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체98(2009)년 제5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최 충 혁
내가 호담당의사로 임명받은것은 4년전이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여기 종합진료소에 배치를 받았을 때 동창생들중에는 다소 놀람과 의아함을 드러내는 축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화음의 정확하고도 기준적인 음계를 눌렀으니 머지않아 《라, 씨》에로 규칙적이고도 성공적인 발전을 하게 되리라고 예측하는 소리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구역병원도 아니고 종합진료소에 배치된데 대해 나로서는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호담당2호실에서는 김설주선생과 계영미선생이 년장자다운 너그럽고도 포섭적인 미소를 피우며 나를 맞아주었다. 넓고 아늑한 호실은 첫눈에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같은 녀성으로서 두 녀의사와의 첫대면은 나에게 짙은 호감을 주었다. 시새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수 없는 두 선생의 환한 자태! 눈같이 흰 모자에 위생복을 입고 하얗게 회칠을 한 방에 단정하게 앉아있는 두 녀인… 현숙하고 부드럽고 아련한 그들의 모습을 일별하는 순간 나는 내심 감탄했다. 부러웠다. 환자들과 상냥한 말씨로 얘기를 주고받고있는 영미선생의 외모는 50대의 의사답게 한껏 세련되고 풍만하였다. 그는 내가 다닌 대학의 선배였고 나도 잘 아는 대학강좌장선생의 부인이였다. 대학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다가 여기로 전임해왔다는 그는 진료소에서도 무시할수 없는 영향력을 지니고있었다. 귀여운 외동딸과 함께 어우러진 그의 가정생활은 누구나 부러울만 한것이였다. 창문쪽에 앉아 해빛이 새그러운지 고개를 수그리고있는 설주선생은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일하면서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 내가 호담당의사로서 처음 해보는 사업에 대한 위구를 표시하자 영미선생은 《근심하지 말아요. 진료소에서는 기본이 예방사업이예요. 기본치료단위는 구역병원이라고 할수 있지요. 호담당사업에서 바로 이것을 헛갈리지 않는거예요.》하며 차근차근 호담당문건정리며 진단서작성법을 알려주었다. 그 조언은 나에게 단비처럼 반갑고 귀중한것이였다. 설주선생은 우리 두사람의 대화가 진행되는것을 듣기만 하고있었는데 때때로 공감인지 부정인지 모를 아리숭한 미소를 짓군 하였다. 그는 하얀 사기절구에 무슨 약을 콩콩 찧고있었다. 나자신이 밝고 명랑한것을 좋아하는지라 나는 첫걸음을 의탁하는 심정으로 자리도 기꺼이 영미선생의 곁으로 정하였다. 며칠후라고 생각된다. 아침일찍 구역병원에 들렸다가 진료소에 들어서던 나는 영미선생이 밀대를 들고 복도청소를 하고있는것을 보고 급히 다가갔다. 《설주선생이 아직 오지 않은거군요.》 나는 그를 거들어주었다. 설주선생은 왜 자꾸 늦어나올가. 집도 영미선생보다 더 가깝다는데… 아침부터 담당한 인민반들을 돌아보고야 출근한다는 설주선생이 나는 잘 리해되지 않았다. 출근부터 바로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온 하루일을 변변히 엮어나갈수 있단 말인가. 시루가 작으면 떡개도 작은 법이다. 밀대를 빨아가지고 올라오는데 그때에야 설주선생이 헐금씨금 뛰여오는것이였다. 《미안해요.》 그의 손에는 배가 불룩한 가지색보자기가 들려있었다. 그 보자기가 나의 눈에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그날 아침, 영미선생을 찾아온것은 한 할머니였다. 며느리가 젖이 돌지 않아서 너무 속상해서 왔다는것이였다. 《손주녀석은 자꾸 보채는데… 어디 젖이 나와야지. 돼지발쪽을 열개나 먹여보았으나 영… 젖몸만 크게 불어나지.…》 《할머니.》 영미선생이 다심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너무 근심마세요. 이제라도 큰 병원에 가보세요. 왜 이제껏 묵여두셨어요? 할머니말을 들으니 이젠 수술이라도 해야겠군요. 빨리 구역병원으로 가보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 할머니를 문가까지 바래우고 들어오는 영미선생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설주선생이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자리에서 일어서 구석에 놓아둔 보자기를 펼치는것이였다. 《영미선생, 이건 민들레예요. 우리 담당 주민때문에 구해온건데… 젖앓이엔 특효예요. 짓찧어서 붙여보지요. 웬만하면 수술을 안해도 나을거예요.》 건강관리부의 표지를 새로 씌우던 영미선생은 별로 달갑지 않은 기색으로 응수했다. 《언제 우리가 그런 젖앓이까지 안고 돌겠어요. 