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 편 소 설
해 바 라 기
유 남 일
3
겨울은 산너머로 사라지고 푸른 봄이 조수처럼 밀려왔다.
따뜻한 봄향기가 공장구내의 그 어디나 서리여 사람들의 가슴을 새로운 희망과 포부로 부풀게 한다.
이 류다른 봄날에 배치받은 직장으로 찾아가는 은주의 마음은 하늘을 날으는 새마냥 즐거웠다.
절로 흘러나오던 은주의 노래소리는 공장구내길의 끝에 이르러 뚝 끊어졌다.
《어마나, 내가 직장을 지나쳤나?》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온 구내길옆에 위엄스럽게 솟은 제관직장, 조립직장, 기계직장의 덩지 큰 건물들이 보였다.
문득 직장앞에 해바라기를 심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해바라기라…)
사위를 살펴보던 은주는 작은 단층건물 앞화단에서 자라고있는 해바라기들을 보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리로 다가가는데 갑자기 끝의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웬 고수머리청년이 불쑥 튀여나왔다. 청년의 표정은 왜서인지 푸르딩딩해보였다.
(왜 저럴가?)하고 생각에 잠겨있던 은주는 앞을 가려보지 않고 걸어오는 청년과 피할새없이 부딪쳤다.
《어마나!》
《동문 눈이 없소?》하고 청년이 벌컥 성을 냈다.
《미안해요. 직장장동지를 찾느라고 그만…》
《직장장을…》
《예,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배치되여오는 길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은주의 아래우를 훑어보던 청년이 쓰겁게 입을 다시더니 아무 소리없이 휙 지나가버렸다.
《음ㅡ뚝박새》
은주는 인사불성인 청년이 사라진쪽을 향해 입을 삐쭉거려보이고는 그와 부딪쳤던 일이 되살아나 깔깔 웃으며 문앞으로 다가갔다.
청년이 튀여나왔던 그 문우에 《직장장》이라는 문패가 붙어있었다.
은주는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은주가 방으로 들어가자 책상앞에 앉아있는 조동찬직장장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무엇인가 풀리지 않은 감정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은주는 직장장의 표정에서 방금전에 자기와 마주쳤던 청년과 직장장사이에 좋지 못한 일이 있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그 청년은 얼마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기사로 배치받은 최승룡이라는 사람이였다.
잘생긴 총각기사가 직장에 배치되여오자 누구보다 환성을 지른 사람은 직장장 동찬이였다.
동찬은 직장장의 대리인이 나타났다고 기뻐하면서 그를 집에 청했다. 직장장의 마음에 감동된 승룡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일을 많이 하겠다고 결의를 다지였다.
그러던 그가 며칠후 현장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고나서 하는 소리가 여기서는 일을 할수 없다는것이였다.
동찬은 그럴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마음을 늦추어주려고 하였다.
《기사동무의 심정이 리해되네.
아는것처럼 우리 직장은 공장의 기본생산단위가 아니지. 그러니 불리한 조건들이 많네. 그래서 일을 잘해보자고 약속하지 않았나.》
《하지만 실태는 너무합니다.》
《그러니 내가 기사동무를 믿는게 아니요.》
직장장의 빈틈없는 말에 최승룡은 씩씩대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동찬은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나오는 자투리들을 가지고 생활필수품들을 만드는 우리 직장을 공장사람들은 《자투리직장》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아마 직장도 공장구내의 제일 으슥진 곳에 자리를 잡게 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젊은 사람들은 기본생산단위가 아닌 우리 직장을 별로 달가와하지는 않았던것이다. 이럴 때 최승룡이 배치되여왔는데 그마저 마음이 흔들릴줄이야. …
그가 결김에 나가버리자 동찬의 마음은 더욱 뒤숭숭해졌다. 이것은 직장안에 나쁜 영향을 줄수 있기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최승룡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있을가?
동찬이 이런 생각으로 골똘해있는데 은주가 나타났던것이다.
《동문 누구요?》
동찬은 덤덤히 물었다.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여기에 배치된 장은주라고 합니다.》
은주는 은방울 굴리는듯 한 청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직장에 배치받았다는거요?》
동찬은 눈을 크게 떴다.
