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6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쇠물은 흐른다
원 금 숙
봄이라고는 하지만 북방의 날씨는 쌀쌀했다.
때없이 불어오는 찬바람은 사람들의 얼굴을 선뜩하게 한다. 그러나 해가 둥실 떠오르면 찬기운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봄볕이 따사로이 대지를 어루쓰다듬는다.
길가의 나무가지들에 뾰조름하게 내민 새싹들은 연하고 파란 잎새를 하나, 둘 펼치기 시작한다.
이제 저 연한 잎새들은 풍성한 잎새를 펼칠것이다.
상일은 흥그러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기업소에서는 우리 식의 주체철생산공정에 따르는 시험생산이 진행되게 된다.
기존 강철공업의 복잡한 공정을 뛰여넘으며 처음 해보는 일이여서 어려운것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으나 기업소의 로동계급은 드디여 우리 식 주체철생산체계를 완성했던것이다.
제철제강공정이 일체화된 이 생산방법은 파고철을 전혀 쓰지 않는다. 한번 끓기 시작한 쇠물을 식히지 않고 마지막공정까지 내처 끓이면서 강철을 생산하기때문에 에네르기소비도 대폭 낮추게 된다. 또한 제강시간이 종전보다 줄어들고 전극소비도 훨씬 줄어들게 된다.
바로 이런 제철제강법을 완성하는데 아들 철해가 큰 몫을 담당한것으로 하여 상일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여났다.
벌써 현장에는 소식을 듣고 모여온 기업소의 일군들과 로동자들로 차고넘쳤다.
산소용융로앞에서 기업소의 일군들에게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철해의 모습이 보인다.
별로 의젓해보이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상일의 눈앞에는 아들 철해가 돌격대시절을 마치고 돌아오던 20여년전의 일이 부지중 떠올랐다.
그날은 따스한 봄빛이 대지에 넘쳐나던 봄날이였다.
상일은 시뻘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있는 전기로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기관총이 련발사격하듯 요란하던 송전소리가 붕붕거리며 고르롭게 울리자 상일은 조작실에 대고 소리쳤다.
《장입문을 올려라.》
슬라크를 걷어내야 했던것이다.
장입문이 서서히 열리자 허연 불길이 무언가를 삼킬듯이 황황 뿜어져나왔다.
보호안경으로 펄펄 끓는 쇠물을 바라보는 상일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실거렸다.
용해공들과 함께 춤추듯 날렵하게 슬라크를 걷어내던 상일은 《로장아바이!》하고 찾는 웅글은 목소리에 일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같은 로에서 세포비서로 일하는 인남이였다.
숨이 찬듯 씩씩거리는 인남이의 얼굴은 온통 웃음발이였다.
무슨 일이기에 이다지도 좋아하는지.
상일의 의문을 풀어주려는듯 인남이 손짓하며 말했다.
《아바이, 저기 누가 오나 좀 보십시오.》
두눈을 쪼프리고 인남이 손짓하는 쪽을 바라보던 상일이의 두눈이 점점 커졌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해빛을 온몸에 받으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걸음새가 눈에 익었다.
장갑낀 손으로 보호안경을 올린 상일은 다시금 두눈을 쪼프렸다.
틀림없는 아들 철해였다. 온다온다 하더니 오늘에야 아들이 돌격대시절을 마치고 돌아온것이다.
상일이의 입은 저도 모르게 벙글서하니 벌어졌다.
쭉 빠진 키며 반듯한 이마에 내리드리워진 굽실굽실한 머리카락, 기름한 얼굴에 고집스레 다문 입새로 웃을 때마다 보이는 하얀 덧이…
《아버지,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철해가 반가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상일은 몰라보게 달라진 아들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잘왔다고 떠들썩 웃으며 돌아가던 용해공들이 흩어져간 다음 상일은 철해와 나란히 앉았다.
