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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98(2009)년 제3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리 경 희 열두살잡이 딸애는 책이라면 오금을 못쓰고 헤덤비군 한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부터 책장에 끼여있는 크고작은 도서들을 손끝이 닿는대로 후닥닥 읽어치우기 시작하더니 요즈음엔 활자본의 책들은 집어던지고 아버지, 어머니의 글씨가 새겨진 학습장들을 골라골라 뽑아내여선 캐득캐득거리며 읽어보군 한다. 오늘도 교복앞섶에 불룩하니 무엇인가 숨긴것을 의아쩍게 여겨 검열해보았더니 영낙없이 내 대학시절의 일기장이였다. 놀라움과 함께 딸자식이 이제는 어미의 책까지 넘볼 나이가 되였다는 생각이 기쁘게 갈마들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전혀 다르게 노여운 어조로 흘러나갔다. 《그 쓸데없는 호기심!》 《…또 그랬다간 이번 달에 새책은 아예 없을거다!》 딸애는 그 이상 더 큰 《벌》은 없는듯이 안타까운 시늉으로 팔소매에 매여달렸다. 단단히 신칙을 하고서야 용서해주기로 하였는데 대신 딸애의 덕분으로 나는 오래간만에 옛시절을 돌이켜볼 기회를 얻게 되였다. 글줄을 타고 돛배마냥 떠오르는 추억… 그 첫 기슭은 어디였던가.… 그래, 첫 개학날 그 뻐스에서부터였다. 그때 우리는 같은 뻐스를 탔었다.…
×월 ×일 부엌에서는 칼도마소리가 드높다. 규칙적이고 가락맞은 저 소리… (대학에서 첫 강의는? 새 동무들은? 그래 성은 왜 났느냐?) 어머니가 나의 하루를 물으시는 목소리다! 나는 가지가지의 이야기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할 오늘임을 잘 알지만 흐려드는 마음을 걷잡을수 없다. 모든것이 다 그 동무때문이다. 오늘 아침이였다. 나는 대학으로 가는 뻐스에 올랐다. 나의 중학시절을 작별의 인사로 바래우는듯 뻐스는 경적소리를 울리며 앞으로 힘있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부러워마지 않던 대학생치마저고리를 입고 《어른》이 되여 대학으로 간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량없이 기뻐났다. 새 동무들과의 상봉,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질 첫 강의… 애모쁜 예상으로 가슴들먹이던 나는 뻐스에 탄 사람들의 거의 모두가 손에 책을 들고 공부를 하고있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한초도 무심히 보내선 안돼.) 나도 얼른 가방을 열고 교과서를 꺼내여들었다. 첫장을 펼치는데 어제 저녁 끼워두었던 련습지 한장이 팽글팽글 날아내려 앉아있는 사람의 목침같은 책우에 떨어졌다. 머리를 짓수그리고 졸고있는것이 분명한 그 사람은 아무 감촉도 느끼지 못한듯 했다. 미안한 눈길로 가만히 종이장을 찾아들던 나는 (그 동무다!) 하는 생각에 일순 굳어졌다.
내앞에 서서 옆동무에게 수군거리던 사람… 《저 수험번호 113번은 제발 우리 학급이 아니였으면 좋겠는데…》 《글쎄말이야.》 중학교동창인듯 한 그들의 목소리는 소음속에서 인차 잦아들고말았다. 그러나 나의 머리속엔 《113번》이라는 수자가 계속 맴돌아치며 그들에 대한(특히 먼저 말한 상고머리)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수험번호 113번은 어째서? 내가 저들을 알기나 한다고?!…) 바로 그때 그 학생이 확실했다. 밤송이같은 상고머리, 소리없는 눈총으로 한참이나 찌르고들었던 사람. 하필이면 아침부터 맞다들건 뭐람. 나는 그가 펼쳐든 《목침》의 첫페지를 바라보았다. 허거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두툼한 사전을 통채로 들고다니며 공부하는 사람도 처음 보았거니와 첫 개학날 아침부터 졸음에 빠진 사람 또한 처음이였다. 보나마나 공부를 하는것보다도 그 무엇을 시위하는데서 뿌듯함을 느끼는 속 빈 건달임이 분명했다. (이 학생과 한학급이 아니였으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 대학은 자그마한 중학교가 아니라 여러개의 학부와 학과들로 갈라진 큰 집이라는 생각에 빙긋이 웃을수 있게 되였다. 공부에만 전심하리라,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교실은 2층에 있었다. 난 창문쪽 두번째 자리에 앉기로 했다. 마침 시험을 칠 때 나란히 앉았던 미란이란 동무가 들어오면서 같이 앉자고 상냥하게 말했다. 나는 학습준비를 해놓고는 출입문쪽만 바라보았다. 일전에 몇번 보았던 동무들도 있었지만 처음보는 동무들도 많았다. 그러나 반가움은 알고 모르는데 있는것이 아니였다. 이제부터 《동무》라는 살뜰한 호칭으로 찾고 부르며 의학의 혜택속에 살던 사람들로부터 그것의 주인으로 함께 자라게 되였다는데 의의가 있었다. 눈인사로 혹은 미소로써 우리는 통성들을 했다. 