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제9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단편소설

강 산 의  환 희

                       

                                       김  금  옥

                                                                                                                                              

한낮이 되여오자 도시의 해변가쪽에 자리잡은 장마당은 더욱 벅적거렸다. 가을철이라 모든것이 풍성했고 풍성한것만큼 각이한 목청의 사구려소리와 웃고 떠들며 흥정하는 열기로 한껏 달아오르고있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길 좌우켠으로 늘어선 점포차일들이 가을바람에 기세좋게 펄럭거리는데 제육전, 어물전, 구멍가게들마다에선 손님들을 청하고 권하느라 법석 끓는다. 저자구럭을 든 아낙네들은 열심히 어물전과 남새장을 찾았고 허름한 작업복을 걸친 사내들은 풍막을 친 주점안을 기웃이 들여다보고있다. 괴춤을 움켜잡은 사내애들이 가위를 절컥거리며 돌아가는 엿장사의 뒤를 깨꾸막질치며 좇아다녔고 새침데기 계집애들은 화장품매대에 한가득 펼쳐놓은 고급크림통이며 분곽들을 이것저것 가리키며 눈여겨 들여다보군 하였다.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붐비는 그 인파속으로 두 녀인이 걸어가고있었다. 흰 옥양목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받쳐입은 단아한 모습의 녀인은 한발앞서 걸으며 매대마다 일일이 들려 값을 알아보군 하였다.

목소리가 담담한 앞선 녀인은 그 환한 얼굴과 정기넘치는 그윽한 눈매로 하여 마주 대하는 장사군들조차 다시한번 그 모습을 쳐다본다. 그런데 두 녀인의 발길은 현란한 화장품매대나 비단매대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듯 하였다. 그들이 품을 들이며 돌아보고있는 매대는 모두 겨가루 날리는 쌀매대나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어물전, 푸성귀가 가득쌓인 남새매대들이였다. 두 녀인은 그중 어물장사녀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고기의 값이며 그것을 받아오는 곳 등을 고무치마를 두른 뚱뚱보녀인에게서 알아보시는 단아한 모습의 그 녀인이 바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 어물장사녀인과 이야기를 마치고 무엇인가 찾듯 다시금 매대를 눈여겨보시자 곁에서 따르던 녀투사 윤명옥이 팔목의 시계를 들여다보며 나직이 귀띔했다.

《정숙동지, 점심시간이 퍽 지났어요. 이젠 그만 숙소로 돌아가자요.》

벌써 세번째나 그이께 올리는 말씀이였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윤명옥의 얼굴에는 초조해하는 기색이 짙게 어리였다. 그는 아예 두팔을 벌리고 그이를 막아나서고싶었다. 그러나 그럴 형편이 못된다. 평양에서 수백여리 떨어진 이곳 해안도시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붐비는 여기 장마당에서 항일의 녀장군의 신변에 뭇시선들을 끌어당겨서는 안되는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윤명옥에게 미안한 낯색을 지어보이시며 오히려 그를 걱정하시였다.

《명옥동무, 시장하지요? 나도 힘이 들어요.》

《그러길래 숙소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도 좀 해야 하지 않겠나요. 정숙동진 지금 너무 피로했어요.》

윤명옥이 안타깝게 말씀드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상긋이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의 심정이 리해되시였던것이다. 이번에 동해안지방을 현지지도하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사업을 보좌하시며 잠도 휴식도 미루시고 분초를 쪼개가며 일해오신 그이이시였다. 너무 무리하시는 김정숙동지의 건강이 걱정되여 함께 동행했던 일군들은 저저마끔 그런 말씀을 올리군 하였다.

《명옥동무, 장군님께선 지금쯤 마식령을 넘고계시겠지요?》

조용히 하시는 그이의 말씀에 윤명옥은 그만 눈굽이 확 달아올라 꼭 잡았던 팔을 슬그머니 놓고말았다.

《명옥동무, 그럼 미역장사만이라도 만나보고는 가자요. 그런데 웬일인지 미역 파는걸 볼수가 없군요.》

김정숙동지께서 량해를 구하며 방금 지나오신 어물전쪽으로 다시 돌아서시자 윤명옥은 하는수 없이 그이의 뒤를 따라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늘 오전에 급히 제기된 일이 있어 평양으로 먼저 떠나신 장군님을 바래워드리고 이곳 해안도시에 남으시였던것이다. 여러날에 걸치는 현지지도과정에 금강산을 비롯한 이 지방의 명승지들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찾으시는 곳마다에서 인민들의 문화휴양지로 그곳을 더 잘 꾸리기 위한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시였다.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문득 뒤따르는 일군들에게 바다를 끼고있는 이 지방에 수산물이 부족한것 같다고 근심어린 안색으로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들리시였던 한 휴양소마을의 소비조합상점에 수산물이 넉넉하지 못하였던것이다.

해방된지 두해, 이제는 눈에 뜨이게 생활이 펴이고 옛날같으면 꿈에도 바랄수 없었던 명승지에서 휴양까지 하게 된 우리 인민들에게 수산물까지 넉넉히 먹이고싶어하시는 장군님의 어버이심정이시였다. 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을 바래워드리신 후 시내의 여러 소비조합상점들과 장마당들을 돌아보시며 줄창 그 문제에 마음을 쓰고계시였던것이다. 녀사께서는 특히 산골도 아닌 바다가 사람들의 식탁에 흔해야 할 미역의 수요가 충족되지 못하는것을 두고 무척 가슴아파하시였다.

윤명옥은 저도 모르게 후덥게 달아오르는 눈시울을 실룩거리며 어물장사녀인에게 장마당에 나오는 미역형편을 물으시는 김정숙동지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섰다.

《뉘집 새애기가 당장 몸을 풀 모양이구만. 그런데 어떡하겠수. 미역장사군들이 오늘은 모두 통천과 고성쪽으로 나간 모양인데… 그쪽에 요즘 미역이 좀 난다나봅디다. 바쁘겠지만 래일쯤 오시우.》

뚱뚱보녀인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설레발을 치며 말씀올렸다.

《그러니 바다가 지척인데도 미역이 귀하단 소리군요.》

《그럼요. 왜정때두 서해안이나 저 북쪽바다가가 아니면 가깝기는 여기 통천이나 고성쪽에서 미역이 좀 나기는 했지만 워낙 시원히 걷어들이지 못하니까 귀할수밖에 없지요. 나두 아이 다섯을 줄줄이 내려낳을 때마다 어느때 한번 미역을 푼푼하게 써본적이 없다우. 우리처럼 가난뱅이들한텐 개파래나 천초가 고작이였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게 다 옛말이 됐지요.》

《미역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귀하지 않습니까.》

《에그 미역같은게 무슨 대수겠수. 우리 장군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셔서 이젠 맘놓고 잘 살게 되였는데… 아낙네들 머리에 인 물고기버치를 보기만 해도 달려와 트집걸군 하던 〈어업조합〉왜놈들꼴을 안 보니 먹는게 살로 가고 정말 사람 사는것 같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시였다. 한동안 청높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나가던 녀인은 김정숙동지의 안색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손등에 고기비늘이 젖어붙은 손으로 그이의 손을 잡으며 장마당입구쪽의 고기매대를 가리켰다.

