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8(2009)년 제4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편소설

 

            

한  일  화                   

연주는 끝났다.

국제콩클수상자 유현송의 출연이라고 소개했을 때부터 숨을 죽였던 관중은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열렬한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뒤이어 꽃묶음을 든 사람들이 무대로 앞을 다투어 오른다.

현송은 지금 무대 한복판이 아니라 행복과 영광의 절정우에 서있다.

눈부신 조명등의 밝은 불빛들, 아름벌게 안은 화려한 꽃묶음들…

희열에 넘친 얼굴로 객석을 바라보던 현송은 문득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띠여보았다.

열광적인 축하를 보내주고있는 사람들속에 섞인 부모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막이 내리기 시작했다.

현송은 무작정 아버지, 어머니를 소리쳐불렀다.

그런데 그들은 현송의 부름소리는 듣지 못한듯 출입문을 향해 간다.

문을 나서는 그들을 정신없이 따라서던 현송은 그만 발을 헛짚어 무대밑으로 나떨어졌다.…

《아!》

외마디비명을 지른 현송은 눈을 번쩍 떴다.

창문으로 흘러드는 달빛아래 깊은 잠에 든 동무들의 모습이 드러나보인다.

옆자리에서는 은경이 쌔근쌔근 숨을 몰아쉰다.

현송은 호― 긴숨을 내쉬였다.

긴장이 풀리며 안도감이 온몸을 부드럽게 휩싼다.

(꿈이였구나!)

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한 모습들이였다.

현송은 이마에 함초롬히 내배인 식은땀을 훔쳤다.

아버지, 어머닌 왜 날 외면했을가.…

현송은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늑한 돌격대병실, 단잠에 든 동무들…

현실로 돌아온 현송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새록새록 맑아진다.

부모의 모습이 자꾸만 가까이 다가선다.

기상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릴 때까지도 현송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

물길건설장은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졌다.

하나의 산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토량을 운반해야 하는 작업이였건만 청년돌격대원들의 얼굴에서는 신심과 랑만이 넘쳐흘렀다.

백마―철산물길건설을 끝내고 이곳에 온 돌격대원들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듯 했다.

수만정보의 미루벌을 적시는 생명수를 청춘의 피끓는 심장으로 우리가 끌어오자.

건설장에 나붓기는 기폭과 같은 그 정신이 몇달째 진행되는 굴착작업이건만 조금도 지칠줄 모르는 힘과용기를 안겨주는것이였다.

《작업 그만!》

대대장의 청높은 목소리가 전투장에 울려퍼졌다.

《동무들, 평양에서 예술선전대가 왔소. 기회는 한번이요. 저 리학교마당에…》

대대장의 목소리는 삽시에 터져오르는 환호속에 묻혀버렸다.

노래라면 오금을 못쓰는 처녀들에게는 평양이라는 그 말 한마디마저도 그리운 수도의 번화한 무대를 상기시키는 비상한 힘을 가지고있는것이였다.

《빨리 가자! 맨 앞자리에 앉아야 배우들의 얼굴도 봐.》

다급히 현송의 손을 잡아끌던 은경은 놀랐다.

은경의 손에서 자기 손을 뽑은 현송이 맞들이에 다가서는것이였다.

《언니, 난… 안 갈래.》

《왜 그래?》

《이 맞들이를 손질해야겠어요. 못이 빠진것 같은데…》

은경의 얼굴에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갑자기 왜 그래? 그거야 공연을 보구와서 고쳐두 되겠는데… 어서 가자.》

은경은 무작정 현송의 손을 잡아끌었다.…

공연은 열렬한 박수갈채속에 끝났다.

이미 텔레비죤화면을 통해 낯을 익힌 배우들인지라 인기는 그야말로 최절정이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던 은경은 그제야 옆에 앉았던 현송이가 없어진것을 알아차렸다.

의아한 눈길로 사방을 둘러보던 은경은 《저…동무!》하고 등뒤에서 찾는 목소리에 돌아섰다.

방금 공연에 출연하여 사람들의 재청을 세번씩이나 받은 젊은 배우였다.

《한가지 좀… 물어봅시다.》

《예? 무슨 일인지…》

저으기 당황해진 은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 동무옆에 앉았던 녀동무의 이름이 유현송이가 맞는지 해서 그럽니다.》

《예? 예.… 맞습니다.》

순간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옳구만요. 현송동무가 여기에 와있을줄이야…》

흥분한 배우의 목소리를 듣던 은경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저… 우리 현송동물 아십니까?》

《예, 우린 예술학원동창입니다. 현송동문 우리 학원에서 기타 1인자였지요.》

《그래요?》

은경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던 배우의 얼굴에는 아쉬운 표정이 비꼈다.

《저… 미안하지만 한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이제 또 다른 대대에 가야 돼서 그러는데… 현송동무에게 이제 뻐스로 좀 와달라고 전해주었으면 해서 그럽니다. 성진이라고 하면 알겁니다.》

《예, 전해주겠어요.》

인사를 남기고 그는 배우들이 악기를 싣고있는 뻐스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은경은 서둘러 작업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업장에서는 망치를 든 현송이가 수리한 맞들이앞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은경은 얼굴에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현송에게 다가갔다.

《현송동무, 성진이라는 동무가 동물 찾고있어.》

순간 현송의 얼굴에 비껴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굳어지는 현송의 얼굴을 바라보던 은경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빨리 가보렴. 뻐스곁에서 동물 기다리겠대.》

허둥거리는 현송의 시선이 은경이를 피했다.

《언니… 난 그런 동물 몰라.》

《뭐라구?!… 하지만 그 동문 널 꼭 만났으면 하더라.》

현송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언니, 그 동무 이야긴… 더 하지 말아줘.》

은경의 얼굴에 별안간 서운한 빛이 어렸다.