《예.》
《동무도 혹시 마음을 달리하지 않겠지? 그러겠으면 아예 딴데로 가오.》
동찬은 은주의 기색을 살피며 일부러 엄하게 말했다.
《직장장동지도 참, 오자마자 돌아갈 사람이 어데 있습니까?》
《그런 사람도 없지 않아 있소.》
직장장의 어조에는 그 누군가에 대한 불만이 짙게 어려있었다.
《직장장동지, 전 절대로 다른 직장은 가지 않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요?》
동찬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그의 결심을 떠보려는듯 한 어조로 물었다.
《두고보십시오.》
동찬은 당돌하게 거침없이 대답하는 처녀를 어떻게 봐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직장에는 가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이 마음에 들었다.
《좋소. 그래, 무슨 일을 하고싶소?》
《프레스공이 되고싶습니다.》
《프레스공?!…》
동찬은 은주의 웅심깊은 마음을 다는 모르고있었다. 그 프레스는 은주의 할머니였던 조봉녀가 처녀시절에 국자를 만들어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렸던 기대였다.
이렇게 되여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 할머니가 섰던 프레스앞에 은주가 서게 되였다. 그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할머니, 할머니가 지켜섰던 프레스앞에 오늘은 이 손녀가 섰습니다.)
그때부터 은주는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할수 있는 생활필수품이라면 한가지라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아글타글 분발해나섰다. 현장기사 최승룡도 진심으로 은주를 도와나섰다.
은주는 이러한 성의가 깃든 제품을 안고 전시회에 올라갔던것이다. 그런데 한개의 제품도 전시회에 출품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실패의 쓰디쓴 아픔은 크지만 새롭게 다지는 결심은 더더욱 컸다.
필수품의 질을 높이자. 성의 하나만으로는 안된다. 그렇다, 새로운 과학기술에 의거해야 한다.
이것이 그가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심각하게 받아안은 충격이였다.
4
은주가 공장으로 돌아오자마자 공장구내의 제일 좋은 위치에 자리를 옮겨앉은 직장은 전에없이 활기를 띠였다. 승룡기사가 달라붙어 연구한 각종 경질수지재료를 조화롭게 배합하여 새형의 특색있는 제품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던것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수 없었다.
경질수지원료가 걸렸던것이다.
원료문제를 가지고 론의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우에다 제기해서 경질수지원자재를 국가적으로 보장받자고 주장했고 어떤 사람들은 경질수지를 기본자재로 쓰고있는 공장, 기업소들에 호소하여 자투리를 얻어다쓰자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그 의견들은 여러 불리한 점들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가능성이 없는것으로 되였다.
론의들이 분분했다.
모두가 맥을 놓고있을 때 은주는 손달구지를 끌고 거리에 나섰다. 어떻게 하나 원료문제를 제힘으로 풀고싶었던것이였다.
은주가 막 가려는데 승룡기사가 달려왔다.
《은주동무, 동문 정말…》
승룡은 그의 행동에 감동된듯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두눈만 슴벅이였다.
《돌아갑시다. 원료문제는 풀렸소.
지배인동지가 군에 있는 해당 수매기관과 합의하고 련계를 맺었소.》
며칠후 군내수매소들에서 파수지를 가져가라는 련락이 왔다.
그리하여 은주는 공장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수매소에서부터 수매받은 파수지를 자동차에 싣고 공장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떠날 때 은주는 직장장에게 전화로 알리였다. 그 순간부터 동찬은 창밖을 내다보며 자동차가 도착하기만 기다렸다. 밖에서는 장마비가 끊을줄 모르고 점점 더 세차게 퍼부어대고있었다. 자동차는 도착할 시간이 다 되였는데도 감감 소식이 없었다.
왜 이렇게 늦어질가? 혹시 장마비에 길이 막힌건 아닌지… 마음속 근심은 더욱 커졌다.
동찬이 안절부절하며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는데 승룡기사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무슨 소식이라도 있소?》
《그럼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동찬은 말없이 손을 내저으며 길게 한숨을 내그었다.
《제가 마중가겠습니다.》
《자네가?》
《저도 이제는 제가 설 자리를 알았습니다. 직장장동지, 절 보내주십시오.》
승룡이의 어조는 절절하였다.
