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8호에 실린 글

 

   단 편 소 설

새로 온 지배인

                           

 

며칠후 현대화목표가 그려진 큼직한 게시판이 공장구내에 세워지자 사람들이 그앞에 모여들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 이게 뭐야?》

《보구두 모르겠어? 그동안 꿈속에서 헤매였으니 이제는 잠을 깨고 하늘로 날아보자는거지.》

《그러니까 우리두 선군천리마를 탄다는거지? 거 정말 희한한데.》

자기 이름이 나붙기라도 한듯 너도나도 게시판앞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고 찬보는 빙그레 웃었다. 새로운 활력을 되찾기 시작한 공장의 분위기를 감득하는데서 오는 류다른 기쁨이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난 이 공장에서 늙어오는 사람일세.》하고 회심에 잠겨 말하군 하던 찬보였으나 이즈음에 와서는 공장과 함께 젊어지는듯 한 새로운 느낌속에서 새날을 맞게 되는것이였다.

어느날이였다. 콤퓨터에 마주앉아 생산실적을 따져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름실수률이 떨어지고있는 원인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요즈음 피마주로 기름을 짜서 비누원료로 리용하는데 웬일인지 실수률이 높지 못했다. 기름실수률이 떨어지는 원인을 제나름으로 분석해보면서 기름작업반으로 들어서던 찬보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휴식참인 모양인지 녀인들이 모여앉아 참새처럼 떠들어대고있었다. 몸집이 실팍한 녀인이 앞에 나서서 손에 책을 펴들고 무엇인가 물어보고있었다. 가만히 듣고보니 기름생산공정을 현대화하는데서 나서는 기술적문제들이였다.

찬보는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떡였다.

모여앉으면 이러저러한 생활이야기와 혹은 남정네들 소리를 하거나 애들 자랑하기가 일쑤이던 녀인들이 오늘은 CNC가 어떻소, 최첨단이요 하며 열이 나서 토론하는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믿음이 가고 달라진것이 놀라왔다.

(허허… 여기서두 화학반응이 시작됐군.)

찬보는 녀인들의 분위기를 깨고싶지 않아 돌아섰다.

어느 틈에 보았는지 한 녀인이 따라나오며 찬보를 불러세웠다. 그는 오랜 기간 공장에서 함께 늙어오는 동갑나이의 송이라는 녀인이였다. 공장에 갓 들어왔던 처녀시절에는 생신한 꽃처럼 아름다와서 한송이라는 이름대신 꽃송이라고 불리웠는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인지 다시 한송이로 불리우고있었다.

《저리 좀 가시자요.》

송이가 찬보의 팔소매를 잡아끌며 조용한 구내쪽으로 갔다.

《왜? 여기서 말하오, 여기서. … 난 지금 바쁘오.》

찬보는 한쪽발을 탕탕 구르며 정색을 지었다.

여느때같으면 《아니, 이 령감이 왜 이러니?》하고 걸고들 송이였으나 지금은 별스레 애교를 부리며 접어들었다.

《아유, 아무리 바빠도 날 만날 시간이 없겠어요. 그러지 말구 날 좀 도와주세요.》

《무슨 일인데?》

《아니 글쎄… 학교때 소년단반장도 못해본 날더러 토론을 하라지 않아요. 그것두 기술학습때말이예요.》

《기술학습때? 누가 그럽데?》

《누구라니요, 지배인동지지.》

찬보는 두눈을 크게 뜨고 송이를 쳐다보았다.

기술학습때 하는 토론이라면 기술을 론해야 한다는 소린데 그런 일을 송이에게 맡긴 지배인도 엉뚱하지만 그걸 받아안고 모대기는 송이도 놀라왔다.

여느때같으면 《아유, 난 그런 일만은 못해요.》하고 한손을 홱 내저었을 송이였건만 지금은 토론을 도와달라고 자기앞에 서있는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속이 달아하겠나요? 종업원들이 기술학습을 소홀히 한다고 하면서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라는거지요 뭐.》

듣고보니 송이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저희들끼리 모여앉아 찧고까불고 할 때면 일장연설을 잘 하다가도 연탁앞에 불러세우면 혀가 굳어지는 법이니 송이가 오죽할텐가.

