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9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주 현

                                                                                                                                              

 

나는 벌써 두해째 이 산속의 길을 홀로 걷고있다.

봄이면 골안에 가득히 피여나는 진달래꽃향기며 이끼덮인 바위들과 유표한 독립수들, 때없이 앞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다람쥐 등이 눈을 감아도 환히 안겨오는 이 오솔길, 대자연이 이루어놓은 그 모든 조화가 계절마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이 길을 나는 사랑한다.

특히 키높은 이깔나무의 허리까지 눈속에 묻히는 겨울이 오면 이 길은 걷잡을수 없는 매력으로 나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여기의 설경이 류다르게 아름다와서가 아니다.

나에게 아직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품어본적이 없는 열렬한 애정을 느끼게 해준 추억도 바로 이 계절과 잇닿아있기때문이다.

물론 누구의 가슴에나 한생토록 잊지 못할 추억의 노래가 있을것이다.

하지만 악보책의 오선마냥 줄줄이 뻗어간 통신선들과 마치 거기에 새겨넣은 소절표식처럼 꿋꿋한 전주들이 서있는 여기 산중의 《악보》에 세월의 눈비와 함께 새겨온 노래여서 나에게는 더없이 정답고 소중한것이다.

그 노래는 오늘도 태고연한 수림의 정적속에서 때로 단조롭게 느껴지는 통신병이라는 직무의 사명감을 다시금 깨우쳐주며 나를 변함없는 복무의 길로 떠밀고있다. 통신선로를 따라 이 산중의 오솔길에 찍어가는 복무의 자욱과 함께 새라새로운 선률들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노래는 앞으로도 내마음속에서 울릴것이다.

바로 이 노래의 첫 소절이 가슴에 새겨진 계절은 겨울이였다.

퇴색을 모르는 추억의 계절이 다시 펼쳐질 때면 눈덮인 오솔길우에 어린애를 안고 눈이 없어지도록 웃고있는 병사의 모습이 명화마냥 아름답고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면 마음은 어느새 추억의 선률을 타고 두해전의 그 계절로 날으는것이다.

신입병사훈련을 마치고 이곳 초소에 배치된 후 처음으로 맞는 산촌의 겨울은 벌방지대의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있어서 이겨내기 힘든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아침이면 밤새 내려쌓인 눈때문에 병실문도 열지 못하고 때없이 사태가 나서 눈속에서 넘어진 전주를 세우느라 악전고투하는 일이 드문하였다.

기온은 령하 30~40도를 오르내렸고 때로는 눈도 뜨기 어려운 칼바람속에서 끊어진 통신선을 잇는 작업도 하여야 했다. 무엇보다도 온밤 울부짖는 바람소리에 도저히 익숙해질수가 없었다.

나는 산간지대의 겨울밤이 그렇게 스산한줄을 처음 알게 되였다. 근무를 교대한 후에도 승냥이의 울음같은 바람소리때문에 오래동안 잠들지 못하였다. 이때 누군가 말없이 나를 꽉 그러안는다. 분대장이였다. 신경이 예민해진 내가 잠 못 들 때면 이렇게 슬며시 안아주군 하였다. 넓고 단단한 분대장의 억센 가슴은 어느덧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었고 그의 고르로운 코고는 소리에 이끌려 나도모르게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갈개잔다고 늘 투덜거리면서도 분대장은 매일 내곁에 눕군 하였다.

그는 구대원이였다.

군사복무의 전기간을 이 초소에서 보냈다고 한다. 초소외에는 인가를 전혀 볼수 없는 산속의 고적한 기분은 나만이 느끼는듯싶었다. 다들 무슨 일엔가 열중하느라 바쁘게 지냈다. 특히 분대장은 초소부업농사를 혼자서 도맡다싶이 하였다. 밭으로 져낸 진거름을 주무르며 걸싸게 일을 제낄 때면 꼭 푸수한 농사군같았다. 초소는 언제나 들끓었다. 그 활기찬 생활이 나의 곁으로 흘렀지만 나는 선뜻 그속에 뛰여들지 못하였다.