《좋소. 같이 가기요!》
《아닙니다. 혼자 가겠습니다. 직장장동진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동찬은 한동안 승룡을 지켜보더니 자기의 비옷을 꺼내들었다.
《자, 가지구 가라구.》
《고맙습니다.》
승룡은 누가 붙잡기라도 한듯 비발속으로 내달았다.
은주가 탄 자동차가 버들천을 건느다가 멎어선것은 한시간전이였다. 그사이에 버들천물이 불어 자동차는 물론 적재함우에 가득 실은 파수지마대들이 위태롭게 되였다.
운전사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마을에 내려간 뒤 은주는 혼자서 파수지마대들을 강기슭으로 옮겨놓기 위한 힘겨운 전투를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파수지마대를 이고지고 사품치며 흐르는 물속에서 매끄러운 돌을 디디며 한치한치 전진해가다가는 사나운 물살에 밀려 마대를 놓쳐버리기를 그 몇번…
기운이 쇠진해질대로 쇠진해진 은주는 안전한 곳에 마대를 내려놓자마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아직도 적재함우에는 파수지마대들이 있었다.
그때까지 운전사와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타까왔다. 자기 힘이 약한것이 더 안타까왔다. 녀자들은 왜 이렇게도 힘이 약할가?
불쑥 승룡이가 생각났다. 왜 그가 생각났는지 자신도 알수 없었다.
은주의 눈앞에는 이어 직장장이며 승룡기사며 기대공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은주는 벌떡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있는 힘을 다하여 파수지마대들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마대 또 한마대…
바로 그 시각에 현장에 나타난 승룡이는 지체없이 물속에 뛰여들었다.
《은주동무!ㅡ》
《아니, 기사동무!ㅡ》
사나운 물속에서 승룡을 만난 은주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기사동무, 어떻게 여기까지…》
《자, 입소. 직장장동지가 보내는 비옷이요.》
《직장장동지가요?…》
《자, 짐을 인주오.》
승룡은 더 말할새없이 파수지마대를 받아들고 씨엉씨엉 물속을 헤쳐나갔다.
이윽고 그들이 파수지마대를 다 옮겨놓았을 때에는 비가 멎어버린 뒤였다.
《고마워요. 이젠 됐어요. 한시름 놓이는군요.》
은주는 안도의 숨을 내그으며 쌓아놓은 마대들곁에 주저앉았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그였다.
승룡은 이어 운전사가 데리고온 마을사람들과 함께 물속에서 자동차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였다. 사람들이 돌아가자 승룡은 은주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사이에 은주는 파수지마대에 기대여 잠들어버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혼곤히 잠든 처녀의 터갈라진 손을 보는 순간 승룡은 코마루가 시큰했다. 어찌보면 천진란만한 녀동생같기도 하고 로숙한 선생같기도 한 이 처녀를 나는 진정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
그때로부터 한해가 흘렀다.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도에 꾸려진 인민소비품전시회장을 돌아보시였다는 소식을 들은 은주는 울렁거리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우리 공장 제품들을 보아주시였을가?)
은주는 그날도 간절한 마음을 안고 활짝 핀 해바라기꽃을 보며 할머니와 마음속 말을 나누었다.
《할머니, 난 왜 자꾸만 가슴이 울렁거리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도 할머니가 만든 국자를 어버이수령님께서 보아주실 때 그랬는가요? 나에게 언제면 그런 행복이 차례질가요?》
은주는 절절하게 물었다. 그리고 그윽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며 속삭여주는 할머니의 다심한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 이 세상 끝까지 가거라.
태양만을 따르는 해바라기처럼 말이다. 그 길에 너의 행복도 우리 인민모두의 행복도 있단다.》
《알겠어요, 할머니.》
은주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직장장이 승룡기사와 함께 달려오며 감격하여 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주동무, 장군님께서… 장군님께서 우리 공장에서 만든 〈해바라기〉상표가 붙은 제품들을 보아주시고 치하해주시였소.》
은주는 그 소리를 꿈결에서처럼 들으며 해바라기꽃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의 태양은 그의 행복을 알기라도 한듯 환하게 웃으며 따스한 빛발로 처녀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고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