《아참, 내가 그만 깜박 잊었댔수다. 정 미역을 사겠거든 저기 고기장사한테 가보시우. 아침에 그 령감곁에 한 색시가 미역을 들고나와 앉은걸 봤수다. 상기두 있겠는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기시고 녀인이 가리켜준 고기매대로 향하시였다. 정말 고기장사로인옆에 미역을 펴놓고 앉아있는 녀인의 모습이 보이였다. 그리로 반가이 다가서시는데 값눅은 검정고무신을 신은 녀인의 발등에 손바닥 두개 합친것만 한 크기의 마분지가 얹혀있는것이 눈에 뜨이시였다. 삐뚤삐뚤하기는 하나 어지간히 품을 들여 먹으로 쓴 글자가 단박 눈길을 끌었다.

《조상대대로의 명미역―화대미역》

몇꼭지 되나마나한 미역을 앞에 놓고 광고가 요란해서인지 아니면 온 장마당을 다 뒤져도 맞다들리기 힘든 미역이여서인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앞으로 서둘러 다가서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허나 그것은 순간이였고 녀인의 정상을 보신 그이의 안색은 이내 흐려지시였다. 굵은 동비녀로 머리를 쪽져올린 갸름한 녀인의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돋아 얼핏 보아서는 나이를 대중 할수 없었는데 깍지낀 두손으로 모아세운 두 무릎사이에 힘겹게 안고있는 남산같은 배가 그이의 마음을 쓰리게 하였던것이다.

(임신부녀인이 미역을 팔다니…)

《이게 정말 〈화대미역〉인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앞에 다가가 꿇어앉으시며 차분해보이는 미역 몇오리를 만져보시였다.

졸음기가 얼굴에 가득 실린채 힘겹게 앉아있던 녀인의 얼굴이 건듯 들리며 시름짙은 인상이 사라지고 반가운 기색이 확 피여났다. 보매 30대초엽의 젊은 녀인이였다.

《저…이건 정말 〈화대미역〉이예요. 저의 친정아버님이 직접 그곳에 가서 가져온것인걸요.》

《그래요? 여기서 가까운 통천이나 고성에서도 미역이 나지 않는가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 먼데서 가져오는가요?》

《그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너무 적게 나니 우리같은 사람들 손에는 들어오기 힘들어요. 화대쪽에는 가기 힘들어서 그러지 그래도 비싼거래두 차례가 온다는가봐요.》

녀인은 앞에 나타난 손님들이 자기의것을 사주기를 바라는 소원에서인지 이 장마당안에 여길 내놓고는 미역을 찾아볼수 없다는것을 은근히 암시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만 보니 미역장사본인도 인차 몸을 풀어야 할것 같은데 그때 쓸 미역은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예… 그건 다…》

뜻밖의 물음에 녀인은 얼굴을 활딱 붉히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이께서는 윤명옥을 돌아보시며 우리가 이 미역을 다 사면 어떻겠느냐고 하시고는 명옥이 미처 대답을 올리기 전에 녀인이 마분지에 써놓은 미역값을 고스란히 치르어주시였다. 순간에 다 팔린 미역보따리를 털고 일어나 고맙다고 거듭 허리굽혀 인사를 하는 《화대미역》녀인과 헤여져 거리에 나섰을 때는 어느덧 오후시간이 퍼그나 지났다. 해가 서산을 가까이 하고있었다.

《아니, 정숙동지, 미역은 먼저번 휴양소마을 소비조합상점에서 좀 사둔것이 있는데 이렇게 비싼것을 또…》

윤명옥은 알수 없다는듯 고개를 기웃거리며 그이를 쳐다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동안 묵묵히 걸으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명옥동무, 난 어쩐지 그 미역을 꼭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래달이 해산달이라던 평양제사공장의 그 녀동무때문에 그럼 또?…》

《그 동무때문만이 아니예요. 해방된 이 나라의 녀성들을 생각했어요. 그러자니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절박한 일거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두 해보구요.…미역을 파는 그 녀인의 정상이 보기에두 딱했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 있을거라고 여겨졌어요. 명옥동무, 그렇지요?》

《글쎄 난 정숙동지처럼 생각은 못했지만 어쨌든 임신부가 미역을 내다 팔 때엔 제가 쓸건 남겨두고 용돈이 필요해서 판다고 짐작됩니다.》

《그럴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을 안으신채 숙소로 향하시였다.

×

해질무렵 바다는 장난세찬 아이마냥 갈갬질을 멈추지 않는다. 흰갈기를 일으키면서 성급히 밀려와 모래불에 비말을 휘뿌려던지고는 별일 없는듯이 슬쩍 뒤걸음질치면 어느새 다른 잔파도가 다시금 달려와 기슭의 모래불을 적신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깊은 사색에 잠겨 숙소앞에 펼쳐진 바다가 백사장을 걸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에게 수산물을 넉넉히 먹이시려고 그처럼 마음쓰시는데… 미역이나 다시마같은것은 풍족치 못하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장마당에 몇꼭지 안되는 미역을 들고나와 팔던 《화대미역》녀인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시였다. 윤명옥의 말대로 그 녀인이 정말 자기가 쓰고 남을만 한 여유가 있어서 미역을 장마당에 들고나와 팔고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새삼스럽게 갈마드시였다. 해방전에 우리 녀성들에게는 몸을 풀면 먹을 미역은 고사하고 풀죽 한사발도 제대로 차례질수 없었다. 항일의 그 나날 우리 녀전우들의 경우는 어떠했던가.

잊을수 없는 추억이 끝없이 밀려오는 흰파도에 실려 가슴에 안겨드시였다.

수백벌의 군복을 짓던 그때 모자라는 군복천을 구하러 적구에 내려가셨다가 당장 해산을 앞둔 녀전우를 위해 끝내 구하려던 미역을 얻지 못하고 눈속을 헤쳐 얻은 무우시래기를 들고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의 그 쓰라린 심정… 그이께서 밀영지로 향한 길목에 들어서실 때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떼의 누런 군복무리가 재봉대밀영을 향해 살금살금 기여드는것을 발견하시였다. 위급한 순간이였다. 지체없이 권총을 빼드신 그이께서는 장교놈부터 단방에 쏴눕히고 놈들을 유인하기 시작하시였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전우들이 적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어지러이 딩구는 적들의 시체를 뛰여넘으며 전우들이 달려와 김정숙동지를 부둥켜안았을 때 그이의 등에 지신 배낭에는 해산을 앞둔 전우를 위해 구해오신 무우시래기가 소중한 보물처럼 들어있었다.

《정숙동지, 어쩌면…》

해산이 림박하여 진통에 몸부림치던 전우는 싸움터에서 돌아온 동지들로부터 사연을 전해듣고는 그이의 두손을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가 바로 윤명옥이였다.

추억을 떠올리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흩날리는 저고리고름을 잡으시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해질녘 바다의 검푸른 물결우에 시선을 보내신채 서 계시느라니 불시에 가슴가득 차오르는 크나큰 격정으로 목이 꽉 메여오르시였다. 항일의 녀전사들이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온갖 고생을 달게 여기며 후대를 키웠고 강도 일제와 끝까지 싸워 마침내 조국해방의 날을 안아온것도 바로 다름아닌 우리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그이께서는 뜨거워오르는 시선으로 바다 멀리를 바라보시였다. 어데선가 바람결을 타고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남녀가 함께 부르는 구성진 노래이다.

