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잊을수 없는 밤에
박 호 산
돌돌 흐르는 자그마한 개울물을 건너서니 얼마 크지 않은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확 안겨왔다.
네 기둥을 다리삼아 우뚝 선 탈곡장이 파수마냥 버티고있는 마을입구뒤로 고운 색기와를 머리에 인 새하얀 바람벽들이 줄지어 서있는 아담한 문화주택의 모습이 하루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눈속을 파고들면서 유쾌함과 정다움을 더해주고있었다.
온 하루를 땀흘리며 일을 하고난 후의 저녁시간이란 말할수 없이 즐거운것이다. 단란한 가정적분위기 혹은 마을사람들 여럿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란 참으로 유별난것이였다.
마을탈곡장 측면에 세워진 창고가 눈에 띄우는 순간 나의 가슴은 저도 모르게 후두둑 뛰여오르기 시작하였다. 방금 풀단을 내려놓고 개울가에서 남들이 쟁기들을 물에 씻기 시작할 때에야 그만 일하던 풀판에 낫을 그냥 두고 내려왔다는것이 생각났기때문이였다.
(이거 야단났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에 진출한지 2년이 될가말가 한 나에게 있어서 이곳은 그닥 마음싸지 않은 고장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논판의 잡초마냥 미미하게 남아있었다.
남들이 사회로, 대학으로 다 떠나갈 때 나는 내딴의 결심을 안고 농촌에 진출하였다.
일을 하면서 자신을 단련하자는데도 목적이 있었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농촌에서 일하면서 이왕이면 떳떳하게 공로를 세우자는것이였다. 하지만 지어먹은 마음 사흘도 못 간다고 처음에 내던 열성마저 여기야 잠간 있을 곳인데 하는 림시적인 관념으로 하여 이내 사그라들고말았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도시출신의 풋내기에 불과한 나에게서 무슨 큰 기대를 바랄수 있으랴. 사람들의 태도는 대체로 이러하였다.
허나 창고장아바이만은 달랐다.
달삼아바이로 말하면 작업반적으로 꼭자령감으로 소문난 사람이여서 모든 면에서 자그마한 허용도 없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아바이한테서 칭찬 한번 받아봤다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겨우 꼽을 정도라고 한다.
놓고보면 아바이가 요구하는것은 다 옳긴 옳은것인데 사람들은 도꼬마리처럼 딱 달라붙어 잔소리를 하는 아바이가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였다.
(까짓거, 큰일이야 날라구. 그까짓 낫 한가락이 뭐라고…)
나는 별치 않은것을 가지고 신경을 쓴다고 자신을 탓하며 더는 이 일을 생각지 말자고 머리를 흔들었다.
사람들로부터 좀 떨어져 뒤에서 우물거리던 나는 앞서가던 처녀를 불러세웠다.
《순임동무ㅡ》
나는 될수록 어른스럽게 그를 찾느라고 하였으나 애리애리한 목소리만은 감출수 없었다.
깔깔거리는 동무들의 웃음소리를 등뒤에 남기며 순임은 무슨 일이냐는듯 유난히 까맣고 반짝이는 눈을 치뜨고 나를 마주보았다.
솔직한 말로 나는 이 처녀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있다고 말할수 없었다.
그것은 어느 가을날 밤인가 순임과 그의 아버지가 논뚝에 앉아 하던 이야기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엿들은 그다음부터였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창고장아바이의 《신발을 잘 신겨야 한다》는 석쉼한 목소리와 《내가 곁에서 잘 도와주겠어요.》하는 순임의 대답만은 정확히 가려들을수 있었다.
내가 이젠 순임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는가?
그다음부터 나는 이 처녀앞에서는 좀 거만하다고 할 정도로 도고해졌고 말도 곱게 하지 않았다. 허나 그와 마주설 때면 아무리 심술궂게 대하고싶어도 순진하면서도 명랑해보이는 그의 눈길앞에서는 금시 무슨 말을 하려댔는지조차 잃어버리는 나였다. 지금도 그러했다.
(이 바보야…)
나는 속으로 자신을 비웃으며 그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제기되는게 없나 해서…》
제길, 이런 못난이라구야, 기껏 한다는 소리라는게… 마치 무슨 일이라도 진짜 제기되였으면 하는 말투가 아닌가.
하지만 순임은 웃는 얼굴로 나를 마주보는것이였다.
《오늘 저녁에 초급단체총회가 있어요. 이따가 내 찾아가려댔는데…》
그의 눈에는 친절성이 가득 담겨 찰랑이고있었다.
