 내화벽돌을 검수할 때였다.
자동차의 방수포를 벗기니 맨우의 포장한 나무상자 한개가 찌그러들고 흘러내린 벽돌 몇개의 귀가 떨어져있었다. 자재상사 부원이 자기의 수고를 알아달라는듯 시키지도 않은 말을 했다.
《당장 주강로보수에 써야 할 긴급자재여서 밤새 달려왔소.》
《수고했구만요.》
내가 귀가 떨어진 내화벽돌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자 그는 담배를 꺼낸다, 라이타를 찾는다 부산을 피웠다. 벽돌이 제 모양을 갖추지 못하면 불량품으로 인정받는다는것을 알고있으니 그럴수밖에.
나는 그 모양을 못 본척 포장상태를 재확인하며 무게있게 행동하느라 애썼다.
《한두개쯤은 일없지 않을가? 아, 그리고 언제 이것저것 나무릴 형편이 되오? 내 이걸 구입하느라 진땀을 뽑은걸 생각하면…》
긴급자재인것만은 사실이다. 먼길을 달려오느라 눈확이 꺼져들어간 상사부원의 수고가 헤아려져 깔지락거리고싶지 않았다. 걸음걸음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그앞에서 나는 은근히 점잔을 뺐다.
《자, 빨리 수량을 확정하고 주강직장에 바로 보냅시다.》
상사부원의 얼굴에 웃음이 넘쳐흘렀다.
《역시 명일동무하군 일할 재미가 있거던.》
이때 별안간 초령아바이가 절룩거리며 나타날줄이야.
그는 부리부리한 두눈으로 벽돌을 눈여겨보더니 나무뿌리같은 두손을 깍지끼운다. 이쯤되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곧은 막대기같은 아바이의 저 손이 풀려야만 검수입고표가 작성된다.
아바이의 볼편이 실룩거리더니 누구에게라없이 눈을 올리떴다.
《참, 한심한 사람이군.》
이건 누구보고 하는 소리인가.
아바이의 거동을 긴장해서 바라보던 상사부원의 얼굴빛이 거매진다.
《제아무리 공든 비료라도 길가에 떨어지면 아무 쓸모가 없어.》
또 비료소리다. 뒤따라 또다시 아바이의 목소리가 울린다.
《제 수곤 알면서두 귀한 자재의 품질은 하찮게 여기는 그 버릇을 떨구기 전엔 절대로 안돼.》
아바이의 칼날같은 목소리가 순간에 나의 인격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나같은건 있으나마나한 존재인듯…
상사부원의 숨결이 거칠어진다.
이런 사람들은 뒤에서 말하기를 자기네가 애써 뛰여다니며 자재를 들여오면 제 공장에 와서 더 애를 먹는다고 한다. 검수를 통과하는게 하늘의 별따기라던지.…
아쉬운 심정으로 귀떨어진 벽돌을 바라보던 아바이는 부원의 그 모양에 실눈을 짓더니 돌아서버렸다.
《아니, 저… 아바이, 그렇게 가면…》
아바이의 뒤를 몇걸음 따라서던 상사부원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현장을 돌아보던 기업소 책임비서가 아바이한테로 다가왔던것이다.
《아바이, 수고하십니다.》
책임비서가 허리굽혀 인사를 하자 아바이는 황황히 두손을 가로저었다.
《책임비서동지두, 이러지 마십시오. 내 미처 알아보질 못해서…》
《얼굴이 많이 축간것 같은데 건강을 돌보며 일하십시오.》
《예, 의사들이 어떻게나 관심해주는지…》
《그래요?!》
책임비서의 얼굴에 웃음이 비끼자 아바이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어찌보면 아바이가 책임비서인듯싶다. 알지 못할 호기심에 나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책임비서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아바이를 보며 상사부원은 에익 하고 손을 들어 허공을 내리쳤다.
《이렇게 힘들어가지구서야…》하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던 상사부원이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마치 이렇게 퇴짜를 놓는게 동무네 일이냐는듯.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동감이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바이가 있는 한 내 얼굴이 빛이 날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조용한 기회에 큰맘먹고 초령아바이에게 말했다.
