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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현 명 수 나는 이 나라의 녀인들을 존경한다. 그중에서도 어머니들을 더욱 존경한다.… 우리의 강력한 군력에 대한 시위로 온 나라가 흥성이던 어느날 나는 나의 동료―청년과학자들과 스스럼없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하많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내가 중학교졸업시기에 있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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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눈을 피해 창문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어머니의 사려깊은 눈동자가 금시라도 나의 속을 빤히 들여다볼것 같아서였다. 만일 어머니가 나의 번거로운 심정을 알게 된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짐작하게 된다면… 나는 나를 안아 젖 먹여주고 말을 배워주고 걸음마를 떼주며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따뜻이 보살펴준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는것으로 될것이다. 어머니는 잠시 말을 끊고 나를 여겨본다. 해빛에 감실감실 탄 살결이며 까만 수염털이 돋기 시작한 코밑이며를 찬찬히 새겨보는것 같았다. 나는 창문턱의 제라니움화분너머로 밖의 잎떨어진 백양나무를 쳐다보면서, 이미 새끼들이 다 자라 날아가버린 낡고 텅 빈 까치둥지에 눈길을 박으면서도 온몸으로 어머니의 근심어린 표정을 감촉할수 있었다. 이미 나의 몸안에 슴배일대로 슴배인 어머니의 체취와 함께 입술새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한숨까지도 다 느낄수 있었다. 《요즘 왜 이러는거니.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를 해도 모자랄텐데…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왜 마음이 들떠있는지… 이 어미는 도무지 모르겠구나.》 (난 조금도 들뜨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야. 한데도 어머닌 내가 기분이 둥 떴다고 하는구나.…) 한편 그 말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끼고있었다. (어머닌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너희 담임선생이 날 찾아왔었다.》 어머니는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네가 수업시간에는 딴 생각을 하고, 숙제도 제대로 해오지 않지, 또 소조에도 잘 가지 않는다면서… 대체 무엇때문에 그러니. 아픈데도 없는데… 어미속을 작작 태우고 말을 하려무나.》 나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고있다. 묵은 까치둥지의 흙덩이도 진눈에 젖고 해볕에 말라 부스러졌는지 둥지를 엮은 나무가지새로 푸른 쪼각이 엿보였다. 아직 봄물이 오르지 않은 백양나무의 가지사이로 찬바람이 휙휙 불어치고있을것이다. 나는 《됐다. 안방에 들어가 공부해라.》하는 어머니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이웃의 녀인들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철없는 애어린 자식들을 세워놓고 엉치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욕을 하군 하였으나 나의 추억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비껴있지 않았다. 욕을 해도 한마디였고 칭찬을 해도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의 욕이 우리 형제들이 자책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였다. 어머니에게는 우리들을 장시간 세워놓고 닥달질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어머니는 무척 바빴다. 조금후에 어머니는 감기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지향이에게로 가야 할것이다. 어머니의 손! 작았으나 손바닥에 박힌 장알이 풀리는것을 본적이 없는 손이였다. 부엌일을 하다가도 어머니는 젖은 손을 행주치마에 문지르고는 그대로 찬바람이 부는 문밖으로 나가는것이였다. 그러다나니 왼손의 장지가 끝내 동상을 입어 날씨가 조금만 차져도 벌겋게 독을 쓰군 했다. (이번 어머니생일날엔 장갑도 잊지 말고 사야겠어. 까맣고 두툼한걸로.) 어머니는 나의 옆모습을 지켜보다가 큰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다. 이젠 안방에 들어가 숙제를 해라.》 그러면서 손을 들어 나의 턱을 살며시 쥐여 고개를 돌려놓았다. 어머니의 입가에는 웃음이 비끼였다. 그 웃음은 주눅이 들가봐 위로해주는 모성의 웃음이였다. 