할일이 산더미같은데… 그런 환자들이야 제때에 전문병원으로 뽑아야지 괜히 환자들만 더 고통을 받아요.》 내가 보기에도 설주선생이 안할 걱정까지 다 맡아나서는것 같았다. 구태여 우리 담당의사들이 그런것까지 다 안고 씨름할 필요가 있을가. 영미선생의 말마따나 여기야 큰 병원도 아니고 한개 동의 자그마한 진료소가 아닌가. 월요일 아침이면 언제나 진료소에서는 구급치료가방검열이 진행되군 하였다. 오늘이 바로 그 월요일이였다. 영미선생의 가방을 본 나는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심장혈관계통의 구급약, 호흡기계통의 구급약 등과 체온계, 지압붕대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붙임띠로 싸고 색종이로 표시까지 했는데 선뜻 꺼내기조차 서슴어질 지경이였다. 그러나 설주선생은… 실망했다. 굽도리가 희끗희끗 벗겨지고 긁히운 가방안에는 구급약들뿐아니라 여러개의 작은 부항단지들로부터 시작하여 침통, 지어는 딸랭이까지 들어있었는데 가방귀퉁이로는 기침약병이 기린처럼 목대를 쑥 내뻗치고있었다. 《과장선생님, 미안합니다. 어린애체온을 재다가 그만…》 검열에서는 영미선생이 제일 우수하게 평가됐다. 《모두들, 영미선생의 모범을 따라배우자요.》 그날 퇴근때 영미선생은 생각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주선생의 가방이 그렇게 된건 사연이 있어요. 그 선생은 늘 그 구급치료가방을 가지고 환자들을 찾아다니니 언제한번 구급약을 제대로 건사해볼새가 없어요. 구급치료가방을 잘 갖춰놓아야 1차구급치료를 잘할수 있는데… 사람이란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면서도 이런 검열에서야 덧나지 말아야지요. 안 그래요?》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눈앞에는 녹두가루가 흩어진 가방을 들고 얼굴이 새빨개지던 설주선생의 모습이 환영처럼 어른거렸다. 곧은 자막대기로는 동그라미를 재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나에게는 그때 설주선생이 동그라미를 잴수 없다는 그 곧은 자처럼 여겨지는것이였다.
×
그들은 다 진료소적으로 평가하는 모범의사들이였다. 호담당사업을 이제는 10여년 하고있는 영미선생은 정말 모든 주민들의 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모든것을 능동적으로 처리해나가군 하였다. 그에게는 도무지 환자들이 몰리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 반면에 설주선생에게는 환자가 꼬리를 물었다. 환자가 오면 《어서 봅시다.》고 하며 진찰을 시작한다. 아주 세심하게… 그리고 지내 오래. 아마 자신이 무슨 진단이든지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설주선생이 여러가지 고려약들을 달여가지고 왕진을 나간 사이에 한 환자가 그를 찾아왔다. 30대의 지성미가 느껴지는 사람이였는데 큰 키에 손이 기와장처럼 큰것이 마주서기 두려운 우람진 체격이였다. 자주 눈을 감을 때마다 두눈까풀이 팔딱팔딱 뛰고있는것으로 보아 신경이 예민한 환자같기도 했다. 《어쩌나, 담당선생은 왕진을 나갔는데… 설주선생이 올 때까지 좀 기다려보지요.》 《아 선생님, 시간이 바빠서 그럽니다. 담당이 아니라도 일없으시다면 좀 봐주십시오.》 환자진단중 문득 어성이 높아지는 바람에 나는 영미선생을 돌아보았다. 《선생님, 전 진단서나 떼자고 온게 아닙니다. 소화가 잘 안되고 잠이 오지 않아서 왔는데 어떤 치료를 해야 합니까?》 《그럼 구역병원파송증을 떼드리지요. 렌트겐이랑 심전도검사랑… 진단을 과학적으로 내려보자요.》 파송증을 받아들고나가던 청년의 두덜거리는 말소리가 작두날처럼 썩둑 방안의 정숙을 동강냈다. 《헛참, 겨우 시간을 냈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에익… 이건 의사가 아니라 안내원같다니까.》 나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마치 나를 보고 힐난하는듯… 근심짙은 눈길로 영미선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묵묵히 앉아서 청진기의 까만 고리만 만지작거리고있었다. 그에게는 성급한 환자의 푸념쯤은 여반사로 너그러이 흘러넘길 관용은 넉근한것 같았다. 밖에서 나직하나 강단있는 부름이 그 청년을 멈춰세웠다. 설주선생이였다. 《그래 동무가 그 선생에 대해서 도대체 뭘 안다고 그런 소릴 망탕 해요. 그 선생은 어느 하루도 맡겨진 초소를 떠나본적이 없는 의사예요.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설사 치료에 빈구석이 있다 해도 그게 무슨 버릇이예요.》 청년은 얼굴이 벌개지며 고개를 수그렸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그만…》 나는 황황히 복도에서 물러섰다. 유리문에 기대여선 나는 소릇이 눈을 감았다. 마치 나를 옹호해준것만 같은 감사한 심정이였다. 저녁… 나는 함께 퇴근하자고 하는 영미선생에게 먼저 가라고 량해를 구하였다. 