《아바이, 내 체면도 좀 봐줘야 하지 않습니까, 같은 검수원끼리 따분하지 않게… 오늘 내화벽돌 경우에도 얼마든지 쓸수 있는게 아닙니까. 그리구 허용한계라는것두 있구요. 너무 그러니 사람들이 아바이가 싫대요.》
아바이의 눈치를 슬슬 보며 나는 나의 생각을 저도 모르게 《사람들》이라고 변명했다.
책상우에서 검수입고표를 작성하던 아바이의 손이 멈춰섰다.
《음,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단 말이지.》
아바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그늘이 지나갔다.
다음순간 머리를 가볍게 가로젓던 아바이는 자못 신중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체면이나 허용한계를 봐주지 않으니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검수원이 그 누구의 체면이나 보면 녹아나는건 공장이야. 이 비료공장이 녹아나면 풍요한 가을을 바라볼 체면은 어떻게 서겠나? 땅은 허용한계를 몰라. 바친것만큼 열매를 주거던. 물론 명일이 말대루 내화벽돌이 쓸수 없는건 아니야. 그러나 우리가 겉치레식으로 일하면 새하얀 비료에 티가 앉게 되고 나아가서 땅이 제구실을 못해. 사람은 이 땅에 깨끗한 량심을 묻어야 하거던.》
아바이를 바라보던 나의 눈길이 슬며시 아래로 떨어졌다. 조용하면서도 저력있게 울리는 아바이의 목소리가 나의 머리속에 돌아가던 무수한 의문부호들을 연소시켜버렸는지 나는 뻐꾹소리 한마디 못하고 말뚝처럼 서있기만 하였다.
다음날이였다. 어제밤까지도 별이 총총하던 하늘에서 언제 쏟아져내렸는지 움푹진 곳마다 비물이 차있고 대기는 온통 눅눅해있었다. 머리우에는 아직도 너슬너슬하게 찢긴 구름장들이 떼를 지어 밀려오면서 이따금씩 비방울들이 땅을 두들겨댔다.
내가 뼁끼솔을 비롯한 일반자재를 검수하고 사무실에 들어서니 초령아바이가 어데서 가져왔는지 큼직한 방수포를 바닥에 펴놓고 꿰여진 곳을 꼼꼼히 바느질하고있었다. 검은 반점이 무수히 내돋고 마디마디가 두드러진 손에 동작이 잘되지 않는 서툰 바느질이였건만 열성을 내고있었다.
《이건 어데 쓰려고 그럽니까?》
내가 의아해하자 아바이는 흔연스레 말했다.
《공장을 위해 드바삐 뛰여다니는 출장원들이 꿰진 곳을 미처 보지 못하고 그냥 가지고갈것 같아서 그러네.》
《그러니 이건…》하고 내가 어림짐작을 하자 아바이는 빙그레 웃음을 띠웠다.
《어제 내화벽돌을 씌웠던 그 방수포일세. 집을 떠나 사는 그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우리가 할수 있는껏 해줘야지.》
참, 아바이두… 써야 될 임자들도 례사롭게 스쳐지나는 일을 괜히 붙들고…
《명일이, 또 터진 곳이 없는가 다시한번 살펴보게.》
아바이와 함께 방수포를 살펴보고나서 차곡차곡 가려놓고 일어설 때였다.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두어깨가 푹 처진듯 한 상사부원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는 뒤더수기를 슬슬 긁으며 미안스레 서있었다.
어제일때문에? 아니면 이 방수포때문에?
나는 아바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전날의 호랑이같던 모습은 어데 갔는지 아바이는 보통날의 온화한 모습으로 상사부원을 맞이하는것이 였다.
《알았으면 됐네. 방수포가 구멍이 났더라니 손을 좀 댔네. 가지고가게. 다음부터는 각별히 책임성을 높이라구.》
아바이는 사람좋은 얼굴에 느슨한 웃음을 담았다.
《두번다시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아바이,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상사부원이 왜 왔는지 알게 되였다. 아침에 출근하여 들은 이야기지만 화김에 방수포를 벗겨놓은 자동차를 세워놓고 그냥 집에 들어갔던 그가 밤중에 비가 내렸다는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벽돌이 비에 젖으면 질이 떨어진다. 그가 허둥지둥 공장으로 달려나와보니 자동차가 온데간데 없었다. 후에 알아보니 초령아바이가 벽돌을 부릴 장소를 확인한 다음 예견성있게 자동차를 주강직장으로 끌고갔다는것이였다.
