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8호에 실린 글

 

   단 편 소 설

《철벽 1.0》

                                                          한 경 호

 

시험기간 밤을 새우다싶이 한 열성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 많은 내용들을 통채로 외우다싶이 한 머리의 덕이여선지 보통점수를 겨우 면하긴 하였는데 수치감은 그의 얼굴을 뜨끈뜨끈하게 만들었다.

시험이 있은 다음날이였다. 지하구조학을 가르치는 교원이 교실에 들어섰다. 이름은 리재명, 지성이네 학급의 담임이다. 50고개를 넘겼지만 흰오리가 전혀 섞이지 않은 까만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는 갱핏한 얼굴에 한점의 웃음도 띄우지 않고 학생들을 이윽히 둘러보았다.

어떤 학생에게는 뜯어보는듯 한 눈길을 던졌는데 지성은 그 눈길이 닿기 전에 고개를 숙여버렸다.

《송이학생.》

《예!》

대답소리는 역시 목금악기의 음향을 냈다. 그는 어떤 질문에서나 5점을 맞군 했다.

《한가지 물읍시다. 동무는 어떻게 되여 우리 학과를 지망했소?》

뜻밖의 질문인지 처녀의 말이 약간 흐려졌다.

《저…》

지성은 생각했다. 교원의 저 질문이 너에게 향해졌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했겠는가. … 사실 우리 과는 남학생들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과다. 땅속에서 구조물을 건설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그것을 체험한 사람만이 알것이다. 지성은 군사복무기간 수력발전소 물길굴공사에 여러번 참가했었다. 암반, 석수, 예견치 못했던 공동과 류사층… 때로는 전우들에게 들이닥치는 위험을 맞받아 서슴없이 자기 몸을 내대기도 하였다. 그 시절 시공참모동지는 자주 이런 말을 해주었다.

《땅속의 건설이야말로 남자들이 해볼만 한 일이 아닐가. 물길굴뿐만 아니지. 지하철도를 비롯한 지하구조물들!… 생각만 해도 난 막 피가 뛴다니까. 지성인 어때, 동무야 머리도 좋은데 우리의 땅속에 자기의 창조물을 가득 채워놓고싶은 생각은 없어?… 물론 힘들지. 그러나 우린 우리의 땅속을 몽땅 우리의것으로 만들어야 해, 문자그대로 우리의것으로!》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헐하게, 어떻게 하면 더 든든하면서도 단 한번의 헛방도 없이 로력과 자재를 쓰게 할수 있을가. 그렇게 되면 건설자들은 누구나 다 환성을 터칠것이고 그런 공법을 찾아낸 사람을 업고다니겠다고 할것이다.

이런 생각은 지성의 머리속에 거의 매일처럼 들어와앉았고 마침내는 그를 이 길로 이끌어왔다.

혼자생각에 깊숙이 빠져있던 지성은 속삭임처럼 조용히 울리는 송이의 말이 언제 시작되였는지 알지 못하고말았다.

《저의 할아버지는 지하철도건설에 참가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주 얘기해주군 하셨습니다. 군인건설자들의 굴할줄 모르는 투쟁모습이며 중중첩첩 막아나서던 난관들이며… 그리구 또 세계적인 도시로 더욱 웅장화려해질 평양의 모습에 대해서… 그래서 전 결심을 다졌습니다. 땅속의 정복자로 살리라고말입니다.》

교실의 공기는 물을 뿌린듯 정화되였다.

지성은 옆에 앉은 동무의 팔꿈치가 자기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려서야 교원의 지명을 받았다는것을 알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무는 대학에 왜 왔습니까?》

교원의 어조는 낮으면서도 준절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질책처럼 느껴진다.

지성은 화로를 뒤집어쓰는것 같았지만 미처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침묵할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험에서 보통생까지 나타난건 참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지금 일부 동무들속에서는 제대군인이라는 조건에 빙자하면서 제딴의 위안을 가지기도 한다는데 이것은 보통점수를 받은것보다 더 부끄러운것입니다. 그런 위안은 제대군인들에 대한 모독이며 자신에 대한 허무입니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으면서 대학공부를 계속한다는건 말이 되지 않소. 지성동무, 어떻소?》

지성은 교원의 추궁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꽉 다물려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긴 무슨 말로 변명한단 말인가. 최우등생중에는 제대군인대학생도 있지 않는가.

