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박 경 철
남편이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가치있는 졸업론문까지 낸것이 그렇게도 기쁘단 말인가? 배치받는 기간에만도 안해는 축하전보와 전화, 편지는 물론 인편을 통해 고향의 특산물까지도 듬뿍 보내여왔다. 남달리 열렬한 안해의 축하에 김영세는 정신이 다 얼떨떨해질 지경이였다. 허나 그는 안해의 기쁨의 의미를 다는 모른채 고향으로 가는 배치장을 받아들고 렬차에 몸을 실었다. 덜커덕 덜커덕… 가벼운 동음을 울리며 도소재지를 빠져나온 렬차는 어느덧 드넓은 대지를 달리고있었다. 영세는 차창을 들어올렸다. 몸에 익을대로 익은 땅냄새가 초여름의 훈풍에 실려 기분좋게 흘러든다. 5월의 푸른빛이 점점이 물들어가는 농장벌 어디서나 모내기가 시작되였다. 청제비들이 맵시있게 물우를 스쳐날으는 논판들엔 써레를 치는 뜨락또르들과 모기계들이 한벌 깔렸다. 기계들과 어울려 부지런히 일하는 누렁소들도 보인다. 영세는 어느 한곳에 눈길을 주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달구지에 한가득 벼모를 싣고 가는 어미소를 따라 호도독 호도독 뛰여가는 송아지를 보았던것이다. 아, 어미소와 송아지… 영세는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애틋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
온 나라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고있던 때의 어느 봄날 아침이였다. 김영세는 괭이를 어깨에 메고 자기 분조 마을인 만산리 까치골 왼쪽에 있는 파래목논으로 나갔다. 그는 두발로 벼그루터기들이 푸석푸석한 땅을 벋디디고 두팔로는 괭이를 추켜든채 앞을 바라보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뜨락또르가 우렁찬 동음을 울리며 기름진 땅을 갈아엎군 하던 벌판은 이따금씩 《이랴― 낄낄―》하는 논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이 울려퍼졌다. 다름아닌 미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과 자연재해로 인한것임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분조에서는 당면한 영농과제수행을 위해 소들로 밭갈이를 조직하는 한편 분조의 일부 로력으로 소가 미처 갈지 못하는 논 귀때기들을 괭이로 뚜지도록 하였다. (개놈들, 네놈들이 아무리 제재를 한다, 봉쇄를 한다 어쩌구저쩌구 해도 우린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영세는 휙 바람을 일구며 괭이날을 땅에 박아 잡아챘다. 기름진 흙밥이 뒤번져지는 찰나 뒤에서 찾는 소리가 났다. 《영세오빠!》 《왜 그래?》 영세는 길다란 몸을 돌렸다. 분조의 막냉이인 옥금이가 할딱거리며 서있었다. 《분조장아바이가 다들 모이래요. 중요한 일이 생겼다면서.》 《중요한 일?…》 《예.》 영세는 제잡담 중얼거리며 탁구공처럼 통통 튀여가는 옥금의 뒤를 겁석겁석 따랐다. 늘 분조원들이 모이군 하는 마을앞 굵은 느티나무밑에 웬 낯선 처녀가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키에 약간 뚱뚱한 몸집, 희디흰 얼굴에 사색적인 두눈이 그윽히 빛나는 처녀였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채 꼭 모두어쥔 백도라지같은 손가락들은 이 처녀가 농장원이 아니라는 인상을 대뜸 주었다. 도시냄새가 물씬 풍겨오는듯 싶어 영세는 이상야릇한 감정이 들었다. 