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8(2009)년 제3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조  향  미           

  

그들사이에 벌써 아기자기한 사랑의 감정이 움텄다고는 말할수 없었지만 서로가 리해하고 서로가 위해주려는 마음이 서둘러 그들을 결합시켰다.

결혼후의 나날도 그렇게 흘러갔다.

그간에 달라진것이 있다면 영은이는 혁명전적지관리소 해설강사로 일을 하게 된것이고 남편의 어깨에는 별이 하나 더 오른것이였다.

부대에서는 이 자랑스러운 젊은 부부를 위하여 해빛이 잘 드는 곳에다 살림집을 마련해주었고 새색시가 가지고온 세간살이에 부족한것이 있을세라 구색에 맞게 갖추어주었다.

부대 재간둥이들의 손길이 미친 방이며 부엌은 기름기가 찰찰 돌았고 넓은 마당에는 남편이 그토록 즐겨 가꾸는 꽃밭도 있었다.

하지만 꾸려질대로 꾸려지고 갖출것은 다 갖추어진 방안에 한가지만은 없었으니 그것은 젊은 녀인의 방에 꼭 있어야 할 경대였다.

영은이를 생각하여 친정집에서도 경대만은 갖추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고 부대 군관들과 가족들역시 새색시가 거울을 마주하면 더 고통스러워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영은이도 이미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자기의 아름다운 얼굴이 비껴있었던 거울을 깊은 바다속에 던져버린 녀인이였다.

바로 부정할수 없는 이런 현실이 늘 영은이의 마음을 괴롭히였다.

영은이의 집에는 벽거울조차 없었다.

시집을 온 새색시가 출근하는 남편을 바래주거나 맞아들이기 전에 경대앞에 앉아 자기의 얼굴과 몸가짐새를 다듬는것자체가 그대로 기쁨이며 행복이건만 영은이한테만은 그런 행복이 차례지지 않는것이였다.

영은이에게는 두툼한 사진첩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사진첩역시 옷장의 제일 밑바닥에 묻혀있었다.

그 사진첩에는 흘러간 영은이의 처녀시절도 있었고 안 들어가겠다고 하다가 할수없이 남편의 팔에 끌려 사진관에 들어가 찍은 약혼사진도 있었다.

잔치상을 받고앉아 찍은 사진속에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찍은 자기의 얼굴도, 억지로 밝은 기색을 짓는듯 한 남편의 얼굴도, 괴로움이 비낀 친척들의 얼굴도 있었다.

처녀시절의 고운 얼굴을 보면 남편이 더 괴로와할것 같아 자기의 처녀시절까지 옷장속에 깊숙이 묻어버린 영은이였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가방을 들려주며 웃어보일 때, 남편의 퇴근무렵 경대앞에 앉아 얼굴을 더 곱게 가다듬고나서 대문밖에 서서 이제나저제나 오기를 기다릴 때, 바다가산보, 명절날야유회마당에서의 부부2중창, 그런 생활의 달디단 순간들이 영은이에게는 없었다.

남편은 생김새로 보나 체격과 인품으로 보나 누구한테도 짝지지 않을 호남아였다.

바로 그런 남자를 자기와 같은 녀성이 렴치없이 차지했다는 미안하고 죄스러운 생각이 늘쌍 영은이를 괴롭히였다.

그 괴로움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타오르고 타번지였다.

그 사랑은 대체로 남편이 모르게,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게 표현되였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각이였다.

영은이는 지금 여러날 훈련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업어가도 모르게 잠이 든 남편의 침대머리에 앉아서 자기를 잊고 이 세상 가장 정다운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건강한 사나이가 그러하듯이 잠도 깊게, 숨도 크게 쉬며 잔다.

인정은 또 얼마나 깊은 사람인가.

자기와 같은 녀자를 안해로 맞아 살면서도 언제한번 내색을 하지 않고 자기를 이기는 강한 사람.

이럴 때면 영은이는 자기를 잊는다.

아! 고마운 운명이여.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의 반려자로 되였을가.

퇴원수속을 해놓고도 제대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하루를 열흘맞잡이로 보내야 하는 지루하고도 가슴답답한 나날이 계속되였다.

이 나날에 병원에서는 영은이를 여전히 환자로 취급하려들었다.

그게 싫어서 영은이는 잠시도 병동에 붙어있지 않고 간호원처녀와 같이 붕대를 빨러 내가로 나가기도 하였고 병원에서 가꾸는 남새밭에서 김을 매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제는 책을 보아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두세권씩이나 소설책을 빌려다놓았지만 글자가 도무지 눈에 안겨오지 않았다.

이렇게 상처입은 몸으로 어쩔수없이 제대되여야 한다는것이 사실로 되였을 때 영은이는 얼마나 울었던가.

혼자 몸부림치며 베개머리를 눈물로 적시던 그 괴로운 밤들이 조심히 뒤로 물러가버리자 이제와서는 왜 그런지 한시바삐 이곳을 떠나고만싶어지였다.

그저 떠나는 날이 어느날이겠는지, 그날 하루만이 걱정될뿐이였다.

그날 자기가 사랑하는 전우들과 어떻게 헤여지겠는지, 영웅전사들이 불속에서 목숨으로 지켜낸 구호나무들과 그들의 분묘가 있는 부대뒤산을 돌아보며 갈 때 꽤 자신을 지탱하고 걸어내겠는지 하는것만이 걱정스러울뿐이였다.

영은이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 창밖을 내다보며 조심조심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제는 화상자리가 다 아물었지만 아직도 손바닥이 가면 짜릿짜릿한 아픔이 느껴지는 얼굴이였다.

