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8호에 실린 글

 

   단 편 소 설

《철 벽  1.0》

                                                                        한 경 호

 

강좌실문이 열리며 한 대학생이 복도로 나왔다. 큰 키에 중경기선수처럼 든든한 체구를 가진 청년이였다. 그는 잠시 문밖에 서서 무슨 생각엔가 깊이 잠겨있었다. 짙은 눈섭밑의 두눈에서는 그 어떤 고뇌에 풍덩 빠져든듯 한 빛이 흘렀는데 이따금 힘있게 다물리는 입에서는 투지만만한 기운이 뿜어나오기도 한다.

얼마 안있어 그는 힘찬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계단을 껑충껑충 반달음쳐 내려갔다. 마주 올라오던 녀학생들이 다급히 비켜서면서 눈총을 쏘는것도 모르고 활개를 더 크게 치다싶이하며 청사밖으로 나섰다.

머리를 젖히고 가없이 펼쳐진 하늘을 정을 담아 바라보던 그는 교내정원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녁시간이여서 그런지 정원에는 의자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는 두세명의 대학생들만 눈에 뜨일뿐이다. 정원의 감나무들에서는 잎사귀가 미풍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서켠하늘가에서는 아름다운 저녁해가 대학의 창문들에 자기의 빛을 아낌없이 보내주고있다.

그는 이 대학의 4학년 학생인 리지성이다. 그의 귀전에는 방금전 강좌실에서 나누던 말들이 다시금 크게 공명되여 들려왔다.

《지성동무, 동문 그래 이 착상의 금새를 알고는 있소?》

다소 엄하게 울리는 강좌장선생의 목소리였다. 평시에도 찌프릴사 한 표정과 엄한 요구성으로써 학생들을 긴장시키군 하는 그였다.

지성은 인츰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착상이란 무릇 남들이 아직 내놓지 못한 기발한것이 옳은가 하는것과 함께 효률 즉 얼마만 한 실용가치가 있는것인가. 다시말하여 나라에 얼마만 한 리익을 줄수 있는것인가가 따져지게 되는것이다.

탁!ㅡ

착상안이 씌여진 종이장우에 강좌장선생이 가볍게 손을 올려놓는 소리가 지성이에게는 큰 북소리처럼 들려왔다.

《동무도 참…》

시원스럽게 대답 못하는 지성을 보기가 딱한지 강좌장선생의 숨소리가 헨둥히 높아졌다.

《이건 훌륭한거요! 동문 정말 훌륭한 생각을 해냈단 말이요. 지하구조물설계지원프로그람!… 지금 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강좌장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성이앞에 다가서더니 그의 널직한 어깨에 두손을 올려놓고 지그시 힘을 주었다.

《큰맘먹고 달라붙소. 이것은 나라에 보탬이 되는 아주 실리적인 또 아주 혁신적인 안이요. 난 적극 지지하오. 강좌에서도 힘껏 밀어주겠소!》

지성은 가슴이 후두둑 했다. 목소리가 다 떨려나왔다.

《고맙습니다, 강좌장선생님.》

《고맙긴. 난 동무와 같은 학생들을 볼 때가 제일 기뻐. 그러니 오히려 내가 고마와해야지.》

지성은 강좌장선생의 얼굴에서 미소가 흐르는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가 강좌장선생에게서 처음으로 보게 되는 미소였다.

《이것을 완성하기만 하면 전국프로그람경연에도 당당히 나설수 있소. 그렇소, 힘을 내오. 반드시 힘을 내야 하오.》

지성은 그 순간 제 귀를 의심하였다.

《예?… 전국… 경연말입니까?》

《왜, 두려운가, 제대군인대학생답지 못하게.》

강좌장선생의 얼굴에서 미소는 어느새인가 사라졌다.