왜서인지 혼자서 걷고싶었다. 밤이다. 하늘에는 해바라기씨처럼 오롱조롱한 별들이 찬란히 반짝거리고있는데 복판에는 등황색의 보름달이 듬직하게 틀고앉아 대지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분수터를 지나던 나는 저도 모르게 물우에 비낀 달그림자우에 돌쪼각을 던져보았다. 일그러진다. 어느것이 진상이고 어느것이 허상인가. 나는 의자에 살풋이 기대여앉았다. 등받이의 꽛꽛한 가름대가 애무하듯 느껴진다. 언제인가 나는 급병으로 허탈에 빠진 한 환자와 맞다들었었다. 급작스레 구급치료가방을 꺼내들었으나 강심제는 이미 써버린 뒤였다. 어쩔가. 긴장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구역병원으로 후송하자고 해도 구급대책을 세워야 했다. 급히 약국으로 달려갔으나 공교롭게도 열쇠가 걸려있었다. 약품공급소에 약을 받으려고 나갔던것이였다. 나는 영미선생을 찾았다. 《어쩌나… 내 구급치료가방은 집에 있는데…》 《예?! 》 그의 말에 나는 아연해졌다. 그러니 그 훌륭한 구급치료가방은 집에만 둬두는 순수 검열을 위한 진렬품에 불과하단 말인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인중에 침대를 푹 꽂고 돌리는것처럼 저릿한 느낌이다. 《자요. 이걸 먼저 쓰세요.》 눈물이 가랑가랑해있던 나는 설주선생이 쥐여주는 강심제를 후더웁게 받아들었다. 그날 설주선생이 아니였다면 무슨 일을 칠번 했는가. 청년의 모욕을 묵새기며 청진기의 까만 고리만을 매만지던 영미선생의 모습이 인두화처럼 도드라진다. 완두콩알보다 더 작은 청진기의 그 까만 고리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영미선생의 생활속에서 찾아본 《담석》쪼각이랄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장처럼 걸려있던 은하수가 너울너울 흘러간다. 긴꼬리를 가무리며 류성들이 제마끔 곤두박이친다. 원반같은 보름달에 둘러진 저 달무리… 달무리가 지면 날씨가 흐린다지만 나에게는 그때 무리진 보름달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뿐이였다.
×
《은하선생, 듣자니 오늘 52반 반장어머니네 며느리가 평양산원에서 퇴원한대요. 한번 가봐야지 않아요. 그 환자야 임신후반기 중독증이 와서 선생이 얼마나 애썼어요. 첫 옥동자를 낳았는데 축하해줘야지요.》 나의 얼굴은 구은 가재처럼 할딱 붉어졌다. 《아이, 제가 어떻게…》 《됐어요. 설주선생, 은하선생 얼굴이 빨개지는걸 좀 봐요. 처녀가 어떻게 가겠어요. 어련히 가족들이 마중가지 않을라구요.》 설주선생은 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모든 일에서 나이로 봐도 그렇고 년한으로 봐도 선배인 영미선생의 말을 존중해주느라고 애쓰는것 같았다. 그날 나는 영미선생의 너그러운 변호때문이라기보다도 단지 처녀의 순진한 부끄러움때문에 설주선생의 권고를 무심히 흘러넘기고말았다.… 약초철이였다. 나는 설주선생과 약초채취를 나가게 되였다. 그사이 영미선생이 우리 두사람이 담당한 주민들도 맡아보기로 되였다. 여러날동안 깊은 산을 오르내리며 귀중한 약재들을 채취해가지고 돌아오니 영미선생이 그동안 떼놓은 병력서들과 진단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다. 《수고했습니다.》 우리는 그새 과중한 치료사업으로 피로한듯싶은 영미선생에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인사를 하였다. 《별소릴 다해요. 선생들이 더 수골 했지.… 참, 설주선생, 며칠전에 선생이 담당한 인민반에 한세대가 새로 이사왔어요. 그런데 정말 한심한 집이더라니까요. 열일곱살이나 먹은 그 집 아들애가 밤오줌증이 있더라니까요. 그 애 어머닌 어처구니도 없지… 글쎄 진료소에서 치료 못해주는가고 하지 않겠어요. 그 나이가 되도록 뭘하고있었는지…》 《영미선생, 그 어머닌들 오죽하겠어요. 그래도 기대를 안고 찾아왔었겠는데… 그렇게 외면하다니.》 설주선생은 그날 저녁부터 파송증을 떼준 환자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영미선생은 자기를 믿지 못해 그러느냐고 여간만 섭섭해하지 않았다. 《그래서가 아니예요. 담당의사가 그새 담당환자들을 만나보지 못했으니 경우가 됐어요? 병력서나 작성하고 파송증이나 떼주는것으로 책임이 끝난다면 우리가 무슨 호담당의사겠어요. 치료할수 있는 환자야 왜 우리가 책임지지 못하겠어요. 우리야 그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가정의사가 아니예요.》 설주선생은 그 희끗희끗 칠이 벗겨진 구급치료가방을 들고 방을 나섰다. 그가 남기고간 향긋한 고려약냄새가 방안에 연연하게 감돌고있었다. 목요설비점검을 할 때 영미선생이 외국에 다닌다는 한 주민이 가져다준 고급향수를 방에 뿌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설주선생이 만성환자치료에 쓸 고려약을 만드느라고 약꾸레미를 펼쳐놓는 바람에 그들사이에는 약간의 가벼운 언쟁이 일어났다. 《설주선생, 검열이나 받은 다음에 하면 안되겠어요? 