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0(2011)년 제8호에 실린 글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 1등 당선작품
단 편 소 설
사랑의 다리
리국철
행복한 밤이였다.
은옥이네 집으로는 물밀듯이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인민반 녀인들이며 은옥이네 설계사업소 설계원들 그리고 세대주가 일하는 건설기업소 작업반사람들…
감동과 격정이 떠도는 방안에서 은옥은 모두의 아낌없는 찬사와 축하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연분홍치마저고리를 단정히 차려입은 그의 가슴에서 영웅메달이 눈부신 광채를 내뿜고있었다.
동네 좌상인 옆집 할아버지가 여봐란듯 좌중을 둘러보며 무게있게 말꼭지를 뗐다.
《이렇게 영웅이 된 봄이엄마와 마주하고보니 안해를 말없이 도와주고 받들어준 이 집 세대주 수고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네. 안 그런가?》
뜨거운 눈길들이 문곁에 앉아 얼굴을 붉히는 경섭에게로 쏠려졌다.
남편을 바라보는 은옥의 눈가에도 불시에 맑은 눈물이 솟아올랐다. 남편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의 감정이 가슴속에서 끓어번졌다.
고패치는 생각의 분출이런듯 은옥의 단아한 얼굴의 발깃한 두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앞에는 묘향산 하비로봉 탐승다리설계와 함께 흘러온 못잊을 나날들이 영화화면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1
은옥은 정신없이 달렸다.
《여보 봄이아버지,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
그의 입에서는 이 말마디가 련발하듯 흘러나왔다.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튀여나올듯 방아질을 해댔으나 그는 그냥 달리기만 했다.
봄바람이 굼닐고 눈같이 하얗게 피여난 살구꽃들이 한들거리는 거리는 명절일색으로 단장되여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흥그럽게 해주고있었다.
은옥이만이 그 분위기를 헤집어놓듯 사람들의 물결을 허둥지둥 헤치고있었다.
《아주머니, 왜 그럽니까?》
마주오던 중년의 녀인이 침착한 어조로 은옥에게 하는 말이였다.
그때에야 정신을 차린 은옥은 자기를 다잡았다.
오늘은 5. 1절, 남편이 다니는 건설기업소에서는 오늘 가족들도 모두 참가하는 체육대회를 크게 벌린다고 한다.
엊저녁 잠들지 못하고 궁싯거리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콤퓨터앞에 앉아있던 은옥은 전에없던 남편의 거동에 눈길이 돌려졌다.
남편은 미안한듯 뒤더수기를 쓸며 어줍게 웃었다.
《여보! 우리 반장아바이가 말이요, 래일 우리 부부가 발목매고달리기경기에 나가라누만.》
은옥은 그제야 《어마나!》하며 손벽을 쳤다.
《정말, 래일이 5. 1절이지요? 이 정신 좀 봐, 설계에만 옴하다보니…》
은옥은 서둘러 남편곁에 와앉았다.
《그러니까 달리기경기에 나가자는거지요?》
남편은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이 거 대학때 륙상선수였다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당신과 내가 작업반에서 기둥선수라는거요.》
은옥은 방긋 웃었다. 그는 대학시절 한다하는 달리기명수였다. 전국대학생들의 체육경기때마다 1등을 하여 받은 메달도 3개나 된다.
달리기라는 소리에 벌써 오금이 근질거렸다.
그의 내심을 읽은듯 경섭이 벌씬 웃다가 짐짓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내 딱 잡아뗐소. 당신이야 인차 저 설계를 심의받아야 하지 않소. 바쁠거란 말이요.》
《어마… 당신은 정말…》
은옥은 큰일이나 난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바쁘다 한들 그런걸 외면하면 당신은 어떻게 되구 전 또 뭐가 되겠어요? 가족들이 모두 참가할텐데…》
경섭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니 나가잔 말이지? 이젠 됐소, 하하…》
은옥은 남편의 떡판같은 잔등을 콩콩 두드렸다.
《에이 당신두, 내가 어쩌는가 떠봤지요? 제가 아무렴…》
《그래, 그래. 하하.》
그런데… 이른아침부터 설계에 또 정신이 팔리다나니 경섭이가 머뭇거리다 조용히 혼자 집을 나선것도 몰랐던것이다.
