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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97(2008)년 제11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은 행 나 무
최 충 혁
나는 오늘 잊지 못할 작업반장동지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초소로 떠나며 내가 심었던 은행나무에 드디여 첫 열매가 열렸다는 희소식은 삽시에 나의 가슴을 기쁨의 거세찬 박동으로 울려주었다. 군복을 입은지 이제는 어언 수년, 정말이지 그동안 내가 언제 한번 함께 일하던 우리 작업반원들을 잊은적이 있었던가. 중대속보판에 내 이름이 큼직하게 실렸을 때도, 훈련길의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에도 언제나 못 잊어 그려보던 작업반장이며 반원들이였다. 나에게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여주고 조국의 귀중함을 가슴깊이 새겨주며 경애하는 장군님을 총대로 결사옹위하는 조국보위의 길로 떠밀어준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정든 고향, 평양의 모습이였고 영원히 아름다울 추억의 무지개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기쁜 소식까지 받았으니 나의 가슴이 어찌 격정으로 설레이지 않으랴. 눈앞에는 금시 노란빛으로 반짝거리는 도글도글한 은행알들이 안겨오는듯싶다. 향긋하면서도 새치근하고 알싸하여 어딘가 모르게 사향내같다고 하던 그 은행알의 향기… 인생이라고 하는 먼 주로의 한 정류소에 지나지 않는 그 사회생활이 나의 가슴속에 새겨놓은 골과 봉우리들이 얼마나 깊고 높은것이기에 이렇게까지 력력하게 내 가슴에 남아있는것인가. 나는 축축해진 눈을 들어 저 멀리 연한 구름발이 실오리처럼 흐늘거리는 하늘가를 감회로운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던 그 나날들이 어느덧 추억의 파도에 실려 넘실넘실 나의 가슴으로 흘러들고있었다. ×
후두둑… 후두둑… 나무모밭으로 떠날 때부터 기연가미연가하던 하늘에서는 어느새 큰 멍석을 겹쳐놓은듯 묵중한 구름장들이 웅기중기 쌓이더니 이어 땅우의 모든것을 한소끔 우려낼 잡도리로 사정없이 비줄기가 도리깨질을 하듯이 쏟아져내렸다. 좌락좌락 퍼붓다가는 한동안 보슬거리다가 또 냅다 쏟아붓는데 그 바람에 가뜩이나 물기있던 땅이 아예 혼합물처럼 일어번져서 나무 한그루 뜨는데도 어지간한 품이 들어야 했다. 삽질을 할 때마다 꿀찌럭거리던 흙물이 바지가랭이는 물론이고 내 머리속까지 온통 적셔버릴듯… 봄비치고는 보기드문 비였다. 식수철이라 원림사업소가 모두 달라붙어 거리에 심을 수종이 좋은 나무들을 뜨느라 허리펼새없이 바삐 돌아가는데 이제는 오금에서 자개바람이 일 지경이였다. 《제길… 바람부는 날 가루친다더니…》 돌쪼박에 부딪친 삽자루가 휘친하자 가뜩이나 으시시한 몸이 휘청거린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삽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이제 한대만 뜨면 과제로 맡은 은행나무를 다 뜨는것이다. 용을 쓰며 나무를 당기던 나는 《뿍―》하고 무엇인가 찢기는 소리를 들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황망히 일어선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뜨던 그 은행나무가 그만 뿌리가 찢어져나갔던것이다. 《이거… 야단났구나.》 마지막대라고 덤벼치다가 끝내 일을 친것이다. 어느새 시커멓던 하늘엔 시루밑같이 구멍이 펑 뚫리더니 아롱다롱한 해살이 비쳐나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장이며 박아바이랑은 다 걸싸게 삽질을 해대면서 콩나물을 솎아내듯이 쉽게(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나무들을 뜨고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벌써 다 뜨고 나무모밭어구에 세운 자동차로 나무모들을 날라가고있었다. 《넨장…》 나는 삽자루를 깔고 주저앉았다. 자신의 모양이 스스로도 우습고 어처구니없기만 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여기 원림사업소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정말이지 언제 한번 상상도 못해본 일이였다. 졸업을 앞두고 내가 바라던 꿈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맨 앞장에서 받드는 총대병사가 되는것이였다. 이것이야말로 선군시대 오늘의 새 세대 청년의 응당한 본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더우기 군사임무수행중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전사들을 구원하고 전사한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영원히 이 손에 총을 잡으리라는 자각과 맹세를 더 굳게 안겨주었다. 