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8(2009)년 제3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형   수

 

양지촌마을의 모판관리공 오봄향은 농장안의 총각들이며 아들가진 아낙네들의 시샘의 눈길이 떨어질줄 모르는 처녀이다.

지난해 어느 명절날 그네터에 나갔는데 옆마을에 모내기를 도와주러 나왔던 평양지원자 한사람이 《어허, 가극단의 춘향배우가 여기 놀이터에 나왔는가.》하고 눈이 찌붓해서 한 말이 동네에 퍼져 지금은 오춘향으로도 불리운다.

남달리 뛰여난 용모도 그렇지만 봄향에 대한 사람들의 시샘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농장에 배치받은 후 모판관리공들의 손탁에 들어 모판관리를 할 때에는 고분고분 시키는 일을 잘해서 알뜰한 처녀라고 귀여움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던 봄향이 문학통신원이 되더니 자라나는 모를 보며 시를 짓는다, 수필이라는걸 쓴다 하며 여름이면 시내로 꼭꼭 창작강습을 다녀온다. 갈 때는 해볕에 감실감실 탔던 얼굴이 해말쑥해져서 돌아온다.

어떤 처녀의 말을 들으면 그의 사진첩속에 작가선생님들과 함께 멋쟁이 도시총각곁에 고개를 갸웃이 하고 찍은 사진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재작년봄부터 모판관리책임자로 되면서 처녀가 판판 달라졌다. 규정과 조금만 어긋나게 모판관리를 하면 자기또래들에게도 콕콕 가시로 찌르듯 바른소리를 하는가 하면 사내들이 모판만드는 일이 거칠어지면 낯빛이 새파래져서 눈총을 갈겨대군 한다.

이러는양을 보며 젊은이들은 벼바다우에서 운명의 배를 함께 탈 길동무가 아닌 리상이 딴곳에 가있는 철새라고 하는가 하면 너그러운 축들은 일단 하던 일들을 깨끗이 마무리하려고 이 땅에 정을 깡그리 쏟아붓는 속깊은 처녀라고도 했다.

그런데 요즘 총각들속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농장속보판에 봄향이가 쓴 《나는야 이 땅의 봄맞이처녀가 될래요》라는 시가 나붙은 까닭인것 같다.

엉큼한 총각들이 《이 땅의 봄맞이처녀》라는 문구에서 시샘의 감정을 일축해버린것이다.

글이라는게 허구가 도입되는것인줄 모르고 그 아짜한 문장이 자기들에게 보내는 그 무슨 류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어느날 봄향이네 모판에 한분조원인 정경매아주머니가 나타났다. 그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봄향을 조용한 방풍바자가로 끌고가더니 《내 오늘 비밀을 하나 대줄가.》하고 말꼭지를 떼는것이였다.

봄향은 눈이 동실해졌다.

《오늘 말이야 성도와 함께 가래질을 하다가 논뚝에 있는 수첩을 보았는데 거기에 너에 대한 글이 있어. 제목이 뭐더라. 봄맞이처년지, 노을맞이 처년지. 좌우간 네 얼굴을 시로 썼어. 가만히 보니까 네 얼굴에 웃음이 생겼는데 새날의 노을에 연분홍빛으로 화장되더라느니, 이맘때 다른 처녀들은 거울앞에서 맵시를 보겠는데 노을에 물드는 얼굴이… 어떻다구 했더라. 어쨌든 어느 새벽에 모판에 나와 네 얼굴을 유심히도 훔쳐본 모양이야. 그리구는 아― 하고 뭐라고 썼더라.… 응, 군대때 네 얼굴 생각했다는 소리같애.》

《철이 엄마두 참, 그게 날게 뭐예요.》

봄향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눈을 흘겼다.

《내가 사내들의 수법을 알아. 네가 시를 쓴다니까 저도 시를 짓는답시고 너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려는 시도야. 이제 보지.》 정경매는 반죽좋게 웃으며 봄향을 지켜보더니 《방어태세를 든든히 갖추라구.》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것이였다.

