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8호에 실린 글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 1등 당선작품
단 편 소 설
사랑의 다리
3
은옥을 실은 렬차는 쾌속으로 달렸다.
봄이를 안고 손을 흔들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차창에 얼른거려 은옥은 함뿍 미소를 담았다.
《여보, 당신은 나라에서 키워낸 설계가요. 이걸 명심하오.》
승강대에 오를 때 귀에 길이 나도록 절절히 당부하던 남편의 그 목소리가 되울려왔다.
《설계가ㅡ 강은옥.》
잇달려 나란히 불리워지는 자기 이름을 조용히 외워보며 은옥은 자신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설계가가 되였니?》
덜커덩, 덜커덩…
간단없이 들려오는 렬차바퀴소리가 빠져드는 상념에 자장가를 부르는가, 희망의 고운 꿈을 가없이 푸른 저 하늘에 싣던 어린시절, 차창밖으로는 마치 그때의 꿈많던 시절이 막 다가드는듯 했다.
추억의 렬차는 벌써 멀리 버들천 흐르는 고향의 돌다리에 멈춰섰다.
중학교 1학년시절 그때 강은옥의 별명은 《강이악》이였다. 그만큼 그는 모든 면에서 1등을 해야 웃는 소녀였다.
점수도 잘 익은 밤알같이 땅땅 여문 5점이래야 족했고 좋은일경쟁도표도 남을 떨구고 우뚝 올라서야 맘을 놓았다.
그런 은옥에게 큰 고민거리는 상천마을애들에 비해 등교거리가 좀 먼것이였다.
은옥은 다리를 건너 하천마을에서 살았다. 그러다나니 혼자서만 해놓고픈 장한 일들을 학교옆에 사는 애들에게 양보할 때가 있었다.
그 일들의 하나가 학교운동장을 깨끗이 쓰는것이였다.
상천마을에는 엉뚱한 궁냥을 곧잘하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군 해서 《뻐꾸기》라고 불리우는 총각애가 있었는데 은옥은 그 애가 제일 미웠다. 그 애는 자기 집 창가에 딱 붙어앉아있다가 은옥이가 다리를 건너 학교로 오는것을 보면 냅다 달려가 비자루를 먼저 잡군 하였다. 하여 선생님의 칭찬에는 그 애의 이름이 먼저 오르군 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숨이 차올랐다.
한번은 질러가려고 종아리를 적시며 버들천을 건넜으나 물참봉이 되였다. 이 일을 알게 된 아버지가 딸애의 승벽에 혀를 차며 어쩌나 보려는듯 슬쩍 말을 비쳐보았는데 그 말이 또 일을 쳤다.
《질러가는 돌다리를 놓아줄가?》
《돌다리?! 야!》
은옥은 너무 기뻐 손벽을 쳤다. 그때의 그 기쁨이란…
그날 은옥은 밤새 돌을 날랐다. 들지 못하는 돌은 굴리고굴리며 애를 빡빡 썼다.
온몸이 젖어 오돌오돌 떨며 들어온 딸애의 정상에 어머니는 기가 막혀 주먹을 쳐들었으나 마라초를 빨며 묵묵히 앉아있던 아버지는 움쭉 일어나 집을 나섰다. 뒤따라 맏오빠와 중학교졸업반인 둘째오빠도 일어났다. 나중엔 어머니도 치마끈을 졸라매고 따라나섰다.
돌다리는 그렇게 생겨났다. 그 돌다리를 제일먼저 선본것이 바로 그 뻐꾸기총각애의 할머니였다.
그날 새벽에 그 집 며느리가 해산하였던것이다. 돌다리를 건너 병원으로 달려갔던 할머니는 은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계집애가 참 여물어지기란… 어쩌면 그런 기찬 생각을 다 했느냐?》
바쁠 때면 모두들 그 돌다리를 건넜다. 출근시간 늦었다며 건너가고 렬차시간 다 됐다며 건너오고…
자기만을 위해 놓으려던 돌다리가 그리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줄은 몰랐다.
뻐꾸기총각애도 은옥에게 비자루를 쥐여주었다.
《넌 참 좋은 애야. 이제부턴 꼭꼭 기다렸다 너와 같이 쓸겠어!》
은옥은 코마루가 새큰했었다.
돌다리는 은옥의 가슴속에 소중히 자리잡았다.