자칭 중대예술소조의 핵심이며 련대에 소문난 기타연주가라고 하는 리동무(처음 만났을 때 했던 자기 소개를 빈다면)는 저녁이면 그 《력사가 오랜》악기를 꺼내들고 노래를 부르군 하였다.

그가 하도 사랑하고 즐겨부르다보니 나도 어느새 뜬금으로 외운 노래였다. 노래는 점차 합창으로 번져갔다.

 

요람에 잠든 아기들 꿈속에 웃고있을 때

전사의 철갑모우엔 찬이슬 흘러내리네

 

갓 입대한 병사여서 그런지 분대장은 꼭 나를 데리고 선로검열길에 나서군 하였다.

그날도 나는 분대장을 따라 오솔길을 걷고있었다. 무릎을 치게 내린 눈이 산속의 경치를 또 한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켰지만 나는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저 정적, 어디나 정적뿐이다. 동면의 계절이여서 그런지 사방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어느덧 눈덮인 골짜기를 드러내며 숲이 환해지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는 솟는 해마저도 서두를게 없다는듯 늦장을 부렸다.

문득 떠오르는 해빛에 분대장의 모습이 산뜻하게 안겨들었다. 야―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여나왔다.

희고 정갈한 목달개, 꼭꼭 채워진 단추, 칼날처럼 주름이 선 군복, 늘 새것처럼 깨끗한 신발, 그중에서도 눈부시게 반짝이는 모표가 눈길을 뗄수 없게 만들었다.

웬일인지 나는 애써 닦느라 해도 분대장의것만큼 모표가 빛나질 않았다. 하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분대장처럼은 되지 않을것이다. 누구도 외모를 거두는데서 그를 따르지 못했다. 늘 열병식에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자신에 대한 요구성이 높은 그였다. 그 요구성이 그대로 대원들에게 옮겨져 나도 어지간히 땀을 빼군 하였다.

몇 안되는 근무성원들이 마치 한집안처럼 단란하게 지내는 초소에서 새삼스럽게 군복차림을 닥달질하는것이, 더우기는 일할 때면 실농군같은 분대장의 모습과 도시의 거리에 경무원으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멋진 그의 차림새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대조를 이루는것이 나로서는 은근히 놀랍기도 하였다.

이러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말없이 걷기만 하던 분대장이 불쑥 이렇게 한마디 하는것이였다.

《아침에 지적했던것 같은데 모표를 잘 닦은것 같지 않구만. …외모는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거울이요. 군인의 마음은 누가 보든말든 어디서나 빛나야 하는거요. 옛소.》

나는 얼결에 그가 내미는 모표닦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모자를 벗어들고 흥심없이 모표를 닦으며 걸었다. 얼마쯤 갔는지, 앞서가던 분대장이 갑자기 멈추어서는 바람에 나는 흠칫 놀랐다.

우리가 이른 곳은 118번 전주였다.

《저길 보라구.》

분대장은 선로를 가리켰다. 뜻밖에도 그곳에는 종이연 하나가 난데없이 매달려있었다. 누군가가 서둘러 높이 띄우다가 통신선에 감겨버리는 바람에 줄을 끊어먹은 모양이였다. 연은 바람결에 몸부림치듯 퍼덕거렸다.

《분명 조금전에 철이가 지나갔을거요.》

철이?! 오―라. 그 애라면 나도 알고있었다.

우리 선로가 유일하게 도로옆을 지나는 구간이 여기 118번 전주가 서있는 곳이였다. 나는 여기서 철이와 드문히 만나군 하였다. 산림감독원인 아버지가 지난 여름에 림산마을에서부터 더 깊은 산골짜기로 집을 옮기는 바람에 먼길을 매일 걸어서 유치원으로 가군 하였던것이다.

이제 봄이 오면 학교에 가겠는데 이쯤한게 뭐 힘드냐고 하면서 그 애는 노상 씩씩하게 다녔다.

거창한 대자연속에서 뛰놀며 자란 탓인지 겁이 없고 어른스러운데가 느껴지는 기특한 꼬마였다.

철이와의 첫 《상봉》은 참으로 인상적이였다.

그날 나는 혼자서 선로검열을 하고있었다. 118번 전주에 이르렀을 때 문득 전주의 나무팔과 애자사이에 친 거미줄이 눈에 띄웠다.