(성도동무가 시를… 내 얼굴을… 방어태세… 아니, 그럴수 없어.)

턱에 손을 고이고 자기 생각에 옴했던 봄향은 저도 모르게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봄향의 눈에 비껴진 성도는 그럴 인물이 아니였다.

쩍 벌어진 어깨에 쭉 빠진 키, 작년가을에 제대되여온 그 다음날로 작업반장을 찾아와서 자기는 100마력이니 힘든 일만 맡겨달라고 했던 성도다.

에돌줄도 모르고 고지식하고 일욕심많기로 소문난 그가 처녀들에게 헛눈이나 팔 사람이 아니였다.

봄향은 오히려 정경매의 이상한 행동에 방어태세를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경매를 두고 《동네소식통》이라고 부른다.

아침저녁으로 벌어지는 일은 물론 밤부엉이만 아는 사실까지도 다 아는 《통신사》로 소문이 났다.

그의 입심을 제일 두려워하는것은 처녀총각들이다.

얼굴표정만 보고도 속생각을 알아맞춘다고 처녀들을 《협박》한적도 있다.

봄향은 일손을 서둘러 비닐박막들을 다 옮겨씌웠다.

파란 애잎들을 살랑살랑 흔들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오르는 랭상모판 첫 씨뿌리기를 한 모는 벌써 아지를 둘씩 치기 시작했다.

아기를 안은 어머니인양 키워갈수록 정이 가고 사랑이 가서 하많은 맘속말을 시에 담아 나누는 봄향이였다.

이튿날 어스름새벽이였다.

싸늘한 기운을 머금고 설렁거리던 바람이 잠풍해지고 별이 총총한 하늘이 건듯 들리웠다. 서리가 내릴 징조였다.

봄향은 관리공처녀들과 함께 모판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은 분주히 들뛰며 모판마다 물을 끼얹었다.

서리피해는 한순간에 입는다. 해뜨기 전에 이렇게만 해주면 아무런 영향도 없다.

동산마루에서 해가 빠끔히 얼굴을 내밀자 처녀들은 보뚝우에 올라서 흐르는 땀을 씻으며 호호―깔깔 웃어들댔다.

이러는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봄향은 문득 떠오르는 자기 생각에 놀랐다. 성도가 수첩에 썼다는 시…

서리를 막아낸 기쁨에 보조개들을 살짝 패여가지고 연분홍노을을 비껴담는 처녀들의 얼굴…

경매의 말이 옳았다. 이맘때면 거울앞에 마주설 얼굴들, 새날의 려명에 단장되는 노을맞이처녀들…

이것은 분명 시이다. 봄향이의 가슴도 흥분으로 들먹였다.

그러면 성도가 진짜 시를…

봄향은 성도가 자기의 얼굴을 군대때에도 그려보았다는 경매의 말에 부끄러움이 불쑥 들었다.

경매가 이런 모습을 눈여겼더라면 아마도 시구절같은 표현으로 말했을상싶기도 했다.

어느덧 마지막서리도 다 지나갔다.

청명한 하늘에서 따스한 해볕이 아낌없이 쏟아져내렸다.

완연해진 봄이 한껏 무르녹고있었다.

때맞추 곡우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비내리던 날 새벽녘이였다.

모판에 흙물이 흘러들세라 보뚝들을 손질해놓고 돌아오던 봄향은 분조포전 물목에서 부지런히 삽질을 하고있는 성도에게로 다가갔다.

봄향이네 모판이 걱정되여 물머리를 돌리고있는 모양이였다.

《성도동무, 모판은 일없어요. 이자 보뚝들을 든든히 해놓았어요.》

《그래…》 성도는 허리를 펴고 이마에 흐르는 비물을 손등으로 찍어내리며 《난 오늘 이 물들을 한방울도 흘러보내지 않고 저 만평틀에 채워넣겠소.》하는것이였다.

