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 편 소 설
해 바 라 기
유 남 일
1
서산마루에 걸려있던 저녁해가 숨박곡질하듯 서둘러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빵빵!…
저녁노을이 비낀 도인민위원회 앞마당에서 전국인민소비품전시회에 올려보낼 제품들을 가득 실은 자동차가 출발을 재촉하며 경적을 울리고있었다.
그러자 청사안에서부터 《자, 마지막지함이 나갑니다.》하는 청높은 소리와 함께 커다란 지함을 어깨에 멘 젊은 부원이 불쑥 나왔다. 그뒤로 훌렁 벗어진 이마밑에 도수높은 안경을 건 처장이 한손에 제품꾸레미를 든 처녀를 옆에 달고 따라나왔다.
《처장동지, 우리 공장 제품도 보내주십시오.》
처녀가 청사안에서부터 처장을 쫓아나오면서 세번째로 청하는 소리였다.
《챠… 이런 억지라구야.》
처장은 공연히 안경을 추어올리며 짜증만 냈다.
《동문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소. 동무네 공장 제품은 하나도 합격될게 없단 말이요.》
그래도 처녀는 검질기게 달라붙었다.
《왜 합격될게 없단 말입니까? 국자 같은건 두번씩이나 도전시회에서 평가를 받은건데… 이거말입니다.》하며 처녀는 꾸레미에서 꺼낸 국자를 흔들어보이기까지 했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다른데서 더 훌륭한 국자를 내놓았소.》
《우리 국잔… 단단합니다.》
《지금은 단단한 동시에 맵시나는걸 좋아한단말이요.》
처장이 미진된것이 없는가 확인하려는데 처녀가 또 앞에 나섰다.
《처장동지, 우리 제품을 하나라도 출품하지 못하면 전 공장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어 그럽니다.》
《이 동무가 정말…》
처장은 안경을 번뜩이며 벌컥 성을 냈다.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은 전시회에 내놓을수 없단말이요.》
처장은 두부모 자르듯 하고나서 운전사에게 어서 출발하라고 하였다.
정문밖으로 멀어져가는 자동차를 안타까이 바라보던 처녀는 울상이 되여 그 자리에 못박힌듯 굳어져버렸다.
처녀는 장동탄광기계공장에서 온 장은주였다. 두해전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손으로 만든 인민소비품을 내놓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온 처녀였다.
은주는 자기네 공장 제품을 하나도 올려보내지 않은 처장에 대한 야속함을 금할수 없었다. 이제라도 처장한테 또 찾아들어가 목놓아울고싶은 심정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실상 곰곰히 생각해보면 처장을 야속하게 여길 근거는 하나도 없었다.
그가 보기에도 자기네 제품들은 다른데서 올라온 제품들보다 못한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런데 나는 왜 억지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검질기게 처장을 쫓아다니며 사정했던가.
순간 은주의 머리에는 처장의 목소리가 가슴을 찌르며 되살아났다.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은 전시회에 내놓을수 없단 말이요.》
은주는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비로소 자기의 행동이 경솔한것이였음을 깨닫게 된것이였다.
처장동지만 딱하게 만든 내가 어리석은 녀자였지. …
창피스러운 생각에 머리를 들수가 없게 된 은주는 제품꾸레미를 둘러메고 누가 볼세라 황황히 그 자리를 떠나고말았다. 이제는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은주는 어둠이 덮이기 시작한 길을 따라 맥없이 걸었다.
다른때 같으면 렬차를 타든 뻐스를 타든 빨리 공장으로 가고픈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힐 은주였건만 오늘은 서글픔에 잠겨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걷기만 하였다.
품들여 만들어온 제품들을 하나도 올려보내지 못한것으로 하여 가슴은 쓰리고 아팠던것이다.
공장의 명예를 떨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그였다.
그런데… 이렇게 되다니, 참고참아오던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그는 공장을 멀리 떠나 외진 곳에서 혼자 울고있는 자신의 처지가 기막혀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인민생활향상에 보탬이 될수 있는 가치있는 생활필수품을 만들겠다던 그 결심을 실현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야속함때문에 더 울었다.
한참 울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것 같았다. 그는 도간도간 흐느끼며 랭정하게 리성을 회복했다.