거울은 보기조차 싫어 보려고도 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얼굴부위를 더듬어보면서 영은이는 이런 얼굴을 해가지고 고향집마당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어떻게 나를 맞아줄가,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거야 하고 생각하였다.

불속에서 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영은이가 병원에서 의식을 차렸을 때 그는 침대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눈굽을 적시는것을 보았다.

영은이는 그것이 자기가 기적적으로 살아난것을 두고 기뻐서 우는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만약 그때 그들의 눈물속에 얼굴에 화상을 심하게 입은 꽃같은 처녀의 장래에 대한 걱정의 뜻이 더 진하게 섞여있었다는것을 알았더라면 결코 웃음을 지을수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여 밥맛도 돌고 산보삼아 침대에서 일어나 입원실을 천천히 거닐 때에 이르러서도 담당의사는 절대로 세면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런 주의를 상기시키는데서는 늘 호위병처럼 따라다니는 깔끔한 간호원처녀가 더했다.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는것을 알면서도 영은이는 한동안 자기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얼굴을 조심조심 쓸어보는 손바닥의 감각으로 자기가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는것을 짐작할뿐이였다.

영은이는 거울을 보고싶었다.

하지만 자기가 입원한 호실에는 웬일인지 벽거울이 없었다.

후에 영은이는 입원실에 걸려있던 벽거울을 누군가 슬그머니 치워버렸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출입문옆에 아직 퇴색되지 않은 닭알형의 둥근 벽거울자리가 또렷이 나있었기때문이였다.

(나때문에 저 거울을 치우지 않았을가.) 이런 생각이 미치자 영은이는 속이 덜컥하였다.

얼굴이 얼마나 험상해지였으면…

그래서 거울을 더 보고싶었다.

영은이는 간호원처녀에게 자기 군복의 웃주머니에 있는 손거울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간호원은 군복은 형체가 없이 타버리고 타다 남은 군복은 부대에서 건사했다고 덧붙여 말해주었다.

그러면 간호원동무의 손거울이라도 좀 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러마 하고서도 이 핑게, 저 핑게를 대며 좀처럼 들어줄 눈치가 아니였다.

그래 어느 하루 조용한 틈을 타서 간호원의 세면도구주머니옆에 있는 손거울을 찾아쥐였다.

이때 뒤에서 《아니, 거울에 왜 손을 대는가요?》하는 야무진 소리가 울리면서 간호원처녀가 덮치듯 손거울을 앗았다.

뒤돌아보니 성을 내고있는줄 알았던 간호원처녀가 거울을 쥔 손을 등뒤로 감추고 울고있었다.

이런 날이 올가봐 여태껏 영은이에게 《랭기》를 풍겨온 간호원처녀는 도리질을 하며 그냥 뒤걸음만 치였다.

《아무래도 보게 될 제 얼굴인데 좀 줘요, 간호원동무.》하고 영은이는 사정하였다.

《싫어요.》그러면서 어린 간호원처녀는 몸을 흔들면서 얼굴을 싸쥐고 섧게 울었다.

《동무의 마음을 알아요. 어서 좀 줘요.》

처녀의 꼭 감아쥔 손을 풀고 거울을 든 영은이는 돌아서서 떨리는 마음으로 거울을 눈앞에 가져다대였다.

그러자 거울속에서는 분홍색과 흰색으로 얼굴이 무섭게 이지러진 녀자가 《넌 누구냐?》하듯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아!》

숨이 넘어가는 소리인지 울부짖음인지 모를 가슴섬찍한 웨침과 함께 영은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하지만 영은이가 자기의 그런 얼굴을 두고 운것은 꼭 하루낮, 하루밤뿐이였다.

그래서 운다면 자기와 함께 우리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영웅적으로 희생된 17명 전우들에게 죄가 된다는 의식이 들었기때문이였다.

그 다음부터 영은이는 갑작스러울 정도로 쾌활하고 웃기 잘하는 처녀로 변하였다.

원래 말이 적고 조용하던 그가 회복기에 들어설 무렵에는 노래 잘하고 시를 잘 읊어 입원한 환자들에게서 《우리 꾀꼴새》, 《우리 선동원》으로 불리웠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영은이가 있는 병원으로 해군군관이 찾아왔다.

《영은동지!》

여느때없이 명랑하게 느껴지는 간호원처녀의 부름소리에 뒤돌아보니 얼굴에 홍조를 띠운 간호원처녀의 뒤로 끼끗하고 억세게 보이는 해군중위가 따라서고있었다.

중위는 해당화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간호원처녀와 웃으면서 영은이를 향해 약간 머리를 숙이는것으로 첫 인사를 하였다.

영은이가 병원에서 의식을 차렸을 때 침대를 둘러싸고 눈굽을 적시던 사람들중에서 유독 자기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던 군관이였다.

깊이 알고있지는 못하지만 한두번 인상적인 인연으로 해서 영은이는 그를 기억하고있었다.

어느때인가 영은이는 훈련에서 《우》를 맞은 그들을 축하해주러 부대에 녀동무들과 찾아갔던적이 있었다.

그때 영은이는 노래를 불렀는데 손풍금을 타면서 부른 노래가 예술영화 《월미도》의 주제가 《나는 알았네》였다.

원래 영은이는 목청도 좋아서 노래를 잘 불렀는데 그날은 어떻게 된셈인지 자기 생각에도 노래를 더 잘 부른것 같았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싱싱하게 핀 해당화 한송이를 영은이의 손에 쥐여주며 《좋은 노래를 불러주어 정말 고맙소. 특히 내가 더 기뻐했다는걸 알아주오.》하더니 영은이만 듣게끔 《그러구보니 동문 꼭 〈월미도〉의 영옥이처럼 생겼구만.