《어마나, 그냥 두어도 모판쪽에 위험한 곳이 없는데…》

《봄향동무, 이걸 좀 보오. 검붉은 도랑물이 온통 거름물이란 말이요. 겨울잠을 자고난 대지를 씻어내리는 첫 도랑물엔 땅이 살이 찐다오.》

봄향은 처음 듣는 소리, 처음 보는 일이였다.

《그래요?!》

《봄향동무가 키운 풍년모가 곧 옮겨질 포전인데 기름지게 살을 찌워야지.》

성도는 봄향을 바라보며 껄껄 웃더니 물머리를 앞세우고 만평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성도는 이제 모내기가 시작되면 포전관리공일을 하게 된다.

그것도 제가 자진해나선것이다.

(내가 키운 모가 옮겨질 땅을…)

단비를 머금으며 진록색이 한껏 어우러지는 모판을 그윽히 바라보는 봄향의 가슴속으로 성도가 물몰이하는 도랑물이 지줄지줄 소리치며 흘러들었다.

비가 걷히자 나비잠복소를 만들 가둑나무잎을 따려고 뒤산에 올랐던 분조처녀들은 들판을 바라보며 환성을 질렀다.

봄향이네 모판에 한끝을 둔 칠색의 연한 무지개가 땅김이 물물 서려드는 만평틀(성도가 물댄 곳)로 휘우듬히 드리워지고있었다.

비구름이 서서히 동켠하늘로 밀려나면서 무지개는 차츰 령롱히 채색되여 성도의 포전에 뿌리를 박았다.

봄향의 눈가엔 야릇한 기쁨과 환희가 어렸다.

 

×

 

눈속에도 기다리며 당겨맞은 봄은 온 들판을 푸른 주단으로 덮어놓았다. 모내기가 끝났다.

시랑송소리를 들으며 움트고 자라난 모가 첫 도랑물에 살이 오른 땅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성도는 포전관리공이 되였다.

우람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일손은 바늘귀잡는 녀인들처럼 섬세해졌다.

갓 뿌리붙임하는 모들이 뜰세라 물조절도 모낸 날자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하는가 하면 논고턱마다 개구리알을 살근살근 가져다 놓아주며 번식시키기도 했다.

시회관(양지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청년중앙예술선전대의 공연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내거리를 출입한다고 얼굴화장, 몸단장에 착실히도 왼심들을 썼다. 앞뒤로 옷매무시들도 서로서로 보아주며 떠들어대는데 성도와 분조총각들이 삽을 메고 포전에서 들어왔다.

《성도동무, 함께 가자요.》처녀들이 오구구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허, 황새가 제비무리속에 끼우면 발걸음이 맞지 않겠는데…》성도는 제법 시치미를 뗐다.

옥금이가 한수 떴다.

《그래도 처녀총각 걸음은 맞는 법이예요.》

《그래, 그럼 우리도 처녀들에게 짝지지 않게 몸단장을 하구 가자구. 인차 뒤따라가겠소.》

봄향이네들은 길이 좁다하게 떠들며 밀려갔다.

그들이 회관어구 공원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의자에 앉아있던 총각 하나가 롱담을 걸어왔다.

《처녀동무들, 공연시간은 아직 멀었소. 여기와 유희나 좀 하다가들 가기요.》

다른 총각이 또 나섰다.

《농장원아씨들 앉을 자리는 앞자리에 내놓았소.》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종종걸음을 놓던 그들은 농장원아씨라는 말에 뚝 멈춰섰다.

《뭐 농장원아씨?… 봄향언니, 한마디 쏘아주고 가자요.》

옥금이가 새침해진 얼굴로 한발치 나섰다.

《그러자, 가만있으면 안돼.》

처녀들은 이구동성으로 떠들며 사내들앞으로 자못 당당히 마주갔다.