《그래 앓지는 않았니?》
허리를 꼿꼿이 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철해를 상일은 웃으며 눌러앉혔다.
《보다싶이 전 언제나 건강합니다.》
《그래? 음, 앞으론 어떻게 할 생각이냐?》
고뿌에 콩우유를 떠가지고와서 철해에게 내밀던 인남이가 빙긋이 웃었다.
《참, 아바이두…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겠습니다. 아무렴 용해공을 하던 사람이 다른데 가겠습니까?》
상일은 고뿌를 권하는 철해를 정겹게 바라보았다.
《너나 마셔라.》
그는 고개를 젖히고 고뿌를 비여버리는 철해의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아버지의 간절한 눈빛을 일별하고난 철해는 입을 열었다.
《오다가 로동과에 먼저 들렸댔습니다. 거기서 용해공으로…》
철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남은 싱긋 웃으며 철해의 두손을 와락 잡아쥐더니 마구 흔들어댔다.
《아바이, 용해장을 비울가봐 늘 걱정이 산같더니 이젠 한시름 덜게 되였습니다.》
둥그스레한 얼굴에 시종 웃음을 거두지 못하는 인남이와 그에게 두손을 맡긴채 벙글벙글 웃기만 하는 철해를 바라보는 상일의 얼굴에는 서서히 웃음이 사라지고 어두운 그늘이 비끼였다.
멍하니 전기로만 바라보는 그는 얼핏 보면 꼭 돌부처같았다.
잔뜩 좁혀진 이마에 밭고랑처럼 얼기설기 건너간 주름살이며 활등처럼 구부러진채 좀처럼 펴지지 않는 숱진 장미아래 실망의 빛이 한껏 어린 그의 두눈은 마음속의 어두운 그늘을 엿보게 했다.
전기로의 불빛에 상일이의 얼굴은 컴컴해지기도 하고 밝아지기도 하였으나 표정만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상일이는 《아버지!》하며 조심스레 불을 권하는 철해의 손을 말없이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 로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의아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인남이와 철해에게로 스적스적 다가갔다.
상일은 가볍게 한숨을 내긋고나서 철해의 실팍한 어깨에 투박한 손을 얹었다.
《기차를 타구오느라 피곤할텐데 오늘은 가서 푹 쉬거라.》
상일은 맥없이 손을 내리드리우고 터벌터벌 로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
휴계실에 들어온 상일은 애꿏은 담배만 연거퍼 태웠다.
생각할수록 가슴은 점점 답답해지기만 했다.
상일은 탈의함문을 열고 두툼한 수첩을 꺼내들었다.
몇장을 채 못 넘긴 그는 소리가 나게 탁 덮어버리고는 입을 쩝쩝 다시였다.
손때가 올라 반들거리는 수첩을 갓난아기 다루듯 조심히 어루쓸어만지는 그의 입에서는 휘파람소리같은 한숨이 새여나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창너머로 용해장을 바라보았다.
목에 건 수건을 기발처럼 날리며 일하는 철해와 용해공들의 모습에서 그는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내려쪼이는 해빛과 전기로에서 나는 열로 하여 용해장은 달라올랐다.
용해공들이 땀흘리며 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때 인남이가 휴계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말없이 상일의 곁에 앉아 그의 손에 들려있는 수첩을 받아 한장한장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바이, 이젠 이 수첩을 철해에게 넘겨주십시오.》
상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난 그 애가 이 애비처럼 될가봐 겁이 납니다.》
상일은 아연해서 쳐다보는 인남이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세포비서동무, 아무리 좋은 착상이래두 수첩에 자꾸 써넣기만 하면 뭘합니까? 실현되는건 별루 없이 말입니다.》
《그럼 아바인…》
갑자기 벌컥 열리는 문소리에 인남의 말은 중도에서 허리를 잘리웠다.
《로장아바이, 출강하잡니다.》
어두워진 두사람의 안색을 띄여본 용해공은 들어오던 때처럼 씽하니 바람을 일쿠며 나가버렸다.