그 미소가 불꽃인양 나의 가슴속에 슴배여들어 마음이 따스해지는것 같았다. (이 어민 충일일 믿어. 꼭 훌륭한 청년이 되리란걸 말이다.) 하고 속삭이는듯싶었다. 안방은 우리 형제의 학습실이였다. 넙적한 상을 놓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앉아 수학문제를 풀기도하고 외국어단어를 암기하기도 하였다. 방구석에는 장기판과 꼬니판이 놓여있었다. 문소리가 나자 나의 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다. 까만 흑진주같은 눈을 깜박거리며 쳐다보는양이 자기들의 비밀계획이 드러나지않았는가 우려하고있었다. 일순이는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떻게 됐어? 어머니가 다 아셔?》 나는 미닫이문을 살며시 닫고나서 고개를 흔들었다. 일순은 안도의 웃음을 지었는데 통통한 왼쪽볼우물이 옴폭 패여들었다. 우리는 모두 아홉형제였다. 맏이인 최일남은 재작년에 군대에 입대하였다. 초소로 떠나가면서 그는 나에게 동생들과 집일을 부탁하였다. 맏이의 임무는 고스란히 둘째인 나의 어깨로 옮겨온것이다. 일남형은 가끔 편지를 보내왔는데 편지마다 동생들을 잘 돌보고 어머니의 일손도 짬짬이 돌보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여덟살이 잡힌 윤지향은 어제 감기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러니 방안에는 최일순, 박명재, 박명길, 윤지평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형제가 남아있는셈이다. 나의 이름은 차충일, 우리들의 성은 서로 달랐다. 최일남과 최일순, 이들만이 최북명아버님과 리춘순어머님의 친자식이였다. 박명재와 박명길, 윤지평과 윤지향은 각기 두 형제였다. 그들에게는 친부모의 사진도 있었다. 나는 퍽 늦게야 리춘순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님을 깨달았다.… 최일순은 나를 오빠라고 부르지만 사실 나와 동년배였다. 그리고 생일도 같았다. 하여 나는 오래동안 우리가 쌍둥이형제인줄로 착각해왔다. 우리가 쌍둥이가 아니라고 찍어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딱 한번… 그러나 그때 나는 어린 숙맥이였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소학교에 입학한 첫날이였다. 흰저고리를 입은 처녀교원이 수업에 앞서 학습장을 검열하다가 나에게 물었던것이다. 《충일인 일순이와 쌍둥이라지요?》 《예.》 《아버지이름을 아나요?》 《최북명.》 《그래요. 용쿤요. 한데 왜 학습장에 차충일이라고 썼나요? 최충일이지요.…》 선생은 지우개로 학습장뚜껑에 씌여진 이름 석자를 싹 지우고 둥글둥글하면서도 고운 필체로《최충일》이라고 적어넣었다. 그날 저녁 나의 어머니는 그 학습장을 이윽히 들여다보고 앉아있었다. 착잡한 표정이 비껴있었건만 나는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알수 없었다. 그만큼 나는 촉감이 무딘 어린애였다. 다음날 아침 등교때 나의 학습장에는 다시금 《차충일》이라는 이름이 새겨지였고 나와 일순의 손목을 쥐고 함께 등교한 어머니는 담임교원을 만났다. 출석부에는 다시 차충일이라는 이름이 올랐다. 그리고 자그마한 이 사건은 나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다. 일순이의 손목을 쥐고 줄넘기를 하며 놀던 그 시절에는 쌍둥이형제는 응당 성이 같아야 한다는것을 알리 없었던것이다. 더구나 집에서 박명재, 박명길, 윤지평, 윤지향이와 《친형제》로 함께 살고있음에야… 《형!》 명길이가 숫밤송이같은 머리를 번쩍 들며 찾았다. 《형, 우리가 다니던 소학교옆의 단층집들이 이사갔어. 뭐랬더라… 응, 철거, 철거래. 새 살림집을 짓는대. 거기에 뭘 없을가? 깨진 유리라든가 병…》 《정말?》 일순이가 반문했다. 《한번 가볼가?》 동생들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는 일순에게 죄스러웠다. 두볼이 발기우리한 홍도빛의 물이 오르고 동실한 어깨에 가슴이 봉긋이 부풀기 시작한 그였다. 언제인가 경대앞에 앉아 어머니의 입술연지를 만지작거리며 혼자서 방그레 웃는것을 발견한적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런 일을 하게 만든 내가 민망스러웠다. 일순은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빤 또…》 일순은 입술을 오무리며 눈을 할기죽 빨았다. 그가 처음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서 나에게 소리쳤었다.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한다고 그래. 수매라는거야 집안에 있는 휴지나 못쓰는 천쪼각, 깨진 병따위를 모아 하는거지.》 나도 그의 심정을 리해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전에는 아버지가 어머니몰래 돈을 쥐여주었다. 그것으로 우리는 제각기 어머니의 생일선물을 마련하군 하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우리 형제의 힘으로 어머니의 생일을 차려주고싶었다. 나는 바싹 마른 입술을 추기며 말했다. 《먼저 숙제를 하자. 그다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일순아. 