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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97(2008)년 제10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일 흥
비발은 갈수록 굵어졌다. 창유리에서도 기관실덮개우에서도 콩알같은 비방울들이 연방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있었다. 길옆에서는 급작스레 불어난 개울물이 사품치며 흐른다. 비바람에 휘감긴 나무가지와 잎새들이 비명소리를 낸다. 게다가 사위는 점차 어두워지고있었다. 나는 입술을 감쳐물고 운전대를 잡아돌렸다. 자동차는 연방 몸통을 떨며 가파로운 령길을 가까스로 톺아오르고있었다. (이거 야단났구나.… 이렇게 거부기걸음을 하다가 언제 갑령을 넘어서고 언제 광산 후방기지에 가닿겠는가.) 불안이 깃드는 마음에 짜증이 나고 원망스러웠다. 억수로 내리는 비도, 가파로운 령길과 어둠, 엉기적거리는 나의 자동차도…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불만》스러운 대상은 지금 자동차의 적재함우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후방부 인수원 전세권이라고 생각했다. 장대비를 고스란히 들쓰고있는 그가 측은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전세권의 《탓》이라고 생각하니 그의 고지식하고 변통성이 없는 성미가 더욱 원망스러워났다. 생활은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하게 흘러가는가. 그런데 그 모든것을 자막대기긋듯 하는 그 성미로서야 어떻게 생활의 복잡한 갈피를 헤쳐나가랴. 오늘도 그렇다. 나의 말대로 낮에 곧장 떠났더라면 지금쯤은 벌써 후방기지에 도착했을것이 아닌가. 털어놓고말해서 나는 이번 장거리운행에 많은 기대를 걸고있었다. 이번 장거리운행만 성과적으로 마치면 사람들앞에 나의 실력을 당당히 보여줄수 있었고 인민군대에서 표창휴가로 와있는 중학동창을 위해 마련한 오늘 저녁 축하모임에도 떳떳한 마음으로 나설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랑만적인 기대는 허물어진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얼핏 뒤창너머 적재함우로 눈길을 던졌다. 비맞아 볼꼴없는 모양을 하고있을줄 알았던 전세권은 적재함우에서 펄럭이는 방수포를 여며주느라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엉금엉금 기여다니고있었다. 헌데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있는것으로 보아 휘파람을 불고있는것이 분명했다. 휘파람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 노래는 나도 잘 알고있는것일것이다. 어느결에 어둠은 사위를 흠뻑 덮어버렸다. 이제는 전조등을 켜야 했다. …사실 장거리운행을 보장할데 대한 과업을 받았을 때 나는 무척 기뻤다. 자동차운전사양성소를 나오고 광산후방기지에 운전사로 배치된지 얼마 안되는 나에게 단독으로 장거리운행을 맡겨주었을 때에는 믿는다는것을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다 같이 가게 된 인수원은 전세권이였다. 우리 집에서는 물론 광산에서도 우리 누이와 전세권이 보통사이가 아니라는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였다. 누이는 전세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키에 별로 뛰여난데도 없는 그와 사람들속에서 인물곱고 총명하다고 소문난 광산설계기사인 우리 누이와는 어느 모로 보나 짝이 기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세권은 종합사료분쇄기도면이요 미생물비료생산설비도면이요 하면서 빈번히 누이를 찾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그를 대수롭지 않게 대해주었다. 나의 이 감정을 눈치챘는지 그는 나를 우리 부모들보다 더 어려워하는것 같았다. 이런 그와 함께 이번에 장거리운행을 한다는것이 좀 별난감은 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이번 운행길에서 그를 잘 알아보는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였다. 아침에 내가 집을 나서는데 누이가 따라나왔다. 《운호야, 무사히 잘 갔다와. 그리고 집에서처럼 우뚤거리지 말구 웃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해. 전동지에겐 배울 점이 참 많단다.》 