분조아낙네들이 수군거리며 처녀와 그옆에 착 붙어서서 여느때없이 벙글거리는 김문빈분조장을 번갈아 쳐다보고있었다. 《어제 저녁 미리 작업조직을 하고도 또 이렇게 모이라고 한것은 에― 우리 분조에 큰 경사가 생겼기때문이요.》 분조장이 서두를 떼자 분조원들은 갈숲에 바람이 불듯 더 한층 술렁거렸다. 《우리 분조에 새 사람이 한명 배치됐다 그 말이요. 이름은 최정순, 고향은 저 령너머 룡흥이지만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농장에 내려온 처녀요. 자 박수로써 환영합시다.》 순간 하나같이 세차게 박수를 쳤으나 영세는 입을 반쯤 벌린채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뭐라구? 고향은 룡흥?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영세는 별로 반갑지 않았다. 갈이보습을 찬 힘장수 뜨락또르가 왔다면 몰라도. 그의 마음을 들여다본듯 분조장이 물었다. 《영센 왜 그 모양인가? 분조에 식구가 한명 불어난게 반갑지 않나?》 분조장은 늘 입에 올리군 하는, 무슨 일에서나 사람이 기본이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제야 영세는 《예에― 거 뭐 나도…》하며 맥빠진 농군이 도리깨 두드리듯 투닥투닥 손벽을 마주쳤다. 《암 그럴테지. 그래서 내 임자한테〈특별과업〉을 주자고 하네.》 《?…》 《임잔 이 순간부터 〈어미소〉일세. 이 정순동문 〈송아지〉이고…》 《항상 〈송아지〉를 달고다녀야겠네. 말하자면 농사일에선 생소한 이 정순동무를 임자가 책임지고 잘 도와주어 훌륭한 실농군으로 키우라 그말일세.…》 《챠, 이런…》 영세는 찬성한다는 뜻인지 반대한다는 뜻인지 모를 애매한 말을 남긴채 걸음을 옮겼다. 그는 파래목논으로 향했다. 최정순은 정말 《송아지》가 되기라도 한듯 《어미소》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영세는 아무말없이 처녀에게 괭이를 주고 집에 가서 다른 괭이를 가져왔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괭이를 휘둘렀다. 곧 영세가 앞서고 처녀는 저만치 뒤떨어졌다. 영세는 아무말도 안하고 묵묵히 손만 놀렸다.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머리속엔 이 처녀가 뭣때문에 여기로 왔을가 하는 그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지금 농사가 첫째이고 먹는 문제가 중요하다고들 하니까 《농민영웅》쯤 되여 이름을 날려보려는것일가. 어쨌든 연약한 처녀가 농장에 온것은 찬양할만 한 일인것이다. 영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키자 처녀쪽에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이참, 왜 그렇게 아무말도 안하세요? 〈송아지〉하고는 상대가 안된다는거지요?》 (음, 그 말도 비슷해.) 《솔직히 전 아까 분조장동지가 저를 〈송아지〉에 비유했을 때 몹시 불쾌했어요.》 《?…》 《하지만 죄다 사실이지요 뭐. 앞으로 많이 배워주세요. 하루빨리 동무처럼 〈어미소〉가 되여 모든 농사일을 척척 해제끼는게 제 소원이랍니다.》 (뭐 소원? 그럼 훌륭한 실농군이 되려고 농촌에 왔단 말인가?) 《그렇소?》이 한마디를 하고난 영세는 한층 드세게 괭이질을 해나갔다. 뒤에서는 《송아지》가 이를 악문채 비지땀을 흘리며 따라온다. 허나 안될걸, 한순간에 다년간의 농사경력을 가진 나를 어떻게 따라잡는단 말인가? 영세는 더 바싹 속도를 높여나가다가 뒤에서 괭이질소리가 나지 않아 슬며시 돌아섰다. 