생각같아서는 도와주고싶었으나 자기로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여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토론이라는거야 자기 말로 해야지 남한테 부탁하면 되우? 정 바쁘면 애들 교과서라두 들구 나가구려.》

《아니, 거 진짜루 하는 소리요?》

송이가 두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았다.

이쯤하면 너나들이가 시작된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찬보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아주머닌 웅변술도 좋겠다, 오랜 경험도 있겠다 두려울게 있겠소? 한번 잘해보시우.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말이요.》

찬보는 송이의 등을 두드려주고는 돌아섰다.

《아유, 봄순이 엄만 무슨 재미로 저런 뚝박새령감하고 사는지…》

등뒤에서 송이의 주먹질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찬보는 묵묵히 걸음을 다그쳤다.

마침내 기술학습의 날이 오자 찬보는 송이의 일이 은근히 걱정스러워졌다. 송이가 한마디 말도 번지지 못하여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지 걱정되면서도 한켠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찬보는 야릇한 심정으로 장내를 둘러보았다.

종업원모임을 할 때면 늘 뒤켠에 앉군 하던 송이가 앞줄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허허… 그러니 자신이 있다는 소린가?!)

지배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술렁거리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진호는 《비누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문제》하고 제목을 제시하고나서 종업원들을 둘러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누구든 한번 설명해보지 않겠습니까?》

종업원들이 침묵으로 대답했다. 한사람한사람 종업원들의 얼굴을 더듬던 진호의 시선이 송이의 얼굴에서 멎었다.

《송이아주머니, 아주머닌 우리 공장에서 오래동안 일해오는 기능공인데 한번 이야기해보십시오. 비누의 질이 떨어지고있는 원인에 대해서 설명해도 좋고 그 해결방도에 대해 이야기해도 됩니다. 자, 어서 나오십시오.》

송이가 연탁앞으로 걸어나갔다. 찬보는 바싹 긴장해졌다. 침묵, 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저는 기술적문제라기보다는 제가 체험한 한가지 사실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송이가 무척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얼마전에 우리 공장에서 비누생산을 시작했을 때 저의 마음은 기뻤습니다.

온 나라에 변이 나기 시작한 이때 우리도 인민생활에 이바지할수 있는 좋은 일을 해놓았다고 생각하니 막 소리쳐 자랑하고싶었습니다. 그날 비누를 가지고 집에 들어서니 딸애가 묻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니, 이게 뭐예요?〉하고 말입니다. 〈아니 야, 넌 보구두 모르니? 우리 공장에서 만든 비누란다.〉하고 내가 대답하니 그 애가 하는 말이 〈무슨 비누가 이래요? 지금 사람들의 문화수준과 생활상요구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아요? 이런건 통하지 않아요.〉하구 맹랑한 소리를 하더란 말입니다. 일시에 손맥이 풀렸습니다. 이제 한마디만 더 들으면 당장 눈물이 쏟아질판인데 딸애가 〈봄향기〉비누를 내놓으면서 〈이런게 비누란말이예요.〉하였습니다.

저는 끝내 눈물을 쏟고야말았습니다. 딸애가 그지없이 야속했지만 우리가 뒤떨어졌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당정책의 지지자로는 되였을망정 철저한 관철자로는 못되였던겁니다. 저는 오늘에 와서야 기술기능수준이 낮으면 인민에 대한 관점과 립장도 바로 가질수 없고 창발성도 발휘할수 없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습니다.》

(허허… 제법인걸.)

송이가 무슨 말을 하는가싶어 긴장해졌던 찬보는 가슴이 후더워지는것을 느꼈다. 별치않은 이야기였지만 받아안는 충격은 컸다.