누이는 나의 행동이 마음에 놓이지 않는듯 한마디 했다. 《걱정말아요. 집에서나 내가 막냉이지 밖에 나가선 나도 당당한 운전사라는걸 이젠 누이도 좀 알아야겠어요. 그새 누이는 마광기대치차설계나 완성하세요.》 나는 누이가 괜한 걱정을 하고있는것이 우스워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나를 따라서는 바둑이를 훌쩍 들어 우리에 집어넣고는 걸음을 옮겼다. 보슬비가 내렸다. 내가 차를 몰고 후방부 앞마당에 나오니 풀색비옷을 입은탓인지 한결 더 날파람있어보이는 전세권이 후방부지배인과 마주서서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하― 이놈의 비가 장마로 번져지지 않을가. 파종날자를 미루어선 안되겠는데… 이보우 전동무, 날씨가 좋지 않은데 차라리 몇사람 더 데리고 떠나는게 좋지 않겠소? 그곳 사람들이 도와주긴 하겠지만 지금은 다들 바쁜 때여서…》 전세권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온 광산이 바삐 돌아가고있는데 한사람이라도 떼내서야 되겠습니까. 운전사동무와 둘이서 해내겠습니다.》 나는 상하차로력이 없이 간다는 말에 어지간히 놀랐다. 그러나 후방부지배인이 묻는듯 한 눈길로 나를 바라볼 때 저도 모르게 으쓱했다. 《걱정마십시오. 해낼수 있습니다.》 나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후방부지배인은 믿는다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어떻게 하나 감자종자를 빨리 가져와야 하오. 파종날자가 긴장하오.》 떠나기 전에 전세권은 팔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힘이 들더라도 둘이서 해제끼자는건 좋은 생각이야. 모두가 강성대국건설에 떨쳐나선 오늘 남보다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것은 응당한 일이지.) 나는 누이의 말을 생각해보며 되도록이면 좋게 생각했다. 요즘 우리 광산광부들의 기세는 참으로 높았다. 설비들을 혁신적으로 개조하고 최신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쇠돌생산이 전에없이 부쩍 올라갔다. 그에 맞게 후방기지에서도 새 우량품종의 집짐승을 구입하고 앞선 사양관리방법을 받아들여 많은 고기와 알을 생산하여 광부들에게 공급하고있었다. 우리가 오늘 《ㄷ》군에서 가져오게 될 새 품종의 감자종자도 역시 종전보다 높은 수확을 거두어 광부들의 식생활을 높이게 하자는것이였다. 어제 저녁 후방기지 회의실에서는 긴급히 종업원모임이 있었다. 나도 참가했었다. 며칠동안 보이지 않던 후방부지배인이 흡족한 얼굴로 앞책상에 마주앉아있었다. 책상우에는 주먹만큼씩한 감자알들이 놓여있었다. 《동무들, 이게 바로 〈ㄷ〉군에서 생산한 새 품종의 감자입니다. 연구사들이 새로 연구한 이 새 품종의 감자는 종전보다 훨씬 많은 소출이 난다고 합니다. 우리 군과 기후도 토양도 비슷한 그곳 군에서는 벌써 덕을 보고있습니다.》 (감자때문에 《ㄷ》군에 갔댔구나.) 나는 귀를 기울이였다. 《그곳 군에서는 이 감자를 뒤그루로 심어 2모작을 하고있습니다. 우리도 새 감자종자를 가져다 2모작을 하자는겁니다. 감자종자는 〈ㄷ〉군에서 주겠다고 하니 자동차로 가져오면 됩니다.》 나는 책상우의 감자앞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우리가 《ㄷ》군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비가 멎은 다음 실으려 했으나 전세권이 우기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감자밭으로 뛰여들었다. 밭에서는 이미 농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쉰은 훨씬 넘어보이는 농장원이 우릴 맞아주었다. 은근히 기대를 걸었던 그곳 농장원들의 도움도 받을수 없었다. 예상외로 많은 비가 내리는 통에 농장원들은 다 농장자체로 건설하는 발전소의 언제를 보강하러 갔다는것이였다. 우리는 어쩔수없이 둘이서 감자를 실었다. 질적거리는 밭에서부터 길에 세워놓은 자동차까지 거의 한차나 되는 감자를 메여나르자니 몸은 녹초가 되여버렸다. 준비해가지고왔던 점심도 비내리는 밭 한귀퉁이에서 먹었다. 이때부터 나는 왜 그런지 인수원의 처사가 못마땅해나기 시작했다. 후방부지배인이 주겠다던 로력을 받아왔으면 이런 고생은 없었을게 아닌가.… 《빨리 떠나자요.》 기분이 좋지 않아 나는 뿌옇게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틋하니 말했다. 그런데 그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것 같더니 팔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여기서 백여리 더 내려가서 도소재지에 있는 광산자재상사출장소로 가자고 했다. 