《다시 말해봐요.》 옥금이가 맵짜게 내쏘았다.

듬직한 청년이 너그럽게 웃으며 일어섰다.

《동무, 농장처녈 알아본게 뭐가 그리 고까워 눈총질이요, 참…》

《어디 농장처녀라고 써붙이기라도 했어요?》

《써붙인데가 없다, 하하 ― 이 동무들이 대단히 노여운 모양인데…》

이때 성도네들이 나타났다. 처녀들은 구원자라도 만난듯 가슴이 쩍 벌어진 성도를 에워싸고 자초지종을 일러바쳤다.

그리고는 성도네를 남겨둔채 물러났다.

성도앞에 쩔쩔 맬 모양을 보고싶었던지 먼 발치에서 걸음을 멈춘 처녀들은 깨고소히 그 광경을 눈여겨봤다.

그런데 성도는 시내청년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떡끄떡해주더니 웃는 얼굴로 인츰 헤여지는것이였다.

《가재도 게편이야요.》 애숭이처녀들이 성도를 향해 입을 비쭉비쭉 내밀었다.

그 이튿날 성도가 봄향을 만나자고 하였다. 그들은 퇴근길을 나란히 걸었다.

《요즘 어떤 시를 쓰오.》

《아이참.》 봄향은 뜻밖의 물음에 얼굴만 살짝 붉혔다.

《내 글감을 하나 얻었는데 동물 주고싶어 그러오.》

《예?》

성도의 음성에서 롱담이 아니라는것을 제꺽 눈치챈 봄향은 호기심이 바싹 동했다.

《난 어제 그 동무들이 참 고마웠소. 농촌처녀를 알아본 시내총각들 말이요.》

성도는 봄향의 기색을 슬며시 눈더듬하더니 말을 이었다.

《얼굴 보고도 아니고 옷매무시 보고도 아니라오. 발걸음씰 보고 알았다오. 난 생각했소. 서리내리는 모판을 찾아 새벽어둠을 헤치던 걸음씨구 밤비내리는 두렁길로 재우치던 걸음발이 아니겠소. 이제는 달리는 될수 없게 된 이 습관이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무거운 짐을 두어깨에 짊어진 주인들을 누구나 다 알아보게 하는 걸음씨가 되였소. 남달리 행복한 걸음씨를 가진 주공전선의 처녀들이라는 긍지가 막… 봄향이, 이런 감정을 담으면 시가 되지 않겠소?…》

흥분에 젖은 성도의 마디마디는 봄향의 가슴에 꽉 들어찼다.

이 땅의 주인이 된 새로운 긍지, 다음은 성도의 예민하고 정열적인 감수력에 대한 놀라움, 이 놀라움도 또 다른 하나의 《긍지》로 뒤바뀌고있음을 봄향은 의식했다. 부끄러웠다.

(시를 쓴다는 난 왜 미처 이런 생각을…)

봄향은 이 순간 시인과 걷고있는 느낌이 들었다.

《봄향동무, 꼭 써주오.》

갈림목에서 그들은 헤여졌다.

봄향은 방풍바자가에서 하던 경매의 말이 떠올랐다.

《노을맞이처녀》의 시도 성도의것이 분명해졌다.

며칠이 지나 봄향은 시를 지어 성도에게 의견을 요구했다.

왜 그런지 때없이 만나 《시상》을 받고싶은 충동이 마음속에서 봄싹처럼 뾰조름히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

 

쉴참의 논머리며 아침저녁길에서 수군수군 떠들던 색다른 소문이 봄향의 귀에 와닿았다.

성도가 요즘 홀딱 반한 대상이 생겼다는것이였다.

역시 《동네소식통》의 입에서 새여나온 말이다.

봄향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 소문이 연덩이처럼 들어앉은 마음 한구석엔 야릇한 시새움의 감정이 봄물결처럼 일었다.