두사람은 말없이 일어나 휴계실을 나섰다.
전기로의 송전소리와 기중기의 동음소리가 한데 어울려 경쾌하게 울려왔다.
출강을 알리는 호각소리에 이어 시뻘건 쇠물이 거침없이 쏟아져내렸다. 순간 축포마냥 불찌들이 아름답게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사방으로 날아떨어지고 사위는 온통 은백색의 화광으로 물들어버렸다.
조괴장에 가서 시뻘건 강편이 나오는 모습을 흐뭇이 바라보던 상일은 고철그릇을 문 기중기가 움직이는것을 보고 허겁지겁 뛰여왔다.
《아니, 벌써 보수를 다 했냐?》
그 말에 용해공들은 히죽 웃었다.
《빨리 한가마 또 해야지요.》
장입문으로 로안을 들여다보던 상일은 계단을 톺아 로우에 올라섰다.
철해가 뒤따랐다.
《이쪽은 누가 했느냐?》
상일은 오른쪽을 가리켰다.
《제가 했습니다.》
뜨거운 열을 막느라 한손을 쳐들고 하는 철해의 말이였다.
상일은 곱지 않은 눈길로 철해를 치떠보았다.
《저렇게 하면 가마가 쓰게 되냐? 다시 해라.》
그러자 밑에서 쨍쨍한 목소리가 날아올랐다.
《다시 하다니요? 시간을 단축하느라고 불이 나게 해제꼈는데…》
상일은 계단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음, 아직 설었어.》
그 말에 용해공들의 두눈이 퀭해졌다.
《아니, 쇠물이 말입니까?》
상일은 삽을 들고 다시 계단을 오르며 그때까지도 로우에 그냥 서있는 철해를 흘깃 올려다보았다.
《이 머리통이 말이야. 쇠물에서 찌꺼기는 빡빡 긁어내면서두 이 머리속의 낡은것은 왜 긁어내지 못하나?》
그제야 영문을 알아차린듯 긴장해졌던 용해공들의 얼굴에 웃음이 흔들거렸다.
상일은 흐하거리는 용해공들속에 끼여 다시 로보수를 해나갔다.
그래서야 철해는 상일의 손에서 삽을 앗아들고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시뻘겋게 단 가마에 누런색의 크링카분말이 날아들적마다 칙칙 소리를 내며 흰김이 뽀얗게 솟구쳐놀라왔다.
용해공들의 얼굴은 순간에 잘 익은 꽈리빛이 되였고 머리칼은 땀에 젖어들었다.
《그만하고 장입하게나.》
힐끔힐끔 상일의 얼굴을 쳐다보며 삽질을 하던 용해공들은 그제서야 서로 마주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달아오른 얼굴들에 웃음을 띠우며 호각을 불어 기중기를 부르며 분주히 돌아갔다.
《로장아바이, 장입하군 인차 송전해두 되지요?》
용해공이 아직도 무엇이 안심치 않은지 로안을 깐깐히 살펴보는 상일에게 소리쳤다.
《안돼!》
상일이의 성난 눈길이 자기에게 쏠리자 그의 목은 삽시에 자라목이 되여버렸다.
상일은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을 보자 이내 음성을 낮추었다.
《로수리공을 데려다 로를 살펴보게 해라.》
《또 프로수를 떼우게 됐네.》
응석이 어린 그의 말에 상일이의 얼굴은 삽시에 이그러졌다.
《이녀석, 쇠물 끓이는 일이 지연되는것보다 프로수 떼우는 일이 더 가슴아프냐? 그러게 내 뭐라더냐? 힘으로 하려는 그 사상은 버리구 머리쓸 생각을 하라구. 그게 진짜 시간단축하는거야.》
인남이가 한눈을 끔뻑거리자 못박힌듯 서있던 철해가 상일을 힐끗 쳐다보고는 모자를 벗어들고 달려갔다.