이젠 제대될 나이가 되지 않았소?》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후에 영은이는 자기가 받은 그 해당화가 그 군관이 품들여 가꾼 꽃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거친 바다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꽃을 가꾸는 사람, 이런 사람은 싸움도 잘할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기억을 하고있던 군관이였다.

《영은동무, 이렇게 몸이 회복된것을 축하합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누군지 알아보겠습니까?》하며 해군중위는 그때처럼 영은이에게 해당화를 안겨주었다.

《알고있습니다, 중위동지.》

해당화빛으로 붉어지는 얼굴을 숙이며 영은이는 부끄러움에 젖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금방 꺾어가지고온 맵쌀한 해당화의 독특한 향기가 영은이의 페부로 흘러들어왔다.

《알고있다니 고맙습니다. 그래 퇴원은 언제합니까?》

《제대명령을 기다리고있습니다.》

《제대되면 고향으로 가자고 합니까?》

《그래야 할것 같습니다.》

《고향으로요?! 동무가 가면 동무의 노래도 가겠군요.》

군관은 서운한듯 후― 하고 긴숨을 내쉬였다.

《난 동무가 어제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노래와 함께 우리 해병들의 사랑을 받는 군항의 꽃으로 여기에 남아있어주었으면 합니다.》

군관은 그 말을 퍽 힘들게 하였다.

영은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로 되물었다.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지…》

《뭐 에둘러서 뭘하겠습니까. 동무가 나의 해당화가 되여주길 바라서지요. 일생의 길동무로 말입니다.》 이번에는 그가 웃었다.

《이건 즉흥이 아닙니다. 어머님과도 이미 토론이 있었습니다.》

군관은 숨이 차나는지 다시한번 심호흡을 하였다.

《영은동무, 너무 당황해하지 마시오. 오늘은 내 말을 듣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생문제인데 이 자리에서 당장 동무의 대답을 듣자고 찾아온건 아니고…

이를테면 동무한테 생각할 시간을 주겠습니다.

언제 퇴원하는지 퇴원한다는 소식만 알려주면 그때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걸 알려줄수 있습니까?》

영은이는 속이 후둑후둑 떨리였다.

꿈이 아닌가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더 서있을수가 없었다.

즉흥도 아니고 언제 벌써 어머니와도 토론이 있었다는 그 말이 영은이를 숨가쁘게 만들었다.

분명 진심의 소리여서 더 그러하였다.

영은이는 이 자리를 어서빨리 피해버리고싶었다.

그러자면 성미가 불같고 열정적인 사내로 보이는 이 군관이 빨리 물러가게 하는것이여서 영은이는 제대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알려주겠다고 순순히 대답하였다.

《그럼 그 말을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중위는 깍듯이 경례를 붙이고나서 몇걸음 걷더니 한번 뒤돌아서서 손을 저어주고는 영은이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그가 왔다간지 꼭 한주일이 되던 날 저녁에 영은이는 제대명령을 받게 되였다.

그날밤을 뜬눈으로 밝히면서 새 군복을 다려갈 때 영은이는 무슨 생각을 하였던가.

자기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울며 웃으며 뒤돌아보았고 이제 살아나가야 할 앞날에 대하여, 자꾸 어둡게 그려지는 앞날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아마 이날 밤에 일생을 두고 해야 할 생각 다 했으리라.

간호원처녀는 형체없이 거의다 탄 군복의 웃주머니에서 꺼내 건사했다는 영은이의 손거울도 가져다주었다.

테두리는 군데군데 불에 녹아 부실부실 떨어졌지만 거울알만은 이전처럼 맑고 깨끗하였다.

거울뒤등에는 《나도 〈월미도〉의 영옥이처럼 살리라》하는 글이 새겨진 그의 사진도 그대로 있었다.

해병들앞에서 영은이가 수집음을 담은 얼굴로 손풍금을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였다.

영은이는 그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누구도 깨여나지 않은 이른새벽에 그 거울을 품고 바다로 나왔다.

비가 오면서 검은 회색으로 변한 바다가 거세차게 일렁이면서 파도소리를 높여 영은이를 맞아주었다.

신발을 적실듯말듯 발치에 물결이 와닿는 곳에서 오래동안 바다를 바라보고있던 영은이는 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보지 않고 그것을 손바닥에 꼭 감싸쥐였다.

바다는 벌써 영은이의 생각을 알아보고 《그러지 마. 영은이, 그러지 마.》하고 목멘 소리로 하소하며 발치로 밀려와 설레이였다.

영은이는 그런 바다를 향해 손에 꼭 감싸쥐고있던 거울을 높이 쳐들었다.

얼굴도 마음도 비추어보면서 언제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던 거울, 바로 그런 거울을 몸에서 영원히 떼버리려고 선 이 순간에 영은이는 퇴원할 때는 꼭 알려달라고 병원에 찾아왔던 그 군관을 생각하였다.

미련을 버리자고 애를 썼지만 막상 제대명령을 받은 그날에는 어쩔수없이 온밤 영은이를 괴롭히던 그 군관이였다.

영은이는 바다를 향해 쥐고있던 거울을 힘껏 내던지였다.

이전날 자기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있는 거울과 함께 그 군관에 대한 애모쁜 미련마저도 바다속에 던져버린것이였다.