상사부원은 방수포를 안으며 나에게도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아마 아바이와 함께 나도 같이한것으로 알고있는 모양이였다.
길가에 떨어진 쇠쪼박을 보고도 그냥 스치지 않는 초령아바이로서는 흔연한 일이겠지만 나로서는 후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가리우고싶은 심정이였다. 상사부원을 쳐다보기도 그렇지만 아바이의 얼굴을 보기가 더 면구스러웠다. 아바이의 마음속진정을 모르고 어제 저녁 엇드레질을 했으니…
하루는 자재구입원이 가져온 310베아링 열개를 검수한적이 있었다. 내가 막 검수를 끝내고 창고에 입고시키려는데 아바이가 다가와 베아링을 보더니 대뜸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손을 털고나서려는 구입원을 불렀다.
《여보게, 베아링을 도루 가져가게.》
《?…》
《?…》
구입원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두눈을 슴벅이였다. 나역시 리해가 안되여 아바이와 구입원을 번갈아보았다.
《이런 베아링은 열이 아니라 백개라도 필요없네. 어서 가져가게.》
《아바이, 이건 합격도장을 맞은 신품베아링인데… 명일동무도 이자 검수를 해보아서 알겠지만…》
《예, 정품베아링이 맞아요.》
구입원이 지원포를 요구하자 나도 아바이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덧붙여 말했다.
그런데 아바이는 여전히 머리를 흔들었다.
《누가 베아링이 오작품이라나? 이런 자재는 창고안에 수두룩해. 필요없다니까.》
《예비조성인데 많아서 나쁠거야 없지요. 썩는 물건도 아닌데…》
깨도가 된듯 구입원은 시무룩이 웃었다.
아바이의 마음을 알리없는 나도 구입원의 그 말에 머리를 끄떡였다. 그러자 초령아바이는 두손을 깍지끼우며 버럭 성을 냈다.
《뭐, 예비조성? 그런 간판을 내걸고 끌어들이기 쉬운 자재만 골라하면 공장은 어떻게 되겠나? 저기 급수직장의 압축기와 합성직장의 타보순환기베아링이 당장 나가겠는데 급한 자재는 뒤전에 밀어놓고 배포유하게 예비조성을 한다구? 안돼!》
그제서야 구입원은 아바이의 손을 붙잡았다.
《야참, 아바이! 내 이걸 입고시키지 못하면 오늘실적이 령이 됩니다. 다음엔 꼭 필요한 자재를 들여오겠으니 이번만은…》
《난 그런 실적을 인정해줄수 없어. 또 공장의 숨결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한가지 일을 해도 실적을 론하지 않아. 가져가라구.》
이날 아바이는 끝내 그 베아링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공장에 시급히 필요한 베아링번호를 재삼 강조하였다. 그리고는 혼자소리로 근심스레 중얼거렸다.
《급수직장의 압축기동음이 시원칠 않아. 인제는 베아링을 교체할 때가 되였는데…》
《사실 그 베아링은 구하기 힘든것인데…》
구입원은 아바이앞에서 더는 어쩔수 없다는듯 맥빠진 소리를 하며 돌아섰다. 무심결에 들은 아바이의 그 근심이 공연한 걱정이 아님을 그때는 다 몰랐다.
저녁무렵에 구입원이 다시 나타났다. 반가이 맞아주던 아바이의 얼굴에 또 그늘이 비꼈다. 베아링 두개가 불량품이였던것이다.
《이보게 젊은이, 이 318베아링이 급수직장압축기에 꼭 필요한거네. 수고스러운대로 다시 갔다오라구.》
《아바이, 래일 하면 안될가요?》
구입원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말했다.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집에 들어간다고 발편잠을 잘것 같은가. 이 순간이라도 압축기가 멎으면 비료생산자의 그 죄스러운 마음은 어떻게 하겠나?》
주위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
구입원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인츰 머리를 들었다.
《내 아바이한테 두손 바짝 들었습니다. 우리가 응당 해야 할 일을 아바이가… 제 또 가보겠습니다.》
《나도 함께 가겠어요.》
세번째로 다시 돌아서야 되는 구입원의 그 걸음이 검수원의 잘못이기라도 한듯 미안한 감정에 나도 따라섰다. 아바이도 무등 기뻐하는 눈치였다.