그리고 명재 너희한테두…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다음부터는 내손으로 떳떳하게 차려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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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했던가. 중학시절은 《선택의 시절》이라고… 그 표현이 나의 마음에 꼭 든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군사복무, 대학, 전문학교… 꿈도 많은 시절이다. 장령, 박사, 교수, 기자, 작곡가, 배우… 그러나 나는 ○○련합기업소의 로동자로서 사회생활의 첫자욱을 떼기로 결정하였다. 도소재지에 있는 이 공장에는 로동자합숙이 있었다. 합숙생활! 이것은 내가 이 공장에서 일하려는 일류의 조건이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끄는것은 공장에 공장대학이 있는것이였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생이 되기를 바란다. 또 일순이도 곧 대학에 입학할것이다. 일순이는 유치원교양원이 되는것이 꿈이였다. 나는 될수만 있으면 그의 꿈을 실현하는데 적은 힘이나마 보태고싶었다. 하지만 일순이와 내가 동시에 대학으로 떠나버리면 올망졸망한 동생들의 뒤시중은 어머니의 어깨에 그냥 실려있게 될것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어머니의 일손을 돕는다는것은 욕망뿐인것이다. 두달전에 나에게는 두 동생이 또 생겼다. 김성진과 김성희… 그들의 부모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뜻하지 않게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 애들을 데려온 날 나는 난생처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깊은 밤이였다. 창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나의 옆자리에서는 동생들이 쌔근쌔근 숨을 쉬며 꿈나라에 가있었다. 나는 한밤중에 불쑥 깨였다. 마침 미닫이옆에 자리를 잡았던 나는 문틈으로 새여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직하였으나 고요한 밤이여서 똑똑히 가려들을수 있었다. 옆방에도 물론 불을 켜놓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고있었다. 《당신에게 그런 부담을 주자고 저 애들을 데려온줄 알아요?》 어머니가 속상하여 하는 말이였다. 아버지의 말소리에는 잠내가 섞여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우야 잠기섞인 어조로 말하는것 같이 느껴졌다. 《이거 한밤중에 왜 이러오? 달게 자던 사람을 깨워놓고.》 《당신 차에서 내리겠다는게 무슨 말이예요?》 《무슨 생뚱같은 소리요?》 《시치미를 떼겠어요? 오늘 당신네 운수과장을 만났는데두요?》 《정말 못살게 구는구려. 내 일은 내 알아 처리하니까 당신 일이나 잘하오. 아… 피곤하다. 당신도 곤하겠는데 어서 자오.》 《일남이 아버지!》 《아, 애들이 깨겠소.…》 말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새벽공기를 들쓴것 같이 정신이 또릿해졌다. 나는 몸을 옴지락거리며 문틈에 바싹 다가누웠다. 한동안은 소곤거리는 말소리여서 가려들을수 없었다. 아버지는 장거리차사업소의 모범운전사였다. 내가 걸음마를 아장아장 떼던 때도 운전사였고 지금도 차를 몰고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자주 차에 태워주군 하였다. 차를 타고 달릴 때면 마을과 온 거리의 아이들이 나를 부럽게 바라보는것 같아 어깨가 으쓱 올라가군 하였었다. 아버지도 우리 형제를 차에 태우고 다니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문틈으로 다시 정색해서 하는듯 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차에서 내리면 할 일이 없을가봐 그러오? 수리공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요? 당신 언제부터 일의 경중을 따지는 버릇이 생겼소?》 잠시 즘즘해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차근차근한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사업소에서 로력조절이 있어서 그랬다면 제가 이러겠나요. 당신이 자진해서 차에서 내리겠다니… 그 리유가 있을게 아니예요.》 《리유라… 그건 내가 피로했거던. 줄창 장거리만 다니자니 어지간히 싫증도 나고. 나도 말이요, 무쇠로 빚어진게 아니란 말이지.… 당신은 내가 정상적으로 퇴근해오는게 싫은 모양이구려.》 《얼려넘길 생각말아요. 그럼 요전날 평생 장거리운전사로 일하겠다던건 뭐예요.》 《사람의 결심이야 달라질수도 있는게 아니요.》 《그 달라진 리유가 뭔가 말이예요.》 《말끝마다 리유, 리유… 당신 정말…》 별안간 아버지는 말을 뚝 끊었다. 나는 얼른 모포를 끄당겨 덮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신경은 옆방으로 쏠려있었다. 《요즘 당신 몸상태가 말이 아니요.》 