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11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아버지의 노래


김 병 훈

 

훈풍이 시그러운 5월의 동해는 고요히 저물었다.

매바우곳을 왼편에 끼고 바다를 맞바라보며 자리잡은 제철소에서는 1호용광로와 우리 청년돌격대원들의 손으로 복구되여 어제 첫 불길을 올린 제2호 용광로 굴뚝에서 연기가 피여오르고있다. 웅― 하는 전류의 세찬 웨침과 함께 용접공들의 《번개불》이 벙긋벙긋 밤하늘을 가를 때마다 복구중에 있는 제3, 4호로도 우중충한 철탑들이 판화처럼 드러나군 한다.

캄캄한 바다 수평선으로부터는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며 달려와 우리가 앉은 기슭의 바위를 붙안고 처절썩 구슬처럼 흩어진다.

화토불은 파도에 실려온 싱그러운 바람이 얼싸안아줄 때마다 확 솟구쳐 불꽃을 탁탁 튕기고있다. 그때마다 이야기를 기다려 지배인을 주시하는 맑은 눈동자들이 유난히 빛난다.

지배인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마치 잊었던 그 무슨 귀중한것을 찾아내기라도 할듯 심각한 표정으로 화토불을 들여다보고있다.

아마 이야기거리를 생각해내고있는 모양이였다.

모두들 《지배인동무는 노래부를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정하였었다.

그는 작업휴식시간때마다 벌어지는 각 작업장에서의 오락회에 수백차례를 참가하였고 그때마다 우리와 함께 유쾌히 웃었으며 때로 흥이 겨우면 손벽으로 장단을 맞추면서 두레춤속에 뛰여들어 돌아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에게 노래부르라고 지명하기만 하면 그는 금시 불에 덴 사람처럼 화닥닥 일어나 머리와 손을 함께 설레설레 흔들며 다른 작업장으로 뺑소니치는것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지배인동무를 노래엔 소질이 없으며 따라서 노래는 한마디도 부를줄 모르는  사람이려니 《단정》하여버렸던것이다.

그러나 바로 두달전에 우리의 《단정》은 오산이였다는것이 판명되였다. 그날 제1호 용광로에 첫 불길을 올린 우리 제철소에선 야회가 벌어졌었다. 예정됐던 행사와 프로가 끝났지만 사람들은 흩어지려 하지 않았다.

온 제철소가 하나의 불덩이로 싸워 통일과 사회주의락원의 담보인 저 거창한 용광로에 불을 지폈거니 이 보람찬 밤, 밤이 새도록 노래하며 춤추고싶은것이 야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심정이였다.

그리하여 가설무대에서는 《자청프로》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신이 난 사람들은 저마다 무대에 뛰여올랐고 있는 재간, 없는 재간 모조리 다 털어놓았다. 장내는 막 흥성거렸다.

춤이라군 냄새조차 피운적 없던 용해공 박동무가 꼽새춤을 추어서 관중들이 입을 딱 벌리게 하였다. 6척이 실한 이 장년은 성큼성큼 무대에 나서자 무대앞에 앉은 몇동무의 저고리를 벗겨 둘둘 말아 등에 밀어넣더니 제법 악대더러 노래의 반주를 분부하였다. 그가 얼마나 익살스레 춤추며 돌아갔던지 끝내 관중들은 허리를 그러안고 눈물까지 흘리고야말았다.

박동무의 춤이 끝났을 때 뜻밖에 무대에 나온 사람은 지배인이였다.

관중들은 의아하여 서로 마주보며 수군거렸다.

지배인은 무대복판에 나와서더니 인민학교(당시)학생처럼 굽신 경례하였다. 그리고 빙긋이 웃더니 《동무들, 내가 여적 노랠 부르지 않은것은… 건 내가 무슨 재샐 한때문이 아니라 하두 목청이 딱한지라 즉 퉁쇠 뚜드리는 소리같으니 남에게 들려줄 소리는 되지 못한때문이였습니다.

그러나 내 오늘은 부르겠습니다. 저걸 보십시오.

사회주의공업화의 어머니인 우리 제철소 용광로에 저렇게 불길이 타번지는데 내 어찌 노랠  안 부르겠습니까.》 하고 평소에 침착한 그답지 않게 흥분하여 주먹을 쥐고 연설을 하더니 정말 노래를 불렀던것이다.

 

두만강 푸른 물에

혁명군이 배 띄웠다

가슴에 불길을 올려라

에루화 싸움터 가잔다

둥그레 당실…

 

사실 목소리도 망칙하고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노래엔 정열이 넘쳤고 지배인은 자기의 온 심장으로 노래를 불렀기때문에 청중은 노래가 끝난 뒤도 한참이나 멍청하니 가수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앞쪽에서 누군가 《재청!》하고 웨치는 바람에야 그만 정신들을 차리고 《재청!》에 호응하여 박수갈채를 퍼부었다.

그후로부터는 오락회에 참가했다가 뺑소니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 지배인은 의례 그 노래를 불렀고 그리고 그 노래는 《지배인의 노래》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면서 온 제철소를 휩쓸어 류행하였다.  그런데 이 노래는  우리 청년돌격대원들속에서 물의를 일으켰다. 그것은 곡조는 민요《청진포배노래》이지만 가사가 전혀 다르다는것때문이였다. 좋은 민요곡에다 왜 《두만강 푸른 물에 혁명군이 배 띄웠다…》 라는 가사를 붙여 불렀을가?…

그런데 지배인으로 말하면 항일유격대시절에는 한다하는 지휘관이였고 조국해방전쟁때엔 ×군단 군사위원이였고 오늘은 사회주의건설의 진두에 서있는, 반생을 혁명속에 살아온 투사가 아닌가! 그러한 혁명투사들에겐 《전설같은 일화》도 많은 법이니 필경 지배인의 노래와 그의 생애간에는 무슨 곡절이 있을것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우리는 조국해방전쟁때에 지배인과 한 군단에서 싸운 용접공 박동무에게서 전투가 가렬하여 몇밤째 뜬눈으로 작전을 지휘하게 되는 어려운 밤이면 군사위원의 엄페호에서 종종 《청진포 배노래》의 곡조가 흘러나온다는 풍문이 온 군단에 떠돌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타자수로 일하는 경심동무의 말에 의하여 지금도 밤늦게 책상머리에서 무슨 계획을 골똘히 짜다가도 생각이 막히고 지치면 문뜩 일어서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불꽃 튀는 건설장을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 노래를 부르더라는것도 알게 되였다.

