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옛말로 될수 없는 이야기
박 경 원
(1)
오늘은 막내손자가 조국보위초소로 떠난다.
그를 바래주기 위해 역에 나왔던 나는 새 군복을 입어 더욱 의젓해진 손자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될만 한 이야기를 해주고싶었다.
그래서 시작한것이 이 이야기였다.
손자애는 자라면서 많이 들은 이야기였지만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정색해서 앉아있었다.
그도 그 이야기가 도저히 옛말로 될수 없는 이야기라는것을 알고있기때문이리라.
이제는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것은 우리 마을에서 실재한 이야기였다.
×
우리 마을뒤에 있는 산과 골짜기를 지금은 꿩산, 꿩골이라 부른다. 이름처럼 꿩이 많은것도 사실이지만 가을풍치가 수려해지면 산봉우리모양이 신통히도 꿩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운다.
하지만 내가 거기서 태여났을 때에는 도가산, 도가골로 불리웠다. 도가성을 가진 지주가 다 제 땅, 제 산이라고 하여 붙은 지명이였다.
이놈은 수많은 논과 과수원을 가지고도 성차지 않아 왜놈들이 들어오자 어떻게 주구노릇을 하였는지 동네앞 논벌들을 사들인다, 과수원을 넓힌다, 고래등같은 집을 짓는다 하더니 이 아근에선 제일 큰 지주가 되였다. 얼마나 약삭바른 놈이였는지 돈구멍수를 보는데서는 벼룩의 등에서 기름낼 정도로 솜씨를 발휘하는 교활한 놈이였다. 이런 지주놈의 집뒤에 있는 과수원에 언제부터인지 빨래방치만큼 굵은 구렝이가 나타났다.
그때부터 과수원주변에서 놀기 좋아하던 장난군애들은 싹 없어졌고 어른들도 산에 갈 때는 불편스러운대로 과수원을 멀리 에돌군 했었다.
이것을 알게 된 도가는 사색이 되여 며칠밤을 끙끙거리며 앓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제집에 마을의 수호신이 나타났다고 소문놓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며칠동안 도가네 커다란 대문짝으로 읍내 무당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얼마후에는 소작농들에게 꿩을 잡아 바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산신령께서 마을의 복을 지켜주고 단비를 내리게 하며 풍작바람을 몰아올 복구렝이님을 내려보내셨으니 농군들은 있는 정성을 다해 섬기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구렝이는 장끼만 먹으니 모두 장끼를 잡아다 바치라는것이였다.
어느날 나의 아버지는 장끼를 잡지 못해 할수없이 까투리를 잡아바치며 사정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도가는 대뜸 《장끼를 잡아바치라는데 까투리가 무어냐. 이 부정탈 놈같으니…》라고 야단치더니 까투리를 도로 던져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복구렝이님을 노엽힌 농군들은 리유불문하고 땅을 잡아떼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버지는 별수없이 빚을 내여 읍장마당까지 나가 장끼를 사다바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그 장끼는 분명 아버지가 잡아서 바쳤던 장끼였던것이다. 때는 겨울이라 아버지는 눈을 펀히 뜨고 이 장끼를 벌써 몇번이나 다시 사다바쳤다. 매번 살 때마다 값은 더 비싸게 치르었다. 다른 소작농들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였다. 도가의 배만 잔뜩 불려주는줄 알면서도 말은 못하고 땅에 매인 인생들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사다바쳤던것이다.
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세금과 함께 종곡값, 소품값, 장리쌀값 등 이런 명목에 리자까지 붙어 모두 합치면 한해농사는 알짜 맨손바닥만 남아서 또다시 새 빚을 지게 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이 오는것을 도리여 무서워했던것이다.
여기다 구렝이의 성화까지 받으니 마을사람들의 고통은 더해만 갔다.
구렝이는 도가의 심보를 닮아서인지 점점 못되게 놀기 시작했다. 누워서 잘 대접받는데도 무엇이 못마땅한지 소리없이 담장을 넘어와서는 처음엔 주변집들의 닭알을 꿀꺽하고 다음번엔 병아리들을 꿀꺽하고 이렇게 나날이 어벌이 커지자 씨암닭까지 꿀꺽 삼켰다. 결국 장끼만 잡수는 파충류가 아니라는걸 시인하는 격이였다.