그러나 거기엔 바라지 않았던 모습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광화라는 학생이였다. 영문도 모르게 나를 질시했던 사람, 그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설적에 나는 화닥 놀라 눈빛을 흐렸다. 《준수하게 생겼다야.…》 미란이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아니, 심술군 같애.…) 나는 속으로 도달거렸다. 더군다나 내 앞자리에 와앉는 그를 보고는 더욱 랑패스러워 신경질적으로 책장을 뒤번졌다. (참, 일도… 딱 앞에 앉을건 또 뭐람.) 그러거나말거나 그는 자리를 잡고나서 아침부터 졸던 사람같지 않게 강의준비를 착실히 하는것이였다. 나를 못 알아보는것이 나를 안심케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 5분간이였다. 포도송이같은 머리태를 드리운 처녀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출석을 부르는 선생님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우리는 그 음정에 맞추어 그 무슨 소리표처럼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군 했다. 《박경희!》 《옛!》하고 나도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어른스러운 목소리를 내고싶었으나 잘되지 않았다. 동무들의 시선이 나에게도 모여듦을 느끼며 자리에 앉는데 앞에 있던 《상고머리》가 나를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마주친 눈빛에서 나는 《동문 왜 기어코 우리 학급에 왔소?》하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느낄수 있었다. 참, 참, 참.… 나의 입가엔 랭소가 피여났다. 마치 돌을 씹었을 때처럼… 어머니, 바로 이런 일이 있었던거예요. 그러나 선생님이 설명을 시작하시자 난 곧 모든걸 잊어버리고 강의에 홀 빠져버렸댔지요 뭐. 의학이라는 거창하고 신성한 세계가 얼마나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던지… 호호. 어머니, 걱정마세요. 난 이젠 철부지가 아니거던요. 꼭 훌륭한 의학박사가 돼서 어머닐 기쁘게 해드리겠어요. … 아마 이날 어머니는 내 기분이 흐려졌던 까닭을 일기장을 통해 알았을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것을 어쩔수 없다.
×월 ×일 《랭전》 의학대학에 입학한지 벌써 한달이 지나갔다. 새로 사귄 학급동무들의 이름은 오전에는 대학으로, 오후에는 인민대학습당으로 조수마냥 물결쳐다니는 과정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고도 입에 올릴수 있게 되였다.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탐구력! 이것이 우리모두를 한달이란 짧은 기간에 친동기처럼 꽁꽁 얽어매준 동아줄이 되였다. 물론 그속에는 불쾌한 인상을 안겨주는 가시돋친 상고머리도 있지만 말이다. 그의 이름은 정광화! 딱 한번 불러본 이름이다. 오늘 오후 2시쯤해서였다. 강좌실에서 교수선생님이 나를 불러 담화를 하시고나서 광화동무도 데려오라는것이였다. 그는 학생공원에서 동무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그가 혼자 서있었으면 《동무!》하고 찾으련만 쩍 버그러진 직각직선의 어깨성너머로 그런 말을 날려보낸다는건 솔숲에서 《솔아!》하고 찾는거나 같았다. 《정광화동무!》 나는 나도 모르게 깍듯이 불러 그를 찾았다. 그러나 순간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짧은 머리칼이 밤가시처럼 뾰족뾰족 돋은 이마아래 난데없이 못난 기러기 두마리가 그려졌다. 입귀 또한 못나게 찌그러졌다. 두번째 멸시… 나는 분김에 홱 돌아섰다. 그처럼 례절없고 볼썽미운 사람은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등뒤에서 《왜 그래?》하는 성림동무의 목소리가 정광화라는 인간에게 던져지는것이 똑똑히 들렸다. 나는 교실에 들어와 미란이에게 내대신 찾아가 이야기해줄것을 부탁했다. 어쨌든 선생님의 부탁이 아닌가.… 둘사이가 원인모르게 적막강산임을 잘 아는 미란이였다. 그는 수긍의 뜻으로 나의 왼쪽볼편을 손가락으로 튕겨주고는 뽀르르 밖으로 달려나갔다. 《정광화동무!》 복도에서 창너머로 살뜰하게 울리는 미란이의 목소리는 나의 귀를 아프게 자극했다. 다시는 그 사람과 마주서지 않으리라. 찾는 일은 더욱 없을거다. 이제부턴 그와는 랭전! 침묵, 또 침묵! … 이날 침묵이라는 엄숙한 선언을 그의 이름을 향해 선사하면서도 나의 머리속에는 줄곧 의문이 가셔지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사람을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걸가?
