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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박 춘 학
맑은 하늘이 건듯 이마를 들고 단풍이 붉게 타는 농장마을 뒤산이며 벼이삭 설레는 앞벌의 번듯 한 포전들이며 푸른 물이 든듯 생기에 넘치는 남새포전들을 흐뭇이 굽어보고있다. 벼모붓기와 강냉이파종, 김매기와 풀베기전투를 조직지휘하느라 무릎마디가 시도록 포전머리를 돌며 바쁘기만 하더니 어느새 봄, 여름이 가을철과 옷바꿈을 하고 뒤켠에 물러났다. 강냉이, 벼포기에 낫을 대기는 아직 이르니 관리위원장 조철민은 한동안 숨이 나올것 같았다. 예상수확고판정으로 평뜨기를 하며 이삭당 알수와 천알무게를 가늠해보는 그의 얼굴빛이 전에없이 밝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하여 그 빛이 흐려졌을가? 년간 농사예상실적통계를 훑어보던 그는 한 조목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알곡, 남새생산과제는 그럭저럭 맞출수 있을것 같은데 축산물, 그중에서도 돼지고기생산과 새끼돼지생산과제수행은 아무리 계산기단추를 눌러보아야 될것 같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것때문에 군적인 총화모임에서 된비판을 받았는데 올해에도 별로 개선이 없으니 그의 마음이 어떠하겠는지 짐작키 어렵지 않다. 축산반장이나 비육분조장들이 책임과 역할을 바로 하라고 귀에 길이 나게 강조하고 목대를 세워 추궁하고 처벌도 주었다. 그들은 관리위원장을 먼 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슬금슬금 피하는판이다. 철민이 통계종이를 훌 밀어놓고 일어섰다. 그는 밖으로 나와 토방구석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마당에 내리여 닁큼 올라타고 발로 디디개를 픽 돌렸다. 비육분조들과 축산반을 돌아보고 결정적인 대책을 세우리라 마음을 굳힌것이 분명했다. 그가 오전에 비육분조들을 돌고 점심밥술을 놓기 바쁘게 자전거를 타고 축산반 돼지우리근처에 다가서는데 모이를 쫏던 닭들이 화닥닥 뛰고 오리, 게사니들이 뚱기적거리며 달아났다. 돼지우리에서는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꿀꿀》소리에 귀가 솔았다. 몸이 실팍하고 푸접좋아 보이는 관리공아주머니가 두손에 돼지물을 담은 바께쯔를 하나씩 갈라 잡고 우리앞에 다가서기 바쁘게 엄지돼지들이 우리웃턱에 목을 내걸고 《꽥꽥―》 질러댄다. 철민이 우리에 다가서자 관리공아주머니가 《위원장동지 오셨군요.》하며 인사를 한다. 《수고합니다. 돼지 큰걸 좀 보러 왔습니다.》 《별루 크질 못했어요. 먹이고 먹이고 해도 때없이 달라고 소리지르니 감당 못하겠어요.》 철민이 입을 다시였다. 우리웃턱에 앞발을 올려 대고 관리공이 오기를 기다리며 쪼꼬만 눈으로 흘겨보는 돼지한테 다가가 목덜미를 쓸어주려고 하자 주둥이를 버쩍 올리며 털었다. 그바람에 주둥이에 붙었던 돼지물찌끼가 튕겨났다. 《에끼, 이놈 성미 꽤 사납다.》 철민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훔치는데 관리공아주머니가 《낯이 선 손님이 건드리면 가만 안 있어요.》하며 웃었다. 《낯이 선 손님이라?… 허허.》 철민이 무심결에 웃기는 했지만 어딘가 의미적인 그의 말에 생각되는것이 있어 입을 꾹 다물고 돼지우리들을 돌아보았다.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풍경에 은근히 심사가 꼬여들었다. 다음날 저녁무렵에 축산반성원들과 비육분조장들이 관리위원회 사무실에 모여와 앉았다. 철민이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우리 농장앞에 부과된 돼지고기생산과 새끼돼지생산과제를 맡은 주인들이요. 그런데 일을 쓰게 하지 못하고있소. 비육분조들도 한본새지만 축산반에 가면 기분이 잡치오. 축산반장동무, 좀 일어나오.》 축산반장이 흘끔 곁눈질하며 쭈뼛이 일어섰다. 《동무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요? 생산문화에선 락제고 짐승들은 왜 그 꼴로 만들었소? 엄지돼지는 더위먹은 산돼지같이 꺼칠하고 털이 곤두선 새끼돼지들은 고슴도치사촌이요, 닭들은 물닭처럼 껑충하고 오리, 게사니들은 때국이 괴죄죄하게 흐르는게 당대 미역을 감아보지 못한것 같소. 