《역시…》 《여보, 당신에게 다시 세살, 다섯살짜리 철부지를 맡겨놓고 내 마음이 편하겠소. 그래서 말이요. 저 애들이 소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차에서 내리자는거요. 그런다고 운전기술이 하늘로 증발해버리는건 아니니까.》 《그래요? 헌데 당신이 뭘 돕겠다는거예요? 터밭농사를요? 방청소요? 애들의 빨래를 하겠어요?》 《여보!》 《제 말을 마저 들어요. 가정에서 아버지는 기둥이예요. 기둥이란 말이예요. 우리 애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자랑하는지 몰라요? 당신이 무사고로 장거리를 다녀오고 분기마다 우승기를 탈 때마다 아이들이 기뻐하는걸 못 보는가 말이예요? 그런 당신이 아이들에게서 그 기쁨을 뺏자는거예요?…》 어머니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저라고 왜 당신의 심정을 모르겠나요. 하지만 걱정말아요. 다섯 남매를 키웠는데 두 아이라고 또 못 키우겠나요. 그리고 직장에서랑 이웃에서랑 우릴 도와주고있지 않나요. 이젠 일순이도 충일이도 다 컸어요. 청소도 빨래도 동생들의 숙제검열도 다 제손으로 하거든요. 그런데도 당신은 제일 힘든 고비도 아닌 지금에 와서 운전대를 놓겠다니 말이 됐어요?》 《하긴 일순이도 충일이도 다 자랐지. 그러나…》 《여보!…》 《자꾸 그러지 마오. 나도 생각이 다 있어서 그러는거요.》 《당신 정말 모질군요. 그래도 난 저 애들이 다 자라고 가정도 이룬 다음에 온 가족이 당신 차를 타고 구월산에랑 묘향산에랑 들놀이를 가려고 했는데…》 《허, 참. 별 엉터리없는 꿈을 꾸는구만.》 《끝내 차에서 내리겠다는거예요?》 《한번 결심했으면 다요!》 《좋아요!》 충일은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얼른 눈을 감으며 잠든 시늉을 했다. 《애들을 깨우고 결론짓자요. 중대사니만치 애들의 생각도 알아야지요.》 《여… 여보!》 아버지가 급히 어머니를 만류하는것 같았다. 《한밤중에 왜 이러오?》 《어쩔테예요?》 《허허, 참… 손들었소.》 《정말?》 《음― 당분간 말이요. 이 문제를 보류해두기요.》 이윽하여 아버지의 나직한 한숨소리가 문틈으로 새나왔다. 《걱정되오. 당신 몸이 말이요.》 《여보, 하고싶어서 하는 일은 고생이 아니랬어요.》 …한밤중의 뜻밖의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지어졌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만의 비밀이였다. 동생들은 영원히 그 일에 대해 알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긴 여운을 남겨놓았던것이다. 나는 도소재지에 있는 ○○련합기업소를 두번째로 찾아갔다. 로동과장은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대견해하였다. 그리고는 자그마한 손수레에 수매할 파철을 담아주기도 하였다. 나에게는 형제도 많았지만 친척도 어지간히 많았다. 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은 자진 큰아버지라면서 우리 집에 자주 들리군 하였다. 《충일아, 뭘 애로되는게 있거들랑 이 큰아버지를 찾아와라. 전화를 해도 좋구.》 직업문제를 생각할 때 나는 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의 얼굴이 선참 떠올랐다. 그의 도움을 받을가?… 하지만 단념했다. 그를 찾아가면 어머니가 제꺽 알게 될테니까. 나에게는 도병원 원장으로 사업하는 《큰어머니》도 있었다. 그는 특별히 나를 귀여워하였다. 나에게 동생들보다 과자라도 더 쥐여준것은 아니였지만 사람의 정은 눈빛과 손짓을 보고도 알게 되는것이다. 사랑이 깊으면 따르는 법이다. 나는 어머니다음으로 《큰어머니》인 도병원 원장을 좋아했던것이다. 나의 속생각도 원장에게만은 허심없이 털어놓군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계획은 그에게도 비밀이였다. 원장이 이 일을 알게 되면 곧 어머니에게 알려줄테니까. 사람이 사람을 사귀는데는 꼭 원인과 리유가 있는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인연은 있는것 같다. 나를 무척 귀여워하는 그 도병원 원장이 나의 출생비밀을 알고있는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내가 태여난지 돌이 되기도 전에 과학자였던 나의 부모는 실험도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급성감기를 앓고있던 나는 도병원에 입원해있었다. 그때 내옆의 침대에는 역시 급성감기를 앓고있던 일순이가 있었다. 리춘순어머니는 일순이와 함께 나에게도 젖을 먹이였다. 일순이가 퇴원한 후에도 어머니는 하루에도 서너번씩 병동에 들려 나에게 젖을 먹이였다. 며칠후에는 당분간 젖을 뗄 때까지만이라도 맡아 키우겠다고 나를 안아갔던것이다. 나는 이렇게 되여 일순이와 함께 한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라게 되였다.… 원장에게서 모든 사연을 알게 된 나는, 일순이와 친척도 인척도 아닌 생판 남이라는것을 깨닫게 된 나는 더이상 어머니의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자각이 생겼다. 