《바다야, 나도 한때는 〈월미도〉의 영옥이처럼 예쁜 처녀였단다. 그때의 모습이 그 거울속에 비껴있으니 너만은 부디 잊지 말고 깊은 가슴속에 간직해다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영은이의 두볼로 줄줄이 흘러내리였다.

사랑하는 바다와 작별을 하고 돌아서니 언제 뒤따라나왔는지 간호원처녀가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울며 서있다가 새처럼 날아들며 영은이의 목을 부둥켜안았다.

그리고는 우는 소리인지 노래하는 소리인지 영은이의 귀를 간지럽히며 속삭이였다.

《영은동지, 전에 왔다간 그 군관동지한테서 영은동지가 오늘 퇴원하지 않는가고 전화로 물어왔댔습니다.》

영은이는 가슴이 철렁하여 숨가삐 물었다.

《그래 뭐라고 대답했어요?》

《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고마워요, 간호원동무.》

영은이는 한숨을 내쉬였다.

《그랬더니 자기는 분명 오늘 저녁차로 가는줄 알고있는데 알면서도 모르는체 한다고 막 노여운 소리를 하더군요.》

영은이는 다시한번 가슴이 칼로 찔리우는듯 한 아픔을 느끼였다.

아침에 영은이를 태워가자고 승용차가 왔다.

차는 비오는 해안도로를 따라 물탕을 튕기며 달리였다.

승용차 앞좌석에는 부대 정치위원이 타고있었다.

마침 출장가는 길이라면서 가는 길에 영은이를 역에까지 태워다주마고 병원에 찾아온 정치위원이였다.

정치위원은 역으로 가기에 앞서 전우들과 인사를 할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전우들과의 작별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제대되는 영은이 자기 한사람을 위하여 군악대가 정렬하고 부대의 전체 군관들과 병사들이 엄숙히 경례를 해올 때 자기가 어떻게 영웅전사들이 받아야 할 경례를 다 받았는지 자기로서도 알수가 없었다.

군악은 영은이가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17명 영웅들의 묘앞에서도 울리였다.

(동지들, 잘있어요. 영은이는 갑니다. 어데가나 이 무덕봉을, 동지들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전우들도 영은이도 애써 울음을 참았다.

운것은 간호원처녀 혼자뿐이였다.

그는 영은이의 손목을 잡고 놓지 못하며 몹시 울었다.

그것이 영은이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차는 자그마한 간이역이 저앞에 바라다보이는 큰길옆에서 멎었다.

차에서 내린 정치위원이 영은이의 배낭을 받아 내려주면서 《영은동무, 렬차를 타고 떠나는것까지 보고갔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누만.

동무한테 차표를 사주겠다고 누가 나와있겠으니 기다림칸에 앉아있으면 될거요. 잘 가시오. 다시 만나게 되길 바라오.》하며 알수 없는 웃음을 환히 지으면서 영은이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었다.

역사앞에 이른 영은이는 사람들이 있는 기다림칸으로 들어가고싶지 않아 한동안 선자리에서 서성거리였다.

역사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자기를 자꾸 쳐다볼것 같아 영은이는 역직원의 사택인듯싶은 단층기와집의 처마아래서 비를 그었다.

그러면서 영은이는 자기의 차표때문에 나온 사람이 자기를 찾으리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있었다.

역으로 들어오는 차가 역에 기적을 울렸을 때에야 영은이는 화들짝 놀라 서둘러 배낭을 메였다.

이때 누군가가 물탕을 튕기며 이쪽으로 뛰여오는 사람이 있었다.

《영은동무 아니요?》

《?》

《아니, 기다림칸에 앉아 기다리라는 말을 듣지 못했소?》

역증이 내밴 목소리였다.

《이런 외딴구석에 와있으면 동물 어떻게 찾으란 말이요? 동무를 찾느라고 이렇게 다림발을 세워입은 바지가 다 젖고 군화는 죽탕이 되였소. 젠장, 해군군관의 꼴이 이게 뭔가 말이요.》

성이 나서 달려온 사람은 덮치듯 영은이의 배낭을 거머쥐였다.

《뜁시다. 차가 다 들어왔소. 정차시간은 1분이요.》

어둑어둑한 때여서 얼굴은 딱히 알수 없었다.

허나 목소리로 보아 그가 해군군관이라는 짐작이 가면서 발이 어디 놓이는지 영은이는 허둥거리였다.

이전날 자기의 아름다움이 간직된 거울과 함께 기억에서 영영 지워버리려고 했던 군관이 이렇게 자기의 차표를 사들고있을줄이야.

그가 날쌔게 승강대에 올라 짐을 내려놓고서 맨몸으로도 차에 오르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영은이를 안아올리다싶이 하여 이끌어올리자마자 기차는 떠나기 시작하였다.

《덜커덩.》하는 소리에 놀란 영은이는 《중위동지, 어서 내리세요.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하고 다급히 부르짖었다.

덤벼치는 영은이를 보면서 방금전까지 그렇게 역증을 내던 중위가 얼굴에 흐르는 비물을 훔치며 싱긋 웃었다.

《바빠하지 않아도 됩니다. 영은동무, 나도 이 차를 타고 출장을 가는 길이니까요. 동무는 언제 떠나는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연하게도 우린 이렇게 길동무가 되였습니다.》

그리고는 영은이를 지정된 침대칸으로 이끌었다.

《편히 쉬시오, 영은동무.》

《편히 쉬세요, 중위동지.》

이 짧은 인사가 오간 후 몇시간동안 두사람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밖에서는 계속 비가 오는지 차창으로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였다.