그러니 어떻게 고기생산이 오르고 좋은 새끼가 나오겠소. 말 좀 해보오.》 《글쎄 저도 애는 쓰는데 잘 안됩니다.》 《허튼소리요. 애쓰면 그만큼 은이 나는 법이요. 딴장보기에 애쓰겠지. 동무네 집 짐승들은 그렇진 않더구만. 그런데 작업반짐승들에는 왜 관심을 돌리지 않소? 그 속심이 뭔지 그걸 말하오.》 축산반장은 말문이 막혀 눈만 껌뻑거리였다. 《동무문제는 따로 보려고 하오. 앉소.》 축산반장은 서리맞은 풀잎모양으로 기가 죽어 머리를 숙이고 앉았다. 철민이 계속했다. 《2년전에 ○○농장 축산반과 비육분조들에 가 보고와서 그곳의 모범을 본받겠다고 결의들을 다졌는데 그때보다 달라진게 없소. 그 원인이 뭔지 오늘 똑똑히 밝혀내야겠소. 누가 말해보시오.》 모두 입을 다물었다. 《6작업반 비육분조장동무, 말해보시오.》 40대의 녀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일을 잘 못했습니다. 거기 가보고 감동이 커서 그대로 해보느라고 했는데 잘 안됩니다. 새로운 먹이첨가제를 써서 돼지비육상태가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 농장의 수준에 대면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 농장에서 무슨 보약을 만들어먹이면서 다른데는 대주지 않는다는 여론도 돕니다. 실지 그렇다면 그 비밀을 알아내면 좋겠습니다.》 그의 의견에 찬동인듯 모두 머리를 끄덕이였다. 철민이자신도 언제인가 군에서 소집한 회의에 참가했다가 휴식시간에 관리위원장들이 그러루한 말을 주고받던 일이 떠올랐다. 모임이 끝난 후에도 철민은 사무실에서 사업을 구상하거나 포전길을 걸을 때면 《비밀보약》이라는 말이 귀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날 저녁 그는 기사장과 사업토의를 하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동무 생각엔 어떻소? 축산기술이 있는 한 사람을 그 농장 축산반에 파견하여 경험도 쌓고 보약의 비밀을 뽑아오게 하면 말이요.》 기사장이 빙긋이 웃으며 받았다. 《밑져야 본전인데 손해볼것도 없지요.》 《그런 생각이면 한번 보내보기요.》 그들은 마주보며 웃었다. 며칠후 철민은 일하면서 농업대학 축산학부에 다니는 처녀관리공 김혜숙을 자기 사무실에 불러 앉히였다. 그는 자못 심중한 어조로 임무를 주고 강조했다. 《그곳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것만큼 발언과 행동을 례의있게 하고 일을 성실히 하면서 비밀을 알아내는데 머리를 써야 하오.》 처녀는 《호―》 하고 가는 숨을 내쉬였다. 《무슨 특수정찰병이나 비밀공작원같은게 속이 떨려서 못하겠어요.》 《우리 농장을 위한 일인데 큰 마음먹고 나서보오. 내 그곳 관리위원장을 잘 아오. 군대때 한부대에서 복무했고 농업대학에도 함께 다녔소. 잘 돌봐주라고 편지를 썼으니 가지고가면 모른다고 안할게요.》 처녀는 발깃해진 얼굴에 어줍은 미소를 머금고 편지를 받아쥐였다. 그날로부터 어느덧 한달이 지나갔다. 철민은 가을걷이전투에 들어가니 바쁘기란 이를데 없었다. 낮에는 가을하는 포전들을 돌고 저녁에는 탈곡장에 있었다. 혜숙이를 ○○농장으로 떠나보낸 일을 돌이켜볼 경황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혜숙이 배낭을 메고 관리위원회마당에 들어섰다. 그를 본 철민이 두팔을 벌리며 기뻐했다. 《아, 돌아왔구만. 수고했소. 별일 없었나?》 《없었습니다. 다 잘되였습니다.》 《고맙소.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고 래일 자세히 들어보기요.》 이튿날 저녁이였다. 철민은 축산반성원들과 비육분조장들의 모임을 소집했다. 혜숙이도 참가하였다. 모두가 그를 정차게 바라보았다. 한달나마 돼지기르기경험을 배우고온 그가 아닌가. 《혜숙동무, 앞으로 나오시오.》 철민이 흐뭇한 기분으로 손짓했다. 혜숙이 일어나 두손에 지함을 들고 앞에 나와 앉았다. 철민이 말했다. 《동무들의 요구도 있고 해서 혜숙동무를 ○○협동농장 축산반에 파견했댔소. 거기서 보고듣고 배운 경험을 들어봅시다. 비밀보약도 알아왔을거요. 자, 그럼 혜숙동무, 말해보시오.》 모두 호기심에 싸여 혜숙이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전 거기 가서 일하는 기간 매일 하루동안에 있은 일을 적어놓군 했습니다. 