백마―철산물길공사장에서 처음 만나 같이 생활해오는지 2년이 되는 동안 너나없이 가깝게 지내온 그들이였다. 그런데 학원동창생앞에 나서길 왜서 꺼려하는지 은경은 현송의 마음을 리해할수 없었다.

은경은 아픈 눈길로 열심히 삽질을 하는 현송을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와올무렵 봄비가 내렸다.

처녀들은 기뻐서 웃고 떠들며 병실로 향했지만 뒤에 혼자 떨어진 현송은 호젓한 오락장쪽으로 걸었다.

여느때 같으면 기쁨과 환희속에 맞았을 포근한 봄비였건만 지금은 현송의 마음을 따뜻이 적셔주지 못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발사이로 성진의 의젓하고 환한 얼굴이 떠오른다.

2년동안에 몰라보게 달라진 성진이가 현송에게 묻고있었다.

동무의 2년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현송은 비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나의 2년은 비록 학창시절의 꿈과는 다르게 시작되였지만 긍지와 보람으로 충만되여있어요.…

 

현송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늘을 지어준 추억의 첫 페지는 수년전 음악대학 강좌장을 하던 아버지의 순직으로부터 시작됐다.

세계적인 기타명수가 되리라는 꿈의 첫 싹을 틔워주고 애정을 부어 키워주던 엄하고도 정깊은 아버지,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15살의 가슴엔 너무나도 엄청난 슬픔이였다.

당에서는 사회주의대건설장들에 대한 순회공연중 희생된 아버지를 사회주의애국희생자로 값높이 불러주고 영생의 삶을 안겨주었다.

현송은 사람들의 박수갈채속에 수여된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이라는 이 크지 않은 증서가 처음에는 몹시도 눈에 설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 증서가 아버지의 값높은 삶에 대한 확인이라는 사실에 점차 익숙되여갔다.

현송은 자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눈길이 달라져 가는것을 감촉했다. 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누군가가 《현송동무야 뭐 물론 음악대학에 가겠는데…》하고 얼결에 하는 소리를 들은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한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것이 응당하다는 생각이 점차적으로 들게 되였다.

그 순간에 떠오르는것이 바로 아버지의 애국희생증이였고 《현송이가 이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적인 기타명수가 되면 아버지가 매번 꽃다발을 들고 무대에 올라가지.》라던 아버지의 정겨운 목소리였다.

졸업학년이 되자 아버지의 대학동창생인 학원 부원장도 여느때같지 않게 현송을 만나면 시험공부를 잘 하라고 당부하군 하였다.

시험준비에 여념이 없던 나날들은 그래도 현송의 마음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간직되여있었다.

포근한 안정이 깨여진 그날 저녁은 여느때처럼 례사로왔다.

구역인민위원회 부원으로 일하는 어머니는 저녁늦게야 집으로 들어섰다. 퇴근시간은 여느때와 같았으나 얼굴빛은 흐려있었다. 의혹과 불안으로 어두워진 어머니의 눈빛이 현송을 바라보았다.

《하나 물어보자. 네가 물길공사장에 나가는 기동대의 명단에서 빠졌다는게 사실이냐?》

《…》

현송은 인차 대답을 할수 없었다.

학원에서는 물길공사장에 경제선동을 위해 기동예술선동대를 뭇고 며칠전에 출발시켰다. 여기에 현송이 빠진것이다.

《정말 그랬는가 말이다?》

재차 울리는 어머니의 물음에 현송은 손에 쥐고있던 기타를 벽에 걸어놓으며 내키지 않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요.》

《네가 우정 제기해서 빠졌다는게 사실이냐?》

《…》

현송은 침묵속에 그 모든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엄마, 난 우정 빠진게 아니예요. 이제 내가 공사장에 나가면 아무래도 곡괭이질이랑 할텐데 손이 굳어지면 음악대학시험을 어떻게 치겠어요.

아버지를 봐서도 나에게 다른 소릴 할 사람도 없어요. 거기 가서 고생스럽게 지내다 오는것보다는 대학입학시험준비를 하는것이…》

현송은 말끝을 채 맺을수 없었다.

지금껏 자라오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의 그 눈길에 현송은 저도 모르게 숨을 훅 내쉬였다.

한참만에야 어머니의 갈린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너 그게… 진정으로 하는 소리냐?》

현송은 머리를 떨구었다.…

그날 밤 웃방으로 올라간 어머니는 한잠도 자지 못하는것 같았다. 역시 불안한 심정에 휩싸여 잠을 이룰수 없었던 현송은 약간 열려진 웃방문틈에 다가섰다.

탁상등을 마주하고 그린듯이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던 현송은 놀랐다. 어머니가 마주하고있는것은 아버지의 사진이였던것이다.

현송의 가슴은 원인을 알수 없는 불안으로 후두둑 떨렸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직장에 나가기에 앞서 현송을 불러앉혔다.

《넌 아버지의 이름으로 음악대학에 갈수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은데… 애국희생증을 대학입학통지서와 바꿀수는 없는거다.》

현송은 어머니의 노여움이 가라앉을 때가 있을것이라고 믿었다.

음악대학에서 인원선발을 위해 선생님들이 오던 날 아무도 자기를 찾아주지 않았을 때에도 현송은 자기의 꿈이 꺾이웠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현송은 부원장의 방으로 달려갔다.

눈물이 글썽해 서있는 그의 얼굴을 본 부원장은 짐작이 가는듯 낯빛을 흐렸다.

《부원장선생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 전 음악대학에 갈수 없습니까?》

《진정해라.》

부원장은 현송의 손을 끄당겨 의자에 앉혔다.