《로수리공은 4호로에 있다.》
상일은 뚝뚝해진 소리로 일렀다. 그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뛰여가는 철해의 뒤모습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상일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직장일군들의 끈덕진 권고에 못이겨 료양소에 갔다오는 길이였다.
고작 한달 가있었는데도 도무지 사는것 같지 않았다.
멀리서 기업소의 형체가 보이자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여오르고 걸음도 자연히 빨라졌다.
얼마나 해빛이 내려쪼이는지 불이 뚝뚝 떨어지는것 같았다. 그 뜨거운 열에 한껏 달아오른 포장도로도, 상일의 입에서도 단내가 확확 풍겼다.
그래도 늦춰지지 않던 상일의 걸음새는 정문앞에 써놓은 대문짝만 한 속보앞에서 차츰 떠졌다.
《김철해작업반 월계획 초과수행!》이라는 글발이 방금 쓴듯 해빛에 번들거렸다.
상일의 입가에는 흐뭇한 웃음이 비꼈다.
어느덧 아들이 로에 배치받아온지도 1년이 가까와온다.
그새 철해는 반장으로 일하게 되였다.
하지만 상일은 강가에 아이를 내놓은것 같은게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데 계획을 수행하였다니 기쁘지 않을수 없었다.
상일은 몇줄 안되는 속보를 몇번이나 내리훑었다.
《아바이가 기분이 몹시 좋은가 보군요.》
《그런데 마지막차진 채 받지 못했대.》
《무슨 시험용해를 하댔다는데 그게 떡먹듯 그리 쉽겠어?》
《그게 얼마나 된다구. 그래두 주강품으로 부었으니 망정이지 계획이 다 뭐야. 또 저 아바이가 가만있을것 같애?》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에 상일은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로에서 일하는 용해공들이였다.
그들은 상일이와 눈길이 마주치자 어줍게 웃으며 황황히 자리를 떴다.
상일은 속보판을 다시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걸음을 내짚었다. 지꿏게도 열을 내뿜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자 때를 만난듯 어둠이 발볌발볌 다가들었다.
어두운 마음으로 직장에 들어선 상일은 전기로에서 치솟는 불길을 보자 언제 그랬던가싶게 나는듯이 계단을 올라섰다.
상일은 알아본 용해공들이 웃으며 달려왔다.
그새 몸이 퍽 좋아졌다고, 더 젊어진것 같다고 떠드는 용해공들속에서 왜선지 철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일의 속마음을 짚어본듯 인남이 웃으며 말했다.
《계획을 수행했다고 영양제식당에서 찾아서 철해의 작업반원들이 모두 갔습니다. 축하를 해준다는것 같습니다.》
《축하를?…》
되묻는 상일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갔다.
상일은 인남의 손에서 말없이 삽을 앗아들고 로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쉴새없이 탄을 퍼넣었다.
불길이 점점 솟구칠수록 상일의 마음도 점점 끓어올랐다.
다급히 다가온 인남이가 삽을 빼앗자 그제서야 상일은 허리를 폈다.
먼발치에서 다급히 뛰여오는 철해의 모습이 눈에 뜨이자 그의 이마살은 대뜸 찌프려졌다.
상일은 아무 말도 없이 휴계실로 향했다.
철해와 인남이가 뒤따랐다.
휴계실에 들어선 인남은 의자에 댕그라니 놓인 상일의 가방을 보며 말했다.
《아니, 집에두 들리지 않구 곧장 나오셨습니까? 참 성미두…》
《그래 마지막차지가 어떻게 되였다구, 응? 그리구두 상앞에 마주앉아?》
인남의 말은 안중에도 없이 터쳐지는 상일의 노한 목소리에 철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저, 아버지의 수첩에 쓴것을 보고 했는데 온도가 잘 오르지 않아서…》
상일은 벌써 한김이 빠진듯 한 철해의 말에 눈을 치떴다.