그걸 읽어드리면 안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에 기대와 호기심이 넘실대는데 철민이 《그게 좋겠소.》 하고 선뜻 대답했다. 혜숙이 지함에서 부피 두터운 학습장을 꺼내들었다. 오돌차고 또릿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관리위원장동지한테서 과업을 받고 떠나는 나의 마음은 어쩐지 흐리고 무거웠다. 내가 감히 그 일을 해낼가? 날씨도 내 마음처럼 어수선했다. 차츰 바람이 불더니 청청하던 하늘에 재빛구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내렸다. 우박이 내리지 않을가? 나는 돼지우리뒤켠에 심은 호박덩굴이 못쓰게 되지 않을가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연한것이였다. 인차 바람도 구름도 사라지더니 따스한 해빛이 내리였다. 나는 걸음을 다그쳤다. 나는 서먹한 기분에 은근히 마음을 조이며 관리위원회에 들어섰다. 어떻게 대해줄가?… 관리위원장을 만나는 순간 나의 마음은 예상밖으로 평온해졌다. 이곳 관리위원장의 구김새없이 소탈해보이는 기름한 얼굴, 선선한 눈빛은 나의 마음을 끌었다. 그에게 편지를 주었다. 그는 편지를 깐깐히 읽고나서 《허허, 사람두 참… 알겠소.》 하며 나를 마주보았다. 《숙식하고 일할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겠소.》 나는 그를 따라 농장합숙에 들려 그와 함께 점심을 먹고 축산반으로 갔다. 관리위원장이 50대가량 된 반장에게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말해주고 잘 돌봐주라는 당부를 했다. 그리고나서 돼지우리를 돌아보고 갔다. 축산작업반은 농장소재지에서 5리가량 떨어진 야산아래의 공지에 자리잡고있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도로며 《ㄷ》자로 지은 돼지우리며 여러동의 가공시설들과 창고, 그밖의 보조건물들이 그쯘히 갖추어져있다. 석비레를 다진 마당은 정갈하고 그 둘레에는 코스모스와 줄장미가 만발했다. 건물바깥둘레로 호박덩굴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있다. 더우기 새삼스러운것은 돼지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것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우리안을 들여다보니 벌거우리한 통굵고 늘씬한 엄지돼지들이 한가하게 누워 잠들고 한번 안아보고싶게 귀염성스러운 새끼돼지들이 주둥이를 맞대고 누워 잠에 취해있다. 보는것마다 새삼스러워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작업반장이나 관리공들은 한결같이 나를 친형제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제집, 제 일터처럼 안온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였다. 하루는 내가 사출장화를 신고 머리에 빨간 수건을 날리며 물호스를 휘둘러 돼지우리안팎을 청소하는데 덕실아주머니가 남자들처럼 옆구리에 한팔을 꺾어짚고서서 말을 건네였다. 《야― 우리 축산반에 복덩이가 굴러들었다. 여기 아주 눌러앉게나. 우리 농장에 끌끌한 총각이 좀 많다구.》 《우리 농장엔 적은줄 아세요?》 《그럼 눈맞춘 총각이 있나? 하긴 곱게 생겼겠다, 알뜰하고 일솜씨 걸차겠다, 똑똑한 총각들이 가만 있었을라구.》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곁에서들은 좋아라 깔깔거리였다. 그들은 나의 일솜씨를 칭찬했지만 그들이 먹이배합이나 조리하여 돼지를 먹이는데서 기술규정의 요구나 표준조작법을 지키는 수준이 나보다 훨씬 앞서고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내가 끓인 돼지물을 밀차통에 퍼담아 우리앞으로 밀고나가는데 덕실아주머니가 급히 다가와 밀차통을 멈춰세웠다. 그는 김이 문문 나는 돼지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장맛보듯 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온도계를 꺼내여 돼지물에 잠그어보고 말했다. 《맛은 괜찮은데 너무 뜨겁구만. 좀 식혀서 주라구. 혀바늘이 돋겠어.》 