나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거긴 왜 간단 말이예요?》 《감자를 심자면 과석이 있어야 해. 우리 출장소에 그 비료가 있다는데 그걸 싣고가야겠어.》 《우린 감자를 싣고오라는 지시만 받지 않았나요. 비료싣는 차야 따로 조직하겠지요 뭐.…》 나는 속이 좋지 않아 반박을 했다. 《떠나오기 전에 부지배인동지와 토론이 있었어. 부지배인동지는 차를 한대 조직할 생각을 하더구만. 그래서 내가 감자종자를 싣고오는 길에 실어오겠다고 했지. 부지배인동진 얼마나 미안해하던지… 운호, 우리 언제나 실리를 먼저 생각하자구.》 하여 우리는 도소재지로 떠나게 되였다. 우리가 비료를 싣고 돌아섰을 때에는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이 초조해났다. 그보다는 배가 고팠다. 하루종일 감자를 싣고 비료를 싣느라 기운이 다 빠진듯 했고 눈앞이 아물거렸다. 나로서는 처음 당해보는 배고픔이였고 과중한 피로였다. 지금쯤은 동창생을 축하하는 모임이 한창이겠지. 저도 모르게 전세권에 대한 고까운 마음이 다시 샘솟아올랐다. 이때 갑자기 차가 한옆으로 기울어지면서 나가지 않는 통에 나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나는 변속을 바꾸고 가속을 주었다. 기관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으나 차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세권의 목소리가 울렸다. 《안되겠어. 내가 내려가서 밀어야겠어.》 그는 적재함에서 뛰여내렸다. 나도 어쩔수없이 차문을 열고 뛰여내려 빠져들어간 바퀴쪽으로 돌아갔다. 불을 비쳐보니 한쪽바퀴는 이미 절반나마 빠져들었고 다른쪽바퀴도 퍼그나 빠져들었다. 《어때 운호, 방도가 없을가?》 《너무 깊이 빠져서 힘들것 같애요.》 나는 맥없이 대답했다. 세권이 얼핏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노력해봐야지. 내가 뒤에서 힘껏 밀겠으니 운호는 박자를 맞춰서 힘을 써보라구.》 《그럼 한번 해보자요.》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영차― 영차―》 움씰거리는 적재함뒤에서 전세권이 기운껏 내지르는 소리가 비발을 뚫고 날아들었다. 가속기를 밟아대는 나의 눈앞에는 축하모임을 위해 즐겁게 모여앉은 동무들의 모습이 영화의 화면처럼 떠올랐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있는걸 알기나 할가?) 나는 속이 안달아났다. …종시 실패라는 쓰디쓴 결과를 얻은 전세권이 운전칸으로 들어왔다. 배가 고프고 맥이 진하고… 나는 그대로 쓰러져 자고만싶었다. 다시금 전세권에 대한 불만이 살아올랐다. 낮에 떠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것이고 있다 해도 제꺽 대책을 취했을것이다. 쏴― 비는 여전히 야단스레 쏟아져내렸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울었다. 그때마다 온통 물바래에 싸인 수림과 도로가 얼핏얼핏 드러났다가는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전세권도 맥이 진했는지 말없이 앉아있었다.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착잡한 생각들이 나의 머리를 어지럽히며 떠올랐다. 어두운 공기를 밀어내며 세권의 휘파람소리가 또 들려왔다. 짙은 정서를 담은 은은한 선률이 운전칸에 가득찼다. 그러던 세권이 문득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호, 저 골짜기로 조금 가면 림산사업소가 있는데 내가 가서 공구들을 얻어올테니 운호는 그동안 차를 건져낼 방도를 좀 연구해보라구.》 전세권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좀 멎은 다음에…》 나는 체면에 못 이겨 중얼거렸다. 세권이 자기때문에 이 밤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미안하였다. 차에 가지고다니던 삽과 곡괭이는 요전번 휴식날 집의 돼지우리를 팔 때 쓰고는 집창고에 넣어둔채 감감 잊고있었던것이다. 부지중 여직껏 《손님》행세를 한것이 죄스럽게 생각되였다. (이제부터라도 팔을 걷고 나서야겠어.) 잠시후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전조등을 켜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리고 불빛에 드러나보이는 삭정이들을 닥치는대로 꺾어들었다. 그것을 적재함밑에 모아놓고 기름걸레로 불을 달아놓았다. 자그마한 모닥불이 피여올랐다. 이제 감자를 가져다가 빙 둘러놓으면 맛있게 구워지리라. 