괭이를 놓고 꿇어앉은채 두손바닥에 호호 입김을 불고있는 처녀의 모습… 그러다가 그의 눈길과 마주치자 황망히 놀라 일어서더니 덤벼치듯 괭이를 휘두르기 시작한다. 영세는 못 볼것을 본것처럼 눈길을 돌렸다. 불시에 가슴이 아릿해나기도 하고 허전해나기도 했다. 다시 괭이를 추켜들던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아서서 처녀를 마주 나갔다. 서로 마주친 다음 다른 곳으로 갈 때 그는 점잖은 목소리로 《충고》를 했다. 《농사일이란 결코 아이들 놀음이 아니요. 철새가 되려거든 일찌감치 날아가버리는것이 좋을거요.》 순간 자기한테로 돌려진 처녀의 사색적인 두눈에서 매서운 빛발이 쏟아져나오는것을 영세는 보았다. 처녀는 이내 눈길을 떨구며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동무의 눈에야 그렇게밖에 안 보일테지요. 전 조금도 탓하지 않아요. 오직 앞으로의 실천행동으로써 그렇지 않다는걸 증명해야 하니까요. 부탁하고싶은것은 사정보지 말고 저에 대한 요구성을 최대한 높여달라는거예요.》 그리고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논판에 쾅쾅 괭이날을 박아 넘어질듯이 잡아챘다. 《?!…》 영세는 멍하니 처녀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괭이를 추켜들었다. 그는 인차 처녀를 따라 앞섰다. 날들이 흐르고 달들이 바뀌였다. 원하든 원치 않든 영세는 《어미소》구실을 해야 했다. 그것은 분조장의 《특별과업》이면서도 분조원들의 믿음이였기때문이였다. 다만 어떻게 구실하는가가 문제였다. 아니, 문제랄것도 없었다. 처녀가 말하지 않았는가. 사정보지 말고 요구성을 최대한 높여달라고. 그대로 영세는 회초리를 맵짜게 휘둘러댔다. 《이건 왜 이 모양이요? 다시하오.》 《밥 먹는 사람이 맞긴 맞소?》 《이렇게 일할바엔 고향으로나 가오.》 그때마다 처녀의 흰 얼굴은 익은 꽈리빛이 되고 붓끝같은 속눈섭이 축축이 젖어들군 했다. 했으나 인차 발가스름한 입술을 차돌같은 대문이로 꼭 깨물며 총각의 요구에 군말없이 응해나서군 했다. 보다보다 안됐는지 하루는 분조장이 휴식참에 영세를 외딴 곳으로 끌고갔다. 《영세, 사람이 왜 그 모양이야? 임잔 받길 잘 하는 뿔황소야, 뿔황소!》 영세는 입을 딱 벌렸다. 《뿔황소요? 그, 그 동무가 그래요?》 《처녀야 아무말도 안하지. 내가 보고 분조원들이 보건대 그렇단 말이지. 이보라구, 진짜 어미소는 그렇지 않아.》 분조장은 영세의 어깨를 툭 치더니 멀지 않은 산기슭을 가리켰다. 분조의 어미소 한마리가 풀을 뜯다말고 갓 낳은 귀여운 송아지의 황금색털을 살살 핥으며 애무해주고있는 모습이 안겨왔다. 《요구성을 높이는건 좋은데 저런 맛도 있어야 한다 그 말일세. 항차 우리야 사람이 아닌가.》 영세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핫하하. 강철은 불속에서 단련된다는걸 알면서도 그러누만요. 그 동문 지금 용광로속에 들어간 떡쇠란 말이예요, 떡쇠! 뜨거운 불을 이기지 못해 강철이 못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라지요.》 《아니, 정순인 절대 그럴 처녀가 아니야. 제발 곰살궂게 굴라구.》 영세는 분조장이 어째서 《송아지》를 두둔하며 그런 말을 하는지 그 사연을 후날에야 알수 있었다. 이듬해 장마철이였다. 어느날 오후 영세는 분조장으로부터 최정순과 함께 마을앞을 흐르는 개울가 강냉이밭머리에 장석을 쌓으라는 임무를 받았다. 구간은 열메터정도였다. 