《너의 어머니 말을 듣고보니 나도 생각되는게 많구나. 아무래두 내가 널 잘 키우지 못한것 같구나.…

너의 아버진 심장으로가 아니라 손끝으로 하는 예술을 바라진 않았지.…》

현송에게는 그 모든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라는 말마디만 머리속에 팽이처럼 맴돌면서 현훈증을 일으키는것이였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어쩌면 그럴수 있단 말인가.

몸을 떨던 현송은 자기가 어떻게 부원장의 방을 나섰는지 몰랐다.

그날 밤 현송은 어머니에게서 물길공사장돌격대에 나가야 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돌격대에 나가서 생활하느라면 네가 왜 음악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거다.》

현송은 어머니의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돌격대》라는 세 글자만이 눈앞에 번개의 섬광처럼 눈부시게 새겨졌다가 꺼지는것이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현송은 물길공사장에 돌격대로 나가게 되였다.

현송은 이렇게 된바엔 차라리 돌격대에서 다른 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시절의 꿈은 깨여졌을지언정 자존심을 꺾이고싶지 않았다.

기타와는 깨끗이 헤여지자.

이렇게 생각을 하니 불안하던 마음도 차츰 안정이 되였다.…

현송은 돌격대기본대오의 출발예견날자보다 이틀 먼저 떠나는 선발대에 속했다는것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제 손으로 짐을 꾸려들고 방을 나서려던 현송의 눈길은 벽에 걸린 기타에 멎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기타, 어린시절의 꿈이 아름다운 동요의 선률로 되여 울리던 나날들…

눈물이 왈칵 솟구쳐 현송은 황황히 집을 나섰다.

(아버지, 전 꿈을 잃었지만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아요. 어머니가 왜서 그렇게 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그 노여움이 풀린대도 제길이 달라질순 없어요. 아마 이게 제가 가야 할 길인것 같아요.)

노을빛이 설핏한 역에서는 학원동창생들이 현송을 바래주려고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학급에서 기량이 제일 높았던 현송의 이 출발이 리해할수 없다는 표정이 어려있었다.

그중에서도 독창과 기타반주로 호흡이 잘 맞았던 성진의 얼굴은 누구보다 침울했다.

《그래, 언제 돌아온다는거야?》

현송은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그건… 내가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그 길이 결정할거야. 어쨌든 고마워. 시예술선전대이면 성진동문 배치가 괜찮아.…》

《그만해!》

이때 기적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시작된 돌격대생활의 처음의 날과 날들을 현송은 한생 잊을수 없을것이다.

《모살이》기간이라고 누군가 롱질처럼 말한 그 기간을 누구에게 뒤지지 않고 견디여내려고 현송은 입술을 깨물며 이겨나갔다.

집에 있을 때와는 너무나도 판이한 생활조건이였고 처음 해보는 일이여서 아침이면 온몸이 연덩이처럼 무거웠다.

돌격대에 나온지 한달이 되여오던 어느날이였다.

그날 현송이가 속한 중대는 맡은 구간의 돌채움을 하기 위해 채석작업을 하였다.

산비탈에 널려져있는 돌을 모아들이던 현송은 다른 대원들의 돌무지들을 얼핏 띄여보고 조바심이 났다.

그들것에 비하면 자기의것이 작은것 같았다.

누구한테 뒤지기를 싫어하는 현송은 바위짬에 끼운 커다란 돌을 안아내려고 안깐힘을 썼다.

움쩍거리며 들리워나오던 돌이 갑자기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다시 물러앉는 순간 《앗!》하는 비명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예리한 돌모서리가 오른손 둘째손가락의 손톱부위를 짓찧어놓은것이였다. 손가락을 싸쥐고 주저앉았던 현송은 《왜 그래?》하는 목소리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그는 서둘러 피가 빨갛게 내배는 장갑을 벗었다.

둘째손가락의 손톱이 짓찧어진것을 본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그 손가락은 기타를 칠 때 많이 쓰이는 손가락이였던것이다.

아버지는 현송이가 어렸을 때부터 오른손의 손톱들을 곱게 손질해주었다. 어느덧 현송은 그에 습관되였다.

돌격대에 나와서 장갑을 끼고 일하면서 손톱이 장애가 될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그였다.

그런데 그 손톱이 결국은…

그는 갑자기 서글퍼졌다. 이지러진 손가락의 아픔보다는 그 손톱이 지금 자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치장으로밖에, 방해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것이였다.

손톱은 다시 자랄것이다. 그러나 어린 가슴에 소중히 깃들었던 그 추억은 영영 잊혀지고말것이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면서 아픔을 삼키다가 깜박 잠에 들었던 그는 갑자기 손가락의 상처가 시원해지는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자기 손을 들고 무엇인가 처매는 은경을 보았다. 눈을 뜬 현송을 보자 은경은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건 생감자를 짓이긴건데 손가락의 아픔을 덜어줄수 있을거야.》

현송은 뽀얗게 흐려오는 눈길로 자기 손가락을 정성스레 싸매주는 은경을 바라보았다.

자기보다 1년 먼저 돌격대에 입대했다는 언니였다.

나이도 한살 우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상처를 입었다는것을 어느사이에 알고 한밤중에 정성을 기울이는 그 마음이 눈물겹게 안겨왔다.

《고마워요, 언니!》

《고맙긴, 애두…》눈을 곱게 흘기며 은경은 밝은 웃음을 지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어디를 갔다왔는지 단숨을 내쉬며 은경은 자그마한 약통을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은경의 얼굴엔 따뜻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고약인데 그걸 바르면 손톱이 곱게 나온대.》

《손톱?!》

놀라는 현송의 장갑낀 오른손을 은경은 가만히 감싸쥐였다.