가장 어려운 때와 가장 즐거운 때에 지배인이 부르는 단 한가지의 노래… 그리하여 우리는 그 노래 뒤에는 어떠한 곡절이, 즉 《전설같은 일화》가 반드시 있으리라는데 더욱 확신을 갖게 되였고 기회를 타서 지배인으로부터 그 곡절을 들으려는 간절한 욕망을 갖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기회마다 수십차례에 걸쳐 노래의 《곡절》을 들려줄것을 요구하는 우리의 간절한 청원을 굳이 응낙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만을 몹시 싫어하는 그의 소박한 성미때문이였을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야기를 들어내고야말 《음모》에 골똘하였다. 그러던 차에 오늘 밤 우리 돌격대 분초급단체는 소년단시절을 추억케 하는 우등불모임을 조직하여 지배인을 모셔놓고 은근히 이야기를 청했던것이다. 그런데 그는 《좋소, 이야기하기요. 돌격대친구들!》 하고 뜻밖에 선뜻 응낙하였다.

옆에 앉은 김동무는 《래일 아침 해가 서산마루에 올라앉을거야.…》라고 수군거렸지만 그보다도 아마 가렬한 싸움을 이겨낸 영웅조국땅 사회주의공업화의 어머니인 우리 제철소에서 연거퍼 두개의 굴뚝에서 연기를 뿜어올리게 한 보람찬 오늘이, 그리고 5월의 바다가 해풍 후더운 이밤에 빨찌산 우등불도 회상시키는 우등불을 피우고 젊은 건설자들과 마주앉은 무량한 감개가 그의 마음을 구슬린 모양이였다.

생각에 잠겼던 지배인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동무들, 실상 그 노래는 나의 노래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의 노래라우. 이제 그 곡절을 얘기할테니 들어들 보우.》 하면서 좌중을 빙 둘러본다. 젊은 돌격대원들은 더욱 의아와 호기심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지배인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지배인은 담배물부리를 들어 어둠속에 희미하게 드러누운 남쪽해안선을 가리키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이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수십키로만 가면 룡포라고 하는 작은 어촌이 있는데 바로 그곳이 나의 고향이라오.

우리 집은 조상때부터 어부로 대를 이어 내려왔고 특히 나의 아버지는 그 일대에서 〈바다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이름난 어부였소.

내가 이렇게 키도 작고 초라한 체구이지만 (그러나 지배인동무를 보고 누가 초라한 체구라 하랴. 키가 좀 작은편인건 사실이지만 어깨가 떡 벌어진 다부진 몸매에 뚜드려낸 강철같이 탐탁하고 정력찬 얼굴, 언제나 맑고 어글어글한 눈매… 결코 초라한 체구는 아니다.) 아버지는 키가 6척에 가깝고 〈고래가 그물에 걸려도 끌어올릴거야…〉라고 동네사람들이 말하다싶이 힘도 장수였다오.

그래 아버지는 자길 닮지 않은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던지 날 무릎에 앉히면 시꺼먼 눈섭밑에 으리으리하게 빛나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넌 내 아들이 아니다. 넌 지나가던 등곱쟁이가 다리밑에 버린것을 주어다 길렀단다, 요 꼬마둥아!〉 하고는 꽛꽛한 턱수염을 나의 볼에 벅벅 비비면서 껄껄 웃으시군 하였소.

금방 수평선에서 몰려온 검은 구름떼가 하늘을 꽉 덮어버리고 새바람이 울부짖으며 산더미같은 파도가 달려와 기슭의 바위를 붙안고 부서지는 험한 날씨일지라도 만일 아버지가 배전에 서서 소리개 나래같이 눈꼬리를 치켜뜨고 불같은 시선으로 수평선 저쪽을 꿰뚫어 바라보시다가 《닻을 감아라!》 하고 호령하면 배사람들은 서슴없이 돛을 달고 풍랑을 헤쳐 배노래 우렁차게 부르며 바다로 떠나가군 했다오.

그러나 아무리 해가 쨍쨍 내려쪼이고 순풍이 잔잔한 물결을 어루만지는 화창한 날씨일지라도 아버지가 배전에 서서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보시다가 곰방대를 배전에 탁탁 털며 〈틀렸네! 들어들 가세.〉 하면 사공들은 여느때보다 더 단단히 바위기둥에다 바줄을 비끄러매놓고 마을로 들어가버리는것이였소. 그런데 그런 날이면 의례 밤새 무서운 폭풍우가 바다를 휩쓸군 하였다는것이요.

아버지는 〈청진포배노래〉를 무척 좋아하셨소.

어머니는 늘 고물에 키를 잡고 서서 굵고 거칠고 걸걸한 목소리로 〈청진포배노래〉의 구성진 가락을 넘기시며 바다로 나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장했다는것을 두고두고 외우셨소. 그러다보니 어머니도 처녀시절엔 그 모습때문에 퍽 속을 태우신 모양이더군, 하하…》

이 말을 하면서 지배인은 껄껄 웃었다. 우리도 함께 웃었다. 그러자 문득 지배인은 웃음을 거두고 수평선 저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곡절많은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에게서 항용 볼수 있는 환희와 서글픔이 한데 얽힌 야릇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윽고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가을, 시꺼먼 연기로 하늘을 덮고 퉁탕거리는 육중한 폭음으로 어촌의 고요를 깨뜨리며 〈일장기〉를 단 괴물같은 기계배들이 룡포에도 들어왔소. 마을엔 왜놈들의 수산조합이란게 들어앉고, 목선으로 고기잡던 아버지와 조선사람어부들은 파산당하고, 다음엔 오히려 〈덕분〉에 망한 바로 그 수산조합발동선에 밥줄을 매달게들 되였다오.

쩍하면 여덟팔자수염을 활대처럼 뻗치고 고래고래 짖어대는 왜놈조합장도 조합장이려니와 돼지처럼 배때기가 똥똥하고 앙가슴에 곰처럼 털이 시꺼먼 왜놈선장과 심술궂은 키다리인 왜놈기관장―〈하라마끼〉(배띠)에 권총을 품은 이 두 왜놈이 또 어지간한 놈팽이들이 아니였던 모양이요.

한번은 풍어기에 하두 잡이가 좋아 조선사람어부들에게도 백동전 몇푼씩 돌아가게 되였더라오.

그런데 왜놈선장은 그마저 중간에서 가로채가지고 기관장놈을 끼고 갈보집에 가서 진탕치도록 술을 처마셔버렸더라오.

그날 저녁 굶은 안해와 어린 두 자식을 집에 두고 자신도 또한 허기져서 등에 붙은 배를 그러안고 아버지는 바다로 나갔소.

둔덕에 서서 아버지는 바다를 바라보았소.

캄캄한 밤속, 어데선가 등때기를 번뜩거리며 산채같은 파도가 달려와 배전에 부딪쳐 까맣게 높이 솟구쳤다가는 포말을 뿌리며 왈칵 무너져내리군 하였소. 그때마다 아버지의 가슴속에서도 뜨거운 울분의 뭉치가 울컥울컥 가슴을 치받군 하였소.

갑자기 등뒤에서 왁작 고아대는 소리가 들렸소.