《그렇게 주먹치기루 하라구 이 애비가 수첩을 준줄 아느냐, 응? 이 애빈 그렇게 할줄 몰라서 여적 안하구있는줄 아니? 아직 기술적으로 걸린게 많아서 여태 안해왔어. 그런데 너는 그걸 알면서도 고집을 써?》
상일은 끙끙 갑자르며 다그었다.
《수첩을 인내라!》
철해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여 공손히 내밀었다. 상일은 수첩을 받아 탈의함에 집어넣었다.
《아버지두 참… 한차지 다 버린것두 아닌데 무슨 큰일이나 난것처럼 그럽니까?》
그 말에 상일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뭐라구?…》
불끈 쳐들었던 상일이의 주먹은 허공에서 굳어지더니 맥없이 툭 내리드리워졌다.
《네 주머니걸루 끓인 쇠물이라면 그렇게 말하겠냐?》
맥풀린 상일이의 그 말에 철해는 숙이고있던 고개를 버쩍 쳐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실망의 빛이 한껏 어린 아버지의 눈동자가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던것이다.
《아바이!》
상일은 자기의 팔을 조심스레 잡아당기는 인남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까짓거라구? 한톤의 강재도 그리워하던 50년대의 사람들이 그 말을 들었으면 어떠하였겠니?》
상일은 숨을 죽이고 그린듯이 서있는 철해를 시름겨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똑바로 알아둬라. 농군들이 땅에다 자기의 량심을 묻듯이 우린 우리가 쏟는 한차지한차지 쇠물에 자기의 량심을 묻어야 한다.》
《아바이, 그만하십시오.》
인남의 말에 철해는 서있기 뭣한듯 상일을 곁눈질하더니 슬그머니 나갔다.
상일은 된서리를 맞은듯 후줄근해서 나가는 철해의 뒤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바이, 계획을 수행하느라 애쓰며 뛰여다닌 사람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게 뭡니까? 아무렴 철해가…》
《아니요. 그 녀석 눈길이 떳떳치 못한걸 보니 딴맘이 있었습니다. 아마 온도가 채 오르지 않은걸 다른 교대에 넘겨주면 계획수행을 못할가봐 그런것 같습니다.》
《아바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번만은 좀…》
상일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한번 용서해주면 두번, 세번 해줘야 합니다. 만약 오늘을 눈감아주면 래일은 수백톤의 쇠물을 버리고도 꿈만해할겁니다.》
《그럼 로장아바인 어쩌자는겁니까?》
잔뜩 긴장해진 인남의 얼굴을 보고 상일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있다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직장에 제기해서 철해에게 처벌을 주자는겁니다.》
《아니, 처벌이요?》
인남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 서슬에 인남이의 발치에서 의자가 나딩굴었다.
상일은 넘어진 의자를 바로잡아놓았다.
《강재 한톤을 제 주머니돈 몇푼만큼도 아까와하지 않는 그런 녀석들을 위해서라두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그런 녀석들을 그냥 두면 나라살림살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불을 다를 자격조차 없소.》
《아바이!》
목갈린 인남의 그 부름에 상일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얼굴엔 드팀없을 결심이 어려있었다.
아들때문에 밤을 꼬박 새운 상일은 일찌기 집을 나섰다. 엊저녁에도 철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안해에게 잔소리를 해가며 밥을 해가지고 나오는 길이였다.
용해장에 들어선 상일은 철해부터 찾아보았다.
그런데 철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로장동지가 아침일찍 나오셨구만요.》
상일이 고개를 돌리니 인남이였다.
인남이 알아볼가봐 상일은 벌겋게 충혈된 두눈을 내리깔았다. 허나 인남의 눈은 속일수 없었다.
《철해때문에 밤을 새운 모양이구만요. 그런데 손에 든건 뭡니까?》
상일은 밥보자기를 내려다보며 멋적게 웃었다.