예로부터 은혜에 보답할줄 아는게 짐승과 다른 사람의 도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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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책상우에는 자그마한 종이장이 놓여있었다. 여기에 나의 지망을 적어넣어야 했다. 6년간의 중학시절의 총화라고 할지도 모른다. 만년필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교실안에 꽉 찼다. 누구나가 자기의 소중한 꿈을 백지우에 옮기고있는것이다. 나도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 무엇인가를… 나는 한숨을 내쉬고나서 원주필을 쥐였다. 불시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바삐 눈굽을 훔치고나서 곁눈질을 하였다. 하긴 모두가 심중하여 지망을 적어넣는 정숙한 이 시각에 나를 지켜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때로는 에도는 길이 질러가는것보다 빨리 목적지에 닿는다고 한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지금껏 기울여온 사랑에 비하면 이쯤한것이 무슨 대수랴! 교정에는 봄빛이 가득찼다. 따사로운 해빛은 모두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비쳐준다. 마당가에 우뚝 선 나는 등골로 땀이 내돋는지 때끔때끔한 느낌이 들었다. 《충일오빠!》 교사의 저편에서 일순이가 달려왔다. 《지망서에 뭐라고 썼어?》 《넌?》 나는 되물었다. 일순은 빨갛게 상기된 볼로 나를 밀치는듯 한 시늉을 하며 말했다. 《다 알면서두…》 《그래.》 《하긴 오빤 기술대학이겠지. 우리 학교에서 오빠가 대학에 안 가면 누가 가겠어. 흥.》 일순은 응당하다는듯이 코소리까지 내면서 으쓱거렸다. 그리고는 제먼저 앞서 걸었다. 《빨리 가. 어머니가 무척 기뻐할거야.》 《어머니가?!》 나는 걸음을 뚝 멈췄다. 일순이는 부러 얼굴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그럼 어머니가 싫어할가?》 (내가 그 생각을 못하다니…) 《왜 그래?!》 일순은 정색을 했다. 나는 어물어물 대답했다. 《먼저 가.》 《왜?》 《그저… 난 볼일이 있어.》 일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싱긋 웃었다. 《음― 나하고 함께 가기 싫어서 그러지. 맞지?》 《아니야!》 《거짓말!》 일순은 까르르 웃으며 저만치 달려갔다. 그리고는 획 돌아서서 뒤걸음질치며 소리쳤다. 《빨리 따라와!》 나는 소리내여 웃었다. 그리고는 교정으로 걸음을 돌렸다. 아직 할 일이 남았던것이다. 교원실에는 마침 담임교원이 홀로 앉아있었다. 그는 파마한 머리를 수그리고 학생들의 지망서를 들여다보고있었다. 문소리가 나자 고개를 들었으나 나를 본체도 않고 다시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인사를 꾸벅 하고는 교원실로 들어섰다. 문소리가 나지 않게 하면서도 말소리가 새여나가지 않도록 문을 꼭 닫았다. 그리고는 가방을 두손으로 모아쥔채 묵묵히 서있었다. 한참후에야 담임교원은 나를 인식한듯 불렀다. 《여기 와 앉아요.》 《선생님!》 《와 앉으라니까.》 나는 끝책상의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미 각오는 했었지만 속이 활랑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제길, 왜 이러는거야. 뭘 잘못했다구…) 나는 땀이 촉촉히 배여나온 손으로 모자를 주물럭거렸다. 《선생님!》 선생이 고개를 들고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길을 마주볼수 없었다. 이윽하여 선생은 물었다. 《지망서때문에요?》 《예.》 《그런데요.…》 나는 마른침을 꿀떡 삼키고 말했다. 《저희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말아주십시오.》 《비밀로 해달란 말이지요?》 《예.》 《무엇때문에요?》 말문이 막혔다. 무엇때문에… 뻔한것이다. 흰종이장처럼 너무도 명백하다. 어머니가 근심할가봐, 괜한 속을 태울것 같아서다. 그런데도 선생은 무엇때문인가고 묻는다. 짐작을 하면서도… 짐작 하나만으로는 족하지 않다는것이다. 《리유는 뭐예요?》 《그다음엔 어쩌겠다는거예요?》 다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답을 뽑아내고서야 만족한다. 이럴 때는 역시 침묵하는게 제일이다. 그러면 내 생각을 선생이 넘겨짚어 물어보니까. 나는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든가 《예.》하고 대답하면 그만이다. 《충일학생, ○○련합기업소 로동과장동지를 만났었나요?》 나는 깜짝 놀랐다. 동생들에게도 철저한 비밀로 해온것을 선생이 어떻게 알가? 뒤를 밟기라도 한것처럼. 선생은 나의 휘둥그래진 눈동자를 마주보며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그러니… 갔던게 사실이군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좀전에 ○○련합기업소 로동과장에게서 전화가 왔었어요. 학생에 대해 묻더군요.… 난 사실대로 말해주었어요. 충일학생은 학교적으로 생활도 모범이고 공부도 잘한다고. 수학학과경연에서 1등을 양보한적이 없다고요. 앞으로 쟁쟁한 과학인재가 될거라고 이야기했어요.》 《선생님…》 《그랬더니 뭐랬는지 알아요? 로동과장동진 무척 대노했어요. 학생이 자기를 속였다고요.》