《지난 시기에 결단을 못내리고 동요하던 지성이는 이젠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는데.》

지성은 이마에 땀이 빠질빠질 내돋는듯 한감이 들어 고개를 수그러뜨렸다. 전국프로그람경연이야 해당 부문들에서 제노라 하는 사람들이 나서는 무대가 아닌가, 교수, 박사, 관록있는 교원들… 실적이 당당한 연구사들과 전망이 쟁쟁한 박사원생들…

《주눅들건 하나도 없소. 그리고 이 착상에서 노렸던것보다 더 대담하게 목표를 세우고(여기엔 그렇게 할만한 충분한 가능성이 있소.) 완강하게 공격을 들이대야 하오. 구체적인것은 이 착상을 심화시키면서 짜고듭시다.》

지성은 마른 침을 힘들여 삼켰다.

《알겠습니다. 제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지성은 자기가 강좌실을 어떻게 나섰는지 잘 가늠되지 않았다. 인사나 제대로 하고 나왔는지… 명백한것은 엄한 요구성으로만 빚어진듯 하던 강좌장선생님의 얼굴에 미소가 흐르게 할만큼 자기의 착상이 가치가 있다는 그것이였다.

(아직은 착상에 불과한것을 내가 꽤 마지막까지 실현해낼수 있을가. … 목표를 더 대담하게 세울 가능성이 충분하다는건 무엇을 념두에 둔것인가. …)

전국프로그람경연에 나서겠다는 생각까지는 전혀 해보지 못한 지성은 희열에 부풀어올랐던 가슴이 점차 무겁게 내려앉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감나무밑에 놓여있는 의자로 스적스적 다가가 앉았다. 느닷없이 그의 눈앞으로는 귀염성스럽게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한 어린애의 모습이 떠올랐다.

×

손우에 누나가 둘 있는 막내아들 지성은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물기를 머금은 자그마한 입을 깜찍스레 놀리며 《아빠, 엄마.》를 찾을 때에도 부모들은 남다른 기쁨을 느끼군 하였다. 중학교 음악교원인 아버지는 막내아들만은 자기가 직접 탁아소에 데려다주었다. 중학교와 탁아소는 서로 다른 방향에 있어 바삐 달음질쳐야 할 때가 있었지만 하루도 이 일을 번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탁아소에서 배운대로 머리를 곱게 숙여 인사하는 아들이 너무 고와 가슴에 와락 부둥켜안기도 하고 보동보동한 볼에 소리를 쪽쪽 내며 입맞춰주기도 하였다.

지성은 아버지가 불러주는 동요들을 무척 재미있게 들었다.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도, 레, 미, 화》의 음정들을 귀에 익혔고 피아노소리에 맞추어 시창재간도 점차 늘여나갔다. 그가 유치원에 가는 첫날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사주었다. 그의 바이올린연주솜씨는 나날이 높아갔고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음악소조에서도 단연 첫자리였다. 소학생들이 켜는 바이올린에서는 생소리가 나기 일쑤인데 그는 남들보다 일찌기 제 음색을 살려냈다. 아들을 정겹게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가에는 자식에 대한 대견스러움과 함께 장차 이름난 연주가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가 어리군 했다.

그러나 지성은 중학교 3학년때부터 기타를 둥당거리기 시작하더니 5학년에 올라가서는 손풍금을 붙안고 풍작거렸다. 천성적으로 음악에 소질이 있고 악기연주의 묘리를 인차 터득해내는 재능이 있는데다 일단 마음만 먹으면 밤잠을 모르고 달라붙는 정열이 있어서인지 기타나 손풍금에서도 독주가의 수준에 거의 오르게 되였다. 사실 지성은 전문가적인 높은 기교를 숙달해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바이올린통을 끼고 소조에 다니면서부터 자연히 학급애들과 섭쓸리는 시간이 적어져 기분이 나지 않았다. 확실히 바이올린은 대중적인 악기가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이가 직심스레 기타를 배워가지고 둥당둥당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를 때면 얼마나 많은 동무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던가. … 바이올린을 켤 때와는 대비도 되지 않았다.