중위는 건강한 사내가 그러하듯 눕자마자 인차 잠이 든것 같았다.

영은이 역시 잠에 든척 꼼짝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정말 우연일가? 혹시… 아니야, 저렇게 태평스럽게 잠든걸 보면.)

하면서도 영은이의 심장은 진정을 모르고 그냥 쿵쿵 뛰였다.

(이제 뭐라고 말을 시키면 어쩌나.)

영은이는 잠에 든것처럼 모포를 바싹 끌어당기였다.

몇시나 되였을가.

고향친구를 만났다고 법석 떠들던 옆의 손님들이 우르르 식당칸으로 밀려가자 아래단에서 자고있던 중위가 일어나 차창을 반쯤 올려미는 기척이 났다.

차창이 열리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들리지 않던 비소리가 차소리와 섞여 들리였다.

영은이는 이제 중위가 무슨 말을 할것만 같았다.

그러나 중위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차는 경사받이를 올라가는지 무척 굼뜨게 움직이였다.

그것이 두사람사이에 흐르는 조마조마한 감정을 더 무겁게 해주는것 같았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침묵을 깨버릴듯 드디여 중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잠들었습니까, 영은동무.》

옆사람의 잠을 깨울세라 중위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영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쉬는것 같지 않는데 저 승강대쪽에 나가 좀 만날수 없겠습니까.》 영은이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옆손님들에게 방해가 될것 같은 미안한 생각으로 그를 따라 승강대쪽으로 나갔다. 달리는 승강대 차창곁에 두사람이 마주섰다.

《대답하기 싫으면 그저 제 말을 들어만 주시오. 난 지금 휴가를 받고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장가를 들고 오라는 부대장의 명령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영은동무의 퇴원날자와 맞춘것입니다, 영은동무!》

영은이의 가슴은 또다시 화들화들 떨려나기 시작하였다.

보아하니 중위는 기어이 자기의 대답을 들을 잡도리인데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영은이는 떨리는 마음을 랭정하게 다잡으면서 말을 뗐다.

《고맙습니다, 군관동지. 저같은 처녀가 동지와 같은 남자의 청혼을 받는다는것자체가 너무나도 과분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여서 대답을 드리기가 힘들구만요.… 군관동지, 군관동지도 알고계시겠지만 열흘 고운 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지개도 15분만 지나면 누구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구요.

하물며 저같은 녀자가…》

영은이는 숨이 칵칵 막혀 인차 말을 잇지 못하였다.

《생활은 의리와 정의감, 리성 하나로만 흐르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처음처럼 심장이 막 울렁거리지 않고 말을 하기가 퍽 수월하였다.

군관은 침착하게 말하였다.

《영은동무의 말이 옳습니다. 나도 청년이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동무는 인간생활이 의리와 정의감 하나로만 흐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나는 의견을 좀 달리합니다.》

군관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의리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시대가 바라는 일이라면 자기를 깡그리 바치는것이 이 선군시대 생활의 흐름이 아닙니까?

영은동무, 내가 잘 알고있는 한 영예군인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은 락동강전투에서 한다리를 잃은 전상자이고 안해는 그 부상병을 불속에서 업어내여 후퇴의 몇천리길을 같이 걸으며 간호해준 간호원입니다. 나는 한 녀성이 한 전상자에게 바치는 뜨거운 지성과 사랑을 가슴속에 늘 느끼고 자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부부가 몇년전에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이고 지금도 농장원들의 일손을 돕느라 밭에서 김을 매면서 이제나저제나 나와 영은동무가 집문턱을 넘어서기를 기다리고계시는 나의 어머니이기때문입니다.

동무의 말대로 나는 병원에서 동무를 만나고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과연 영은이라는 한 처녀를 일생 변함없이 사랑해줄수 있겠는가고 자신을 검토해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동요도 했고 고민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기억속에는 늘 갑판우에서 노래를 부르던 때의 그 아름다운 영은이 모습이 꽉 차있었는데 너무도 달라진 동무의 모습이 나를 괴롭히였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각에 와서 나는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토록 사랑해주었듯이 나도 동무를 끝까지 사랑할수 있다는 자신심을 가졌습니다. 그 자신심은 동지를 위해서라면 자기의 피를 바치고 목숨까지 바친 우리의 혁명선배들 그리고 꽃같은 처녀들이 영예군인들에게 자기의 일생을 바치는 선군의 이 시대가 준 감정입니다.》

영은이는 울었다.

화상을 당한 자기의 얼굴을 거울속에서 처음 보던 날 하루낮, 하루밤 울고서는 기어코 다시는 울지 않으려고 속다짐하였던 영은이가 중위의 그 진정앞에서는 그만 자기를 이겨내지 못한것이였다.

그런 영은이의 어깨를 가볍게 그러안으며 중위는 《영은이, 누가 불속에서 동무를 안아내왔는지 알아? 나요. 처음엔 동무라는걸 몰랐지. 또 다른 전사들처럼 희생된줄만 알았소. 그래 이게 연분이 아니란 말이요?》하며 영은이의 얼굴에 더운 입김을 확 뿜었다.

《…사고현장에 다달았을 때는 벌써 우리의 영웅전사들이 구호나무를 지켜내고 희생된 뒤였소.

우린 그 희생된 전사들을 한사람, 한사람 조심히 안아내와 축축한 땅우에 나란히 눕히였소.

그때 동무는 두손을 가슴앞으로 모아잡은채 몸을 옹송그리고 굳어져있었는데 팔을 편안하게 풀어주자고 하니 어디 풀수가 있어야지.