나는 비가 오는 속에서도 감자를 구울수 있는 이 《기발》한 생각에 스스로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인수원동지도 말은 안하지만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하루종일 나보다 더 많이 뛰여다니지 않았는가. 어린 내가 벌써 알아서 처신해야 하는건데…) 나는 적재함우에 올라가 마대를 헤치고 감자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진창을 밟으며 다급히 다가드는 발자국소리가 났다. 《운호, 거기서 뭘해?》 세권의 목소리가 비발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조금만 있으십시오. 내 이제 제꺽 감자를 구워내겠어요.》 《감자를 굽다니… 무슨 감자를?…》 세권이 부르짖으며 다가왔다. 그의 너부죽한 얼굴에서 두눈이 번쩍 빛을 뿜었다. 《무슨 감자라니요?》 나는 마대속을 뒤적이다말고 주춤거렸다. 《내려오지 못하겠는가?》 너무나도 매정스러운 말이였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도 인수원을 생각했는데… 이런 처지에서 감자 몇알이 뭐라구… 적재함아래에서 피여오르는 모닥불빛을 받아 세권의 얼굴이 붉게도 보이고 누렇게도 보였다. 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모닥불을 들여다보다가 곁에 다가온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운호, 큰소리쳐서 안됐어. 하지만 배가 고파도 참구 견디자구. 이 감자가 어떤 감자인지…》 나는 그의 말허리를 끊으며 반박했다. 《그렇지만 이 많은데서 알리지도 않는 감자 몇알이 없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물론 무슨 일이 생길건 없어. 단지 마음이 흐려질뿐이야.》 《?…》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은 물론 옳다. 하지만, 하지만… 세권은 삽을 들고 일어섰다. 《운호, 시작해볼가?》 나는 말없이 삽을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빠진 차바퀴가 굴러나올수 있게 턱을 깎아주었다. 기본적으로 되였을 때 나는 차에 올랐다. (어쨌든 빨리 목적지에 가자.) 나는 연방 가속을 주면서 운전대를 잡아돌렸다. 세권은 부지런히 뛰여다니며 바퀴밑에 돌을 깔고 석비레를 퍼넣었다. 캄캄한 어둠, 내리꽂히는 비발… 세권이 차를 미는지 《영차! 영차!》 하는 웨침소리가 차의 움직임에 맞추어 들려왔다. 앙앙거리며 차는 한치한치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영차! 영차!》세권은 더욱 힘있게 소리쳤다. 확신성있게 움직이기 시작한 자동차는 마침내 구뎅이에서 빠져나와 밋밋한 고개마루에 건듯 올라섰다. 그러자 나의 가슴속에 떠돌던 불안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세권이 훤한 얼굴로 운전칸에 올라왔다. 《헛허… 운호가 수고했어. 역시 솜씨가 있거던.… 자, 이젠 힘껏 달려보자구. 우릴 무척 기다릴텐데…》 그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적재함우로 훌쩍 뛰여올랐다. 차는 가볍게 몸을 떨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불쑥 시장기가 느껴졌지만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침울했던 나의 기분도 사라져갔다. 이제는 제일 어려운 구간을 지나고 령마루에 올라섰으니 마음이 놓였다. 나는 뒤창너머 적재함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이여서 전세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한모양으로 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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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이 되여 자동차는 서풍산리에 도착했다. 이제는 광산의 후방기지가 멀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산골길이 끝나고 평지길이 시작된다. 하늘이 들리면서 황금빛아침해살이 대지를 비쳤다. 까닭없이 기분이 상쾌했다. 푸른 나무잎새들도 환희에 겨운듯 청신한 기운을 내뿜고있었다. 자동차도 경쾌하게 달렸다. 허나 소재지마을을 지나치기 바쁘게 강기슭에 차를 세우지 않을수 없었다. 수중다리가 물에 잠겨버렸던것이다. 나는 그만 맥이 탁 풀렸다. 아무리 날고 뛴다 해도 사품쳐흐르는 저 강물을 어떻게 건는단 말인가. 