내가 일당백의 만능병사로, 영웅으로 된다면 이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훌륭히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어머니는 얼마나 대견해하시고 전사한 아버지는 또 얼마나… 그 시절 내가 즐겨부르던 노래도 전시가요였고 웅변술이 류창하지 못하면서도 《리수복영웅과 나》와 같은 결의모임때에는 제일먼저 연단으로 달려오르군 했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지망을 써내라고 하였을 때 《제1지망》도 《제2지망》도 조선인민군 입대라고 써넣고 나는 얼마나 흐뭇해하였던가. 그런데 그러한 나의 꿈이 한순간에 나자신의 경거망동으로 물거품이 되고말줄이야. 졸업을 앞두고 동생들앞에서 우쭐하여 평행봉을 장난삼아 하다가 나는 그만 팔에 부상을 당하고 병원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거의 한달에 가까운 치료를 받고 퇴원하였을 때는 이미 나의 조선인민군 입대가 보류된 뒤였다. 매일같이 해당 부서에 찾아가 떼질을 써보았지만 안정치료도 할겸 한 일년후에 보자는 말밖에 듣지 못하고말았다. 나는 창피스러워 며칠동안 밖에 나가다니지 못하고 집에 박혀있었다. 다른 동무들은 희망대로 조선인민군대로, 대학으로 다 갔는데 큰소리치던 나만이 그 어데도 가지 못했으니 마을이나 학교에 내가 무슨 낯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그런데 갈수록 험산이라더니 여기 원림사업소로 파견장이 덜커덕 내려올줄이야. 원림사업소?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군대에 나가지 못한것만 해도 창피스러운노릇인데 이제는 또 도로에서 잔디나 깎고 나무들이나 정정해야 한단 말인가. 이왕 사회생활을 할바하고는 건설장이든 용해장이든 보람찬 일터에서 떳떳하게 위훈을 세우리라 생각했댔는데 도장이 꾹 찍힌 파견장은 나에게 그런 생각은 싹 걷어치우라고 말없이 비웃는것 같았다. 나는 관리2반에 배치됐는데 반장의 이름을 강형남이라고 불렀다. 사십대의 단단한 체격의 사람이였는데 묵중해보이는 몸가짐은 침착하면서도 꿋꿋한 성미를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았다. 《인민군대엔 왜 못 나갔나?》 중떠보듯 반장이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묵은 상처를 헤집는것 같아 대뜸 기분이 상하였다. 그렇다고 구구히 설명하고싶지도 않았다. 나의 심정을 읽은듯 반장이 빙그레 웃어보이는것이였다. 《음,… 무슨 사정이 있은게로구만.…》 나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식 비슷한것이 흘러나왔다. 꽤나 훈시하길 좋아하겠는걸.… 첫 인상이 나의 마음속에 새겨진 반장은 이런 사람이였다. 그는 나를 《막내》라고 불렀다. 하긴 나이가 제일 어리니 그럴수밖에… 바로 그 반장이 나에게 막내가 힘들거라고 적게 과제를 주었는데 마구 덤벼치다가 8년이나 자란 나무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뿌리가 너슬너슬한 은행나무를 민망한 눈길로 내려다보던 나는 아무 미련도 없이 그 나무를 훌 던져버렸다. 하많은 나무들중에 한그루쯤이야. 그날 작업은 저녁이 되여서야 끝났다. 자동차가 발동을 걸었는데도 웬일인지 반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허― 반장이 웬일인가. 성철이, 제꺽 가보라구.》 박아바이가 나에게 이르는것이였다. 《예.》 내가 적재함에서 뛰여내리려는데 저쪽에서 반장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니?》 뜻밖에도 반장의 손에는 내가 버린 은행나무가 들려있는것이 아닌가. 차를 타고 오면서도 작업반마당에 나무모들을 부리우면서도 나의 마음은 편안치 않았다. 일을 하느라면 실수할수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제품생산에서도 간혹 오작품이 나오는거고. 내가 버린 그 나무를 굳이 가지고온 반장이 나에게는 전혀 융통성이 없는 곧은목같이 여겨지는것이였다. 《누가 이 나무를 떴습니까?》 작업총화를 지으면서 반장이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나쁜 장난을 하다가 덜미를 잡힌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일어섰다. 《성철동문… 이 나무를 버릴 때 손이 떨리지 않았소? 나무 한그루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동무도 모르지 않겠지? 설사 다른 사람이 그런다고 해도 가슴아파하고 일깨워줘야 할 우리가 아니요.… 동문 이제 인민군대에 나가겠다고 했지.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사랑할줄 모르는 그런 심장을 가지고 어떻게 군사복무를 제대로 해내겠소? 정말 섭섭하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속이 알알해왔다. 그까짓 나무 한그루가 뭐라고 이렇게 망신까지 시킨단 말인가. 반원들이 다 퇴근한 휴계실에 나는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얼굴이 수수떡처럼 익어가지고 씩씩거리던 나는 밖에서 나는 삽질소리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반장과 박아바이가 삽을 들고 마당가에 구뎅이를 파고있었다. 