자전거를 타고 몇십리를 달려 자정이 넘어 베아링을 가져왔을 때 아바이는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다.
결코 그 수고가 헛된것은 아니였다. 그날 저녁 급수직장의 압축기베아링이 교체되였던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스스로 따라나선 길이 비료생산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보다도 아바이의 명철한 판단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것이 아님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아바이는 매일 아침 남먼저 출근하여 공장을 돌아보면서 기계의 동음소리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걸린 자재를 알아보는것을 일과처럼 여기고있었다.
그리고 중요기대들의 보수날자와 교체한 부속들의 명세, 그 수명까지도 담당의사가 작성한 환자의 병력서마냥 머리속에 환히 꿰들고있었다. 이렇게 아바이가 하는 일에는 령역이 제한되여있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들어오는 자재나 구별하는 검수원이 아니라 공장의 숨결을 진단할줄 아는 검수원이였다.
다음날 아침 밤늦게까지 자재를 구입하느라 동분서주한 구입원의 소행이 온 공장에 소개되였다.
구입원의 그 수고가 헤아려져 내가 소개된것처럼 기쁘기는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맑은 물밑에 가라앉은 앙금처럼 서운함도 없지 않았다.
엄연한 의미에서 보면 구입원보다 아바이가 먼저 소개되여야 했었다. 전에도 그랬다. 아바이가 아니라면 비가 쏟아지는 그밤 내화벽돌이 어떻게 될번 했는가. 큰일은 아니지만 방수포문제도 같다.
아바이는 자기가 한 모든 일들은 땅속처럼 깊이 묻어두면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소행은 크게 소개해주지 못해 애쓴다. 아바이는 나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있다.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을상싶은 크고작은 소일거리들을 아바이처럼 다 안기에는 나의 시야가 너무도 좁았다.
일하면서 보니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것보다는 달랐다.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이 련결되는 수많은 압축기와 반응탑들을 비롯하여 아득히 뻗어간 10리 공장구내의 공정들에 들어가는 각종 윤활유의 점성과 수십가지 강철종류, 고무제품과 시약류, 회전기대의 부속품들… 또 그것들이 요구하는 용도는 가루채구멍보다 더 많다. 심지어 구멍탄을 찍을 때 쓰는 진흙까지도 분석하고 생산에 도입해야 하는 막중한 부담이 검수라는 두어깨우에 지워져있다는것을 알았을 때의 중압감이란 참…
웃으며 들어왔다가 울고나갈 정도로 점점 더 힘들어간다. 그런데… 생산현장에서는 조그마한 성과를 거두어도 속보판에 이름이 나고 출근길에 목마를 태워주는데 들어오는 자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밑거름이 되여준 우리는?
창고앞에 자재들이 한가득 들어왔다. 생고무와 접착제, 도색류들을 허리가 지끈하게 검수했는데 대기하고있기라도 한듯 대형화물차가 또 들이닥친다. 이번에는 모두가 지함포장이다.
아바이는 준비하고있었던듯 주머니에서 손칼을 꺼내여 포장끈을 자르고 조심스럽게 지함을 열었다. 경희도 지함 한개를 헤쳐놓고 례장감 고르듯 이것저것 만져보며 수첩에 명세들을 적어나갔다.
나는 베아링표시가 되여있는 묵직한 지함 한개를 땅바닥에 훌렁 놓았다.
《조심스럽게 다루라구. 이건 마지못해 날라주는 이사짐이 아니야.… 그렇게 앞뒤없이 와락와락 헤치지 말고 웃쪽부터 열어라.》
나는 미간을 찌프렸다. 베아링번호와 개수를 확인하고 또 다른 지함을 헤치니 이번에는 각종 공구들이 들어있었다.
《노기스는 뒀다 뭘하는거냐? 공구의 규격을 송장과 대조해야지. 껄렁껄렁할 일이 아니야… 그렇게 헤쳐놓지만 말고 확인된것은 다시 포장해라.》
여느때에는 호인처럼 순박하고 온순해보이다가도 검수를 할 때에는 어떻게나 딱딱하게 노는지 이상기후현상처럼 순간에 그 모습이 달라진다. 그러지 않아도 실둥해진 마음에 잔소리많은 아바이에게 며칠전에 다른델 가겠다고 우둘렁거렸었다.