《야! 정말 멋있구나!》

《지성인 기타도 잘 치는데다 노래도 기딱막히게 부르거던!》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을수 없는 지성이였다. 자기를 빙 둘러싼 동무들이 법석 떠들며 좋아하는것을 바라볼 때의 기쁨이란 참!… 그는 소리없이 빙긋 웃군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조직한 합창경연에 참가할 준비를 하자니 기타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손풍금! 손풍금을 꼭 배워내고야말테다!

능란한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지성이네학급의 합창은 거의나 매번 1등을 하였다.

《지성학생, 정말 반주를 잘했어요.》

《선생님, 지성인 정말 우리 학급의 보뱁니다.》 담임선생도 칭찬하고 동무들도 추어주니 지성은 구름우에 앉아 하늘을 떠가는 심정이였다.

《지성아, 넌 앞으로 유명한 손풍금독주가가 될수 있겠어. 그 길로 뻗어봐. 넌 꼭 성공할거야.》

다들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몰랐다. 지성은 둥둥 떠받들려 지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구석은 개운치 못하였다. 이름있는 바이올린연주가가 될것을 바라며 그토록 마음을 써오신 아버지, 어머니의 기대를 제멋대로 마구 허물어뜨린듯 한 느낌때문이였다.

바이올린을 방구석에 세워놓고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기타줄을 튕기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리고 정신없이 기타에 빠져있다가 돌연히 손풍금바람질을 밀고당기고 할 때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반대의사도 표명하지 않았다. 아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눈에는 그 어떤 근심이 담긴듯 했고 나날이 더 과묵해지는듯싶었다.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지성이가 또 철봉과 평행봉에만 붙어살다싶이 하자 어머니는 더 참지 못하고 아버지앞에 푸념을 터쳐놓았다.

《지성이아버지, 애를 왜 그냥 내버려두는거예요. 그 애 손을 좀 보세요. 노상 물집이 생겼다터졌다하더니 이젠 굳은살이 박힐대로 박혔어요.》

《놔두오. 그 애가 요즘 어깨가 넓어지고 가슴살이 팽팽해지는게 난 보기 좋구만.》

《당신두 참, 손가락이 그렇게 굳어지면 어떻게 악기를 제대로 타겠어요.》

《여보, 난 지금 그 애가 대단히 장한 생각을 품었다는것을 느끼고있소. 난 그 애의 생각을 적극 지지하오.》

《예?…》

아버지는 지성이가 중학교졸업후 인민군대에 입대할 결심을 굳히고있으며 그 준비로서 몸단련에 품을 들이고있다는것을 이미 감수하였었다. 아버지의 눈은 정확하였다. 인간의 다감하고 섬세한 감정을 언어보다 선률에 더 자주 태우군 하는 아버지는 그저 입이 무거울뿐이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결함도 정확히 포착하고있었다.

지성이가 군복을 입고 초소로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는 여느때없이 많은 말을 해주었다.

《군사복무는 중학수업이 아니란걸 명심해라. 너는 머리도 나쁘지 않고 정열도 그만하면 괜찮다. 문제는 네가 무슨 일을 시작하든 목표를 높이 세우지 못하고 성공의 문어구에 닿을쯤에는 힘에 부치다고 그 이상 더 노력하지 않는것이다.》

《지성아, 넌 네가 앞으로 음악을 전문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고도 말하겠지만(아버진 그걸 탓하지 않아.) 너에겐 나약한 측면도 있다는것을 인정해야 해.》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 너자신의 인기를 위해 바글거려서는 안돼. 너자신보다 분대나 소대, 중대를 먼저 위하고 나라를 위해 분투할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면 군사복무를 잘하거라. 훈련이 힘들 때도 있고 말 못할 괴로움이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넌 언제나 자기가 우리 장군님의 병사, 조국의 아들이라는것을 명심하고 조국이 요구하는것이라면 끝까지, 끝까지 실현해내고야마는 강한 정신과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 떳떳하게 만나자.》

군사복무의 보람찬 날과 달이 흐르고 해가 바뀔수록 지성은 군기앞에서 다진 맹세와 부모들의 간곡한 당부앞에 떳떳하기 위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육체적으로도 몰라보리만치 름름해진 아들이 대학추천을 받고 제대되여오자 아버지는 사나이들의 포옹을 하였다.