그옆에는 내가 버렸던 그 은행나무가 놓여있고… 가방을 들고나선 나는 시큰둥한 기색으로 그쪽은 본척만척 힝 지나쳤다. 《성철이, 어딜 가려구. 덜된 녀석같으니…빨리 여기 와서 삽질을 하지 못해?》 박아바이의 엄엄한 목소리가 나의 잔등에 날아와 박혔다. 화뜰 놀라 굳어졌던 나는 주밋거리며 다가갔다. 《녀석! 단단히 뿔이 돋았군. 그만한 욕두 삭이지 못하는게 무슨 사내야. 그래 엉치에 돋은 뿔을 떼기가 쉬운줄 알았어?》 《쳇… 비유를 하겠으면 고상하게 하십시오. 내가 무슨 송아지라구…》 하고 툴툴거리던 나는 반장이 든 삽에 손을 뻗쳤다. 《내가 합니다.》 《헛허… 성철이, 쓴약이 병을 고치는거야. 날 보라구. 사탕을 많이 먹었더니 요즘은 온통 이발만 쑤시거던. 허허허… 이보게 반장, 이 나무가 뿌리를 내릴 때쯤이면 우리 성철이가 반장의 심정을 리해할가? 응, 성철이.》 하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별로 귀에 걸리지 않았다. 나무가 살아나기나 할걸 가지구 그러는지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이튿날이였다. 새로 개건보수한 청년거리에 우리가 떠온 은행나무들을 심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턴 성철이가 파라구.》 나는 의아해졌다. 박아바이가 맡은 구간에서부터 서너메터나 빈 공간이 나겠는데 왜 그 자리를 비워두는걸가. 《여기도 파야 하지 않습니까?》 《거긴 둬두오. 이제 작업반마당에 심은 은행나무를 살려가지고 여기에 옮겨심자구.》 《예?》 그러니 여기에다 그 은행나무를… 난처해진 나는 한동안 반장을 멀뚱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꼭 살려내야지.》 반장은 축 처진 나의 어깨를 툭 치고 저쪽으로 활개치며 걸어갔다. 무슨 타산이라도 있어서 저럴가. 참, 사람을 따분하게도 만드네… 《성철이, 일은 안하고 뭘 중얼거리나. 오, 반장이 여길 비워두라고 한게구만.…》 《아바이, 그 나무가 정말 살기나 할걸 가지고… 이렇게 자리까지 남길 필요가 있어요? 그때 가서 결심해도 될텐데…》 나는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반장말대루 하라구. 지성이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지 않나. 반장이 뭐 성철이가 미워서 그러는줄 아나? 다 성철이가 구실을 하게 해주자는거야. 이제부터 책임적으로 관리하라구.… 그 은행나무가 죽으면 이 자리에 성철이를 세워놓을테야.…》 나는 허거프게 웃고말았다. 박아바이의 말은 나에게 한갖 롱담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던것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여긴 나무를 지내 넓게 심는구만. 한그루 더 심어도 되겠는데…》 하고 말하는것을 들었을 때 나는 막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며칠후였다. 아침일찍 출근하던 나는 물바께쯔를 들고나오는 반장을 보게 되였다. 《일찍 출근하누만.…》 《안녕하십니까?》 나는 황황히 그의 손에서 바께쯔를 받아들었다. 《가만 좀 기다리라구.》 은행나무에 물을 부어주려던 나를 제지시킨 반장은 창고로 들어가 무엇인가 불룩한 자루같은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술지게미였다. 아침출근길에 식료공장에 들려서 얻어왔다는 걸죽한 술지게미를 물에 타서 은행나무에 부어주던 나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미간을 쪼프렸다. 《이걸 준다고 뭐 은행나무가 살겠습니까?》 《왜? 성철인 그럼 버리자는건가?》 《다른 나무들은 다 움텄는데… 이제라도 반장동지가 승낙하면 당장 다른 나무를 떠오겠습니다.》 이 기회에 반장의 그 《고집》을 풀어볼 심산으로 나는 응석을 섞어가며 끈지게 들이댔다. 그러나 반장은 정말로 나의 말을 응석으로밖에 치부하지 않았는지 싱그레 웃으며 호미로 북북 은행나무에 북을 돋구기만 하였다. 《아…성철이, 지내 한곳에만 주지 말고 골고루 돌려주라구.… 그래 성철이 말대루 새 은행나무를 떠오면 이건 어떻게 할가? 뽑아서 버리면 누가 불쏘시개로나 쓰겠지. 그렇지 않으면 삽자루나 만들런지… 8년이나 애지중지 키워온 이 나무가 말이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모든 정성을 다해 살려내면 이 은행나무가 얼마나 멋있게 자라겠소. 거리엔 록음이 우거지고 새들이 우짖고 또 가을엔 열매들이 주렁지고…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걸 삽자루나 하라고 버릴수 있겠나. …꼭 살려내자구.》 아침 첫 일과로 진행되는 신문독보가 끝나고 반장은 작업조직을 하였다. 《…성철동문 립체다리어구에 있는 잔디밭에 잔디보식작업을 나가야겠소. 전에도 해봐서 알겠지만 기술규정의 요구를 정확히 지켜야겠소. 물도 푼푼히 주고…》 나는 립체다리어구의 잔디밭으로 나갔다. 작업량을 보니 한겻 품이 다 걸릴것 같았다. 비지땀을 흘리며 한창 잔디를 심고있을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귀가에 간지럽게 걸려들었다. 《아니… 6반 학급장동무가 아니야?》 《옳구나. 그런데 어떻게 된거니. 군대에 나간다고 우쭐대더니…》 《야, 사람일이란 모르겠구나. 