돌아다보니 왜놈선장과 힘은 세나 마음이 어진 어부 춘보가 뭣때문엔가 서로 말다툼을 하고있었소. 뚱뚱한 배때기를 딱 버티고 뒤짐을 지고 서서 발을 땅땅 구르며 호통치는 선장놈에게 춘보가 한발 다가서면서 〈못하겠소! 배가죽이 등뼈에 까부라들어 꼼짝 못하겠소. 통 건지러 바다로 들어갔단 내가 못 나올테니… 까짓 빈통 한개와 내 목숨을 막 바꿀수는 없소!〉라고 하였소.

〈뭣이 야로!(이놈자식)〉하면서 선장놈은 앙바틈한 터거리를 바르르 떨며 춘보에게 와락 달려들더니 멱살을 틀어쥐고 〈당장 들어가라!〉하고 고래고래 호령하면서 춘보의 정갱이를 걷어찼소. 비칠거리며 몇발자국 뒤걸음친 춘보는 딱 버티고 서더니 큰 눈을 떡 부릅뜨며 악에 질린 목소리로 〈못하겠다, 이 개새끼야!〉라고 웨치면서 와락 달려들어 선장놈의 배때기를 냅다 걷어찼소. 선장놈은 〈끙!〉소리를 지르며 갑판우에 나동그라졌소. 춘보가 다시 달려들려고 하는데 선장놈이 몸을 일으키더니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들었고 그 순간 〈탕!〉하고 총성이 울렸소.

〈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춘보가 몇걸음 비칠거리더니 가슴을 그러안은채 몸을 외로 꼬면서 털썩 갑판우에 쓰러졌소.

아버지는 달려가서 춘보를 안아 일으켰소. 다른 어부들도 우우 몰려왔소. 선장은 권총아가리를 훅 불어 허리춤에 꽂으면서 아버지에게 〈이 자식을 어서 물속에 처넣어라!〉고 명령하였소.

아버지는 한동안 감각을 잃은 사람모양으로 멍하니 춘보의 시체를 바라보았소. 가슴을 그러안은 춘보의 손가락새로 선혈이 콸콸 솟구쳐 갑판우에 흘렀소. 춘보의 사지가 경련하듯이 꿈틀거리더니 입이 열리며 무엇인가 말할듯 벙긋거렸소. 그러나 그 순간 입이 왼쪽으로 뒤틀리며 목구멍에서 꿀꺽! 하고 소리가 나더니 시뻘건 피뭉치를 왈칵 토하면서 흉하게 뒤집힌 눈을 부릅뜬채 꽛꽛해져버렸소.

〈춘보! 춘보!〉몸을 잡아흔들었으나 춘보의 심장은 이미 멎어버렸던것이요.

갑판우에 춘보의 시체를 고이 눕히고 일어선 아버지는 선장놈에게 한발 다가서며 불같은 시선으로 그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소.

피둥피둥한 배때기, 멸시와 조소에 씰룩거리는 번질번질한 볼따귀, 게다가 트륵거리며 게트림하는 입에서 확 풍기는 술냄새… 순간 아버지의 오장은 막 뒤틀렸고 뜨거운 뭉치가 왈칵 목구멍에 치받쳤소. 그러자 선장놈이 비실비실 뒤걸음치며 허리춤에 손을 지르더니 〈이놈자식! 처넣으라는데 귀때기에 말뚝이나 처박았소까!〉하고 불호령하였소.

순간 닻줄같이 굵은 아버지의 웃수염이 부르르 떨더니 〈으윽!〉하고 말도 웨침도 아닌 신음에 가까운 소릴 지르며 비호같이 선장에게 달려들었소. 다음순간 〈으악!〉비명을 지르며 검은 덩어리가 캄캄한 밤속으로 날아가더니 〈첨벙!〉하는 물소리가 났소. 몇분후엔가 기관장실에 우우 몰려간 어부들이 흉물스레 긴 팔다리를 버드럭거리는 키다리 기관장놈마저 노호하는 파도속에 집어던져버렸소.

배에는 조선사람어부들만이 남았소. 의논들이 벌어졌는데 이렇게 된바엔 배머리를 북쪽으로 돌려 좋은 세상 왔다는 곳으로 가자는 아버지의 의견에 한결같이 찬성들 하였더라오.

그래 그길로 집에 돌아와 각기 처자를 싣고 그밤으로 배머리를 북쪽으로 돌렸소. 그러나 도중에서 배에는 고장이 생겨 할수없이 길주 가까운 어느 무인지경 해변에 상륙하여 뿔뿔이 헤여져버리게 되였소.

한달이나 방랑한 끝에 우리 네 식구는 함경북도 무산땅에, 더 따져말한다면 무산에서도 50~60리 두만강상류를 따라 올라간 궁벽한 강기슭에 발을 붙이게 되였소. 가까운 인촌이래야 30~40리 상거한 험한 고개너머에 ××동이란 작은 동네가 하나 있었을따름이였소.

이곳에서 아버지는 손수 배를 깎아 두만강에 띄우고 그 세찬 물길을 혼자서 저어 오르고 내리면서 그물을 치고 고기를 낚아 살아가게 되였소. 그러나 그때부터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청진포배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였고 그 불타던 눈동자는 재앉은 숯덩이처럼 흐려지고말았소.

잡은 고기는 태반 ××동에 있던 일제의 국경경찰대에 팔지 않을수 없었소. 팔았다느니보다 뺏겼다는게 적당한 표현일게요. 경찰대에 뺏긴 날이면 아버지는 동전 몇푼을 어머니곁에 내동댕이치고 한숨을 쉬면서 담배만 뻑뻑 빨으셨소. 그리고 그런 날이면 의례 온 집안식구가 모래무치 대가리만 둥둥 뜬 죽물을 훌쩍거렸소.

한번은 아버지가 장에 갔다가 열흘만에야 돌아오셨소. 경찰대원 한놈이 눈깔을 부라리며 고기가 잘고 적다고 까박을 하더니 나중엔 〈알맹이나 장마당에 팔아처먹고 찌께기나 가져왔소까?〉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눈등에 불이 탁 튀도록 아버지의 귀통을 후려갈겼소. 그때 머리꼭대기까지 피가 칵 치받친 아버지는 대뜸 그놈을 공중 들어 시궁창에 처박고말았던것이요.

목검으로 실컷 뚜들기고난 뒤 경찰대장놈은 팔자수염을 쭝긋거리면서 총살이요, 10년징역이요 하고 을러대더니 마침내는 〈그러나 앞으로 잡는 고기전부 우리한테 팔아준다고 하면 놔주겠다!〉하면서 엉큼하게 얼리더라오.

대답대신에 아버지는 경찰대장 발밑에다 가래침을 퉤 뱉고 어덴가 창바깥만 멀거니 바라보았소.

그러자 눈깔이 휘딱 뒤집힌 대장놈… 그리고 다시 아버지에겐 목검의 뭇매가 날아들었소.