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난 거짓말한적이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자기의 행동에 대해 설명해봐요.》 《그건… 우리에겐 누구나가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선생님!》 나는 버릇없는 행동인줄 알면서도 다급히 선생의 말을 잘랐다. 《대학에 가겠습니다.》 나는 어깨를 쭉 폈으나 선생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지망합니다.》 (아무 대학이나 마찬가지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다만 저의 어머니에게는 지금까지의 일을 알리지 말아주십시오.》 교원실을 나선 나는 이마에 내돋힌 땀방울을 씻었다. 시험에는 응시할것이다. 그러나 입학자명단에는 내 이름이 없을것이다. 어차피 나는 ○○련합기업소로 가게 될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문손잡이를 쥐던 나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듯 한 촉감을 느꼈다. 뒤돌아보았다. 터밭에서 어머니가 호미자루를 든채로 나를 보고있었다.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왜 대문으로 들어서면서도 어머니를 보지 못하였을가? 제 생각에 옴한탓이다. 나는 웃음을 지으려고 애쓰며 소리쳤다. 《어머니, 난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지망했어요.》 그러나 속으로 부르짖었다. (어머니,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이 아들의 거짓말을 용서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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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내가 도병원 원장을 찾아갔던 사실을 이미 알고있었다. 도병원 원장이나와 한 약속을 어기고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하였던것이다. 어머니는 원장의 말에 그닥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애도 이젠 친부모에 대해 알 때가 되였지요. 헌데… 내가 리해할수 없는건 어떻게 되여 원장선생님을 찾아갔는가 하는거예요.》 원장은 말했다. 《그 애는 오래동안 몰래 친부모에 대해 생각했대요. 분명 일순이와 성이 다른걸 봐선 친자식은 아닌데 그럼 누굴가? 하고요. 몇달을 두고 생각하느라니 피뜩 떠오르는게 돌사진이랬어요. 그 애가 돌사진을 내게 내보이기까지 한걸요. 돌사진은 그애가 일순이와 함께 일남이 엄마품에 안겨 찍은거였어요. (그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였다고 한다.) 그 애의 빈틈없는 추리에 난 속으로 탄복했어요. 충일은 다른 애들에게는 친부모와 찍은 돌사진이 있는데 내게만은 없다, 결국 난 돌도 되기 전에 여기로 온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나 어머니외에 갓난애기때의 나를 기억할 사람이 누구인가? 여기까지 의문을 몰아가니까 문뜩 내 얼굴이 떠오르더라나요. 그래서 숨을 헐떡거리며 나에게 달려왔더군요.》 《그랬었군요.》 《에그… 내 뭐랬어.… 충일이가 철이 들기 전에 미리 성을 바꾸어주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오늘같은 일은 없었겠는데…》 원장이 속상하여 하는 말이였다.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성을 바꾸어야 친자식이 되는게 아니예요. 또 애아버지도 그걸 원하지 않았어요.》 원장은 혀를 찼다. 《충일이의 기분상태는 어땠어요?》 《말이 아니지요.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더니 별안간 소아과병동을 보여줄수 없는가고 묻더군요. 그래서 내가 위생복을 내주었어요. 이전에 어린 충일이가 누워있던 1호실의 자그마한 침대가 생각나요? 거기서 충일이는 한참이나 말없이 서있었어요. 내가 〈충일아, 이젠 가볼가?〉하고 말을 건넸더니 글쎄… 고개를 외로 틀며 눈물을 닦는거예요. 충일이는 몹시 침울한 표정이더군요. 그 애는〈이젠 더이상 필요없습니다. 저도 다 알았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저도 이젠 어린애가 아닙니다!〉하고 말했어요. 여느때에 그 말을 들었다면 무척 대견했겠지만 그 순간엔 가슴이 섬찍하더군요. 밖으로 나올 때까지 충일이는 아무 말도 없었어요. 다만 정문앞에 이르러서 〈저의 어머니에게는 내가 여기 왔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아주십시오.〉하고 강조하는거예요. 나는 며칠동안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일남이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거예요.》 《잘했어요. 나도 요즘 그 애 행동이 이상하다고 짐작을 했는데… 그랬었군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어린 자식들 시중때문에 바쁜 속에서도 나의 표정, 눈빛, 손짓, 몸가짐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느라고 애쓰며 관찰하였던것이다. 