힘을 주면 뼈마디가 상할것 같아 여럿이 달라붙어 조심조심 풀어주느라 하는데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리는게 아니겠소. 〈살았다.〉하고 웨치며 몇사람이 동시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동무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였소.

그렇소, 동무는 죽지 않았던거요.

두손을 꽉 잡은채로 가드라진 손가락은 병원에 가서야 풀수가 있었소.

그 손안에 무엇이 들어있은지 아오?》

중위는 격해났는지 말끝을 흐리며 영은이의 가슴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휘장을 우러렀다.

《불속에 쓰러진 전사들을 안아내오면서도 눈물을 참고참던 사나이들이 동무가 결사의 의지로 지켜낸 그 초상휘장을 우러르면서는 그만…

영은이, 영은이는 그런 처녀지?

그래서 내가 반한거요.》하며 중위는 영은이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두사람은 오래도록 진정하지 못하였다.

 

어느날 영은이는 후방과에서 실어다준 탄을 들이고있었다.

여느때 같으면 영은이를 도와 팔을 걷고나섰을 남편이 그날은 웬일인지 도와줄 생각도 안하고 탐스러운 꽃송이가 웃고있는 꽃밭에서 자기를 잊은듯 앉아있었다.

그것이 영은이의 마음을 흐리게 만들었다.

남편은 내가 점점 보기 싫어지는 모양이야. 그저 꽃, 꽃…

아름다운것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같은 녀자와 함께 살자니 오죽 괴로울가.

영은이가 땔감을 거의다 날라들였을 때에야 남편이 미안해하며 영은이의 손에서 마지막땔감을 앗아들었다.

《아니, 울었소?》

남편이 영은이의 눈굽에서 눈물자리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 다음에는 한쪽눈을 찡긋해보이며 웃었다.

《여보, 래년에는 우리 여기에다 꽃을 심지 말고 부루나 쑥갓 같은 남새를 심읍시다.》

《그건 왜요?》

《당신이 꽃한테 시샘을 하는것 같아서 말이요.》

어쩌면 자기의 속생각을 이렇게도 신통하게 알아맞출가.

영은이는 울던 사람같지 않게 삐주름히 웃었다.

《옳소. 그렇게 늘 웃으란 말이요. 언젠가 난 당신이 어떻게 사람들앞에 나와서 강의를 하나 봤댔는데 확실히 어제날처럼 밝은 기색이 아니였소.

강사동지, 그러면 되겠습니까?》

영은은 어줍게 웃을뿐 말이 없었다.

《참, 래일모레가 전승절이지? 거 새로 오신 부대장동지가 체육에도 예술에도 여간만 밝지 않은것 같애. 이번엔 체육경기도 그렇고 군관가족들의 야유회두 멋있게 조직할것 같은데 당신도 미리 준비를 잘해두어야 하겠소.

못할게 뭐요? 나두 전번처럼 빠질것 같지도 못한데.》

남편의 우려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남편은 어쩌다 있게 되는 군관가족들의 야유회때마다 직일을 핑게로 늘쌍 빠지군 하였다.

한것은 사람들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안해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싶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새 부대장이 처음으로 와서 조직하는 체육오락사업에 빠질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의 모습으로 남편을 따라설수도 없는 영은이였다.

영은이의 마음은 또다시 어두워지였다.

그런데 명절 당일날에 와서 남편은 도무지 부대로 나갈 생각이 아닌것 같았다.

이웃집에서도 벌써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부대운동장으로 나가기 시작하건만 남편은 꽃밭에서 그냥 김매기를 하고있었다.

영은이는 속이 바글바글 타들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됐는데 왜 그러고만 있는가고 물어볼수도 없었다.

필경 어제 저녁에 자기는 암만 해도 야유회에 못 나가겠다고, 당신이나 잘 놀고 오라고 말한것때문에 저러고있겠는데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자니 그렇다고 응할수도 없었다.

영은이는 이런 날이 올 때마다 제일 괴로왔다.

영은이는 남편이 언제 손을 털고 일어날가 하고 부엌문가에 기대여 남편의 실팍한 잔등을 눈이 아프게 보고만 있었다.

남편이 아마 영은이의 그런 눈길을 느낀것 같았다.

그러던 그가 손을 털고 집안에 들어가 영은이에게 결혼 첫날에 입었던 치마저고리와 크림곽을 안겨주며 《우리도 빨리 가기요.》하더니 강다짐으로 영은이를 잡아이끌었다.

녀자로서야 남편의 그 말이 얼마나 고마왔으랴.

그렇게 되여 영은이는 처음으로 야유회에 참가하게 되였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될 때 오락회책임자가 이번에는 참모동지 아주머니의 노래를 듣는게 어떤가고 제기하고는 저 먼저 박수를 쳐댔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오르는 속에 용모가 단정한 한 녀인이 수집게 일어서더니 바다에 대한 노래를 조용히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영은이가 가만히 여겨보니 신통히도 젊은 부부를 불러내는데 이러다가는 자기도 짚이울것 같았다.

1절이 끝나고 2절이 시작될 때 영은이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 나왔다.

노래가 다 끝났는지 박수소리가 울려나오고 또 누군가의 안해이름을 부르는것 같았다.

영은이는 그게 자기 이름인듯싶어 부리나케 집을 향해 뛰여갔다.

그런데 그것이 남편을 그렇게도 노엽힐줄이야…

《말해보오. 마지막순서로 숱한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데 그렇게 달아나버리면 난 어떻게 하란 말이요.

