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7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소중한 추억

리 두 연

 

나의 할아버지는 한생을 신발수리공으로 일해왔다. 나의 할아버지가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신발수리공으로 되기까지에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다.

이 이야기는 나의 할아버지가 실지 겪은 사실을 담은것이다.

 

1

 

평양역에서 얼마 멀지 않은 자그마한 신발수리소의 신발수리공 호백은 그 무엇에 얼을 빼앗기운듯 넋없이 출입문만 바라보았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그는 제정신이 든듯 철색얼굴을 쳐들고 디글디글한 눈을 크게 뜨며 약간 흥분에 떠서 물었다.

《봤지, 자네두? 방금전의 이 구두임잘.》

《예.》

소비조합책임자 운찬이 본시 그리 크지 않는 눈을 둥실해가지고 호백을 마주보며 역시 흥분된 말소리로 제꺽 응대했다.

《알아봤단 말이지?》

《그럼요. 재작년에 우리 논에 와서 도와주던 그 어른이 분명하구만요. 그날 그 어른이 하루종일써레질을 도와주어서 우리가 모내기를 일찍 끝낼수 있었지요.

아, 그때 그 어른이 어디서 뭣때문에 온 사람인데 우리 일을 품놓고 도와주었댔는지 내 지금껏 살다가 그렇게 고마운이는 첨 봤수다.》

운찬은 조용히 말할줄 모르는 사람처럼, 자기말을 가로채려는 사람이 나타나기라도 한것처럼 별로 숨도 쉬는것 같지 않게 빠른 말씨로 떠들듯이 말했다.

《우리가 그때 어디서 무슨 일을 보시는가구 물었댔지요. 그런데 그 어른은 시물시물 웃기만 하면서 그저 평양에서 사는 사람이라구만 대답하구 끝내 자기 소갤 피했지요.

인품이나 행동이 점잖은것으로 봐선 우리 같은 보통사람같지는 않은데 말하는거랑은 신통히 우리와 한가지더란 말이지요.

소탈하구 부드럽구 근면하구 거기다가 또…》

호백이 이마살을 찡그렸다.

《또또또… 시작되누만. 거 정말 아낙네들처럼 헤픈 그 말버릇 정 못 고치겠나?》

말을 잘리운 운찬은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띄우고 헤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한채 잠시 호백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러다가 방금 받은 면박은 잊었는지 다시 큰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난 그런 어른이면 내내 업구다니구싶어 그래요. 그런 고마운 사람에게 이런 때 인사를 단단히 했으면 좋겠는데 그분이 뭘하는지는 상관없…》

《그만하게!》

호백이 거친 목소리로 투박하게 소리쳤다.

《〈난 머리우에 떠받들구 살고싶다〉… 벌써 몇번째루 말하는가. 말이나 자꾸 하면 뭘해. 실지루 하나도 못하면서…》

호백은 얼굴이 수수떡빛이 돼가지고 열이 올라 말을 내뱉았다. 그리고는 저로서도 안됐는지 잠시후 누그러진 목소리로 좀 빠르게 말했다.

《어서 구두임자가 간 저기로 따라가보게. 어디서 무슨 일을 보는 어른인지 알아야 인사차림이든 신세갚음이든 할게 아닌가…

에이참, 내가 왜 이 구두임자를 꼭 붙들구 신분을 묻지 못했을가?》

호백은 아쉬움을 금치 못해하며 움직일 생각이 없는듯이 그냥 멍해있는 운찬을 크게 뜬 눈으로 지릅떠보다가 《빨리!》하고 호령쳤다.

운찬은 펄쩍 놀라 한발을 성큼 옮기고는 목을 움츠린채 호백을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오른다리를 길게 뻗쳐 문턱을 닁큼 넘겨짚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투덜거리듯이 중얼거렸다.

《헛참, 먼저 맡긴 내 구두는 수릴 못했는가부지, 난 그걸 찾으러 왔댔는데…》

호백은 반달음을 놓는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호방스레 《허허허.》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호백의 일이라면 두팔 걷고 나서주는 운찬이다.

나이를 보면 50을 갓 넘긴 호백이보다 운찬은 5년아래다.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서로 이웃에 살면서 형님동생간으로 지내온다.

