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7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덕삼아바이

정 연 구

 

전선상공에서 미친듯이 맴돌아치던 적기편대가 직동령계선의 아군고사포화력에 쫓기며 황급히 전선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초겨울의 싸늘한 서풍이 불구름 타래치는 산릉선막바지로 불에 타다남은 앙상한 떨기나무밑에 깔린 몇잎 안되는 락엽까지 깡그리 휘몰아간다.

련대지휘부에서 독립소대장으로 임명된 김명남소위는 소대가 차지하고있는 돌출고지로 가고있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출신이였다. 보통체구에 반짝이는 가죽혁띠를 꽉 조여맨 명남은 팔을 가볍게 내저으며 새초깔린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음을 다그쳤다. 그의 뒤에는 자그마한 어깨에 큼직한 배낭을 등에 진 나어린 기통수가 열심히 따라서고있었다. 아이가 아버지의 큰 가방을 지고다닌다는 익살군들의 롱소리를 듣군 하지만 동작이 빠르고 여기저기에 소문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하여 《꼬마홍길동》으로 통하는 전사다. 오늘도 대대와 중대들에 배포되는 우편물을 전달하는 길에 자진하여 명남소대장의 길안내를 맡아나섰다.

이날따라 바람질이 세찼다. 휙휙 불어치는 회오리바람에 듬성듬성 뿌리박은 가둑나무들이 잎 떨어진 아지들을 휘저으며 솨솨 설레였다.

《돌출고지가 아직도 머오?》

명남은 이제 만나게 될 소대전사들의 모습을 미리 상상해보며 넌지시 물었다.

《이제 시작인걸요. 참, 가는 길에 공병소대에 들려봅시다. 재령아바이가 아직 거기에 있을테니까요.》

《재령아바이라니?》

《돌출고지소대 좌상아바이입니다. 아침에 련대후방부에서 만났는데 공병소대에 구들을 놓아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구들을?! 시간이 바쁜데…》

명남은 손목시계에 눈길을 주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두 거기서 마차를 타고가는게 더 빠를겁니다. 아바인 마사원일도 겸했으니까요. 아침에 마차를 몰고 공병소대에 가는걸 제가 봤습니다.》

꼬마기통수는 땀흐르는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고나서 싱긋이 웃어보인다.

《어쨌든 가기요.》

명남은 성큼성큼 앞서걸었다.

고개를 넘어서니 저쪽산비탈을 등지고 몇채의 반토굴병실이 어렴풋이 보였다.

《재령아바이가 구들놓는 솜씨를 이제 한번 보십시오. 기가 딱 막힙니다. 부대장동진 그저 구들놓는 일만 생기면 늘 재령아바이를 찾군 합니다.

부대병실이나 식당들에 아바이손길이 미치지 않은데가 별반 없으니까요.》

그는 마치 제가 배워준 재간이라도 한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구들놓는 아바이라…)

명남은 밤낮 피흘리며 가렬한 전투를 벌리고있는 이 준엄한 때에 구들이나 놓아주고있다는 재령아바이라는 대원이 어쩐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그의 군복안주머니에는 대학으로 떠나던 날 고향의 한 처녀가 기념으로 준 만년필이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미제를 쳐이긴 전승의 그날 정든 교정에 다시 돌아가 아름다운 희망과 리상을 더 활짝 꽃피우리라 청춘의 더운 피를 부글부글 끓이고있는 명남이고보면 더욱 그러하였다.

명남의 기분은 이것으로 하여 흐려졌다.

밋밋하게 경사진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키높은 아름드리 느티나무옆에 반토굴식으로 지은 집이 있었다. 열려진 문앞에는 여러 병사들이 모여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떠들어댄다. 부엌에서는 어리무던해보이는 나이지숙한 병사가 방금 물매질을 끝낸듯 한 부뚜막우에 커다란 가마를 올려놓고있었다. 그가 바로 재령아바이라고 했다.

《제가 나오게 하겠습니다.》

너럭바위우에 배낭을 벗어놓은 꼬마기통수가 명남에게 말했다.

《가만, 일이 거의 끝난것 같은데 잠간 기다려봅시다.》

명남은 어느새 문쪽으로 다가가는 꼬마기통수를 멈춰세웠다.

《자 창수, 얼른 불을 지펴보게.》

재령아바이가 누군가에게 시키는 말이였다. 그의 말에 동년배쯤 되였을 한 대원이 바싹 마른 나무가지들을 아궁이에 쓸어넣고는 성냥불을 켜댄다. 그러자 아궁이안에 내굴만 꽉 차며 서리는듯 하더니 뒤이어 뻘건 불길이 확 일며 구들고래로 날아들었다.

《그러면 그렇겠지.》

재령아바이 리덕삼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거 신통한데…》

《이거 낯가림을 하는게 아니야?》

지켜보던 군인들이 한마디씩 했다.

《여보게 동갑이, 소대방식상학때두 역시 변함이 없으렷다?》

창수라는 대원이 좀 미타한 눈길로 아궁이를 들여다보고나서 그루를 박아 물었다.

《하긴… 너무 빨아서 걱정이겠지. 그건 그렇구. 고쳐준 품값이 찹쌀 대두 서말값은 될가?》

《아따 이 친구, 방식상학이나 넘기구 떡을 치든 뺨을 치든 해봅세.》

《뭐, 빰을 쳐?! 허허.》

덕삼은 어처구니없다는듯 고개를 젖히며 웃고만다. 코마루서부터 아래로 뿌려진 알금알금한 몇개의 마마자국과 눈귀에 부채살마냥 퍼진 잔주름으로 하여 아바이병사는 첫눈에도 후더분한 인상을 주었다.

명남은 아까부터 그가 한고장사람인줄은 알았으나 어딘가 퍽 낯익어보여 고개를 기웃하며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 보았을가?)