그런데 뜻밖에도 열흘째 되는 날 아침 총살한대도 끄떡하지 않던 아버지가 자진하여 경찰대장앞에 가서 앞으로 고기는 잡는대로 바치겠다고 선뜻 굴복조건을 승인하고 놓여나오셨소. 경찰대병영앞에서 기다리던 우리 세 모자를 만나자 아버지는 류달리 벙글거리시며 그때 세살나던 내 누이를 번쩍 안아올리더니 입까지 맞추시였소.

난 아무리 생각해도 리해할수 없었소. 치욕앞에선 당장 몸이 열동강이 난대도 어데 굴복할 아버지신가?!… 그런데 선뜻 굴복했을뿐더러 게다가 벙글거리며 좋아하시니…

그런데 이튿날 강으로 나가시면서 아버지는 문득 〈동호야, 오늘부턴 날 따라다니면서 배일을 배워라!〉고 분부하셨소.

〈예?…〉하고 나는 어리둥절하였소.

하늘이 무너져도 너만은 〈배놈〉안 만든다고 하면서 배일은 고사하고 배 타볼 엄두조차 못 내게 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웬일일가?… 역시 이 두번째 수수께끼도 풀지 못한채 하여튼 강에 나가 배탄다는 바람에 좋아라 하고 나는 껑충 뛰여 따라나갔소.》

지배인은 잠시 이야기를 끊었다. 꺼진 담배물부리에 다시 불을 켜대고 한모금 길게 들여마시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두만강에도 봄은 봄대로 역시 아름다운것이라오. 춘삼월이 다가고 4월이 되도록 살을 에이고 뼈속까지 찌르는 극성스런 북풍이 그냥 아우성을 지르며 불어대고 석벽처럼 얼어붙은 강판은 다시 녹지 않으며 두만강엔 영원히 봄이라군 돌아오지 않을듯 한 날씨가 계속된다오.

그러나 어느날 밤 문뜩 바람이 돌아서면서 별안간 후더분한 봄날씨가 시작되며 석벽같던 강판도 며칠밤새에 지심 터지는듯 한 굉음이 울리며 퉁겨지고 복판으로부터 푹푹 꺼지기 시작한다오.

그러자 또 며칠이 지나면 강언덕 여기저기 애버들숲에 연두빛이 오르고 야들야들한 버들개지가 눈을 뜬 기슭을 눈석이로 범람한 시뻘건 강물이 겨울의 찌꺼기인 얼음덩이들을 몰고 세차게 흘러내려간다오. 이때면 물오리떼 까맣게 날아와 여울에 앉고 흰 물새 높이 떠서 긴 목청으로 울며 날아다닌다오. 이리하여 때늦게야 찾아온 두만강의 봄바람은 그대신 단 며칠동안에 낡은 계절을 자취도 없이 구축하여버린다오.

그래 고된 생활속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 고장 사람들은 설한풍 모진 칼바람 이기고 찾아온 후더운 봄바람을 가슴깊이 후련히 들여마시며 행여 금년엔 그 바람속에 이 모진 운명의 멍에 짓부시고 생활에 꽃피워줄 소식 실려오려나… 애처로운 소망을 걸고 고대하며 범람한 두만강을 바라들 본다오. 그러다가도 사람들은 긴 꿈이요 봄이 꾸며낸 부질없는 환상이려니… 고개를 흔들고 긴 한숨을 내쉬며 벌로 나가 돌밭을 뚜지며 무서운 기아가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는 보리고갤 기여오르는것이였소.

이것이 바로 해마다 오는 두만강의 봄이였소.

아버질 따라 배일을 배우던 이듬해 내 나이 열네살 나던 해 봄이였소.

그런데 꿈도 환상도 아니게 이해 후더운 두만강 봄바람이 휘황한 소식을 싣고 불어왔소.

그것은 동북 간도땅일대에서 조국의 자유와 독립의 기치를 높이 든 조선인민혁명군이 활동하고있으며 그 앞장엔 김일성장군이 계셔 동서에 주름잡아 번쩍거리며 왜놈들을 족친다는 소식이였소.

그 후더운 봄소식은 긴긴 세월 두고 얼어붙었던 가슴들속으로 흘러들어 눈석이물처럼 녹아 범람하였고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굴욕과 절망에 괃아졌던 얼음장을 말끔히 씻어내고 조국의 운명을 구원할 념원에 끓는 뜨거운 피줄기가 넘쳐흐르도록 하여주었소. 그해 이 고장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흥분에 붉어진 얼굴들을 서로 맞대고 후더운 봄소식을 수군덕거리며 뜻깊은 시선과 미소를 주고받군 하였다오.

그러던 봄 어느날, 한밤중에 우연히 잠을 깬 나는 아버지의 잠자리가 빈것을 보았소. 그리고 며칠후엔 아버지가 재밤중에 어덴가 갔다가 거의 새벽에야 돌아온다는것을 알아차리게 되였소.

그런데 그런 날 아침이면 아버지는 류달리 활기 띤 표정으로 강에 나가셨고 때로 폭풍을 앞둔 신포바다 수평선을 노리시던 그 불타는 시선으로 강판을 바라보시며 〈청진포배노래〉를 코소리로나마 부르시게 되였소.

얼마후부터 아버지는 거의 언제나 괴춤에다 한권의 책을 품고 다니셨소. 얼핏 보면 늘 같은 책인듯 하나 살펴본즉 호수가 가끔 달라지는것으로 미루어 자주 다른 책을 바꾸어다 본다는것을 알수 있었소. 아버지는 밤늦도록 그 책을 어유등밑에 펼쳐놓고 읽었소. 때로는 노한듯 눈을 번뜩거리며 주먹을 쥐고 입을 악물었고 때로는 환희에 가득찬 표정을 지으셨는데 그러다가도 흥분이 고조에 오르면 그만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면서 〈그렇지, 그렇게 살아야지!〉하고 웨치시는것이였소.

그리고는 곰방대에 불을 붙여 물고나서 뙤창문을 열어제끼고 두만강을 바라보시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군 하였소.

그런데 한편 경찰대에 바치러 가는 아버지의 고기다래끼가 더욱 무거워지기 시작하였소. 게다가 무거워진 고기다래끼를 보고 입이 헤―벌어진 경찰대장 턱밑에서 아버지는 더욱 깊이 허리를 꺾어 굽신거리면서 다음엔 더 많이 잡아오겠노라고 하는것이였소. 그런가 하면 한편 아버지는 아주 유식한 언변으로 우리 나라가 왜 망했는가? 일제와 그의 앞잡이는 어떻게 조선사람을 못살게 굴고있는가? 등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중에서도 정말 전설만 같은, 맺힌 가슴을 후련히 틔워주는 김일성장군과 혁명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여주었소.