《가긴 어델 간다고 그래. 비료사람이 되는가 했더니 속이 궁글었군.》
그저 비료, 비료다.
경희도 나의 행동에 불만을 느꼈는지 이쪽을 잠시 바라본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경희의 옆구리를 슬쩍 쳤다.
《경희동무, 지금 아바이년세가 어떻게 돼?》
《아니, 아바이나이가 환갑이 다 됐다는걸 몰라서 물어요?》
경희의 눈이 밤알만큼 커졌다.
《에이참, 녀자들은 다 몰라. 그렇게 일하다가 시집이나 가면 되겠지만 남자들은 자기 명예를 소중히 여기거던. 한번 세상에 나온바치군 큰 위훈을 세워 이름을 떨쳐보려는 야심이 강렬하거던. 그런데 남들은 같은 일을 해도 표창장을 타고 훈장을 타는데 우린… 그런데 아바인 밑거름이 되여 한생을 보내니 남의 일 같지 않아 그래.》
내가 푸념조로 이렇게 말하자 경희의 얼굴에도 안타까운 빛이 어렸다.
《명일동무, 아바인 영예군인이예요.》
《뭐, 영예군인? 동무가 그걸 어떻게…》
나는 무엇에 찔리운것처럼 흠칫했다.
경희는 섭섭하다는듯 말을 이었다.
《바로 우리가 딛고있는 이 땅을 지켜 피를 흘린 누구보다도 존경을 받아야 할분이예요.》
순간 현장에 내려와서 아바이의 건강상태를 자주 알아보던 담당의사의 얼굴과 아바이의 신상을 때없이 걱정해주는 책임비서를 비롯한 공장간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더 말할념을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경희는 소중한 그 무엇을 안기라도 하듯 두손을 가슴에 모아쥐였다.
《그런데도 아바인 자기 몸을 전혀 돌보지 않아요. 그저 비료밖에 모르거던요. 그러면서도 〈할일을 다하고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될고… 농사엔 비료가 있어야 하고 이 땅은 진심을 바쳐 가꾸는 주인이 있어야 더 좋은 래일이 오거던. 그러니 내 사는 날까지 짐이 되지 말아야겠는데…〉 이런 말을 종종 하군 해요. 아바이의 이 진심을 모르고 나도 첨엔 고까운 생각이 없지 않았어요. 들어오는 자재나 검수하면 되겠는데 급한 자재가 떨어지면 안타까와하고 또 밤중에 들어온 자재는 다음날 검수하면 되겠는데 부득부득 고집할 땐… 이렇게 하루이틀도 아닌 수십여년간 묵묵히 자기를 바치며 아바이는 한초소를 지켜 일해왔어요. 정말 스스로 존경이 가요.》
경희의 말을 잠자코 듣는것으로 나는 동감을 표시하였다. 아바이와 함께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일반적으로 느끼게 되는 사실이였던것이다.
초령아바이에게는 분명 자기를 이겨내고 남들도 이끌고가는 자석같은 힘이 있다. 나 역시 아바이앞에서는 말꼬리가 움츠러들고 싫든좋든 순응하게 되는것만은 사실이다.
한번은 초령아바이에게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아바인 무슨 재미로 일합니까? 그리고 무슨일을 했을 때 제일 긍지가 있었습니까?》
그때가 한달전 집중보수때였다. 상사에서 질안직장 페열보이라용인발관을 자기 재질이 아닌것을 들여온적이 있었다. 송장과 현물을 깐깐히 살피던 아바이가 용도에 맞지 않는 다른 인발관을 가지고왔다고 판단했다. 상사사람들은 그럴수 없노라고, 자기네는 정확히 인계받았다면서 아바이를 이상스레 쳐다보았다. 그러면서도 오랜 기능으로 터득한 로련한 눈길로 강재의 색갈과 굳기를 가늠해보며 단호하게 말하는 아바이의 완고성에 어쩔수 없었는지 정 그렇다면 래일 다시 알아보겠노라면서 자리를 떴다.