 

백두산 말기에 백학이 너울너울

해방된 강산에 뻐꾸기 뻐꾹 뻐꾹

아― 장군님 주신 땅

에루화 데루화 모두다 떨쳐나 밭갈이 가세

 

송도원휴양소에 와있는 청춘남녀들이 부르는 노래소리였다. 그들의 노래는 파도소리와 어울려 바다가의 저녁정서를 한결 더 짙게 해주었다. 바로 인민의 행복넘친 저 노래소리가 온 강산에 더 크게 울리게 하시려고 장군님께서는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고계시는것이 아닌가.

김정숙동지의 발자욱이 모래불에 뚜렷이 찍혀지였다. 얼마나 걸으셨는지… 문득 앞에서 나는 인기척에 그이께서는 눈길을 드시였다. 손에 그 물주머니를 든 애어린 소년이 파도가 연방 밀려오는 바다기슭에서 무엇인가 줏고있었다.

한동안 줏다가는 장난질치듯 파도를 따라 달려 들어갔다가 쫓기여 달려나오며 재빨리 무엇인가를 건져내기도 한다. 이제 기껏 잡아 예닐곱살쯤 돼보이는 소년이다. 그 애는 인기척을 느낀듯 고개를 들고 마주오는 김정숙동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밀려오는 파도가 신발을 신지 않은 사내아이의 아래도리를 치며 물방울을 튕긴다. 그래도 소년은 엉거주춤하고 그이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얘야, 옷이 젖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다물에 옷이 흠뻑 젖은 그 애를 품에 안으시고 얼굴의 물기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시였다. 그러자 소년은 눈빛을 빛내며 해죽이 웃는다. 앞이마가 도드라져나오고 왼쪽눈이 조금 작을사한것이 사내싸게 보이는데 그 초롱초롱한 눈가에 어리는 천진한 웃음이 그이의 가슴을 따뜻이 덥혀주었다.

소년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자기를 품에 안아주며 정깊은 미소를 보내시는 김정숙동지의 모습을 홀린듯이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지민 누구나요?》

《난 여기에 바람 쏘이러 나왔던 아지미란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뭘하고있지?》

《우리 엄마가 인차 애기 낳는다고 했어요. 내 동생을 낳으면 엄만 이런걸 잡수셔야 한대요. 아버지가 그랬지요 뭐.》

소년은 불쑥 그이의 눈앞에 그물주머니를 들어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를 내려놓고 그 애의 손에 들려있는 그물주머니를 받아보시였다. 소년은 아구리를 벌리더니 손을 넣어 주머니안의것을 한줌 꺼내들었다. 밤색, 파란색의 바다나물을 들고 제가 다 안다는듯 열심히 설명했다.

《이건 개파래구 이건 천초예요. 진짜파래는 이것처럼 파랗지 않고 밤색인데 생것을 먹어도 맛이 있어요. 그런데 이건 색은 고와도 맛은 없어요. 정말 개파래예요. 그리고 이 천촌 끓이면 묵처럼 돼요.》

사내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자기의 수확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였다.

《용쿠나, 네가 그런걸 다 알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이의 조그마한 어깨를 대견스럽게 쓸어주시였다.

《그래 네 이름은 뭐지?》

《영범이.》

《영범이.… 이름이 참 좋구나. 집은 어데냐?》

《저기.》

소년은 바다기슭과 잇닿은 솔숲을 가리켰다.

《자, 이젠 인차 날이 어두워질텐데 빨리 집으로 가자.》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물주머니를 드신채 소년의 차거운 손을 잡으시였다.

《아지미도 우리 집에 가나요?》

《그래, 함께 가자. 영범이네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싶구나.》

《아지민 어데서 사나요?》

소년은 어두워오는 해변가에서 그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것이 그리도 좋은지 깡충깡충 뜀박질을 하며 호기심어린 질문을 해댔다.

《난 평양에서 왔단다.》

《야! 평양, 평양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지요?》

《그래 영범인 참 똑똑하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따뜻한 손길로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였다. 갑자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시였다. 윤명옥이 달려오고있었다.

그이앞에 다달은 그는 웬 어린 사내애의 손을 잡고계시는 김정숙동지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 나와계시는줄 모르구… 그런데 이 앤 웬 아이예요?》

그이께서는 사내아이를 만난 이야기를 하신 후 아무래도 이 애네 집에 가봐야겠다고 하시였다.

《이 애 말이 어머니가 인차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군요. 철부지아이가 바다가에 나와 해지는줄 모르고 이런것을 줏고있더군요.》

윤명옥은 김정숙동지의 손에 들린 그물주머니를 받아들며 말없이 그이를 따라섰다.

아이가 가리키는대로 솔숲을 따라들어가니 마당마다 고기그물을 널어놓은 집들이 보이였다.

《우리 집이야요.》

사내아이가 김정숙동지의 손을 놓으며 마당가에 로송이 한그루 서있는 집을 가리켰다. 그 애는 자기가 데려온 손님들을 자랑하려는듯 쏜살같이 마당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집마당에는 소나무에 의지하여 세운 덕대우에 낡은 고기그물을 널어놓은것이 보이였다. 사내애의 뒤를 따라 열려진 삽짝문안으로 들어서시던 김정숙동지께서와 윤명옥은 뜻밖의 광경에 부딪쳤다.

갑자기 부엌문이 활 열리며 건장한 사나이가 마당가로 뛰쳐나왔다. 그는 방금 뛰쳐나온 부엌안에 대고 큰소리를 질러댔다.

《좋수다. 그럼 난 이젠 이 집 사위가 아니우다. 아버님 마음대로 하시오.》

고기그물을 널은 덕대옆을 힝 지나 삽짝문을 나서려던 사나이는 집뜰에 들어선 손님들을 보자 놀라며 주춤 멈춰섰다가 그냥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영범이 아버지―》

안해인듯 한 녀인의 목소리가 부엌안에서 울려나왔다. 이어 청높은 늙은이의 비린청이 잇달아 울려나왔다.

《오냐, 난… 반동이다.… 그러니… 네깐놈의 사위는 필요없다, 없어.》

사내아이는 토방에 서서 주먹으로 눈굽을 씻으며 쿨쩍거리였다. 윤명옥이 다가서며 안으려 하자 그 애는 몸을 비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활짝 열려진 부엌문앞으로 다가가시였다. 《계십니까?》하고 기척을 내며 안을 들여다보시니 녀인은 얼굴을 싸쥐고 울고있는데 베적삼을 활 헤쳐놓은 로인이 봉당에 주저앉아 가슴을 장고치듯 두드리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딸에게 욕설을 퍼붓고있다.

《네년도…그 잘난 서방을…따라가거라. 뭐?… 내가 반동이라구?… 아이고, 원통하구나.… 풍랑에 다 죽게 되여 바다가에… 밀려나온걸 업어다 살려서 딸주고…배군팔자에 사각모까지 씌워주었더니…그 덕에 해방이 오니…팔자에 없는 벼슬까지…할수 있게 되고…그런데 뭐…이…가시애비를 반동으로 몰아?… 당장 해산할 녀편네한테… 미역 한꼭지 못 구해다주는 주제에…》

로인은 옆에서 딩구는 되들이술병을 번쩍 들어 목을 뒤로 제끼고 꿀꺽꿀꺽 병나발을 불었다.

《그런데…네…네년은 이…늙은…애비가 구해온…미역을… 팔아 뭐 파철이 다 된…왜놈배를 살리는데 쓸…발…발동기를 산다고?…아이고…내가 미쳤지.…다 필요없구나.…이것두 다 가져가라.…다…》

로인은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나 시렁우에 있는 작은 보퉁이를 들어 활 집어던졌다. 그 보퉁이는 곁에서 울고있는 녀인도 어쩔새없이 불이 널름거리는 아궁에 휙 날아들었다.