《그 녀석 성질에 영양제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것 같지 않아서…》
《아바이두 참… 좀전에 공원쪽으로 가는것 같습니다.》
상일은 가슴이 무둑해짐을 느꼈다.
하긴 생각도 많고 혼자 있고싶기도 할테지.
상일은 밥보자기를 들고 제 먼저 앞서는 인남의 뒤를 따랐다.
실실이 드리운 버드나무가지들은 선들바람에 몸을 맡긴채 가볍게 설레이고있었다.
《아, 저기 있군요.》
철해를 먼저 띄여본 인남이가 소리쳤다.
철해는 무슨 생각에 그리 옴했는지 두사람이 다가오는것도 느끼지 못한채 의자에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이들이 한두발자국앞에까지 이르러서야 철해는 인기척을 느끼고 머리를 들어 바라보더니 엉거주춤 일어섰다.
흥분에 젖어 달아오른 철해의 얼굴을 일별하고나서 상일은 나직이 말했다.
《어서 앉아라.》
하지만 철해는 듣지 못한듯 한곳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그 말이 사실입니까?》
《?…》
밑도 끝도 없이 묻는 아들의 물음에 상일은 얼떠름한채 철해를 바라보기만 했다.
철해는 한결 더 높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모집과에 전화를 했다는것 말입니다. 사고요, 처벌이요 하지만 실은 반장을 그만두게 하고 이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한다는것 말입니다?》
그제야 상일은 깨도가 되는듯 《음―》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흐느끼는듯 한 목소리는 어쩐지 아들의 목소리같지 않았다.
《전 제가 기업소에 배치되여왔을 때 아버지를 만나보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기뻐할줄 알았던 아버지가 오히려 섭섭해하는것을 보고 아버지가 년로보장나이가 다 되였으니 그럴거라고 생각하면서 대신 나라두 일을 더 많이 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자구 생각했댔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보니 아버지의 마음은…》
《그만해라!》
갑작스레 터치는 상일이의 노한 소리에 땅이 다 움씰거리는듯 했다.
얼굴이 수수떡빛이 되여 씨근거리던 철해는 인남이와 눈길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고 씨엉씨엉 걸어갔다.
그의 발밑에서는 해빛에 바싹 마른 가랑잎들이 와삭와삭 소리를 냈다. 그 발자국소리는 점점 더 공명되여 상일이의 흉벽을 쾅쾅 울려주었다.
상일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듯 그냥 서있었다.
왜선지 갑자기 팔다리가 매시시하고 가슴이 답답해났다.
그는 목깃을 헤쳐놓으며 갑자기 컴컴해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우우 소리를 지르며 바람이 불어왔다.
큰 나무들에서 나무잎들이 떨어져 바람결에 나딩굴었다.
상일은 누런 잎사귀들이 점점이 떨어진 못가의 수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바이, 비가 올것 같은데 들어갑시다.》
상일은 그제야 인남의 존재를 깨달은듯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지나가는 비겠지요.》
상일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몇방울 떨어지던 비가 멎고 컴컴하던 하늘의 한 귀퉁이에 거울쪼박같은 새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바이, 그럼 의자에라도 좀 앉읍시다.》
상일은 오래 서있은탓에 뻣뻣해진 두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였다. 다정히 부축해주는 인남의 손에서 밥보자기가 데룽거리는것을 보자 상일은 목구멍으로 뜨거운것이 넘어가는것을 느꼈다.
《아바이, 안됐습니다. 내가 일을 쓰게 못하다나니 이런 일이…》
한결 밝아진 얼굴로 상일은 인남을 건너다 보았다.
《원, 별소릴. 너무 마음쓰지 마시우. 그건 다 사실이니까요.》
《뭐라구요?》
상일은 놀라움에 몸을 반쯤 일으키는 인남의 두손을 꾸당겨 자리에 앉혔다.
