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 편 소 설

내가 찍은 사진

                                       박 일 심

(1)

 

바다가양식장에서 울리는 노래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애티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맞추어 하얀 갈매기들이 춤추듯 배전을 날아옌다.

황금빛모래불에 앉은 나에게는 끝없이 몰려오는 흰 파도도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모두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서 바다는 아름답다거나 신비롭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의미를 띠고있다. 저기에는 나의 어머니의 일터가 있고 어머니가 어린시절의 나보다 더 정을 기울이고 다심한 사랑을 쏟아부은 양식장이 있다.

유치원시절 집에 혼자 있는것이 싫다고 울며 떼질하는 이 딸을 두고 양식장으로 가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맞는 3. 8절날의 일은 더욱 잊혀지지 않고 가슴속에 새겨졌다.

×

겨울이 지나가고 봄에 접어들었건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전례없이 이해 겨울은 눈이 많이 와서인지 길옆에 군데군데 무져놓은 눈무지들이 녹을줄 몰랐다. 게다가 북방의 마지막추위는 한층 더 기승을 부렸다. 바다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두손을 외투주머니에 쿡 찌르고 인도로의 한쪽구석에서 총총히 걸음을 내짚었지만 눈길은 땅에 푹 박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들의 명절인 3. 8절을 맞으며 어머니를 멋지게 축하해주려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지만 방금전에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의 글줄이 자꾸 머리속에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보고싶은 아버지, 혼자서 얼마나 힘드시겠나요? 날씨가 급작스럽게 차지는데 기관지염이 또 도지진 않았나요? 나와 어머니는 별일없이 잘 지내요. 아버지가 보고싶어요. 빨리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곁에 가고싶어요. 자리를 잡으면 인차 편지를 보내주세요. …》

벌써 열한번째 편지다.

매번 펜을 들 때마다 마지막일거라고 기대해왔지만 끝내는 열번을 넘어서게 되였다.

나는 이번만은 정말 마지막일거라고 믿고싶었다. 그래서 나는 어서빨리 이사오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남모르게 그려보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얼마전에 도에 있는 관리국으로 소환되여 올라갔던것이다.

그때 나는 너무 기뻐 어머니에게 빨리 아버지를 따라가자고 졸라대였던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

생각에 잠겨 걷던 나는 집대문앞에서 멈춰섰다.

어느새 집에 왔는지 놀라왔다. 그보다 더 놀라운것은 늘 걸려있던 문이 열려있는것이였다.

아버지는 아닐거고 분명 어머니가 와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순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춤을 추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진듯 서버렸다.

어머니가 오늘만은 집으로 왔다는 기쁨에 가슴이 부풀었었는데 집안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너무도 조용했던것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여가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옆에 많은 책들을 이고 서있는 책상우에 베개통만 한 두터운 책을 절반쯤 펴놓은채로 쓰러진듯 엎드려 쪽잠에 든 어머니를 보는 순간 나는 호흡이 뚝 멎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왔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벌써 한두번째 보는것이 아니였지만 오늘은 별스럽게 마음이 서글퍼졌다.

몇년째 어머니가 아글타글 애쓰는 바다가양식이 또 속을 태운것이라고 생각하니 계속 실패만 하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가 안타까왔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곳 수산사업소 현장기사로 배치되여온 어머니는 바다나물양식을 연구하느라 10여년을 고심하고있었다. 그 나날들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무슨 힘으로 멀고 캄캄한 미궁과도 같은 과학의 길을 걸어왔는지 잘 리해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깨울세라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소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3. 8절을 맞는 어머니에게 제 손으로 차려드리고싶은 점심식사였다.

특별히 마음을 쓴것은 녹두지짐이였다. 그것은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였다. 그걸 위해 며칠전부터 준비해왔던것이다.

부족한것이 없는지 한참동안 이리저리 살펴보던 나는 조심히 입을 열어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의 손을 감싸쥐는 나의 손의 따뜻한 온기때문인지 인차 머리를 든 어머니는 따뜻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 은심이 왔니?》

나는 웃음을 담고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면서 밥상앞으로 갔다.

《어때요?》

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본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힘들지요? 오늘은 내가 어머니를 축하해드릴래요, 아버지를 대신해서.》

《고맙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더니 문득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은심아, 우리 함께 먹자꾸나. 녹두지짐이 참 맛있게 됐구나.》

어머니는 지짐을 맛보며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은 벌써 양식장에 가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그것을 느꼈다.