몸의 중심을 못 잡고있던 로인은 부엌구석에 있는 섶나무단우에 벌렁 나가눕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엌으로 뛰여들어가시여 로인을 안아일으키시였다. 로인은 개개풀린 눈동자를 치뜨다가 시끄럽다는듯이 도리질을 하더니 스르시 눈을 감고 인차 코를 곤다. 그이께서는 아궁안에서 보퉁이를 급히 꺼내여 불을 죽이고 놀라서 쳐다보는 녀인의 눈길에 아랑곳없이 윤명옥이와 함께 로인을 부축하여 방안으로 데려다 눕히시였다.

부엌안에는 삽시에 천탄내와 매캐한 미역탄내가 서렸다. 녀인은 또다시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떨었다. 그는 아버지를 부축하여 방안에 들여다눕혀주기까지 한 손님들을 알아볼 생각을 못하는듯 했다. 녀인의 앞에는 불을 껐으나 아직도 연기가 그물그물 피여오르는 보퉁이가 풀어헤쳐져 있었는데 그것은 뜻밖에도 몇오리 안되는 미역이였다.

(귀한 미역을 태우다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엌봉당으로 내려서시여 녀인의 어깨를 어루쓸어주시며 위안하시였다.

《영범이 어머니, 마음을 진정해요.》

그제야 정신이 든듯 눈물젖은 녀인의 얼굴이 들리는 순간 그이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부엌아궁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에 비쳐진 녀인의 얼굴은 한낮무렵 해안거리 장마당에서 만났던 그《화대미역》녀인이였다. 녀인도 그이를 알아보았는지 깜짝 놀라며 면구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아니, 어떻게 여길?…》

김정숙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돌리신다. 밖에서 울던 사내아이가 빠끔히 부엌안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어서 오너라.》그이께서 두팔을 벌리며 말씀하기 바쁘게 그 애는 구을듯이 달려들어와 김정숙동지의 품에 덥석 안겼다. 그이께서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시며 녀인이 마음을 진정하기를 기다리시다가 금방 일어났던 소동의 까닭을 물으시였다.

녀인은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리며 젖은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이 하루동안 두번째로 대하게 되는 김정숙동지앞에 스스럼없이 모든것을 다 이야기하고싶었는지 퍽 오래전의 생활까지도 그대로 펼쳐놓는것이였다. 방금전까지 서슬이 퍼래서 고함치던 사람같지 않게 코를 드렁드렁 고는 아버지 정천득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대로 전라도의 바다가 어촌마을의 어부로 살아온 정천득은 젊은 나이에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참을길 없어 홍범도의병대를 찾아간다고 갓 결혼한 안해를 데리고 북간도로 향했다.

가다가다 주저앉은 곳이 여기 해안도시였다. 구국항전의 열망에 휩싸였던 그는 이곳에 이르러서야 바싹 여윈 안해의 몸에 새 생명이 자라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고 결국은 거기에 발이 묶이워 그대로 이 땅에 주저앉고말았다. 파도에 밀려나온 통나무와 판자따위들, 쓰레기장의 녹쓴 양철통들을 주어다 한가정을 위한 소박한 《보금자리》를 꾸려놓았다. 이 《보금자리》에서 안해는 몸을 풀었으나 어린 생명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린 산모의 몸에서 떨어지기 바쁘게 생을 마치고말았다.

자식의 죽음을 본 뒤로 정천득은 그악스레 세상에 도전하여 몇년후에는 집을 한채 마련하고 사돌배도 한척 갖추어놓았다. 그러나 가난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고 안해는 다시금 이 세상에 피덩이나 다름없는 딸자식 하나를 남기고 운명하였다.

정천득은 굶주림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없이 숨져가는 안해앞에 머리를 떨구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세상에 태여나자마자 어머니의 품을 잃고 이 세상에 댕그라니 남은 딸자식은 정천득에게 있어서 생의 유일한 등불이였고 희망이였다. 정천득은 딸만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보려고 애썼다. 그는 어린 딸자식을 생의 《지팡막대기》삼아 꿋꿋이 명줄을 이어가자고 몇번 마주섰던 재혼의 기회도 물리쳐버렸다. 딸은 죽은 제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가난속에서도 뭇사내들의 눈길을 끌만큼 곱살하게 처녀꼴이 잡혀갔다. 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의 살붙이인 딸의 운명마저 지켜줄수 없었다. 사방에서 왜놈들이 처녀들과 젊은 녀인들을 끌어가는 《정신대》바람이 미친듯이 불어쳤던것이다. 눈앞이 아뜩해진 정천득은 집에서 병구완을 받고있던 어부청년을 무작정 사위로 삼아버리고말았다. 그 청년은 며칠전 정천득이 앞바다에 나갔다가 파도에 밀려나와 겨우 숨이 붙어있는것을 업어들여온 사람이였다.

인정많은 바다가 부녀의 정성으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청년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도 친구들도 다 잃은 자기의 처지를 눈물을 삼키며 이야기했다. 게다가 그는 부모없는 고아였다.

너무도 피골이 상접하여 꽤 구실을 하겠는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새색시의 정성스런 구완덕분으로 한해안팎에 풍랑의 어혈을 털어던지고 어엿한 장부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정천득과 정분임은 천만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사위의 인생이자 딸의 인생인데 힘겨워도 이왕이면 한걸음 더 내짚자. 정천득은 가산을 털어 사위를 청진에 있는 수산학교에 보냈다. 천부의 명민한 머리탓인지 사위 류철성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수산시험장》이라는 곳에 얼마간 나가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공부를 한 덕인지 해방이 되여서도 수산부문 사업을 지도하는 도급기관의 간부를 한다, 《국립수산시험장》책임자를 한다 하며 바삐 돌아치던 류철성은 바로 얼마전에 조직된 국영수산사업소 책임자로 임명되였다. 그런데 그는 당장 해산을 앞둔 안해가 먹을 한꼭지의 미역도 마련할 생각을 못하고 동분서주하더니 장인이 미역을 구하러 멀리 북쪽바다가로 떠난 사이에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사돌배를 사업소로 내갔다. 고생하면서 미역을 구해가지고 돌아온 정천득은 그 일을 알자 한달음에 달려가 수산사업소부두에 매여놓은 배를 끌어왔고 사위 류철성은 개인재산을 가지고 제살궁리나 하고 돈벌이나 하는 사람은 《반동》이나 다름없다고 소리쳤던것이다. 사위의 그 말이 결국 로인의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니 영범이 아버지가 새로 조직된 국영수산사업소 책임자란 말이지요?》

《예.》

김정숙동지의 물으심에 정분임은 입속으로 대답을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수산사업소를 책임진 사람이 안해의 해산미역까지 내다 팔게 하다니…)

밤이 깊어 숙소에 돌아오시여서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깊이 잠든 윤명옥의 포단깃을 여며주시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별 한점 뜨지 않은 캄캄한 어둠의 장막속에서 드넓은 바다 역시 그이와 함께 한밤을 지새우고있었다.

×

다음날 아침일찍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산사업소 부두가에 서계시였다. 부두에 정박해있는 몇척 안되는 크고작은 배들이 바다물이 출렁이는데 따라 흥덩이며 배전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를 낸다.