약먼지가 일어나겠는데…》 《미안해요. 환자때문에… 이 방에서 약먼지나 냄새가 난다고 문제가 되겠어요.》 말문이 막힌 영미선생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그만 두고 향수병을 서랍안에 집어넣었다. 과연 병원에서 향수냄새가 나야 옳을가. 그때에야 나는 자신이 이때껏 이 정결한 방안에서 풍기는 낯선 향수냄새에 더 호감을 가지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내딴에는 그것이 바로 병원의 향기라고 여겼으니… 그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이 순간에 와서는 그런 자신이 한없이 경멸스러워지는것이였다. 영미선생의 의아해하는, 놀라와하는 눈길을 꼿꼿이 느끼며 나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의 눈언저리가 괴롭게 경련을 일으키고있는것으로 보아 이제는 그에게도 랭철한 사고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는지. 사람의 마음이란 가구류가 아니여서 한번 입힌 색갈을 다시 바꾼다는것은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없이는 도무지 이루어질수 없는것이다. 단지 그 고민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뿐… 늦도록 파송증을 해주거나 진단서를 떼준 환자들의 집을 찾아보던 나는 52반 반장어머니의 집으로 갔다. 그때에는 집에 찾아가는것이 부끄럽다는 생각뿐이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돌이킬수록 호담당의사로서의 묵과할수 없는 실수였고 허점이였다. 두려운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우리를 보고 주민들은 《우리 담당의사선생》이라고 부른다. 단지 습관이 되여서일가. 아니, 주민들은 누구나 너그럽고 세심하다. 마치 자기 집 식구에 대한 애착처럼 그들은 생활에서도 설사 마음 한구석에 의혹이 남아있어도 범상히 흘러넘기고 오직 좋은것, 고마운것만 기억하려고 애쓰는것이다. 아,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먼 후날에 만나서도 꾸밈없이 진정을 담아 《우리 담당의사》라고 부를수 있게 살아왔단 말인가. 참된 의사가 되자면 외모보다도 먼저 마음에 깨끗한 위생복을 입어야 한다는것을 나는 그때에야 알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니, 우리 담당선생이로구만.》 반갑게 맞이하는 어머니앞에 나는 더욱 송구해졌다. 《어서 들어가자구, 어서.… 애들아, 담당의사선생님이 오셨다.》 집식구들과 인사를 나누던 나는 어린애를 안고 마주 나오는 청년을 보고 우뚝 굳어졌다. 언제인가 영미선생을 《안내원》이라고 불평하던 그 청년이였다. 그도 뜻밖의 상봉에 당황해진듯 큰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거렸다. 전후사연을 알리 없는 어머니는 어린애를 넘겨받더니 나에게 아기의 해죽한 얼굴을 보여주었다.《참, 이 사람은 우리 며느리 동생이라네. 연구사지. 오늘 일이 있어서 들렸다네.》 그 청년을 나에게 소개하는 말이였다. 《저… 선생님, 그땐 정말 안됐습니다. 제 성미가 원래…》 《아이… 오히려 우리가…》 《아닙니다. 무심히 한 그 말이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모욕이 되리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지금 건강은 어떠세요? 구역병원엔 가보셨는가요?》 《아, 그것 말입니까? 이젠 일없습니다. 우리 담당선생님이 그후에 제가 연구사업때문에 바쁘다는것을 알고 약을 지어가지고 현장에까지 오지 않았겠습니까.》 《예?! 》 나는 놀랐다. 그러나 그 어머니에게서 바로 설주선생이 나를 대신하여 가족들과 함께 산원으로 갔었다는것을 알고는 너무 감격하여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집을 나설 때는 어느덧 어둠이 자리를 잡은 뒤였다. 한사코 진료소까지 바래주겠다고 하여 그 연구사청년과 함께 걸었다. 호젓한 밤길이였다. 한 남자와 그렇듯 범상하게 얘기를 주고받으며 밤길을 걸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였다. 그가 최첨단공작기계개발을 위해 연구소에서 현장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며 또 앞으로 영원히 연구사로 과학연구사업에 투신하겠다는 등의 이야기는 점점 내 마음속으로 한기장두기장 파고드는듯싶었다. 알고보니 리상이 높고 포부가 큰 청년이였다. 어느새 친숙해져 이야기를 주고받던 우리는 진료소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저, 앞으로 감기라도 걸리면… 감기약을 얻으러 가겠습니다.》 《아이, 담당선생이 계시는데 어떻게 저에게…》 나는 당황해지며 인사말도 없이 진료소로 뛰여들어갔다. 마음은 이상하게도 즐거워졌다.
