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8호에 실린 글
단 편 소 설
새로 온 지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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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들어선 찬보는 눈이 둥그래졌다. 가시돋힌 선인장이 볼썽사납게 놓여있던 창문턱에 곱게 꽃이 핀 일일초가 담쑥 앉아있는것이 아닌가.
《화분이야 꽃을 보자고 키우는것인데 이 일일초가 어떻습니까?》
등뒤에 다가온 진호가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예, 좋습니다.》
찬보는 가볍게 수긍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생산공정도가 걸려있던 걸그림대에 새로 나온 노래가사가 걸려있는것이 아닌가.
《돌파하라 최첨단을》.
찬보는 노래가사 제목을 입속말로 외워보았다.
한순간 그는 가슴을 치는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방안이 한결 환해보였고 품위가 느껴지였다.
찬보는 크게 실망한 기색이였던 진호가 새로운 활기에 넘쳐있는것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였다.
《앞으로 현장을 돌아볼 땐 이걸 쓰시우.》
찬보는 안해에게 당부하여 만든 마스크를 진호앞에 내밀었다. 진호는 마스크와 찬보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더니 가벼운 미소를 피워올렸다.
본능적으로 코를 가리우던 일이 생각난 모양이였다.
《언제 이런걸 다…》
《나두 처음엔 그랬던걸요.》
찬보는 진호와 책상사이로 마주앉으며 너누룩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뭐니뭐니해두 생산이 기본입니다. 생산을 떠난 일군은 필요없으니까요.》
찬보가 금방 이런 말을 하려던 때에 김명선이 들어서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찬보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생산문제를 두고 진지한 토의를 하려던 때에 그가 나타난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였다.
(원 녀석두, 때없이 찾아들다니…)
진호가 손에 들었던 마스크를 밀어놓더니 명선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자, 여기 와서 앉소.》
명선이 주춤거리며 진호가 내주는 의자에 앉았다. 진호가 명선의 앞에 마주앉으며 물었다.
《공장에서 나가려고 한다는것 같은데?》
《예, 아무래도… 저… 지배인동지가 오시자마자 공장에서 나가겠다는것이 옳지 않다는것을 저도 압니다.》
《됐소. 결심이야 이미전에 한게 아니요. 그래 꼭 나가야 하겠소?》
두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던 명선이 고개를 들었다.
《예, 전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벌써 간청이 아니라 결론이였다.
(하, 이녀석 봐라.)
찬보는 두눈을 흡뜨고 명선을 치떠보았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다독이던 진호가 조용히 일어섰다.
《좋소, 정 가겠다면 보내주겠소.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소.》
《그게 뭡니까?》
명선이 다우쳐물었다.
《1년후에 가라는거요, 1년후에!》
지배인이 무슨 말을 하는가싶어 바싹 긴장해졌던 찬보는 지배인이 묘한 수를 쓴다고 생각되였다. 헌데 저녀석이 순순히 물러서자고 할가.
찬보가 알고있는 명선은 보기 드문 이악쟁이였다. 언제인가 찬보네 집의 콤퓨터가 고장나서 수리공을 붙였는데 끝내 수리하지 못했었다. 찬보는 하는수없이 명선을 불러들였는데 그는 열흘밤을 꼬박 밝히면서 정상상태로 해놓고야말았다.
그때 명선은 이렇게 말했었다.
《난 결심한것을 못하면 잠이 오지 않아요.》
찬보는 명선의 일이 궁금했으나 덤덤히 앉아있는것이 따분스러워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삼봉산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옷깃을 헤쳐놓으며 심호흡을 하던 그는 울타리에 시선을 멈추었다. 울타리주변에 심은 줄당콩이 한뽐이나 자라오른것을 본것이였다.
놀고있는 땅이 아까와 짬짬이 심은것이였는데 어느새 줄기를 뻗치며 너울거리고있었다.
찬보는 슬금슬금 다가가 줄당콩이 타고올라가도록 늘여놓은 줄들을 바로잡기도 하고 뻗어오르는 콩줄기를 감아주기도 했다.