바다우에 낮게 드리웠던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밝은 빛이 수면우를 따라 흘러들자 저멀리 수평선이 바라보인다. 쉼없이 설레이는 검푸른 바다물도 차츰 선명한 색채를 드러냈고 멀리, 가까이 크고작은 섬들의 모양도 형체가 뚜렷하게 안겨들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지금 수산사업소책임자 류철성을 기다리고계시였다. 이른아침에 윤명옥을 보내여 알아보니 그는 지난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수산사업소정문을 지키고있던 고수머리청년은 책임자가 밤새 발동선을 수리하다가 새벽에야 경비실에서 잠간 눈을 붙이였으니 미안한대로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윤명옥이 청년에게 무엇인가 귀띔할려고 할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그가 깨여날 때까지 기다리겠으니 곤하게 잠든 사람을 깨우지 말라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보위대》완장까지 두른 청년은 평양에서 온 항일투사동지라는 윤명옥의 소개에 머리를 끄덕이며 부두로 나가시는 그이를 지켜보았다.

김정숙동지의 곁에 다가선 윤명옥이 의논조로 한마디 하였다.

《정숙동지, 일이 이렇게 된바엔 오전에 송도원구경을 하고 오후에 나와서 책임자동물 만나는게 어떨가요?》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이 없으시다가 조용히 이르시였다.

《명옥동무, 그 심정은 고마워요. 하지만 우리가 책임자동무를 만나는 일은 미루어선 안될것 같아요.》

윤명옥은 더이상 다른 말을 못하고 묵묵히 그이의 뒤를 따랐다. 그는 김정숙동지보다 나이는 다섯살이나 우였지만 유격대에 입대하여 그이의 손길아래 총쏘는 법과 우리 글을 배웠고 간고한 그 나날 김정숙동지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병치료도 하였었다. 윤명옥을 비롯한 녀투사들에게 있어서 김정숙동지는 혁명전우이실뿐아니라 스승이시고 맏언니이고 친어머니이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그이의 걸음걸음은 위대한 장군님의 뜻을 꽃피워가시는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된 헌신의 자욱이였다.

저도 모르게 김정숙동지의 발자욱을 따라걷는 이 시각 윤명옥의 가슴은 후덥게 달아오르고있었다.

잠시후 경비실쪽에서 보통키에 단단한 체격을 가진 젊은 사람이 달려오더니 김정숙동지앞에 이르러 자기가 이곳 국영수산사업소 책임자라고 소개를 하였다.

《류철성동무지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만나서…》

그이께서는 그가 어제 저녁 어스름속에서 집을 뛰쳐나간 《화대미역》녀인 정분임의 남편임을 알아보시고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나 그는 그이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저 평양에서 내려온 대단한 녀투사라고만 생각하고있었다.

《새로 조직된 수산사업소를 꾸리자니 얼마나 애로가 많겠습니까?》

《투사동지가 그렇게 리해를 해주니 고맙습니다. 우리 수산사업소는 조직된지는 얼마되지 않지만 요즘 고기잡이실적을 부쩍 올리고있습니다.》

류철성은 장인때문에 《고민》하는 사람같지 않게 수산사업소의 성과를 렬거했다.

《그러니 이곳 인민들이 물고기를 먹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만요.》

《예. 해방전에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은 물고기맛을 모르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정말 마음껏 먹을수 있게 하겠습니다.》

《책임자동무가 그렇게 신심에 넘쳐있으니 정말 기쁩니다. 그런데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바다나물은 퍽 귀한것 같군요. 좀 쓸려고 해도 얻기가 힘드니 말이예요.》

《예, 그건 사실…》

좀전까지만 하여도 막힘없이 이야기를 하던 류철성은 말문이 막힌듯 잠시 대답을 못하다가 자기의 생각을 숨김없이 터놓았다.

《미역이 귀물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것이 부족하다 해서 생활상 크게 애로를 느끼는건 없다고 봅니다. 우린 지금 장군님은덕으로 사람다운 생활을 누리고있지 않습니까.》

김정숙동지의 안색은 흐려지시였다. 다른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안해가 당장 해산을 해야 할 사람이 그런 관점을 가진것이 섭섭하시였다. 초면손님이라고 해서 그럴가?

《그러니 책임자동문 미역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겠구만요.》

류철성은 대답을 못했다.

《책임자동무도 알고있겠지만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바다나물은 인민들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것이고 보다는 산모들에게 꼭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난 어제 저녁 바다가에 나갔다가 파도에 밀려나온 개파래를 줏는 나어린 사내아이를 만났댔습니다. 그 애는 어머니가 당장 제 동생을 낳게 되는데 미역이 없어 그런걸 줏는다고 하더군요. 더우기 가슴아픈건…》

류철성의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스쳐지나가더니 이어 낯색이 불깃해졌다.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목격하신 한 가정의 《가정불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시였다.

《알고보니 그것은 결국 미역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군요. 해방된 조국에서 해산하는 녀성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미역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자면 결정적으로 미역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류철성은 신중한 안색으로 말씀하시는 김정숙동지를 우러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 아침 처음 만나는 이분이 어떻게 자기 집안일을 그처럼 깊이 알고계시는지 놀라왔다. 그렇다고 하여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시였다.

갑자기 바다가 환해졌다. 수평선가장자리가 차츰 쇠물빛을 띠더니 마침내 불덩이같은 태양이 불쑥 솟아올랐다. 넓고 푸른 바다는 삽시에 금빛은빛으로 눈부시게 반짝이였다.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보는데요. 어떻습니까? 책임자동무, 알고보니 책임자동문 왜정때 수산학교까지 나왔다던데… 우리 함께 발동선을 타고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어보자요.》

류철성은 김정숙동지를 발동선이 정박해있는 곳으로 안내해드렸다. 잠시후 발동선은 부두를 떠났다. 갈매기들이 끼륵끼륵 소리를 내며 배전을 감돈다. 발동선이 부두에서 멀어질수록 바다에서 들여다보이는 해안도시의 전경이 한결 더 선명하게 안겨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갑판에 서시여 바다와 도시의 모습을 번갈아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책임자동무, 국영수산사업소의 위치가 아주 좋습니다. 시내가운데 자리잡고있으니 인민들이 물고기를 사먹는데 편리하겠습니다. 위치도 좋은데 물고기를 많이 잡아 인민들이 마음껏 먹게 하고 거기에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바다나물문제까지 해결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이의 절절한 음성이 바다를 울렸다.

《지난날에는 우리 녀성들이 가난에 쪼들려 아이를 낳아도 미역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해방된 오늘 내 나라의 바다를 끼고있으면서도 녀성들이 해산때 있어야 할 미역이 없어 애로를 느끼게 한다는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해빛을 받아 반짝이며 끝없이 출렁이는 수면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저기 웬 매생이가 있습니다.》

김정숙동지의 말씀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던 윤명옥이 그이의 사색을 깰세라 조용히 속삭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그마한 섬 가까이에 한척의 매생이가 떠있는것이 바라보였다. 찬찬히 보니배에는 머리에 흰 수건을 질끈 동인 로인이 수면을 들여다보다가는 허리를 펴면서 무슨 일인가 하고있었다. 발동선은 매생이를 가까이하며 달렸다.

어느덧 배에 탄 사람의 모습이 뚜렷이 안겨왔다.

《어제 저녁 우리가 찾아갔던 집 로인님이시군요.》

윤명옥이 귀띔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로인을 알아보시였다.

《책임자동무, 영범이 할아버님이시군요.》

그이께서 반갑게 말씀하시자 류철성은 얼굴이 불깃해졌다.