×월 ×일 《보약》 나는 소년단시절에 집에 와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엄마, 난 이때껏 한번도 비판 안 받았어. 엄마도 좋지?》 그러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해주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비판이란 〈보약〉이나 같은거란다. 보약은 병이 난 다음에도 먹고 병이 나기 전에도 먹지. 난 우리 경희가 보약맛을 못 보았으니 참 섭섭하구나.》 그후부터 나는 보약을 남에게 주기도 하였고 또 나자신도 달게 먹군 하였다. 그러나 오늘 저녁총화시간에 《보약》을 모독하는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 김성림동무가 나에게 충고를 주었다. 일어서면서 피끗 보내는 눈길에서 나는 그가 무얼 말하려는가를 이내 알아차렸다. 《나는 경희동무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경희동무는 매일 오후마다 인민대학습당으로가 아니라 개인사정을 앞세우면서 집으로 바삐 가고있습니다. 꿀단지를 찾아가는 걸음인들 그렇게 나래돋치겠습니까. 꿀단지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대학생의 꿀단지가 어데 있겠습니까? 집에요?!… 모두가 인체해부학시험에서 5점을 맞았는데 유독 동무만이 3점입니다. 동무는 이 3점을 두고 졸업학년까지 학위의 목표를 건 동무들앞에서 자신을 심각히 반성해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툭―》 책을 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언제 봐야 우스개소리만 곧잘 하던 성림동무특유의 그 비판이 기꺼이 달가왔다. 그럴수록 부끄러웠다. 사연을 아는 미란이는 영명이네 집이야기를 하려는듯 입을 오물거렸다. 그러나 나는 가볍게 도리머리를 해보였다. (그러지 마. 3점 맞은거야 잘못이 아니니.)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교실안엔 정적이 깃들었을 때 미란이는 끝내 일어서고야 말았다. 그는 타박타박 선생님이 앉아있는 책상앞으로 걸어나갔다. 《제기할것이 있습니다.》 미란이는 그루를 박아 서두를 떼고서는 나에 대해, 영명이네 집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있었으나 실은 학급동무들에게 나의 《공로》에 대해 좀 알고있으라는 식이였다. 동무들은 웅성거리며 나를 번갈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성림동무의 크게 끄떡이는 머리가 제일 먼저 안겨왔다.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우느라 애썼다. 그런데 이때 《북―》하고 방풍지를 찢어벗기는듯 한 목소리가 교실안을 꽉 채우다싶이 했다. 《선생님,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높고 빠른 말씨였다. …그는 이제 뭐라고 할것인가. 《저는 그 동무의 행동이 백번천번 틀렸다고 봅니다.》 귀가에 수많은 별찌가 한꺼번에 떠서 무질서하게 까불거리는듯 했다. 그중에도 《그 동무》라는 별찌의 잔음이 내 신경에 되게 와서 박혔다. (그 동무, 그 동무라?!) 《특류영예군인동지의 집으로 3점맞은 대학생이 찾아간다는것자체가 의학대학 학생으로서 자각이 없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약초가 담긴 구럭지를 들고 그들을 찾는건 소학교속보판에나 올라야 떳떳하지요.…》 순간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고있다는걸 나는 몰랐다. 지금에야 지그시 아래입술이 아파난다. 독설쟁이, 바지입은 독설쟁이… 그는 정말 나를 대학생의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것이 분명했다. 《그 동무》라고 이름도 부르지 않고 몰비판을 주는것이 그 표현이 아닌가. 아, 어머니, 이것도 과연 《보약》으로 봐야 하는가요. … 이날을 계기로 나는 잠이라는걸 잊어버렸다. 오후마다 미란이 그리고 성림동무와 함께 하루도 번짐없이 인민대학습당의 층계를 오르내렸다. 영명이네 집에는 그전보다 더 극성스레 다니였다. 삽주, 쇠비름, 쇠뜨기, 으아리, 따두릅, 뻐꾹채 등 갖가지 나물과 약초류들을 구해서는 바싹 말리워 가루를 내느라 우리 집 아래목은 언제나 고려약으로 가득찼다. 토요일저녁이면 의례히 그 곡절많은 《약초구럭지》를 들고 광복거리 기발식아빠트 5층 2호의 문을 어김없이 두드리군 했다. 약초구럭지에 대한 그 사람의 비난… 지금 돌이켜보느라니 그것은 나약해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세운 불가항력의 힘이기도 했다.