은옥은 숨이 턱에 닿아 기업소정문에 들어섰다.
(제발 체육경기가 끝나지 말아야 할텐데…)
운동장에선 벌써 와와 함성이 일고있었다.
은옥은 경황없이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에 운동장은 삽시에 조용해졌다.
《다음은 부부발목매고달리기입니다. 각 작업반선수들은 출발선으로 나오시오.》
소개가 끝나기 바쁘게 고함소리, 웃음소리로 운동장은 벌컥 뒤집혀졌다. 두드리는 꽹과리소리가 귀를 멍멍하게 만든다.
은옥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후ㅡ 내쉬였다. 이마에선 땀이 흘러내렸다. 발돋움하며 남편의 모습을 찾아내느라 허둥거렸다.
그때 앞에 있는 사람들속에서 한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인민반에서 사는 건설기업소 반장아바이였다.
《자자, 다들 앉소. 조용하라니까. 경섭동무, 어떻게 된거요? 처가 안오겠다우?》
엉거주춤 일어서는 사람은 남편이였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죽어들어가는 소리를 낸다.
《저… 제가 그만 잊어먹구 말을 못하다나니…》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봄이엄마 없으면 어찌나.》
《야참, 안타깝다. 아니, 봄이아버지, 달리기선수를 그렇게 아꼈다가 올림픽에라도 내보내겠어요?》
가족녀인들이 더 야단들이다.
은옥은 입술을 깨물었다.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반장아바이도 맹랑한듯 입을 다셨다.
《헛참. 거 아쉬운걸… 동무네 부불 기둥같이 믿었댔는데… 할수 없지.》
아바이는 손을 내젓더니 인민반장을 하는 자기 로친을 불렀다.
《아유, 정신나갔소? 저 한복판을 달리다 이 몸이 폭발하는걸 보자 그래요?》
반장처가 우람한 몸을 사람들속에 숨기느라 바빠하며 부산을 피우는통에 웃음판이 되였다.
반장아바이는 벌컥 화를 냈다.
《세대주가 나오라면 나올것이지…》
무작정 아바이가 손을 활활 내젓는 자기 로친을 사람들속에서 무우뽑듯 뽑아내려 할 때 은옥은 저도모르게 소리쳤다.
《아이, 반장동지!》
일제히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이구, 봄이엄마가 왔구만.》
《이젠 됐수다.》
경섭의 어리둥절한 눈빛도 보였다.
은옥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띠우며 인사를 보내다가 남편에게 눈을 깜빡해보였다.
은옥은 사람들이 내여주는 길을 따라 남편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갔다.
은옥은 쭈그리고앉아 발목을 매는 남편에게 속삭이듯 말을 하였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남편은 그를 정차게 올려다보았다.
《됐소, 그래 조여맨 다리가 아프지 않소?》
다심한 그 물음에 은옥은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출발선으로 나섰다. 어깨를 꽉 그러안은 남편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여보, 반장아바이 말을 들었겠지. 우리가 작업반 기둥선수라는걸 명심하오. 꼭 이겨야겠는데…》
불안한 마음을 눅잦히려고 애쓰는것이 헨둥했다.
은옥은 생긋이 웃어보이며 장난궂게 대답했다.
《당신과 함께 뛰는데 왜 지겠어요. 만약 지게 되면 발목을 맨채로 집까지 가겠어요.》
남편의 인상적인 보조개가 움푹 패였다.
《하긴 우리집 〈강이악〉을 누가 당할라구.》
경섭이 허허 웃는 그 순간 출발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한몸이 된 그들은 힘껏 땅을 차며 달렸다.
운동장을 울리는 북소리, 고함소리…
《여보, 덤비지 마오. 발! 발을 맞춰야지.》
정신이 벙벙해지는 속에서도 침착하게 소리치는 남편의 뜨겁고도 거친 그 목소리가 귀전을 스쳤다.
발을 맞추어 앞장서 달리던 그들은 결승테프를 끊고서야 나딩굴었다.
와ㅡ 폭소가 터져올랐다.
사기가 난 반장아바이가 하하… 웃음발을 날리며 헐금씨금 달려왔다.