《이젠 끝낸것 같습니다.》

꼬마기통수는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군인들속을 바람처럼 새여들어가 그의 앞에 떡 마주선다.

《응?! 아침에 본 〈꼬마홍길동〉이 어느새 예까지 왔나.》

리덕삼의 놀란듯 한 목소리이다.

《제가 왜 찾아왔는지 맞춰보십시오.》

《글쎄… 아마 우리 옥금이한테서 온 편질 물어왔겠지.》

《체, 그저 옥금이 편지밖에 모르시네.》

꼬마기통수는 비죽이 아래입술을 내민다.

(아, 그럼 옥금동무의 아버지!)

순간 명남의 뇌리에는 몇해전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며 하나하나 되새겨졌다.

그들이 고중을 졸업하기 전 학교에서는 첫 지방주권기관 대의원선거의 날을 앞두고 연예대를 무었었다. 연예대에서 옥금은 노래를 잘 불러 인기가 대단했다. 책임자였던 명남은 어느날 공연시간이 가깝도록 나타나지 않는 옥금이를 기다리다못해 그의 집으로 찾아갔었다.

《다 큰 계집애가 밤마다 싸다니며 〈날라리〉를 부린다니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말이다.》

집안에서 거치른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아버지, 그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돌린 소리예요. 아이 속상해. 책임자동무가 얼마나 기다릴가, 전 가요.》

옥금이는 급하게 문을 열고 나섰다. 보매 옥금이가 부르는 노래와 우리 연예대활동을 놓고 아버지가 잘못 생각하는듯 했다.

딸을 따라 문밖에 나서던 그의 아버지가 마당한귀에 머뭇거리며 서있는 명남이를 발견했을 때는 일이 더욱 난처해졌다.

《임자가 책임자라는 젊은이인가? 우리 앨 〈날라리〉판에 끌어넣을 생각 말구 썩 사라지게!》

명남은 전혀 뜻밖의 일이라 대꾸 한마디 못한채 물러서고말았다. 어스름이 두사람의 얼굴을 가리워준것이 다행스러웠다.

《동무 아버진 정말 무섭구만.》

명남은 옥금이와 저녁길을 걸으며 악의없이 빈정댔다.

《호호… 아까 겁이 났댔나요? 우리 아버진 세상 어진분이예요.》

옥금은 멍해 어찌할바를 몰라하던 명남이의 모습이 다시금 생각키웠던지 허리를 굽히며 까르르 웃어댄다. 그때 아래학년이였던 옥금은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처녀였다.…

잊을수 없는 추억이였다.

그런 옥금이의 아버지를 여기서 만나다니.

《아바이네 따님이 인물곱고 노래도 잘 불러 온 군에 소문난 처녀라지요?》

꼬마기통수가 호기심어린 어조로 묻는다.

《허, 글쎄…》

리덕삼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암, 여부가 있나. 금강산칠선녀가 찾아와서 제발 함께 가자고 통사정을 했다는데…》

창수가 능청스럽게 끼여들었다.

《팔선녀면 팔선녀겠지 칠선녀란 또 무슨 소리예요?》

누군가가 면박을 주는 소리다.

《아따, 저렇게 깜깜이라구야. 선녀 하나는 더꺼머리나무군총각이 데려간 후니까 남은게 칠선녀가 아니겠나.》

《거 그럴듯 하군.》

《그럴듯 하다니… 옥금동무가 대신 그 자리에 배치장을 받은지 언제게 아직 칠선녀소리요?》

또 다른 대원이 한수 더 뜨는 말이였다.

《그러믄야 이젠 팔선녀가 됐겠지.》

《하하하…》

전사들은 웃음을 터친다.

《칠선녀가 결국 대렬보충하러 왔댔군. 아바이, 이번엔 더꺼머리나무군총각보다 총대를 쥔 이 화선의 병사가 어떻습니까? 내 비록 한쪽 귀뿌리는 떨어져나갔어두 사내로서야…》

귀밑에 대추씨만 한 흉터가 나있는 분대장 하나가 비위좋게 청을 댄다.

《자네가?! 늦었네. 그 앤 약속한 사람이 있네.》

《벌써요?!》

《그럼. 그게 아마 첫 민주선거때였지. 난 그리 대단치는 않아두 가벼운 실수를 했었네. 우리 애가 연예대루 저녁마다 선전실에 나가는걸 옛날 날라리패로 생각하구 그만 같이 다니던 민청위원장총각에게 험담을 했으니… 그 젊은이가 평양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에 간 뒤에도 편지거래가 잦은 모양인데 아무래도 눈치가 다르더란 말일세. 이제 전쟁이 끝나면 전선에 나갔던 그 애들도 돌아오고… 그러면 내손으로 새집을 지어 뜨끈뜨끈하게 구들도 놓아주려네. 오래잖아 그 구들우에서 손자녀석들이 벌렁벌렁 기여다닐 생각을 하면… 헛허허.》

덕삼은 자못 만족하듯 껄껄 웃는다.

《이거 그런 신랑감이 있는줄도 모르구 난…》

분대장이 뒤머리를 긁으며 어줍게 중얼거리는 바람에 또다시 즐거운 웃음이 터졌다.

《아, 내가 이야기바람에… 아바이네 소대장으로 임명받은 소위동지와 함께 왔어요.》

꼬마기통수가 이러며 문밖에 서있는 명남을 돌아보았다.

《아니, 뭐라구… 그 말을 왜 이제야 해.》

아바이는 자리에서 닁큼 일어나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황황히 문밖을 나섰다.

《소대장동지, 상등병 리덕삼…》

《예, 됐습니다. 손을 내리십시오.》

명남은 차렷자세로 경례를 붙이는 솔뚜껑같이 큼직한 그의 손을 내려주었다.