×
하얀 꽃무늬벽지를 바른 벽에 세워놓은 선풍기에서 시원히 불어나오는 바람이 노래의 흥겨운 곡조에 잘어울려 집안의 흥취를 몰아왔다. 밥상우에는 영미선생의 딸 향미가 재간껏 료리한 음식들이 자리를 다투며 들어앉았다. 《향미야, 들어오너라. 네 생일날에 어머니가 구경만 하고말겠구나.》 의학대학을 졸업한 후 박사원에 들어간 딸을 축하해줄겸 딸의 생일을 계기로 집에 초청했는데 마침 일요일이라 나로서도 무엇이라 내밀 구실이 없었다. 그래 설주선생과 함께 오자고 약속했는데 무슨 일인지 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방안구경을 하고있는데 영미선생이 딸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영미선생님, 대학병원에서 여기에 와 일하자니 서운하지 않으세요?》 《별수 있어요? 향미 아버지 대학사업도 도울래 또 우리 〈공주님〉시중도 들래… 어디 대학병원에서야 시간이 있더라구. 뭐니뭐니 해도 우리 녀성들에게야 시간보다 더 고운게 있어요? 집이 가까와 좋아, 또 진료소에서야 크게 머리쓸게 없는걸 뭐.》 저녁시간이 되자 향미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아, 은하선생이로구만. 고맙소. 이렇게 와주어…》 《우리 먼저 시작하자요. 설주선생은 좀 늦어지는 모양인데.》 《설주선생 말이요? 내 아까 인민대학습당에서 얼핏 보았댔소. 책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더군.》 《네?! 》 우리는 놀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선생을 보니 정말 생각이 깊어지더구만. 그 나이에 자식들을 키우면서 실력을 높이려고 아득바득 애쓰는 모습을 보니 일하면서 대학을 다니던 모습이 떠오르더구만. 내 그땐 정말 탄복했다니까. 글쎄 돌에 잡힌 아들을 업고 대학에 와서 밤새워 개별강의를 받더란 말이요. 이악쟁이였지. 그걸 어떻게 단순한 기질이나 습벽이라 하겠소. 바다를 말려서 진주를 캐낼 그런 의지, 그런 열정이 없다면야 감히 애어머니가 대학공부를 할 엄두나 냈겠소? 그래서 난 학생들에게 자주 그 이야기를 해주군 하오. 설주선생을 보면 생각되는바가 많소.》 《그래요?》 영미선생은 얼굴에 아리숭한 표정을 지으며 말머리를 밥상머리에로 돌려놓았다. 《설주선생두 참… 아마 박사라도 될려는 모양인지… 은하선생, 무슨 생각에 그리 골몰해요. 자, 시원히 사이다나 들어요.》 생각에 잠겼던 나는 얼결에 사이다고뿌를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기분까지야 시원해지겠는가. 잘 익은 벼이삭이 머리를 수그리는 법이다. 이제껏 설주선생에 대해서 편협하게만 생각하고있던 나의 가슴에서는 깎을수록 커지는 구멍처럼 그에 대한 동감과 리해의 감정만이 새록새록 커가는것이였다. 《딸랑, 딸랑.》 초인종소리가 방안의 분위기를 더욱 흔들어놓았다. 영미선생이 전실로 나갔다. 《설주선생이 왔군요. 아이, 이 땀… 어서 들어오세요. 그러지 않아도 몹시 기다렸어요.》 그 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슬비를 맞은 사람처럼 그의 얼굴에서는 땀방울들이 줄지어 굴러내리고있었다. 《고마와요. 그만 급한 일이 있어서… 향미에게 기념품을 주자고 들렸어요. 생일인데 작은엄마가 안 오면 향미가 얼마나 서운해하겠어요.》 기쁨에 넘쳐 달려와 안기는 향미! 《작은엄마!》 설주선생은 가방에서 새 위생복과 모자를 꺼내들었다. 나는 감개로운 눈길로 설주선생을 바라보았다. 나나 영미선생이 그에게 준 값진 물건마저도 그 위생복과 견주기에는 너무도 보잘것 없는것 같았다. 《그저 작은엄마의 마음뿐이다. 난 향미가 부모님들처럼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향미야, 생일을 축하한다.》 가슴이 뭉클했다. 눈처럼 희고 티없이 깨끗한 설주선생의 마음이 그 하얀 위생복우에 무지개처럼 비껴있는듯… 한사코 잡아끌었으나 설주선생은 그 자리에서 돌아섰다. 《미안해요. 오던 길에 한 환자와 맞다들렸어요. 가까이에 있는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그만 가족들에게 알려주지 못했어요. 지금 얼마나 걱정하겠어요. 그래서… 어서 들어가보세요. 그럼 전…》 《가만, 가만있어요. 향미야, 네가 작은어머니와 함께 가거라, 어서.》 영미선생이 서두르며 음식을 구럭에 담았다. 