비록 나는 스무살도 채 안된 애숭이였지만 처녀들을 도와준다는 립장으로 신경써오다나니 자연히 초급단체부비서인 순임을 만나면 그것이 인사말처럼 되고말았던것이다.
《그럼 인츰 저녁 먹고 가겠소.》
《그렇게 하세요.》
제 나이에 비해 숙성해보이는 순임은 마을사람들모두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훌륭한 처녀였다.
일에서는 으뜸이요 노래 또한 꾀꼴새 찜쪄먹는 독창가수인데다가 학교때는 최우등생이였댔다니 떠받들리울만도 했다.
그래서인지 순임이앞에 나서면 항상 내가 낮아보이는듯 한 불유쾌한 감정때문에 더욱 그를 주시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낫을 잊어버리고 그냥 내려오게 된것도 순임때문이라면 그렇다고도 말할수 있었다.
내가 처음 농사일을 시작했을 때 그는 나와 함께 일을 하군 하였다.
처음해보는 농사일이라다나니 순임이 혼자 일을 도맡아하다싶이 하였고 그때문에 첫날작업에서는 우리 조가 제일 꼴찌를 하고말았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진 나를 위로하듯 순임은 분조장에게 마치도 자기가 열성적으로 일을 하지 못해 그렇게 된것처럼 자책하였으나 나는 그의 비호나 받는 졸장부가 되고싶지 않았다.
마을앞에 있는 속보판을 지날 때면 얄미울 정도로 환하게 웃고있는 순임의 얼굴이 눈에 안겨와 언젠가는 나도 순임이처럼 아니, 그보다 더 일을 잘해서 본때를 보이리라 마음다지군 하였다.
그래서 남모르는 애도 써왔는데… 나도 이젠 당당하게 제몫을 맡아하게 된 오늘에 이르렀어도 어찌된것인지 만족할만 한 칭찬 한번 받아본적이 없었다.
오늘일만 해도 그랬다. 순임과 나는 한작업조가 되여 1등을 하였다. 허나 으쓱해진 내 귀전에 들리는건 모두 순임을 칭찬하는 소리뿐이였다.
《역시 순임인 일군이거던.》
《정말 부지런하다니까.》
그럴 때면 순임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거야 뭐… 창현동무가 더 수고했는데요.》하고 말머리를 돌리군 하였다. 그때에야 사람들은 《오, 이젠 창현이도 제법이로구나.》, 《그새 퍽 늘었는데…》하고 말할뿐이였다.
나는 순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가 마을사람들로부터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리유의 하나가 바로 겸손한 그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칭찬이 별로 시답지 않은듯 《그까짓것 가지구 뭘 그다지나…》하고 머리를 외로 젖히군 하였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내 엉치를 철썩 갈기며 껄껄 웃음을 터뜨리군 하였다.
암만 생각해봐도 모를 일이였다.
같은 일을 하고 받은 평가와 칭찬이 왜 이렇게 다를가?
아직도 순임과 나사이에는 무엇인가 차이나는것이 있는것 같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그 무엇이.
이런 생각에 골몰하다나니 나는 그만 일하던 곳에 낫을 그냥 놓고 내려오고말았던것이다.
나비가 춤추듯 순임이가 멀찌감치 뛰여간 다음에야 나는 아차하고 내 머리를 한대 쥐여박았다. 내가 왜 그를 찾았댔는지 이제야 생각났기때문이였다. 창고장을 하는 달삼아바이가 바로 순임의 아버지였다. 그를 통해 오늘일을 슬쩍 해치우자던 노릇이 우습게 되고말았던것이다.
벌써부터 아바이앞에 서서 망신당할 일을 생각하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저도 모르게 후ㅡ 한숨을 내쉬는찰나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젊은 녀석이 무슨 한숨이냐? 땅이 다 꺼지겠다.》
머리를 드니 달삼아바이가 눈앞에 서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면구한 웃음을 지으며 아바이한테 꾸벅 머리를 숙여보이고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슬쩍 뺑소니쳤다가 래일쯤에 한번 찾아봐야지.
허나 아바이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며 내 발뒤축을 집게같이 딱 붙드는것이였다.
《임자 아침에 가져간 낫은 어쨌나?》
벌써부터 기신거리는 내 꼴이 미심쩍었던지 아바이는 이리저리 나를 훑어보며 다가오는것이였다.
《저… 오늘 일하다가 그냥 두고 왔기에… 래일 다시 찾아보려구…》
《뭐?》
비자루같은 아바이의 눈섭이 이마우로 번쩍 쳐들리는 바람에 나는 하던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말았다.