《1등이야, 1등… 역시 기둥선수들이 달라. 어서들 일어나라구. 잘했네, 잘했소.》
은옥이네는 상으로 꽃단지를 받아안았다. 꽃단지를 그러안은 은옥은 거기에 살며시 볼을 비볐다. 마치 그 단지안에 자기 부부의 귀중한 행복이 가득 차있기라도 한듯…
2
《아니, 몇시기에 아직 그러고있어요?》
한 설계실에 있는 소연이가 문을 벌컥 열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콤퓨터화면에 그려지는 점과 선 하나하나에 송곳같은 예리한 신경을 세우던 은옥은 그때야 펀뜻 정신이 들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9시가 되여온다.
(어마나, 이 일을 어쩌나…)
황황히 옷걸이에서 덧옷을 벗겨내리고 가방을 찾아들었다.
《소연동무, 오늘 근무라지. 내 책상을 좀 정리해줘. 정말 미안해, 그럼 난…》
《아이참, 걱정말구 빨리 가보세요.》
대학을 졸업하고 갓 배치된 소연은 복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담고 곱게 눈을 빨았다.
쫓기는듯 한 걸음으로 계단을 2개, 3개 내리뛰였다. 아직 탁아소에 있을지도 모를 딸 봄이의 울음소리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어쩌나…)
10만세대 살림집건설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또 얼마나 시장할가.
근심과 걱정을 밟으며 달렸다. 날개라도 있었으면 하는 허망한 생각까지 들었다.
행여나 하여 탁아소로 달려가보았으나 봄이가 있을리는 만무했다. 아버지가 데려갔다는것이다.
미안하고 송구한 감정이 넝쿨을 치며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지 않아도 직장일, 집안일까지도 다 걷어안으려고 왼심쓰는 남편으로 하여 항상 속에 뭔가 뭉친것이 풀리지 못하는 은옥이였다.
지금쯤 기다리다 지쳐버렸을 남편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으나 왜서인지 구겨진 사진처럼 가늠하기 어려웠다. 대신 벙글거리는 얼굴만이 떠오른다.
웃을 때면 량볼에 처녀들처럼 항상 패여나는 보조개! 남편의 천진한 웃음은 아마도 특징적인 그 보조개에서 샘처럼 솟아오르는것인지… 여하튼 그 웃음에는 신선한 그 무엇이 있었다.
은옥은 죄스러움에 속이 한줌만 해져 집문앞에 다가섰다.
불빛이 새여나오는 문가에 울렁이는 마음안고 귀를 대이던 그는 그만에야 속이 뭉클해나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아, 칼도마소리…
가슴에 파고들며 심장을 두드려대는 남편의 그 칼도마소리에 은옥은 뜨거운것이 맺혀올라 두눈을 깜빡거렸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마음이 대번에 가벼워지고 정겨운 감정이 스며들었다.
남편은 또 나때문에 앞치마를 둘렀구나.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은옥은 얼른 눈굽을 훔치고 문을 열었다.
《어마나!》
문우에서 무엇인가 나부시 떨어져내리는 바람에 은옥은 놀라서 올려다보았다.
꽃보라가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문손잡이에 매여놓은 끈이 당겨지면 꽃보라가 떨어지게 되여있었던것이다.
꽃보라를 한껏 들쓴 은옥은 남편의 이 엉뚱한 장난에 웃음이 절로 났다.
칼도마소리가 뚝 멎고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부엌에서 불쑥 나타났다.
《왔구만. 여보, 축하하오!》
은옥은 의아해서 벙글거리는 남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당신 오늘 설계를 끝냈다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경섭은 뒤짐을 척 졌다.
《왜 모르겠소? 당신이 그 묘향산 하비로 탐승다리설계를 자진해맡았다는것도 다 알지. 정말 잘했소.》
경섭은 은옥의 가방을 받아쥐며 방안에 대고 소리쳤다.
《봄이야, 엄마가 왔다.》
《엄마ㅡ》
봄이가 구을듯 달려나왔다.
자그만 손에서 빨간 꽃 한송이가 한들거렸다.
꽃송이를 내미는 딸애를 담쑥 들어올리니 생긋한 꽃향기가 짜릿하도록 온몸을 감싼다.