운찬은 해방후 민주건설시기 군상업간부양성소 최우등졸업생이다. 사람이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성미가 쾌활한것이 좋았다. 특히는 말과 행동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어 누구에게나 싫지 않을 사람이였다. 더구나 투박한 성격인데다가 실속이 없는 사람과는 상대를 하지 않는 호백의 고정한 마음에 꼭 들어맞는 운찬이다.

호백은 그에 대한 생각으로 한동안 시간 가는것도 잊고있었다.

불현듯 호백은 잠시 헛팔렸던 정신을 바로 차리고 구두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구두의 겉과 안과 바닥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깐깐히 살펴보았다. 겉가죽이 아직 번쩍거리는데 비해선 안가죽이 퍽 닳아져있었다. 그것은 구두임자가 오래 신었으나 매우 정히 신었다는것과 일이 몹시 분망함을 짐작할수 있게 해주었다.

이상한 일이다. 왜 자기나 운찬의 마음이 그 사람한테 그리도 끌리는것인가. 그것은 모내기를 도움받은데서 오는 단순한 고마움의 충동만은 아닌것 같다

《참, 소탈하구… 어쨌든 다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두 좋게 보이게마련이지… 아마도 평남도인민위원회 일군인게다. 아니면 다른 어느 기관의 큰 간부가 분명해.…

구두를 최상으루 잘 수리해달라구 곱씹어 당부했지.…》

호백은 샘솟듯 하는 생각을 부러 눅잦히며 안감으로 마땅할 가죽을 찾았다. 여기저기 뒤적이며 이것저것 쥐였다놓았다하다가 예비함을 열고 아끼던 잘 이겨진 소가죽중에서 제일 마음드는것으로 골라들었다. 이어서 헛눈 팔새도 없이, 얼굴에 맺혀 흐르는 땀방울을 훔칠새도 없이 일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구두임자가 수리를 빨리 해달라고 했으니 인차 찾으러 올수 있었다.

좀전에 운찬이 나갈 때 열려진 문밖에는 온통 흰눈이 덮였는데 해빛이 눈부시게 쏟아져내려서인지 추운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쾌청한 날씨였다. 요즈음은 그런 날씨가 련일 계속되고있었다.

 

2

 

호백은 다 수리한 구두를 량손에 한짝씩 들고 흐뭇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았다.특별히 품을 들인것이여서 그런지 새것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새것보다 더 탄탄해진것 같다. 자기 재간이 이렇게 좋았던가싶기도 했다. 잘 수리된 구두를 여겨보느라니 구두임자의 모습이 또다시 눈앞에 떠올라 얼른거린다. 마흔댓나이쯤 되였을듯 한데 보통사람보다 좀 큰 키에 알릴듯말듯 미소어린 둥그스름한 얼굴, 가슴팍이 두드러지고 실팍한 어깨, 튼튼한 팔다리… 겉볼안이라더니 참말로 겉과 속이 한결같아 첫 대면에 그렇게 인차 마음이 끌렸는지… 어쩌면 이 구두때문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그랬다. 그 어른이 멋쟁이신사옷차림에 사치한 새 구두까지 받쳐신었다면 그저 그러려니 했겠으나 반대로 보잘것없는 수리소에 와서 소박하게 신던 구두를 수리해 신는다는데서부터 선망의 마음이 이토록 동뜨게 된것이 아닌가. 호백은 부지중 (정말 소박한 어른이군!)하고 내심 감탄했다.

나라가 해방을 맞은 이후부터는 오늘 이때까지 큰 간부건 작은 간부건 겉차림새는 한본새로 수수하건만 어딘가 모르게 모두 인품이 잘나보이고 우러러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매사에 고맙게들만 굴고 일거리앞에선 팔다리를 부르걷고 뛰여들며 앞장에 선다. 정말 마음같아서는 자기의 오른다리가 불구만 아니라면 굉장히 화려한 장식가마를 만들어서 그들모두를 한꺼번에 둥둥 태우고다니며 《이분들이 우리 인민들편 간부들이요》하고 자랑을 하며 으쓱거려보고싶은 심정이다. 그런 생각에 옴해질 때마다 가슴이 그들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오른다.