아바이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어렸다. 래일이면 당장 보수에 쓸 자재였다. 한동안 무엇을 생각하던 아바이가 머리를 들었다.
《지금형편에서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형편이 못된다. 집중보수가 늦어지면 우리모두의 책임이다. 차를 돌려라.》그리고는 한쪽다리를 끌며 힘겹게 운전칸의 발판을 딛고 올라섰다. 아바이의 그 모습을 보던 경희가 따라나서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 정신을 차린 나는 황황히 소리쳤다.
《아바이, 내가 가겠어요.》
운전칸에 앉았던 아바이가 차문을 열고 반색했다.
《좋아, 어서 같이 가서 확인해보자꾸나.》
2백리길을 달려 해당 기업소에 다달으니 아니나 다를가 그득히 쌓아놓은 배관더미들에서 잘못 실어왔다는것이 확인되였다. 집중보수용인발관을 제시간에 도착시키느라 밤을 꼬박 밝힌 아바이였건만 얼굴에는 조그마한 피로도 보이지 않았다. 어려운 과업을 깨끗이 마무리한 사람처럼 긍지에 넘쳐있었다. 물론 해놓고나니 나의 마음도 가벼운것만은 사실이였다. 하지만 그때 안해도 무방한, 그 누가 탓할 사람도 없을 일까지도 제일처럼 맡아나선 아바이에게 물었던것이다. 그랬더니 아바이는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우리 비료생산자들이야 땅을 가꾸는 재미에 살지. 우리가 생산한 비료가 농장벌에 실려가 땅을 살찌우고 또 그것으로 해서 풍요한 이삭이 물결치는 들을 상상해보라구. 명일이도 일하느라면 그런 재미, 그런 긍지를 느낄 때가 꼭 있을거야.》…
경희의 말이 옳다. 아바이는 마음속에 비료를 안고산다. 온 심신을 비료생산을 위해 바치는 그것으로 하여 아바이는 사람들의 선망의 눈길에 떠받들려있다. 누가 무슨 일을 하던 그 일이 크든작든 공장을 위한 일이라면 제일처럼 여기는 그때문이리라.
자재구입을 떠나는 사람들이 수백가지 자재와 그 용도를 손금보듯 하는 초령아바이에게 슬며시 찾아와 임무를 더 보충해가는 경우가 종종 있군 한다.
그러니 아바이가 공장을 위해 자기를 아낌없이 바치는것은 내가 처음에 생각한 직업에 대한 긍지가 아니라 공장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리라.
하지만 깨닫는다고 실천이 동반되는것은 아니였다. 위훈을 세워 이름을 날리겠다는 욕망이 지배적이였던 나에게 있어서 공명심은 마음의 한구석을 계속 든장질했다. 응당하다고 생각한 그 든장질이 나의 생활에 상처를 입힐줄 몰랐고 별치 않게 생각한 그 상처에 제 손으로 수술칼을 대기까지에는 마음속 아픔이 커야 했다.
생활의 진미를 느끼지 못하고 데면데면한 나의 행동이 끝내 일을 쳤다.
질소직장 압축기메달용바비트를 눈으로 확인하고 검수시킨것이 문제로 되였다. 하마트면 압축기를 구워먹을번 했다. 흔히 그리고 자주 들어오는 자재라고 분석도 하지 않고 소홀히 했던것이다.
가스화공정건설용자재검수로 일이 날번 했을 때 이미 정신을 차렸어야 했었다.
그때는 수량과 재질에 대한 검수를 정확히 하느라고 하였다. 그런데 똑같은 규격의 철판을 입고잡을 때 규격란에 재질을 혼돈하는 바람에 합금강판과 일반강판이 바뀌여질줄이야.
설비제작을 맡은 련관단위기업소에서 철판을 재단하려 할 때 어떻게 알았는지 초령아바이가 제때에 수습하지 않았더라면 일이 날번 하였다.
아바이는 나를 앉혀놓고 그때처럼 많은 말을 해보기는 처음이였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직업이라고 소홀히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사람은 어데서 무슨 일을 하던 오늘이 아니라 먼 후날까지도 책임지는 립장에 서야 한다, 때문에 한걸음을 걸어도 후회없는 자욱을 남겨야 한다.…
아바이의 말을 채심하지 못하다나니 결국 오늘과 같은 일을 초래했다.