은옥은 촉촉히 젖어드는 쌍겹진 눈을 깜빡이며 밝게 웃었다.
아, 행복, 가정의 행복은 이런것인가.
품에 안긴 봄이가 꼼지락거리며 꽃잎같은 손으로 사탕을 열심히 벗겨내여 은옥의 입에 넣어주더니 조잘댔다.
《엄마, 아부지가 콤퓨터 장난하다 닭알 타뜨렸다.》
《그래?》
은옥은 딸애의 능금볼에 입을 쪽 맞추고 호호 웃었다.
숨겨둔 비밀이 드러난것처럼 우정 난처한 기색을 짓는 남편의 모습은 더 재미있었다.
《요 고발쟁이! 하하, 당신 설계를 한번 보고싶더라니까.》
저녁상을 물린 은옥이 설겆이를 하려고 일어서는데 남편이 팔을 잡아끌었다.
《여보, 좀 앉소. 내 당신이 구상하는 설계를 좀 보았는데 말이요.》
은옥이 구미가 동해 다가앉았으나 남편은 끙끙 갑자르기만 했다.
《아이, 당신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어서 말씀하세요.》
남편은 히죽이 웃으며 콤퓨터에서 설계화상을 펼쳤다.
경섭은 마치 잊었던 그 무슨 귀중한것을 당장 찾아내기라도 할듯 진중한 표정으로 도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설계가 어때요?》
남편의 머리가 좌우로 기웃거렸다.
《어쩐지 설계가…》
심드렁한 남편의 목소리가 은옥의 가슴속에 천근으로 매달리는것 같았다.
은옥의 기색을 띠여본 남편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것처럼 몹시도 바빠했다.
《아 이거, 내가 전문가한테 괜한 소릴… 됐소, 어서 쉬기요.》
은옥은 살풋이 두눈을 내리깔았다.
도톰한 입술이 바르르 떨려났다.
남편의 눈은 언제나 정확하지 않았던가.
《여보, 왜 그런것 같애요?》
은옥은 기대를 안고 남편만 지켜보았다.
《글쎄… 뭔가 부족한것 같은데 딱히 잡히지 않누만. 하, 이럴줄 알았으면 묘향산에 한번 더 가보는건데…》
남편은 난감한 기색을 지어보였다.
은옥은 깍지낀 손등우에 턱을 고이고 펼쳐진 도면을 까딱 않고 지켜보았다.
남편의 말을 듣고보니 자기 눈에도 설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서일가? 불안은 서슬에 엉겨붙는 두부덩어리처럼 점점 커졌다.
다시 현지확증도 꼼꼼히 할겸 묘향산에 전개되는 현장설계실로 당장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장을 떠나자는 결심이 정작 서고보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여나왔다.
빈번한 출장으로 남편에게 집안의 크고작은 모든 짐이 자꾸만 덧씌여진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엄마등에서 떨어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딸애를 한사코 떼여놓던 때의 애타던 심정도 마쳐왔다.
《여보!》
조용히 남편을 부르며 고개를 돌리던 은옥은 그만 전기에라도 감전된듯 굳어졌다.
캐득거리는 봄이를 안고 침대에 누웠던 남편이 벌써 곯아떨어진것이였다. 코를 골아대는 남편의 잠든 얼굴을 전등빛이 어루만지고있다.
얼마나 곤했으면 저리도 몇분새 잠들었을가. 코허리가 매워났다.
모포깃을 여며주고 전등을 끄려는데 별안간 남편이 잠결에 소리쳤다.
《여보! 그거요, 그거. 빨리 콤퓨터를 켜우…》
처음엔 무슨 소린가 하여 긴장했던 은옥은 그만에야 왈칵 치미는것이 있어 고개를 틀며 입을 싸쥐고말았다.
안해의 설계에 어찌나 신경을 썼으면 헛소리까지…
은옥은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남편의 잠든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서있었다.
누구보다 나를 리해해주고 아껴주며 사심없이 도와주는 사람! 뜨거운 심장을 지닌 이런 남편을 만나 산다는 크나큰 행복이 그들먹이 차올랐다.
다음날 저녁 은옥은 일찍 퇴근길에 올랐다.