난 잔디를 심기에 웬 아바이나 했구나.…》 신경이 곤두선 나는 획 돌아서며 두 녀대학생을 쏘아보았다. 뭐 나보고 아바이… 나의 가시돋친 눈길에 부딪친 두 처녀는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하다가 종종걸음을 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를 어이없이 쳐다보던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 이거야 얼굴이 뜨거워서…) 해볕에 잎이 가드러들기 시작한 잔디들이 구원을 청하듯 나를 올려다보고있었다. 그것을 외면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는 이런 일을 안할테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물러선 나는 할일없는 사람처럼 흔들거리며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는 내 신세가 가련해보였다.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영화소개판에서 군복을 입고 싱그레 웃는 영화의 주인공이 나를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는듯싶었다. (제꺽 보고 나와서 적당히 해놓으면 되겠지.…) 나는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보람찬 병사생활을 하고있는 주인공을 따라서 땅크도 타보고 중대오락회에서 노래도 부르며 심취되여있던 나는 영화가 끝나기 바쁘게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제길… 이번엔 무조건 군대에 나갈테다.) 하고 속으로 윽벼르며 몇걸음 옮기던 나는 반장과 부딪쳤다. 기절하듯 놀라며 나는 말뚝처럼 굳어졌다. 《그래… 새 영화가 재미있던가?》 뜻밖의 물음에 나는 더욱 당황해졌다. 나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성철이처럼 행동하지 않았을테지.》 《…》 《다시는 그러지 말라구.》 멀어지는 반장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나는 잔디밭으로 터벌터벌 걸어갔다. 《아니?》 격자무늬로 다복다복 심어놓은 잔디들이 물기를 축축히 머금고있는데 바늘같은 잎새에 매달린 물방울들은 해빛을 받아 흰구슬처럼 반짝거리고있었다. 《아니 그럼 반장동지가…》 나는 가책속에 반장의 된꾸중을 예감했다. 그런데 반장은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에 내가 마당의 은행나무에 버팀목을 매주는것을 띠여본 반장이 오히려 나를 칭찬까지 하는것이였다. 《나도 생각 못했댔는데 성철동무가 은행나무에 버팀목까지 해주었구만. 정말 수고했소. 우리 꼭 살려내자구. 은행나문 살아날거요. 그렇지 않습니까, 박아바이.…》 《좋구만, 성철이가 이렇게 열성인데 왜 살아안나겠나. 이 세상에 마음보다 더 귀한 약이야 없지.…》 (정말 그럴가?) 나는 버팀목을 발로 꾹꾹 다져주며 아바이의 말을 조용히 외워보았다. 문득 이 은행나무를 상하게 했던 그날이 떠오르며 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덤비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걸… 원림사업소 일이라는것은 얼핏 보기에는 수월해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봄가을 식수철이면 100리, 200리 떨어진 나무모밭들로 차를 타고 나가 수삼나무, 느티나무, 아카시아나무 등 갖가지 나무모들과 꽃나무들을 떠와야 한다. 정상적으로 잔디깎기와 나무정정, 생울타리다듬기, 수만그루나 되는 나무밑둘레의 회칠… 여름철에는 각종 벌레들과 곤충들을 잡기 위한 사업… 가을에는 또 가을대로 나무들의 겨울나이대책… 가물때에는 꽃나무들과 어린 나무들을 살리기 위해 물통을 들고다니고 큰비가 내리면 나무모밭을 지켜 한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는 그런 때도 있었다. 겨울엔 또 부식토마련 등 우리의 일, 결코 거리의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해가 비치고 땅이 있어서만이 생기는 응당한 풍경이 아니라는것을 나는 그때 미처 다 생각하지 못하고있었다. 생활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그런 속에서 나도 나무모밭 김을 매다가 손에 생긴 물집쯤은 어련히 참을줄 알게 되였고 웬만한 굳은 땅도 삽 하나로 제꺽 팔수 있게 되였고 나무잎만 보고도 벌레가 있는지 없는지 척척 진단을 내리게 되였다. 어느날 우리는 어느 한 중학교에서 위험나무를 페기하는 작업을 하고있었다. 학교수영장에 기울어져 자라는 몇대의 나무가 있는것을 장마철이 오기 전에 찍기로 계획했던것이다. 쌩쌩 돌아가는 기계톱날밑으로 물기에 촉촉히 젖은 톱밥들이 광석가루처럼 흘러나왔다. 《우지끈…》 《넘―어―간―다―》 긴 그림자를 끌며 나무가 자빠지자 손톱과 도끼로 가지를 쳐내고 자르고 한다. 변죽에 서있던 지게차가 우릉우릉 발동을 걸더니 기둥처럼 미끈한 원목들을 사뿐히 자동차적재함에 올려싣기 시작했다. 《형!》 나는 또랑또랑한 부름에 머리를 들었다. 수영장밖에서 동생이 손을 흔들며 벌쭉거리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나를 알아본것이였다. 