공장에서도 우리 수준이 도적으로 제일 뒤떨어졌다는것을 알게 되였으니 그것만 해도 이번에 빈걸음을 하지 않은것이다. 이렇게 된바엔 차라리 큰맘 먹고 우리 공장 수준을 한계단 더 도약시키는것이 옳은 처사가 아닐가. …
은주는 이렇게 자신을 위안하며 모두숨을 호ㅡ내그었다.
얼마후에는 언제 수심에 잠겼던가싶게 그의 보름달같은 얼굴에 생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던 그는 갑자기 환성을 올렸다.
《아이참, 별들이 참 많기도 하네.》
캄캄한 하늘에 별들이 총총했다. 그 반짝이는 별들이 마치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직장장이며 작업반원들의 정다운 눈빛같아보였다.
그들이 지금 내 소식을 안타까이 기다리고있겠는데…
그제서야 공장으로 빨리 돌아가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2
빵빵!…
은주는 문뜩 뒤에서 울려오는 경적소리에 돌아서며 손부터 쳐들었다. 전조등빛을 비치며 다가오는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승용차였다.
은주는 맥없이 들었던 손으로 전조등빛을 가리우며 길옆에 비켜섰다.
그런데 지나갈줄 알았던 승용차는 은주를 지나 좀 떨어진 곳에서 멎어섰다.
《은주동무 아니요?》
승용차문을 열고 누군가가 웨치는 소리에 은주는 깜짝 놀랐다. 그 목소리는 분명 귀에 익은 공장당비서의 목소리였던것이다.
《어마나, 비서동지!》
은주는 너무도 반가운김에 엎어질듯이 승용차앞으로 달려갔다.
《옳구만!》
차안에서 당비서와 지배인이 나와 그를 맞아주었다.
《공장까지 걸어가려고 했소?》
당비서가 웃으며 물었다.
《…》
《아니, 정말 걸어갈셈이요?》
차를 타지 않고 그대로 서있는 은주를 보며 당비서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전… 공장으로 돌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은주는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ㅡ 제품을 하나도 올려보내지 못한것때문에? 그럴수도 있는 일인데 뭘 그렇게까지… 자, 어서 타오.》
은주는 당비서가 너그럽게 등을 떠밀어서야 차에 올랐다. 하지만 푹신한 의자에 앉은 그는 여전히 죄스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에서 좀처럼 풀려날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도 아버지, 어머니앞에 2점을 맞은 시험지를 내놓고 무릎을 꿇고앉아 처벌을 기다리는 심정에 싸여 좀처럼 머리를 들지 못하고있었다.
당비서와 지배인도 한동안 사색에 잠겨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 말없는 침묵이 매질보다 더 아프게 가슴을 파고드는것이였다.
차라리 욕이라도 실컷 들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프지 않을것이다.
《지배인동지, 어찌하여 공장제품을 하나도 올려보내지 못한 저를 가만 내버려두십니까?》
그때에야 생각에서 깨여난듯 지배인이 자책에 젖은 어조로 말하였다.
《그게 어찌 동무의 잘못이겠소. 동무를 잘 도와주지 못한 내 잘못이 더 크오.》
지배인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퍼그나 갈리는 어조로 계속했다.
《그래서 되게 비판을 받았소. 인민소비품생산에서 제일 락후하다구…》
《그건… 우리들이 제구실을 못해서 그런건데…》
은주는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당비서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만하오. 잘못했으면 비판을 받아야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공장, 기업소들마다에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기지들을 꾸려주시고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키도록 이끌어주셨는데 우린 아직도 똑똑한 제품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잘못은 내게 있소.》
《비서동지…》
은주는 가슴을 울리는 당비서의 말에 충동을 느끼며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차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그 침묵을 깨뜨리려는듯 당비서가 지배인을 돌아보면서 말을 걸었다.
《지배인동무, 난 돌아가서 우리 일군들의 머리속에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는 제품생산에 대한 관점부터 바로 세우자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찬성입니다. 나도 결심이 확고해졌습니다.》
《확고해졌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선 요란한 소음과 주물직장의 모래먼지가 날리는 으슥진 곳에 있는 소비품생산기지를 공장구내에서 좋은 곳으로 옮겨주자는겁니다.》
《그러니 우린 지금까지 꼭같은 생각을 하고있었구려. 허허허…》
당비서와 지배인은 마주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은주동무, 어떻소?》
지배인이 은주를 보며 물었다.