나는 저도 모르게 세권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도 어두운 얼굴로 무섭게 흘러내리는 강물만 바라보고있을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만에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무슨 방도가 없을가?》 《글쎄요. 참 인수원동지, 빨리 전화를 걸어 여기 형편을 알려주자요.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불가피한 정황에 맞다들렸다구요.》 그러나 세권은 나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무섭게 사품쳐가는 강물만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더니 단호한 결심이 어린 어조로 말했다. 《내 제꺽 마을에 갔다오겠어.》
그는 내가 뭐라고 말할새도 없이 마을쪽으로 달려갔다. (여하튼 물이나 줄어든 다음에 건느는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건 무책임한 일이 아니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좀 아쉬운건 숱한 고생을 하면서 달려온 이번 일이 빛이 없게 된것이였다. 얼마후 마을에 갔던 세권이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바줄타래와 보꾸레미가 들려있었다. 그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운전칸에 앉아있는 나를 불러내였다. 그리고는 너럭바위우에 보자기를 펴놓고 김이 문문 나는 찰떡과 보기에도 시원한 오이김치를 꺼내놓았다.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거 어데서 난거예요?》 《차 이런, 내 이래뵈두 군대때 사관장이였다는걸 모르는 모양이지. 자, 어서 들라구.》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생긴것인지 더 물어볼새도 없이 서너개의 찰떡을 단숨에 먹어치웠다. 정말 세상에 찰떡이 이렇게 맛있는줄은 몰랐다. 《이제 보니 세권동진 정말 보통수완가가 아닌데요. 이렇게 무엇이든 척척 구해오는걸 보니… 군대에선 무슨 재간이나 다 배우는 모양이지요.》 마음이 한결 즐거워진 나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수수하게 생긴 세권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헛허… 운호동무가 그렇게 말하니 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는구만. 운호, 어제 밤엔 나를 많이 욕했지. 무정하다구.… 웃사람이라는게 떨떨해서 운호를 굶겼으니… 그러나 그것도 후날엔 좋은 옛말감이야. 자, 어서 좀 더 들라구.》 이렇게 말하며 그는 떡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순간 코마루가 찡해났다. 《세권동지두 같이 들자요.》 《정말 나도 배가 출출하구만.》 세권도 웃으며 떡을 집어들었다. 요기를 하고나니 온몸에 힘이 솟는것 같았다. 만족한 웃음을 짓고있는 나를 바라보던 세권은 입을 열었다. 《운호는 지금 나를 그 무슨 수완가처럼 생각하고있는것 같지만 사실은 그런게 아니야.》 《?…》 《내가 바줄을 구하러 어느 한 집에 찾아들어갔는데 그 집에선 돌격대에서 휴가온 딸의 식사준비를 하고있었어. 나의 사연을 듣고난 그 집 사람들은 바줄과 함께 대뜸 이 떡보자기를 안겨주는게 아니겠어. 아마 그들도 우리가 밤새 고생했을거라고 짐작한 모양이야. 그들의 성의를 무시할수 없어 이렇게 가지고 온거요. 운호, 우리 이런 고마운 사람들의 진정을 잊지 말구 일을 더 잘해가자구.》 나는 그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뜨거움에 목이 메여 더 말을 할수 없었다. 그러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던 세권은 길 한가운데에 말뚝을 박고 바줄퉁구리의 한끝을 비끄러맸다. 《운호, 차에서 떠나지 말라구.》 이렇게 말한 그는 바줄타래를 슬슬 풀며 다리가까이로 가더니 어느결에 강물에 첨벙 빠져들었다. 나는 대뜸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바줄로 다리의 중심을 표시하기 위해 강물에 뛰여든것이였다. 그 중심을 따라 다리를 건느려는것이였다. 《세권동지, 위험합니다. 빨리 나오십시오.》 《걱정말라구.》 그는 마음을 놓으라는듯 싱긋이 웃어보이였다. 그리고는 강복판으로 천천히 발을 내짚었다. 사나운 물결이 그의 다리정갱이를 휘감았다. 그래도 그는 멈춰서지 않았다. 그는 물속에 잠긴 다리의 한복판으로 한걸음한걸음 전진했다. 