×월 ×일 입원 나는 지금 침상에서 일기를 쓴다. 오른다리는 그 무슨 대포마냥 하늘을 향해 높이 들려있다. 참, 볼꼴도 망측하네. 내가 이런 자세를 하고 펜을 잡게 되다니… 생각할수록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늘은 토요일이 아닌가. 친동생처럼 반겨맞아주던 영명이네 집. 대학생이 공부에 지장된다고 문을 열어주지 않은 저녁도 있었지. 얼마나 소박한 사람들인가. 그들을 위해서 나의 작은 지성이나마 바쳐가자고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움직일수 없게 되다니… 어머니보다 그리운것은 그들인가싶다. 문이 방싯이 열렸다. 고가 높은 모자로 하여 키도 늘씬해보이고 오른쪽볼에는 인상적인 볼우물이 패인 담당의사선생님이 들어왔다. 《입보다도 눈이 먼저 웃는다》는 말을 상기시키는 자애깊은 모습의 선생님이였다. 의식을 잃고 실려온 나를 위해 3일밤이나 꼬박 밝히셨다는분이다. 가까이 다가선 선생님의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았을 때 나는 눈가에 력연한 피발과 퉁기지고 갈라터진 입술을 알아보았다. 날 위해 침상을 지키시느라 저렇게 축가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졌다. 《이름이 경희라지. 무한정 안정해야 해요.》 의사선생님은 따끈한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보며 나직이 말씀했다. 난 흰 위생복차림이 어쩌면 저렇게 잘 어울릴가 하고 생각하며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앞으로의 나의 모습에도 의사모를 척 씌워보면서… 그러나 환상은 순간이고 걱정이 또 나를 키질하기 시작했다. 의사선생님은 쌍까풀진 고운 눈으로 한동안 나를 정답게 응시하더니 《안정이란 육체만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예요. 경희동무의 심리는 지금 불안정상태에 있지요, 안 그래요?》라고 물어보는것이였다. 나는 깜짝 놀라 두눈을 높이 떴다. 의술은 인술이라더니 의사는 이같이 사람의 속마음도 정확히 진찰할줄 알아야 하는가봐. 더욱 나를 놀라게 한것은 선생님의 다음 말씀이였다. 《권창혁동지네 집에는 다른 동무가 간댔어요. 좋은 일은 혼자 할 때보다 모두가 함께 할 때 더 빛이 나는 법이지요.》 선생님은 흔연스레 빨갛고 윤기나는 사과 한알을 골라 나의 손에 쥐여주셨다. 《학급동무가 그곳으로 가던 길에 들렸댔어요.》 의사선생님은 이 한마디말로 나의 의문을 풀어주려 했다. 누굴가? 미란이, 아니면 성림동무? 선생님은 단발머리녀자가 아닌가고 재차 물어서야 《그건 비밀이야.》하고 잘라말했다. 그리곤 나의 이불깃을 꽁꽁 여며주셨다. 참, 우리 어머니처럼 정이 깊고 살뜰한 성정을 지닌 선생님이였다. 나는 불현듯 선생님의 왼쪽가슴에서 빨간색으로 빛나는 《정성》이라는 두 글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밑에 파란 색갈로 외과의사―진경희라고 쓴 글자를 똑똑히 보았다. 아, 꼭같은 이름.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꼭 어디서 본것만 같은 낯익은 모습이였다. … 이날 의사선생님이 가져왔던 빨간 사과는 어쩌면 그리도 향기롭고 달디달았던지. 지금도 사과를 먹을 때면 난 그때를 꼭 상기해보군 한다.
×월 ×일 옆동무 나는 오늘 아침 퇴원하면서야 담당의사선생님이 나를 위해 바친 정성에 대해 귀속말로 전해들을수 있었다. 대학생처녀가 오죽했으면 룡악산견학을 가서도 약초생각에만 골똘했겠는가. 그건 다 우리 의사들이 구실을 쓰게 못해서이다, 우리 의학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처녀를 빨리 완쾌시키자. 이렇게 되여 선생님은 긴히 쓰려고 건사했던 보약까지 들고나와 나의 병치료에 아낌없이 바쳤다는것이다. 그러니 타박상으로 골절되였던 나의 다리는 그렇듯 곡진한 사랑이 있었기에 한달남짓한 기간에 그렇게 빨리 회복되였던것이다. 퇴원하는 나를 마중온 학급동무들은 그 사연을 알고 너도나도 감사의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그 의사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환자의 생명은 곧 의사의 생명》이나 같노라고 대답하는것이였다. 진심에 넘치는 대답… 자기의 생명까지도 바칠 각오로 충만되여있는 의사의 대답이였다. 정문앞에 정광화동무도 서있었다. 병원앞을 나서는데 미란이가 손에 책가방을 들려주는것이였다. 그제야 아침일찍 찾아온 동무들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한달동안 그리웠던 교정이 나를 부르고있는것이다. 《선생님, 그새 고마웠습니다.》 나는 고마움의 인사말을 남기고 병원문을 나섰다. 교실은 그새 더 넓어지고 밝아진듯 하였다. 상긋한 느낌을 주는 하얀 회벽이며 알른알른한 책상, 자색의 의자들!… 보다 정차보이고 친근해보이는 나의 교실이였다. 나는 창문쪽 두번째 자리에 가앉았다. 그리고는 두손으로 살근살근 책상을 어루쓸었다. 얼마만인가. 누군가 조용히 내 옆자리에 와앉았다. 《미란아! 그새 수고많았》하고 말하던 나는 입술을 꼬옥 다물지 않을수 없었다. 그 곱고고운 《정동무》가 내 옆자리에 가방을 놓고 앉는것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따분한 첫 수업이 숨가쁘게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나는 정광화동무가 밀린 나의 학습방조를 도맡아나섰으며 그에 따라 자리도 바뀌게 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또한 첨부된 새 소식으로서 그의 별명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는것도 알게 되였다. 