어느날 경매가 어깨를 툭 치더니 말을 걸었다.

《봄향이 얼굴이 요즘 왜 그렇게 어두워졌어?》

《제 얼굴이 뭐…》

《이 경매눈이야 못 속이지. 내 입에서 나온 성도 소문에 놀랐니?》

《어마나, 무슨 말을…》 봄향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러면서도 경매의 다음말이 초조히 기다려졌다.

문득―문득 두려움도 따라앞섰다.

《우리 철이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야.》

경매는 일부러 헛기침을 깇으며 짐짓 정색해서 두눈을 슴벅슴벅하며 입을 열었다.

…분무기를 등에 진 경매의 남편이 병해충잡이 생물농약을 뿌려가는 논에 성도가 불쑥 나타났다.

《아저씨, 그게 무슨 걸음새가 그래요. 이 넓은 골을 따라 곧게 걸어야지. 벼포기들을 마주 건드리며 갈지자걸음을 하면 돼요?》

그의 등에서 분무기를 뺏아 멘 성도는 사이골을 따라 조심조심 걸어가며 푸른 잎새들우에 분무채를 드리웠다.

《시범동작》을 해준 성도는 그를 부르더니 벼포기를 헤집어보였다.

뽀얀 솜털에 싸인 아직도 형태가 생기지 않은 하얀 연필촉같은 이삭시원체가 나타났다.

《보라요. 이 벼들이 지금 자기 몸에 자식들을 품기 시작했어요. 이런 땐 몸을 건드리는걸 제일 싫어한단 말이예요.》…

《봄향이, 우리 남편이 글쎄 총각에게서 이런 강습을 받았다네. 제 자식이라도 품은듯 벼포기, 벼포기하는걸 보면 벼라는거한테 홀딱 반한게 분명하거던.》

경매의 이야기는 갈증에 타는 목을 추기며 모금모금 흘러드는 샘물마냥 봄향의 가슴에 젖어들었다.

오늘따라 경매의 그 입심이 싫지 않았다.

봄향은 자정이 넘도록 《병해충편람》을 보았다.

신통한 생각이 떠올랐다.

봄내 정을 주고 사랑을 주며 키운 애기모가 어느덧 열매를 품기 시작한 들판, 자식의 요람가를 지키는 어머니인양 성도가 애지중지 가꿔가는 그 들판으로 봄향은 자꾸만 마음이 쏠렸다.

×

 

동녘하늘가에 별들이 하나둘 내돋기 시작할무렵 봄향은 빨간 등불들이 렬맞춰 생겨나는 포전으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나비등을 켜나가는 성도를 뒤쫓고있었다.

《성도동무.》

《아니, 봄향이가 어떻게 이 밤중에…》

《이걸 등불마다에 씌워놓자요. 비바람막이에도 그렇구 지금 성하고있는 ××벌레를 낳는 나비는 푸른 불빛을 더 좋아해요.》

봄향은 손구럭에 밑면을 자른 푸르스름한 빈병들을 한가득 들고 나왔던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다니며 빈병들을 모았댔구만.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소?》

《며칠전에 경매아주머니에게 말을 들으며…》

봄향은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는 성도가 불을 지펴놓은 나비등마다에 조심조심 빈병들을 씌워놓았다.

푸른 등불주위에 나비들이 하나둘 감돌기 시작했다.

일을 끝낸 성도와 봄향은 포전길머리에 나와 앉았다.

뜸뜸… 개굴, 개굴…

밤정적을 흔들며 서로 부르고 화답하는 소리,

훈훈한 바람결을 타고 흘러드는 땅냄새, 물냄새…

  한여름의 포근한 정취가 취할듯 안겨오는 좋은밤, 좋은 들판이였다.

《이쪽 논두렁에서 하마트면…》

봄향은 얼얼해들며 새근거리는 발목을 매만졌다.

돌부리에 걸치면서 접질린것 같았다.