《현송동무, 동문 방직공장에서 나온게 아니지?》

《?…》

현송의 얼굴에 놀라움이 비껴흘렀다.

돌격대에 나온 첫날 저녁 그는 동무들에게 방직공장에서 나왔다고 자기를 소개했던것이다.

《난 네가 남보다 손톱이 긴걸 보았어. 기타를 전문하는 사람들은 그 긴 손톱을 자기 몸의 한 부분처럼 여긴다더구나.》

현송의 얼굴엔 아픈 곳을 찔리운듯 괴로움이 비꼈다.

기타! 자기 생활의 기쁨이고 행복, 생활의 전부이기도 했던…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의미가 없었다.

《이제 손톱이 곱게 자라면 다시 기타를 칠수 있을거야.》

속삭이듯 울리는 은경의 말에 현송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난 손톱을 깎았어요.》

《그게 정말이냐?》

은경은 놀랐다. 그는 서둘러 현송의 손에서 장갑을 벗겼다. 현송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은경은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현송은 그 눈길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기타와 작별했어요. 기타는 내 생활에서 다시는 없을거예요.》…

그렇다. 기타와 작별한 생활, 그 생활이 괴롭고 고통스럽다 해도 새롭게 익숙되여야 한다는 의지로 뗀 돌격대생활의 첫자욱들이였고 그 결심속에 흘러간 2년세월이였다.

봄비는 그냥 내린다. 현송은 병실쪽으로 돌아섰다.

병실쪽에서는 처녀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누나!》

어느날 오전작업을 끝내고 병실쪽을 향해 걸어가던 현송은 귀익은 챙챙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뒤에서 숨이 턱에 닿은 호남이가 달려오고있었다.

《왜 그러니?》

현송은 오달진 몸에서 열이 확확 뿜어나오는것만 같은 호남을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돌격대에 달려나온 그는 온 중대의 사랑을 받는 막냉이였다.

《중대정치지도원동지가 찾아. 빨리 오래.》

호남이 중대부의 비편제련락병이라는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엄숙한 목소리는 아무래도 귀에 설었다.

《중대정치지도원동지가 날 왜?》

《내가 알게 뭐예요?》

현송은 문득 주머니에서 손수건에 싼것을 꺼내여 호남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게 뭐예요?》

흠칫 놀라며 손수건을 풀어보던 호남은 빨간 사과알을 보자 대번에 볼이 부었다.

《난 이런걸 좋아 안해요.》

《어서 먹어. 아까 지원물자를 나누어줄 때 나에게 차례진거야.》

《싫다는데두… 난 아이가 아니예요.》

자기를 막냉이취급을 하는건 영 질색하는 그였다.

자기도 어엿한 청년돌격대원인데 무슨 차별인가 하는것이다.

뾰로통한 그 모습이 더 사랑스러워 현송은 그의 주머니에 기어이 사과를 넣어주고서야 중대부로 향했다.…

어느 군에서 청년동맹지도원을 하다가 나왔다는 정치지도원은 30대의 고수머리청년이였다.

그의 말을 듣고있던 현송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기타를… 말입니까?》

《그렇소. 동무도 며칠전에 평양시예술선전대공연을 보았겠지. 그래 우리도 기동예술선동대를 조직해서 온 건설장을 들썩하게 하자는거요. 그래서 려단에서는 악기나 성악에 조예가 있는 동무들을 뽑기로 토론됐는데 그 첫번째 적임자로 현송동무가 뽑혔소.》

현송은 눈길을 아래로 떨구었다.

《전… 기타를 못 칩니다.》

《기타를 못 치다니… 동무야 예술학원까지 졸업한 동무가 아니요?》

현송을 바라보던 정치지도원의 눈빛이 흐려졌다.

현송의 얼굴이 금시 흙빛이 되여버린것이다.

정치지도원은 눈길을 돌렸다.

《모르겠구만. 왜서 아직 자기의 경력을 숨기려고 하는지…》

《정치지도원동지, 과거와 결별한 새 출발이 있지 않습니까?!》

정치지도원은 의혹의 눈길로 현송을 바라보았다.

《음, 현송동무. 어제가 없는 오늘이 있을가? 오늘이 없는 래일이 있겠는가 말이요?》

《…》

현송은 대답을 할수 없었다.…

다음날은 휴식일이였다.

현송은 아침 일찍 리상저수지의 수로에 나갔다.

소대 남동무들의 세탁물건조까지 끝내고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였다. 병실로 돌아온 현송은 자기의 침대가까이에서 돌격대제복에 목달개를 달고있는 은경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돌격대제복이 눈에 익었다.

다가오는 현송을 보자 은경은 바느질손을 멈추었다.

《소대 남동무들이 동물 찾아왔댔어.》

현송은 방긋이 미소를 지었다.

《저녁에 〈감사대표단〉을 보내겠대.》

《예? 〈감사대표단〉이요?…》

재미있다는듯 깔깔 웃던 현송은 은경에게 다가섰다.

《인줘요. 내가 달게.》

《됐어. 좀 쉬렴.》

작업할 땐 남자 못지 않게 드센 일솜씨에 오락회때면 온 중대를 휘젓는 랑만가가 바로 은경이다.

그런가하면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원들의 가슴을 울리군 하기도 했다.

현송은 은경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목달개를 다 달고난 은경은 현송에게 크지 않은 배낭을 내밀었다.

《려단에서 평양에 자재실러 간다누나. 그래서 중대장동진 려단에 제기해서 동무를 같이 보내기로 했다누나.》

《?…》

흠칫 놀라는 현송에게서 눈길을 돌리며 은경은 제복에 군손질을 했다.