물론 그 별명에는 나도 의견이 없었다. 첫 개학날부터 두툼한 영조사전을 졸음과 동무해서 뒤번지던 사람이니까 말이다.) 난 생각했다. 절대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이름도 부르기 싫어하는 사람이 학습방조를 하다니?… 입원직전에 나는 그 못난 3점과 영 인연을 끊어버리지 않았던가. 나는 나의 학업성적을 나자신이 책임진다는 립장을 버릴수가 없다. 새삼스레 고통스러운 《수고》를 끼치고싶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물리실험실의 표본자석, 바로 그것처럼 N극과 S극이 나란히 놓여지기를 요구한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서 나란히 놓여있다는건 얼마나 희비극적인 모순인가. … 그러나 이날 나의 비타협성은 다음날 선생님의 꾸지람으로 물거품이 돼야 했다. 동무의 방조를 진심으로 느낄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진심으로 도울수 없다는것이 선생님의 지론이였다. 나는 앵돌아진 마음의 분풀이로 그가 교재를 설명해줄 때마다 《알겠어요.》, 《예.》의 짧은 대답만을 되풀이했다. 그의 반응도 날씨에 대한 제비의 감각마냥 무척 재빨랐다. 그는 그때, 《대학생의 자격이 없다》고 력점을 찍던 그날처럼 《동무》라는 일반명사를 붙이는것으로써 나의 존재를 시까슬렀다. 마치 그앞에선 내게 이름이란것이 없는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이름없는 사람은 있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이름이 없다면 사람은 얼마나 불쌍할가 하는 생각을 석달이나 더 곱씹어해야 했다.
×월 ×일 생일엽서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아침에 미란이가 내 책상우에다 빨간 꽃 한송이를 놓아주었다. 《이번 학기에 기어이 나를 따라잡은 너의 이악성에 탄복하면서―》라는 종이쪽지가 댕기마냥 휘감겨있은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동무들은 따뜻한 말로 그리고 미소로써 나를 축하해주었다. 오늘은 정말 누구에게라없이 좋은 말만을, 고운 웃음만을 함뿍이 안겨주고싶었다. 정광화동무에게도 실은 마찬가지였다. 《랭전》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지만 이 석달동안 얼마나 나의 학습에 아낌없는 방조를 주었는가. 그래서 나는 요즘은 별로 바빠보이는 기색의 그에게도 《수고했어요.》라고 인사말을 보내였다. 그도 엉겁결에 미소를 지었는데 나는 무뚝뚝한 표정의 그에게도 이런 복스런 볼우물이 있다니 하고 생각했다. 얼마후 그가 하얀 봉투가 끼인 빨간 학습장을 내밀었는데 나는 한참이나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품이였던것이다. (어떻게 할가?!) 잠시 생각하던 나의 눈길은 어쩔새없이 그의 이마로 향해졌다. 항상 그 누구를 떠박지를듯 한 기세로 밤송이를 뚫고나온듯 한 그의 높고 큰 이마, 거기엔 이미 낯익은 두마리의 기러기가 가뭇없이 사라진것이다. 입귀도 다행 찌그러지지 않았다!… 나는 이런 소박한 진정앞에선 나의 리성이 타산군이라는것을 깨닫고 가벼이 책을 받아들었다. 봉투에서 하얀 엽서같은것을 꺼내들었다. 거기엔 나를 솟구쳐일어나게 할 글자들이 또박또박 정자로 씌여져있었다. 《박동무! 생일을 축하하면서 동지적충고를 보냅니다. 권창혁동지의 집을 찾아갈적에 자신이 의학대학 학생이라는걸 잊지 말기 바랍니다. 후날 이름이 아깝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바라면서.》 너무한 사람!… 나는 생일날은 물론 오늘 이날 이때까지 야비한 언어에 대해 너무도 몰랐다고 자인하게 된다. 《박동무!》 이런 말로 그는 나를 비난했다. 온 학급이 나를 도와, 영예군인동지를 도와 성심성의로 영명이네 집을 찾을 때 유독 그만이 론문이요, 경험이요 하면서 제 딴장을 보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제 잘난체 못하는 말이 없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거기엔 아마 자기만을 위한 글자와 부호만이 가득 차넘칠것이다! … 일기장을 번질수록 그때의 일이 어제런듯 생생하다. 여기 일기장엔 기록되여있지 않지만 그날도 영명이네 집을 찾았던 나는 《료양소로 떠나면서》라는 편지를 받고 얼마나 놀라와하였던가. 거기엔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나 다리를 고칠 희망을 안고 떠난다는 영명이 어머니의 자초지종과 이제는 대학생활의 귀중한 한초한초를 학문탐구에만 쏟아부어달라는 권창혁동지의 진심어린 당부도 적혀있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새로 나타난 그 고마운 사람들, 나의 의무를 통채로 떠맡긴듯싶은 그 알지 못할분들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워낙 바쁜 대학생활이라 자신을 위안하며 유일하게 사회를 위하여 내디디였던 그 첫걸음으로부터 벗어나 유정하고 불빛밝은 그 집을 거의나 잊고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런 명예나 보수도 바람이 없이 헌신적으로 바쳐지는 그러한 노력이 있음을 알게 된것은 퍽 후의 일이였다. 아마 그것은 4학년, 졸업반 말기였던가싶다.