개울쪽으로 활등처럼 휘여나간 이 구간엔 이미 수년전에 돌을 쌓았으나 해마다 들이받는 물에 의해 다시 손질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오후 작업시간이 되자 영세는 삽을 둘러메고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한식경이 지나도록 손 맞잡고 일해야 할 최정순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영세는 소재지쪽으로 눈길을 돌려 마당가에 푸르른 버드나무 한그루가 풍채좋게 서있는 합숙을 바라보았다. 오전에 드세차게 풀베기를 하더니 너무 피곤해서 깜빡 낮잠에 든게 아닐가? 두해 가까이 농사일을 하는 사이에 처녀의 일솜씨는 퍼그나 늘었고 일능률도 높아졌다. 하얗던 얼굴은 가무스레 탔고 백도라지같던 손가락들은 터슬터슬해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여기고있는 영세였다. 오늘 오후엔 그한테 돌쌓는 법을 착실히 배워주리라 벼르고있는 참이였다. 그런데 아직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으니 속이 탈노릇이였다. 저으기 화가 동한 그는 팔다리를 걷어올리고 물속에 첨벙 뛰여들었다. 삽을 휘둘러 기초를 파고 서너메터구간에 돌을 쌓았다. 그 뒤면에 자갈과 흙을 꽁꽁 다져넣고났을 때까지도 처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세는 손을 털고 다시 합숙쪽을 바라보았다. 이때에야 하늘색장화를 급히 당겨신으며 그가 마당가로 뛰여나오는것이 보였다. 처녀는 머리에 쓴 빨간 수건을 기발처럼 날리며 이쪽을 향해 넘어질듯이 달려왔다. 순간 영세의 머리속에는 불쑥 엉뚱한 생각이 끼여들었다. 그는 품속에 넣고다니던 수첩을 꺼내 펼치고 원주필로 이렇게 휘갈겨썼다. 《난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겨 그걸 하러 가니 동무가 마저 쌓소. 저녁때까지 무조건 끝내야 하오.》 그리고는 그 수첩장을 북 찢어 잘 보이는 돌우에 올려놓은 다음 무성한 강냉이숲속으로 걸어갔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였다. 도랑치는 작업장에 찾아가 일하던 영세는 슬며시 개울쪽으로 향했다. 어떻게 되였을가? 쌓았을가? 못 쌓았을가? 만일 쌓지 못했다면 야단이였다. 밤에 큰 비가 온다는것을 그는 좀전에야 알았던것이다. 정신이 펄쩍 들며 괜히 그런 《장난》을 했다는 후회가 갈마들었다. 십중팔구는 쌓지 못했을것 같은 예감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채 현장에 이른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예닐곱메터 구간에 일매지게 돌이 쌓여있는것이 아닌가. 약간 면이 맞지 않고 삐뚤써한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만하면 《합격》도장을 누를수 있을것 같았다. 영세는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녀는 보이지 않고 한쪽켠에 분조장이 할할하며 앉아있었다. 그럼 분조장이? 아니, 그의 장석솜씨는 완전미장질과 다름없는데… 《음, 이제야 나타났군.》 벌떡 일어난 분조장이 성난 눈길로 영세를 쏘아보듯이 다가왔다. 《임자가 이따위짓을 했나?》 그는 수첩장을 내흔들었다. 《거 뭐 작업시간을 지키지 않기에 좀 혼나보라구…》 이렇게 말해놓고야 차라리 입을 봉할걸 하는 생각이 들어 영세는 벌개진 목덜미만 어루쓸었다. 《사람이 왜 그리 옹졸하고 눈치가 무딘가, 엉?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말일세.》 《?…》 분조장은 흥분으로 해서인지 약간 갈린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정순동무의 생일이란 말일세. 