(모든것을 다 알고계시는구나. 필경 이분들이… 그럼 어제 저녁 마당가에 서계시던… 그러니 장인때문에 일어난 소동을 다 보셨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것이였다.

《아버님은 매생이를 타고 고기를 잡습니까?》

김정숙동지의 물으심에 류철성은 장인에 대한 고까움이 머리를 쳐드는것을 느끼며 시답지 않게 말씀올렸다.

《고기는 무슨 고기겠습니까. 사실은 왜정때 굴양식을 좀 해본 일이 있는데 해방직후부터 그걸 또 해본다면서 저렇게 극성인데…》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에라, 숨길게 없지.…)

《저 일때문에 결국은…며칠전 내가 장인이 지금 타고있는 저 사돌배를 수산사업소에서 좀 쓸려고 내갔댔습니다. 그런데 장인은 큰 변이나 난듯이 법석 떠들며 저를 몰아댔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 참다못해 제살궁리나 하는 사람은 〈반동〉이나 같다고 어망결에 한마디 했더니…허참, 당장 해산할 녀편네한테 미역 한꼭지 보장못하는 주제에 누구를 〈반동〉으로 모는가고 펄펄 뛰는게 아니겠습니까.》

《책임자동무두 참…》

김정숙동지께서는 직통배기로 터놓는 류철성의 솔직한 말에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제 영범이 어머니가 떡돌같은 아들을 또 안겨주면 지금 한 말을 후회하지 않겠어요?》

류철성은 목덜미까지 불깃해졌다.

녀사께서는 그에게 장인이 애지중지하는 배를 로인과 아무런 사전토의도 없이 제마음대로 수산사업소에 내간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나무라시였다.

자책감에 잠긴듯 한동안 말이 없는 류철성에게 김정숙동지께서는 장인의 굴양식을 하는 방법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류철성은 아는껏 그이께 설명을 해드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시며 사돌배를 몰아가는 로인의 모습을 지켜보시였다. 로인은 배를 섬바투 가져다대더니 젊은이들처럼 날렵한 동작으로 가까이의 너럭바위우에 훌쩍 건너뛰였다.

《책임자동무, 아버님을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싶군요.》

《뭐 들어볼것도 없습니다. 뻔한 일인걸요. 나때문에 한껏 속이 뒤틀려진 늙은이가 말이나 제대로 하겠는지…》

《제 보기엔 책임자동무가 아버님한테 사죄를 해야 할것 같군요. 아버님한테 사위된 도리를 지켜드리지 못한것도 잘못된것이지만 아버님말마따나 수산사업소책임자라는 사람이 당장 해산하게된 제 안해의 미역도 보장 못한건 더 큰 잘못이 아닐가요? 이제 태여날 책임자동무의 자식이 해방된 조국땅에 태줄을 묻게 되였다고 생각할 때 이건 단순히 미역에 국한된 문제라고만 볼수 없지요.》

류철성은 대답을 못했다. 그는 가슴을 치는 그 어떤 충격에 바다 멀리를 바라보시는 그이를 우러르다가 고개를 숙였다.

발동선은 로인이 내려선 섬가까이로 접근해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섬이 작지만 참 아름답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의깊은 시선으로 섬을 여겨보시였다. 어느덧 발동선과 잇닿은 너럭바위에 발판을 건너질렀다. 그이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여 로인이 있는 쪽을 유심히 살피시였다. 로인은 일행이 오고있는 이쪽은 본척도 안하고 도래굽이 너럭바위앞에서 삭정이를 모아놓고 불을 피우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에게 무엇인가를 귀띔할려고 성급히 한발 먼저 달려가려는 류철성을 제지시키시며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아버님이 대단히 노하셨군요. 우리 젊은 사람들이 가서 먼저 인사를 올리자요.》

그이께서는 로인에게로 걸어가시며 류철성에게 섬을 앞으로 인민들의 문화휴식터로 잘 꾸려주면 좋을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바다와 잇닿은 기슭에는 너럭바위들이 널려있고 둥실한 섬봉우리에 기묘한 바위들과 잡관목들이 듬성듬성 서있는것이 볼수록 아름다왔다.

《책임자동무 생각엔 어떻습니까?》

《그러니 이 섬을 인민들의 문화휴식터로 말입니까?》

류철성은 놀랍다는듯 그 자리에 멈춰서며 김정숙동지를 향해 눈길을 돌리였다.

《보세요. 륙지에서 이 섬까지 방파제를 쭉 련결하고 나무를 심고… 잘 꾸린다면 얼마든지 이곳 해안도시 인민들의 좋은 문화휴식장소로 될수 있지 않을가요?》

《투사동지의 생각은 이를데없이 좋은 안이지만 그렇게 하자면 국가적인 투자가 없이는…》

그는 해방전 몇몇 돈많은 부호들이 륙지에서 섬까지 방파제를 쌓으려고 바다에 돌을 날라다 처넣다가 그만두고만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들은 돈벌이와 유흥거리를 위해 그 일을 벌려놓았다가 그만두었다면 해방된 조국의 우리 일군들은 인민에 대한 참된 복무정신을 가지고 인민에게 리로운것이라면 힘이 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섬이 비록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자그마한 섬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가 피흘리며 찾은 조국의한부분이 아닙니까?》

김정숙동지의 음성은 절절하게 울렸다. 류철성은 다함없는 경탄과 존경의 눈길로 그이를 우러렀다.

어쩐지 머리가 숙어지고 자신을 반성해보게 되는것이였다. 이분께서 그토록 마음쓰시는 미역문제만 놓고봐도 그렇다. 언제나 인민의 복리를 첫자리에 놓으시고 모든것을 사색하시는 이분의 고결한 마음에 비해볼 때 노상 새 조선의 참된 일군이라고 자처하는 자기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류철성은 한창 불을 피우고있는 장인에게로 걸음을 옮기시는 김정숙동지의 뒤를 따르며 생각하였다.

(보통사람이 아니다. 이분은 범상치 않은 인걸이심이 분명하다.…)

흠뻑 젖은 옷가지를 불무지앞에 펴들고 말리우던 로인은 인기척에 피끗 고개를 돌리다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류철성을 보자 저도 모르게 골살이 찌프러졌지만 윤명옥이와 함께 오시는 김정숙동지를 보는 순간 간밤에 있은 일이 떠오르며 불침으로 얼굴을 찔러대는듯 한 감정이 전신을 휩싸는것이였다. 간밤에 한식경이 퍽 지나 취기에서 겨우 벗어난 후 딸에게서 여사여사한 이야기를 듣고는 날샐무렵까지 눈을 붙이지 못하고있는데 이른아침 집을 찾아온 윤명옥을 만났던것이다. 그와 함께 어제 저녁 집에 왔던분이 평양에서 온 항일투사라는것과 그분이 로인님의 신상을 두고 무척 걱정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늙은것이 로망줄에 잡혀 집에 찾아온 귀한분들앞에서 처신을 바로 못했다고 구들장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몸둘바를 몰라했던 로인이였다. 그런데 행운의 길이 열렸는지 존귀한분이 틀림없는 녀투사께서 오늘 이렇게 이름없는 섬에까지 오르시여 한갖 배군인 이 늙은이를 찾아오신것이 아닌가. 로인은 이제 그분앞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 궁싯거렸다.