《저… 영미선생님, 제가…》 영미선생이 들려준 음식구럭을 든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를 따라섰다. 《선생님, 늦었는데 함께 가시자요.》 나는 설주선생과 함께 걸었다. 이제껏 나는 영미선생이 가는 시간을 맞추어내느라고 애쓰고 모든 일을 그를 본받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누가 말을 떼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냥 걷는 맛에 취해 그렇게 걸어만 갔다. 《선생님두 참, 오늘같은 날에야 좀 쉬여야지 힘들지 않으세요?》 《왜 힘들지 않겠어요. 두 사내녀석이 얼마나 벌찬지 막 어지럽다니까요. 옛말에 딸 셋이 있는 집은 물이 모자라고 아들 셋이 있는 집은 쌀이 모자란다더니… 글쎄 이건 노는것도 먹는것도 공부하는것도 꼭 승벽내기라니까요. 호호호.》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부담을 걸머지고서도 언제나 치료사업을 더 훌륭하게 수행하자고 애쓰는 설주선생의 모습이 새롭게 생각키우며 처음에 잘못 생각했던 자신을 끝없이 타매하게 되는것이였다. 낮에 빛나지 않고 캄캄한 밤중에 빛을 뿌리는것이 야광주였다지. 이런 선생을 나는 한때 동그라미를 잴수 없다는 자막대기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던가. 나자신마저도 어느새 안온하고도 편안한 생활에서 벌써 만족에 도취되여있었단 말인가. 이제는 림상의전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다방면적이고도 심도있는 의술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언제나 부단히 자신을 수련하고 지식을 넓혀나가는 설주선생의 모습을 나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쉰이 다된 내가… 더우기 진료소의사가 무얼 더 공부한다니 우스운 모양이지요?》 나의 표정을 자의대로 분석한 설주선생이 손에 들고있던 책을 가방에 넣으며 회억에 잠긴듯 숙연한 기색이 되였다. 《은하선생, 난 구역병원에 있을 때 중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안타까왔어요. 〈지금껏 무엇을 했어요. 왜 초기에 오지 못했나요?〉 하고 물으면 그들은 다〈그러다 말겠거니 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만 일이라고 하다나니…〉 하는것이였어요. 중병에, 불치의 병에 걸렸어도 의사선생님들이 치료를 잘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인사하던 그 모습들은… 그때 가슴아프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사실 조기진단을 해서 제때에 병을 치료했더라면 그런 가슴아픈 일들은 없는건데… 얼마나 귀중한 사람들이예요. 우리 당이 얼마나 아끼는 인민이예요. 그런데 난 호담당의사가 되여서야 알았어요. 우리가 제일선의 의사라는것을, 우리가 주민들에 대한 검진과 치료사업을 구체적으로 하여 질병선별과 진단을 잘 내린다면 능히 모든 병을 조기에 치료할수 있다는걸 말이예요. 어린애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내과, 외과, 안과와 이비과는 물론 지어는 피부과까지 모든 부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없이는 이 호담당초소를 제대로 지킬수 없다는걸 나는 절감했어요. 그래서 자꾸 공부를 하지만 아직 모르는게 많아요. 의사담당구역제야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베풀어주신 가장 우월한 건강관리제인데 우리 담당의사들이 인민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적복무정신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를 담당의사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그 믿음에 보답한다고 하겠어요. 정성은 명약이예요. 그러나 참다운 실력이 없는 보건일군에게서 진짜 정성이 나올수 없다고 난 생각해요.》 나의 가슴은 그 어떤 진리를 받아안은듯 흥분으로 들먹이였다.