《중대장동지랑 소대장동지랑 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 그러니 갔던 길에 집에 들려 어머니를 꼭 만나보고 오렴. 차는 오후에 떠난다고 했어.》

현송은 뭉클 솟는 뜨거움에 말을 못하고 은경의 손만 더듬어 잡았다.…

저녁무렵 평양에 도착하여 배정받은 자재를 다 싣고난 현송은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싶었다. 힘겨웠지만 또 보람차기도 했던 돌격대생활의 매 순간마다 떠오르던 어머니의 모습이였다. 학원졸업반시절의 일들이 가슴에 맺혀있다지만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도 덜어내지 못했다. 시간을 받고 집으로 가기 전에 체신소에 들린 현송은 널뛰듯 하는 가슴을 안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길게 울리는 발신음소리가 반복될수록 현송의 가슴은 바질바질 타드는것 같았다.

이제 찰칵!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그러나 그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현송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돋았다.

현송은 마음이 조급해져 옆집전화번호를 눌렀다.

옆집아주머니에게서 어머니가 출장중이라는 말을 듣고는 한동안 송수화기를 놓을줄 몰랐다. 어머니가 출장중이라는 사실은 현송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빈 집에는 어쩐지 가고싶지 않았다. 그는 가까이에 있는 고모의 집으로 향했다. 맥없이 고모가 사는 고층살림집현관밑까지 왔지만 올라가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기 집이 있는 거리쪽을 향해 돌아섰다. 불꺼진 창문을 그려보는 그의 얼굴은 어느 사이엔가 젖어들고있었다.

 

×

 

산을 통채로 들어내는 5만산 대발파를 앞두고 굴진전투가 시작되였다. 대원들은 저저마다 자기가 해보겠다고 자진해나섰다.

현송은 동무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이를 사려물었다. 평양을 다녀온지 며칠이 지났건만 현송은 저도모르게 공허해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문인지 별로 아무것도 먹고싶지 않았다.

측량조에 한주일째 동원되였던 은경이가 중대에 나타난것은 현송이네가 오후작업휴식을 할무렵이였다.

현송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연한 표정을 짓던 은경은 다짜고짜로 그의 등에서 질통을 벗겼다.

《오늘 아침도 식사를 안했다지. 하루 쉬면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는데 왜 듣지 않니?》

진정과 안타까움이 어린 그의 말을 현송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려고 했다.

《일없어요, 언니.》

은경의 목소리는 어느새 젖어들고있었다.

《난… 네가 평양에 갔다가 집에 들리지도 않고왔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어. 어쩌면…

정치지도원동지랑 동무들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니? 밤새껏 기다리는 어머니생각은 왜 못하는가 말이야.》

현송은 얼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엄만 그때… 출장중이였어요.》

《변명하지 말아. 너의 어머닌 물길공사장에 보낼 물자때문에 사흘동안 나가있다가 그날 새벽녘에야 집에 도착했대. 중대정치지도원동지가 너의 어머니직장에 전화를 해서 너의 어머닌 동무가 온다는걸 알고있었어. 그런데 집이 빈것을 보았을 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겠는지 넌 생각해봤니?》

《…》

《현송아, 난 네 마음속 사연을 다는 몰라. 하지만 여기 돌격대에 나온 동무들도 자기나름의 생활이 있어.》

은경의 눈가에는 어느새 축축히 눈물에 젖어있었다.

《호남일 좀 보렴. 언제나 사람들을 기쁘게만 해주려는 그의 어린 가슴에도 오늘의 어려움과 힘겨움을 이겨나가려는 모지름이 있어. 그런데…》

목이 꽉 메는지 말끝을 맺지 못한 은경은 현송의 질통을 메고 돌아섰다.

현송은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망연히 서있었다. 그는 지금껏 자기가 잘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새겨보려고 애썼다. 언제나 구김살없이 웃고 떠들던 소대의 막냉이,

오늘 아침 식사대렬에서 슬며시 빠져나온 현송을 그가 언제 보았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작업장에 진출할 때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따끈한 남새빵 2개를 현송의 주머니에 넣어주고 달아나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지금 이 순간에는 눈물속에 새겨진다. 그 모습옆에 나란히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 말없이 바라보는 그 눈빛은 백마디, 천마디의 질책보다 더 가슴을 허비였다.

 

×

 

고요한 밤이다.

돌격대병실의 창문들은 두텁게 깔린 어둠속에서 밝은 빛을 뿌리는데 멀리서 이름모를 밤새의 울음소리가 밤의 정서를 한껏 돋구어주고있었다.

현송은 낮에 봐두었던 자리에 이르자 어깨에 메였던 기타를 벗어들었다. 동무들이 영화를 본다면서 모두 텔레비죤앞에 마주앉아있을 때 슬그머니 병실구석에 세워진 기타를 안고 나온 그였다.

그것은 바로 그날 점심에 있은 일때문이였다.

그날 점심 휴식시간에 병실로 걸음을 옮기던 현송은 난데없이 울리는 기타의 선률에 걸음을 멈추었다.

서툴지만 열정이 느껴지는 선률이였다.

자석에 끌리듯 병실에 들어서던 현송은 놀랐다.

기타를 치고있는것은 호남이였다.

호남은 다가오는 현송을 보자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멈추었다.

《한심하지요? 누나.》

현송은 기타와 호남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기타는 어디서 났니?》

《2대대에서 빌려왔어요.》

《갑자기 그건 왜?》

호남은 너무나도 당연한것을 묻는다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왜라니요? 기타를 배워가지구 나두 기동대에서 한몫 하자는거야요. 난 목소리가 나빠서 안된다는데 기타를 멋있게 타서 깜짝 놀래울래요.》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이없기도 하여 현송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일을 하면서 기타를 배울수 있겠니?》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건 조선말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요. 난 동지들에게 힘과 랑만을 주는 노래를 부르려는거예요. 시련의 고비마다 노래로 헤치며 전진한 우리 혁명이 아닌가요?》

호남은 제법 손까지 흔들며 말했다.