《난 이제 크면 다리를 놓는 설계가가 될테야!》
아, 잊을수 없는 학창시절이여!
그 소원을 싣고 세월은 빨리도 흘렀다. 그래서 설계가가 되였던가.
은옥은 도리질을 했다.
아니! 굴리면 굴릴수록 커지는 눈덩이같던 공상속의 그 꿈이 차돌처럼 여무진 결심으로 다져진것은 대학시절 그때부터였을것이다.
《동무, 서시오! 정신있소?》
얼어든 대기를 쩍 가르던 맵짠 웨침!
강단이 느껴지는 가슴으로 은옥의 앞길을 막아섰던 석줄배기군인!
우리 선조들의 독특한 다리건축술에 대한 자료를 고증하여 론문을 준비하던 은옥은 실습지에서 돌아오던중 황해금강ㅡ장수산에서 그 군인을 만났었다.
하얀 털수건을 두른듯 한 아찔한 절벽우에 전설속의 궁궐처럼 솟아있던 다람절!
설경의 무아경과 어울려 더더욱 자기의 고전미를 뽐내는 절간이였다.
은옥은 동화속의 마술에 걸린 소녀처럼 절벽밑으로 막 달려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뽀얀 눈가루를 맞으며 아무런 주저도 없이 그 좁고도 매끄러운 탐승길에 은옥이가 발을 내짚었을 때 별안간 뒤덜미를 잡아채는듯 한 고함이 터졌던것이다.
《동무, 서시오! 정신있소?》
은옥은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심장이 눈녹듯 없어질것 같았다.
버적버적 다가들던 발자국소리…
겁기어린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을 곰처럼 떡 막아선 사람은 시원스럽게 생긴 석줄배기군인이였다.
은옥을 바라보던 군인의 두눈이 불시에 화등잔만해졌다. 시꺼먼 눈섭이 이마에서 금시 미끄러져내릴듯 쭝깃거린다.
별안간 그의 입에서 탄성섞인 웨침이 터져올랐다.
《이거 은옥동무 아니야? 은옥동무!》
은옥은 처음 보는 군인의 입에서 자기 이름이 벼락치듯 튀여나오는 바람에 화닥닥 놀라 일어났다.
심장은 다람쥐가 들어간듯 콩당거렸다.
군인이 모자를 활 벗으며 자기 동가슴을 두들겨댄다.
《나요, 나! 아, 뻐꾸기 홍경섭!》
군인의 얼굴을 더듬던 은옥의 얼굴도 대번에 달덩이가 되였다.
부끄러움도 잊고 경섭의 억센 손을 잡고서 콩콩 뛰며 어쩔줄 몰랐다.
《야, 경섭동무! 이게 얼마만이예요?》
《그러게 말이요.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전학을 갔으니…》
옳았다. 경섭은 그때 학교운동장을 꼭꼭 같이 쓸겠다던 그 약속을 아쉬움으로 걷어안고 군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갔던것이다.
그때의 섭섭함과 쓸쓸함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다.
《하하, 지구가 둥글어서 계속 가느라면 만난다더니만 여기서 은옥동무를 만날줄이야.》
경섭이도 량볼에 패인 보조개를 넘실거리며 기뻐 여간 아니였다.
다람절에 오르려는 사연을 터놓았을 때는 그의 두눈동자에 벙긋 불이 이는것 같았다.
《그러니 설계가가 되겠다던 희망을 성취했구만!》
시계를 들여다본 그는 생각을 굴려보더니 홱 손을 허공에 펼쳤다.
《자, 그럼 오르기요!》
밤새 내린 눈이 새벽녘에 터진 몰바람에 땅땅하니 얼어붙은 길은 너무도 미끄러웠다. 잘못 아차 하는 때면… 위험한 길이였다.
한발 또 한발… 은옥을 끌어올리고 밀어주며 벼랑우에 올랐을 때 경섭의 얼굴에선 한증이라도 한듯 땀이 질벅했다.
은옥은 통신임무를 수행하고 부대로 돌아오던 경섭이가 자기때문에 지체한 시간을 봉창하려고 30리나마 되는 산길을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도록 달렸다는것을 퍽 후날에야 알았다.
벼랑우에 올라선 은옥은 그때 다람절의 경치에 온넋을 빼앗기고말았다.