《수치를 감수만 하고있을 때가 아니란걸 명심하시오. 그럭저럭 보통수준의 힘이나 내가지고서는 최첨단돌파라는 시대의 요구에 절대로 따라서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맥을 추지 못할 동무들이 있다면 난 묻고싶소, 대학졸업증이 꼭 있어야 하겠는가고.》

총화모임이 끝난지도 퍼그나 시간이 흘렀지만 지성은 혼자 교실에 남아있었다. 자신에 대한 타매가 전신을 휩쓰는 속에 분명치 못한 반발심이 꾸역꾸역 치밀어올랐다. 나는 건달을 부리지 않았다, 있는 힘껏 달렸다, 그리고 대학졸업증 그자체만을 바란적은 한번도 없다, 그런 쓸개빠진 생각을 할 사람이 우리 학급에 과연 있기나 한가. …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반발심이 차츰 사위여가자 담임교원이 꼭 그런 식으로 지적한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내가 과연 앞선 동무들을 따라잡을수 있겠는가 하는 좌절감이 또다시 지꿎게 갈마들었다.

책상우에 한손을 세워 이마를 고이고있던 그는 다급히 자세를 수습하며 일어섰다. 교실에 언제 들어왔는지 담임교원이 지성이앞에 와 내려다보고있었던것이다.

《내 말이 내려가지 않소?》

담담하면서도 추궁하는듯 한 어조가 느껴지는 물음이였다.

《…》

담임교원은 대답을 못하고있는 지성을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다가 《반성은 필요한거요. 그러나 시간을 아껴 공부에 전력하는건 더욱 중요하오.》하고 말그루를 박더니 출입문을 향해 돌아섰다.

《선생님, 저…》

담임교원은 선자리에서 머리만 지성에게 돌리였다.

그러나 지성은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지조차 잘 생각나지 않았다. 담임교원은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말했다.

《할말이 있으면 후에 하고 지금은 정문에 나가 보오. 동무가 복무하던 부대에서 군관동무가 찾아온것 같소.》

《예?》

《빨리 나가보오.》

《알겠습니다!》

지성은 반가운 생각에 나는듯이 몇걸음 달려나가다가 돌아서서 《고맙습니다, 선생님.》하고 말했다.

그를 찾아온 사람은 부대 시공참모였다.

지성에게 일과 함께 지하구조물시공에 대해 깨우쳐주고 제대되면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하던 사람이였다. 지성에게는 형님과도 같았고 선생님과도 같았다.

얼마나 반가왔던지 모른다.

지성은 그에게 안타까움을 하소연처럼 펼쳐놓았다. 지어 나는 학과를 옮길 생각까지 한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시공참모는 그의 안타까움을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는 노기가 떠올랐다.

《그게 진심이요? 아니면 엇드레질이요?》

《참모동지, 제가 오죽하면…》

《틀렸소! 동무의 정신상태로는 아무 학과에 가도 보통생수준을 넘을수 없겠소!》

지성은 속이 후끈후끈 달았다. 내가 뭐 흔들거리며 살아가는줄 아는가. 그러나 시공참모의 말은 가차없었다.

《믿기 어렵소. 동무야 제대군인이 아닌가. 물길굴공사에도 여러번 참가해보았구. 그렇다면 이 부문에서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해내는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절박한 일인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있을텐데. 안 그렇소, 지성동무?》

참모의 목소리는 갈려나오기까지 했다. 침통해하는 긴 숨소리가 들려오자 지성은 자기의 얼굴과 목덜미가 온통 벌개지는것을 느꼈다.

《말하기조차 부끄럽소! 무엇이 그다지도 겁나는가. 동문 그래 군사복무시절에도 명령을 받으면 해보는껏 해보다가 물러나앉군 했는가.》

지성은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 말씀은… 모욕입니다.》

《무엇이 모욕이요? 동문 지금 조국이 준 새로운 명령을 받아안은 병사란말이요. 동무에겐 힘이 없는게 아니요. 신심이 없고 각오가 없소! 자기의 힘을 믿으며 그 힘을 부단히 키워나가야지! 제힘으로는 어쩔수 없다고 주저앉으면 영영 일떠서지 못한다는걸 동무가 그래 모를 사람인가!》

지성은 아무 말도 못했다. 시공참모의 마지막말은 더우기 머리에 못박혔다.