간밤의 로망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사하고 백번 머리를 조아려 사죄를 하고싶었다. 나라를 찾느라고 녀성의 몸으로 온갖 고생을 다한분앞에 백성의 도리를 지켜 극진한 대접은 못할망정 불칙스럽기그지없는 망동을 부렸으니 이제 어떻게 낯을 들고 저분들을 대할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로인은 김정숙동지께서 가까이 이르시자 풀썩 주저앉으며 그이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목멘 소리를 했다.

《어허이구, 이 늙은것의 로망을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의 돌발적인 행동에 저으기 놀라시며 다급히 로인을 부축하여 일으켜세우시였다.

《아버님, 딸같은 사람들한테 이 무슨 일입니까.》

류철성은 두눈을 내려감으며 남몰래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을 부축여 불무지앞에 앉히며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아버님, 우린 아버님이 좋은 일을 하신다기에 그 이야기를 듣자고 왔습니다.》

로인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좋은 일이라니요?》

《아버님이 굴양식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그거야 뭐…그저 늙은것이 소일삼아…》

정천득은 의연 자책에 잠긴 얼굴을 들지 못하며 우물우물 말씀드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떻게 하나 로인의 면구스러워하는 마음을 풀어주려 애쓰시며 다정히 말씀하셨다.

《아버님이 굴양식을 해보겠다고 나선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책임자동무, 아버님처럼 이렇게 마음먹고 나선다면 미역문제도 결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엉거주춤 불무지앞에 앉아있던 류철성은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투사동진 미역도 결국?…》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버님이 굴양식을 한다는데 여기라고 왜 미역양식을 못하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아버님생각에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미처 깨도를 못하고 벙벙해 앉아있던 로인은 마침내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는 말씀의 뜻이 가슴에 닿은듯 저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경탄의 눈길로 그이를 우러렀다.

《과시 지당한 말씀이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사람이 잔뜩 독을 쓰고 달라붙으면야 못해낼 일이 없지요.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로인은 흥분한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이태전 여기 섬주변에…굴씨를 심을 때 먼저 이 마음에 심고 다음엔 바다에 심었었수다.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로인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쌈지를 꺼내더니 마라초를 두툼하게 말았다. 그리고는 부시를 쳐서 불을 붙인 다음 시원히 연기를 내뿜었다.

《그건 해방전에 잘사는 부자놈들만 먹던것두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신 오늘에 와서는 옛날에 못살던 우리들이 먹으며 살아야 한다 그 말이외다. 헌데 그게 거저 생기는거외까. 아니지요. 농민들이 땅을 가꾸듯이 우리두 제손으로 씨를 뿌리고 걷어들이고… 이 바다를 가꾸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우다.》

《로인님, 옳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꽛꽛한 로인의 두손을 꼭 잡아 흔드시였다.

《책임자동무, 아버님의 말씀이 옳지 않습니까?》

류철성은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로인은 그에게 피끗 언짢은 눈길을 주더니 고개를 돌리고 쓴입을 다셨다.

《젊은 사람들이야 아무래두 인생의 파란곡절을 다 겪어본 늙은이들만큼 하나요. 무슨 일이나 깊이 심사숙고해보는 이 오장속 깊이가 너무 얕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은연중 류철성을 힐난하는 로인의 마음을 너그럽게 헤아리시며 미소를 머금으시였다.

《정말 아버님처럼 그런 마음을 가진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봅니다.》

그이께서 공연히 사위에게 트집을 거는 로인을 탓하지 않으시고 칭찬만 하시자 정천득은 감지덕지해하였다.

《과분한 치하입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해방된 인민들의 마음속에 끓어번지는 불같은 애국의 마음을 다시금 느끼시며 로인에게 굴양식을 하는 방법에 대해 물으시였다.

정천득은 갱소년한 기분으로 들뜨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며 팔소매까지 불끈 걷고 불무지앞에 바투 나앉았다.

《뭐 특별히 기술이라고 할만 한것이 못됩니다. 여기 섬주변에서 바다물이 깊지 않은 곳에서는 굴씨가 참 잘 붙지요. 씨가 붙은 굴껍질을 쇠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꿰여서 저기 얕은 곳에 세워놓은 덕대에 매달아선 바다물에 잠그어놓으면 그만이지요. 그렇게 굴씨를 심어놓았다가 날과 달이 지나서 봄, 가을에 쇠줄을 끌어올리면 장정 혼자 힘으로는 어림두 없게 굴이 가득 달라붙지요. 신짝만큼씩 큰 굴알을 한알 뜯어 까보면 송편떡같이 희고 먹음직스러운 굴속이 들어있습니다. 망태기에 소주나 한병 넣구 나와 회를 쳐놓고 한잔 마시면 이 멋에 사는가부다 하구 흥에 붕― 떠있군 하지요. 허허…》

한동안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던 로인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너럭바위에 의지하여 세워둔 매생이에 성급히 다가가더니 정말 신짝같이 큰 굴 몇개를 두손에 들고왔다.

《이태전에 씨뿌렸던것이 어느만큼 컸는가 하구 오늘 몇개를 따보았수다.》

로인은 흐뭇한 얼굴로 굴 한알을 자랑스럽게 들어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이 드리는 굴을 소중히 받아드시고 찬찬히 여겨보시였다. 로인의 말대로 정말 신짝만큼 큰 회분색의 굴은 참으로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대단하군요. 아버님은 정말 큰일을 하십니다. 아버님이야말로 애국자입니다.》

《애국자라구요?… 부끄럽습니다만 이놈은 돈 몇푼 더 벌자구 이런 놀음을 벌려놓았는데요.》

《너무 겸양의 말씀입니다. 아버님! 지난날 지지리 못살고 천대받던 우리 인민들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인민으로 내세우는것, 삼천리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인민의 살기 좋은 락원으로 꾸리시려는것―이것이 바로 김일성장군님의 뜻입니다.》

김일성장군님의 뜻이라구요?!》

입을 항 벌리고 그이를 넋없이 우러르는 정천득의 얼굴에 숭엄한 빛이 한가득 어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의 두손을 꼭 잡으시고 무엇인가 더 격려해주고싶으시여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렇습니다. 애국자란 별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인민을 위하시는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아버님 같으신분들입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정천득은 눈물이 그렁하여 사위쪽을 돌아보았다. 보아라, 이분께서는 네눔이 《반동》으로, 돈만 아는 《수전노》로 몰아붙였던 이 령감을 어떻게 내세워주시는가를…아, 어쩌면 이 미욱한 평백성의 얼어붙은 가슴을 일시에 녹여주시고 말 못할 사연을 일일이 헤아려주시는것일고…저분은 필경 범상치 않은분이시다. 로인은 그냥 김정숙동지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로인에게 의논조로 물으시였다.

《아버님, 이 좋은 일을 왜 혼자 하십니까? 경험이 많은 아버님 같으신분들이 힘을 합쳐 수산사업소에 부업조같은 형식으로 판을 크게 벌리면 수확도 많아지고 나라에 큰 리득도 줄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 저같은 령감들이 서너댓 있기는 한데… 그렇게 하는것이 나라에 리득을 주는 일이라면야 래일부터라도 당장 시작할수 있지요. 그런데…》

로인은 턱밑에 가시풀처럼 뾰족뾰족 돋은 거친 수염자리를 버릇처럼 쓸어보며 류철성이쪽을 미타한 눈길로 돌아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의 심정이 십분 리해되시여 자책에 시달리는듯 말이 없는 류철성에게 말을 건네시였다.