문득 저금돈생각이 난다. 운찬과 공동으로 저금하는 돈이다. 물론 얼마 되지는 않지만 궂은 날 밥한그릇 신세 백날 갚으랬다는데 그 돈을 내여 이왕이면 구두임자에게 뜻있게 무엇을 좀 마련해드리면 오죽 좋겠는가.

하루물림이 열흘물림이라고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를 얻을수 있으랴.

운찬과 의논해봐야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아직 오지 않는지…

운찬은 두시간남짓해서야 숨가삐 나타났다. 손에 무엇인가 든 네모진 자그마한 함을 초록색보자기에 정히 싸들었다.

《아직 안 오셨군요. 다행이군, 에에…》

운찬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땀을 문지르며 방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떠들기부터 한다.

호백은 반가왔으나 《수고했네.》한마디뿐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 내 아까 여기를 나서서 그 어른을 저만치 보면서 뒤따랐는데…》

운찬은 말을 끊고 바깥쪽을 힐끗 돌아다본 다음 비밀인듯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저쪽 큰길가에 승용차가 서있더군요. 그 차를 타구 오셨습니다.》

운찬은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늘 떠들던 본새로 말을 이었다.

《그 어른이 글쎄 차타구 씽하니 가버리니 어찌겠수. 큰 간부가 옳아요. 아무렴 그런 어른이 큰 간부를 해야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맘놓구 사는게 아니나요. 모두다 고맙구 수수하구 평범하구… 우리 사정을 잘 알아주는분들이 우릴 돌봐주는데 안 그럴리 있습니까. 앞으루 잘 먹구 잘 입으면 더 좋겠지만두 난 당장은 못 먹구 못 입어두 저런 어른들이 간부를 하면 더 바랄게 없다구 봐요. 배부른게 좋기야 좋지만 아무튼 맘 편해야지요.

난 저런분들은 노상 떠이구 다니구싶어집니다. 그러니 내 이제부턴…》

호백이 이마살을 찡그렸다.

《또또또… 확실히 말이 더 많아졌어. 장사군처럼. … 왜 늦었나?》

운찬은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있다가 마치도 신나는 이야기거리를 구경하고 온듯이 청높은 목소리로 말줄을 늘였다.

호백은 핀잔을 주었으나 그의 말이 듣고싶어졌다.

《고모가 글쎄 바빠죽겠다는데 제 딸의… 내 사촌막내녀동생 말입니다. 아, 그의 례장감을 당장 내라는겁니다, 돈두 안 내구. 소비조합상점 책임자라구 상점물건이 뭐 다 내 맘대루 하는건가 하지요. 그래서 값을 치르기 전엔 절대루 안된다구 딱 잘라 말해줬지요. 고모는 그렇게 퉁을 줘서 돌려보냈지요. 반시간 실히 되게 고모와 말씨름질을 했습니다. 그리구나서 돌따서 오자니 발이 땅에 붙었는지 떨어지질 않습디다. 이게 왜 이러는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번 기회에 고마운 그 어른한테 어떻게 좀 톡톡히 인사차림해올릴 뭐가 없을가 하는 생각이 발목을 얽어맸드란 말입니다. 그래 내 이거 잘 안 도는 이 머리루 상점책임잘 제대루 해내겠는지…

어쨌든 겨우 생각해낸게 이겁니다.》

운찬은 늘어놓던 말줄을 끊고 보자기를 풀었다. 마분지함이 나졌다. 뚜껑우에 한컬레의 구두가 그려진 그림이 붙은 함이였다. 함을 열고 구두를 꺼냈다. 보는 사람 눈뿌리를 뺄듯이 첫눈에 마음이 흠뻑 드는 구두였다. 호백은 희한하여 얼른 구두를 받다들고 얼굴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후 낯색에 랭기가 서렸다.

《자네 이거 어떻게 된건가?》

낮으나 무겁게 울리는 진중한 물음이였다. 운찬은 얼굴표정에 변함이 없이 말을 받았다.

《상점창고에서 하나 골라낸거지요. 공장들에선 지금 천리마운동의 불이 붙었습니다. 그 덕에 우리 상점에두 물건이 그득 쌓였는데 구두두 여러가지루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께 올리자니 암만 골라두 어디 맘에 차는게 있어야지요. 고르다고르다 끝내 이걸루 가져왔지요. 그런분들이야 질기구 든든한것두 좋겠지만 번쩍거리구 사치한 멋두 좀 있어야지요.

