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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97(2008)년 제12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철 옥
1
량쪽에 하나씩 세운 홰불이 중대부앞마당을 환히 비치고있었다. 그 불빛을 등지고선 중대장이 소대별로 줄지어선 대원들을 묵묵히 바라본다. 우묵 패인 골짜기아래로 연연히 뻗어내려간 언덕의 자그마한 공지에 둘러앉은 여러채의 가설막들에서 《중대 모엿!》구령에 의해 달려나온 대원들이였다. 고향의 전기화를 위한 발전소건설장에 탄원해온 그들은 이름도, 생김새도 서로 다르고 옷차림도 각이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짝이는 눈들에서는 위훈에 대한 갈망이 숨김없이 뿜어져나오고있었다. 모여선 대원들은 중대장의 무표정한 기색을 흘끔흘끔 살피며 머리를 기웃거린다. 영문을 알수 없어 서로 돌아보며 수군거린다. 《조용하시오.》 웅글진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째며 날아왔다. 대오는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의문과 호기심이 뒤엉킨 수십쌍의 눈길들이 중대장에게 쏠렸다. 먹으로 듬뿍 찍어놓은듯 한 숱진 눈섭, 꾹 다물린 두툼한 입술, 후리후리한 키, 발치에 떨어뜨린 무거운 시선… 중대장의 검실검실한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사위는 정적속에 잠겼다. 어느 구석에선가 이따금 찌르륵거리는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뿌직뿌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은백색불빛이 대원들의 얼굴을 불깃하게 물들인다. 이윽고 중대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중대장의 저력있는 음성이 대기를 헤가른다. 《래일부터 우리는 우리의 고향마을을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기 위한 발전소건설전투를 진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머리를 떼고난 중대장은 중대가 수행해야 할 1단계전투목표와 그 과업수행을 위한 문제들을 강조하고나서 모임을 끝냈다. 이윽고 소대별로 병실로 향해가는 대원들의 신심에 넘친 모습을 바라보는 중대장의 얼굴에 한줄기 어둠이 드리웠다. 그것은 바로 취사원문제였다. 고향땅을 꽃피우는 길에 그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려 위훈을 세움으로써 고향앞에 떳떳한 사람이 되겠다는 그들의 열의를 그 어떤 명령으로 찬물을 끼얹을수는 없었던것이다. 중대장은 중대부안에 들어섰다. 이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중대장동지, 대원 김춘미 만날수 있습니까?》 중대장은 말없이 돌아섰다. 갓 중학교를 졸업했을 애티나는 처녀가 앞에 서있었다. 중대장의 입귀가 벙글서해졌다. 《그래 무슨 일이요?》 《중대장동지, 저… 저에게 취사원일을 맡겨주면 안되겠습니까?》 《동무에게?…》 중대장의 얼굴에 뜻모를 미묘한 미소가 어렸다. 《저… 언니들의 말을 들어보니 발전소건설장에서 위훈을 세우겠다고 저저마다 현장으로 나가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취사원은 누가 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중대장은 뜨거움을 꿀꺽 삼켰다. 그는 이 나어린 처녀가 한없이 돋보였다. 중대의 고충을 알아보고 솔선 맡아나서는 어린 처녀가 고맙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어린 처녀가 꽤 취사원일을 해낼수 있을가. 《그래 동문 자신있소?》 《예, 자신있습니다. 전 밥두 지을줄 알구 또 반찬두 만들줄 압니다.》 《음, 그렇다.… 좋소. 그럼 중대부에서 한번 토론해봅시다.》 《고맙습니다.》 소리없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가는 처녀를 바라보며 중대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였다. 2