《대단한데…》현송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사실 이렇게 말하긴 쉬워도 재간이 모자라서 안타까와요. 하긴 재간도 사람이 결심할 탓이겠지요 뭐.

난 어쨌든 해보겠어요.》

그러고나서 그는 다시 열심히 줄을 짚었다.

현송은 차마 웃을수가 없었다. 그 단순한 말마디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던것이다. 손동작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모지름을 쓰는 호남의 모습이며 조화가 잘 되지 않는 기타의 불협화음들이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질책하는듯싶었다. 그 소리는 오후내껏 현송의 마음속에 절절한 호소를 담고 울렸다.

기타음을 맞추는 지금도 현송의 마음속에서는 호남이의 그 말이 메아리처럼 들려오고있었다.

몇년만에 다시 잡은 기타인가. 하루만 놓아도 손이 굳어지는데 흘러간 그 세월을 다시 돌이킬수 있을가.

하지만 기어코 되살려내야 했다.

그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으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문득 그는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감동에 젖은 목소리가 울렸다.

《야, 정말 잘하는데… 누난 좋은 재간이 있었구나.》

호남이였다.

《아이 깜짝이야.》

현송은 못할짓을 하다가 들킨 때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난 기타가 없어졌길래 나왔댔는데… 어디선가 멋있는 기타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난 꿈을 꾸는줄 알았어요.》

호남은 현송을 처음보듯 바라보다가 갑자기 머리를 끄떡였다.

《그러니 그게 사실이였군요. 난 믿지 않았는데…》

현송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니?》

호남은 씩 웃어버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예요.》

하지만 그저 넘겨버릴 현송이가 아니였다.

《호남인 내 성격을 알지? 어서 말해보렴.》

호남은 할수 없다는듯 목소리를 낮추며 수군거렸다.

《이건 누나한테만 말하는 비밀인데… 사실 려단에서 새로 조직하는 기동예술선동대문제를 놓고 협의회가 있었는데 누나가 기타를 잘 친다면서 기동대에 넣자고 토론들이 있었대요. 그전날 중대정치지도원동지가 누나를 만난것도 그래서였구요.

그날 저녁 정치지도원동지를 찾아간 은경누나가 이렇게 말했대요.

현송동물 기동대에 보내는것은 아직 이르다, 그가 지금 돌격대에는 정을 붙였지만 아직 기타와는 만나지 못했다, 그에게는 남모르는 고충이 있다, 우리 집단이 그의 고충을 풀어줄 때 그는 진정으로 기타와 다시 만나게 될것이고 그럴 때라야 그에게서 참된 선률이 흘러나올것이다라고 말이예요.》

현송의 가슴속에 뜨거운것이 그득히 차올랐다.

말없이 자기를 지켜보며 따뜻이 위해주는 마음, 그 마음앞에 처음으로 가슴들먹인것은 돌격대생활을 시작한지 몇달 안되던 동지달무렵이였다.

그때 현송은 식당근무를 서게 되였다. 중대식당 근무는 두명이 한주일씩 하게 되였다.

아침준비를 다른 동무가 다 해놓고 새벽일찍 일어나 밥을 짓는 일은 현송이 맡게 되였다.

병실에서 잠들었던 현송은 손목시계의 자명종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3시였다. 일어날가말가 바재이던 그는 성에가 하얗게 불린 뙤창을 보자 다시 자리에 누웠다. 30분만 더 눈을 붙이자.

다시 잠들었던 그는 기상나팔소리에 소스라쳐 깨여났다. 습관적으로 솜옷을 더듬어찾던 그는 식당근무라는것을 상기하자 낯이 새까매졌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허둥지둥 취사장으로 달려간 그는 못박힌듯 그 자리에 멈춰서고말았다.

김이 문문 오르는 밥가마와 국가마, 알뜰하게 포개진 식기들…

땀이 맺힌 얼굴로 행주질을 하던 은경은 현송을 보며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언니! 미안해요.》

《괜찮아, 힘들지?》

어째서인지 눈물이 그렁하니 고여올라 현송은 고개를 들수 없었다.

《됐어.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 그 고비를 넘기면 힘들지 않아.》

은경은 현송에게 밥주걱을 쥐여주었다.

《어서 배식준비를 하렴. 난 가보겠어.》

그날 아침 식사때 대원들은 현송의 음식솜씨를 얼마나 칭찬했던가. 그들속에서 말없이 미소를 짓던 은경의 모습을 현송은 잊을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때의 그 모습이 현송의 눈앞에 생생하게 되살아오는것이였다.

호남은 기타를 안은채 생각에 잠긴 현송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은경누나도 사실 굉장한 누나인데…》

《그건 무슨 소리냐?》

《나도 중대정치지도원동지에게서 처음 알았는데 은경누난 소학교때 많은 나라들이 참가한 아동미술전람회에서 1등을 했다는거예요. 그 자랑을 담아 아버지장군님께 이름있는 화가가 될 희망을 담아 편지를 올렸는데 장군님께선 누나를 축복해주셨대요. 누난 장군님의 축복을 안고 장군님께 기쁨드릴 명작을 창작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는거예요.》

《그게… 정말이야?》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은경누난 우리 당의 숭고한 구상을 실현해가는 이 현실속에서 장군님께 기쁨드릴 명작의 소재를 찾고있대요.》

현송은 갑자기 귀가 멍멍해지는것을 느꼈다.

쿵쿵 심장의 박동소리만이  울린다.

그랬댔구나. 은경언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축복해주신 꿈속에 살고있었구나.