양가죽구둡니다. 이게 가볍구 좋습니다.》

호백이 가볍게 핀잔하며 운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묻는건 그게 아니라 상점물건을 그냥 막 꺼내면 되겠는가 그거네, 그것두 창고에서…》

《형님두… 고지식탈이 또 도졌군요.》

운찬은 나무람하듯이 말하고는 목소리를 좀 높였다.

《걱정마시우. 고모딸은 나 아니래두 제 부모형제들이 있으니 일없지만 이 구두임자에게 올려야 할 은혜갚음은 꼭 내가 해야 할 몫이 아니나요. 그래 내… 판매대장에다 또박또박 박아써놓구 가져온거라니까요. 약소하긴 하지만 그래두 한결 맘이 가벼워지는것 같습니다.》

호백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럼 됐군. 자네 그 일처린 참 잘했네.》

운찬이 눈을 치떴다.

《날 놀리시우?》

《허허허…》

《허허허…  그런데 형님.》

운찬이 말했다.

《수리한 구두를 임자에게 올릴 때 이 새 구두까지 형님이 함께 올려주시우.》

호백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아니네. 자네가 가져온 상품인데 자네가 올리라구.》

《아, 물건은 한가진데 따루따루 올릴게 있나요?》

《그래두 난 그렇게 하는게 좋을것 같은데. 혼자서 도맡아 올리구 한사람은 그냥 옆에 머주해서 가만히 있겠나. 그렇게 하면 이것을 올리는 우리의 본심에 비해서 뭔가 좀 부족한감이 나거던. 만약 우리 둘이 아니라 열명, 스무명이 있다구 합세. 그럴 때 한명이 대표해서 올리면 인사차림이 너무 간단히 끝나겠지만 여러명이 제가끔 올린다면 식이 커질것 아니겠나. 그렇게 되면 우리 성의의 무게두 커질거구… 안 그런가?》

그들은 그 무슨 중대사나 준비할 때처럼 심중해져서 옴니암니하다가 호백의 《지성의 무게가 커진다》는 말에 운찬도 마음이 동하여 그렇게 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3

 

호백과 운찬은 손님앞에 수리한 구두와 함께 새 구두 한컬레를 받쳐서 내여놓았다. 호백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희들의 소청인데 받아주십시오.》

손님이 펄쩍 뛰였다.

《이러지들 마십시오.》

운찬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쯤한것두 안 받아주시면 우린 어쩌라는겁니까. 이걸 안 받아주시면 저희들은 배은망덕한 놈이라구 욕하시는줄루 알겠습니다. 꼭 받아주셔야 합니다. 재작년에 우리 모내기를 도와주신 일을 저희들은 잊지 않구있습니다.》

손님의 사양에는 틈이 없었다.

《절대루 이래선 안됩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예?》

호백과 운찬은 크게 놀란 소리를 쳤다.

운찬이 물었다.

《우리 수령님께서 이런걸 받지 말라구 하셨습니까?》

손님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꼭 그렇게 찍어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언제나 저희들에게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이걸 받으면 수령님뜻을 어기는것으로 되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제가 모내기를 도와드렸다고 하는데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군들에게 농촌에 나가 농민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농민들의 마음과 농촌실정을 더잘 알아보도록 가르치심을 주셨기때문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개인농을 협동화하시기 위해 어버이수령님께서 실천적으로 취하신 조치의 하나였습니다.》

《!…》

《사실 이 구두는 제것이 아닙니다.》

손님은 수리한 구두를 집어들고 소중히 쓸어만지였다.

《이 구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으시던것인데 수리해 신으시겠다고 저에게 당부하신것입니다.》

호백은 순간 자기의 귀가 의심되였다.

《아니, 수령님께서요?》

운찬도 눈이 휘둥그래지였다.

