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7호에 실린 글
수 필
세월은 흘러도
주 송 정
무릇 세월의 흐름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많은것을 잊혀버리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천만년 흘러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것, 잊어서는 안되는것이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평범하게 흘러가는 생활속에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얼마전 내가 작업반동무들과 함께 대동강과수종합농장에 사과나무를 심을 구뎅이를 파러 나갔을 때에 있은 일이다.
우리 당의 원대한 구상속에 펼쳐지는 대동강과수종합농장!
그날 우리는 현장에 도착하기 바쁘게 저마다 자리를 잡고 경쟁이나 하듯 사과나무구뎅이를 파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조되는 열의속에 어느덧 점심시간을 가까이 한 때였다.
《동무들, 여길 좀 보라구.》
곡괭이를 들고 앞장에서 땅을 파나가던 한동무가 큰소리로 말했다.
일손을 멈춘 동무들이 하나, 둘 그에게로 다가갔다. 호기심이 동한 나도 삽을 놓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한동무앞으로 다가가니 그의 앞에는 금방 땅에서 파내놓은 흙묻은 헌 쇠붙이가 놓여있었다.
《아니, 이건 파철이구만 뭐. 난 또 무슨 굉장한 보물이라도 얻었다구…》
김동무가 어처구니없어서인지 한마디 했다.
《그러게 말이야.》하며 그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는 동무들도 있었고 또 무엇인가 생각깊이 파철을 들여다보는 동무들도 있었다.
이때 80나이는 잘될 로인이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논밭이 사과밭으로 전변되는 희한한 현실이 놀라와 매일이다싶이 여기에 나와본다는 로인이였다.
《허, 이놈의 폭탄파편쪼각이 아직두 나타나고있구만.》
로인이 대뜸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폭탄파편쪼각이라는 말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있는 우리들을 둘러보던 로인은 의미있게 머리를 끄떡이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고장에 태를 묻고 자라 해방이 되여 분여받은 땅에서 기쁨과 행복의 로적가리를 쌓아올리던 그는 미제원쑤들이 침략의 불구름을 몰아오자 서슴없이 전선에 탄원하였다.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를 타승하고 고향에 돌아와보니 마을은 미제원쑤놈들의 폭격에 무참히 파괴되여 형체만이 남아있었다.
전후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그와 마을사람들은 고향마을을 다시 일떠세우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살림집을 일떠세우고 논밭의 폭탄구뎅이들을 메우고…
그때 걷어낸 파편들이 자그마한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며 잠시 말없이 먼 하늘가를 응시하던 로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한해두해 세월이 흘러 해마다 논밭에서 보이는 족족 우리는 폭탄파편쪼각들을 걷어냈지. 그런데 아직두 이것이 땅에 묻혀있었구만.》
로인의 말은 끝났으나 우리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무거운 침묵을 깨치며 한동무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들, 난 이게 단순한 파철이 아니라 미제원쑤놈들이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원한의 상처를 남겨놓은 죄악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네.》
미제원쑤놈들이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원한의 상처를 남겨놓은 죄악의 유물!
한동무의 말이 옳다. 지난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가 우리 인민에게 들씌운 그 불행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동무들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지난 3월 8일에 있은 일이 문득 생각났다.
여느날보다 일찍 잠을 깬 내가 잠자리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래방에서 두런두런하더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오늘 아침은 내가 음식솜씨를 보이겠소.》
뒤이어 어머니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됐어요. 강의안준비때문에 시간이 모자랄텐데 내가 어련히 하지 않을라구요.》
그러자 좀전보다 더 높아진 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두 오늘이야 3. 8국제부녀절인데 남편의 성의를 받아줘야 할게 아니요.》
《여보, 좀 조용조용 말하라요. 애들이 깨겠어요. 전 그저 그 마음이면 돼요.》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아버지의 시간을 귀중히 여겨주는 어머니, 어머니를 위해주는 아버지…
잠자리에 누워 아버지, 어머니의 행복한 싱갱이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집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라고.
결국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지고말았다.
그런데 이날 온 겨레와 세계 진보적인류의 거듭되는 항의규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키 리졸브》,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는 길에 들어선 미제와 남조선당국자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비약의 폭풍을 일으킬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보도가 방송으로 울려퍼졌다.
3. 8국제부녀절에 굳이 군사연습을 일으킨 미제!
앞에서는 《인권》이요, 《평화》요 떠드는 미제야말로 얼마나 파렴치한 인권과 평화의 유린자인가 하는 생각이 하루종일 나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평화의 파괴자들이 이 땅에 남긴 죄악의 유물을 보니 가슴속의 피가 끓어올랐다.
미제의 죄악의 유물―폭탄파편쪼각은 나에게 이렇게 웨치는것 같았다.
이 땅에 흐르는 날과 달속에 기쁨과 행복이 넘쳐흘러도 우리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것은 우리의 행복을 넘보는 침략의 무리가 저 남녘땅에서 이 땅우에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있다는것을, 이것을 잠시나마 잊고 산다면 우리는 내 조국의 천대만대를 잃게 된다는것을.
이때 한동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우리의 행복을 노리는 미제원쑤놈들이 보란듯이 인민의 행복을 꽃피워가는 사과나무구뎅이 파기에 우리 모든 힘을 다 바쳐가자구.》
그의 말에 호응하며 동무들은 작업장으로 향했다.
나도 육박의 총창인양 다시 삽을 틀어잡고 힘있게 삽질을 시작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옥류1동 50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