련련히 뻗어나간 우중충한 산발들이며 시야가 모자라도록 안겨드는 푸른 하늘!
《아ㅡ 장수산아!ㅡ》
가슴을 짜릿이 흔들며 되울려오던 산울림소리…
은옥은 눈가루를 뿌려던지며 발을 동동 구르고 깔깔 웃음을 쏟았다. 메고 갔던 사진기에는 다람절의 용마루며 단청, 기둥 할것없이 기묘한 모습들을 모조리 담았다.
《은옥동무, 우리 나라는 이처럼 아름답소!》
산을 내릴 때 경섭은 은옥에게 자기 심장속에 간직된 잊지 못할 사연을 털어놓았다.
경섭이가 속한 부대군인들이 울림폭포주변에서 뜻밖에도 희한한 새 폭포를 또 찾아냈을 때였다.
군인들은 가슴들먹이며 얼싸안고 돌아갔다.
이 폭포에 위대한 장군님을 또다시 모시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허나 그 폭포에는 위대한 그이를 모실수 없었다.
가파로운 절벽들 그리고 험한 바위투성이들… 그곳에는 길이 없었다, 길이!
살점이 뜯기고 설사 뼈가 깎이우더래도 길을 열고픈 마음이 불같았으나 그곳은 너무도 험해 오랜 설계가들도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군인들은 땅을 치고 가슴을 쳤다.
우리 장군님을 모시지 못하는 곳이라면 이 나라 명산이 천이면 뭘하고 만이면 뭘하겠는가.
그때부터 경섭의 머리속에서는 길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 생각은 그를 짬짬이 건축공학책들도 탐독하게 했다.
《난 그날 동무 생각이 더 나더구만. 혹시 은옥이라면, 고 이악쟁이 은옥이라면 하늘끝에라도 다리를 놓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요.》
은옥은 경섭의 깨끗한 충정의 세계에 속이 뭉클했다.
《은옥동무, 훌륭한 설계가가 되여주오! 그러면 난 동무의 정열이 스민 그 설계대로 내 나라 명산들에 대통로들을 쭉쭉 닦아놓을테요!》..,
결혼식날 은옥은 경섭의 손을 꼭 잡고 약속했다. 나라의 떳떳한 설계가가 되겠다고…
은옥이 완성하여 내놓는 설계마다에는 경섭의 남모르는 지혜와 수고도 깃들어있었다.
이번에도 은옥은 이런 남편을 믿었기에 모험을 즐기는 몇명 등산객을 내놓고는 누구나 선뜻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묘향산 하비로봉에로의 탐승다리설계를 자진하여 맡아나선것이다.
《여보, 제 어떻게 하나 꼭 설계를 완성하겠어요.》
렬차는 어느덧 향산역에 와닿았다.
4
상쾌한 아침이였다.
묘향산은 청신한 안개에 씻겨 더욱 푸르청청해보였다.
금방 하늘을 썰려는 톱날처럼 줄지어선 봉우리들, 그 봉우리마다에 여러가지 모양으로 솟아있는 바위들, 여기저기 단풍나무, 바늘잎나무, 자작나무들에서는 이슬을 털며 고운 새들이 맑은 노래를 숲속에 뿌리고있다.
허나 은옥은 그 아름다운 풍치에 주의를 돌릴 경황이 없었다.
그는 구불구불 벼랑우로 올려뻗은 오솔길을 따라 걷고있었다. 다리설계를 위한 하비로봉까지의 현지확증이였다.
며칠새 산발을 타서인지 오늘은 조금 올라왔는데도 벌써 다리가 휘친거리고 숨이 찼다. 가파로운 경사길에 주저앉아 다리쉼을 하며 우를 올려다보았다. 까마득히 벼랑끝에 아짜하게 서있는 허리굽은 나무가 어림도 말라는듯 바람에 가지를 흔들어댄다. 이를 사려물고 다시 일어났다.
이때 골안을 깨치며 누군가 찾는듯 한 소리가 들려왔다.
《은옥동무!》
분명 소연의 목소리였다.
두루미 다리밑을 들여다보듯 찬찬히 아래를 더듬는 눈길에 손나팔을 부는 소연이가 걸려들었다.
소연이도 은옥이를 알아보았는지 산에다 부채질이라도 하듯 손을 열심히 내리긋는다.