《빽…》 야무진 호각소리가 울리더니 로동안전원이 두눈을 부릅뜨고 《위험하다, 나가거라.》 하며 두손을 흔들고있었다. 흘러내리는 안전모자를 올리추며 따분한 기색을 짓는데 반장이 나의 어깨에 투박한 손을 얹었다. 《동생이요? 그런데 왜 그러고 서있나. 자, 가자구.》 제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는 반장을 따라서며 나는 무릎이며 신등에 꽃가루처럼 내려앉은 톱밥을 툭툭 털어버렸다. 《안녕하십니까?》 《오, 우리 이제부터 친하자. 형님이랑 명절날엔 우리 집에 놀러 오너라. 내 좋은 책을 많이 보여주지.》 《예.》 비위좋은 동생은 대번에 입이 벙글서해지더니 나에게로 돌아섰다. 《형, 우리 래일 자연관찰 나가. 점심을 잘 싸줘야 해. 엄마가 출장가면서 말했지.》 《뭐? 자연관찰?…》 《전엔 지지갤 다 태웠지. 이번엔 잘해야 해.》 뽈을 들고 제또래들에게로 달려가던 동생은 미타했던지 큰소리로 나에게 엄포까지 놓았다. 《맛―있―게― 하―라.―》 《하하하,… 그녀석이 형님을 막 위협하는구나.》 두손을 허리에 얹으며 반장은 흡족한 웃음발을 피워올렸다. 《성철이, 어머니가 출장을 갔나?》 《예, 며칠전에 연구사업때문에…》 《음,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늦게 나왔구만. 그럼 그렇다고 말할것이지. 하긴… 다 내 잘못이야.… 좀 있다가 먼저 들어가라구.》 《일없습니다. 모두 일손이 바쁜데…》 《됐어, 마음놓고 가보라니까. 동생이 〈명령〉했는데 형이 어기면 되겠나, 응?》 박아바이까지도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등을 치는 바람에 나는 하는수없이 작업장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잠시 궁리를 톺아보다가 식료상점으로 나갔다. 그러지 않아도 어머니가 출장을 떠나면서 신신당부하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동생을 서운하게 해줄수 있겠는가. 사과며 물고기며 부식물들을 한구럭 불룩하게 사들었다. 사실 나의 부엌일이라는게 굉장했다. 성격탓이라고 해야겠는지 (남자들은 대개가 그럴것이다.) 감자장이나 고기볶음을 할 때에는 아예 기름을 듬뿍듬뿍 쏟아넣고 고추가루, 후추가루, 맛내기 같은것들을 푹푹 치는데 그 덕에 나는 비록 밥은 좀 설쳐도 동생으로부터 《엄마보다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군 했다. 동생이 좋아하는 나의 료리솜씨를 다시 보여주리라 작정을 하고 집으로 종종걸음쳐간 나는 가스콘로에 불을 살렸다. 그렇지만 가뜩이나 《훌륭》한 나의 료리솜씨가 그날은 왜 그리도 엉망이 되였던지.… 닭알을 삶는다는것이 익기도 전에 꺼내다보니 껍질에 흰자위가 문적문적 묻어나고 썰어놓은 감자가 깍두기쪽처럼 되기도 했다. 《똑똑똑…》 누굴가? 하얀 앞치마를 거북스럽게 뒤로 돌리며 나는 문을 열었다. 《반장동지가 어떻게…》 《하하… 앞치마는 왜 감추나. 성철이가 료리를 기막히게 한다면서… 흠, 흠, 뭐가 탄다.》 《아이쿠.》 나는 허둥거리며 부엌으로 뛰여들어가 볶음판을 내려놓았다. 《이것 보지.》 밥가마뚜껑을 열어보던 반장은 확 올라오는 냄새에 대뜸 미간을 찌프렸다. 《밥이 탔으면 이렇게 …물 한사발을 가마안에 넣어두라구. 냄새가 싹 달아날거야.》 면구한 기색으로 귀뿌리를 매만지는 나의 어깨를 툭 치고난 반장은 《창고열쇠나 주오. 작업반원들이 땔나무를 좀 싣고왔소. 우리가 부리울테니 내려오지는 마오.》 하고 이르는것이였다. 《예?!》 언제인가 겨울이 오면 어머니의 연구사업에 땔나무가 좀 필요된다는 말을 얼핏 한마디 한적이 있었는데 그걸 잊지 않고… 나는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온종일 나무찍기를 하느라고 몹시도 피로했을 우리 작업반원들이 바로 나의 어머니를 위해서 늦은 저녁도 아랑곳없이 먼길을 들린것이다. 부엌일을 내버려둔채 나는 허둥지둥 복도를 따라 달려내려갔다.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패서 아름아름 묶어놓은 그 나무단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날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흔히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응당한것으로 천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런 자식들을 《응석받이》라고도 하고… 그러나 집단의 사랑, 동지들의 사랑앞에서는 절대로 《응석받이》가 되여서는 안되는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르고있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개조대상이예요? 죽을게 뻔한 나무를 가지고…》하고 때로 엇드레질까지 하지 않았던가. 나는 들떠있었다. 그저 욕망에만 사로잡히다나니 군대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창피감속에 《체면》을 생각했고 은행나무를 살리자고 한것도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리기적인 생각에서 출발한것이였다. 바로 나자신이 뿌리가 허약한 은행나무였던것이다. 늦은 저녁이였다. 우리가 금시 상을 펴놓는데 작업반장이 《늦지 않았군.》