구체적인 원인을 규명하느라 송장과 분석표를 깐깐히 요구하는 낯모를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속이 까맣게 되였다. 하늘에 없는 꽃을 따보려는 허황한 공상에 들떠있다가 발밑의 자그마한 진창길에 엎어진셈이 되였다. 꿈같이 그려보던 위훈은 고사하고 하루아침에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락엽신세가 된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남의 집에 들어온 사람처럼 서성대는거냐?》하며 아바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안절부절 못하는 나에게 자재일군편람책을 주는것이였다. 그 어떤 자재가 들어와도 스펙트르분석기가 울고갈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척척 가려내던 아바이가 오늘날에는 끙끙거리는 내 속을 알려하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책을 손에 쥐였지만 눈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그만에야 자리에서 일어나니 아바이의 무뚝뚝한 눈길이 나를 바라본다.
《앞으로 큰일칠 사내녀석으로 알았더니 이제보니 옹졸한 녀석이군.》
진담인지 롱담인지 모를 아바이의 말이 명치끝을 찌른다. 나를 바라보는 아바이의 모습에서 그어떤 알지 못할 위압감을 느끼며 머리를 돌렸다.
내가 헛디딜세라 걸음걸음 이끌어주던 아바이한테 아무런 면목도 없었다. 콱 욕이라도 해주었으면…
그런데 아바이는 내가 그처럼 기다리는 회초리는 들지 않았다. 이것이 나를 더 옹색스럽고 지어 섭섭해지게 했다. 어쩐지 이제는 쓸모없는 존재로 배척을 받은것만 같았다. 경희까지도 나를 멀리하고 아닌보살하는듯싶다.
《경희야, 어제 들어온 기계유의 분석을 보자꾸나.》
경희는 분석표를 손에 쥔채 서늘한 바람을 일구며 내옆을 지나갔다. 여느때 같으면 두손을 맞잡고 점도를 이야기하던 경희의 모습이 오늘은 영딴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바이는 경희의 어둑컴컴한 얼굴과 분석표를 번갈아보았다. 경희는 그것이 마치 내탓이기라도 한것처럼 내쪽을 흘겨보더니 대답대신 머리를 무겁게 가로저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연추가 드리운듯 무거운 공기가 방안을 꽉 채웠다.
분석표를 보던 아바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나는 마뜩지 않은 눈길을 경희에게 돌렸다. 그런데 이 순간을 기다린듯 경희도 나에게 맵짠 눈길을 보내며 련발사격같은 소리를 질렀다.
《동문 도대체 뭐예요? 언제까지 아바이의 속을 그렇게 태우겠냐 말이예요? 아픈 다리를 끌고 힘든 일을 도맡아하는 아바이를 조금이라도 도와주지 못할망정 왜 짐이 되는가 말이예요?》
하, 이것 봐라. 피할길 없는 구석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이 기회에 나를 아예 링그밖으로 떨어뜨릴 심산인가. 나는 어망결에 두주먹을 불끈 쥐였지만 그의 다음말에 화석처럼 그 자리에 굳어졌다.
《너무해요, 너무해. 동무때문에 아바이가… 아바이가 처벌을 받은걸 알기나 해요? 모든 책임을 아바이가… 졌단 말이예요. 한생을 깨끗하게 살아온 아바이가 동무때문에…》
도간도간 끊기는 그의 말이 회초리처럼 나의 귀전을 맵짜게 때렸다.
《그래도 아바인 뭐랬는지 알아요? 나야 이젠 다 산 늙은이가 아닌가고, 공장의 기둥감이 되여야 할 젊은이한테 흑점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견습을 시킬 때 자기가 옳바로 이끌어주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그런데 동문 정말…》
전류에 감전된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지고 균형을 잃은 나의 몸이 비칠거렸다. 그 어떤 비수가 창자를 찌르는듯 했다. 아바이는 오늘날까지 나를 위해 말없이 자기를 바치였다. 내가 과연 무슨 권한으로 아바이의 깨끗한 한생에 그늘을 주었단 말인가.
나의 두볼로 눈물이 주루룩 떨어졌다. 경희도 내앞에서 흐느꼈다.