《빨리 내려와요.》
웬일일가?
은옥은 무슨 일인가싶어 급히 돌아섰다.
소연은 흥분해서 다짜고짜로 은옥의 손을 잡아끌었다. 은옥은 거의 끌리여가다싶이 했다.
《아유, 왜 이리 덤비니? 이 묘향산에 와서 선남이라도 본게 아니야?》
소연은 생글거리며 청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봄이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뭐?!》
은옥의 두눈이 머루알처럼 동그래졌다.
소연은 숨이 찬듯 가슴을 두드리며 재빨리 말해버렸다.
《말두 말아요. 금방 산에 올랐다니까 나에게 소나기를 막 퍼붓겠지요 뭐.》
《소나기라니?》
《질문소나기! 봄이 엄마가 앓지는 않는가. 식사는 제때에 꼭꼭 하는가, 설계는 어느만큼 진척되는가 숨도 쉬지 않고 물어보더라니까요. 그리고나서 바쁘겠는데 그만두라며 전활 끊겠다는걸 막 야단했지요 뭐.》
은옥은 망설였다.
(그인 전활 끊었을거야.)
했으나 남편의 정든 모습이 못견디게 밟혀오며 다심한 그 목소리가 몹시도 듣고싶어졌다.
《아이, 왜 이러고있어요? 빨리 가자요.》
은옥은 소연이 이끄는대로 발을 내짚었다.
숨을 할딱이며 현장설계실에 들어선 은옥은 덤벼치며 전화통부터 부여잡았다.
송수화기를 드니 붕ㅡ 전화는 끊어져있었다.
실망과 아쉬움이 아지랑이 되여 눈앞에 피여오르는듯 했다. 하지만 은옥은 송수화기에서 들리는 전류흐르는 소리도 마치 남편의 웅근 목소리처럼 정답게 들려와 한동안 서있었다.
(여보, 고마워요. 제 걱정 말고… 제발 앓지 마세요.)
은옥은 한참만에야 놓치면 달아나버리기나 하는것처럼 꼭 잡아쥐였던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에이, 참!》
소연이도 아쉬운 모양 이마의 땀을 닦으며 긴숨을 내쉰다.
《됐어. 소연이, 고맙다.》
며칠후 드디여 설계중간심의가 있었다.
은옥은 도면을 안고 자신만만하게 심의실로 들어갔다.
화면에 쭉 뻗어나간 다리모양을 지시봉으로 가리키며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다리가 놓일 골짜기위치며 정확한 거리간격으로 세워질 다리기둥모양 그리고 특색있는 다리란간장식에 대해서도 심의원들이 흘려들을세라 또박또박 곱씹었다.
심의원들의 눈빛이 어쩐지 밝지 못했다.
의견들이 제기되였다.
하비로골짜기경치의 일부가 다리에 가리워진다. 사람들이 사진만 척 보고도 묘향산하비로다리라는것을 알수 있게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 등등…
론의가 거듭되던 설계는… 기각되고말았다.
은옥은 맨눈으로 해를 본것처럼 앞이 막 새하얘졌다.
실장이 다가와 달래듯 하던 말도 용케 들으며 서있었다.
《너무 상심마오. 아직 날자가 있으니까 다시 잘하면 되는거지.》
쿵 문이 닫길 때야 은옥은 온몸의 기운이 발밑으로 새여버리는것 같아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애면글면 바쳐온 품이, 깡그리 쏟아부은 땀, 정열, 그 시간들이 물거품처럼 되고만것인가.
지새운 밤들이 밟혀오고 남편의 얼굴도 불쑥 환영처럼 떠올랐다.
(여보, 어쩜 좋아요?)
속은 가랑잎타듯 타들었다.
마음을 다잡느라 간신히 일어나 창가로 다가섰다. 한낮이건만 밖은 어둑시근했다. 콩알같은 비방울들이 츠렁츠렁 창가에 매달렸다가 미끄러져내린다.
소연이가 조용히 들어와 책상우에 펴진채로 놓여있던 은옥의 도면을 말아나갔다. 기각된 그 설계가 소연의 손에서 말려지는것이 아니라 와락와락 우그러드는것 같아 은옥은 흠칫 몸을 떨었다.
《꼭 새 설계를 인차 다시 내놓을수 있으리라 전 믿어요.》
소연이가 위안하는 말이였으나 은옥은 연추를 맨것 같은 한숨을 쏟았다.