덕삼은 명남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듯 했다. 그는 겨울솜옷을 비롯한 소대의 후방물자를 실은 마차를 다시금 꼼꼼히 손질하고나서 공병소대에 작별을 청했다.

《소대장동무도 새로 왔겠다 내 여기서 한상 잘 차리지.》

창수가 덕삼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허허, 고맙긴 한데 한가지 근심이 돼서…》

《근심은 또 무슨…》

《자네가 변변찮은 상까지 치리구 빈손 터는걸 내 어떻게 봐주겠나.》

창수가 그와의 말씨름에는 두손 들었다는듯 손을 흔들었다.

《자 동갑이, 품값은 전쟁후에 받을셈치구 잘 있게나. 난 가네.》

덕삼은 허공에 긴 채찍을 내둘러 솜씨있게 딱 소리를 냈다.

《쩌!》

명남을 태운 마차는 돌출고지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

 

김명남소위가 소대에 온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명남은 환경에도 익숙됐고 대원들과도 친숙해졌다.

그는 지금 은페호에서 손목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서성거리고있었다. 탄약을 받으러 부대로 간 덕삼이 돌아올 시간이 퍼그나 지났기때문이였다.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은페호에서 나가려고 했다. 이때 돌출고지 육박전투에서 미군 여섯놈을 받아넘겨 머리받기로 유명해진 1분대장 정철이의 장대한 몸집이 은페호 출입구를 메우며 들어섰다.

《소대장동지,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덕삼아바이에 대한 제 걱정이 공연한게 아닙니다. 원래 동작이 느리다는건…》

그는 들어서자바람으로 푸념을 쏟았다.

《제가 마주 나가보랍니까?》

소대장은 망설였다. 그러지 않아도 탄약을 받아오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쏙새골 쏘구역을 비롯한 몇개의 위험구역을 뚫고지나야 하는것만큼 민첩하고 책임성있는 대원이 필요했기때문이였다. 이때 리덕삼이 자진해나섰다. 정철분대장은 반대했으나 명남은 그를 믿고 승낙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늦어질줄이야.…

(내가 분대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너무 주관에 빠진건 아닌가. 아니,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좀더 기다려봅시다.》

명남은 급해지는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침착하게 말하였다.

《소대장동진 몰라서 그럽니다. 그 재령아바이가 몸이 무겁다는건, 한번은…》하며 정철은 기상동작을 느리게 하던 아바이의 이야기를 했다.

잠시후 은페호밖에 나갔던 정철이 되돌아오며 소리쳤다.

《저기 오는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명남은 은페호에서 나왔다. 산밑을 살펴보니 멀리 산비탈을 에돌아 달려오는 마차가 보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리덕삼이 땀을 철철 흘리며 탄약상자 하나를 메고 성큼성큼 올라왔다.

《소위동지, 상등병 리덕삼 명령을 수행하고…》

《쉬엿하십시오.》

명남은 얼른 다가서며 모자채양옆에 서툴게 올려붙인 그의 손을 내리웠다.

덕삼이 내려놓았던 상자를 정철이가 넌떡 들어 어깨에 메였다.

《재령아바이―》

《아바이.》

소대원들이 나들이갔다온 아버지를 대하듯 반갑게 그를 둘러쌌다. 아바이를 보며 기뻐하는 대원들을 보는 명남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그들은 마차에서 제가끔 상자 하나씩 내리였다.

명남은 마차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두서없이 물었다.

《쏙새골에서 지체된 모양이군요.》

《거기선 아무 일도 없었수다. 버들골다리가 갈 때는 일없었는데 돌아올 때 보니 그만 폭격에 파괴되였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아바이, 이건 뭡니까?》

나어린 전사 하나가 마차에 있는 마대를 들어보며 묻는 말이였다.

《어허― 꼬매가 눈이 밝거던. 자, 엎어진김에 쉬여간다구 모두 이리들 오게.》

덕삼은 전사가 주는 마대를 받아 그안에서 잘 익은 다래와 머루송이들을 꺼내놓았다.

《히야, 머루 다래…》

《이게 웬거요?》

대원들은 저마다 환성을 올렸다.

덕삼은 돌아가며 머루, 다래를 한옹큼씩 골고루 쥐여준다. 대원들모두가 마음이 흥그러워졌다.

《이거 진짜 고향생각이 나누만.》

《우리 집 뒤산에도 머루, 다래가 많았지.》

저마다 행복했던 지난날의 추억으로 즐거운 이야기판을 벌렸다. 뒤에서 오던 정철이 떠들썩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한듯 멍청해섰다.

《자, 분대장동무도 받수다.》

덕삼은 그에게도 한줌 쥐여주었다.

《아바이, 이밑에 있는건 또 뭐나요?》

나어린 전사가 마대밑창의 류달리 도글도글한 굳은것들을 만져보며 물었다.

《이런 꾀바리라구야. 누워있는 정길이한테두 뭘 좀 줘야지.》

덕삼은 이러며 마대안에서 반들반들 윤택이 도는 밤알들을 꺼내여 모여선 대원들에게 몇알씩 돌리였다.

《맛을 좀 보시우.》

덕삼은 명남에게도 권하였다.

《그런데 이런것들은 어디서 얻어왔습니까?》

《이건 그 다람쥐덕에…》

《다람쥐라니요?》

명남은 손에 든 밤알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덕삼은 임무수행중에 있은 일을 서두르지 않고 이야기했다.

탄약을 실은 마차가 버들골도하장에 다달았을 때였다. 거기서는 공병들이 폭격에 파괴된 다리를 한창 수리하고있었다. 도하직일관은 다리복구에 나서겠다는 군인들에게 지금 인원이면 충분하니 적의 항공습격을 받지 않도록 밀집해있지 말고 골짜기에 은페해있으라고 했다.

덕삼은 마차를 돌려 가까운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겠는데 말도 쉬우면서 마초를 먹여야 했다.