그의 정성에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오늘은 덕실아주머니랑 여럿이 먹이포전에 나가 먹이풀을 베여들이였다. 쉴참에 최뚝에 앉아 둘러보니 번뜻번뜻한 규격포전들에 여러 품종의 먹이풀이 그쯘히 키를 솟구고 고랑을 꽉 메우고있다. 나는 생각되는게 많았다. 《아주머니! 먹이기지가 튼튼하군요. 농장에서 이런 비옥한 땅을 척척 내주니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나의 말에 덕실아주머니가 아래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여기 견학와선 다들 그렇게 말하지. 어데 땅이 많아서 우리에게 이렇게 주겠나. 여긴 진펄이구 저긴 돌각담에 잡관목이 들어찼댔지. 그런걸 우린 반장아바이와 함께 밤마다 개간전투를 벌렸단다. 진펄을 뒤집어엎고 둘레에 배수도랑을 파구 돌각담을 헤치며 독같은 바위를 마스었지.》 덕실아주머니는 주춤하던 말을 멈추고 왼손의 약손가락을 내보였다. 끝이 몽드라지고 손톱이 없었다. 《개간전투에서 돌에 찢긴 부상자리야. 이 정도이면 개간전투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이 가지?》 그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가 계속했다. 《우리 관리위원장은 축산토대를 꾸리려고 무진 애를 썼지. 혜숙이도 보았겠지만 축산반에 기름짜는 설비를 만들려고 기술자 한명을 데려다가 그와 함께 밤을 패군 했단다. 그 기술자가 몸이 허약해 앓아눕게 되자 관리위원장이 저의 집에서 그의 병에 좋다는 약을 사다가 먹이면서 연구를 거듭 하게 했어. 끝내 새로운 기름짜는 기계제작에 성공했다네. 겉보기엔 별찮은것 같은데 높은 기술이 들어있대. 다른것들보다 2 ~ 2.5%의 기름을 더 짜 내지. 그러다보니 우리 농장은 물론 이웃농장원 세대들도 우리 축산반에 와서 깨, 콩기름을 짜가군 하지. 거기서 나오는 깨묵, 콩찌끼는 우리가 돼지먹이로 쓰고…》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한숨을 내그었다. 오전에 먹이밭에서 일한 다음 점심을 먹으려고 작업반휴계실에 다들 모여앉았다. 밥곽뚜껑을 열고 저가락을 집어드는데 젊은 기술원이 빨간 비닐쟁반에 자름자름한 통무우와 작은 배추포기를 뒤섞어 담근것을 들고 들어와 내놓았다. 시큼한 냄새가 풍기였다. 반장아바이가 기웃이 냄새를 맡아보더니 저가락으로 한줄기 집어들고 서걱서걱 먹었다. 곁에서들도 한줄기씩 집어들고 먹었다. 반장아바이가 《이만하면 괜찮아…》 하자 반원들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끄덕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별난 입들이지. 고추, 마늘이 들어간 양념도 없는 백김치가 그다지나 맛이 나다니…) 나는 잘못된 생각이라는것을 인차 깨닫고 자책에 겨워 낯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알고보니 그들은 돼지에게 먹일 김치를 품평했던것이다. 축산반뒤뜰에는 작업반에서 키운 무우, 배추로 돼지먹이김치를 담근 큼직큼직한 움이 여러개나 된다. 반장아바이가 돼지들의 건강상태를 관찰하는 모습은 나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기였다. 그는 돼지들을 돌아보면서 그것들이 내보내는 배설물들을 깐깐히 살펴본다. 손가락으로 헤집고 비벼보기까지 한다. 그렇게 하여 돼지의 건강상태를 알아내고 있을수 있는 병을 예방할 대책을 세우는것 같다. 오늘은 축산반이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했다. 재빛뭉게구름이 마두봉마루를 먹어삼키며 밀려오더니 하늘을 꽉 메웠다. 우뢰가 번개창을 휘두르며 큰 폭발처럼 하늘과 땅을 들었다놓았다. 소나기에 이어 도토리만 한 우박이 돼지우리기와장을 두들기며 쏟아져내리였다. 엄지돼지들이 멍해 서있고 새끼들이 우리구석에 몰켜 오돌오돌 떨고있다. 울타리뒤켠에 섰던 백양나무가 넘어지며 무성한 아지로 돼지우리지붕을 덮는 바람에 기와장들이 부서졌다. 반장아바이가 도끼를 들고 지붕에 올라가 나무아지들을 찍어 아래로 내리던지고 관리공들이 밑에서 끌어당기느라 안깐힘을 썼다. 한창 법석이는데 관리위원장이 사나운 비바람을 무릅쓰고 달려왔다. 포전을 돌아보던 그는 축산반이 근심되여 달려왔던것이다. 그가 소리쳤다. 《돼지들이 감기들겠소. 비닐박막과 새끼를 가져오시오.》 