《여기서 무얼 합니까?》
어느결에 나왔는지 웃옷을 벗어제낀 진호가 자기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찬보는 한줄로 나란히 서서 키돋움을 하는 줄당콩을 흡족하게 바라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 되였습니까? 명선이문제말입니다.》
《1년후에 보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보낼것 같으면 지금 보내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해서…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법이지요.》
진호가 자신있게 웃어보였다.
《그런 일은 없을겁니다. 이제 두고보십시오. 앞으로 우리 공장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있어두 나가겠다는 사람은 없게 될겁니다.》
찬보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지배인이 공상을 해도 이만저만한 공상을 하는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이 줄당콩들은 어떻게 되여 심은겁니까?》
《예, 놀고있는 땅이 아까와 짬짬이 심은것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군요. 품을 들여 가꿀만한 작물입니다. 가을이면 적지 않은 수확을 거둘수 있거던요.》
《괜찮구만요. 우리 이왕이면 그보다 더 실리가 나는 일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그게 뭔데…》
찬보는 호기심이 부쩍 동했다. 사무실의 정서를 단번에 바꾸어놓은것이라든가 명선을 가볍게 눌러앉힌것을 보면 어떤 묘한 수가 있음직했다.
《공장현대화입니다.》
《예?! 공장… 현대화를요?》
찬보는 얼떠름해져서 진호의 말을 받아외웠다.
진호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들었다.
《이걸 한번 봐주십시오.》
찬보는 안경을 코에 걸고 수첩을 펼쳐들었다.
거기에는 기술개건목표가 구체적으로 적혀있었다. 현존설비들의 기술개건은 물론이고 이빠진 공정이였던 정선 및 연화공정, 자동절단기, 상표인쇄기까지 새로 도입할것을 예견한 만만치 않은 목표였다.
(허허… 그러니 밤새 이걸 궁리했단말인가.)
지배인의 노력이 헤아려지자 가슴이 뭉클해왔다.
《멋있군요. 그런데 우리 힘으로 해낼수 있을가요? 당장은 생산만 하자고 해도 힘이 부친데…》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이 줄당콩도 뻗어나갈 줄을 늘여주어야 잘 자라는것처럼 종업원들의 안목을 틔워주고 길을 바로잡아주면 무궁무진한 힘을 발휘할겁니다.》
찬보는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린 지금 치약이나 비누같은 대중소비품조차 원만히 보장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찬보는 얼마전 비누작업반에서 계획을 맞추려고 첨가제를 필요이상 첨가했던 사실과 그로 해서 주민들로부터 신소가 제기되였었다는것을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사실 현대화목표야 얼마나 훌륭한가. 맑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조종실에 앉아 콤퓨터조종으로 생산을 더 원만히 보장한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찬보에게는 이것이 먼 앞날의 일같아보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 생산건물쪽을 바라보던 진호가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전 어제 밤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텔레비죤에서 어느 한 지방산업공장을 현지지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을 뵈옵고보니 생각되는바가 많더군요. 날마다 장군님의 현지지도소식에 접할 때면 가슴이 뜨거워지군 했는데 이렇게 인민생활을 직접 책임진 일군이 되고보니 받아안는 충격은 더 컸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과 만족만을 드리겠다구 맹세도 많이 다지구 눈물도 많이 흘려왔지만 정말로 장군님께서 우리 공장에 찾아오시면 무엇으로 기쁨을 드리겠습니까?》
찬보는 눈굽이 쩌릿해지는것을 느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장군님의 현지지도소식에 접할 때면 뜨거운 격정에 휩싸이면서도 자기 공장, 자기 일터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해본 찬보였었다.
헌데 새로 온 지배인의 가슴속에는 얼마나 뜨거운 세계가 간직되여있는것인가. 찬보는 진호와 자기사이에 전세대와 후세대라는 세월의 공간만이 아닌 그 어떤 질적차이가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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