골짜기로 얼마쯤 들어와 말을 풀어놓은 덕삼은 뜻밖에도 분주히 나와다니는 다람쥐를 보았다.

문득 그놈을 산채로 잡아 소대병실에 다람쥐채바퀴를 만들어놓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동안 망설이는데 다람쥐가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그리 멀지 않은 돌담밑으로 몸을 숨겼다.

《어허, 조런 놈 봤나.》

그만 멍청해있던 그는 불이 나게 돌담을 헐어내였다. 결국 다람쥐를 놓쳤으나 둬되박 잘되게 밤알을 얻을수 있었다.

고향에 밤나무가 많은 정길이가 감기가 심해 누웠는데 이 밤을 준다면 그가 얼마나 좋아하랴 하는 생각에 덕삼의 마음은 흐뭇하였다. 허리를 펴던 그는 거기서 몇발자국 떨어져있는 머루, 다래 넝쿨을 보았다. 그는 주렁진 열매들을 부지런히 따서 빈마대에 넣었다.…

《아바이, 이걸 정길동무에게 주십시오.》

《이것두 주십시오.》

《전 아바이의 심정두 모르구…》

소대원들은 저마다 손에 든 밤알들을 덕삼이에게 주었다.

《아니, 이러지들 말게. 여기 또 있질 않나.》

덕삼은 당황해하며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명남의 가슴엔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랐다. 지휘관인 자신도 미처 하지 못한 생각, 저렇듯 소대의 모든 대원들에게 살뜰한 정을 지니고있기에 그는 남다른 존경과 사랑을 받고있는것이 아닐가.

그날 저녁 명남은 소대사관들의 모임을 열었다. 어제 오후 련대작전회의에 별도로 참가하고 온 그는 소대앞에 제시된 긴급한 전투임무를 놓고 사관들과 토의하기로 했다.

요즘 정세는 바야흐로 긴박해졌다. 적들은 《금화공세》가 거덜이 나자 새로운 《신공세》를 내들고 발악하고있었다. 전선의 아군진지에는 밤낮없이 적의 줄폭탄이 쏟아져내렸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모든 전선부대들은 최후발악하는 미제침략자들의 공세를 단호히 짓부시고 최대의 섬멸적타격을 안기며 미제침략자들을 서산락일의 운명에 처하게 할 전투명령들을 받아안았다.

김명남의 소대는 련대작전의 성과적보장을 위하여 놈들이 둥지를 튼 갈화봉을 단시간내에 탈환할데 대한 긴급명령을 받았다.

김명남소대에 있어서 갈화봉탈환전투는 아름찬 임무였다. 련대장은 고지탈환전투과정에 있을수 있는 불의의 정황들과 놓치지 말아야 할 요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나서 이렇게 강조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소대원들의 신심과 용기를 믿어야 하오. 동무들이 울릴 총소리가 련대의 전투개시신호로 될것이요. 전부대가 새 계선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3일간을 지켜내야 하오. 힘겨운 전투요. 대원들을 아끼시오.》

련대장은 명남이의 어깨를 힘있게 잡아주며 간곡히 말했었다.

《동무들!…》

명남은 모여앉은 사관들을 엄숙히 둘러보며 소대의 전투임무를 구체적으로 전달하였다. 그는 각 분대들의 행동방향과 전투과제를 명백히 분담하고 최대의 신속성과 함께 은밀성을 보장할데 대하여 재삼 강조하였다.

《나의 위치는 1분대요. 제기할것들이 있으면 제기하시오.》

《소대장동무, 1분대와 2분대에 수류탄을 넉넉히 주어야 하지 않을가요?》

부소대장이 묻는 말이였다.

《그렇습니다. 이번 전투는 수류탄이 큰몫을 할겁니다. 넉넉히 휴대하도록 합시다.》

《저… 제 의향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생각에 잠겨있던 리덕삼이 천천히 일어서며 물었다. 명남은 덕삼이도 회의에 참가시켰다.

《예, 이야기하시오.》

명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양키놈들은 원체 잠주머니를 가지구다니면서 자는 놈들이지요.》

뜻밖의 말에 앉아있던 사관들이 무슨 말을 하려나 해서 모두 의아한 눈길로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우리 조선사람들에게는 온돌방이 제일이지요. 이젠 날씨도 차졌는데 갈화봉쪽에 나가면 구들장으로 쓸 돌이 변변치 않을거우다. 화선식온돌을 놓자 해도 여기서 미리 구들장을 준비해놨다가 후에 마차로 날라가든지…》

전투행정과 별로 상관없는 그의 말은 한껏 긴장이 어리였던 방안의 공기를 삽시에 흩날려보냈다.  어떤 사관들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군기침까지 해댄다.

《아바이, 지금 그런걸 론할 땝니까? 부대의 전투승리를 보장하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를 토의하는 때에… 그런 생각은 좀 뒀다 하십시오. 젠장, 구들쟁이생각은 그저 구들돌밖에 없다더니…》

정철이가 참다못해 퉁을 주었으나 덕삼은 심중해진 얼굴로 설득력있게 말했다.

《분대장동무, 그건 그렇지 않수다. 아무리 힘겨운 전투를 치른다고 해도 여기 모인 동무들모두가 대원들의 생활을 책임진 사관들이 아닌가요. 구들돌만 있으면 화선식온돌을 놓는데 한시간도 걸리지 않수다. 날씨가 차지는데 그래 맨땅에서 자겠소?》

《?!》

덕삼이와 정철은 한동안 말없이 마주보았다.

명남은 덕삼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나직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 문제는 별도로 토의해봅시다.》

사관모임은 이렇게 끝났다.

