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11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령도자와 작가

 

시가문법으로 된 영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예술가는 창작에서 독창성을 발휘하여야 문학예술의 발전에도 독자적으로 기여할수 있다.》

예술창작에서는 언제나 새로운것을 지향하고 작품마다 독창성과 비반복성을 구현하여야 한다.

이것은 기성의 작품을 다른 예술형식으로 재현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영화 《백두산》도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령도로 경애하는 수령님의 불멸의 영상을 모신 영웅서사시적인 화폭으로, 력사상 처음으로 시가문법으로 된 독특한 형식의 영화로 창작완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을 며칠 앞둔 주체68(1979)년 4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쁘신 가운데서도 한 일군을 부르시여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영화로 각색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일군은 저으기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이 서사시를 기초로 하여 영화를 잘 만들기만 한다면 그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형상을 중심에 모신 영웅서사시적인 화폭으로 되리라는것은 너무도 당연한것이였다.

일군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또다시 훌륭한 영화의 종자를 잡아주시였다고 흥분을 안고 그길로 창작가들에게 달려갔다.

창작가들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고 감격해마지 않았다.

곧 창작사업이 시작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창작사업은 열의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때 그들이 제일 모대기며 난감해한것은 영화에서 생활이 이어지지 못하고 형상이 토막나면서 감정이 승화되지 않는것이였다.

이 문제를 놓고 그들은 오래동안 론의와 모색을 거듭했다. 결국 그들은 형상에서 이러저러하게 감정이 이어지지 못하는것은 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경우 부득이한것이며 또 영화에는 비약의 수법이라는것도 있기때문에 보기탓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창작을 그대로 내밀기로 하였다.

얼마후 영화를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밝은 미소를 담으시고 영화의 첫부분은 좋으며 눈물나는 장면들도 있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면 허전한감이 있다고, 영화의 구성형식을 통일시키지 않았기때문에 시적형상으로 된 장면들도 있으며 극적으로 생활을 전개시킨 장면들도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금 영화의 장면들이 잘 련결되지 않고 허공 띄운 장면들이 있는데 삽입화면들을 넣으면서 설화형식으로 시를 주어 장면들사이의 형상적공백을 메꾸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잠시 사색을 고르시던 그이께서는 이 영화에서는 시를 혁명가극의 방창식으로 주도록 하여야 한다고, 그것이 이 영화의 문법으로 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시를 혁명가극의 방창식으로!

참으로 독특한 비유이며 명철하신 가르치심이였다.

방창이 혁명가극에서 얼마만 한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고있는지를 잘 알고있는 창작가들에게는 그제서야 영화문법을 놓고 말씀하시는 그이의 뜻이 선명하게 안겨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로 영화에서 시를 설화로 줌으로써 극적인것과 시적인것을 하나로 통일시켜나가는 새롭고 특색있는 영화형식을 창조하시려는것이였다.

창작가들은 솟구쳐오르는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실상 그것은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밝혀지지 않은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 영화형식의 발견이였다.

그때까지 오랜 세월을 내려온 영화사상에는 아직 시를 주제가처럼 넣어 주제사상을 강조한 경우는 있었어도 설화시를 하나의 완전한 형상수단으로 전면적으로 리용한 례는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시를 설화형식으로, 혁명가극의 방창처럼 리용한다면 그것이 인물자신의 립장에서와 제3자의 립장에서 때로는 격조높이 울리고 때로는 정서 그윽하게 흐르기도 하면서 당대사회와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폭넓고 깊이있게 펼쳐보일뿐아니라 장면과 장면을 유기적으로 련결시키고 극조직상 공백을 메꾸면서 영화형상을 능히 전일적으로 통일시켜나갈수 있을것이였다.

창작가들은 비로소 서사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라고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였으며 영화가 가지고있는 결함과 그것을 고쳐나갈 방도도 더욱 똑똑히 알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1980년대에 영화를 만드는 조건에서 1940년대에 나온 원작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수야 없지 않는가고 하시면서 시보다 영화를 낫게 만들며 원작에 있는 일부 시들도 오늘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과 미감에 맞게 고쳐쓸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후 창조집단에서는 새로운 신심과 열정을 안고 작품수정과 재촬영작업을 다그쳤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영화에 들어간 시적설화들이 점차 자기의 고유한 형상적기능을 수행하게 되자 작품은 눈에 띄게 확연히 달라졌다.

그 과정을 통하여 창작가들은 시를 영화문법으로 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독창적인 가르치심의 정당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시로 된 설화가 격동적으로 흘러가는 화면들과 더불어 영화는 몇백몇천마디의 대사나 극적행동으로써도 대신할수 없는 위력한 형상적효과를 나타내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의 빛나는 예지와 탁월한 령도로 력사상 처음으로 시적설화를 문법으로 하는 새롭고 독특한 형식의 영화가 창조되게 되였다.

혁명영화 《백두산》이 창조완성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형상을 모신 또 하나의 독특한 영화형식의 기념비적명작을 가지게 되였으며 혁명영화창조의 앞길에는 더욱 밝은 미래가 열려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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