네개의 통나무로 기둥을 뻗쳐놓고 비닐박막으로 하늘만 가리운 야외취사장안에 매끈하게 대패질하여 만든 널판자당반우에는 돌격대원들의 식사에 필요한 그릇들이 나란히 얹혀있었다. 그외 깨끗하게 미장질해놓은 부뚜막우에 걸려있는 두개의 큰 쇠가마, 이것이 취사원이 된 나를 처음으로 맞아준 취사장의 어설픈 전경이였다. 이런 형편에서 누구도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취사원일을 애숭이인 내가 맡아안았으니… 나는 난생 처음으로 수십여명이나 되는 큰식솔을 거느린 주부구실을 하게 된것이다. 그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루세끼 밥을 지어야 했고 세바께쯔가 실히 되는 국을 끓이고 반찬들을 만들어야 했다. 먼저 물을 길어다 두개의 가마에 쌀을 안친다. 밥을 하는 시간은 적어도 두시간은 잘 되였다. 밥은 잘못하면 선밥이 되거나 탄밥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불조절을 잘해야 한다. 그다음은 밥을 퍼내고 국을 끓인다. 국은 간을 잘 맞추어야지 자칫하면 싱거워지기도 하고 짜지기도 한다. 국을 끓여내면 반찬을 만든다. 이렇게 한끼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무려 몇시간나마 걸렸다. 그렇게 보장한 식사가 끝나면 그릇들을 씻고 취사장청소를 한다. 물론 배식당번들이 도와주지만 한숨 돌리고나면 또 다음끼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하루내껏 돌아가고나면 저녁에는 온몸이 나른해졌고 피곤이 몰려들었다. 육체적부담은 그런대로 이겨낼수 있지만 날이 갈수록 견디기 어려운것은 정신적고충이였다. 밥도 지을줄 모른다고 비웃는 남대원들에게 녀자의 자존심이 과연 어떤것인가 하는것을 보여주려고 따벌처럼 날카롭게 침을 벼리고 자진해나섰던 취사원일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따벌같던 자존심과 취사원으로 임명받을 때의 긍지와 자부심은 사라져버렸다. 대신 동무들을 대하기가 점점 두려워졌고 죄지은 사람처럼 늘 기가 죽어 중대원들의 눈치만 살피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쳐 놀라기도 했다. 어제일만 해도 그랬다. 나는 이른새벽부터 일어나 땀을 뻘뻘 흘리며 정성들여 중대의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식사준비가 끝났을 때는 먼동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그제야 허리를 가까스로 펴며 이마의 땀을 훔치는데 아침식사시간을 알리는 류창한 나팔소리가 길게 울려퍼지는것이였다. 나의 가슴은 저도 모르게 후둑후둑 높뛰기 시작했다. 식당안으로 줄레줄레 들어선 동무들이 뜨거운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밥그릇들을 마주하고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불안스레 살펴보았다. 밥이 혹시 설지나 않았는지, 국이 짜지나 않는지, 반찬이 구미에 맞겠는지 별 오만가지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가슴을 조이며 안절부절 못하고있는데 2소대의 키꺽다리 방동무 입에서 우지직하는 돌부스러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수십쌍의 휘둥그래진 눈길들이 그에게 모여들었고 오만상을 찡그린 키꺽다리 방동무의 두툼한 입술이 하 벌어진채 그대로 떡 굳어졌다. 여기저기에서 키득키득했다. 나는 가슴이 뭉청 떨어져나가는것만 같았다.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등골로 식은땀이 쭈욱 돋았다. 내가 돌을 씹은듯 입안이 얼얼해났고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본것처럼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동무들의 힐난과 조소가 뒤엉킨 눈길들이 온몸을 콕콕 찌르는것만 같았다. 