그리하여 그때 아버지의 걷잡을수 없는 모든 소행은 나로 하여금 어리둥절케 하였소. 그 어떤 확고한 신념에 불타는 아버지의 시선, 코소리로 부르는 〈청진포배노래〉, 왜놈들에 대한 증오, 혁명군에 대한 흠모… 그런가 하면 무거워진 고기다래끼와 굽신거리는 비굴한 아버지의 모습… 암만 생각해도 알수 없는 일이였소.

그러나 한가지만은 나도 확신하고있었소. 아버지는 결코 비굴한 사람이 아니며 재밤중에 이불이 비는 날과 책 읽는 밤을 통하여 아버지는 그 어떤 귀중하고 커다란것을 가슴깊이 새겼고 보람찬 그 무엇을 애절히 그러나 침착하게 기다리고있다는 그것이였소.

바로 그해 가을이였소.

하루는 아버지가 〈얘, 오늘은 좀 먼곳으로 가야겠다!〉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쌀 한웅큼과 죽끓일 남비를 준비하라고 분부하셨소. 두어시간이나 잘 걸려서 〈먼곳〉으로 갔는데 그곳 기슭은 너덜겅인 바위벼랑이였소. 벼랑뒤엔 금방 하늘을 썰려는 톱날처럼 생긴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솟아있었고 벼랑을 타고 우거진 단풍과 자작나무들이 불처럼 붉게 타고있었는데 그것은 금방 벼랑에 와락 쏟아져내려 강판에 불이 확 당길것 같았소.

아버지는 나에게 그만 저으라고 하였소. 어데다 그물을 칠텐가 하고 아버지의 눈치만 살피는데 아버지는 강이 아니라 어덴가 멀리 오른편(조선)기슭만 두루 살피고있었소. 그런데 이때에 어데선가 〈짜그르…〉하고 간드러진 메새울음소리가 들려오더군. 난― 거참 새도 멋들어지게 우는데!― 하고 생각했더니만 아버지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오른편으로 저어라!〉라고 하였소.

기슭에서 우리는 젊은 어부 한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며칠전 우리 집에 찾아왔던 두사람의 어부중 한사람이였소. 행색이라든가 중키에 딱 버그러진 다부진 몸매가 언뜻 어부같기도 하나 그러나 그의 갸름한 얼굴, 정력과 리지로 빛나는 눈매는 아무리 봐도 어부같질 않았소. 게다가 그 젊은 어부가 배에 자기 그물을 싣는데 그물을 다루는 솜씨라든가 더군다나 배에 올라탈 때 끼우뚱거리다가 넘어질번 한 그의 서투른 동작은 더욱 나의 의심을 사게 하였소.

아버지는 그를 만나자 덥석 두손을 맞쥐고 잡아흔들면서 빙그레 웃더니 〈걱정마오, 젊은 동무!〉라고 하였소. 새파랗게 젊은 사람에게 아버지가 〈동무〉라고 부르는게 어찌 어색했던지… 그래 언뜻 나는― 건 혁명가들이 쓰는 무슨 암호나 아닌가?― 생각했구려.

아버지는 비칠거리는 어부를 부축하여 고물에 앉힌 다음 정색하여 나를 바라보시며 〈자, 동호야! 저편으로 젓자!〉하고는 삿대를 쥐고 힘있게 물밑을 짚기 시작하였소.

건너편(동북)기슭은 눈앞 지척에 놓였건만 워낙 세찬 물길이여서 반시간이나 온몸에 땀을 후줄근하게 뺀 뒤에야 까맣게 아래로 밀려내려가면서 배를 댈수 있었소.

배에서 부리우는 젊은 어부의 그물을 거들어주면서 나는 그것이 례사것보다는 류달리 무겁다는것을 느꼈소. 기슭에서 잠시 말을 주고받은 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억세게 악수를 나눈 젊은 어부는 그물을 등에 걸머지고 이깔나무 무성한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소.

나는 멍청하니 그뒤를 바라보며 ―그물속에 든게 뭘가?― 하고 생각에 잠겨있는데 〈뭘 멍청했니, 동호야! 자 배머릴 돌려라!〉하며 아버지가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정신이 펄쩍 들어 노를 다잡았소.

그날 우리는 그곳에서 종일 그물을 쳤는데 여느때없이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셔 시종 코소리로 〈청진포배노래〉를 부르셨소. 석양이 강우에 비낄무렵에야 우리는 배머리를 돌렸소. 아버지는 붉게 타번지는 서쪽하늘을 바라보시며 끝내 코소리가 아니라 오래 못 들었던 그 거칠고 걸걸한 목소리로 〈청진포배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소.

그때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노래에 장단맞추어 노를 젓고있었을뿐 나의 온 생각은 다른 곳에서 헤매고있었소. 즉 낮에 〈먼곳〉물목에서 벌어졌던 일이 줄곧 나의 뇌리에 어른거렸던것이요.

―먼곳으로… 메새 울음소리… 이상한 어부… 무거운 그물짐… 〈동무〉… 그래 도대체 그 이상한 어부는 누굴가?… 그물속엔 무엇이 들었을가?… 혹 말만 듣던 〈혁명가〉는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더 참을수 없어 아버지에게 물어보려고 결심하였소. 노래의 한소절이 끝날 때마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세번만에야 간신히 〈아버지!〉하고 불러놓고는 힐끗 눈치를 살폈소.

〈응?〉퍽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버지가 대꾸하며 바라보는 바람에 기운을 얻어 〈아버지, 아까 그 어부는 누구나요?…〉하고 물었소.

아버지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더니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나서 금방 물밑을 짚으려고 쳐들었던 삿대를 배전에 조용히 놓으면서 나의 곁에 와 바싹 다가앉으셨소. 그러자 아버지는 문뜩 안색을 바꾸어 정색하더니 가슴속까지 꿰뚫을듯 어글어글한 정찬 눈매로 이윽히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시다가 〈동호야, 넌 누가 우리의 등깝대기를 벗겨먹는지 아니?〉하고 불쑥 물으셨소.

〈등깝대기를 벗기다니요?…〉하고 나는 어리둥절했는데 〈룡포에서 그리고 이 두만강에서 누가 우릴 못살게 굴었냐 말이다?〉하고 아버지는 다시 물었소.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무엇을 묻는다는것을 알았소. 그래 〈그야 쪽발이 왜놈들이지요 뭐!〉하고 대답했소. 아버지는 나의 어깨를 잡아 꼭 끌어안으시며 〈그렇다, 동호야! 왜놈은 나와 너와 조선사람의 원쑤란다! 그러기에 나는 왜놈들과 멱살을 틀어쥐고 쌈을 시작했다. 그 원쑤놈들을 씨알머리없이 이 땅에서 쓸어내야지!