한번은 그놈이 우리 집 황소를 꿀꺽한 일도 있었다. 잘 믿어지지 않지만 그것은 사실이였다.
그 황소로 말하면 아버지가 몇해동안 고생을 하며 도가네 소들을 먹여준 대가로 받은 송아지(병들어 죽기 직전의 송아지였다.)였는데 온 가족이 달라붙어 애지중지한 덕에 정말 멋진 황소로 되였었다. 도가네처럼 매일 콩여물을 먹인다, 밭갈이전에는 개를 잡아먹인다, 찰떡을 먹인다 하는 일은 없었지만 아버지, 어머니뿐아니라 우리 자식들도 온갖 성의를 다하여 매일 소몸을 씻어준다, 빗질을 해준다, 장마철엔 미리 베여놓았던 좋은 풀을 먹인다 하면서 극성이였다. 그래서인지 달구지를 멘 첫해에 벌써 보리단을 산같이 싣고도 씨엉씨엉 걸었다. 몸은 비록 여물지 못했지만 도가네소 못지 않은 골격과 힘을 지니고있었다.
그러니 좋은것을 보면 밤잠을 잃는다는 도가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배가 아파나고 심술이 난 도가의 고민은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만일 우리 소가 동네 밭갈이까지 하기 시작하면 소품값이라는 소득이 덜어지게 되니 도가로서는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었다.
어느날 새벽 아버지는 타작한 보리가마니들을 싣고 도가네 창고로 날라가게 되였는데 그 육실할 구렝이가 길녘의 풀숲에 무엇을 노리고 숨어있었는지 꼬리부분만 길에 드러나있었다.
도가네 집근처에 이르자 아버지는 담배불을 붙이느라 달구지뒤에 서있었기때문에 길에 드러난 구렝이꼬리를 보지 못하였다. 그때 마을사람들에게는 도가네 집에 들어갈 때에는 구렝이때문에 담배불을 붙여무는 습관이 있었다.
담배연기를 한모금 길게 들이키려는데 앞서 가던 달구지바퀴에서 쩍 소리가 나면서 구렝이가 한길이나 뛰여오르더니 급히 풀숲으로 사라지는것이였다.
일이 안될 때라 이 광경을 지켜본 도가와 그 녀편네가 대문밖으로 뛰쳐나오며 야단을 쳤다.
《복구렝이님이 올풍작을 점지해주시려고 새벽들판을 나서시였는데 네놈이 감히 판을 망쳐? 몹쓸 놈! 구렝이님이 대단히 놀라셨으니 이제 액운이 온 마을을 휩쓸어 집집엔 날벼락이 떨어지고 들판엔 왕가물이 들이닥칠게다. 당장 소를 잡아 제를 올려 구렝이님의 노여움을 풀어야겠다.》
이렇게 되여 보리가마니를 싣고 들어간 황소는 그 자리에서 구렝이의 노여움을 푸는 제물이 되고말았다. 진짜 날벼락이 떨어졌다 해도 이렇게까지는 억울하지 않았을것이다. 몇해동안 애지중지 명줄을 걸고 키운 황소를 눈을 시퍼렇게 뜨고 빼앗겼으니 이런 원통한 일이 또 어데 있을것인가. 구렝이보다 더 검질기고 악착한 지주놈을 이길수가 없어 아버지는 이렇게 소를 빼앗겼던것이다.
×
우리 황소를 먹어치운 뒤 도가는 구렝이를 더욱 신성시할 목적으로 《복구렝이집》이란것까지 덩실하게 지어놓고 온갖 미신적인 일들을 벌려 농군들의 등가죽을 벗겨냈다.
어느날 면에 있는 왜놈경찰 몇놈이 꿩사냥을 한다며 멋진 사냥총까지 들고 도가네 집에 몰려들었다. 그날 산기슭에서 몇방의 총성이 울리는가싶더니 인차 사과알들이 주렁진 과수원에서 술놀이가 벌어졌다.
마을애들은 왜놈들이 마구 쏘아댄 산탄에 맞고 멀리 가 떨어졌거나 빗맞고 얼친 꿩이라도 주을가 하여 잡초무성한 산기슭을 따라가며 훑기 시작했다.