나는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두눈을 꼭 감았다. 그때의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그럴수록 중학교시절 농촌지원을 할 때 한주일동안 해본 취사원일을 큰 밑천으로 생각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절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녀성분대원들이 왜 그토록 처녀의 자존심마저 집어던지며 취사원일을 못하겠다고 도리질 했는지 이제야 모든것이 깨달아졌다. 나는 멍하니 주저앉아 동무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터져오르는 언제건설장쪽을 바라보며 땅이 꺼지도록 긴 한숨을 내그었다. 취사원만 아니였더라면 나도 저들처럼 만시름을 잊고 웃고떠들며 일을 하고 또 맡겨진 과제를 넘쳐수행한 자랑을 안고 속보판에도 척 올라앉는 영예를 지니련만 스스로 자진하여 《올가미》를 쓴 격이였다. 돌격대로 떠나오던 날 멀리 동구밖까지 따라나오며 꼭 내 고향의 전기화를 위한 발전소건설장에서 위훈을 세우고 돌아오라고 손을 흔들던 다정한 이웃들과 소꿉시절동무들,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눈물속에 어려들었다. 그런데 위훈은 고사하고 이게 무슨 꼴이람. 매일매일 커가는 걱정보따리만을 한가득 걸머쥐고 남몰래 눈물짓는 나였다. 지금에 와서야 취사원이 된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후회되였다. 하지만 취사원일을 그만두자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내가 물러난다면 동무들은 나를 어떻게 볼것인가. 우쭐해나섰던 인간으로 비웃을것이고 나는 그들의 눈밖으로 밀려날것이 아닌가. 그래 울며겨자먹기로 벙어리 랭가슴앓듯 모대기는 나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늘 점심에는 반찬감과 국거리까지 떨어졌다. 세멘트를 실으러 갔던 차가 며칠 늦어지는 바람에 부식물을 미처 실어오지 못한것이다. 이제 멀건 된장국물에 밥만 댕그렇게 차려놓을 식탁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너무도 안타까와 아궁이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싸쥐였다. 그때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서둘러 물장구를 치며 왈랑절랑 그릇을 가시기 시작했다. 나의 나약한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보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누구인가가 살그머니 다가와 나의 손을 감싸쥐는것이였다. 분대장언니였다. 처녀들속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인정많은 제대군인언니였다. 나이가 제일 어린 내가 자진하여 취사원일을 맡아나섰을 때도 누구보다 기뻐했고 힘들어할세라 짬짬이 나의 일손을 도와주는 살뜰하고 다심한 언니였다. 《춘미, 너 또 울었구나.》 나의 초췌한 행색을 측은히 내려다보며 언니는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입을 옹다문채 하던 일만 계속했다. 언니만 쳐다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올것만 같았다. 언니는 상긋이 웃는다. 《호호, 춘미야. 첫술에 배가 부르겠니. 자 보렴.》 언니는 불룩한 꾸레미를 불쑥 내앞에 내놓았다. 나는 입을 짝 벌렸다. 《어마나, 이건…》 꾸레미에는 통통 여문 달래며 파란 물이 오른 미나리가 나타났다. 언니는 특별히 큰 달래를 집어들어 나의 코밑에 쑥 내밀었다. 《냄새맡아보렴. 얼마나 향긋한가. 달래볶음을 하면 별맛이야. 이 달랜 1소대의 장동무가 캐고 미나리는 녀동무들이 뜯었어. 자, 국두 끓이구 반찬두 하렴.》 나는 코마루가 시큰해났다. 쉴참의 여가시간에 한줌두줌 캐고캤을 동무들의 뜨거운 마음이 그대로 어려와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어쩐지 그 마음은 내가 여직 체험해보지 못한 가슴후덥고 웅심깊은것이였다. 3