은옥은 자기가 마치 쩍 갈라진 산벼랑을 마주선듯이 생각되였다. 그밑에선 세찬 물결이 왁살스럽게 소용돌이친다.
그것을 건너뛸 용기가 없었다.
머리우에선 집채만큼 커다란 바위같은것이 사정없이 내려누르는것 같기도 했다.
은옥은 지쳤다. 한잠 푹 자고싶었다. 따뜻한 집이 그리워지며 설음 같은것이 북받쳐올랐다.
그리움은 기쁠 때보다 힘들고 괴로울 때 더 강렬해지는것인지 오늘따라 가슴이 미여지도록 남편이 막 보고싶어졌다.
봄이의 얼굴도 자꾸만 눈앞에 어룽거린다.
래일은 모두 휴식차로 평양으로 올라간다 했다. 허나 은옥은 갈것 같지 못했다. 아니, 갈수 없었다.
(여보 봄이아버지, 당신이 그토록 소식을 기다리는 설계가 기각됐으니 제가 무슨 낯에 당신을 만나겠어요. …)
은옥은 울음을 깨물었다.
똑똑똑…
문두드리는 소리에 서둘러 창가로 몸을 돌렸다.
소연이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 강은옥설계가가 여기 있습니까?》
너무도 귀에 익은 음성… 은옥은 제 귀를 의심했다. 설마 하면서도 항아리처럼 커진듯 한 귀를 강구었다.
문밖에서 뭐라 그랬는지 소연이가 은옥이쪽으로 홱 고개를 돌린다.
《왔어요!》
밝게 웃는 소연의 큰 두눈에 맑은것이 거침없이 솟아오른다.
활짝 문이 열리며 아니, 문이 날아나버리는것 같았다.
들어선 사람은… 아, 주먹으로 입을 콱 막았다.
꿈이런가, 생시런가. 비옷을 걸친 남편, 분명 그이가 벌씬벌씬 웃으며 방으로 들어선다.
멍해있던 은옥은 그만에 비칠했다.
《봄이아버지!》
갈릴대로 갈린 목소리가 어디에 부딪친듯 힘겹게 뽑아져나왔다. 너무도 놀라난 가슴에 무딘 쇠꼬챙이로 쭉 내리긋는듯 한 아픔이 느껴진다.
어푸러질듯 달려가 남편과 마주섰다. 걷잡을새없이 쏟아지려는 눈물때문에 남편의 정든 얼굴이 흐려지며 마구 흔들렸다.
은옥은 조금후에야 마음을 진정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이렇게 불쑥…》
《당신이 보고싶어서 왔지. 아, 견우는 직녀가 보고싶어 하늘나라까지 갔다는데 사랑하는 당신이 반나절길도 안되는 묘향산에 있는데야 왜 못오겠소.》
은옥은 그 말에 웃음을 머금었다.
봄이는 인민반장네 집에 맡기고 왔다 한다.
《당신이 꿈에 계속 보여 어디 견딜수가 있어야지.》
경섭의 큰 목소리에 방이 다 드르릉 울리는듯 했다. 이번에는 은옥의 귀에 뭐라고 소곤거렸는지 은옥은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온통 새빨개졌다.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소연을 훔쳐보고는 두손으로 남편의 잔등을 꼬집어댔다.
《아야야, 이건 정말이요.》
입을 싸쥐고있던 소연이 《아이, 내 정신 좀 봐.》하며 잃어버렸던 일을 생각이나 한것처럼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당신이 이렇게 웃는걸 보니 정말 기쁘구만!》
은옥은 남편이 설계에 대해 물을가봐 속이 조마조마해났다. 왜서인지 경섭은 설계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숨을 내그은 남편은 가지고온 가방을 열어제꼈다.
가방안에서 보물처럼 그의 손에 정히 들려나온것은 크기가 8절지만 하고 두께가 장편소설만큼이나 되는 묵직한 사진뭉테기였다.
《여보, 내 당신 설계에 참고가 될것 같아 사진들을 가져왔소.》
경섭은 넓은 책상에 그야말로 사진바다를 펼쳐놓았다.
은옥은 너무도 놀라와 말을 다 못했다.
남편은 은옥에게 그 사진들을 한장씩 들어보였다.