창문밖에서는 바람이 부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이렇게 바람이 센데… 이런 날엔 바다에 안나가도 되지 않나요?》

어머니는 벗어놓았던 작업복을 입었다. 그리고는 책상우에 펼쳐놓았던 두터운 책을 접어 옆구리에 꼈다.

《너도 알지 않니, 이런 날일수록 더 나가봐야 한다는걸… 은심아, 이 어머닐 리해해다오.》

어머니는 나를 뒤에 남기고 집을 나섰다.

나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언제까지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바래우고만 있을수 없었다.

나는 상우에 펴놓은 음식들을 차곡차곡 보자기에 싸들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나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나섰다.

집에서 어머니가 일하는 수산사업소 바다가양식장까지는 거리가 퍼그나 되였다.

오늘이 3. 8절이여서인지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것은 가는 길에 있는 소금바위때문이였다. 수산사업소로 가는 길 도래굽이에는 2층짜리아빠트만 한 큼직하고 널직한 바위가 있는데 이상스럽게도 다른 바위와는 달리 색갈이 하얀색이였다. 바위밑에는 잔잔한 물결이 출렁이고 옆에는 계단처럼 층층으로 올라가는 절벽이 있어 그 경치란 정말 멋있었다.

소금바위우에 올라서면 마치도 하늘에서 구름을 탄듯 하기도 했다.

소금바위옆에 다달은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리였다.

《자, 가만가만, 이젠 찍자요.》하는 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리였다.

연분홍저고리, 하늘색저고리 등 곱고고운 저고리들을 떨쳐입은 어머니들이 저마다 내기하듯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있었다.

《은심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한학급동무인 수경이가 가족들과 함께 오고있었다.

《수경이로구나.》

나는 수경을 알아보고 어줍게 웃었다.

수경은 내 손에 쥐여있는 꾸레미를 보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머니 안 오션?》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경은 어두워지는 내 얼굴표정을 살피더니 인차 밝은 얼굴로 내팔을 잡아끌었다.

《은심아, 우리 사진을 찍자, 어서. 사진기를 가져왔어.》

그는 막무가내로 나를 떠밀었다. 나는 그의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자니 어쩐지 마음이 서글퍼졌다.

나는 수경이가 못 견디게 부러웠다. 이런 행복스러운 날이 나와 나의 가정에는 올것 같지 않았다.

저 사진기를 빌려다 어머니의 모습을 찍어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어떻게 남의 사진기를…

나는 사진기를 빌려달라는 말이 나오는것을 꾹 삼키며 수경의 손을 잡았다.

《그럼 난 갈게.》

《잘 가. 꼭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

수경의 정겨운 눈길을 받으며 나는 서둘러 걸음을 다그쳤다.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에 남기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걸음은 마냥 무거워졌다.

나는 수산사업소에 들리지 않고 곧추 양식장이 있는 바다가로 나갔다.

양식장가까이에 오자 사람도 날려버릴것 같은 강한 바람이 덮쳐들었다. 또 바다가 성이 난것이다.

어릴적에 어머니는 파도가 높이 솟구칠 때면 바다가 자기를 버릴가봐 성이 난것이라고 말했었다. 아닌게아니라 집채같은 파도가 련이어 모래불우로 밀려왔다.

그런데 양식장 한가운데서 《영차, 영차.》하는 목소리들이 쉼없이 울렸다.

밀려드는 세찬 파도속에서 언뜻언뜻 작은 배 한척이 보였다.

멀리서도 배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알렸다.

나는 배전에 서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긍지에 넘친 행복스러운 모습이였다.

이런 날일수록 나가봐야 한다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배는 점점 가까이 왔다. 배가 기슭에 와닿자 사람들이 내렸다. 나는 바다물에 푹 젖은 작업복을 입은채로 기슭으로 걸어나오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웃고있었다.

그 웃음이 나의 심장을 울려주었다.

나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저었다. 활짝 피여난 꽃시절이 다시 온듯 밝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을 마음에 새겨넣으려 나는 보고 또 보았다. 그 고운 얼굴을 나는 꼭 사진에 남기고싶었다.

인간이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지금에야 똑똑히 알게 된것 같다. 바다물에 푹 젖어버린 어머니를 새삼스럽게 바라보던 3. 8절의 잊지 못할 그때로부터 며칠후 중학시절의 마지막 운동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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