제대로 하자면 올라가서 거미줄을 걷어내고 애자까지 걸레로 닦아야 했지만 나는 그저 긴 장대로 대충 거미줄만 걷어내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인민군대아저씨, 안녕하십니까?》하는 챙챙한 목소리가 귀전을 때리는것이였다. 돌아서보니 작은 꽃가방을 멘 어린애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앞에 서있었다.

아, 그 맑고 빛나는 눈은… 나는 존경이 함뿍 어린 그 애의 티없는 눈동자에 방금전의 내 모습이 비끼는것만 같아 가슴이 뜨끔하였다. 동시에 쑥스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먼저 인사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였다.

나를 향해 《인민군대아저씨》라고 한 그 애의 부름은 아직 학생시절의 기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있던 나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느끼도록 하는것이였다.

형님이 아니라 아저씨란 말이지…

《너 용쿠나. 이름이 뭐냐?》

《철이예요. 김처―어리.》

 

 

나와 분대장은 드문히 철이와 마주쳤다.

그 애를 볼 때마다 분대장은 무등 반가와하였다.

덥석 안아들고 볼을 비벼주기도 했고 언제 넣어두었는지도 모를 언 다래를 한웅큼 쥐여주기도 하였다.

아이들을 끔찍이도 고와하는 사람이였다.

아마 그래서 통신선에 감긴 연도 분대장이 먼저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분대장은 손이 떡떡 붙는 전주를 타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의아해졌다. 그까짓 연이나 치우는게 뭐 큰일이라고 올라가기까지 한단 말인가.

나는 언젠가 거미줄을 걷어낼 때 썼던 그 장대를 집어들고 소리쳤다.

《분대장동지, 이걸로 제꺽 해치웁시다. 시간도 많이 갔는데…》

분대장은 내 말을 듣지 못한듯 일만 계속하였다.

오르내리기를 몇번… 한참이나 애를 쓰다가 드디여 그는 연을 쥐고 내려섰다.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제서야 분대장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것이였다.

《이제 철이가 기뻐할게야.》

나는 놀랐다. (그럼 저 연을 건지려고?… 하여튼 아이들이라면 그저…)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있는 동안에도 분대장은 떠날 생각은 않고 길옆의 애솔포기앞에서 그냥 우물거리고있었다.

《어때, 철이의 키가 이쯤은 되지?》

이번엔 철이가 쉽게 가져갈수 있게 맞춤한 가지를 고르느라고 그러는것이였다. 원, 아들이면 저럴가. 나는 감탄할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않았던 《정황》으로 잃은 시간을 메꾸기 위해서 우리는 나머지구간을 달리다싶이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했으나 돌아올 때에는 벌써 저녁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단김을 내뿜으며 길을 다그치던 우리는 한손에 연을 들고 달음박질쳐오는 철이를 띄여보았다.

그 애는 멀리서부터 무어라고 소리쳤다. 똑똑히 알아들을수는 없었지만 기쁨에 겨운 그 맑고 애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이상하게 설레이였다.

지금껏 한번도 느껴본적 없는 야릇한 흥분으로 나는 온몸이 달아올랐다. 저도 모르게 걸음이 더 빨라졌다.

량볼이 사과알처럼 빨갛게 익어가지고 우리앞에 다달은 철이의 새별같은 눈에는 이름할수 없는 행복과 고마움이 가득 고여 찰랑거리고있었다.

《아저씨들이지요?》

나는 분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느슨히 웃음을 지을뿐이였다. 다음순간 철이는 분대장에게 와락 안겼다. 그 광경을 바라보느라니 나도 눈굽이 쩌릿해났다. 귀찮게만 여겨지던 아까의 일이, 그 자그마한 일이 내게도 이렇듯 큰 기쁨을 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었다.

문득 분대장의 환성이 들려왔다.