《동무는 군복을 벗더니 변질된것 같소! 한번 군인선서를 했으면 한생을 군인으로 살아야지!》

이슥한 밤, 좀해서는 지성이 공부하는 방에 들어서지 않던 아버지가 탁상등이 비치는 책상옆의 쏘파에 몸을 무겁게 실었다.

《지성아, 기운을 내야 한다. 남들의 호평을 받기를 바랐다거나 개인의 리익만을 위해서 가다듬었던 힘이라면 간혹 진해버릴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라의 리익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겠다는 맹세는 그 어떤 사소한 좌절감 같은것도 절대로 허용치 않으리라 본다. 옛 상관의 말이 옳다. 넌 조국의 명령을 받은 병사이다.》

아버지가 나간 다음에도 지성의 방에서는 온밤 불이 켜져있었다. 리지성! 정신차리라! 네가 지금 어느 지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지 아는가. 네가 과연 너 하나의 자격증이나 바라고 대학에 왔단 말이냐.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러나 넌 그것을 부정할수 없게 처신하고있지 않는가. … 옛 상관의 말이 천만번 옳다. 제힘으로는 어쩔수 없다고 주저앉으면 영영 그 모양, 그 꼴이 아니겠느냐. 한생을 군인으로 살아야 한다. 제힘을 믿고 일떠서며 제힘을 부단히 키우라. 힘, 다시말하여 실력을 부단히 높여나가자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오직 나라에 보탬을 주겠다는 그 한마음으로 심장을 활활 태워야 한다. 그렇다, 애국심이 없으면 실력도 높일수 없고 실력이 없으면 애국도 할수 없다. 병사 리지성, 너는 명령을 받았다. 돌격하라, 용감하게! 완강하게!

지성은 일과표부터 다시 세웠다. 기상시간은 새벽 4시!… 취침시간은 밝히지 않았다. 그 란에는 《그날 학습과제 완전수행》이라는 글자가 다른 글자나 수자들보다 더 두드러지게 자리를 잡고있었다. 일과표의 제일 웃머리에는 붉은색으로 쓴 글이 한자한자 불빛같은것을 내뿜고있었다. 《학습ㅡ 이는 곧 명령수행이다!》

그는 일과표를 하루도 어김이 없이 집행해나갔다. 그날 수행해야 할 과제중에 혼자의 씨름질로는 승산이 보이지 않는것이 있을 때에는 그것부터 동무들의 방조를 받아 리해를 하고나서 집에 돌아오군 하였다. 집에 들어서는 시간이 몹시 늦을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아들의 건강을 념려하는 어머니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러나 건강쯤은 문제가 아니였다. 중경기선수같은 든든한 체격에다 또 한창나이의 청춘이 아닌가. 어머니의 념려도 능히 가라앉힐수 있었다. 인제는 말하기에 지쳤는지 눈빛으로만 걱정을 나타내신다. 문제는 바로 학습방조를 주는 동무들에게 참으로 미안스럽다는 그것이였다.

제 공부만 하재도 바쁘겠는데 지성을 위해 늦도록 시간을 내여주니 말이다. 너무 뒤떨어졌다. 이렇게까지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진 않을것인데…

《송이동무, 나 좀…》

처녀가 새별눈을 반짝이며 다가온다.

《오늘 강의가 끝나면 한시간만 좀 내줄수 없나 해서…》

새별눈은 그 리유를 알았다는듯 살풋이 감겼다 떠진다.

지성은 강의가 끝나기 바쁘게 송이의 거동을 살핀다. 이런 시각엔 점심식사시간을 빼앗는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교실이 조용해지자 송이가 지성의 책상으로 다가온다. 지성은 한초라도 놓칠세라 급급히 학습장을 펼쳐보인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새별눈이 《아니? 지성동진 정말 이 문제를 리해 못해서 그럽니까?》하는듯 깜박거린다. 그럴 때면 지성은 귀바퀴까지 따가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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