점심식사는 여느때와 다른 달래볶음과 미나리찬으로 된 별식이였다. 나는 그릇마다 반찬을 골고루 담고있었다. 햇나물이다보니 제각기 담아주고싶었다. 그런데 한사람당 몇개씩을 쓰다보니 그릇이 모자랐다. 반찬을 다 담고나면 국은 또 어느 그릇에 담겠는가. 내가 서성거리는데 중대장이 불쑥 들어섰다. 부뚜막앞에 주런이 벌려놓은 찬그릇들과 그앞에 오도카니 서있는 나를 띠여보고는 숱진 눈섭을 찡긋했다. 《이크, 달래반찬이군. 맛 좀 볼가?》 그리고는 싱긋 웃었다. 내가 당반우에서 제꺽 저가락을 찾아들고 돌아서니 중대장은 긴 허리를 구부정하고 이미 저가락으로 달래반찬을 집어서 입가에 가져가고있었다. 《맛 좋군.》 중대장이 굽혔던 허리를 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팔소매를 걷어올렸다. 부뚜막옆에 마주 얹어놓은 소랭이를 집어들고 다문다문 담아놓은 반찬들을 걷어담는것이였다. 《?!》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그건?》 내가 기겁하여 소리치자 중대장이 《큰 식솔일땐 이렇게 하는것이 좋지.》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껄껄 웃었다. 《밥두 오곡밥이 맛있는것처럼 반찬도 이렇게 합해지면 별맛이더군.》 그 말은 나의 가슴을 콕 찔렀다. 뜻을 다는 알수 없었으나 어쩐지 새로운 의미를 띠고 마음속에 자리잡는것이였다. 그후 어느날이였다. 샘터에서 퐁퐁 솟구쳐오르는 샘물을 바께쯔에 담아들고 취사장에 들어서던 나는 두눈이 커졌다. 1소대의 남북골(이마와 뒤머리가 특별히 삐여져나왔다고 동무들이 붙여놓은 별명이였다.)인 인달이가 아궁이앞에 넙적 엎드려 입술이 삐여지게 입바람을 내불고있었던것이다. 나는 물바께쯔를 내려놓고는 그를 흘겨보았다. 《동문 일을 안해요?》 흠칫 놀란 인달이가 나를 보고는 잔뜩 붉어진 얼굴을 수그리며 어줍게 웃었다. 《땔나무가 젖었더라니… 중대장동지가 보내더구만.》 순간 코마루가 찡해옴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런속에서도 나는 까르르 웃었다. 코밑에 시꺼먼 검댕이수염이 우습강스럽게 그려져있었다. 마치 코수염을 붙인 눈사람을 방불케 하였다. 그도 곁따라 피씩 웃었다. 그 모습이 더 우스워 나는 배를 그러쥐고 돌아갔다. 처녀들처럼 수집음을 잘 타는 그였다. 《춘미동무가 웃으니 좋구만.》 인달은 씽하니 물바께쯔를 들어서 큰 버치에 좌르르 쏟아부었다. 그의 입에서 유쾌한 휘파람까지 흘러나왔다. 그를 보니 눈물이 나왔다. 어쩐지 나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익살을 부리는 그 마음이 고마워 더 그랬던것 같다. 나는 슬그머니 찬장우의 가마치를 내리워 내밀었다. 《자요.》 그러자 그는 덴겁을 했다. 《아 이러면 안되겠는데…》하면서도 솥뚜껑같은 그의 손은 어느새 가마치를 받아쥐였다. 그리고 홱 돌아서더니 《안 받겠다는데두…》하고는 바께쯔를 들고 껑충껑충 샘터쪽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또 웃었다. 그날밤 나의 일손을 도우려 취사장에 나온 분대장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도 손벽을 치며 웃는것이였다. 4
점심무렵이였다. 구름한점없이 파아란 하늘중천에 높이 떠오른 해는 불덩이마냥 이글이글 타오르고있었다. 남새밭에서 나는 호미날을 번쩍이며 김을 매고있었다. 한번씩 흙을 파헤칠 때마다 뽀얀 먼지가 폴싹폴싹 일어났다. 분대장언니와 함께 야금야금 일쿠어놓은 남새밭에는 배추며 오이, 고추등이 푸르싱싱 자라고있었다. 푸른 잎새를 한껏 펼치고 으쓱으쓱 자라는 그 모습을 볼 때면 새벽일찍 일어나 김도 매주고 벌레도 잡아주며 빈 포기가 있을세라 보식을 해주던 중대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성이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이들의 살뜰한 정성이 포기마다 어려있어 오늘은 이렇게 팔뚝같은 오이며 고추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된것이다. 