몇명의 관리공들이 창고에 달려가 비닐박막과 새끼퉁구리를 맞잡고 나왔다. 관리위원장이 그들과 함께 비닐박막을 돼지우리지붕에 펴고 그우로 새끼줄을 간격맞게 촘촘히 당겨맸다. 그렇게 하니 돼지들이 비에 젖지 않게 되였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다. 조리실에 잇닿아있는 휴계실에서 반장아바이가 담배를 붙여물고있었다. 덕실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았다. 《먼저 들어가라구. 난 좀…》 《함께 가자요. 무슨 일이 있나요?》 그는 대답을 않고 마당끝에 있는 우리로 갔다. 거기에는 갓 낳은 여러마리의 새끼돼지들이 있었다. 덕실아주머니는 우에 걸친 작업복을 벗어 새끼 한마리를 싸안고 나왔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제일 작은게 감기들것 같아서…》 그 말에 가슴이 찡해났다. 나도 우에 걸친 겉옷을 벗어 그중 약한 새끼 한마리를 싸안았다. 우리는 그것들과 온기를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관리위원장이 간밤에 돼지들이 무사했는가를 알아보려고 왔다. 그는 나를 보고 싱긋 웃음을 보냈다. 그 웃음이 얼마나 소탈하고 뜨겁던지… 그는 돼지우리 첫칸부터 마지막칸까지 깐깐히 들여다보았다. 엄지돼지들은 그가 손가락으로 목덜미나 등을 슬슬 긁어주면 손가까이에 몸통을 들이대고 가만 서있는다. 관리위원장은 그것들의 나이나 새끼밴 날자를 손금보듯 다 알고있다. 그가 축산반에 자주 들리군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엄지돼지들의 상태를 그렇게 잘 알고있는줄은 몰랐다. 내가 우리 농장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어쩐지 마음이 어수선하고 기분이 밝지 못했다. 그간 여기 와서 보고 듣고 체험한것들은 큰 도움이 되였고 우리 사람들에게도 교훈이 될수 있다. 하지만 관리위원장이 보약의 비밀을 알아오라던 임무는 아직도 수행하지 못했다. 이곳 축산반에서는 그 어떤 특별한 첨가제를 쓰는것을 본 일이 없다. 그렇다면 관리공들이 나 몰래 첨가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그들이 없는 틈에 여기서 먹이로 쓰는것들을 조금씩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침실에 들어와 종이에 싸서 배낭에 간수해두군 했다. 이제 조리한 돼지물을 한병 넣어두면 된다. 어쨌든 이 일을 해내기가 조련치 않다. 몰래 하자니 가슴이 뛰고 손이 떨린다. 이곳 관리공들도 각성해있는것 같다. 그러나 해내야 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해내리라 나는 결심했다. 점심시간이 되였다. 나는 일부러 조리실에서 어물대며 시간을 끌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다.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빈 병을 꺼내들었다. 나는 빈 병에 돼지물을 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등뒤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돌아다보니 덕실아주머니가 의심쩍은 눈길로 지켜보고있었다. 나는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것처럼 너무 놀라고 당황해나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덕실아주머니는 못 볼것을 본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함께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 덕실아주머니의 태도는 더욱 달라졌다. 입을 봉한 그의 눈빛과 거동은 무섭게 느껴졌다. 식사때면 내앞에 밥이나 반찬을 더 밀어놓군 하던 그였는데 말없이 밥상을 마주하고있다가 일어났다. 아마 꺼림직한 녀자를 집에 끌어들인것이 좋지 않아 그러는것 같았다. 그바람에 나도 밥을 먹는척 하다 물러났다. 우리는 일찌기 잠자리에 누웠다. 