《비서동문 우리 철해가 이 애비의 뒤를 이어 용해공이나 되면 그만이라구 생각하십니까?》
《?…》
《난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보시고 안색을 흐리시며 모든 일을 헐하게 하도록 하라고 당부하시던 우리 장군님의 그 말씀을 평생 잊을것 같지 않소. 그저 늘 해오던 일이고 달리는 할수 없는 일이겠거니 하고 기술적문제를 풀 생각은 못하고 세월만 보낸것이 가슴이 아프오.》
《아바이!》
《그렇다구 이 나이에 선진과학기술을 배운다는건 힘에 부치구 그래서 내 아들이 돌격대에서 대학추천을 받고 오길 은근히 기대했댔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안됐지. 그래서 한 일년 끼구 일하면서 배워야겠다는걸 느끼도록 하려구 왼심 썼습니다. 그 애가 스스로 대학에 가겠다고 말하길 기다렸지요. 수첩도 그래서 주었댔구요. 그런데 아직 머리쓸 생각은 하지 않구 제 뚝심과 요행수만 믿고있군요.》
《그런걸 난 또 괜히 아바일 오해했댔습니다. 철해에 대한 아바이의 립장을 놓고 생각이 많았었습니다.》
웃몸을 제끼고 후련하게 웃는 인남을 바라보는 상일의 속눈섭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지금은 우리가 뚝심으로 쇠물을 끓이던 때와는 다르지요. 그때 우리에겐 오직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겠다는 그 마음과 자기 힘밖에 없었지요. 우리가 아는것이 많았으면 수령님께 더 큰 기쁨을 드릴수 있었겠는데… 난 이게 평생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아바이, 철해뿐아니라 우리 로의 용해공들을 다 공부시킵시다. 무조건!》
상일은 마지막말마디에 너무 힘을 준탓에 아마에 피줄이 불뚝 일어선 인남의 두손을 와락 잡아쥐였다.
《세포비서동무!》
두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밝게 웃었다.
걸걸하고 석쉼한 웃음소리가 한데 어울려 맑고 푸른 하늘가로 울려퍼졌다.
그후 철해는 아버지의 진심을 리해하게 되였고 대학에 가서 공부하게 되였다.
용해공들도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였다. 교원들이 학생들을 찾아 현지에 내려와서 배워주었다.
진심으로 배워주고 열심히 배우는 과정에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당당한 기사들로 자라나 그처럼 어렵게 생각하던 기술적인 문제들을 한고리한고리씩 풀어나갔다.
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주체철에 의한 강철생산방법까지 완성하게 되였다.…
드디여 회전로를 거쳐 산소용융로에서 받아문 쇠물을 끓여낸 정련로에서 사품치며 쇠물이 쏟아져내린다.
아, 얼마나 고대해오던 이 순간인가.
서로서로 얼싸안고 울고 웃으며 만세를 부른다.
《아버지!》
어느새 상일을 알아본 철해가 달려온다. 그의 눈에서 물기가 반짝인다.
상일은 좀전에 지나온 길가의 나무가지들에 뾰조롬하게 돋아난 새싹들을 생각했다.
따사로운 해빛이 없다면 그 연약한 새싹들이 어떻게 무성한 잎새를 펼칠수 있겠는가.
그렇다, 마를줄 모르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그 사랑이 있어 오늘은 아들 철해도 나라의 기둥으로 억세게 자라나 쇠물가정의 대를 꿋꿋이 이어가는것이 아닌가.
저 멀리 동쪽하늘에 노을이 불탄다.
《꼭 쇠물을 쏟아놓은것 같구나.》
상일의 입에서는 부지중 탄성이 새여나왔다.
《철해야, 우리 저 노을처럼 영원히 불타는 쇠물을 더 많이 끓이자.》
《그러자요.》
그들의 마음인양 주홍빛노을은 더욱더 불타오르며 평양하늘가로 서서히 퍼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