아침에 깜빡 잊고 색다른 음식 한가지 해먹이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려 관리위원회에 회의가던 낮시간에 잠간 합숙에 들렸드랬네. 헌데 거기서도… 내 말을 듣고야 합숙어머니들이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점심에 생일상을 차려주다나니 좀 늦은 모양인데…》 영세는 그만 어둠이 내리덮이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괜히 헛기침만 깇었다. 오른쪽 로동화 앞코숭이는 땅을 허비고있었다. 《나나 임자나 그저 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집떠나 고생하는 처녀한테 너무 무관심했거던. 생일날 그가 얼마나 집생각을 했겠나. 게다가 이런 모욕까지 받았으니… 하지만 정순동문 아무내색도 하지 않고 몇번이나 쌓았다 헐었다 하면서 끝내 제손으로 장석쌓기를 끝냈네. 그리고 여기에 앉아 상처가 난 손을 처매며 소리없이 울고있더군. 나를 보자 얼른 눈물을 닦고 일어나 오후 작업에 늦어 정말 잘못했다고 하는걸 내 방금 합숙으로 떠밀어보냈네.…》 영세는 어느새 숨소리마저 죽였다. 가슴은 조여들다못해 뻐개지는것 같았다. 내가 너무했구나, 오늘뿐아니라 지금껏.… 허나 더 큰 후회는 다음에 있었다. 《말이 난김에 한마디 더 합세. 임잔 왜 정순동무가 고향을 떠나 농촌으로 왔는지 알고있나?》 《?…》 《모를테지. 하지만 난 알고있네. 정순동무가 우리 분조에 배치되던 날 리당비서가 말해주더군. 정순동문 석탄을 캐는 탄부가정에서 막내외동딸로 태여났네. 그의 아버진 자식들에게 언제나 사심없는 마음으로 나라를 받들줄 알아야 한다고 늘 말하군 했다오. 정순동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책동과 혹심한 자연재해의 영향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나라의 식량사정이 긴장해졌소. 그는 지금껏 자라면서 쉽게 들군 하던 밥술의 무게를 알았고 쌀의 귀중함을 난생처음 심장으로 절감했네. 그는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결심했다네. 농업전문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농촌으로 가자, 식량을 넉넉히 마련하는것이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길이다. 내 조국을 받드는 애국의 길에 이 한몸 한줌의 거름이 되리라.… 그는 이런 결심을 품고 고향과 부모형제들의 곁을 떠나 농촌으로 왔네. 난 아까 합숙에 갔다가 정순동무의 방에 들려보고 울었네. 벽 한곳에 파란천으로 만든 자그마한 주머니가 걸려있길래 헤쳐보니 눈부시게 까만 석탄이 들어있는것이 아니겠나. 그러니 정순동문 늘 이렇게 부모들의 당부를 잊지 않고 농사일을 해왔던거네.…》 영세는 뿌잇해나는 눈길을 돌려 합숙쪽을 바라보았다. 연한 불빛이 흐르는 어느 방엔가 처녀가 앉아있을것이였다. 홀로 돌을 쌓느라 손에 생긴 상처의 아픔도 잊고 벽에 걸린 자그마한 석탄주머니를 행복에 겨워 바라볼지도 모른다. (아 쉽지 않은 동무, 훌륭한 동무, 사랑스러운 동무!…) 영세는 자기 심장에도 그 석탄주머니가 뜨겁게 안겨지는것을 느끼며 속으로 뇌이였다.
×