늘 보아오던 송이도 새로운 모습으로 안겨왔다. 진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우리 공장 제품들이 주민들속에서 호평을 받지 못하고있습니다. 지방산업공장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해서 중앙제품보다 못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존심 하나만 가지고서는 질적수준을 개선할수 없습니다. 현대적인 과학기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도처에서 사회주의경쟁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과학기술경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외면하고서는 세계적인 발전추세도 알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언제나 명심하고 하나의 제품을 내놓아도 누구나 욕심내는 제품, 보기에도 좋고 쓰기에도 편리한 1등급의 제품을 내놓아야 합니다.》

진호는 계속하여 기술학습수준을 끌어올릴데 대하여 강조했다.

오래동안 성문처럼 닫겨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학풍이라는 새로운 열풍을 불어넣는 진호의 솜씨가 놀랍게만 생각되였다. 사실 종업원들속에는 오랜 기간을 거쳐 축적된 경험을 믿고 기술을 외면해왔고 기술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찬보의 경우만 놓고보아도 일정한 순차와 배합비률만 알면 누구나 만들수 있는것이 화학용품이라고 생각해왔던것이다.

찬보는 그런 머리를 가지고도 훈시하는데 습관되였던 자신이 돌이켜지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확실히 배운 사람이 달라. 무슨 일을 하든 묘리를 알거던.)

×

기술학습은 시간이 퍼그나 지나서야 끝났다. 종업원들이 흩어져갈 때 찬보는 송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주머닌 소년단반장도 못했다더니 그만하면 발전이 빠릅니다.》

송이에게 미안한감도 없지 않고 받아안은 감흥도 커서 꺼낸 말이였는데 반응이 없었다.

못들은척 지나쳤던 송이가 홱 돌아섰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공짜나이만 먹겠어요? 달라지는게 있어야지. 발전이 없는건 뒤걸음치는거나 같아요.》

(하, 이것 봐라. 이젠 훈시까지 한다?!… 발전이 없는건 뒤걸음치는것과 같단 말이지.)

마음이 허전해졌다.

그날 밤 찬보는 종시 잠을 이룰수 없었다.

이리뒤척 저리뒤척이며 머리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털어버리려고 애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리를 차고 일어선 그는 한밤중에 어디로 가려느냐는 안해의 푸념을 귀등으로 흘러보내며 공장으로 나왔다. 공장구내에 우뚝 서서 둘러보니 공무작업반 휴계실에서 한점 불빛이 슴새여나오고있었다. 찬보는 어둠을 밟으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방향을 잡을것만 같던 공장구내길이였지만 몇번 걸채이고서야 겨우 문고리를 잡을수 있었다.

책상에 마주앉아 기술도면을 들여다보는 명선을 보자 찬보는 눈이 둥그래졌다. 그동안 현대화공사의 기술준비사업을 맡아안고 모대긴다는 말을 들었지만 제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였다.

《밤이 깊었는데 수골하누만.》

《아니, 이 밤중에…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왜? 난 밤을 밝히면 안된다던가?》

찬보는 명선의 곁에 다가가 앉으며 빙그레 웃었다.

《정선 및 연화공정이라, 그래 이걸 자네가 맡았나? 그렇단 말이지. 자네가 큰일을 하누만.》

찬보는 복잡한 선과 점들이 무수히 찍혀진 도면을 여겨보기 시작했다.

《사실 난 공장밖에 나서면 떠받들리군 했댔어요. 마을에서두 그렇구 멀리 농촌에서까지 찾아와 도움을 청할 땐 저도 모르게 으쓱해지구요. 그런데 차츰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로동자라는게 공장안에서는 빈둥거리구 공장밖에 나서면 제살궁리만 하구… 사람들이 좋은 재간을 가졌다구 칭찬할 때면 모욕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공장을 떠나자고 결심했댔습니다.》

《음, 그랬댔구만.》

찬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해보고싶었더랬는데 이렇게 어려운 과제를 맡아안고보니 헐치 않구만요. 괜히 엇드레질한것 같은게.》

《허허…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일이라면야 무슨 보람이 있겠나. 그래서 난관이 클수록 영예도 크다고 하질 않나. 그래 어느 부분이 걸렸나?》

《이제 연화공정부분만 완성하면 기술준비가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대단하구만, 대단해!》

찬보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감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정선 및 연화공정이 도입되게 되면 기름실수률이 98까지 높아지게 된다.