소대에는 창수를 비롯한 네명의 공병대원들이 배속되였다. 명남은 그들을 병실로 안내하고 대원들도 전투준비가 끝나는 차제로 휴식할것을 지시했다. 그리고나서 부소대장과 함께 리덕삼을 만났다.

《아바이, 구들돌을 미리 마련해야겠습니까?》

명남은 덕삼을 자리에 앉힌 후 웃음을 띠우며 무랍없이 물었다.

《예, 아무래도 시간이 좀 있을 때 해두는게 좋지요.》

덕삼은 마주 웃으며 헌헌히 대답했다.

《그럼 부소대장동무, 래일 시간을 내서 조직합시다.》

항상 달아오른 온돌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소대원들의 생활에 관심이 남다른 덕삼의 소행은 명남에게 힘이 되였다.

《알았습니다.》 부소대장의 대답이였다.

명남은 덕삼이와 마주앉은 이 기회에 속깊은 이야기라도 나누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바인 언제부터 구들놓는 일을 하셨습니까?》

《왜정때 아버질 도와 시작한것이…》

덕삼은 주름진 량미간을 쪼프리며 잠시 회억에 잠겨들었다.

덕삼은 열살소리를 할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구들놓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가 열네살나던 어느해 초겨울날 새로 지은 지주놈의 집에 구들을 놓아주게 되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지주집에 쓸 구들돌을 캐기 위해 가파롭고 험한 돌산으로 올랐다. 허기진 배를 그러안고 돌을 캐내던 아버지는 그만 캐낸 돌과 함께 굴러내렸다. 버럭에 묻힌 아버지는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차디찬 방에서 한많은 세상을 떠나가버렸다. 따뜻한 구들에서 등 한번 덥혀본적이 없는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부여잡고 마지막말을 남겼다.

《얘야, 너는 제발 구들쟁이가 되지 말아. 소작살이를 할지언정 이 일만은 제발…》

《다신 안할테니 아버지, 죽지 말아요.》

덕삼은 아버지의 거쿨진 손을 잡아흔들며 애원하고 통곡했지만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 세월은 참으로 덕삼에게 마치 소가 멍에를 피할수 없듯 고역속에서 토스레옷과 구들재신세를 면할수 없게 하였다. 가정을 이룬 후에도 《깜장너구리》라는 별의별 업수임과 비난을 다 받으며 갖은 멸시와 천대속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살아야 할 고달픈 인생이였다.

해방이 되였다. 덕삼의 생활엔 어느덧 꿈같은 현실이 펼쳐졌다. 김일성장군님의 은덕으로 토지를 분여받고 희망찬 새생활이 시작되였다. 인민이 주인된 공화국정권이 서고 집집마다 새라새로운 행복과 기쁨이 찾아들었다.

해방은 사람값에 못 가던 덕삼에게 머리를 떳떳이 쳐들고 살아갈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어느날 면당위원장이 찾아왔다, 새로 지은 집들에 구들놓는 일을 맡아해달라고.

덕삼은 노여움에 겨워 단마디로 거절했다.

면당위원장은 진중한 어조로 말해주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농촌마을을 찾으셨다가 그 마을에서 새로 지은 집들을 돌아보시며 조선사람은 예로부터 온돌방을 제일로 생각했습니다, 초가삼간을 짓고 따뜻한 방에서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는것을 큰 행복으로 여기면서 그것을 소원하였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인민들의 그 소원을 꼭 실현시켜주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덕삼동무, 지난날 천대받던 우리 인민들을 등덥고 배부르게 살게 하는것이 우리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공화국의 시책입니다.》

그날 밤 덕삼은 깊은 생각으로 잠들수 없었다.

사람들을 따뜻한 온돌방에서 살게 하는것이 공화국의 시책이란 말이지. 지난날에는 나와 가정을 살리자고 구들돌을 캐고 온갖 설음을 참아가며 구들을 놓았다만 해방된 오늘에야 우리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일인데 내가 왜 그 일을 못하겠는가.

덕삼은 이 땅에 기둥을 박고 사는 모든 집들이 뜨끈한 구들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살게 하는데 자기 힘을 다 바치리라 결심하였다.

사람들은 해방된 땅에서도 그전처럼 구들을 놓아주는 덕삼을 칭찬하고 존경하였다.

덕삼은 새로 세운 굴뚝들에서 흰연기가 솟는것을 자기의 락으로 여겼다. 그는 그것이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주시는 행복이라고 생각하였다.

행복한 날들이 흘렀다. 학교문전에도 못 가본 덕삼은 성인학교에서 글을 배웠고 딸은 고중을 졸업하였다.

조국해방전쟁이 터졌다.

안된다, 다시는 노예로 살수 없다!

덕삼은 행복을 빼앗으려는 침략자들에 대한 증오를 안고 용약 전선으로 탄원해나섰다.…

《그렇게 되였구만요.》

명남의 말에 덕삼은 큰 주먹을 틀어쥐였다.

《어찌 내 혼자 걸어온 길이겠습니까. 누구나 다 그런 길을 걸어왔지요. 그러니 어떻게 또다시 노예가 되겠습니까.》

《옳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번 습격전투를 실수없이 해내야겠는데 생각이 많아집니다.

방금전 련대정찰통보에 의하면 갈화봉의 적들이 한개 중대력량을 더 보충했다고 합니다.

소대력량으로 꽤 해낼수 있겠는지 우려됩니다.》

명남은 자연 무거운 안색을 거두지 못했다.

《소대장동무, 너무 걱정마우다. 고용병이 몇두름 더 보충됐다고 무슨 큰 대수겠소. 힘은 더 들겠지만 소대원들은 꼭 해낼게우다.

우릴 믿고 전투지휘만 잘 해주우다. 감쪽같이 새여들어가 한바탕 두들겨패면 제깟놈들 용수가 있겠나요. 글쎄 허술히 보는건 아니지만…》

《좋은 말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이젠 좀 쉬십시오.》

명남은 진정을 담아 말했다.