…2년후 가을에 그들은 한가정을 이루었다. 마을의 양지바른 곳에 영세네 새집이 아담하게 자리잡았다. 안해는 합숙방에 있던 그 석탄주머니를 새집의 아래방에 옮겨다 걸었다. 이듬해 봄부터 농장벌에서는 다시 뜨락또르의 발동소리가 힘차게 울리고 령너머 룡흥탄광에서는 석탄생산계획을 넘쳐한 소식들이 련이어 들려왔다. 처가집에서는 그들부부를 제일 귀한 자식으로 환대해주었다. 안해는 이젠 《송아지》가 아니였다. 분조의 《구대원》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실농군, 《어미소》였다. 안해는 소원을 이루고 행복을 찾은셈이였다. 행복에 행복이 겹쳐 그해 가을 영세네 집엔 옥동자가 태여났다. 생활은 마냥 즐겁고도 보람차게 흘러갔다. 해빛밝은 집, 귀여운 아기, 정다운 이웃들, 희망찬 아침출근길, 대지에 묻는 구슬땀, 밤창가의 웃음소리… 마을사람들은 영세네 집을 가리켜 《깨가 되박으로 쏟아지는 집》이라며 부러워했다. 다음해에 영세는 분조장이 되였다. 영세는 분조장사업 첫해에 까치골이 생겨 처음보는 높은 소출을 냈다. 이듬해에도 그 기록을 유지했다. 농장속보판에는 김영세의 이름이 떠날줄 몰랐고 한해농사를 총화하는 모임 주석단에도 그가 앉군 했다. 제일 기뻐한것은 안해였다. 하긴 남편의 일이 잘되여 기뻐하지 않을 안해가 어데 있겠는가. 새해가 잡혔다. 그날 아침 그는 기분좋은 표정으로 안해에게 말했다. 《여보, 저것 말이요? 이젠 치우는게 어떨가?》 영세는 바람벽에 걸려있는 파란색갈의 석탄주머니를 가리켰다. 《…》 《저걸 볼 때면 말이요. 당신이 늘 탄광생각을 하누나, 그러다가 여길 훌 떠나서 다시 탄광으로 날아가면 어쩔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요.》 안해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당신 별걱정을 다하는군요. 전 이미 이 까치골에 정들었어요. 이젠 고향처럼 되여버린 이 땅을 떠나선 순간도 못살것 같애요. 하지만 저 석탄주머니만은 매일 보고싶구만요.》 영세는 안해의 그 말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아무리 이 땅에 정들었다고 한들 그의 고향이야 어디까지나 탄광이 아닌가. 그걸 어떻게 하루 한시인들 잊을수 있으랴. 저 석탄주머니야말로 안해가 심장에 안고 사는 《고향》이라는 생각에 영세는 두번다시 그런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새해에 들어선 어느날 작업반장이 영세를 찾아왔다. 그는 자기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댔는데 어제 리당위원회에서 영세의 대학공부문제가 론의되였다고 알려주었다. 대학소리를 듣자마자 영세의 가슴은 잠자던 바다에 파도가 일어난듯 했다. 대학공부! 그것은 오래전부터 바라오던 그의 마음속 소원이기도 했던것이다. 그러나 다음순간 영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이젠 한가정의 세대주가 된 자기가 집을 떠난다면 안해 홀로 아이를 데리고 힘든 농사일도 할래,자질구레한 집안팎살림도 도맡아할래 얼마나 바쁘고 고생스러우랴 하는 생각이 앞섰던것이다. 저녁에 집에 들어온 영세는 낮에 있은 일을 안해에게 이야기했다. 안해가 그의 팔에 다정히 몸을 기대며 말했다. 《여보, 집걱정은 조금도 말고 꼭 대학공부를 하세요.》 자기를 올려다보는 안해의 간절한 눈빛에 영세는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는 안해의 손을 꽉 움켜쥐며 웨치듯이 말했다. 《가겠소. 당신을 생각해서라도 내 꼭 최우등을 하고 올테요!》 이렇게 영세는 대학으로 떠났다.
그때 관리위원회와 작업반의 조치에 따라 안해가 분조장사업을 인계받게 되였다. 몇년간 남편없이 살림을 해야 하는 그에게 분조장이라는 무거운 덧짐까지 지운셈이였다. 이런 안해를 늘 가슴속에 그리며 영세는 직심스럽게 공부하여 해마다 최우등을 했고 졸업할 때에는 《중간지대에서의 다수확품종의 벼재배에 관한 새로운 연구》라는 가치있는 론문을 발표했다.… 렬차는 여전히 달리고있었다. 고향은 아직 멀리에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벌써 정든 안해의 곁에 가있었다.