동호야!  아까 우리가 건네준이는 바로 내가 작년에 경찰대 류치장에서 만났던 혁명가란 말이다. 그리고 그인 나를 이 보람찬 싸움의 길로 이끌어주었단다. 뭣하러 그 경찰대장놈앞에서 선선히 굴복했으며 무거운 다래끼를 메다주군 선웃음치며 굽실거렸으며 게다가 맹세를 꺾고 널 배에 태웠겠니? 다 오늘을 위해서였단다. 우리가 못사는것은 내가 배놈이기때문도, 네가 배놈이 될것이기때문도 아닌 까닭이다. 너와 나, 이 네 팔로 노를 저어 혁명가들과 그리고 총탄과 폭탄을 모두 김일성장군부대로 실어보내서 원쑤놈들에게 불벼락을 안겨줘야 한단다!〉

나는 젓던 노를 와락 팽개치고 벌떡 일어서면서 〈아버지! 그럼 우리도 그이처럼 총메고 혁명군에 가서 왜놈과 맞대고 쌈하는게 좋지 않아요?〉하자 아버지는 히죽이 웃으며 〈그렇게 될 날도 오겠지! 그러나 요 꼬마둥아! 지금은 이 일이 더 소중하다. 인제 아까 같은 어부들이 자주 우릴 찾아올게다. 아버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모든 사람들을 저 싸우는 땅으로― 혁명군으로 건네보내야 한다.

동호야! 넌 날 꼭 도와주어야 한다. 오늘처럼 말이다. 응?…〉하시며 물끄러미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소. 내가 고개를 끄떡하자 아버지는 빙긋이 웃으시며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잡은 뒤 퉤― 하고 손바닥에 침을 뱉아 삿대를 억세게 거머쥐더니 문뜩 북녘하늘을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며 〈왜놈들과 그앞에서 꼬리젓는 개놈들을 이 땅에서 말끔히 때려쫓은 다음 온 백성이 다 잘살수 있는 거 뭐라더라… 오라 사회주의! 바로 그 사회주의를 우리 나라에도 세워야지! 응 ,그렇지, 동호야?!…〉하시며 나를 돌따보았소. 마구 감격해버린 나는 미처 대답도 못하고 또 한번 머리만 끄떡하였소. 참 얼마나 기뻤던지 가슴이 막 울렁거렸고 물속에 뛰여들어 물장구라도 한참 쳐야 씨원할것 같았소.

―야 참 아버지가 날 이렇게 믿어주시누나! 난 힘껏 도와드려야지! 그리고 크면 꼭 총을 메고 〈젊은 어부〉처럼 혁명군에 들어가고… 그중에서도 난 김일성장군이 직접 지휘하는 부대에 꼭 입대할테다!―

이런 생각을 하니 더욱 가슴이 울렁거렸소. 그래 나는 갑자기 전설의 장수나 된것처럼 배전에 거연히 서서 노를 잡고 와락와락 젓기 시작하였소. 배도 내 맘을 알아나주는듯이 씽씽 잘도 나가더군.…

이때 아버지는 붉게 타번지는 서녘하늘을 바라보시며 자작 지은 가사를 달아 〈청진포배노래〉를 부르시였소.

흰 물새 한마리가 활짝 편 두날개에 붉은 노을을 싣고 깃들일 벼랑을 찾아 유유히 날아가고있었소.

아버지가 광복회 회원이라는 사실, 이따금 잠자리가 비는것은 회의에 간때문이며 괴춤에 품은 책은 〈화전민〉(조국광복회가 발간한 잡지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그후에야 차츰 알게 되였소. 또한 혁명가란 내가 공상했던것과 같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인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보통 조선사람인것도 알게 되였소. 그것은 그때부터 어부와 이주민 등으로 가장한― 그러나 알고보면 기름내 풍기는 로동자들이며 뙤약볕에 탄 농민들과 해풍에 거치른 살갗을 가진 어부들인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갔기때문이요.

이듬해 봄 4월이였소.

보천보의 싸움을 한해 앞두었던 이해는 국내 각곳에서 애국자들이 눈석이물처럼 불어나 두만강으로 모여와서는 조국의 심장을 향하여 뻗은 단 하나의 거창한 피줄기인 김일성장군의 혁명군으로 흘러들었소.

국내에서 흘러오는 모든 작은 흐름들을 큰 흐름에로 잇는 고리중의 하나였던 아버지와 나의 영광스러운 초소도 눈코뜰새없이 분망하였고 순간도 긴장과 경각성을 늦출수 없는 보람찬 봄이였소.

그해 아버지는 나이 마흔다섯이였지만 본래 건장한데다가 그즈음 〈배노래〉와 함께 더욱 젊어지셔서 다기차게 삿대를 휘두르시는 바람에 날마다 우리 배는 〈먼곳〉물목을 날개달린것처럼 날아건넜소.

어느날 밤 잠결에 난데없이 몇방의 먼 총소릴 들은 아버지와 나는 이불을 차고 일어났소. 그러나 잠시후 강안은 다시 잠잠해졌소. 우리도 다시 잠자리에 누웠소. 그러나 잠을 청하지 못해 뒤척거렸고 아버지는 연신 곰방대를 털으셨소. 그로부터 한시간쯤이나 됐을 때 문득 밖에서 암호에 의한 삽짝문 흔드는 소리가 들렸소. 아버지는 성큼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셨소. 그러자 삽짝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아버지와 웬 낯선 목소리가 수군거렸소. 이윽고 왼편어깨에 사과궤 같은것을 멘 아버지가 오른팔로 어부차림을 한 젊은 사람을 부축하고 집안으로 들어오셨소. 그런데 젊은 어부의 몰골이 말이 아니였소. 옷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얼굴엔 군데군데 피멍이 졌는데 왼편이마 눈두덩우가 터져서 피가 흐르고있었소. 오른팔엔 수건을 감았는데 피덩이가 거무틱틱하게 응결되여있었소.

그는 물을 청하여 두사발이나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숨을 후― 내쉬고 권하는대로 펴놓은 이불에 입을 악물어 신음을 참으며 간신히 누웠소.

아버지는 빼주(중국의 독한 소주)로 그의 이마 상처를 씻고 무명수건으로 동여주고나서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제 곧《먼곳》으로 갈 준비를 해라!〉고 엄숙하게 분부하시였소.

잠시후 나는 사과궤같은 짐짝을 메고 (궤는 거의 쇠덩어리처럼 무거웠소.) 아버지는 젊은 어부를 부축하고 밖으로 나왔소. 그믐께가 되여 이지러지다 남은 달이 동천에 걸려있는 어설픈 밤이였소.

젊은 어부를 부축하여 배에 앉힌 다음 사과궤 같은 짐짝을 받아싣고나서 아버지는 기슭에 내려서더니 나의 어깨를 살며시 부여잡으시고 〈동호야, 김일성장군님께선 지금 아주 커다란 싸움을 벼르고계신다. 그래 그 싸움에 쓰라구 국내의 로동자들이 저 궤속에 화약을 가득 넣어보냈단다.

한데 지금 냄새맡은 경찰대놈들이 저 동무를 추격하고있구나. 동호야,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니,응?…〉하고 물으시는것이였소.