나와 형도 그들속에 끼워 잡관목들과 풀숲을 열심히 헤집기 시작했다.
산에서 내려다보니 술취한 왜놈들이 왜가리청으로 저희네 노래가락을 뽑아대고있었는데 꼬치불고기 내는 냄새가 죽여줄 지경으로 빈 창자를 뒤집고있어 자꾸만 눈길이 쏠리였다.
(새끼꿩이라도 한마리 걸려들었으면…)
이런 생각에 잠겨 깊은 수풀속을 샅샅이 훑어보며 눈길을 돌리던 나는 그만 악ㅡ 소리를 지르며 뒤로 벌렁 자빠졌다. 바로 큰 나무밑의 수풀속에서 흉칙스럽게 생긴 구렝이가 기여가고있었다.
내 비명소리를 듣고 형과 애들이 모여들었다.
구렝이가 접어드는 나무가지우에 바로 부엉이 한마리가 앉아있었다. 낮에는 잘 못보는 부엉이였지만 자기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촉했는지 왕눈을 부릅뜬채 불안스레 주위를 살피고있었다.
부엉이가 자칫하다가는 애매하게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있는데 뜻밖에도 예상을 뒤집는 일이 벌어졌다. 부엉이가 맹금답게 공격해오는 구렝이를 정면으로 날아가 덮치더니 억센 발톱으로 구렝이를 짓누르고 사나운 부리로 세괃게 짓쫏는것이였다.
우리는 그제야 환성을 올리였다.
그통에 과수원에서 술추렴을 해대던 놈들이 이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엉이와 구렝이의 싸움은 더욱 치렬해졌다.
이번엔 구렝이가 부엉이의 날개짬으로 감겨돌며 긴 몸통으로 꽁꽁 묶어놓고 사정없이 조이기 시작했다.
웬일인가 하여 몰려든 놈들은 그 모양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산신령께서 복구렝이에게 부엉이를 제물로 하사하셨군요, 으하하.》
《에… 이젠 저 부엉이도… 끝장이다.》하고 털부숭이왜놈이 왜가리청으로 지껄였다.
(불쌍한 부엉이야, 차라리 훨훨 날아가기라도 하려무나.)
우리는 안타깝게 속으로 간청했다.
부엉이는 무슨 궁리를 하는지 꼼짝 안하고 구렝이가 하자는대로 이리 굴고 저리 굴기만 하였다.
그때 갑자기 부엉이의 날카로운 부리가 구렝이의 눈을 푹 찔렀다. 대번에 눈깔이 튀여나오고 피가 랑자해졌는데 그때까지도 구렝이는 부엉이를 조이고 풀어놓지 않고있었다.
부엉이는 련속 공격을 가했다. 필사적인 공격이였다.
마침내 구렝이는 대가리를 떨구고 감았던 몸을 서서히 풀기 시작하였다.
드디여 구렝이에게서 풀려난 부엉이는 승리자연한 자세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부엉이가 이겼다ㅡ 만세!ㅡ》
한 아이가 이렇게 소리치자 다른 아이들도 떠들썩 만세를 불렀다. 모여들었던 사람들도 통쾌해하며 속시원한 말들을 나직이 주고받았다.
《어휴, 부엉이가 장끼들의 한을 풀어주었구나.》
《이젠 장끼값이란 말도 없어지게 됐수다.》
부엉이가 승리자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려는듯 우리들의 머리우를 몇바퀴 돌더니 산마루쪽으로 날아올랐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도가가 술먹던 장소로 달려가 사냥총을 찾아들었다. 왜놈경찰들도 덩달아 보총을 찾아들고 부엉이를 향하여 헤덤비며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술을 처먹은 놈들이 그것도 공중목표를 바로 겨냥할리가 없었다.
부엉이가 산너머로 사라지자 공중으로 날아가던 총알이 불시에 우리에게로 날아왔다. 구렝이를 잃은 도가놈이 분풀이로 쏜것이였다. 형을 비롯하여 몰켜있던 애들이 몇명 쓰러졌다. 형은 피범벅이 되여 아예 숨소리도 없었고 다른 애들은 파편이 박힌 부위를 잡고 나딩굴었다.