나는 가슴을 조이며 그의 헌신적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강 밑바닥으로 커다란 돌들이 굴러내리며 다리기둥을 치는 둔중한 소리가 무시무시하게 들려왔다. 만약 한걸음이라도 잘못 디디면 순간에 물결속에 휘말려 떠내려갈수 있었다. 나는 더는 바라보고만 있을수 없어 차문밖으로 몸을 솟구며 다급히 소리쳤다. 《어쩌자구 그럽니까. 나오십시오.―》 세권은 고개를 돌리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물결을 헤치며 앞으로 발을 내짚는다. 물결이 세찬 강 한복판에 이르자 그는 점점 휘청거렸다. 그때 강웃쪽에서 커다란 통나무가 세권을 향해 쏜살같이 떠내려왔다. 그것을 피하려고 애쓰며 위태롭게 비틀거리던 세권은 끝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곤두박혔다. 《앗!》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물속에 뛰여들었다. 순간 용케도 다시 몸을 일으킨 세권은 나를 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차에서 자리를 뜨지 말라는것이였다. 그는 또다시 앞으로 나갔다. 그의 불사신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속으로는 불덩이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과연 저 인간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자리잡고있기에 저처럼 위험한 강물에도 서슴없이 뛰여들수 있게 하는가. 나는 무엇이라 찍어말할수 없는 크나큰것이 세권의 가슴속에서 불타고있음을 알게 되였고 그에 대한 생각이 새롭게 안겨왔다. 마침내 다리를 건너선 세권은 잔등에 지고간 말뚝을 도로 한가운데에 박고 바줄을 팽팽하게 휘감았다. 다리중심을 표시한 바줄이 물결을 스칠듯 선명하게 그어졌다. 《자, 이제는 시작해보자구. 중심선을 정확히 타면서… 발동을 죽이지 말라구.》 세권은 손나팔을 하고 소리쳤다. 《알겠어요.》 나는 지금까지 느낄수 없었던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구쳐올라 운전대를 억세게 틀어잡았다. 부르릉― 발동소리가 기운차게 울렸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차를 몰아갔다. 철썩― 차머리가 물결을 헤가르며 다리에 들어섰다. 《좋아, 자신있게, 침착하게…》 세권이 마주오며 소리쳤다. 차는 움씰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세권이 앞에서 손짓으로 길을 가리켰다. 그의 몸이 비칠거린다. 어디 상한 모양이다. 그러나 주의깊게 바라보는 그의 눈만은 차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연방 무어라 말하며 벙싯 웃기도 한다. (세권동지!) 목이 꽉 잠겨든다. 《중심선을 놓치지 말라구.》 격려에 찬 세권의 웨침소리가 들렸다. 《걱정마십시오.》 나는 마치 포연서린 전선길을 달리는듯 한 심정이였다. 드디여 차는 강기슭에 이르렀다. 차가 도로에 올라서자 세권은 껄껄 웃음을 터치며 나의 어깨를 힘껏 그러안았다. 《멋있게 해제꼈소. 괜찮아. 하하…》 통쾌한 웃음소리가 눈부신 아침하늘가로 날아올랐다. 나도 이런 정황에서 강을 건너온것이 자랑스럽고 긍지로왔다. 하지만 세권의 희생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나는 진정으로 말했다. 《뭘요, 인수원동지가 선을 그어준대로 따라왔는데요 뭐.》 세권이 정겨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야 혈색좋던 그의 얼굴이 창백해진것을 알아보았다. 《왜 그래요? 어디 상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의 몸을 훑어보며 근심스레 물었다. 《뭐 별게 아니야. 무릎을 좀 긁힌것 같애.》 나의 눈길은 그의 무릎에서 멎었다. 그의 바지에 뻘건 피자욱이 슴배여있었다. 《이거 안되겠어요. 치료를 받고 가자요.》 《그냥 가자구. 사람들이 안타까이 기다리겠는데…》 세권은 내의를 찢어 상처를 감싸맸다. 그리고는 숙연한 표정으로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덧 차안에는 그의 은은한 노래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 사랑하는 조국위해 혁명의 승리위해 장군님은 붉은 철령 오늘도 넘으시네 …