남새밭은 중대의 유일한 부식물생산기지였다. 동무들의 식탁에 푸르싱싱한 부루도 올랐고 풋고추도 올랐다. 제일 인기를 끈것은 풋고추였다. 풋고추를 식탁에 올려놓으면 온 중대가 모여들어 《요정》내군 하였다. 된장에 고추를 찍어먹을 때의 맛이란 사탕보다 더 달큰하다는것이였다. 나도 이제는 고추를 좋아하게 되였다. 집에서는 보기만 해도 얼굴을 찡그리던 내가 이제는 매운 고추를 먹는 《용감한 처녀》로 된것이다. 취사장생활의 단맛쓴맛을 다 맛보는 과정에 나도 고추처럼 매워진것이 분명했다. 나는 풍성한 식탁앞에 마주앉아 즐겁게 웃는 동무들의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뻤다. 그들의 얼굴마다에 피여나는 웃음이 곧 날마다 솟아오르는 언제의 높이였고 돌기돌기 쌓아지는 장석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짬만 있으면 호미를 들고 남새밭에 달려나갔다. 동무들의 웃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김을 매였고 바람결에 설레이는 남새들을 보느라면 전기난방화된 굴뚝없는 내 고향의 아름다운 전경이 황홀하게 펼쳐져 가슴이 후더워지군 했다. 하지만 건설장에서 땀을 흘리며 흙마대를 지고, 함마질을 하고, 몰탈을 이겨가는 동무들의 감실감실하게 탄 얼굴들이 안겨올 때면 내가 하는 일이 너무도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허비군 했다. 밤낮을 이어 청춘의 힘과 열정을 깡그리 쏟아부으며 언제를 쌓아가는 저 동무들을 위해 내가 해준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식사보장… 하다면 동무들을 위해 내가 할수 있는 일의 전부가 이것이란 말인가. 《호―》 나는 긴 한숨을 내그으며 토닥토닥 호미질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크고 묵직한것이 이마에 와닿는 감촉에 놀라 머리를 들었다. 팔뚝같은 오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덕대가 눈앞을 가로막고있었다. 그 오이들이 다시금 동무들의 모습으로 바뀌여져 떠오른다. 이른 봄날 한포기 두포기 오이모를 떠심으며 익살을 부리던 목소리들… 《이제 오이가 다 크면 어떻게 들구 간다.》 《걱정두 팔자다. 지게에 척 놓고 지고가면 되지.》 《메구갈거 있나. 여기서 먹구 가지.》 《허― 배가 터지겠는걸.》 《이보라구. 내가 집에 있을 때 오이랭국을 한사발 쭉 마셨더랬는데 글쎄 목으로 줄줄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싹 없어지더라니.》 《저런, 어데루 없어졌나?》 《몸안으로 쑥 들어가더라니.》 《꽝포쟁이… 나왔던 땀방울이 도루 들어가는 법도 있나?》 《허, 이제 두구보지. 시원한 오이랭국만 나타나면 땀방울이 무서워서 모조리 달아나는걸.》 《하하하, 거 정말 멋있는걸.》 … 《땀방울을 없애는 오이랭국》입속으로 중얼거리던 나는 두눈을 번쩍 떴다. (오이랭국을 만들어 땀흘리는 우리 동무들에게 가져다주자.) 나는 두손을 딱 소리나게 마주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후 오이랭국바께쯔를 량쪽에 하나씩 들고 건설장으로 향했다. 건설장은 죽가마 끓듯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함마질소리, 와릉와릉 자동차들의 동음소리, 방송차에서 울려나오는 경쾌한 노래소리, 익살섞인 말소리, 웃음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다. 어느새 나를 띠여본 동무들이 저저마다 손을 내젓는다. 《춘미동무, 여기요. 여기.》 《취사원동무―》 여기저기에서 터져오르는 부름소리에 이끌려 나는 랭국바께쯔를 들고 다리에 불이 일도록 드바삐 돌아갔다. 혼석장으로, 타입장으로… 이렇게 매 중대원들에게 한그릇씩 떠주고 빈 바께쯔만이 남았을 때에는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였다. 하지만 힘든줄을 몰랐다. 오히려 즐겁기만 했다. 