×
《선생님, 우리 큰어머닌 어디 나갔습니까?》 건강관리부를 정리하던 나는 문가를 바라보았다. 문앞에는 새 군복을 입은 신입병사 한명이 서있었다. 가슴에 달린 꽃송이가 류달리 붉어보였다. 신입병사는 퍽 드레진 체격이였다. 약간 처질사하게 보동한 젖빛볼우에서 장난꾸러기다운 애교가 남실거리는데 내가 바라보느라니 숫적은지 피씩 웃는것이였다. 감자싹처럼 깜찍하고도 희디흰 덧이가 일순간 드러나며 점직해하는 그를 바라보던 나는 막내동생을 마주한것 같은 친숙감으로 어느새 기분이 흥그러워졌다. 《누굴 찾느냐? 큰어머니라니… 혹시 설주선생님을 찾지 않니?》 《예, 우리 담당선생님입니다. 어디 가셨습니까?》 어째서 그 애가 설주선생을 큰어머니라고 부르는가고 물어보려는데 복도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용혁아, 선생님이 네가 오늘 군대에 나간다니 꼭 역으로 나오시겠다는구나.》 설주선생과 함께 들어서던 녀인이 아들에게 기쁜 기색을 지어보였다. 《큰어머니, 정말이지요? 난 큰어머니가 바쁘신데 혹시 못 나오시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했는데…》 《우리 용혁이가 그렇게 소원하던 인민군대에 나가는데 이 큰어머니가 빠지면 되냐. 어디 좀 보자. 군복을 입으니 더 의젓하구나.》 설주선생의 얼굴에는 성장한 자식을 보는 대견함이 진하게 어려 환하였다. 한송이의 만첩 목란꽃같은 그 미소는 진실하고도 정갈한 그의 마음을 입술우에다가 아니라 바로 가슴속에서 활짝 피여나게 하였던것이다. 부모의 사랑처럼 그렇게 따뜻하고 세심한것, 어머니의 미소처럼 그렇게 깨끗한것, 어머니의 기쁨처럼 끊임없이 박동차고 깨지지도 닳지도 않는것이 과연 이 세상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군복을 입은 담당주민의 한 자식을 그러안고 그렇게도 기뻐하는 설주선생의 모습에서 나는 친어머니다운 그 사랑의 뿌리를 찾아보았다. 그날 나는 뒤늦게야 그 애의 어머니에게서 지난 사연을 들을수 있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온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저녁이였어요. 밤이 퍼그나 지났는데 글쎄 약초채취를 나갔다던 담당선생님이 불쑥 우리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겠어요. 사실 우리 애에겐 내놓고 말할수 없는 밤오줌증이 있었답니다. 몸자랑은 안해도 병자랑은 하랬지만 어떻게 그런 병이야.… 그래 이래저래 숨겨왔지요. 다 큰 애니 더하더군요. 그래 남모르게 많은 애를 썼으나 끝내는 손털고말았어요. 병이 자꾸 재발하더군요. 그러다나니 애가 혼자 고민하고 우울해지고 또 그런 병을 가지고는 군대에도 못 나간다는걸 알고는 점점 성격이 이그러져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리기가 일쑤였답니다.》 녀인은 약솜처럼 하얀 손수건을 꺼내들더니 눈귀에 맺힌 눈물방울을 천천히 훔쳐냈다. 《그날 눈물속에 하소연하는 저의 말을 들으며 설주선생님은 깊은 생각에 잠겨계셨어요. 그러다가 〈용혁이 어머니, 우리 꼭 용혁이를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군복을 입혀주자요. 그 애가 군관의 아들답게 손에 총대를 꼭 잡게 해주자요.〉 하며 저의 손을 꼭 부여잡았어요. 전 그때 그저 동정에서 나온 위안으로나 여겼지요. 그런데… 다음날부터 담당선생님은 매일 저녁 우리 애를 찾아오셨답니다. 고려약도 달여먹이고 침치료, 안마, 여러가지 민간료법은 물론 지어는 그 애가 창피해서 침대밑에 감추어놓은 잠옷까지 빨아주는게 아니겠어요. 이렇게 옹근 석달이나 애쓰셨답니다. 우리 용혁인 그때부터 담당선생님을 큰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신체검사에서 합격됐다는것을 알았을 때 그 앤 제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라 글쎄 선생님네 집으로 먼저 달려가지 않았겠어요. 그리고는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니까요. 제 부모도 이제는 어쩔수 없다고 맥을 놓았던 그 애를 우리 담당선생님이 이렇게 군복을 입게 해주었지요. 정말 우리 담당선생님은 인민반 그 어느 사람이나 다 한가정처럼, 친혈육처럼 사랑하는 진짜 큰어머니, 훌륭한 보건일군이예요. 