그 꿈속에서 살기에 강하고 심장이 뜨거운 언니!

현송은 비로소 자기보다 1년우밖에 안되는 은경이가 어떻게 자기보다 까마득히 높이 올려다보였던지 알수 있었다.

현송은 호남을 바라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호남동무, 우리도 기타를 배우자.》

호남은 믿어지지 않는듯 현송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예요? 배워줄래요?》

현송은 머리를 끄떡였다.

《야!》

호남은 환성을 터뜨렸다.

그 환성속에 현송은 자기자신도 넘기 어려웠던 그 무엇이 가슴후련히 무너져내리는것을 느꼈다.

기타소리가 울렸다. 더 안정되고 더 고르로와진, 더 아름다와진듯 한 선률이 어둠을 타고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

 

《예? 은경언니가요?》

뜻밖에 전해진 소식에 현송은 아연해졌다.

현송은 정신없이 군의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 파놓은 물길의 경사도를 재던중에 흙벽이 무너지면서 상했다는것이였다. 위험하다고 말리는것을 불같은 성미에 무릅쓰고 올라가다가 그렇게 되였다는것이였다.

려단군의소 구급실에 은경은 눈을 감은채 누워있었다.

《은경언니!》

거듭 부르는 현송의 목소리에 눈을 뜬 은경의 맑은 눈동자가 반가움으로 따뜻하게 빛났다.

《왔구나.》

현송은 지금에야 비로소 자기에게 있어서 은경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깨달은듯싶었다.

함께 웃고 떠들던 그때엔 미처 다 몰랐지만 어려울 때마다 힘을 주던 은경이였다.

근심어린 현송의 얼굴빛을 본 은경은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난… 일없어. 군의소장동지가 며칠만 안정하면 되겠다고 했어.》

은경은 측량조원에게 부탁하여 병실에서 가져온 침대한켠에 세워진것을 집어들었다.

《현송동무, 이걸 받으렴.》

은경이 내미는것은 기타였다. 밤빛무늬의 천으로 만든 기타집이 너무도 눈에 익었다.

《아니 이건?…》

《동무의 어머니가 보내는거야. 사실 며칠전에 동무의 집에 편지를 보냈댔어. 그런데 어제 동무의 어머니가 인편에 이걸 보내왔더구나.》

현송은 기타를 품에 안았다. 오래동안 떨어져있던 살붙이와 다시 만난듯 가슴속에 따뜻하고 부드럽게 안겨들었다.

《물론 여기도 기타가 있지만… 네 추억이 어리고 네손때가 묻은 기타가 더 좋을것 같애서…》

《언니!》

현송은 은경의 두손을 뜨겁게 잡았다.

은경은 현송을 정답게 바라보며 웃음지었다.

《현송동무, 난 동무의 기타소리를… 듣고싶었어.》

《언니, 내가 잘못했어.》

은경의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울렸다.

《현송동무, 우리의 꿈은 자기 개인의 명예만을 위한 꿈으로 되여서는 안돼.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고 조국을 빛내이는 길에서 가꾸고 꽃피우는 꿈이 되여야 해.》

현송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였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새로운 꿈이 서서히 자라나고있었다.

 

×

 

《자, 이젠 나가서 휴식하기요.》

마지막정대마저 무디여지자 소대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대원들은 일손을 놓고 굴밖으로 나왔다.

작업장에는 잠시 침묵이 깃들었다.

소대가 맡은 구간을 5m 앞두고 압축기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 압축기를 수리하자면 적지 않은 시간이 요구되였다. 소대가 맡은 굴진과제를 제 날자에 보장하자면 팔짱을 끼고있을수가 없었다.

하여 소대는 함마와 정대로 굴진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지막정대마저 무디여진것이였다.

굴밖에 나와 퍼더버리고앉은 대원들의 얼굴엔 피로의 흔적이 짙게 어려있었다.

가설막쪽에서 송수화기를 들고 웨치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압축기를 살려가지고 굴진을 보장하자면 제날자를 보장할수가 없게 되였습니다.… 예, 우린 어떻게 해서든 정해진 날자대로 굴진을 보장하겠습니다.

정대만 보내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가설막을 나선 소대장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굴밖에 나온 대원들에게 물을 떠주던 현송은 소대장에게로 다가갔다.

《소대장동지, 제가 갔다오겠습니다.》

소대장의 눈에 따뜻한 빛이 넘쳐흘렀다.

《동무가?… 괜찮소. 남동무들도 많은데…》

현송의 눈에 간절한 빛이 어렸다.

《소대장동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음,… 그럼 대대창고에 갔다오오.》

《나도 함께 가겠어요.》

호남이 현송의 뒤를 따라나섰다.

길에 나선 현송의 눈엔 맥을 놓고 굴밖에 앉아있던 소대원들의 모습이 밟혀왔다.

순간 무엇인가 뇌리를 치는 생각에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누나, 왜 그래요?》

《호남인 혼자 정대를 메고올수 있겠어?》

《?…》

호남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기타를 가지고 전투장에 가려고 그래.》

그제야 모든것을 깨달은듯 호남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까짓거야 뭐… 자신있어요.》

말을 마치기 바쁘게 호남은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가는 그의 뒤모습을 바래운 현송은 병실쪽으로 돌아섰다.…

처음에 대원들은 난데없이 울리는 기타소리에 얼떠름해있었다.

은은하게 시작을 뗀 선률은 인차 경쾌하고 률동이 빠른 무도곡으로 넘어갔다. 대원들의 눈에는 굴앞의 넓은 공지에서 기타를 치며 어깨를 들썩이는 현송의 모습이 놀랍게 안겨왔다. 설명도 소개도 없었지만 열정적인 선률속에 울리는 말없는 호소가 마침내 그들의 가슴속에 불을 달았다.