오이랭국을 마시고 기분이 상쾌해서 일손을 다그쳐가는 동무들의 얼굴마다에 피여오르던 웃음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웃음꽃속에 발전소의 언제가 올라가고 준공의 그날이 앞당겨지는것이 아니겠는가. 그속에 나의 보람도 있는것이고… 그날 저녁에도 동무들은 오이랭국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오이랭국이 참 별맛이더군.》 《얼마나 시원하던지.》 《새힘이 부쩍부쩍 솟는게 아무리 일을 해도 힘든줄을 몰랐네.》 《그게 다 취사원〈어머니〉덕이라네.》 순간 나의 얼굴은 잘 익은 꽈리마냥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직은 열여덟살의 애숭이처녀인 내가 어머니라니… 가슴이 콩콩 방망이질을 했다. 이튿날 새벽이였다. 아침식사준비를 위해 취사장에 들어선 나는 깜짝 놀랐다. 부뚜막우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광솔이며 아궁이앞에 짧게 쪼개여 무져놓은 불쏘시개, 물바께쯔에 찰랑찰랑 들어차있는 샘물, 다시 곱게 미장질해놓은 산뜻한 부뚜막… 그것은 분명 동무들의 소행이였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나를 도와주는 돌격대원들의 뜨거운 마음이 그대로 어려와 눈굽이 젖어들었다. 나는 축축히 젖어드는 눈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주머니속에서 동그란 손거울을 꺼내들었다. 돌격대로 떠나오던 날 딱친구인 성옥이가 멀리 따라나오며 주머니에 넣어준 거울이였다. 거울속에 나타난 나의 얼굴은 별로 달라진것이 없다. 다만 우유빛처럼 해말쑥하고 부드럽던 살결이 해빛에 타 철색으로 변했을뿐이다. 하지만 산골바람에 억세여진 나의 얼굴은 더 돋보이고 아름답게 안겨왔다. 어엿한 돌격대원으로 성장한 나의 모습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나를 아껴주고 받들어주는 중대동무들의 뜨거운 마음속에서 나의 마음도 일솜씨도 무럭무럭 커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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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대원들은 건설장에서 밤을 새우며 긴장한 전투를 벌리고있었다. 동무들의 입술은 가슬가슬해졌고 두눈은 피곤에 몰려 벌겋게 되였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흙마대를 쥔채 말뚝잠을 다 자겠는가. 그런 대원들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괴로왔다. 한것은 그들에게 반찬 한가지라도 더 올려놓아주지 못한 안타까움때문이였다. 어느날 저녁이였다. 가지반찬을 무척 좋아하는 김동무가 배식구쪽을 슬그머니 넘겨다보며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춘미동무, 가지반찬이 더 없소?》 나는 당황하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밑창이 드러난 빈 그릇을 드러내보이며 《없어요.》하고는 어줍게 웃었다. 김동무는 게면쩍게 뒤더수기를 긁적이며 《안됐소, 춘미동무.》하고 도리여 량해를 구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또 어느날엔가는 대식가로 불리우는 장동무가 벌씬 웃으며 덧국을 청했었다. 《춘미동무, 나 덧국 하나.》 나는 대답대신 밑바닥이 드러난 국바께쯔를 내려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이거 미안하오.》하며 얼굴이 붉어지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삼삼했다. 그의 청을 받아주지 못한것이 더욱 가슴에 걸렸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그들의 요구를 마음껏 충족시켜주었을것이고 서로 미안해하고 게면쩍어하는 일도 없었을것이였다. 그 안타까움이 오늘은 나를 한시간이나 식사준비를 앞당겨 끝내게 했던것이다. 