《농사일을 몇해나 해봤다고 벌써부터 노라리를 부리나? 당장 가서 찾아오게. 그렇지 않으면…》
곁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흘끔흘끔 바라보자 아바이는 언성을 낮추며 손가락 하나를 쳐들고 내 눈앞에서 흔들었다.
나는 사람들앞에서 망신당하는것이 창피스러워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오늘 밤 무사치 못할줄 알라구.》
아바이의 마지막말은 나에게 좀 이상하게 들렸다.
《혼날줄 알라구.》혹은 《가만두지 않겠네.》 뭐 이러루하게 욕한다면 몰라라 오늘 밤이 뭐 어떻다는건가? 이 아바이한테 단단히 걸려든게 아니야?
《예.》
선뜻 대답하는것이 안심치 않은지 아바이는 나에게서 두번세번 다짐을 받아내는것이였다.
아바이한테서 겨우 빠져나온 나는 분조장의 집으로 걸음을 옮기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제길, 이젠 어쩐다…)
×
대충 저녁을 먹은 다음 나는 토방에 앉아 신발을 고쳐신느라고 한참이나 씨근거렸다. 아무래도 아바이의 말대로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내기는 코집이 틀렸다는 생각이 갈마들었기때문이였다.
《창현이, 어딜 가나?》
밥상을 물리고난 분조장이 물그릇을 들고 내게로 다가오며 묻는 말이였다.
《산에 가지요 뭐.》
퉁명스러운 내 말투가 이상했던지 분조장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입술을 훔치였다.
《날두 어두워오는데 무슨 산타령이냐?》
《그까짓 낫 한가락이 뭐가 돼서…》
동문서답격인 내 말에도 개의치 않고 분조장은 일어나려는 내 팔을 붙잡으려다가 물그릇을 떨굴번 하였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나는 겉으로 성이 난체 했지만 실은 짬짬이 나를 위해주는 분조장의 성의가 싫지 않았다.
분조장으로 말하면 우리 아버지와는 소시적동무여서 내가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제일먼저 맞아준 사람이기도 하였다. 하여 나는 분조장앞에서만은 하고싶은 말은 다하고 이따금 투정도 부리군 하였다.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알지?》
좀 엄한 어조로 꾸중하는 분조장의 말에 나는 그제야 자세를 바로하고 락심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일을 하다가 낫을 두고왔는데 이밤중으로 당장 찾아오라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내 말을 다 듣고난 분조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덜퉁한 버릇은 꼭 고쳐야 해. 헌데 어쩐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아바이만은…》
은근히 편들어줄줄 알았던 분조장마저 이렇게 나오자 나는 그만 맥이 풀려 울타리밖을 나서고말았다.
오죽하면 분조장도 혀를 내두를가. 정말 오늘 밤은 편안치 않겠는데…
얼마 걸음을 옮기지 못했는데 분조장이 뒤따라 나오며 찾는것이였다. 나는 그의 손에 쥐여진 날이 선들선들한 낫이 눈에 띄우자 그 자리에 멈춰서고말았다.
《아니, 이건?》
내 손에 낫을 쥐여주는 분조장을 바라보며 나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옛다, 그 령감성화에 네가 견디겠니? 꿩대신 닭이라고 이거래도 하나 갖다바쳐라.》
《고마워요.》
나는 나를 두고 걱정해주는 분조장이 고마와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창고앞의 외등빛아래서는 달삼아바이가 부러진 호미자루며 삽자루들을 한가득 벌려놓고 열심히 뚝딱거리고있었다.
마치도 무슨 대단한 과학연구사업에라도 열중하는듯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망치질을 하던 아바이는 내 발자국소리에 머리를 들더니 갑자기 놀란 소리를 치는것이였다.
《창현이, 이리루 돌아오라구. 이리루ㅡ》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아바이가 시키는대로 대여섯발자국을 옆으로 비켜서서 둥그렇게 원을 지으며 에돌아 그에게로 다가갔다.
《왜 그럽니까?》
《저길 보라구.》
아바이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푸르싱싱하게 자란 작은 콩포기들이 선들바람에 흐느적이고있었다.
땅이 놀고있는것이 아깝다고 하여 구석구석마다 아바이가 심어놓은것이였다. 그런 콩포기들은 마을구석마다 열군데나 잘되게 있었다.
여느때는 무심히 보아오던 그 콩포기들이 이 순간에는 꼬장꼬장한 아바이의 모습과 어울려 나에게 류다르게 안겨왔다.
(체, 고까짓게 얼마나 되겠다구.)
《밤눈이 밝은데요, 날이 어두웠는데도 날 제꺽 알아보는걸 보니.》
아바이는 그 소리가 싫지 않은지 히죽이 웃으며 내 손에서 낫을 받아들었다.