《좋구나 ―》

키가 큰 김동무가 맨먼저 일어섰다. 기타를 치며 방긋이 웃는 현송과 한데 어울려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 모양에 갑자기 폭소가 터졌다.

그다음엔 너도나도 일어나 춤판에 뛰여들었다.

쿵작짜 쿵작! 북소리도 무색케 하는 장단이 울린다.

흥겨운 선률에 맞추어 온몸이 건드러진 률동을 타다가 빠르고 경쾌한 마당으로 돌진한다.

물결처럼 흐르다가 둥그런 원을 지어 모였다가는 허공에 솟구치기도 한다.

누군가 흥에 못이겨 노래까지 부른다.

우울한 표정을 지었던 소대장도, 맥을 놓고 앉아있던 대원들도 모두 한덩어리가 되여 돌아갔다.

그들의 얼굴들엔 좀전에 비껴있던 피로와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모두가 활기와 랑만에 넘친 모습들이다. 내 나라, 내 조국의 진군로를 열어가는 선군시대 청춘이라는 숭고한 자각이 심장을 불태울 때 이처럼 산도 순간에 허물어내릴수 있는 랑만과 희열이 넘쳐나는것이 아니겠는가.

대원들은 자기들에게 그 랑만과 희열을 불러일으켜준 현송에게 말없이 뜨거운 인사를 보냈다.

그 뜨거운 인사가 흥겨운 률동이 되여 펼쳐지는 열정에 넘친 춤마당이였다.

현송은 그냥 웃고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

 

미루벌물길 1단계공사의 성과적완공을 축하하는 공연무대에 한 처녀가 나섰다. 기타를 메고 인사를 하는 처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자기들과 너무나도 친숙해진 모습이였고 그래서 더욱 아껴주고 사랑해주고싶었던 처녀였다.

기타독주 《종다리》를 하겠다는 소개와 함께 처녀의 손이 기타선우에 사뿐히 놓였다.

은방울이 구으는것 같은 첫음이 울렸다. 종다리의 지저귐소리인듯…

티 한점없이 푸르른 하늘로 마음껏 나래쳐오르며 봄을 맞은 환희가 넘쳐흐른다.

빠른 분산화음의 선률속에 관중은 황홀경에 잠겼다. 짚을판을 날아짚는 처녀의 손에서 곡은 경쾌하고 빠른 선률로부터 은근하고 서정적인 흐름을 이룬다. 온벌에 가득한 푸른 생명들을 아기런듯 돌보는 처녀의 사랑어린 눈빛이며 살뜰한 보살핌.

그리고 푸른 이랑들에 바치는 맑고도 뜨거운 땀방울…

선률은 어느덧 흥겨운 장단을 타고 경쾌하게 날아오른다. 봄내 여름내 바쳐온 사랑이 알찬 열매로 무르익는 기쁨에 절로 솟아나는 어깨춤의 흥취로 관중은 들썩인다.

종다리는 더 높이 날아옌다. 높이 떠서 미루벌의 래일을 굽어보며 경쾌하고 흥겨운 노래의 메아리를 멀리, 저 멀리로 실어보내는 정겨운 지저귐소리…

연주가 끝나자 요란한 박수로 장내는 떠나갈듯 싶었다. 관중은 미루벌의 봄을 먼저 안아온 종다리의 노래를 들으며 자기들이 건설한 물길로 흘러드는 생명수를 보았다. 그 생명수로 더욱 푸르러진 벌, 알찬 이삭이 무겁게 드리워 설레이는 미루벌의 래일을 그려보았다.

꽃다발을 든 사람들이 무대로 달려올라온다.

박수소리는 그냥 울리고있었다.

현송의 눈길은 어느새 객석을 더듬고있었다.

은경이 밝게 웃으며 축하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주고있었다.

(현송동무, 이제 동무의 꿈은 더 아름답게 꽃필거야.)

(나도 그걸 믿어요. 우리 청춘들의 꿈은 동요시절 꿈의 연장도 아니고 그 어떤 명예로 가꿔지는것도 아니라는것을 난 확신했어요.

우리 선군시대 청춘들의 꿈은 전진하는 위대한 시대의 한복판에서만 아름답게 꽃필수 있다는것을 심장으로 절감했어요. 언니와 함께 난 그 한복판에 영원히 서있을거예요.)

두 처녀의 눈길이 뜨겁게 부딪쳤다.…

그로부터 보름후 려단정치부에서 현송을 불렀다.

려단정치부장은 정색한 어조로 현송에게 려단에서 토론이 있었다면서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파견장을 내밀었다.

현송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나 가고싶던 대학이던가.

허나 현송은 흥분을 애써 눌렀다.

《전… 물길공사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일도 하고 노래도 부르겠습니다.》

정치부장은 사랑이 어린 눈길로 현송을 바라보았다.

《대학은 아무때나 가는게 아니지. 우리도 동무를 보내긴 아쉽지만… 가시오. 조국의 래일이 동무를 부르는거요. 여긴 우리가 있으니 마음놓고 가서 공부를 잘하시오. 미루벌에서 태여난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온 나라가 알도록 하라구.》

정치부장은 파견장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떨리는 손으로 받아쥔 파견장에 떨어진 현송의 눈물이 꽃잎처럼 동그란 무늬를 그리며 퍼져나갔다.…

 

현송은 아득히 넓은 미루벌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서있었다.

《잘 있거라. 나의 꿈의 첫걸음을 떼여준 고마운 벌이여! 내 한생 너의 품에 뿌리를 내리고 고마운 조국에 바치는 다함없는 사랑을 노래하리라.》

푸르러가는 미루벌은 처녀의 앞길을 축복해주며 설레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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