×월 ×일 참된 이름 오늘은 학급동무들모두가 최우수의 성적증을 받게 된 날이다. 얼마나 많은 날과 달을 고여 오늘의 성공의 탑을 쌓아올렸던가. 잊을수 없다. 림상경험자료를 얻기 위해 지방에 있는 전문병원을 찾아떠났던 그밤. 뒤떨어진 동무의 학습방조를 위해 아픔을 무릅쓰고 떠났던 일요일의 그 아침… 그러나 그런 밤, 그런 새벽에 더 멀고 험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 나의 곁에 있었다. 오늘 오후 대학에서 나오는 길로 우리는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았다. 《수령님과 전우관》으로 들어선 우리는 숭엄하고 고결한 감정에 휩싸였다. 위대한 수령님만을 받들어 애국의 한생을 성돌처럼 고여온 혁명투사들이 영생의 모습으로 살아숨쉬고있었다. 그들중에는 쉽게 지날수 없는 한 의학자의 사진도 있었다. 진영빈! 우리 평양의학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높은 치하를 받은 유능한 외과의사. 나는 놀랐다. 항일혁명투사도 아니고 전쟁로병도 아닌 평범한 외과의사의 이름이 여기 전우관 높은 곳에 새겨져 빛날줄은 꿈에도 몰랐던것이다. 강사의 해설은 나를 더욱 깊은 사색의 세계로 떠밀어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진영빈동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면서 동무의 손이 정말 보배손이라고, 새 세대 청년의학자가 정말 다르다고 뜨거운 사랑의 말씀도 해주시고 그의 가정에 대해서도 물어주시였습니다. 그의 안해도 의사로 일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는 정말 훌륭하다고, 앞으로 자식들도 모두 의사로 키워 〈의학가정〉의 가장이 되라고 따뜻한 축복의 미소도 보내주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의 친어버이, 자애로운 가장은 진영빈동무가 아니라 우리 어버이수령님이시였습니다.… 그의 셋째딸이 태여났을 때에는 딸들이 모두 〈희〉자 돌림이라는것을 아시고 〈경사 경〉에 〈기쁠 희〉자를 따서 경희, 진경희로 하는것이 어떤가고 친히 이름까지 지어주시였습니다.》 이 순간 나의 놀라움을 그 어디에 비길수 있으랴. 그후 나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 셋째딸이 이제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서 름름한 의료일군으로 일하고있으며 얼마전에는 몇년을 두고 가정과 집을 떠나 지방의 료양소에 내려가 한 영예군인의 다리를 고쳐주어 대지를 활보할수 있게 하였다는것을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아, 그 영예군인은 다름아닌 권창혁동지였다. 나는 더 그 자리에 서있을수 없었다. 복도로 달려나온 나의 눈에선 걷잡을수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령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진경희! 나는 부끄러웠다. 오늘처럼 나의 이름이 부르기 힘들고 서슴어지기는 처음이였다. 문득 영예군인의 집을 찾는 의학대학생의 자세에 대해 일깨워주던 정광화동무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일엽서의 글줄도 살아올랐다. 하다면 그는 이런 사연을 알고있었단 말인가. 나의 귀전에 뚜벅뚜벅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뜻밖에도 눈언저리가 붉게 상기된 《백과사전》이였다. 나를 보고는 태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그리느라 애쓴다. 아, 저 보조개… … 그후 졸업이라는 인생의 계기점도 그와 나를 마주 세워주지는 못했다. 오직 한장의 편지만이 나의 심연의 한쪼각을 담아싣고 그에게 전해졌을뿐이다. 부끄러워 이름도 쓰지 못했던 편지… 《나에게 깊은 여운을 안겨주던 정광화동무에게. 광화동무! 입대를 축하하면서 초소로 떠나는 동무에게 몇자 적습니다. 이름에 깃든 사연을 알게 된 다음부터 전 저의 이름을, 아니 값높은 생으로 이름을 빛내여갈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확실히 저에겐 의사가 될만 한 심장이 없었던가봐요. 그러나… 앞으로 동무의 그 〈보약〉덕분에 저도 꼭 훌륭한 의사가 될걸요. 그때에는 동무도 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못배길거예요. 동창생으로부터.》 미란이의 련락으로 그에게 전해졌던 이 한장의 편지는 몇년후 다시 나의 일기장속에 끼여지게 되 였다. … ×월 ×일 《결혼 축하!》 결혼식초청장이 내 책상우에 놓여있다. 그래, 미란이가 시집을 간단 말이지. 고 물촉새가 새색시라?!… 새신랑은 또 뭐 누구라구?! 호호… 성림동무! 축하해요. 끝내 낚아냈구만요. 졸업후 7년이란 긴 세월을 글쎄 나도 몰래 련애하다니… 아마도 련애란 친구도 몰라보는 리기주의자를 좋아하는거지요.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요. 그런데… 저는 또 병원에 나가봐야 해요. 래일 새로 들어온 환자의 수술이 있거던요. 군대에 입대한 후 군대병원의사가 된 나는 래일 새로 들어온 환자의 수술을 하게 돼요. 시간을 내여 꼭 가도록 하겠어요.