마음속의 질책으로 분별을 잃은 나는 아바이가 앉았던 자리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바이의 모습이 사진처럼 또렷이 안겨왔다.
그런데 아바이는 웬일인지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거세찬 대하의 거품이 되지 말기를 바라는 기대어린 눈빛이다. 어쩐지 아바이의 목소리를 듣고싶다. 시급히 결론을 주어 보내야 할 자재와 분석결과를 놓고 처리하여야 할 자재… 잔소리처럼 느껴지던 그 모든것이 내 인생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자기를 잊고 사는 그 한생의 걸음걸음이 내 따르며 본받아야 할 참모습이 아니던가.
내 인생에 아바이가 없었다면…
그날 저녁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며 아바이앞에 조용히 다가섰다. 언젠가처럼 동등한 검수원의 자격이 아니라 스승앞에서 잘못을 비는 제자의 심정으로 머리를 수그렸다.
《아바이!》
사람이 진짜로 격해질 때는 말이 안 나가는지…
경희도 눈물이 글썽하여 나를 바라본다.
초령아바이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한 눈빛을 보낸다. 천만마디 하고싶은 말을 그렇게 대신하고있는듯싶다. 나는 아바이의 강직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내 등을 쓰다듬어주던 아바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명일이, 검수가 힘들지?》
나는 그냥 흐느꼈다. 하많은 말들중에 아바이가 왜 이 말을 꺼내는지 이제는 나도 안다. 언제부터 내가 묻고싶었고 알고싶은 문제를 아바이는 지금 나에게 묻는다. 스스로 맡아나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 길에 남모르게 한생을 바치며 이겨내는 그 심중때문이 아니랴. 언젠가는 총이 세고 기름기가 돌았을 아바이의 성기여진 머리가 그것을 말해주는듯싶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바이는요?》
아바이는 빙그레 웃음을 띠웠다.
《그래, 나도 힘들지. 허나 누구든 해야 될 일이 아닌가. 생각해보라구. 로적가리를 쌓아놓구 꽹과리를 울리는 분배장에서 비료를 많이 보내준 우리를 찾지 않는다고 언제 단 한번이라도 서운해한적이 있었나? 없었지. 그저 우리모두의 땀으로 이룩된 이 땅의 행복을 두고 같이 기뻐하면 그만이였지. 그래서 비료생산자들이 아닌가. 비료를 보라구, 누가 보는이 없는 땅속에 묻혀도 이삭을 위해 자기를 깡그리 녹이거던. 우리도 이 땅을 그렇게 받들어올리자구.》
머리를 끄덕이는 나의 모습을 의미있게 바라보던 아바이가 경희에게 머리를 돌렸다.
《경희야, 우리 명일이가 또 다른델 가겠다면 보내주자꾸나. 비료사람이 아무렴 어델 가든 제할일을 모르겠느냐. 일은 하고싶어해야 되거던. 허허…》
내가 머리를 가로젓자 경희의 얼굴이 금시 밝아졌다. 아바이는 경희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세상을 안은것 같은 벅찬 흥분으로 하여 놓치면 아니될것 같아 나는 아바이의 손을 소중히 감싸쥐였다.
×
붕― 기적소리를 울리며 차판가득 하얀 비료가 꼬리를 물고 두줄기 궤도를 따라 련이어 공장구내를 떠나간다. 예나 변함없이 비료가 가는 곳은 농장벌이다.
어엿한 검수원으로 자란 오늘 한치의 탈선도 없이 곧게만 달려야 하는 인생의 먼길을 놓고 나는 지금도 마음속 신들메를 조이며 이런 생각을 자주해보군 한다.
온몸을 태우는 초불은 빛으로써 사멸되는 자기의 형체를 알리느라 노력하지만 비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바친다.
아바이의 한생은 어찌보면 비료와 같았다.
인생의 성공이란 어떤것인가?
화려한 꽃다발속의 월계관일가, 크나큰 명예일가.
아니, 그것은 강성대국의 드넓은 대지를 억세게 받들며 말없이 밑거름이 되여준 아바이의 검수생활과 같은 보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그것은 행복이였다. 이 땅을 위해 시대앞에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바쳤다는 긍지로부터 오는 행복일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리라.
아바이처럼… 비료처럼.
(흥남비료련합기업소 자재공급과 검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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