하며 집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자, 이건 동생이 래일 가져갈것이고… 이건 저녁에 들거야. 하, 이건 성철이가 한 음식들인가. 거 군침이 도는데… 어서 들라구. 어디 성철이가 한걸 좀 맛볼가.》 나는 끝내 수저를 들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나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하염없이 고여올랐다. 진정 이런 뜨거운 사람들과 함께 사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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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소창립절을 맞으며 진행된 체육경기때 나는 작업반장의 추천으로 작업반롱구팀선수로 선출되였다. 작업반에도 제대군인청년들이 많고 또 반장자신도 제대군관이지만 왜 열여덟살짜리 《막냉이》를 내세웠는지… 울타리치듯 겹겹이 경기장둘레를 에워싸고 와와 함성을 터쳐올리고 꽹과리며 북을 두드리는 응원자들, 투사에 성공하면 박수도 치고 열띤 얼굴로 격려도 보내는 그 모습들속에는 정다운 우리 반원들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전반전부터 우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팀 관리4반을 앞서고있었다. 막 목구멍에서 겨불내가 풍겨나왔다. 얼결에 땀으로 아려드는 눈을 비비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던진 감빛의 롱구공이 나의 옆으로 스쳐지난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스치는 롱구공을 가로채며 나는 도약자세를 취했다. 《성철이, 제껴라!》 폭탄튀는듯 한 고함소리… 나에게로 달려오던 4반의 만만치 않은 주장을 막으며 반장동지가 내지른 소리였다. (쳇… 내가 무슨 보초병을 제끼나.) 하고 저도모르게 입을 비죽 내민 나의 손에서 롱구공은 긴 포물선을 그린다. 그러나 긴장감으로 해서인가. 륜대에 맞고 튀여나는 롱구공… 순간에 여러개의 억실한 팔들이 저저마다 솟구친다. 고맙게도 (그렇다, 고마운 공이다.)롱구공은 긴 탄도를 그으며 내앞으로 날아왔다. 우뚝 솟구치는 강단있는 체구들… 후끈한 땀내…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프렸다. 누군가의 신코가 내 발목을 때렸다. (누구야?)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눈길은 내앞에 선 그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떨어지는 롱구공에 머물렀다. 《제껴라―》 이번에도 터지는 고함소리… 왜서인지 넘어지는 반장동지를 얼핏 스쳐보며 나는 공을 날렸다. 《와―》 한껏 축적되였던 긴장감이 탄성으로 터져올랐다. 나의 석점투사가 이번에도 성공한것이다. 온몸에 흙먼지를 쓴채 뛰여온 반장이 나를 얼싸안아줄 때 나는 눈굽이 뜨겁게 달아오름을 의식했다. 아, 얼마나 다정한 우리 작업반인가. 얼마나 고마운 우리 사람들인가. 경기가 끝난 후 나에게 차례진 상품은 내 몸에 꼭 맞는 한벌의 작업복이였다. 그 옷은 요란한 장식도 없었고 단추도 밤색비닐단추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작업복이 그 어떤 멋진 양복이나 날씬한 운동복보다 더 멋있는것으로 느껴졌다. 그때부터라고 할가. 나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꽃들이 만발한 꽃밭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자신이 찍은것처럼 기뻐졌고 바람에 나무잎 한개가 날려도 제 옷단추가 떨어진것만큼 안타까와하기도 했다. 바로 그속에서 어느덧 나의 마음의 키도 자라는것이 아니겠는가. 어느날 아침출근을 하는 반장이 무엇인가를 손달구지에 싣고 오는것을 보고 달려가던 나는 손달구지에 실려있는 평행봉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이건 뭘 하자구 그럽니까?》 《뭘 하다니… 훈련을 하자구. 언제부터 생각했던건데 어디 맞춤한 철관이 있어야지. 이제 군대에 나가겠다면서 그냥 놀고만 있겠나.》 《예?!》 그러니 나에게 체력단련을 시키자고… 잠시후 평행봉을 세우고난 반장이 손을 툭툭 털더니 나를 불렀다. 《자, 한번 해보라구. 듣자니 성철인 평행봉이 서툴러서 팔까지 상했댔다지.…》 불뚝 자존심이 살아난 나는 무작정 평행봉에 매달렸다. 그러나 생각대로 동작이 될리 만무했다. 《하하, 성철인 안되겠소.》 얼굴이 빨개서 한동안 어쩔바를 몰라 허둥거리는 나를 웃음기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반장이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훌쩍 몸을 솟구었다. 나는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기계체조선수처럼 평행봉에서의 능란한 동작, 혹시 군대에 나가기 전에 체육단에라도 있었는지. 거꾸로 세웠던 몸을 돌려 떨어지며 반장은 재빠르게 몸자세를 바로잡았다. 《음…》 신음소리에 나는 당황해졌다. 이거 나때문에… 《일없소. 오랜만에 하다나니 그러지. 하하… 성철이, 욕망만 앞세워가지고는 결코 아무 일도 할수 없는거요. 