《수리를 맡길 때는 차마 이 구두가 수령님것입니다 하고 말을 낼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잘 모시지 못한것 같아 죄스럽기만 한데 그 사연을 어디다 내놓고 말하겠습니까. 수령님께서 굳이 수리해오라고 하시니 어쩔수없이 이렇게 제가 오긴 했습니다만…》

손님은 갑자기 무엇이 목안에 걸렸을 때처럼 말을 뚝 끊고 입술을 꾹 다문채 눈을 지그시 감고있다가 잠시후에야 목갈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령님께서는 조국을 해방하신 후 인민들과 인사를 나누시려고 개선연설나가실 때도 이미 입으시던 옷을 밤새 손질해입고 나가시였습니다.

언젠가는 늘 입고 다니시는 양복이 물날은것이기때문에 우리 일군들이 새 양복을 지어드리려다가도 끝내 그렇게 못했습니다. 자신께서 차림새를 사치하게 하거나 색다르게 하고 다니면 인민들이 자신을 대하기 어려워하고 그렇게 되면 인민들과 멀어지게 된다고, 자신은 왕이 아니라 인민의 복무자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면서 굳이 사양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물에 뜬 기름처럼 인민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일군이 되여서는 안된다고, 인민들과 꼭같이 먹고 입고 쓰고 살며 일할수록 인민들은 그런 일군들을 더 믿고 따르고싶어한다고 늘 말씀하시면서 자신께서 몸소 그 모범을 보여주고계십니다.

우리 수령님은 그런분이십니다.

그러니 더 권하지 말아주십시오.》

《!…》

호백은 종시 무엇이라 할 말을 찾을수가 없었다. 목안에는 뜨거운것이 꽉 차올랐다.

《수령님께서 그렇게 인민들과 꼭같이 생활하려고만 하시니 저희들은 바쁘고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평범하고 소박한 풍모를 따라배우기 위해 애쓰고있습니다. 그러나 멀었습니다. 수령님의 그 고매한 풍모는 하늘이 낸 위인의 천품이기에 저나 보통의 인간들은 따라배우기 위해 애쓰면서도 그 소원을 성취하기가 헐치 않은것입니다.》

《!…》

호백은 손님을 어떻게 바래여드리였던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크나큰 감동에 휩싸였다. 그저 생각은 위대한 수령님께로만 쏠리였다.

(수령님! 수령님께서 구두를 수리해 신으시다니 그게 무슨 일입니까. 수령님 탄생하셔서 자라신 그 세월은 물론이구 나라를 찾으시느라 싸우신 그 나날부터 언제한번 좋은 신을 신어보셨겠습니까. 온 나라 인민들이 이제는 수령님덕분에 잘살게 됐는데 수령님께서 새 구두 한컬레를 더 신으신다구 인민들 생활이 축이 나기나 합니까. 구두 한컬레가 뭣이라구

수령님 하시는 일은 얼마나 크고 많으십니까. 그런데두 어찌 저희들과 생활을 꼭같이 하실수 있습니까… 우리같은 사람들두 새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새 구두를 신으면서 사는데…

수령님!)

호백의 눈에서 큰 구슬알같은 눈물방울이 떨어져내리였다.

운찬은 아까부터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어내고있었다.

 

4

 

《여보게, 우리 수령님은 세상에서 오직 한분밖에 안계시는 위인이시지!》

호백은 어쩐지 자꾸만 말을 하고싶어졌다. 운찬은 뚝하고 투박스런 호백이 여느때없이 말을 걸어오는것이 즐거운듯 신명이 나서 말장단을 쳐주었다.

《그렇지요! 우리 수령님이 제일이시지요. 나라를 찾아주셨지, 승냥이 미제놈들을 때려눕히셨지, 오늘은 우리들을 잘살게 해주시구 또 나라를 지켜주시구 그러시면서두…

우리같은 사람들은 기껏해서 집뜨락을 벗어나 자기 일터에만 오가지만 수령님께서는 온 나라 일을 돌보시느라구 끊임없이 길을 걸으시는데 구두를 수리해 신으시다니!…

위대한분이신데 소박하시기가 또한 이를데없으시니 정말 우리 수령님같이 소박한 위인, 위대한 평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위인이면 위인이지 소박한 위인두 있는가? 당초에 소박한 위인이라는 말뜻이 어울리는가?》

《소박하다는건 사치하지 않구 수수하다는 말이구 위인이라는건 뛰여난 큰분들을 두구 하는 말인데 원래루는 서루 어울리지 않는 뜻을 가지구있답니다. 그건 오직 우리 수령님에게만 어울리는 말이지요. 수령님 아니시면 그 말이 생겨나지부터 않았구요.