지망서를 쓴 그 다음날도 어머니는 학교를 찾아와 직접 담임선생을 만났다. 그리고 ○○련합기업소의 로동과장도 만나보았다. 결국 어머니는 나의 비밀계획을 낱낱이 알게 되였던것이다. 그날 어머니는 낯빛이 거멓게 죽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허나 그것이 오직 나 하나때문인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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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머니의 생일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러나 애써 준비한 어머니의 생일이였지만 즐겁게 지낼수가 없었다. 돌연히 나들이를 간 어머니가 생일날에도 돌아올것 같지 못하다는 전화가 왔던것이다. 어머니의 생일날 군인민위원회 위원장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어머니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단 말이지.… 어머니가 오거들랑 인차 내게 알려라. 이 큰아버지도 뭘 준비했으니까.》 도병원 원장에게서 온 전화는 좀 류달랐다. 《에그… 요즘은 날씨도 별안간 차지는데 외지에서 얼마나 고생할가, 쯧쯧… 충일아, 너 이젠 어머니의 속을 작작 태워라.》 전화를 끊고나서 나는 어리벙벙하였다. 단 하나… 어머니의 나들이가 나와 련관되였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하였다. 그러나 무엇때문에 어디로 갔는지는 몰랐다. 누구도 그 사연을 나에게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어머니의 출장과 함께 아버지는 휴가를 받았다. 전에는 이런 일이 있어본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일손을 거들려고 다가가면 대뜸 꾸짖었다. 《그만둬라. 넌 들어가 공부나 해라.》 나는 못 들은척 하고 어물거리다가 아버지의 엄한 눈총을 받고서야 하는수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은 가족내에 괴이한 분위기가 감돌고있었다. 동생들은 내가 숙제검열을 하려고 하면 《그만둬. 아버지가 봐준댔어. 형은 대학시험공부나 해. 안 그러면 아버지가 성낸다.》하고 대꾸질하는것이였다. 참고서를 펼쳐들었으나 글자와 수자들이 눈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물리응용문제를 풀다가도 (까짓거, 아무래도 붙지 않을 시험인데…)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고 맥이 탁 풀린다. 그러면 마치 못을 깔고 앉은듯이 엉치가 쑤셔나고 방안의 공기가 별스레 답답하게 여겨진다. 멍히 창밖을 내다보느라면 일순이가 등을 꾹 찌른다. 《뭘해, 공부는 하지 않고.》 모두가 나를 몰아주기로 꿍꿍이를 했나보다. 나는 응당히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돋았으나 묵묵히 참을수밖에 없었다. 아무에게도 나의 속심을 드러내서는 안되는것이다. 나는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였으나 역시 시험에서 미끄러졌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공장대학이 있는 ○○련합기업소에 입직하는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될것이다. 어머니는 열흘만에야 돌아왔다. 때아니게 진눈까비가 내리는 을스산한 날이였다. 마당도 길도 온통 눈과 물이 뒤섞여 질적질적하였다. 그런 날 달도 없는 깊은 밤에 어머니는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여 돌아온것이다. 《엄마!》하고 소리치며 동생들이 우르르 마중나갔으나 나는 엉거주춤 일어났을뿐이였다. 공연히 두려움이 밀려들었던것이다. 《아이, 손이 꽁꽁 얼었네.》 《얘들아, 어머니의 옷을 꺼내와.》 어머니의 미안해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일남이 아버지, 안됐어요. 인차 돌아선다는게 그만…》 《됐소. 그래 식사랑은 제대로 하며 다녔소? 갔던 일은…》 《다 잘됐어요.》 《그럼 됐구만!》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섰다. 그날따라 입술이 얼어 파랗게 질린 작고 체소한 어머니의 모습은 퍽 늙어보였다.…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마주앉았다. 안방에서는 상을 차리느라고 법석이였다. 어머니는 이윽토록 나를 지켜보고있었다. 무엇인가 심중한 이야기를 하려 하면서도 말꼭지떼기를 저어하는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기다렸다. 어머니는 큰숨을 내쉬고나서 말했다. 《충일아, 가까이 나앉아라.》 어머니는 가방을 끄당겨 열었다. 주르륵 쟈크가 열리는 소리에 나의 심장이 쿵쿵 높뛰기 시작했다. 나는 까딱 움직이지 않고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하얀 봉투를 꺼내쥐였다. 