아버지의 대를 잇자고 해도 체력단련을 소홀히 하면 안되지. 이제부터 부지런히 련습하자구. 감독은 나요.》 부러 엄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반장을 바라보며 나는 뜨거운것이 한가득 치밀어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꽃밭 한옆에 세워놓은 평행봉! 마치도 그것은 나에게 이제껏 들떠만 있던 나의 마음이 《우리 작업반》이라는 정든 땅에 뿌리내린듯 한 느낌을 가슴가득 채워주는것이였다. 그날 저녁 총화후 나는 어쩔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평행봉으로 다가갔다. 훌쩍 몸을 솟구쳐 긴 봉대우에 팔을 걸었다. 어깨에서 뻐근한 아픔이 솟구쳐 온몸으로 퍼져갔으나 나는 입술을 감쳐물었다. 《성철이, 장해. 잘하누만.…》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은행나무옆에 서있던 반장이 나를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것이였다. 친형과도 같은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나직이 속삭였다. (반장동지, 고맙습니다.) ×
《야! 움이 텄구나. 반장동지, 아바이, 은행나무가 살아났어요.》 《우리 막내가 끝내 나무를 살렸구나.》 《허허허… 이제야 우리 성철이가 뿌리를 내렸구나. 녀석두…》 그날밤. 손에 자동보총을 들고 원쑤들을 무리로 쓸어눕히는 흡족한 꿈의 세계를 헤매던 나는 세찬 창유리의 진동소리에 소스라치듯 깨여났다. 밖은 사진현상실처럼 한치앞도 가려보기 힘든 짙은 어둠에 잠겨버렸는데 녹두알같은 비방울들이 창문유리를 츠렁츠렁 울리고있었다. 끌리듯 창문가에 다가선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쌀쌀한 비바람이 씽하게 밀려들었다. 순간 차디찬 비방울들이 얼굴에 부딪치고 목으로 흘러들며 잠기를 말짱 날려보냈다. 은행나무는? 오늘 움이 텄는데 이 비바람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몇시나 됐을가? 하늘은 가마밑굽처럼 까맣게 흐려져있었는데 가늘어질사싶던 비발은 어느새 창대같이 쏟아지고있었다. 비줄기 못지 않게 흘러내리는 땀발을 척척히 느끼며 작업반으로 들어서던 나는 나무들이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새끼줄을 둘러치고있는 낯익은 모습을 알아보았다. 《반장동지!》 나는 그에게로 잔달음쳐갔다. 《성철이.》 《아니, 우리 막내도 왔구나.》 이렇게 반가운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일으키는 반장이며 어디론지 갔다가 새끼퉁구리를 들고 휘적휘적 걸어오는 박아바이… 《녀석두, 비옷이나 입고 나올것이지. 자, 이거라도 걸쳐라.》 아바이가 주는 비옷을 받아들고 싱긋 웃으며 나는 장난궂게 대답했다. 《아바이두… 언젠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엉치에 돋은 뿔을 떼기가 그렇게 쉽겠습니까.》 껄껄대는 아바이의 웃음소리.… 비는 어느덧 즘즛해지기 시작했다. 비거스렁이가 시작되려는듯 눅눅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주는 강바람이 서느럽게 불어와 우리의 땀이 난 몸을 기분좋게 식혀주었다. 《어허… 참, 좋은 밤이로군. 성철이가 저 은행나무때문에 울적해하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오늘은 이렇게 비바람속에서 밤을 다 새우구. 우리 나많은 사람들이야 이 멋에 오래 살고픈거지. 성철이, 이제 군대에 가서도 이밤을 잊지 말라구. 누가 알아주고 내세워줘야 멋인가? 그저 우리가 가꾸는 이 거리로 언제든지 지나가실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활짝 핀 꽃들과 가로수들이 멋있다고 기뻐하실 그날을 위해 사는것이 우리거던. 그저 한생을 이밤처럼 사는것이 바로 애국이 아닐가. 어허… 오늘은 참 내 가슴이 다 찡해지는군.…》 하늘에서는 유난히도 반짝거리는 북두칠성이 우리의 모습을 대견하게 내려다보고있었다. 허리가 꺾이지 않게 새끼줄로 빙 둘러친 나무들을 돌아보고있는 반장을 바라보던 아바이가 《성철이.》하고 전에 없던 어조로 나를 불렀다. 《난 성철이가 반장과 같은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고 믿어.》 그날에야 비로소 나는 박아바이에게서 반장동지의 가슴속 깊은 곳에 진주처럼 소중히 간직되여있는 그 귀중한것에 대하여, 그 귀중한 믿음을 안고 걸어갈 애국의 먼먼길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전해들을수 있었다. 반장동지가 중대장으로 사업하던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이름없는 산중초소를 찾아주시였다. 중대군인들의 훈련도, 미숙한 노래와 춤도 다 보아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떠나기 아쉬우신듯, 못다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오래도록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주보이는 수림을 가리키시며 저것이 과수원인가고 물으시였다. 