출장준비도 그래, 집을 떠나있는 동안 남편의 부엌일을 조금이나마 덜재도 그래 조급해지는 마음이였다.
아빠트현관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인민반장을 만났다.
《아니, 반장어머니. 무슨 일이 생겼어요?》
《빨리 저녁을 지어야지 령감한테 경칠가봐 그래.》
은옥은 웃음을 머금었다.
세대주는 건설기업소 반장, 안주인은 인민반 반장, 내외가 다 반장인셈이다.
아들 둘을 끌끌하게 키워 군대에 내보낸 후로는 남편공대가 더 곡진하고 령감로친의 의가 좋아서 깨가 찰찰 묻어나는 집이라고 인민반내인들이 시샘이 나서 혀를 두르는 부부지간이다.
먼저 계단을 허겁지겁 톺으면서도 인민반장은 성수가 난 모양 구럭에서 퍼들쩍거리는 닭 한마리를 은옥에게 쳐들어보였다.
《어드래? 살졌지? 요즘 령감이 입맛이 없어하길래 맏동서네 집에 가서 통비위를 부렸지뭐.》
은옥은 살이 통통한 몸을 요동치는 닭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늘 바삐 나가 돌아치는 령감덕에 집안일을 도맡아하느라 볼장 못 본다는 푸념속에 은근히 자랑을 양념처럼 버무리는 반장녀인이였다.
《이따가 봄이 아버지를 건너보내라구. 닭고기국을 끓여놓을테니…》
《고마워요.》
집에 들어선 은옥은 한숨을 내쉬였다.
안해로서 자기가 남편을 위해 바친것이 너무도 적다는 생각이 파고들어서였다.
무거워지는 마음을 안고 저녁을 짓고 탁아소에서 봄이도 데려왔다. 그리고는 팔을 걷어붙이고 출장가있는 동안 남편이 들 반찬감들에 지성을 쏟았다.
나박김치를 담그고 깨고추장도 만들어놓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경섭이가 량손에 배부른 구럭을 들고 들어왔다.
《이건 뭐예요?》
은옥이 구럭을 받으며 물었다.
남편은 싱글벙글하며 안해를 방으로 이끌었다.
《당신 래일 출장가지 않소. 그래, 두루 뭘 좀 준비했는데 혹 빠진건 없는지 좀 봐주.》
요술주머니인듯 구럭에서는 별의별것들이 다 나왔다. 은옥이가 좋아하는 단설기며 기름튀기, 바삭과자통에 알사탕봉지에다 사이다며 과일단물, 반찬거리며 여러종의 약품들, 나중엔 장미향수병과 분크림곽까지 나왔다.
은옥은 입이 딱 벌어졌다. 어쩜, 이렇게까지…
한동안 감각잃은 사람모양으로 앉아만 있는데 경섭은 룡악산샘물병을 쳐들었다.
《여보, 속탈도 있는데 가면서 목이 마르다구 아무 물이나 마시지 말구 꼭 이 샘물을 마시오. 알겠지?》
《여보…》
은옥은 남편의 손을 잡았다.
《자꾸 이러면 전 어쩌라는거예요?》
어쩔새없이 남편의 손등에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전 당신앞에 면목이 없는 녀자예요. 이날이때껏 안해로서 세대주공대도 바로 못하고 살아왔단말이예요. 흑…》
은옥은 설음이 북받쳐 어깨를 떨었다.
경섭의 따뜻한 손길이 은옥의 잔등을 어루쓸었다.
《여보, 그만하오. 하루빨리 설계를 완성해주오. 그게 이 남편이 받는 가장 큰 공대요.
당신은 지금 우리 가정의 행복을 설계하고있단말이요.》
은옥은 남편의 의미깊은 말에 생각이 깊어졌다.
경섭은 려행가방을 차곡차곡 정리하며 덧붙였다.
《난 요즘 가정에 대해 또 남편이라는 부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오. 안해가 사회를 위한 길을 웃으며 걷도록 떠밀어주는것이 남편의 몫중에서도 가장 큰 몫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이요.》
이 저녁 은옥은 그저 맘속으로 감사의 말을 고르고골라 곱씹기만 했을뿐이였다.
《여보, 봄이아버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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