위인을 믿구 따르는 인민의 마음은 위인의 예지와 통솔력, 인품, 덕망이 출중하구 그리구 뭐 이외에두 여러가지루 있지만 특히나 소박한 풍모에서 더 커진답니다. 사치에서가 아니라 소박한 풍모에서 말입니다.》

《자네 그 말만은 참 잘했네!》

《허허, 참 형님두…》

둘이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격정에 뜬 심정을 나누었다.

호백은 운찬을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아는것이 많고 말을 잘한다면 많은 사람들을 모여놓고 수령님에 대해서 연설을 한바탕 해보고싶다. 다른것은 다 말못해도 수령님의 덕망과 소박한 풍모에 대해서 구두에 담긴 사연 한가지만이라도 그대로 만사람에게 전해주고싶다.

참, 재간재간해도 말 잘하는 재간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재간인것 같다. 일도 잘하지만 말도 잘하는 운찬이 부러웠다. 그래서 옛날부터 힘쓰는 자식보다 말 잘하는 자식이 낫다고 했는가보다.

호백은 해방후 문맹을 퇴치한 덕에 글을 읽을줄은 잘 알게 되였으나 조리있게 말하는 방법만은 종시 터득해낼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 순간 참말로 안타까운 사연이였다. 자기로서는 아무리 열성을 부려도 말재간은 배워낼것 같지 못했다. 나라에 훌륭한 말솜씨로 보탬을 못 주는 대신 육신을 바쳐야겠는데 다리 하나를 못 쓰니 그것도 남에 뒤질 일이다. 하지만 무엇으로든지 남못지 않게 나라 위한 마음이 표시되여야 했다.

《형님, 무슨 생각을 하시우?》

운찬의 말소리에 생각에서 깨여난 호백은 잠시 또 뭔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보게 이것 참, 생각이 많아지누만.》

호백은 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심중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이렇게 하는게 어떤가?》

운찬도 신중해져서 대답을 했다.

《어떻게요?》

《우리가 짬짬이 저금한 돈을 말일세. 그 돈을 모두 나라에 바치잔 말일세.》

《아니, 저금한 돈을요?》

《그렇네, 우리 수령님께서 구두를 수리해 신으시게 하구서 이거 어디 죄스러워 살겠나?》

의혹이 실린듯 한 눈길로 운찬은 호백을 한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로 하는 말씀이요?》

《그렇네!》

운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시원스레 확 피여났다. 그는 감동에 겨운 떨리는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생각 정말 잘하셨습니다. 난 미처 그렇게까지 생각 못했댔는데…》

《자네가 늘 내 맘을… 잘 알아주니… 정말 고맙네.》

호백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가까운것이였다.

《형님두… 고맙다는건 무슨 소리요, 남한테 말하는것처럼…》

그들은 한동안 제마끔 눈을 슴벅거리기만 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을 헤아릴바없이 깊이 생각해주시는데 우리들 생각이 얕아서야 도리가 아니지. 우리 수령님을 잘 모시자면 우리가 겉발린 말이나 자꾸 하고 맹세나 골백번 다져 필요가 있나. 바칩세! 돈이구 육신이구 몽땅 말일세. 나라가 빨리 흥해야 맘펴구 다같이 더 잘살게 되는거지.》

운찬이 말을 받았다.

《그럼요. 몇몇사람이나 잘 먹구 잘 입구 잘 쓰면서 잘살게 된다믄야 그건 진짜루 우리 세상이 아니지요. 난 형님 의향을 절대찬성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일치되자 지체없이 밖에 나섰다. 저금소를 향해가는 호백은 지팽이에 의지해서 걷고있었으나 발걸음이 거뜬하였다.

산과 들에 그리고 거리의 모든 건물지붕들과 길우에 뒤덮힌 흰눈은 그들의 마음에 깨끗함과 상쾌함을 더해주었다. 해빛은 여전히 온 천하를 한껏 따스하게 비쳐주고있었다.

 

(자강도 만포시 새마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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