《용타! 억세졌어!》

인민반사람들도 제집의 경사처럼 기뻐하였고 어딜 가나 아는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흐르는 시간이 온통 환희와 감동이였다.

대학명판이 위엄있게 세워진 정문으로 처음 들어설 때의 그 심정은 또 무슨 말로 표현할수 있겠는지. 수험표를 정히 품고있는 가슴이 잔뜩 졸아들기도 하고 서서히 불어오르기도 하였다. 두근거리는 가슴과 번뜩여지는 눈!…

내 본때있게 공부할테다!

그러나 대학공부는 욕망만 가지고서는 결코 치르어낼수 없는 격전이였다.

지성은 첫 강의에 참가하면서부터 안절부절해지는것을 누를길이 없었다. 대학의 기본강의를 소화할수 있게 예비교육을 주는 기간이긴 하지만 머리를 싸매고 집중하는데도 제때에 깨치기 어려웠다. 그날 배운것을 붙안고 맥이 진하도록 씨름을 했는데도 결판이 쉽게 나지 않았다. 그래도 애쓴 보람이 있어 다음날쯤에는 거뿐하게 숨을 후ㅡ 내쉬려는데 바로 그 다음날의 과정안이 이미 집행되여가는판이였다. 맥을 놓고 숨을 돌리다가는 완전한 배지기를 당해 궁둥방아를 찧을 형편이였다. 그는 외출이란것을 싹 걷어치웠다. 그러나 강의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는 잠시간까지 한시간 줄였다. 며칠후에는 또 한시간 줄였다.

지성은 자기의 힘이 날마다 진해가는것을 괴로움속에 의식하였다. 자기의 힘으로는 승산이 보이지 않는데다 강의진도는 줄기차게 나아가기만 하였다. 이러다 쓰러지는게 아닐가. 아니, 그래선 안돼. 그럴수 없어!

지성은 자기의 기초실력이 너무도 낮다는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제대군인대학생들가운데서 이런 고충을 겪지 않은 학생들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억척스레 달리고있다. 그런데 난?… 내가 이렇게까지 나약하단 말인가. … 나중엔 자기의 몸집이 크고 남들의 눈에 인차 띄우는 흰 살색의 얼굴이라는것까지도 불만스럽게 여겨졌다. 그러한 체구와 용모때문에 그는 강의시간에 교원들의 지명을 별로 더 자주 받는것 같았던것이다.

이런 감정은 17살밖에 안되는 처녀들과 한학급에서 공부하게 된 때부터 점점 더 짙어갔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직방 대학의 강의실에 들어와앉은 그들을 지성이네는 간혹 《직통생》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의 실력이 어찌나 높은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송이학생.》

《예!》

《지하구조의 열 및 동력학에 대한 일반적개념과 재료력학과의 호상관계에 대해 말해보시오.》

교원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처녀의 여무지고 맑은 목소리는 강의실을 목금악기의 음향으로 가득 채워넣는듯 했다.

그럴 때면 지성은 저도모르게 입을 반쯤 벌렸다가 굵은 목을 어깨사이로 슬며시 들이민다.

교원이 자기를 지명하지 않기를 바라서이다.

젠장, 내 꼴이 이게 뭔가, 위험을 느낀 자라처럼 잔뜩 움츠리고.

그렇지만 목을 쑥 뽑고 《이러이러한 문제들은 암만해도 모르겠으니 좀 가르쳐주십시오.》하기가 몹시 주저되였다. 부끄럽기도 하고 남들의 귀중한 시간을 침해하는것으로 하여 미안스럽기도 하였던것이다. 이런 감정은 교원들에게도 송이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로서는 있는 힘을 다 내느라고 하였지만 앞선 동무들과의 거리를 종내 줄이지 못하였다. 오히려 뒤떨어지는 거리는 늘어만 가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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