덕삼은 말에게 마초도 먹이고 구들돌을 캘 장소도 돌아보겠다면서 은페호를 나섰다.

명남은 혼자 남았다.

생각이 깊어졌다. 덕삼이와 나눈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주질 않는다.

해방전엔 나 역시 왜놈들의 온갖 천대와 멸시속에서 막벌이군으로 겨우겨우 살아오지 않았던가.

덕삼아바이를 비롯한 소대원들이 수난에 찬 그 길을 걸어왔다. 해방후에는 장군님의 덕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려온 사람들이다.

내가 전투조직과 지휘만 짜고든다면 련대의 전투임무를 손색없이 해낼수 있다.

명남은 한결 든든해진 배심으로 정찰자료에서 확인된 내용들을 곱씹어보며 전투계획을 다시금 검토해나가기 시작했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전선의 밤을 뒤흔드는 총포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어느덧 새벽바람이 은페호의 자그마한 들창새로 슴새여들어와 탄피등잔우에서 가물거리는 등불을 가볍게 어루만진다.

그는 은페호를 나섰다. 둥근달이 산릉선을 유난히도 밝게 비친다. 한참 걸음을 옮기던 그는 어디선가 간간히 들려오는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고지북쪽경사면의 움푹한 곳에서 얼씬얼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명남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대원들은 소대장이 오는줄도 모르고 유쾌하게 웃으며 열심히 곡괭이로 돌을 캐고있었다. 한쪽곁에는 맞춤한 구들돌들이 무둑히 쌓여있었다.

《이크, 멋있구만. 저쪽끝을 들게. 창수 이 사람, 자네가 와서 퍽 기쁘네.》

《품값은 지레 치르어야 마음 편하다니…》

창수도 빙글거리며 대답한다.

《고맙네.》

《고맙긴, 그런데 싸움전부터 왜 구들돌을 캐면서 이러나. 돌루 싸우자는건가?》

《어허― 전투를 치른 뒤 새 고지에서두 조선사람답게 뜨끈한 온돌방에서 발편잠을 자야 할게 아닌가. 하찮은것 같네만 실은 중요한걸세. 안 그런가?》

《그렇지 않구. 이거 신심이 있는데. 뜨끈한 온돌방이라… 그러니 싸움은 벌써 이겨놓은 싸움이겠다.》

《이제 갈화봉정점에다 공화국기를 꽂는 그 시각에 난 마차를 몰고와서 구들돌들을 실어가려네.》

《좋은 생각이야. 함께 오자구.》

두사람은 구들돌을 맞들고 일어서며 발걸음을 맞춘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명남의 가슴은 뿌듯이 달아올랐다.

그렇다. 이번 전투는 이긴 전투다!

덕삼아바이는 소대원들에게 몇천발의 포탄이나 수류탄보다 더 강한 승리의 신심을 심어주고있다.

《자, 이젠 한대씩 태우고 일을 거두세.》

리덕삼이 먼저 허리를 펴자 여러 대원들도 그의 주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판을 벌려놓았다.

덕삼은 밤하늘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둥근달을 이윽토록 지켜보며 명상에 잠기는듯 하였다. 달을 바라보는 덕삼의 얼굴에 깊은 감회와 추억이 어렸다.

《고향생각이 나나?》

창수가 그의 곁에 앉으며 하는 말이였다.

《나구말구, 지금쯤 우리 재령벌에선 아마 벼탈곡이 한창이겠네.》

덕삼은 그 생활이 눈앞에 보이는듯 빙긋이 미소를 짓는다.

《전쟁이 끝나도 자넨 계속 구들을 놓아야지?》

《그야 물론이지. 이제 전쟁이 끝나면 모두 새집들을 짓겠는데 난 그 집들에 구들을 잘 놓아 사람들이 따뜻한 집에서 살도록 해주려네.》

리덕삼의 얼굴에 더없는 기쁨이 물결쳤다.

명남은 가슴이 뭉클했다.

래일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진 사람만이 조국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불사신같이 일어나 싸울수 있는것이다.

명남은 이런 전우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난공불락의 요새도 기필코 점령할수 있다는 신심이 가슴속에 한껏 자리잡았다. 그는 그 아바이병사가 자기가 그렇듯 마음속깊이 사랑하고있는 옥금이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자 소대에 오던 날 그가 하는 일을 두고 하찮게 생각했던 자신이 저으기 죄스러워졌다. 이제 전투가 끝나면 승리한 고지우에서 아바이앞에 모든것을 속시원히 털어놓으리라 마음다졌다.

 

×

 

다음날 무력을 배로 증강한 갈화봉의 적들은 새벽부터 박격포사격으로 아군진지를 곽지질하듯 뚜져놓았다. 저녁이 되자 그우에 첫눈이 소복이 내려쌓였다.

《날씨가 좋지 못한데 자네 일이 일없겠나?》

덕삼은 근심에 잠겨있는 창수를 돌아보았다.

《글쎄… 이런 날씨가 공병을 빈병으로 만들기 십상이라니, 그저 땅이 얼지 않은게 다행일세.》

그들은 이제 벌어지게 될 전투를 두고 걱정하고있었다.

《이번 공병일을 아바이가 거들어주십시오.》

명남이 웃으며 덕삼에게 말했다.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한 덕삼은 소대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동갑이와 함께 앞서나갈테니 조용히들 뒤따라 오시우다, 허허.》

덕삼의 활달한 웃음에 묵묵히 신들메를 조이던 소대원들이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들은 휴대한 무기와 장기류상태를 다시금 꼼꼼히 살펴보았다.