× 사위가 어슬어슬해졌을 때에야 영세는 렬차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10리남짓이 가야 만산농장이나진다. 그는 체신소에 들려 농장에 전화를 걸었다. 한시바삐 안해를 만나보고싶은 충동을 누를수가 없었던것이다. 전화를 받은 관리위원회 부원이 마침 까치골쪽으로 가는 길이니 꼭 집에 들려 알려주겠노라고 했다. 영세는 배낭우에 배낭을 덧지고 량손에 트렁크를 든채 걷기 시작했다. 몹시도 무거웠다. 그속에는 농업대학시절에 공부하던 교과서와 학습장, 참고서들, 농업과학기술서적들 그리고 실험일지와 졸업론문, 졸업증 등이 들어있었다. 얼마 못 가서 온몸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콩알같은 땀방울이 이마를 간지럽히며 떨어져내렸다. 그때마다 트렁크를 놓고 잠간씩 숨을 톺군 했다. 문득 졸업식때 담임선생님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대학공부는 이자 겨우 한치의 우물을 판데 불과하오. 배치되여서도 그 우물을 파고 또 파야 한생 마를줄 모르는 창조의 샘이 나올수 있소.》 평생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였다. 그래서 이렇게 욕심스럽게 책들을 가져오는 길이였다. 어느덧 오리길을 왔다. 영세는 배낭까지 벗어놓고 한동안 땀을 들였다. 이제는 안해가 나타날 때가 되였는데 《여보》하는 그 정다운 음성은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혹시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게 아닐가? 분조장인데다가 모내기가 시작되였으니 오죽 할일이 많겠는가.… 안해가 마중오기를 단념한 그는 또다시 지고들고 걸음을 옮겨놓았다. 집이 점점 가까와지자 힘들다는 생각보다도 기쁨과 즐거움이 앞섰다. 까치골로 꺾어드는 동구길에 웬 자그마한 그림자가 서있는것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머밋거리던 그가 갑자기 야무지게 소리쳤다. 《아버지―》 《아니… 철진아!》 영세는 트렁크를 내려놓고 달려오는 아들을 덥석 그러안았다. 이런, 몇달사이에 한뽐이나 더 큰것 같다. 이젠 일곱살, 소학교에 간다지. 세월이란 참 빠르기도 하다. 하긴 분조막냉이로 일하던 옥금이가 벌써 시집을 가서 아들쌍둥이를 낳았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 아버지가 온다는걸 알았니?》 《예. 관리위원회 부원아저씨가 알려줬어요.》 《그런데 어머닌 뭘하시니?》 《아까 그 소식을 듣고 좋아하시더니 논에 나가봐야 한다며 또 나갔어요.》 음, 바쁜게 틀림없구나. 아무렴 분조장이 한가해서야 안되지. 《자, 어서 집으로 가자.》 철진이가 트렁크 하나를 들겠다고 낑낑거렸다. 《그만둬라. 너는 무거워 못 들어.》 집마당에 들어선 영세는 매끈하게 세멘트매질을 한 토방우에 짐들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궁에 불을 지피고 쌀함박을 손에 들었다. 쌀을 꺼내려고 방에 들어서던 그는 주춤 멎어섰다. 예나 변함없이 벽에 걸려있는 석탄주머니가 시야에 비껴들었던것이다.
변색되지 않은 새까만 석탄이 눈부시게 안겨왔다. 세월은 흘러도 고향에 대한 애정을 변함없이 안고 사는 안해의 마음이 헤아려져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석탄주머니를 제자리에 걸고난 영세는 천천히 쌀을 일어 가마에 안쳤다. 《해해, 아버지가 밥하시네.》 철진은 아버지가 온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떨어질줄 몰랐다. 어느덧 밥잦는 냄새가 구수히 떠돌기 시작했다. 버치에 끓는 물을 퍼넣고 사발들을 가시고있을때 대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여보!》 안해의 기쁨에 넘친 음성이였다. 영세는 대답대신 후닥닥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아들녀석이 보는줄도 잊고 안해를 덥석 안아 들어올리고 빙그르르 돌아갔다. 