지금껏 이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친형제처럼 지내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나는 분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손으로 입을 꼭 누르고 울려니 명치가 고여오르고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시간이 흘렀다. 《울긴 왜?…》 덕실아주머니의 격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에 이불을 제끼고 일어나앉았다. 《아주머니! 나를 의심하지 말아요. 우리 관리위원장은 돼지고기생산과 돼지새끼낳이과제를 수행하려고 애를 쓰지요. 그래서 나를 여기로 보내면서 경험도 배우고 중요하게는 여기서 먹이는것들을 조금씩 가져오면 그대로 본받겠다고 했어요.》 그 소리에 덕실아주머니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왜 그걸 진작 말하지 않았니? 요즘 네 거동이 좀 이상해서… 밉게 보았구나. 내 잘못했다.》 순간 눈물이 솟구쳤다. 내가 울자 그도 따라 울었다. 우리는 한참이나 마주앉아 울었다. 이윽하여 덕실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만하자. 인젠 가슴이 후련하다. 울음도 좋은 때가 있구나.》 … 지금껏 랑랑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가던 혜숙이가 읽기를 멈추고 철민을 바라보았다. 《다음대목은 제가 분김에 쓴것인데 뛰여넘겠습니다.》 철민이 눈을 치떴다. 《그대로 읽소. 분김에 쓴것도 분석해보면 좋은것이 있을수 있소.》 《뛰여넘겠어요.》 《안되오. 한자도 빼지 말고 무조건 그대로 읽소.》 《야, 우리끼린데 뭐가 두려워 그러니? 읽어라.》 구석에서 녀자의 목소리가 부채질을 했다. 혜숙이 발깃해진 얼굴을 숙이며 읽기 시작했다. 《나는 울면서 다짐했다. 할수만 있다면 그를… 두들겨패겠다.…》 혜숙은 또 읽기를 그쳤다. 《누가 널 못살게 굴었니? 마저 읽어라. 내 주먹 한대면 다야.》 몸집이 우람한 3작업반 비육분조장이 소발통같은 주먹을 내들었다. 혜숙은 마지못해 읽었다. 《나를 이 험악한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우리 관리위원장동지를…》 철민이 흠칠 놀라며 혜숙을 보았다. 모두 얼나간 사람들처럼 멍해서 마주보았다. 철민이 머리를 쓸며 《맞을 일이면 맞아야지. 허허.》 했다. 그 말에 폭소가 일었다. 철민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조용들 하오. 다 들어두면 참고할게 있소. 혜숙동무, 어서 읽소.》 혜숙이 계속하여 읽었다.
…내가 떠나는 날이였다. 온 작업반이 휴계실에 모여앉아 점심식사 겸 송별식사를 했다. 자기 집들에서 국수며 녹두지짐이며 고사리, 콩나물 등 갖가지 음식들을 해가지고 왔다. 반장아바이가 나에게 말했다. 《사양 말고 많이 들라구. 별로 배울것도 없는데 와서 고생했네.》 《그런 말씀 마세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난 꼭 배운대로 해서 우리 축산반을 일떠세우겠어요.》 《참 좋은 말을 했소. 그런 의미에서 많이 먹고 떠나오.》 《고맙습니다.》 나는 그들과 한가정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 반장아바이가 나에게 배낭을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좀 난처한 생각이 들어 망설이였다. 그안에 들어있는것들이 걱정이였다. 그런데 덕실아주머니가 내 배낭을 가지고 부엌으로 나갔다. 그는 사품들은 꺼내놓고 나머지 봉지에 넣은 먹이들은 활활 털어버렸다. 물론 덕실아주머니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비밀이 아니였다. 그러나 분했다. 어떻게 마련한것들이라고… 그가 들어오자 반장아바이가 말했다. 《덕실동무, 준비해놓은걸 가져오우.》 덕실아주머니가 창고에 가서 부피가 크지 않은 지함을 두손에 맞잡고 들어와 내려놓았다. 내가 의아해하자 반장아바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동무네 관리위원장이 얼마나 안타까우면 혜숙일 여기로 보냈겠나? 그 심정을 생각해서 도움이 되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리용하는 먹이들과 배합방법, 조리방법들을 적은 책을 주겠으니 가지고 가서 참고를 하게.》 