《아스팔트길 걷는듯 한 모양이구만. 여기엔 시내총각들두 없는데…》

《어마나, 호호호.…》

봄향의 종주먹이 성도의 펀펀한 등을 두드렸다.

《봄향이, 그 발엔 내 손이 약손이야.》

썩살이 박힌 성도의 투박한 손이 봄향의 발목을 매만지며 한동안 치료를 했다.

이때였다. 바로 앞쪽길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마나…》 봄향은 엉겁결에 놀라며 성도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차츰 가까와진 그는 다른 포전을 맡아보는 포전관리공 경매의 남편이였다.

그도 나비등을 켜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푸드드득… 벌 한복판에서 들새 한쌍이 깃을 치며 날아올랐다.…

오늘은 아침부터 정경매의 입심이 성도를 상대로 시작되였다.

《녀자들 〈갑작머리〉못 당하겠지. 우리 녀자들이라는건…》

경매는 남자에 비한 녀자의 우월성이라는것을 자기딴의 《리론》으로 한바탕 력설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녀자와 함께 살게끔 법이 만들어진거야. 힘꼴만 가지고선 못살지. 알겠나, 남성네들…》

하하… 호호호…

분조원들은 웃음속에 일손을 잡았다.

쉴참이 되자 경매가 봄향이 곁에 다가와앉았다.

《봄향이, 시를 하나 써줘. 어제 농근맹에서 분공을 받았는데 청년절날 너희들을 축하해서 내가 한 종목 출연하라누나. 노래는 음치지, 자작시나 하나 읊어주려고 생각하는데 어디 내 재간에 쓰겠니. 그래서… 성도와 합작해서 하나 써주렴. 너 혼자 쓰면 처녀들이나 좋아하는 잔잔한 시가 된대. 성도생각과 합치면 진짜 시가 된다구 우리 철이 아버지도 그러더구나. 응?》

《아주머니두 참. 제가 뭐 시인이라고 그런걸…》

《꼭 집행해주어야 어제 밤 비밀이 담보돼.》

그는 제법 억양을 높여 그루를 박았다.

봄향은 귀밑이 빨갛게 익어들었다.

며칠후 봄향은 성도와 무릎을 마주했다.

《봄향이, 써주자구. 내 가슴에두 시가 막 끓고있는데…》

《그래요?》 봄향은 호―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성도는 푸른색뚜껑의 병사수첩을 내밀었다.

《혹시 참고가 되겠는지. 난 시를 짓는 재간이 없어. 그저 흥분이 떠오를 때마다 몇자씩…》

성도는 수첩의 어느 한 페지를 들쳤다.

《군대시절 초소근무를 나갈 때마다 생각한건 새날의 노을은 총잡은 병사의 얼굴에만 물들줄 알았는데 여기 오니 랭상모판처녀들의 얼굴에도 비끼더란 말이요. 그때 난 막― 시가 떠올랐소. 그리구 또…》

성도는 봄, 여름 푸른 벌을 가꾸며 이 땅과 더불어 받아안았던 충동들을 흥분에 젖어 터쳐놓았다.

서로 뜨겁게 나누는 열렬한 속삭임이 한덩어리가 되여 마침내 시는 태여났다.

 

봄볕같이 따스한 정을

랭상모 포기포기에 묻어서

여름볕으로 단 가슴들에

푸른 들 한치한치를 그러안아서

풍년이삭 사랑의 열매를 자래우자

 

이삭이 물결치는 가을아침의 노을가에서

강성대국의 새날맞이청춘들이 되자

 

청년절아침 정경매가 출연하였다.

저녁에는 성도와 봄향이의 약혼식이 있었다.

정경매가 한마디 했다.

《이젠 〈동네소식통〉이 아니라 〈온 나라의 소식통〉이 되여서라도 〈원앙새부부〉가 될 동무들의 합작시를 농장벌마다에 울리게 하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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