《여기에 우리 나라 명산들의 다리가 다 있소. 좀 보오. 이건 구름다리, 이건 명소다리 그리고 이건 쇠바줄다리.》
은옥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사진들은 다 어디서 났어요?》
《어디서 나긴, 다 구하는데가 있지. 당신에게 필요하다면 하늘의 별도 따오겠소. 이건 사실이요.》
남편의 우스개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은옥은 사진들을 어루쓸기만 했다. 그저 눈이 쓰려들고 목이 꽉 메여올랐다.
시계를 보던 남편이 벌떡 일어서며 은옥의 손을 이끌었다.
《여보, 우리 이제 하비로에 한번 올라가보기요.》
《예?》
은옥은 어마지두 놀라 손을 모두어쥐였다.
《왜 놀라우?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구 까짓거 신혼려행을 못한 봉창도 할겸 오늘 허리가 늘씬하도록 산발을 헤쳐보잔 말이요.》
남편의 성미를 아는지라 은옥은 일어서고야말았다.
꺼져가던 불찌에 불길이 인것이다.
막 힘이 솟았다. 가슴속에 큰 산악이 들어앉는것 같았다. 함께라면 하늘끝에도, 바다속깊은 곳에도 들어갈수 있을것 같았다.
5
숲속은 컴컴했다.
해묵은 락엽들을 걷어차며 은옥은 남편과 함께 하비로봉에 오르고있었다.
풀벌레들이 여기저기서 찌륵거리다 뚝 울음을 그치군 한다.
솨ㅡ 바람이 일어번졌다.
《하, 이거 우리가 낯설다구 하비로가 심술을 부리는게 아니요?》
잡관목덩쿨에 얼굴을 할퀴우면서도 남편은 흔연히 웃으며 앞장에서 길을 냈다.
비꽃이 떨어지더니 이내 벙긋 번개가 일었다.
꽈르릉! 천지를 찢어발기며 벼락이 쳤다.
뒤미처 은옥이네 부부를 찾아 설계실장이며 설계가 몇이 달려왔다. 소연이도 있었다.
《경섭동무! 고맙소. 찾아와 우리에게 이렇게 힘을 주니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구만!》
《실장동지두… 전 그저 한시라도 설계가 완성되길 바랄뿐입니다.》
실장은 더 말을 번질수가 없었다.
안해를 돕기 위해서, 주저앉은 은옥을 일으켜세우려고 달려온 경섭의 뜨거운 모습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우리가 아니, 실장인 내가 더 뜨겁게, 진심으로 은옥의 설계를 도와나섰더라면…)
그의 자책어린 눈빛은 용서를 바라듯 은옥의 얼굴을 더듬어찾았다.
은옥의 얼굴에선 비물과 함께 눈물도 흘러내리고있었다.
아, 고마운 사람, 귀중한 사람…
일행은 산을 톺아나갔다.
모두들 기여오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서도 쉬지 않고 올랐다.
그들이 하비로봉꼭대기에 올랐을 때는 큰비가 잦아들고 보슬비가 산야를 어루쓸었다.
《여보, 좀 보오. 얼마나 아름답소.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렸다는 하비로요. 선녀의 날개옷을 상상해보오. 참 여보, 다리말이요. 선녀의 흰 날개옷처럼 이렇게 휘늘어지면 어떨가?》
경섭은 열정에 넘쳐 춤추듯이 손을 휘저어댔다.
은옥이도 흥분하여 손벽을 쳤다.
짜릿한 충격을 느끼며 벙긋 떠오르는 생각을 수첩에다 단숨에 그려나갔다.
싱긋한 물비림내를 실은 하비로봉의 공기는 더없이 청신했다.
《아니, 이밤에 어떻게 돌아선다는거예요?》
은옥은 사색이 되여 남편의 앞길을 막아섰다.
경섭은 헌헌하게 웃었다.
《가야 하오.》
남편은 지금 하비로봉에서 내려오는 그길로 역전으로 가는것이다.
은옥은 그 길을 막을수가 없었다.
큰길을 따라 부부는 나란히 걸어갔다.
주위는 고요했다.
하늘에선 고르롭지 못한 은가루를 뿌려놓은듯 한 별무리가 제가끔 그들을 따라선다.
문득 은옥이가 깜빡이는 그 별무리에 소원을 얹으며 경섭에게 물었다.