×월 ×일 2차수술 미란이와 성림동무 결혼식에 꽃다발을 선물했다. 준비했던 노래를 불러주고싶었으나 수술을 맡은 의사의 시간이란것이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의식을 잃은 저 군관은 언제면 깨여나줄것인가. 벌써 몇번째 나자신에게 묻는 목소리다. 그에 대한 수술은 내가 직접 집도를 했다. 왼쪽골반에 생긴 파격적인 균렬! 그것은 나로서 처음 맞다든 《적수》와 같았다. 속이 떨려났다. 내가 왜 이럴가. 수술칼이 떨리면 어떻게 하나? 언제나 날 도와주던 외과의사의 기질이 모두 도망쳐버린듯 하였다. 눈은 흐려지고 손은 뻣뻣해지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불은 켜지고 나에겐 수술칼이 쥐여졌다. 왜선지 훈련장에서 번개처럼 달려들어 포차를 밀막았다는 그 말이 계속 공명쳤다. 그러나… 백포를 벗기고 상처를 헤치는 순간 나직한 탄성이 나의 입새에 흘렀다. 훈련장의 천막속에서 진행되였다던 1차수술의 경과가 나의 신심을 불러일으켰던것이다. 몇분이나 지났을가. 백광등이 꺼졌다. 간호원이 솟은 땀발을 닦아주는것을 느꼈다. 아, 소박한 기쁨이 나의 마음속에 찾아왔다. 전에는 나의 손을 쓰다듬으며 느끼는 만족감이였다면 오늘은 또 하나의 유능한 의사를 수술대우에서 알게 된것이 기뻐났다. 중위의 1차수술을 진행한 그 군의는 누구일가. 이런 생각과 함께 마음속에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나는 애써 부정해버렸다. 유능한 수술솜씨가 엿보이는 수술자리를 꼭 그와 련결시켜보려는 나의 생각에 괜히 짜증이 났다. 그가 아닐가?!… 어쨌든 그 담당군의는 훌륭한 의사다! … 이날 저녁 중위의 침상을 지키던 나는 그의 군복상의를 빨아주려고 세면장에 갔다. 파란 수첩 그리고 그속에 끼인 사진 한장… 그것이 주머니속의 전부였다. 빨래를 다 하고 다림발까지 세운 다음 수첩을 도로 주머니속에 넣으려는데 비죽이 나와있는 사진 한장이 눈에 띄였다. 사진뒤면에는 이런 글이 씌여져있었다. ―영원히 한전호에서― ―광화와 함께― 나는 사진을 보았다. 름름하고 억센 모습들이 서로 어깨를 겯고있었다. 왜선지 눈물이 솟았다. 빨간 테를 두른 군모, 거기에 가리운 총이 센 상고머리, 매와 같은 그 눈정기가 사진속에서도 확연했다. 순간 1차수술의 담당자는 꼭 그라는 생각에 기쁨이 콱 넘쳤다. 두 동창생이 수술을 함께 한셈이였으니 말이다.