별로 가벼워보이는 몸, 얼굴에 와닿는 꺼칠한 손바닥… 갑자기 눈굽이 시큰해났다. 이런 안해가 있어 내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떳떳한 마음으로 고향에 온것이 아닌가. 이제부턴 그새 못한 일들을 내가 도맡아하리라. 안해의 어깨에 무겁게 실렸던 짐들을 덜어주리라.… 《됐어요. 이젠 그만해요.… 그런데 당신 오자마자 이게 뭐예요? 손에 물을 묻히면서.》 《별소릴, 늦도록 일하느라 배고플텐데 어서 들어가 식사를 하기요.》 영세는 안해의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끌었다. 그제야 토방에 놓여있는 짐들을 띄여본 안해가 그것들을 급히 웃방으로 날라들여갔다. 《원, 누가 가져갈가봐 그러오? 헌데 이거 정말 미안하구만. 그속엔 당신한테 줄 분크림 한단지조차 들어있지 않으니… 전부 책들만…》 《호호, 전 분크림보다도 이렇게 많은 책들을 가져온게 더 기뻐요. 당신이 억만금을 가지고왔다한들 이보다 더 기쁘겠어요?》 영세는 어안이 벙벙하여 안해를 마주보기만 했다. 《여보, 손댔던김에 책장정리까지 마저 하는게 어때요?》 《당신 소원이라면.》 얼마후 다섯단으로 된 책장안에는 갖가지 책들이 들어차다싶이 했다. 마치도 도서관 장서의 한부분을 여기에 옮겨다 놓은듯싶었다. 안해는 얼굴가득 함박꽃같은 미소를 머금고 책장을 이리보고 저리보며 어쩔줄 몰라했다. 이렇게 기뻐하는 안해의 모습을 영세는 결혼후 처음 보는것 같았다. 《야, 멋있네!》 철진이도 책상의자우에 난딱 올라앉아 짝짝 손벽을 마주치며 좋아했다. 《참 여보, 그 졸업론문은 어데 있어요?》 《오, 그것!》 영세는 트렁크에 따로 정히 건사했던 론문을 꺼내주었다. 겉표지에 또렷이 새겨진 론문제목을 훑어보고난 안해가 그것을 품에 꼭 껴안으며 행복에 겨운듯 말했다. 《이젠 됐어요. 당신이 오면 이 연구성과를 우리 분조에 먼저 도입하기로 관리위원회에서 이미 토론이 있었어요. 당신 그새 숱한 고심을 하더니 우리 까치골에서 벼소출을 높일수 있는 큰일을 해놓았군요.》 안해는 그것이 자기가 해놓은 일이기라도 한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뜻밖에도 이런말을 하는것이 아닌가. 《여보, 오늘부터 당신은 두번다시〈어미소〉가되였어요. 난〈송아지〉가 되고…》 영세는 얼떠름해졌다. 《당신은 선생이고 난 학생이다 그 말이예요.》 《그럼 당신 이제부터 나한테서 대학공부를 하겠다는거요?》 《그래요. 사람이 오늘의 행복에 만족하여 더 분발할 생각을 못한다면 그 행복의 샘줄기는 어느 새 말라버리게 될거예요. 오늘의 현실은 더욱더 크나큰 행복의 창조에로 우릴 부르고있지 않나요. 이 요구에 따라서자면 누구나 머리를 싸매고 배워야 해요. 그래서 우리가 해마다 더 많은 알곡을 낼 때만이 저 령너머 탄광에서도 더 많은 석탄이 쉼없이 쏟아질거라고 생각해요.》 안해의 목소리는 절절하게 영세의 귀전을 자극했다. 그는 이제야 모든것을 알았다. 안해가 어째서 자기를 대학으로 떠밀어보냈으며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가치있는 졸업론문을 냈을 때에는 왜 그토록 기뻐했는지 그리고 석탄주머니를 무엇때문에 늘 벽에 걸어놓고 살고있는지 그 깊은 속마음을 비로소 가슴후덥게 깨달았다. 《왜요? 제가 공부를 못할것 같애요?》 《아니, 당신은 결심만 하면 무엇이나 다 해내지 않았소.…》 영세는 더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안해의 어깨에 더 무겁게 실릴 짐, 어찌 보면 탄광을 떠나 갓 농촌에 왔을 때보다 더 힘들게 걷지 않으면 안될 그 길이 떠올랐기때문이였다. 하지만 그 길은 안해에게는 보람차고 행복넘친 길로 될것이다. 안해는 걱정말라는듯 방그레 웃으며 믿음어린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고있었다. 영세는 속에 불뭉치같은것이 치밀어올라 밖으로 나왔다. 반듯이 써레친 물우에 별들이 내려앉아 반짝거리는 파래목논을 바라보았다. 불현듯 수년전 봄날 저 논판에 서있던 안해의 모습이 눈앞에 어려오며 가슴이 꺽 메여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