《여보, 이제 하비로다리가 완공되면 아버지장군님께서 꼭 찾아오실것만 같아요.》
《찾아오실거요. 인민을 위해 한평생 밟아보시지 않은 길이 없으시는 우리 장군님이 아니시오. 하비로에 탐승다리가 솟았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소.》
그날을 그려보는 부부의 마음은 한없는 격정으로 설레여 한동안 말없이 걸어나갔다.
설계실장이 등산왔다 평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탄 소형뻐스를 타고 그들을 따라잡았다.
뻐스에 오르며 경섭은 두손을 맞잡고 의미깊게 흔들었다. 뻐스가 령길굽이로 사라질 때까지 은옥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남편을 바래우고 돌아온 은옥은 지체없이 콤퓨터에 마주앉았다.
긴장한 한초한초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3차원공간에서 동화상으로 쭉쭉 립체형다리모양을 만들어나갔다.
선녀의 날개옷, 바람에 하느적이는 그 날개옷처럼 하비로봉을 휘감은 다리…
깨알같은 땀방울이 이마에 흥건히 내배였다.
경섭이 가져다준 명산들의 다리를 찍은 사진들도 한장한장 번져보았다.
이렇게 창조의 날과 달들이 흘렀다.
드디여 아름다우면서도 특색있는 다리도면이 나왔다.
설계최종심의에서 은옥은 자기의 절절한 생각도 토로했다.
《묘향산의 일만경치에 자그마한 손상도 가게 할수 없었습니다.
몇십리구간을 에돌더래도 돌 하나, 나무 한그루도 다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설계를 완성하였습니다.》
설계는 모두의 감탄속에 통과되였다.
꿈에도 그리던 그날이 왔다.
기별도 없이 문득 너무도 조용히 찾아온 크나큰 행복이였다.
우리의 위대하신 장군님께서 전선시찰의 먼먼길을 이어 완공된 묘향산 탐승다리를 돌아보시였다. 감격의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리가 참으로 훌륭하다고, 특색있는 만점짜리 다리이라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이제는 우리 인민들이 척 차에 앉아 여기까지 올라오게 되였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선군시대에 우리 인민모두가 선녀, 선남이 되였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언제인가 여기에 오른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말 헐치 않았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전해듣는 순간 은옥은 세차게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아, 그러니 우리 장군님께서는 그때에 벌써 인민의 행복을 위해 남먼저 하비로봉에 오르시였고 그날에 오늘을 설계하신것이 아니였던가.
다리는, 이 사랑의 다리는 위대한 그이의 손길에 떠받들려 솟아오른것이다.
영웅메달을 받아안던 날 은옥은 목메여 부르짖었다.
《장군님 무르익혀오신 그 구상을 전 그저 종이우에 선으로 그은것밖에 없는데… 제가 뭐라고… 아버지장군님!》
하비로봉의 다리, 그것은 어버이장군님께서 그들부부의 마음속에 놓아주신 억년 드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의 다리였다.
경섭은 영웅메달을 단 안해를 안고 방안을 빙빙 돌았다.
《여보, 고맙소. 당신은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드린 설계가요, 영웅설계가! 하하.》
딸 봄이도 짝짜그르 박수를 치며 해죽이 웃었다.
×
《다리는, 사랑의 다리는 바로 이렇게 태여난거랍니다.》
은옥은 사람들에게 덧붙여 말하고싶었다.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 길에서 봄이 아버지는 저의 동지였고 스승이였고 다심한 오빠였습니다라고.
박수소리, 흐느낌소리…
한동안 격정의 파도만이 방안에 흘러넘쳤다.
반장아바이가 등이 달아서 한마디 했다.
《자, 이거 이 기쁜 날 모두 이러고만 있겠소?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춰야지요. 봄이 어머니도 노래 한마디 불러주오.》
설계실장도 머리를 끄덕이며 재촉했다.
《은옥동무, 어서 부르오. 오늘같은 날에야 부르고싶던 노래를 맘껏 불러야지.》
은옥은 밝게 웃으며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부끄러움도 잊고 당당히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부르겠어요, 행복의 노래를…》
이윽고 사랑을 담아 부르는 은옥의 노래는 멀리, 저 멀리로 울려퍼져갔다.
(김형직사범대학 작가양성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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