〈죽는 한이 있어도 화약은 건네보내야지요 뭐!〉

나의 이 대답에 아버지는 벙긋이 웃으시며 나의 어깨를 흔들면서 말했소.

〈용타! 동호야, 우린 열토막이 난대도 저 화약을 날밝기 전에 이 강을 건네여 김일성장군님부대로 보내야 한다. 그러니 동호야! 네가 맡은 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하지 말고 노를 젓는것뿐이다. 알겠니?〉

긴장에 굳어진 나는 입술을 꽉 악물면서 고개만 끄덕이였소. 그리고 돌아서서 노를 들어 기슭을 콱 짚고 배를 힘껏 내밀었소. 배는 스르르 미끄러지며 기슭에서 멀어졌소.

젊은 어부는 나의 동작이 맘에 들었다는듯이 빙긋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여주었소.

두어시간후에 우리는 〈먼곳〉에 도착하였소. 벌써 동이 트기 시작하였고 물안개의 뽀얀 장막을 뚫고 병풍처럼 둘러싼 산봉우리들과 벼랑에 무성한 산림과 두만강 넘실거리는 물결우로 불그스레한 아침노을이 퍼지기 시작하였소.

흐름을 따라 배머리를 동북쪽으로 돌렸을 때 이깔나무 무성한 동북땅기슭이 물안개속으로 희미하게 떠올랐소. 그 기슭을 바라보는 젊은 어부의 얼굴에 불안의 기색이 가시고 금시 아침노을같이 생생한 붉은빛이 떠올랐소.

아버지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자 동호야, 인젠 단숨에 갖다대자!〉 하면서 씽긋 웃고나서 손에 침을 퉤 뱉아 삿대를 거머쥐더니 기운차게 휘두르기 시작했소.

이때에 〈탕!〉하는 요란한 폭음이 울렸고 이어 〈팽!〉하는 쇠째는 소리가 머리우를 쫙 가르며 지나갔소. 순간 발밑의 얼음장이 꺼지는듯 섬찍한 나는 노를 놓고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소. 저편(조선)기슭 상류로부터 청색군복에 각반을 치고 철갑모를 눌러쓴 경찰대원 여라문명이 달려오고있었소.

선두에 칼을 뽑아든 장교(경찰대장인듯싶었소.)는 우리쪽을 향해 무엇이라고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고는 다시 뒤돌아 병정들에게 우릴 가리키며 또 뭣이라고 고함을 질렀소.

그러더니 이번엔 벼랑도 무너질듯 한 일제사격의 총소리가 일어났소. 부끄럽지만 처음 이런 일을 당하는 나는 넋을 잃을 지경이였소.

그러나 그때 젊은 어부는 몸으로 총알을 막을 작정으로 화약상자앞에 턱 들어앉았고 아버지는 또 그 어부앞을 가로막아 떡 버티고 서서 름름하고 잽싼 솜씨로 삿대를 젓고있었소. 아버지는 배머리를 하류쪽으로 곧추 내려박았고 배는 쏜살같이 달렸소. 이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오직 놈들로부터 멀어지는 길뿐이였던것이요.

대장놈은 안절부절하여 미친듯이 칼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질렀고 졸병놈들은 당황망조하여 올려뛰고 내려뛰며 망탕 총탄을 퍼붓고있었소. 우박같이 쏟아지는 총탄은 눈뿌리와 귀뿌리를 팽팽 째고 지나서 물우에 떨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배전에 와서 들어맞기도 하였소.

돌연 〈윽!〉하는 비명과 함께 아버지가 비칠거리더니 머리와 상반신을 꺾으면서 그 자리에 퍽 쓰러졌소. 그러나 아버지는 삿대로 물밑을 지긋이 짚으면서 벌떡 다시 배전에 일떠섰고 의젓이 고개를 제껴 노을 붉은 동녘을 바라보며 계속 삿대를 휘둘렀소. 흰 저고리 가슴팍엔 선혈이 흥건히 배였고 혼솔을 따라 붉은 피방울이 맺혀 배전에 뚝뚝 떨어졌소.

나는 노를 팽개치고 일떠서면서 〈아버지!〉하고 달려들었소.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쏘아보더니 한손으로 나를 칵 밀치며 주저앉히면서 〈정신 빠졌니? 아무 일 없다. 어서 저어라!〉하고서는 자기도 계속 삿대를 휘두르시였소.

아 그때의 아버지의 모습!… 시커먼 눈섭의 한대한대가 금방 날아오를듯 곤두 일어섰고 두눈은 불줄기가 흘러나오는듯 무섭게 번뜩거렸소. 꽉 다문 입술이 비스듬히 열리면서 모멸과 긍지, 증오와 애정…등 서로 상용 못할 감정들이 한데 얽힌 복잡하고 미묘한 미소가 입 가장자리에 흘렀소. 이윽고 아버지는 번쩍 입을 열더니 노래를 불렀소. 거세고 굵은 목소리가 맑은 아침공기를 타고 높이 날아올라 멀리 강심을 울리며 퍼져갔소.

이때에 또 일제사격의 요란한 소리가 강판을 쩍 갈랐소. 〈으윽!〉하는 비명과 함께 아버지가 량미간을 싸쥐고 비칠거리는데 손가락짬으로 선지피가 콸콸 솟구치고있었소. 그러자 다시 〈윽!〉하면서 몸을 외로 꼬더니 그냥 배전에 콱 꼬꾸라졌소.

나와 젊은 어부는 동시에 아버지에게 달려들었소. 상반신을 안아일으켜 무릎에 눕히려는데 갑자기 아버지는 눈을 번쩍 뜨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소. 그리고 노기에 찬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시더니 와락 어깨를 끌어당기며 〈넌 애비보다 나라를 더 사랑한다고 큰소리쳤지! 그런데― 그런데…〉하면서 나의 어깨를 칵 밀치여 제자리에 주저앉히며 〈저어라!〉하고 호령하였소. 그리고 아버지는 으음! 신음하면서 두손으로 삿대를 지탱하여 무릎을 세우며 벌컥 상반신을 일쿼세우더니 피범벅이 된 얼굴을 거연히 제끼고 숯불같이 이글이글 타는 시선으로 경찰대놈들쪽을 쏘아보셨소.

이때 경찰대장놈은 우리가 걷잡을수 없이 멀어진데 질겁하였소. 악에 받친 대장놈은 군도를 막 휘둘러 졸병들을 물속으로 막 몰아넣고있었소. 그중 두놈이 멋없이 쩜벙 물속에 뛰여들었소. 그러나 그놈들은 세찬 물결에 밀려 허우적거리다가 그만 꼼짝 못하고 살려달라 꽥꽥 멱따는 소릴 지르며 떠내려갔소.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그 꼴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갑자기 두주먹을 불끈 쥐여 놈들쪽에 대고 흔들더니 〈으하하하…〉하고 어깨를 흔들며 호탕하게 웃으시였소. 문득 웃음이 끊어졌소. 그리고 아버지는 비칠거리더니 나에게로 돌아섰소. 그리고 불꽃이 튀는 시선으로 뚫을듯이 쏘아보면서 〈동호야! 이― 이 화약을 혁― 혁명군에…〉하더니 말끝을 못 맺은채 그만 고개를 퍽 꺾으면서 거목이 송두리채 부러지듯 쾅! 하고 화약상자우에 쓰러졌소.