나는 밥이며 국이며 반찬들을 푸짐하게 끓여놓고 식사시간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리기만을 초조히 기다리고있었다. 어서빨리 식사시간이 되여 동무들에게 따끈한 밥을 대접했으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번엔 덧국도 문제없고 덧반찬도 문제없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이때였다. 흙탕물로 범벅이 된 바지를 무릎까지 잔뜩 걷어올린 중대장이 헐떡거리며 불쑥 뛰여들었다. 땀투성이 된 그의 얼굴은 험상하게 이그러져있었다. 우묵 들어간 눈확안에서 날카롭게 번쩍이는 충혈진 눈이며 푸들푸들 뛰는 관자노리, 바짝 말라버린 입술, 땀에 푹 젖은 런닝그속에 드러난 어깨와 팔은 땀기가 어려 번들거리였다. 《춘미동무, 밥을 다 해놓구두 이렇게 있다니…》 중대장이 소리질렀다. 나는 와뜰 놀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멍하니 중대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중대장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아니, 보고만 서있으면 어떻게 하오? 다른 중대는 운반식사를 하는데…》 중대장은 불이 나게 밥이며 국이며 반찬들을 버치와 바께쯔에 와락와락 쏟아담기 시작했다. 《운반식사?!》 나는 와락 설음이 북받쳤다. 두무릎을 꺾어앉아 어깨를 떨었다. 《춘미동무, 우오?》 중대장이 어리둥절해 서있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냥 어깨를 떨며 흑흑 소리내여 울었다. 《아하, 내가 급한 나머지… 안됐소, 용서하오.》 나는 눈물을 닦고 튕기듯 일어났다. 《중대장동지, 그런게 아닙니다.》 나는 겨우 이 말을 내뿜고는 운반식사준비를 서둘렀다. 몇달전 그때처럼 여러가지 반찬을 한군데 섞어놓던 중대장처럼, 그때 깨닫지 못한 그 의미를 다 깨달으며 중대는 너나없이 한가정이라는것을 심장에 새기며. 난 왜 이리 맹꽁이일가. 동무들을 생각한다면서도 운반식사를 생각 못했으니… 아직도 나는 중학교때 한주일동안이나 취사당번을 한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철부지 단발머리야. 아직까지 중학생티를 벗지 못한 자신이 안타까왔다. 《중대장동지, 빨리.》나는 재촉했다. 중대장은 저가락과 숟가락을 량손에 갈라쥐고 허둥거렸다. 나는 중대장의 손에서 수저를 와락 모두어쥐고 소랭이에 담았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아요.》 《알았습니다. 취사원동무!》 중대장이 유쾌하게 껄껄 웃었다.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함뿍 어렸다. 나는 코마루가 시큰해났다. 그토록 기뻐하는 중대장의 모습을 보니 또다시 눈굽이 시큰해왔다. 그래서 서둘러 취사장밖으로 달려나갔다. 달음질쳐갔다. 바께쯔와 버치를 들고 이고 중대장의 거친 숨결을 뒤에 들으며… 《따벌이 꿀벌이 됐군.》 6
청년절을 맞는 운동장은 다양한 체육경기로 흥성거렸다. 한쪽에서는 축구경기가 벌어졌고 또 다른켠에서는 롱구며 씨름경기들이 고조를 이루고 있었다. 쿵챙쿵챙 요란한 북소리와 징소리, 와와 응원소리로 떠나갈듯 했다. 한쪽에서는 료리경기가 진행되였다. 길게 펼쳐놓은 식탁우에 놓인 수십가지의 음식들은 돌격대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중대동무들속에 끼여 료리장을 바라보는 나의 눈앞에는 며칠전 일들이 방불히 떠올랐다. 대대에서는 청년절을 맞으며 진행되는 경기요강이 발표되였다. 축구, 롱구, 배구 등 경기종목을 놓고 중대마다에서는 그 준비에 열을 올렸다. 우리 중대에서는 여러가지 경기종목에도 관심이 높았지만 료리경기에 특별히 열을 올렸다. 우선 료리경기에 내놓을 음식가지수였는데 그 가지수에는 어떠어떠한것들이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분대별로 각이한 론쟁이 벌어졌다. 녀대원들은 달빛이 환한 취사장 앞마당에 머리를 맞대고 모여앉아 오손도손 의논을 주고받았고 남대원들은 병실마다에서 목청을 돋구었다. 3소대 떡보인 김동무는 떡이 기본이라고 주먹을 흔들었고 장동무는 바다가의 수산물이 제격이라고 목청을 돋구었다. 