《책임자동무, 보세요. 문제해결의 열쇠를 아버님이 쥐고있지 않습니까. 아버님 같으신분들을 내세워 굴뿐아니라 미역문제도 풀 방도를 모색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런식으로 바다가양식경험을 쌓아 모든 곳에 일반화하면 우리 장군님께서 무척 기뻐하실겁니다.》

류철성은 컴컴하던 얼굴에 화색을 띠며 시원스레 대답올렸다.

《제가 속이 좁았던것 같습니다. 투사동지가 가르쳐주신대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는 저으기 흥분하여 몸을 벌떡 솟구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드넓은 바다는 쏟아져내리는 한낮의 태양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며 끝없이 설레이였다.

×

순산이였다. 세상을 향해 터치는 새 생명의 힘찬 고고성이 바다기슭의 양철지붕을 들었다놓으며 울려퍼졌다. 그러나 부엌봉당에 털썩 주저앉은 정천득로인의 얼굴은 불에 탄 등걸처럼 컴컴히 죽어있었다. 그가 훨훨 나는듯 한 기분을 안고 섬에서 돌아오니 해산진통이 오는지 방안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리고있던 딸이 손쓸새없이 새 생명을 낳았던것이다. 허둥지둥 산모에게 먹일 미역국을 끓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엌에 내려섰던 정천득은 정지목에 있는 불에 탄 미역보퉁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후두둑 떨려남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였다.

(미역보따리를 제손으로 아궁에 처넣다니…그것도 힘겹게 그 먼곳까지 가서 가져온것을…이 미련한 놈아!…)

망연자실해서 앉아있던 로인이 타다남은 미역보퉁이를 헤쳐놓고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성한 미역오리를 고르느라 뒤적이는데 사위 류철성이 집에 들어섰다. 장인에게서 사연을 듣고난 그는 《미역을 구해봐야지요.》하며 밖으로 나갔다.

(원 세상에…)

사위에 대한 고까운 심정이 치받쳤으나 참았다.

정천득은 행여나 기대를 가지고 사위가 가져오는 온전한 미역으로 국을 끓이리라 생각하며 아궁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퍼그나 시간이 지났건만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애당초 믿지를 말았어야지.

로인이 한숨을 내쉬는데 삽짝문 열리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고막을 때린다. 정천득이 후닥닥 몸을 솟구어 마당을 내다보니 기다리던 사위였다. 맥없이 내리드리워진 사위의 빈손을 보는 순간 로인의 가슴에선 벼랑허물어져내리는 소리가 울렸다. 사위는 부엌에 들어설념을 못하고 토방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워물고있다.

(아, 미역이 이렇듯 귀한것이였단 말인가.…)

정천득은 밀어놓았던 타다남은 미역보퉁이를 다시금 앞에 펼쳐놓았다. 그러는 로인의 눈앞에는 몸소 바다에까지 나와 미역문제를 두고 그토록 절절히 말씀하시며 자기같은 평백성들과 허물없이 그 해결방도를 의논하시던 그 녀투사분의 인자한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는것이였다.

(바로 이래서…이래서 그분께서는…)

갑자기 마당가에서 의기양양하여 떠드는 손자녀석의 말소리가 들리더니 부엌문이 벌컥 열렸다.

《할아버지, 아지미가 미역을 가져왔어요.》

《뭐, 미역?!》

정천득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쳐드니 열려진 부엌문으로 윤명옥이 미역보따리를 들고 들어오고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예, 아니 그런데 이걸…이걸 어데서…》

로인은 흥분과 놀라움으로 말을 더듬었다.

윤명옥은 토방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류철성이며 부엌봉당에 타다남은 미역보퉁이를 펴놓고있던 로인의 정상에서 모든것을 깨닫고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가져온 미역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정천득은 잠시 멍해서 서있다가 고마운 녀인에게 큰절을 올리려는듯 무릎을 풀썩 꺾고 주저앉았다.

《고맙소이다.… 고맙소이다.》

윤명옥이 깜짝 놀라며 로인을 부축여 일으켰다.

《아버님, 이러지 마십시오. 이 미역은 김정숙동지께서 보내시는것입니다.》

《예, 뭐라고요?》

정천득은 윤명옥의 팔을 부여잡으며 두눈을 슴벅거리는데 밖에 있던 류철성이 부엌으로 뛰여들어오며 웨쳤다.

《이제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구시라고요?》

윤명옥은 그들을 바라보며 격정을 안고 말했다.

《아버님, 책임자동무, 오늘 오전에 친히 바다에까지 나가시여 아버님과 책임자동무와 미역문제를 의논하신 그분은 다름아닌 항일의 녀장군 김정숙동지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오전에 아버님이랑 나누신 이야기를 인민위원회 일군들과 토론해보시려고 오후에 숙소에서 나가시면서 영범이 어머니가 어느 시각에 해산할지 모르니 어서 미역을 가져다주라고 그리고 해산했다면 남정네들밖에 없는 집인데 분임동무를 도와주라고 저를 떠밀어 보내주셨습니다. 자신께서도 인차 뒤따라오시겠다고 하시면서…》

《김정숙동지!》

류철성이 목멘 소리를 내며 머리를 푹 떨구었다. 그의 두어깨가 세차게 떨고있었다. 정천득은 으흐윽 흐느껴울며 거쿨진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아, 나살이나 먹었다는 이 못난 놈이 큰 죄를 지었구나, 백두산녀장수를 몰라뵙고 인사도 변변히 못 드렸으니…》

방싯이 열려진 안방 나들문짬으로 산모의 흐느낌소리가 새여나왔다.

윤명옥은 후더워오르는 눈굽을 씻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빨리 산모에게 미역국부터 끓여주자요. 책임자동무, 어서 아궁에 나무를 더 넣으세요.》

아궁에선 장작가치들이 기세좋게 타오르고 벌렁벌렁 끓기 시작한 가마에선 흰 김과 함께 구수한 미역냄새가 풍겨나오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로인은 한일자로 지그시 입을 다물고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궁을 들여다보고있는데 밖에 나갔던 류철성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집뜰을 울렸다.

《아버님! 김정숙녀사님이… 녀사님께서 오십니다.》

정천득이도 윤명옥이도 밖으로 달려나가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벌써 마당안으로 들어서고계시였다. 정천득과 류철성이 무척 반가와하며 그이앞에 정중히 인사를 드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의 손을 따뜻이 잡으시고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축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아버님, 책임자동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녀사님!》

김정숙동지께서 방안에 들어서시자 윤명옥이 갓난애기를 덮어주었던 포단을 들쳐 보여드리였다.

《정숙동지! 사내아이입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복스러운 아기의 얼굴을 애중히 들여다보며 기쁨에 겨워 말씀하신다.

《아버님, 철성동무, 해방된 조국의 어엿한 기둥감이 태여났군요.》

해살같은 웃음발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 모습을 우러르는 윤명옥의 눈앞이 뿌잇해져왔다.

왜놈《토벌》대를 쳐물리치고 숙영지로 돌아오신 녀사의 배낭에 소중히 들어있던 무우시래기.

그날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윤명옥의 아들을 안아드시고 저렇듯 사랑어린 축복의 미소를 짓고계시지 않았던가!

이 순간 윤명옥은 그이께서 단순히 태여난 한 아기의 앞날뿐아니라 해방된 조국의 미래를 축복해주신다는 생각으로 하여 가슴이 벅차올랐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우러르는 정천득로인과 류철성의 량볼들로는 뜨거운 눈물이 마냥 흐르고있었다.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