비누를 비롯한 화학일용품들의 주요원료로 쓰이는 기름을 피마주와 같은 지방의 원료로 생산할수 있게 된다는것도 놀라왔고 그것을 거의 완전히 리용할수 있다는것도 가슴벅찬 일이였다.

문득 찬보의 눈앞에는 자기가 심고 가꾸어오던 줄당콩이 떠올랐다. 가을이 가져다줄 풍성한 열매를 두고 얼마나 환희에 넘쳐있었던가.

헌데 가을이 되기도 전에 진호가 뿌린 씨앗에서는 열매가 무르익고있는것이 아닌가.

《제 생각으로야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뭐. 지배인동지가 착상을 틔워주구 기술적문제들도 풀어주었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서 물러설번 했으니까요. 지배인동진 정말…》

《그래그래, 지배인은 정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야.》

찬보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느닷없이 진호의 모습이 눈앞에 어려왔다.

언제나 만만한 배심과 자신심에 넘쳐있는 구리빛얼굴, 사색깊은 눈동자, 래일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된 모습이였다. 그 미더운 모습앞에 찬보는 머리가 숙어졌다.

아, 이제 현대화공사가 완공되면 얼마나 가슴벅찬 현실이 펼쳐질것인가. 모양도 색갈도 향기도 고운 또 하나의 《봄향기》가 여기서 피여나게 될것이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치약, 잉크, 칠감 등… 질좋은 화학일용품들이 더 많이 쏟아져나올것이다.

그 찬란한 래일앞에 자신을 세워보는 순간 찬보는 북받쳐오르는 열정으로 가슴이 그들먹해지는것을 느꼈다.

 

×

 

방송에서 시간을 알리는 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리자 찬보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허, 가만놔두면 밤을 새겠군.)

찬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에 나섰다.

지배인실에 들어서니 명선이(그는 얼마전부터 기술준비원으로 사업하고있었다.) 콤퓨터에 마주앉아 전자도서를 열람하고있었다.

《아니, 밤이 깊었는데 무얼 하나?》

명선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반색을 지었다.

《지배인동지가 새로운 과업을 주었습니다. 영양물비누생산체계를 확립해야겠는데 기술준비를 맡아달라구. 그래서 지금 자료탐색을 진행하던중입니다.》

《그런데 지배인은 어데 갔나?》

《참관사업이 끝난 뒤 학산지구에 다녀오겠다면서 떠났습니다. 원료기지를 확정지어야겠다면서…》

《원료… 기지를?》

찬보는 가슴에 마쳐오는 격정으로 해서 말끝을 흐리였다. 자기가 지난날에 대한 회억에 잠겨있는 때에 진호는 또다시 새로운 목표에로의 돌격을 시작한것이였다.

《예, 원료문제를 완전히 풀자면 원료기지를 더 늘여야 한다면서…》

《…》

찬보는 말없이 걸그림대에 걸려있는 노래가사에 눈길을 주었다.

《돌파하라 최첨단을》.

여느때에는 그저 범상하게만 보아오던 노래가 이 순간에는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울려왔다.

돌파하라 최첨단을!

여기에 진호의 생활신조가 있고 인생의 목표가 있는것 같았다.

바로 이 순간에야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수 있는 가장 행복한 삶이 거기에 있음을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진호는 그 고귀한 진리를 자기보다 먼저 체득한 사람이였다.

찬보는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애써 누르며 젖어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사람 기술준비원, 하던 일을 마저 하라구. 난 지배인동물 찾아가야겠네.》

명선이 따라나섰다.

《그럴것없이 함께 갑시다.》

《좋아, 그럼 우리 함께 가자구.》

그들은 소복이 내려쌓인 흰눈우에 자욱을 남기며 걸어갔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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