거기서는 왕밤나무, 사과나무, 추리나무 등 과일나무들이 산들바람에 설레이고 실하게 자란 아카시아나무가 그윽한 꽃향기를 내뿜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좀전에 차를 타고 들어오면서 보니 마치 수림속에 들어오는것 같았다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매 나무들마다에 있는 명찰표를 보니 군인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데가 없다고, 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는것은 애국심의 표현이라고, 이 부대는 애국자부대라고 과분한 평가를 주시였다. 바로 그날부터 반장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초소에 다시 모시기 위해 모든 힘과 정열을 쏟아부었고 뜻밖의 산사태로 나무모밭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귀중한 나무모들을 지켜내기 위해 서슴없이 한몸을 내댔던것이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온 반장동지는 자진하여 우리 평양의 거리를 푸르게 가꿔가는 사업에 나섰던것이였다. 《성철이, 반장은 언제 한번 자신이 군복을 벗었다고 생각지 않지. 그래서 우리 작업반도 언제나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세우자고 애쓰는거야. 그러니 군인의 자격이라는게 과연 뭐겠나. 혁명의 선배들처럼 조국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한줌의 흙도 사랑하고 지킬줄 아는 참된 애국의 뿌리를 가질 때라야만이 바로 선군시대 군인이 될 자격이 있는게 아니겠나. 바로 그걸 성철이의 가슴속에 심어주자고 반장은 때로 욕두 한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가슴속에 그득한 그것을 한두마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던것이다. 한생을 오로지 경애하는 장군님을 받드는 영원한 《군인》으로 살고있는 이런 수천수만의 애국자들로 하여 내 조국의 미래는 그토록 창창한것이 아니겠는가. 아, 바로 나의 삶을 다 바쳐 따라배워야 할 사람이란 반장동지와 같은 이런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나의 눈앞에는 어느덧 아름답고도 웅장한 화폭이 펼쳐졌다. 바다처럼 솨―솨― 설레이는 끝간데 모를 숲의 바다가 보인다. 이깔나무, 백양나무… 수천수만그루의 나무들, 그 거대한 숲의 바다속에는 비로소 대지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한그루의 작은 은행나무도 보인다. 외토리로 선 나무들은 폭풍에 꺾이고 사태에 밀려 떠내려가도 이 무성한 숲은 끄떡없이 솟아있다. 그 어떤 힘도 이 숲을 건드리지 못할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수천수만의 나무들이 오직 어머니대지에 억년 가도 끄떡없을 뿌리를 박고있기때문이다. 생각에서 깨여난 나는 비바람을 이겨내고 더 억세여진듯싶은 그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맹세다졌다. 은행나무! 나도 너처럼 억세게 살리라고. ×
그후 나는 그리도 소원이던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초소로 떠나는 날 아침 나는 작업반원들과 함께 푸른 잎새를 살랑거리는 그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옮겨심었다. 은행나무의 미츨한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감회로움에 잠겼다. 《한그루 더 심을수도 있겠는데…》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없으리라. 은행나무를 심으며 반장동지는 나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은행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세도 곧바르게만 자라지. 절대로 병들어서 쓰러지지도 않고… 난 성철이가 한생을 오직 이 은행나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을 받들어 억세게 살리라고 믿어.》 간혹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군 한다. 병들고 연약했던 나의 마음의 뿌리를 감싸안아 움을 틔우고 꽃피고 열매를 맺게 진심을 기울여준 작업반장이며 우리 반원들, 이들을 키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의 해발이 없었다면 그 누가 애국에 대해 론하고 사랑에 대해 노래하겠는가. 태양이 있는 한 뿌리는 절대로 썩지 않을것이다. 나는 보초근무에 나간다. 영원히 경애하는 장군님을 받드는 애국의 길, 그 길에 내가 심고온 은행나무는 이 땅의 수많은 거목들과 더불어 더 크고 더 무성하게 아지를 펼치고 알찬 열매를 익혀낼것이다.
(선교원림사업소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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