나는 먹이들을 조금씩 넣은 비닐봉지들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나고 눈물이 났다. 평시에 말이 없던 세포비서아바이가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농장 차가 비료 실으러 가는데 그걸 타고 가면 읍까지는 문제 없겠는데 거기서 20여리 더 가야 하니 힘이 들겠네.》 《걱정 마세요. 자주 다니던 길인데요.》 비서아바이는 근심이 어린 눈길로 나를 마주보고나서 가방에 넣어가지고 온 불룩한 비닐꾸레미를 꺼내놓았다. 《자, 받게. 도중식사네. 가다가 음식을 먹고 목이 마른다고 아무 물이나 마시지 말고 이안에 넣은 물을 마시게.》 《비서동지!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짐을 지고 축산반을 나서는데 모두 따라나와 배웅했다. 반장아바이가 서운한 표정으로 《또 오라구.》 했다. 《제가 이번에 여길 왔댔으니 다음번엔 여기서 우리한테 오세요. 제가 여기 와서 놀란것처럼 우리 축산반에 와서 깜짝 놀라게 하겠어요. 약속하자요.》 《그러자구.》 모두가 웃었다. 그들은 내가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혜숙이 지함안에서 비닐봉지들을 꺼내 책상우에 주런이 놓았다. 모두 눈이 둥그래서 지켜보았다. 생각이 깊어진듯 눈을 지그시 내려깔고있던 철민이 얼굴을 들어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젠 알고싶던 그 비밀보약이 무엇인지 알만 하오?》 대답이 없다. 침묵속에서 축산반장이 용기를 내여 고개를 세웠다. 《저것들을 분석해보아야 알것 같습니다.》 《아직 모르겠단 말이지.…》 《…》 철민이 눈을 치뜨고 축산반장을 쏘아보았다. 그는 끝내 참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 쳤다. 모두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저력있는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였다. 《지금껏 듣고도 심장이 달지 않는단 말이요? 그런 찬 심장으로는 비밀보약을 알아낼수 없소. 비밀보약은 다른데서가 아니라 그들의 심장속에서 찾아야 하오. 그것은 당의 축산정책을 기어이 관철하려는 그들의 불같은 열정, 몸과 마음을 깡그리 바쳐가려는 헌신성이요. 동무들이 이것을 모르거나 알고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농장의 돼지고기생산과 새끼낳이문제는 언제가도 해결될수 없소.》 한동안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했다. 철민이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자못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당의 축산정책관철에 몸과 마음을 깡그리 바칠 각오가 된 사람은 돌아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남아서 해임신청서를 쓰시오.》 모두 일어나 붐비며 밖으로 나갔다. 방에는 철민이와 혜숙이만 남았다. 철민이 사무실앞벽에 붙인 농장포전략도옆에 매달아놓은 지시봉을 벗겨들었다. 《내가 잘못했으니 때리오.》 혜숙이 눈을 동그랗게 떠올리며 마주보았다. 그는 지시봉을 받아 제자리에 가져다 걸었다. 《왜 때리겠어요? 비밀보약은 위원장동지가 알아내지 않았나요.》 《알아내기만 하면 무엇하겠소. 우리 농장의 축산을 일떠세우지 못하면 전체 농장원들앞에서 나를 때리오. 알겠소?》 혜숙이 웃으며 받았다. 《때리고 저도 맞겠어요.》 《롱담이 아니요. 약속하지?》 《알겠어요.》 철민이 씽긋 웃었다. 혜숙은 그 웃음속에서 류다른 빛이 번뜩이는것을 보았다. 터질듯 영글은 결심의 빛이였다. 그후 그들은 어떻게 일하였는지… 들리는 말에 축산반장은 해임되고 혜숙이가 반장이 되여 청춘의 기백으로 일한다고 한다. 지난해 도적인 농업부문일군경험토론회에서 조철민 관리위원장이 축산문제를 가지고 첫 토론을 했는데 그 《비밀보약》이 박수갈채를 받아 회의장을 들었다놓았다고 한다. 토론회참가자들이 그 농장의 축산반과 비육분조들을 돌아보고 모두 놀라 입을 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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