당신은 나때문에 그러지? 병사들이 당신을 보고싶어하고 당신의 노래를 듣구싶어하는데 그걸 피하니 어디 된 일이요? 왜 그들앞에 나서지 못해? 그들이 당신을 내세워주고싶어하고 자랑하고싶어하고 당신의 모습에서 무덕봉영웅들의 얼굴을 찾아보려고 그러는데 왜 그들과 심장을 합치지 못하는가 말이요. 우리는 그렇게 싸웠고 영웅들은 무덕봉과 더불어 오늘도 살아있다고, 살아서 이렇게 동무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고있다고 왜 한마디도 못하는가. 당신의 그런 행동이 우리 무덕봉영웅들앞에 죄가 되는줄은 왜 모르오?

도대체 언제 어디서나 우리 무덕봉의 영웅들처럼, 〈월미도〉의 영옥이처럼 살겠다고 결심한 녀자가 맞긴 맞소, 응? 영은이.》

가슴이 답답해나는지 남편은 목단추를 끄르며 창문을 열어놓았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보슬비가 축축히 대지를 적시고있었다.

《영은이, 생각나? 우리가 렬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던 그날에도 이렇게 비가 내렸지.

그때 난 내가 봄비가 되여 당신의 가슴속에 행복의 꽃을 활짝 피우려고 마음다지였댔소.

그래서 이날 이때껏 그 행복의 꽃 한송이, 한송이 피우자고 저 마당에 꽃을 심고 가꿔온 내 마음을 왜 그리도 몰라주오.

그래서 난 꽃을 사랑하는거요.

꽃들은 피여 자기의 아름다움을 보라고 키돋움을 하는데 선군시대의 꽃인 나의 안해는 왜 늘 머리를 숙이고 다닐가.

이런 생각이 이 남편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당신은 알기나 하오. 당신은 아름다운 꽃이요. 그 향기에 취해 나도 영은이를 사랑한게 그래 아니란 말이요? 그런데 영은인 그걸 모른단 말이요.》

《여보.…》

영은이는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뜨거운것을 터놓고싶었으나 목구멍이 꽉 메여와 한마디도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저 눈물만 비오듯 쏟아지였다.

그의 사랑은 얼굴이 상해 마음쓰는 한 녀성에 대한 인간동정의 미덕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였다.

황홀히도 쳐다보이는 그이야말로 시대의 아름다운 꽃이였다.

그는 자신뿐아니라 나도 그렇게 아름다와지기를 바래 꽃을 심고 가꾸고 꽃을 사랑하는것이다. 해당화는 그의 마음, 그의 넋이였다.

영은이는 사랑하는 남편의 어깨며 잔등을 힘주어 그러안으며 얼굴을 묻었다.

《용서하세요. 전 그저 당신이… 당신이…》

영은이는 남편의 넓은 가슴에 안기여 소리없이 울었다.

그렇게 강인하고 억세고 락천적이던 남편의 눈시울도 불깃해올랐다.

《아니, 내 사랑이 부족했어. 내가 잘못했소.

당신을 괴롭힌 내가 참 미욱한 놈이지?》하며 남편은 한생을 그렇게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할 안해를 다정히 애무해주었다.

그날 영은이는 남편에게 《여보, 인젠 당신이 땅이 되세요. 이제부터는 내가 봄비로 되여 당신의 가슴을 적셔주겠어요.》하였다.

그래서 영은이는 아이를 기다리였다.

몸안에서 어린 생명의 태동을 느낄 때마다 영은이는 그 애가 딸이기만을 바라였다.

딸이 영은이, 바로 자기로 다시 태여나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에게 그렇게 애써도 줄수가 없는 그런 웃음을, 그런 기쁨을 남편의 가슴이 벅차도록 그 애가 대신해줄 날이 오기만을 바란것이였다.

눈도 입술도 상큼한 코도 자기를 꼭 닮은 딸, 목청도 자기를 닮아 노래 잘하는 꾀꼴새로 태여나 하지 못한 산보도, 약혼사진, 결혼사진도 다시 찍고싶은 마음이였다.

영은이가 꿈에서까지 바라고 바라던대로 태여난 아이는 어머니를 신통히 닮은 어여쁜 처녀애였다.

그 애가 어느새 자라 아버지의 얼굴을 가려보고 방긋방긋 웃던 날, 걸음마를 배워 처음으로 퇴근해 들어오는 아버지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들던 날 저녁 영은이는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밝게 웃었다.

아! 행복이여, 사랑이여!

나에게도 과연 이런 날이 기다리고있었단 말입니까.

이제는 남편이 바다가로 산보를 나가자 하여도 두렵지 않을것 같았다.

부대의 군인들과 군관가족들이 야유회를 가자고 하여도 이제는 남편의 곁에 자기를 대신해줄 영은이, 처녀시절의 영은이가 서있는것이기에.

내 이제 무엇을 더 바라랴.

이제 비로소 우리의 결혼생활이 새롭게 활기를 띠고 시작되는것이 아닐가 하고 영은이는 생각하였다.

 

×

 

비행기는 ○○○항공역을 떠났다.

구름층보다 더 높은 행복의 하늘을 날으면서 자기가 받아안은 크나큰 사랑을 되새겨보는 영은이의 눈앞에는 부대를 찾아오시였던 아버지장군님의 환하신 영상이 그리웁게 안겨왔다.

그날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수십그루의 구호나무를 위하여 자기 몸을 서슴없이 내댄 전사들의 영웅적소행을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거기에서 살아남은 영은이와 다른 두사람을 몸가까이에 불러주시고 생활에서 제기되는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관심해주시였다.