《어이구, 우리 철이가 빨간별을 탔구나.》

정말 그 애의 가슴에 손바닥만 한 별이 붙어있었다. 철이는 별을 탄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난 이제 착한 일 더 많이 해서 별을 자꾸자꾸 탈래요. 그럼 이담에 커서 진짜 별을 단 인민군대가 되거던요. 우리 선생님이 그랬어요.》

분대장은 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그래, 꼭 군대가 되고싶으냐?》

《예, 우리 선생님은 인민군대아저씨들이 제일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하셨어요.》

분대장은 눈이 없어지게 웃으며 철이를 다시금 꼭 껴안았다. 그 웃음에 어두워져가던 골안이 다시 환해지는것 같았다.

잠시후에 우리는 철이와 헤여져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사연많은 그 118번 전주에 이르렀을 때였다. 길옆의 눈판우에 무슨 그림같은것이 띄였다.

《분대장동지, 저거?…》

다가가보니 눈우에는 큼직한 별이 그려져있었다.

기하학적균형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서툰 솜씨였지만 틀림없는 별이였다. 솥뚜껑만큼이나 커다랗게 그린 별이였다.

《철이가 그린게구만.》

여느때에는 들어볼수 없는 분대장의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 별앞에서 선뜻 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초소에 돌아온 후에도 잠이 오지 않아 오래도록 마당을 거닐었다. 귀전에는 자꾸만 철이가 하던 말이 쟁쟁히 울리였다.

―제일 훌륭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라…

나는 분대장을 생각하였다. 바람소리때문에 잠못 드는 나를 조용히 품에 안아주던 분대장, 자기가 애써 가꾼 풋남새를 식탁에 올려놓은것이 그리도 흐뭇하여 웃음짓던 분대장, 철이의 연을 내리워주느라 손을 얼구며 애쓰던 분대장…

그렇다, 우리 분대장처럼 훌륭한 사람이 또 어디 있으랴. 그는 한마디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여난 사람같았다. 초소와 동지, 아이들과 인민, 나아가서 조국에 대한 용암과도 같은 지심깊은 사랑을 안고사는 병사였다.

이날은 평범한 복무의 하루였다. 우리는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였고 조용히 저녁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결코 조용한 날도 평범한 날도 아니였다. 나는 사랑을 알았다. 병사의 사랑을… 분대장의 군사복무 전기간은 이날의 하루와 같이 흘러왔을것이다. 병사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지닐수 없는 그처럼 뜨거운 사랑이 있어서 철이의 마음속에 아니, 전체 인민의 마음속에 병사의 모습으로 새겨진 그 별처럼 빛나게 살아왔을것이다.

별은 보일 때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빛을 뿌린다. 그 별과도 같은 병사들의 삶을 더욱 빛내주려고 조국은 우리의 모표에도 령장에도 별을 새겨준것이 아닐가. 성스러운 군기와 인민군렬사묘우에서도 빛나는 그 별. 조국의 산과 들에 뿌려진 그 수호의 별무리속에 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병실에서 전우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이날따라 리동무의 기타소리가 전혀 새로운 음향으로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내 여기 전호에 서있어도

조국이 나를 본다네 인민이 나를 안다네

 

산중의 외진 초소에서 복무하는 우리들이지만 바로 우리도 조국과 인민이 지켜보는 속에서 살고있음을 나는 이날 철이의 눈빛을 통해서 똑똑히 깨닫게 되였다.

그래서 분대장은 늘 열병식에라도 나갈듯 모표를 열심히 닦고 외모를 거두었으리라. 그래서 우리에게도 그것을 요구했으리라. 리동무가 그렇듯 이 노래를 사랑하고 즐겨부르는것도, 우리모두가 여기 산중의 초소에 청춘을 묵묵히 바쳐가고있는것도 바로 그래서이리라. 어디서나 변함없이 빛나는 별이 되자고…

나는 오늘도 이 길을 걷고있다.

이제는 내곁에 잊지 못할 그 분대장도 철이도 없다. 하지만 내게는 산중의 《악보》에 세월의 눈비와 함께 새겨오는 추억의 노래가 있다. 사랑이 있다. 철이가 눈우에 그렸던 별, 영원히 지울수 없는 마음속의 별이 있다. 그 별이 내 가슴속에서 빛나는 한, 그 사랑이 심장을 불태우는 한 이길에 찍어가는 나의 복무의 자욱은 절대로 흐트러지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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