《일하자는 사람의 눈엔 모든게 다 밝게 보이는 법이라네.》
아바이의 얼굴에 가느다란 미소가 피여올랐다.
《아바이, 오늘 밤은 편히 보내도 되겠지요?》
아바이가 웃는걸 보니 내 마음도 어느 정도 풀려 저도 모르게 롱담이 흘러나갔다.
《아니?!…》
아바이의 눈길이 꼿꼿해지며 겨우 피여났던 미소도 가뭇없이 사라지고말았다.
《날 속이려면 아직 멀었어. 이거야 분조장의 낫이 아닌가?》
(귀신 한가지로구나.)
속이 켕긴 나는 뭐라고 대꾸하려 했으나 말문이 막혀 입을 열수가 없었다.
《잘 알아두라구. 이 마을 농기구들은 내 손을 거치지 않은게 하나도 없어.》
《거 뭐 하나 변상한셈치면 되지 않아요. 별루 큰것도 아닌걸 가지구…》
《그럼 뜨락또르같은걸 잃어버려야 속이 까매서 돌아치겠구만. 그 생각이 틀려먹었어. 크든 작든 다 농장재산이야. 두말말구 어서 가 찾아오게.》
《수자만 맞추면 되지 뭘 그다지나…》
속으로 중얼거리는 내 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아바이는 도끼눈이 되여 따져물었다.
《뭐, 수자가 어쨌다구?》
나는 그만 혀끝을 깨물며 돌아서고말았다.
농장재산을 아끼는 그 심정이 리해되면서도 왜 그런지 아바이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았다.
마치도 숙제검열에서 락제를 맞은 소학교학생마냥 기분이 좋지 않아 걸음을 옮기는데 앞에서 누군가가 널직한 판자를 들고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순임이였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였다. 방금 그의 아버지와 다투고난 뒤에 그 딸과 마주치다니… 피하고싶었으나 발걸음은 그냥 앞으로만 나아갔다.
《창현동무 아니예요?》
순임은 내가 옳다는것을 알고 어둠속에서도 반짝이는 두눈에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벌써 나오는군요. 실은 동무를 찾아가댔어요. 낮에 묶어놓았던 풀단들을 나르자면 아무래도… 회의가 끝나면 우리 다시 정리해놓는게 어때요?》
순간 나는 그의 아버지때문에 옥맺혔던 감정이 단번에 되살아나는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그에게로 한발자국 다가섰다.
순임과 달삼아바이가 나누던 달밤의 이야기, 늘 나와 함께 한작업조가 되려고 은근히 왼심을 쓰던 순임이, 낫 하나를 가지고 무섭게 나를 달궈대던 아바이, 이 모든것이 한데 어우러져 내 머리속에 환영처럼 떠오르는것이였다.
《어쩌면… 동무도 아버지를 닮았구만. 왜 사람들이 동무 아버지보고 꼭자령감이라고들 하는가 했더니…》
깜짝 놀란 순임은 들고있던 판자를 떨어뜨릴번 하였으나 용케 그것을 꼭 붙안고 불쑥 내던진 내 말의 의미를 음미해보는듯싶었다. 그는 내 팔을 나꿔채며 낮으나 도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래요?》
《그건 동무아버지한테나 가서 물어봐!》
《창현동무!》
되알진 목소리에 속이 찔끔했으나 나는 목을 뻣뻣이 쳐들고 그를 마주보았다.
《동무와 우리 아버지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난 여태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해왔어요.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고있는건 사실이지만 동무까지 그 말에 귀를 기울일줄은 생각지 못했군요. 그래도 아버진 동무를 위해 그리도 마음써왔는데… 똑똑히 알아둬요. 아버진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살아왔고 래일도 한모습대로 사실분이예요. 우리 아버지의 말을 고깝게 생각하는 사람은 일하기 싫어하고 건달이나 피우는…》
《그만해. 그럼 순임인 나를?…》
우리의 눈길은 한곳에 멈춰서서 움직일줄 몰랐다. 보이지 않는 전류가 흐르며 귀전에서 윙윙ㅡ 소리를 내는것 같았다.
먼저 고개를 돌린것은 순임이였다.
《늦지 말아요. 인차 회의가 있어요.》
(흥, 그 아버지에 그 딸이로구나.)
멀어져가는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가야 할 곳은 분명 하나였지만 우리 둘은 각기 반대로 멀어져갔다.
나는 밝고 명랑해보이기만 하던 그의 눈이 그처럼 번뜩이며 떨리는것을 처음으로 보게 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