나는 와락 달려들어 안아일으켰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신체는 꽛꽛해지고있었소. 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하니 아버지의 얼굴만 쳐다보았소.

젊은 어부가 저고리밑에 손을 넣어 아버지의 가슴을 짚어보고나서 낯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아버지의 가슴에 귀를 대고 고동을 엿듣고는 그만 자세를 바로잡으며 고개를 푹 숙인채 어깨를 들먹거리기 시작했소.

그러자 〈설마?〉하던 한가닥 희망이 나의 온몸에서 와르르 허물어져내렸소. 내가 울음을 터뜨리며 와락 아버지의 가슴팍에 쓰러지려는데 문득 아버지의 감지 못한 눈과 나의 시선이 마주쳤소. 그 순간 나는 살아있는 아버지의 눈을 보았소. 그냥 활활 타고있으며, 불꽃을 튕기고있으며, 나를 쏘아보고있는… 그러자 나에겐 〈동호야! 이 화약상자를 김일성장군님께…〉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심장에 종을 매달고 치는듯 온몸을 잡아흔들었소.

그제야 제정신이 펄쩍 든 나에게 비로소 놈들의 발악적인 총성도 들렸고 뛰여오르는 물줄기도 눈에 띠였소. 성큼 일어선 나는 원대로 아버지를 화약상자옆에 고이 눕히고나서 아버지가 집던 삿대를 거머쥐고 아버지가 섰던 바로 그 배전에 두다리를 떡 버티고 서서 동북쪽기슭을 바라보았소.

나는 가슴에 큰 산이 들어앉은듯 든든해졌소. 아버지의 죽음이 나의 몸과 정신에서 공포와 비겁을 송두리채 뽑아버리고 자꾸만 귀에 쟁쟁한 아버지의 그 걸걸한 〈청진포배노래〉의 가락가락들은 나의 온몸을 싸움에로 불러일으켰던것이요.

나는 유유히 삿대를 놀리기 시작했소.

젊은 어부는 아버지의 얼굴과 가슴에 제 저고리를 벗어 덮어주고나서 내가 젓던 노를 쥐고 외팔로 젓기 시작하였소.

동북땅기슭에 배를 댔소. 젊은 어부는 아버지를 업고 나는 화약상자를 메고 행적을 감추기 위하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소. 두번째 봉우리에서 우리는 어느 츠렁바위밑에 아버지의 시체를 모시고 돌무덤을 쌓아올렸소. 비석대신에 세운 큰 바위돌우에 붉게 타는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다놓고나서 나는 그만 무덤앞에 퍽 쓰러져 울기 시작하였소. 어부는 나를 일으키며 이럴 때가 아니니 어서 자길 따라 혁명군으로 가자고 권고하였소.

―아버지의 시체를 여기 이름모를 산 츠렁바위밑에 묻고 그나마 원쑤를 눈앞 지척에 두고 어데로 갈수 있단 말인가. 그래 나는 그의 권고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원쑤를 갚고 살아남거들랑 산으로 찾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소. 그리고 나는 두만강쪽을 향해 엉엉 울음을 터뜨렸소.

그는 한손으로 자기 가슴에 나를 꼭 끌어안았소. 나의 뒤덜미에 뜨거운것이 방울방울 떨어졌소.

내가 좀 진정하자 그는 나의 손을 꼭 쥐면서 〈동호야! 아버지의 원쑤를 갚으려는 네 심정을 나는 리해할수 있다. 그러나 원쑤는 경찰대 몇놈만은 아니다. 설사 몇놈을 네가 죽였다 할지라도 우리 조선을 강점한 수십만의 왜놈들이 더 많은 조국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학살할것이 아니냐! 동호야! 혼자서 더군다나 빈주먹으로 싸우는것은 좋지 않아! 자, 아버지의 원쑬 갚으려거든 혁명가의 아들답게 눈물을 닦고 어서 일어서서 날 따라 김일성장군님께로 가자!〉하고 말하는것이였소.

나는 이 말에 그만 고개를 번쩍 쳐들며 〈김일성장군님께로요?…〉하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소. 그는 빙긋이 웃으며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였소. 순간 나는 혁명가의 아들답게… 저 화약상자를 메고 김일성장군님께로… 그렇다!― 하는 생각이 펄쩍 들었고 그래 주먹으로 눈물을 벅벅 훔치고 벌떡 일어섰소.

이때 시뻘건 태양이 이깔나무 무성한 동쪽봉우리우에 불끈 솟아올라 이글거리며 타고있었고 그가 거느리고온 수억만 빛발의 창날들이 가로막은 검은 구름장을 꿰뚫고 온 누리에 뻗쳐가고있었소. 그길로 나는 천만배 복수할 그 아침의 태양처럼 증오에 끓어번지는 심장을 가슴에 안고 이름만 듣던 그리운 혁명군으로 젊은 어부를 따라 떠났소.

길에서 줄곧 나는 아버지의 노래를 불렀소.

그후 싸움의 가장 어려운 고비마다 아버지의 노래는 불사조의 넋으로 나를 고무해주었소.》

 

×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선 지배인은 바다쪽으로 돌아서더니 성큼성큼 바위머리에 가서 거연히 섰다. 우리들도 뒤따라 그의 량옆에 가지런히 섰다.

먼 수평선으로부터 검푸른 파도가 등때기를 번뜩거리며 달려와서는 바위를 붙안고 처절썩 구슬처럼 흩어진다.

바다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후손들―혁명의 불길속에 반생을 달구고 벼려낸 강철의 혁명투사 지배인의 눈동자와 젊은 사회주의건설자들의 많은 눈동자들이 모두 이글이글 타오른다. 어느땐가 바로 저 수평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동자처럼…

재빛속에 잠긴 남녘하늘에 검은구름떼가 뭉켜서 꿈틀거린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선렬의 슬기로운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젊은 조선의 심장들은 청춘의 바다 저 동해처럼 높이 설레이며 남녘에도 위대한 우리 시대의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사랑하는 조국땅에 사회주의락원이 만발할 때까지 멎을줄 모르고 내달려야 한다!…

누군가 아버지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어 모두들 그를 따라불렀다.

 

가슴에 불길을 올려라

에루화 싸움터 가잔다

둥그레 당실 둥그레 당실

너도 당실 배를 저어서

혁명군따라 에루화 싸움터 가잔다…

 

5월의 설레이는 해풍을 타고 아버지의 노래는 온 세상으로 퍼져갔다.

 

 주체45(1956)년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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