무겁게 늘어선 침침한 산발, 어둠속에 흩날리는 눈꽃들, 귀가에 스치는 바람소리, 뿌드득거리는 눈밟히는 소리… 소대는 적들이 둥지튼 강화봉턱밑까지 은밀히 행군해갔다. 폭풍전야의 무시무시한 정적과도 같은 고요가 괴괴하게 깃들었다. 워낙 산천이 수려하고 경치풍만 한 갈화봉골짜기는 《노루골》이라고 불리우던 울창한 수림지대였다.

그러하던 자연의 풍치는 전쟁의 불도끼에 산산쪼각이 나 모조리 불타버렸고 짐승들마저 깃들지 못하여 지금은 무거운 정적속에 묻혀있었다.

이따금씩 불의에 적화점들에서 쏟아져나오는 위협사격이 아츠럽게 공기를 짼다. 그리고는 또다시 깃드는 고요…

김명남은 독사의 혀끝마냥 불줄기가 날름거리다 사라지군 하는 적화점들의 위치를 재빨리 머리속에 적어넣었다. 약 30분가량 적의 화력배치정형과 적정을 판단한 명남은 계획대로 한개 분대씩 전진시켰다. 각 분대들은 적참호를 향해 신속하고도 은밀히 걸음을 다그쳤다.

어느덧 그들은 지뢰매설구역에 다달았다.

창수가 철조망을 끊어버리고 눈덮인 땅속에 묻혀있는 폭발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며 통로를 개척해나갔다. 곁에서 공병 한사람과 리덕삼이 창수의 지뢰해제를 거들며 한치한치 통로를 내였다.

창수의 예견대로 지뢰해제작업은 귀중한 시간을 한초한초 빼앗아갔다.

공병들에게는 참으로 불리한 날씨였다. 명남은 손에 땀을 쥐고 백포자락속에서 긴장한 신경전을 벌리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손목시계의 야광초침을 번갈아보았다. 긴장한 시간이 흘렀다.

드디여 소대원들은 포복전진으로 지뢰매설구역을 극복하였다.

공병들을 철수시킨 명남은 소대원들을 이끌고 적참호턱밑까지 다가갔다. 조금앞에 눈덮인 나무덤불같은것이 가로놓여있었다. 그너머로 순간 펑긋! 하는 불빛이 보이고 사라졌다.

《엎드렷!》

조용히 구령을 내린 명남은 그 자리에 엎드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잠시후 주위는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명남은 앞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저것이 무엇일가?)

《내 알아보겠수다.》

명남의 속생각을 알아챈듯 곁에 엎드렸던 덕삼이 귀속말을 남기며 재빨리 기여나갔다. 미처 말릴 사이도 없었다.

《덤불》앞에 이른 덕삼은 먼저 밑을 손더듬하더니 천천히 몸을 솟구치며 웃부분을 만져본다.

이때 별안간 《따다당…》하는 총소리가 지척에서 울렸다. 이어 적화점들이 불을 뿜었다.

《철조망이다!》

덕삼은 큰소리로 웨치고는 푹 꼬꾸라졌다.

명남은 눈앞에 아찔했다.

그것은 깡통까지 매달아 얼기설기 풀로 위장한 철조망이였다. 정찰자료에 없던 뜻밖의 정황이였다.

아군의 습격이 두려워 참호가까이에 새로 가설한것이 분명했다.

한순간 요란하던 총소리가 뚝 끊겼다. 1분도 되나마나한 시간이였다. 정황을 살피는지 적의 진지는 잠잠해졌다.

어느새 내리던 눈도 멎고 하늘엔 밝은 달이 밀려가는 검은 구름장사이로 들락날락한다.

적참호에서 놈들의 꽥꽥거리는 소리가 소란스레 들리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명남은 철조망앞에 쓰러진 덕삼에게로 조용히 기여갔다. 불시에 눈앞이 꽉 흐려지더니 속에서 무엇인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듯 하였다.

《아바이.》

《자, 내 어깨를 밟고 어서 넘수다.》

운신조차 못할듯싶던 덕삼이가 불쑥 몸을 일으키더니 철조망기둥에 어깨를 내댔다.

《안됩니다.》

명남은 그의 어깨를 밟지 않고 철조망을 넘으려고 몸을 솟구쳤다. 그러나 철조망을 넘기엔 키가 모자랐다.

《소대장동무, 시간이 없수다. 자, 빨리.》

덕삼은 낮으나 엄하게 부르짖었다. 그의 눈에선 시퍼런 불이 번뜩이였다.

명남은 주저없이 그의 어깨를 딛고 날렵하게 철조망을 넘어섰다. 그뒤로 소대원들이 하나둘 그의 어깨를 밟고 재빨리 철조망을 날아넘었다. 그들은 순간의 지체도 없이 고지우로 치달아올랐다.

덕삼은 철조망기둥에 몸을 기대인채 싸우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여기저기서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 기관단총의 련발사격소리, 적들의 숨통이 끊어지는 단말마적인 비명소리, 적참호는 그야말로 미제침략자들의 죽음터로 화해버렸다.

류달리 귀에 익은 격한 목소리가 덕삼의 귀전에 분명히 들려오는듯 하다.

(정찰분대장이 또 받기 시작한게군. 성미는 급해도 좋은 사람이지.)

어느새 덕삼의 입가에 느슨한 미소가 피여났다. 그러다 인차 자신을 꾸짖었다.

(아니, 내가 왜 이렇고있나. 남들은 다 싸우고있는데… 내 이제…) 그는 이러며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다리가 땅에 뿌리내린듯 꼼짝할수가 없었다. 입으로는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그때 고지우에서 우렁찬 만세소리가 터졌다. 이어 세발의 붉은 신호탄이 솟구쳐올랐다.

둥근달이 구름장사이를 헤여나올 때마다 고지정점우에서 휘날리는 공화국기가 바라보였다.

우리 동무들이 고지를 점령했구나.