그가 늘 부르던 노래였다. 그러나 은은히 울리는 그의 노래가 얼마나 감동적이였던지 나는 순간에 노래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는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자기의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되여있는 뜨거운 진정을 이야기하고있는것 같았다. 《야, 세권동진 가수가 될걸 그랬어요. 한번 더 듣고싶은데요.》 나는 노래가 끝난것이 아쉬웠다. 세권은 빙그레 웃었다. 《난 사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아니예요. 심장을 꽉 틀어잡는데요 뭐.》 《헛허… 그렇다니 듣기 좋구만. 내 노래대신 이야기나 할가?》 나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차는 어느덧 서풍산리를 벗어나고 광산 후방기지쪽으로 들어서고있었다. 미츨하게 자란 푸르싱싱한 가로수들이 다가오고 물러갔다. 《내가 사관장으로 군사복무를 할 때의 일이야. 어떻게 하면 중대군인들의 식생활을 개선할것인가를 생각하던 나는 어느날 중대부업지에 나갔다가 저녁늦게야 돌아오게 되였어. 그런데 뜻밖에도 중대정치지도원동지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이야기하는것이였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 부대에 새 품종의 콩종자를 보내주셨다고 말이야. 운호도 한번 생각해보라구. 그때의 내 심정을 말이야. 우리 병사들의 식생활에 대해 얼마나 마음을 쓰시였으면 콩종자까지… 우리 병사들을 언제나 위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뜨거운 사랑앞에 우린 눈물을 흘렸어. 그때 나는 굳게 마음다졌어. 언제나 병사들을 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크나큰 사랑의 세계를 안고살자고말이야. 그런데 난 아직… 운호도 알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장을 찾으실 때마다 로동자들의 생활부터 친어버이심정으로 알아보신다는걸.… 운호, 이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광산에도 찾아오실 때 광부들이 풍족한 생활을 하고있는것을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우리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자구.》 세권의 얼굴엔 환희와 랑만이 한껏 어려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커다란 감동만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소용돌이치고있었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세권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뜨겁고 깨끗한 마음이 그의 심장속에 간직되여있는것인가. 그와 함께 달려온 순간순간들이 한줄에 꿰여놓은 구슬알처럼 련련히 이어지며 아름답게 안겨왔다. 그때에야 나는 누이가 왜 그처럼 전세권을 열렬히 사랑하는지 알게 되였다. 지금껏 전세권은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사랑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군인정신으로 달려온것이다. 그래 이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누굴 사랑하겠는가. 《형님!》 나는 가슴가득 차오르는 뜨거운 정을 안고 친근하게 불렀다. 전세권이 고개를 돌렸다. 《운호, 힘들지?》 나는 그의 모습을 이윽히 쳐다보았다. 《아니, 힘이 생겨요.》 《이제 도착하면 휴식하면서 피곤을 쭉 풀라구.》 나는 싱긋이 웃었다. 《형님, 오늘 저녁 우리 집에 꼭 오라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마 우리 누이가… 기다릴거예요.》 《허허… 그래? 그럼 오늘 저녁엔 운호네 집에 가볼가?》 《예. 꼭 오라요.》 우리는 마음껏 유쾌하게 웃었다. 차창밖에는 언제 흐렸던가싶게 파랗게 하늘이 열리고 밝은 해빛이 눈부시게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저 멀리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철의 보화를 품어안은 철산봉의 거대한 모습이 우렷이 드러나보인다. 그 기슭에 자리잡은 광산후방기지가 다가온다. 둔중한 발파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한발파 터친 모양이다. 지심을 흔드는 선광장의 기계동음소리도 들려오는듯싶다. 나의 가슴은 이름 못할 환희로 흥그럽게 설레이고있었다. (함경북도 무산광산련합기업소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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