×월 ×일 한 군관의 수기 오늘 현우동무가 정신을 차렸다. 내가 담당군의라는걸 알고 눈인사를 하였는데 그 눈길에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뜨거운 인사가 굽이치고있었다. 나는 그때라고 생각하고 《파란 수첩》을 좀 보여줄수 없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뭐 별로 볼만 한게 없습니다. 경희군의동지.》라고 덧붙였다. 나는 수첩을 가지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생활의 인상적인 단면들을 꼭꼭 적어놓는 습관이 있는듯 했다. 수첩의 첫페지에 《내가 쓰게 될 소설의 다종다양한 이야기들로 되기를 바라며》라고 쓴것으로 보아 생활을 사랑하는 젊은 익살군이 틀림없었다. 어느덧 나는 수첩의 열두번째 장을 펼치고있었다.…
오늘 아침 출근하려는데 집사람이 미안스럽게 한마디 하는것이였다. 《저… 애이름은?》 나는 《오늘 저녁까지는 무조건!》하고 손가락을 걸었다. 광화와 토론할 생각이였다. 규격지를 석장이나 써버리며 꿍꿍거렸는데도 정말 짓기가 힘들었다. 중낮쯤 되였을 때 편지 한장이 부대로 날아왔다. 대홍단아버님한테서 온 편지였다. 나는 배고픈 사람 헤덤비듯이 덥석 편지를 집어들었다. 아버님의 시원시원한 글씨… 《얘야, 대홍단을 찾으신 장군님께서 뒤집 새아기의 소청을 들어주시고 아들을 낳으면 대홍이, 딸을 낳으면 홍단이라 하라고 하늘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셨구나. 이게 어찌 민씨가문에만 돌려주신 사랑이겠니. 난 우리 손주애이름도 강대홍이라고 하는것이 좋겠다. 허허… 〈강대홍!〉이라, 얼마나 좋으냐. 요새 읍탁아소에선 대홍이, 홍단이가 많아서 행복한 〈골치거리〉가 생겼다고 하더라만… 얼마나 복된 세상이냐. 애 에미도 별다른 의견이 없으리라고 보면서 이만 쓰겠다. 초소를 더 잘 지켜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군의소천막에 뛰여들어 올방자를 틀고앉으며 《군의동무생각엔 어떻소?》하고 편지를 주면서 광화한테 물었다. 그런데 광화는 예상외로 딴 이야기를 펼치는것이였다. 《현우, 시어머니하고 며느리이름하구 같은 경울 생각해봤소?》 《뭐라구?》 난 폭소를 터쳤다. (이 순간 나는 정색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야 참, 어디 그런 법이 있나? 글쎄 후에 애라도 생기면 몰라라 련애할 땐 참 망측할거네. 생각만 해도… 하하하.》 그런데 나의 웃음이 광화의 심연을 깨뜨리는 계기로 될줄은 몰랐다. 광화는 《자네도 알다싶이 나야 무뚝뚝한게 오해받기 십상 아닌가.》하고 말꼭지를 뗐다. 그 처녀는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 또한 고왔다고 한다. 영예군인의 집을 먼저 찾기 시작한것도 그 처녀였다니 말이다. 광화는 수령님께서 지어주신 어머니의 이름과 꼭같은 이름을 가진 처녀! 그와 무척 친하고싶었더란다. 물론 처음엔 이름부를 일이 난처하여 한학급이 아니였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였다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하고싶고 돕고싶을수록 그는 계속 멀어져가더라는것이다. 난 제꺽 말했다. 《자네 거 골살 찌프리는 버릇이 문젠 문제네!》 광화는 처녀가 졸업후에 써보냈다는 편지를 보여주며 자기와 어머니는 그를 생각해서 권창혁동지의 치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처녀는 그 일을 두고 이렇게 속을 썩였다고, 자기가 못된 말만을 골라 시비는 장창 하면서도 옳은 길로 함께 걸어오지 못한것이 두고두고 가슴을 허빈다고 했다. 《그렇지 않구. 자넨 확실히 결함이 있어. 혼자서 의학대학학생의 영예를 떨치다니. 자네야말로 대학생의 자격이 없었네그려.》 나는 이렇게 빈정거렸다. 대리론가가 오늘만은 론쟁없이 내 말에 수긍하는것이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는 그 처녀에게 내가 사죄편지를 써보내련다. 《처녀동무! 사랑에선 외과의사가 아니라 내과의사가 되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 심장을 볼줄 알아야지요, 하하.》 나자신도 오늘은 정말 만족스럽다. 안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주겠다. 어쨌든 광화는 좋은 친구다. 훌륭한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저절로 훌륭한 사람으로 되는것이 아니라던 그의 말이 정말 옳다. 장군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달아주기 전에 부모로서 잡도리부터 단단히 하련다. 아무렴. 억세고 튼튼한 총폭탄감을 키우는 일이 쉽지는 않을것이다. … 나는 그때에야 누에가 뽑은 실오리처럼 끝이 없는것이 바로 사람의 인연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회복된 몸으로 병원문을 나서던 현우동무. 그를 마중 온 사람들중에는 부대정치일군과 병사들 그리고 꽃다운 안해… 정광화동무도 있었다. 현우동무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때 《경희동무―》하고 부르며 달려오던 그의 모습을 나는 언제나 잊을수 없다. 그렇게 뜨겁고 열렬한 어조로 나의 이름을 부르려고 그는 대학기간 그렇게 침묵했는지도 몰랐다. … 그때로부터 10여년세월이 흘렀다. 나는 ××군부대의 군의소장으로, 애아버지는 인민군 ×××병원 원장이 되였다. 《한학급이 아니였으면 좋겠다》던 두사람은 기어코 한가정의 성원들로 되였던것이다. 지금도 딸애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름이 꼭같은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은지 오는 사람마다에게 자랑을 하군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름앞에 부끄러웠던 순간이 없었는가를 심장에 대고 묻군 한다. 이 나라 복받은 이름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런 순간이 한생으로 이어지리라는것을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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