이제는 조선인민군 군관인 남편도 있고 아이까지 있어 부러운것이 없다는 영은이의 대답을 들으신 아버지장군님께서는 화상자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영은이의 얼굴을 아프신 눈길로 바라보시면서 제일 곱게, 떳떳하게 내세워주어야 할 동무들이 이렇게 상했다고 하시며 우리 천만금을 들여서라도 본래의 얼굴을 되찾아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사랑하는 딸자식을 위해주시는 다함없는 그 사랑이 있어 영은이가 오늘 다른 나라의 큰 병원에서 본래의 제 얼굴모습을 되찾아가지고 그리운 남편과 딸애가 기다리고있는 조국으로 돌아오는것이다.

비행장에는 영은이의 일가친척들과 부대의 장령들, 군관들, 여러 기관의 일군들이 나와있었다.

본래의 얼굴이지만 더 고와진 모습으로 영은이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마중나왔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몰려왔다.

그 사람들에게 정겹게 웃어 인사를 보내면서 영은이는 거기에 섞여있을 남편의 모습을 찾았다.

그러자 진달래빛솜옷을 입힌 딸애를 안은 남편이 앞을 겹겹이 막아선 사람들속을 뚫으며 달려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딸애는 싱싱한 해당화꽃송이를 안고있었다.

드디여 영은이의 앞에 마주서게 되였을 때 남편은 안고있던 딸애를 꽃다발처럼 영은이의 품에 안겨주었다.

조국을 떠나 수개월, 딸애와 떨어져 몇백밤, 얼마나 그리웠던 내 사랑인가.

하지만 엄마와 떨어질 때 안 떨어지겠다고 울며 앙탈을 쓰던 딸애가 늘 찾던 엄마가 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품에 안겨서도 울상이 되여 두릿두릿 아버지의 얼굴만을 찾는다.

화상당한 엄마의 얼굴만을 기억하고있는 딸.

이렇게 환한 미모의 녀성이 자기의 엄마라는것을 그 어린것이 꿈에나 생각했으랴.

《향이야, 엄마다. 밤마다 네가 울며 찾던 엄마야. 어서 그 꽃을 드려라, 어서. 엄마한테 주겠다고 가꾼 그 꽃을…》

뒤말을 채 잇지 못하는 남편의 목이 멘 소리가 떠들썩한 환성을 단번에 눌러버리였다.

그래도 믿지 못하여 아버지를 찾는지, 옛모습의 엄마를 찾는지 해당화꽃송이를 꼭 쥐고 두릿두릿거리는 딸애의 거동이 영은이를 울리고 남편을 울리고 마중나온 사람들을 울리였다.

《향이야, 엄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엄마를 이렇게…》

《여보, 영은이.》

모인 사람들의 가슴을 쩡― 하게 하는 목멘 소리와 함께 남편의 억센 팔이 딸애를 안은 영은이를 한가슴에 그러안았다.

강철고리처럼 모녀를 꽉 그러안고서 남편은 사나이의 눈물을 흘리였다.

이윽해서야 남편은 진정이 되여 이렇게 말을 하였다.

《여보, 위대한 장군님께서 완치된 당신의 사진을 보시고 만족해하시면서 우리의 결혼사진을 다시 찍어주자고 말씀하시였소.

그들이 사진 하나 변변히 찍었겠는가고 하시면서…

영은이, 우리의 신혼생활이 이제부터 시작되는가 보오.》

그립던 집에 들어서자 영은이의 첫눈에 안겨온것은 방안이 환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테두리가 금빛인 크고 품위가 있어보이는 경대였다.

《경대!》

영은이는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조심(마치 자기가 덤벼치면 경대가 놀라 달아나기라도 할것 같아) 경대앞의 의자에 가앉았다.

한점의 티나 흠집도 없이 해말쑥한 얼굴, 맑은 눈물이 가득찬 검은 눈, 해당화꽃잎같은 입술, 반듯한 목부위…

경대에서 마주보이는 얼굴이 자기의 얼굴이 아닌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영은이는 귀밑머리를 살며시 쓸어올렸다.

그러자 영은이의 량볼을 뜨겁게 적셔주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아! 내가 이렇게 경대앞에 앉아볼 날이 오리라고 생각이나 했던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러면서 영은이는 군부대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바다에 던져버렸던 손거울을 생각하였다.

회색으로 흐렸던 하늘, 바다바람에 안개처럼 흩날리던 비방울.

파도소리는 또 얼마나 구슬피 들렸던가.

이제는 잊어버려도 될 그날의 일이 어쩔수없이 다시 떠오르며 영은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어놓았다.

《영은이, 사진을 찍자고 사람들이 아까부터 상까지 차려놓고 기다리는데 무얼 하고있소?

치장은 해서 뭘하오, 이렇게 고운데.》

거울속에 벙긋이 웃음짓는 남편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손으로는 영은이의 얼굴을 정겹게 감싸쥐며…

그 순간에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방안이 눈부신 흰빛으로 밝아지였다.

깊은 바다속에서 금방 떠오른 태양이 아직 포옹을 풀지 못하고있는 젊은 부부의 집 창문을 기웃해본것이였다.

만경창파속에 영은이가 모래알처럼 던져버렸던 손바닥만 한 거울대신 은혜롭고 보배로운 해빛으로 닦고 또 쓰다듬어 백, 천으로 더 커진 거울앞에다 자기들을 내세워준 사랑의 태양이 빛나는 내 조국은 한없이 귀중한 어버이품이였다.

 

(김형직사범대학 작가양성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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