아, 공화국기, 바로 저것이다. 저것을 지키자고 피흘리며 미제침략자들과 싸우고있는것이다, 다시는 노예로 살지 말자고.

불시에 덕삼의 가슴은 환희와 격정에 사무쳤다.

(고지우에선 승리의 함성이 넘쳐나는데 내가 아직 이러구 앉아있다니. 빨리 구들돌을 실어다 여기에 화선식온돌을 놔야 할게 아닌가.)

그는 안깐힘을 써가며 몸을 움직이려고 모자름을 썼다.

희붐히 밝아오는 속에 두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소대장 명남이와 담가병이였다.

 

×

 

새날이 밝아왔다.

명남은 정철이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리덕삼을 억지다짐으로 후송담가에 눕혔다.

《아니, 이쯤한 상처로 소대를 떠나다니…》

덕삼은 못내 안타까와했다.

《아바이, 련대군의소로 꼭 가야 합니다. 출혈이 몹시 심했습니다. 그리고 상처도 치료받아야 새 고지를 지켜내지요.》

명남은 덕삼을 위로해주었다.

《알겠수다. 내 잠시 치료를 받고 곧 돌아오겠수다. 새로 타고앉은 고지에서도 내 할일이야 해야지요.》

명남은 아바이가 무엇을 근심하고있는가를 잘 알고있었다.

덕삼은 명남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말할듯말듯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저… 소대장동무, 내… 할말이 있수다. 실은… 우리 옥금이한테서…》

덕삼은 뒤말을 잇지 못하고 갑잘랐다.

《옥금동무한테서요?!》

명남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그러지 않아도 전투가 끝나면 아바이와 조용히 만나리라고 생각했던 명남이였다. 지금 그는 덕삼이의 범상치 않은 눈빛을 보면서 그가 옥금이와 자기와의 남다른 사연을 알고있다는것을 느꼈다.

덕삼은 군복앞섶을 헤치고 안주머니에서 절반접힌 편지를 꺼내였다.

《내 소대장동물 만나던 첫인상에 별스럽게 생각이 짚여진다 했지.

소대장동무가 김일성종합대학으로 떠나기 전날 우리 옥금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내 지금껏 배낭속에 건사하고있수다.》

《그러니 아바인 다 알고계시면서…》

《지금쯤 아마 잘 싸우고있을거네.

전번 편지에 옥금이가 놈들의 폭격에 죽은 제어머니의 원쑤를 꼭 갚겠다고 썼는데 아마 훌륭한 전선용사가 되였을거네. 전쟁이 우리 녀자들도 총잡은 장부로 만들었거던.》

덕삼은 대견스럽고 만족한 얼굴표정을 지으며 편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이 편지는…》

명남은 편지를 받아쥐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 대신 회답편지를 좀 해줄수 없겠는지 해서…》

《그건 념려마십시오. 제 오늘중으로 회답편지를 써보내겠습니다. 아버님.》

명남은 진정을 담아 대답했다. 그는 아버님이란 말을 해놓고 좀 멋적은 생각이 들었으나 결코 후회되지는 않았다.

명남을 바라보는 덕삼의 눈길은 한껏 부드럽고 사랑에 넘쳤다. 그는 이 훌륭한 소대장과 나란히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큰상을 받는 옥금이의 모습이 떠올라 입귀가 저도 모르게 벙싯하니 열렸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전승의 날도 오래지 않았는데 이제 전쟁을 이기고 고향에 가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막 부풀어오르는게…》

그는 승리한 그날을 그려보는듯 줄곧 얼굴에 미소를 담았다.

《우리 그때 다같이 모여살면서 이날을 추억합시다. 그러니 치료를 잘 받고 와야 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제 사나흘이면 돌아와 구들을 꼭 놓겠습니다.》

《그저 구들걱정뿐이군요.》

《왜 안 그러겠습니까. 구들이라는게 결국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온몸으로 직접 느끼게 해주는 사랑과도 같은게 아니겠소. 우리 장군님께서 바로 그런 사랑을 지켜주시기 위해 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는데 내 어찌 그 일을 손에서 놓겠나. 이제 전쟁을 이긴 뒤에도 아니, 눈을 감을 때까지 그 일을 하겠소.》

덕삼의 눈에는 진심이 한껏 어리였다.

온돌이 따스한 사랑과도 같은것이란 말이지. 그래, 피눈물나는 지난날을 뼈저리게 체험한 아바이만이 할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아바이는 소대를 떠메고있는 기둥처럼 말없이 어려운 일을 도맡아나서며 소대원들의 뒤바라지를 뜨거운 애정을 담아 묵묵히 해나가는것이리라.

명남은 가슴에 뜨거운 격정을 안고 그 모습을 다시금 더듬어 보았다.

앓는 대원들과 소대원들에게 밤과 머루를 가져다주어 고향을 잊지 않도록 해준 그, 언제나 따뜻한 구들에서 소대원들이 자게 하려고 마음쓰던 그, 전투의 준엄한 시각엔 서슴없이 목숨을 내걸던 재령아바이.

잠시나마 헤여지자니 서운한 마음뿐이다.

담가병들이 출발하려고 담가를 들고 일어섰다.

《아버님, 기다리겠습니다.》

명남이 따라서며 말하였다.

《내 그만 구들돌을 실어오지 못하네그려.》

정철분대장이 손을 흔들며 성급히 말했다.

《아바이, 그런 걱정마십시오. 우리가 당장 갈화봉우에 구들돌을 날라다놓을테니까요.》

덕삼은 웃음을 지었다.

멀리서 소대원들이 겨끔내기로 소리친다.

《아바이, 치료를 잘 받고 돌아오십시오.》

《재령아바이―》

그들의 뒤에는 그들이 높이 띄운 람홍색공화국기가 아침해빛을 받으며 힘차게 펄럭이고있었다.

 

(원산시 국토건설설계사업소 로동자)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