이런 인민의 참된 보건일군을 키워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머리숙여 큰절을 드리고싶어요. 큰절을… 흑.》 그날 나는 새로 태여난 심정이였다. 온 가슴이 불을 마신듯 달아올라 선뜻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큰 강에는 반드시 깊은 소용돌이가 있는 법이다. 이제껏 기슭만을 감돌던 나의 배는 드디여 한 인간의 열렬하고도 지극한 사랑의 대하에서 거침없이 끌어당기는 충격과 감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기 시작했던것이다. 《우리 담당의사선생님!》 얼마나 훌륭한 부름인가. 그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직위에 앞서 정에 끌리고 사랑에 젖어 스스럼없이 부르는 저 진정어린 목소리여. 나는 과연 지금껏 설주선생과 같은 그런 사랑으로, 친혈육과 같은 그런 정으로 주민들을 대해왔던가. 나에게 있어 담당주민들은 로동행정시간 480분동안만의 《식구》였고 《혈육》이였다. 진료소란 물살이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우물밑으로나 생각하지 않았는가. 어느새 편안하게 살줄 알게 되였고 조금만 더 어렵고 중한 병세에는 기껏해서 파송증이나 떼주고 진단서나 주는것으로 만족했었다. 그리고도 제딴에는 바로 그것이 진짜 호담당의사의 본도이며 사명이라고 자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설주선생의 모습은… 아 얼마나 돋보이는 훌륭한 모습인가. 기뻐도 슬퍼도 아파도 주민들과 함께 모든것을 다 나누며 사는 이런 사람이 바로 진짜 우리 가정의사가 아니겠는가. 용혁이와 함께 역으로 나가는 설주선생을 바래우고 들어오던 나는 책상에 그린듯이 앉아 점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영미선생을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았다. 아마도 자기가 그렇게 외면했던 환자가 병을 털고 군복을 입게 된 사실이 차겁게 응고된 그의 심중에 큰 자극을 준것이 아닌지. 그날 저녁 나는 영미선생과 나란히 퇴근길에 올랐다. 《난 그들을 볼 면목이 없어요. 솔직히 진료소에 와보니 내 능력으로 더 노력을 안해도 생활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때껏 그렇게 살아왔어요. 진료소를 편안한 자리로나 여겼지 그 어느 병원보다도 더 중요한 초소라고는 생각 못했댔어요. 여기가 바로 인민들과 제일먼저 만나는 곳이라는걸 몰랐지요. 저와 같은 의사가 있을 자리가 과연 어디에 있겠어요. 또 그런 의사는 어디에 필요해요.… 그러면서도 오히려 은하선생에게 그것을 자랑으로, 경험으로 넘겨주려고까지 했으니… 은하선생, 날 용서해요.》 잊을수 없는 밤이였다. 참 좋은 밤이였다. 달빛이 고물처럼 골고루 뿌려지는 유보도우에는 단조로운 발자욱소리만이 그 어떤 이야기를 속삭이듯이 가락맞게 울리고있었다.
향미가 진료소로 찾아왔다. 《네가 어떻게? 대학교원으로 배치받는다고 하지 않았냐?》 《어머니가 떠밀어주셨답니다. 저도 여기에서… 이 초소에서 참된 인민의 의사가 되고싶어요.》 《향미야.》 나는 그 애를 와락 껴안았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더니… 언제 알았는지 설주선생이 뛰여들어왔다. 《장하다, 장해. 네가 우릴 많이 배워주렴.》 《작은어머니두 참, 보세요. 이 위생복… 그때 작은 어머니가 주신…》 《그래, 그래.…》 나는 향미를 얼싸안고 환하게 미소짓는 설주선생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우리 담당의사! 정성으로 살고 정성속에 삶의 보람도 긍지도 찾는 저 모습, 무슨 대가나 보수를 바라서 저렇게 웃으며 사는것일가. 담당주민들이 모두 건강하고 모두가 백살장수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 건강하고 그렇게 장수하여 부강하는 내 조국의 보탬이 되고 기여가 되도록 오로지 자신을 그들의 친어머니, 친딸로 생각하는 그 마음을 과연 그 무엇에 비길수 있을것인가. 사람들이여! 이런 보건일군들이 그대들의 매 가정과 일터에 언제나 함께 살고있음을 부디 잊지 마시라.
(조선인민군 군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