은주는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저… 그리고 이번에 유휴자재를 리용하는 수지작업반을 하나 꾸렸으면 합니다.》
《수지작업반을?…》
지배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우리 공장이야 철제품이 기본인데 갑자기 수지는 또 뭐요?》
《그게 바로 낡은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침없이 대답하는 은주의 말에 지배인은 어이없다는듯 당비서를 보며 허거픈 웃음을 짓고말았다. 도대체 은주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였다. 당비서도 같은 심정이라는듯 《은주동무, 그 낡은 관점이 무엇인지 딱 찍어서 말해줄수 있겠소?》하고 물었다.
은주는 자신이 지나치게 응석을 부렸다는것을 느꼈는지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나직이 대답하였다.
《그건 사실 저를 비롯한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애써야 할 우리 직장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낡은 관점이기도 합니다.》
은주는 계속하여 이번 도적인 인민소비품전시회에 와서야 지금 인민소비품생산이 철제품으로부터 수지와 유리를 비롯한 각종 경질재료들을 배합하여 조화롭게 발전하고있다는것, 여기에 비해 보면 우리 공장이 얼마나 뒤떨어졌는가도 알게 된다고 하였다.
《그럼 실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은주는 제품꾸레미에서 두개의 국자(하나는 손잡이까지 철로 된 국자이고 하나는 색갈고운 수지로 손잡이를 한것)를 꺼내놓고 물었다.
《이 두개의 국자중에서 어느것이 마음에 듭니까?》
당비서와 지배인은 약속이나 한듯 수지손잡이가 달린 국자를 짚었다.
《보십시오. 이 국자가 이번에 우리 공장 제품을 밀어내고 전시회에 올라간 국자입니다.》
《음. 지배인동무, 우리 은주가 아주 손맥을 놓고 울고만 있는줄 알았는데 일어설 궁리를 하고있었구만요.》
국자를 만져보며 머리를 끄덕이던 당비서가 하는 말이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배인도 같은 생각이라는듯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국자를 만져보며 생각에 잠겼던 당비서가 새로운 결심이 선듯 지배인에게 물었다.
《지배인동무, 우리 공장의 인민소비품의 질이 도적으로 제일 뒤떨어진 원인이 명백해졌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어보나마나지요. 수지작업반을 내옵시다.》
《은주동무, 어떻소?》
《야, 고맙습니다.》
은주는 공장일군들앞이라는것도 잊고 어린애마냥 손벽까지 치며 좋아했다.
《고맙기까지야 뭐, 허허허…》
당비서는 흡족해진 표정으로 은주에게 물었다.
《동문 앉은자리에서 큰 문젤 해결했는데 거 뭐 좀 요기할게 없소?》
은주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못했다. 결김에 떠나다나니 아무런 준비도 못한것이였다.
그러는데 운전사가 미리 준비해두었던 모양인지 탄산단물과 과자봉지를 꺼내놓았다.
《어이구, 이거면 충분하오. 자, 어서 들기요.》
당비서는 인심좋은 아낙네마냥 해바라기모양을 본딴 과자를 한줌씩 나누어주고는 자기도 한개 입에 넣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은주동무, 이 해바라기과자를 보니 동무 할머니생각이 나는구만!》
은주는 감회어린 당비서의 말에 저도 모르게 입으로 가져가던 해바라기과자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아, 할머니…)
은주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은주의 할머니 조봉녀는 처녀시절부터 탄광기계공장에서 일하였다.
전후에 공장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봉녀가 만든 국자를 친히 보아주시면서 보기도 좋고 단단하게 만든 이 국자를 녀인들이 좋아할것이라고, 이렇게 제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로 생활필수품을 만드니 얼마나 좋은가고, 온 나라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이렇게 한가지씩만 만들어도 수천가지 인민소비품들이 쏟아져나올것이라고 못내 기뻐하시였던것이다.
그때 봉녀는 수령님앞에서 허물없이 국자에 상표를 붙이지 못했는데 이름을 지어달라는 청을 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해바라기》라는 이름을 써주시였다.
그때부터 봉녀는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처럼 인민생활향상에 한생을 바쳐왔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가 안계신다.
그러나 애기때부터 은주의 옷에 할머니가 정성들여 수를 놓아주군 했던 해바라기는 오늘도 은주의 가슴속에 영원한 꽃으로 피여있는것이다.
은주는 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할머니가 일하던 공장으로 배치받아온것이였다.
그때의 희망과 포부는 얼마나 컸던가.
은주는 차창밖으로 흘러지나가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추억의 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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