그 바람에 와하하 웃음보가 터져오르기도 했다. 그때 일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눈길을 들어 다른 중대의 식탁들을 살펴보았다. 2중대의 식탁우에는 바다가의 이면수며 가재미, 게 등이 보란듯이 척 올라있었고 3중대의 식탁에는 순대며 육붙이들이 올라앉아있었다. 하지만 우리 중대식탁에는 동무들의 론쟁속에 열을 올리던 떡이나 바다가의 수산물이 아니라 산나물김치, 고사리볶음, 버섯, 도라지 등 산나물음식과 풋강냉이지짐이며 감자로 만든 음식들이 소담하게 올라있었다. 나의 눈앞에는 며칠전 산나물을 뜯고 도라지를 캐왔던 분대장언니와 동무들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 고장은 뭐니뭐니해도 감자음식이 기본이라며 그 만드는 방법을 하나하나 배워주던 중대장동지의 모습이며 밤이 깊도록 망질을 도와준 장동무와 인달동무의 모습도 안겨왔다. 그 모습들은 나를 내세워주려는 중대의 뜨거운 마음이였고 사랑이였고 진정이였다. 그래서 더 가슴이 후더워났다. 얼마후 확성기에서 료리경기등수를 알리는 방송원의 챙챙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료리경기등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해났다. 《돌격대원동무들의 특색있는 료리솜씨로 하여 료리경기는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1중대동무들이 내놓은 감자로 만든 음식들과 풋강냉이지짐을 비롯한 여러가지 산나물료리들은 우리 민족음식, 내 고향의 음식의 진미를 돋구어주는것으로 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하여주고있습니다. 음식 하나, 반찬 한가지를 만들어도 언제나 고향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과 마음을 합친 중대동무들의 뜨거운 그 마음에 떠받들려 고향의 전기화를 위한 발전소언제는 더더욱 높아가고 우리 고향땅은 더욱더 살기 좋은 고장으로 전변되여가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돌격대원동무들, 우리모두 이번 료리경기에서 단연 1등을 한 1중대동무들에게 열렬한 축하의 박수를 보내줍시다.》 요란한 박수소리에 이어 중대동무들의 목 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무들, 춘미동무가 1등을 했소.》 《우리 중대〈어머니〉의 료리솜씨가 대단하거던.》 순간 나의 두눈에 눈물이 핑 고여올랐다. 《어머니!》 입속으로 조용히 되뇌여보았다. 부를수록 정깊고 다심한 이름, 뿌옇게 흐려오는 망막속으로 기쁨에 넘쳐, 환희에 넘쳐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에게 달려오는 중대동무들의 얼굴이 확대되여 안겨온다. 보름달같이 환한 얼굴에 웃음을 함뿍 담고 들꽃묶음을 흔들며 달려오는 분대장언니와 그뒤로 껑충껑충 달려오는 인달이며 장동무, 김동무… 맨 뒤에서 껄껄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흔드는 중대장의 너부죽한 얼굴이. 나는 두눈을 꼭 감았다. 눈가에 찰랑찰랑 넘쳐나던 뜨거운 눈물이 그만에야 볼을 타고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중대동무들― 그들이 나를 1등의 높은 자리우에 내세워주었다. 나를 도와주고, 떠밀어주고 키워주고 이끌어주고 내세워주는 동무들의 뜨거운 마음, 그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나는 얼굴을 싸쥐고 마주 달려가면서 마음속으로 웨쳤다. 《아니예요, 동무들. 난 아직 어머니가 되자면 멀었어요.》 나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나도 어머니가 될수 있을가? (덕성군 임자중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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