순식간에 골안은 애들의 울음바다로 변하였다.
어른들이 달려와 항의를 들이대였다. 그들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그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아마 도가네 집이 생겨 그런 싸움은 처음이였을것이다.
싸움결과 세상에 없었던 구렝이재판이라는것이 생겨났다. 내용인즉 피해자가 구렝이라는것이였다.
사냥총에 맞은 애들은 도가가 사냥한 꿩을 도적질하려고 몰래 기여들었다가 봉변을 당했으니 본인불찰이고 도가는 꿩사냥을 하다가 동네의 수호신을 불행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부엉이를 겨냥하고 총을 쏜 우발적인 사고이므로 무죄라는것이였다. 어른들은 제 자식들의 잘못을 모르고 분별없이 자기들을 먹여살리는 도주사어른께 몰려들어 배은망덕한 란동을 부린데다 더우기는 일본경찰들과 충돌하였기때문에 죄가 엄중해서 법적제재를 받아야 한다는것이였다. 특히 맏아들을 죽인 원쑤를 복수하느라 도가의 목덜미를 잡고 멨다꽂은 나의 아버지는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그후 왜놈들은 마을사람들의 계속되는 항의투쟁에 어쩔수 없어 잡아가둔 사람들을 전부 내놓았지만 우리 아버지만은 나오지 못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왜놈들은 아버지가 법정에서까지 일본재판관들과 경찰들의 천만부당한 공판놀음을 단죄한 주동분자라 하여 중세기적고문을 들이대다가 그만 아버지가 잘못되자 저들의 만행이 드러날가봐 이름모를 깊은 산골짜기에 몰래 매장해치웠다는것이였다.
석방된 사람들도 인차 징용, 징병령장이 떨어져 어디론가 끌려갔는데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한편 살인자인 도가놈은 재판에 거액의 돈을 들이민 봉창을 한다면서 뒤산에 복구렝이묘를 크게 만든다, 비석을 세운다, 제를 지낸다 하면서 더욱 악랄한 방법으로 농민들의 등살을 벗겨냈다.
그리고 자기 비위에 거슬리거나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땅과 집을 빼앗았다. 그 첫째 대상이 우리 집이였다. 아버지를 잃고 형도 잃은데다 소도 땅도 집도 다 빼앗겨 알몸으로 한지에 나앉게 되였는데 도가놈은 아직도 빚이 남아있다며 당장 돈을 못 물면 나를 머슴으로 끌고가겠다고 호통쳤다. 겨우 하나 남은 살붙이마저 도가놈에게 빼앗길수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한밤중에 나와 함께 정든 고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왜놈들과 그 주구들이 살판치는 세상이 보기 싫어 어머니와 나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정처없이 발길이 닿는대로 가다가 대낮에도 해빛 한점 들어오기 힘든 수림이 울창한 골짜기에서 우리는 맞춤한 동굴을 발견하고 거기에 짐을 풀었다. 밤이면 굴앞까지 온 굶주린 맹수들의 울부짖음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지군 하였다. 첫날엔 너무 무서워 전혀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 아침에 태여나 숨을 쉬는것이 정말 기적같았다. 나흘후 한 포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굶어죽던가, 얼어죽던가, 승냥이밥이 되였을것이다. 그 포수를 통해 알게 되였는데 우리가 살던 굴도 한때는 범이 살던 굴이였다는것이다.
어머니는 그 말에 놀라기는 하였지만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범이 아무리 무섭다 한들 왜놈이나 지주놈에게 비기겠어요. 왜놈세상에선 머슴살이를 하든 징용살이를 하든 죽기는 매 한가지인데 그럴바에는 이 산속에서 마음편히 사는게 더 좋아요.》
어머니의 말처럼 왜놈세상은 험악한 세상이였다. 한쪽에선 집이 없어 범굴에서 살고 다른쪽에선 구렝이에게까지 큰집을 지어주고 죽은 다음엔 요란한 봉분에 비문까지 새겼으니 그야말로 흉악한 세상이였다.
아마 나라가 해방되지 않았더라면 우린 그 산속에서 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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