그리고는 다시 큰숨을 내쉬고나서 나의 곁으로 바투 다가앉았다. 《충일아, 내가 너무 오래동안… 너의 심정을 모르고 지낸것 같구나.… 용서해라.》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늘었고 떨리였다. 나의 심장은 금시 밖으로 튀여나올듯이 요동쳤다. 불시에 나는 《어머니, 그만해요. 제발… 오늘만은 그만해요.…》하고 소리치고싶었으나 입이 얼어붙은듯 말을 뗄수가 없었다. 《충일아, 사람은 근본을 잊지 말아야지. 그건… 대단히 중요한거다.… 아버지도 그걸 바라지는 않았어. 그래서 너의 성도 바꾸지 않았던거구… 그런데도 난… 충일아, 나는… 두려웠다.…》 어머니는 울음을 간신히 눌러 참는것 같았다. 《네가 다 자란 다음에… 철이 든 다음에… 너의 친부모에 대해 다 얘기해주려고 했었지.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고 생각했다만… 충일아, 나는 너에게 말해줄수 없었구나. 난 너무 뒤늦게야 내가 너의 친부모에 대해 아는것이 별로 없다는걸 깨달았다. 그래, 별로 아는게 없었어. 난 16년전 너의 부모들을 소아과병동에서 처음 만났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널 안아올 때 원장에게서 몇마디 들었고… 또 네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연구사들이 찾아와 몇가지 얘기해준것뿐인데… 그것만으로야 어떻게 말해줄수가 있을가?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는 흰 봉투를 밀어놓았다. 《여기에 네 친부모의 사진이 있다. 그리구 네 아버지와 함께 연구사업을 한 실장선생님의 편지도 있…》 어머니는 말을 채 맺지 못하였다. 황황히 일어나 미닫이문을 드륵 열고 나가는것이였다. 나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보며 목이 꽉 잠겨 속으로 웨쳤다. (어머니!… 어머니!…) 문이 닫겼다. 방안에는 나 혼자만이 남았다. 아니, 혼자만이 아니였다. 흰 봉투! 나의 친부모의 과거가 함께 남아있었다. 봉투를 쥐는 나의 손은 떨렸다. 봉투안에서 두장의 사진이 주르르 미끄러져나왔다. 처음 보는 사진이였다. 흰 벽체를 배경으로 다섯사람이 서있는 사진이였다. 그러나 다음사진은… 그것은 돌사진같았다. 어린애는 분명 나였으나 나를 안고있는 사람들은… 나는 사진뒤등을 보았다. 《차충일과 그의 친부모》라고 쓴 글이 적혀있었다. 어머니의 필체였다. 나는 다시 사진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콤퓨터합성사진이였다. (나의 부모… 이들이 나의 친부모…) 나는 급히 봉투속을 뒤졌다. 편지가 있었다. 편지를 펼쳐쥐는 나의 손은 어쩔수없이 떨고있었다. 《…충일아, 너를 자주 찾아가보지 못한 아저씨들을 용서해다오. 난 3년전에 만난 그대로 너를 어린 소년으로만 기억했었는데 네 어머니가 가져온 사진을 보니 이젠 다 자랐구나. 3년전의 일을 네가 기억이나 할런지… 그때 넌 밖에서 뛰놀다가 잠간 들어왔었지. 그때 넌 토방에서 물을 마시는 나에게 〈우리 집 물맛이 좋지요. 우리 엄마가 해주는 오이랭국은 더 맛있어요.〉하고 자랑하더니 〈엄마, 나 수영복!〉하고 소리쳤지. 그 한마디 말을 듣고도 우리는 충일이가 행복하게, 훌륭하게 자라리라는것을 믿었다. 얼마나 선량한 분들이 너를 키워주었느냐! 너에게 친부모의 모습을 알려주겠다고 수백리길을 찾아온 너의 어머니앞에서 우리 연구사들모두가 머리를 숙였다. 이런 고마운분들이 곁에 있기에 우리도 마음놓고 연구사업에 열심하는게 아니겠니. 충일아, 너의 친부모님들은 정말 좋은분들이였다. 그들은 최첨단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친 훌륭한 과학자였다. 그분들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지. 오늘 우리 연구집단은 너의 친부모가 시작한 연구사업을 끝끝내 성공하였다. 그건 정말 대단한것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또다시 새로운 령마루에 오르게 되였단 말이다! 충일아, 기뻐해라. 우리는 이제 성공의 보고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드리게 된다. 보고와 함께 그이께 편지를 올리려고 한다. 그 편지에 탐구의 길에 생명을 바친 너의 친부모들에 대해서 그리고 너에 대해서도 쓰련다. 네가 비록 애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지만 우리의 사회주의제도가 키워낸 고마운 사람들의 사랑속에서 부러운것없이 자랐고 이제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하게 된다는걸, 또 한명의 름름한 청년과학자가 되여 아버지, 어머니가 섰던 대오에 들어서게 될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우리의 장군님께서 얼마나,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오늘의 성공보다도 우리의 대오가 꿋꿋이 이어지고있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을 드릴게라고 굳게 믿는다.…》 편지우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눈물은 어쩔새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때 문이 드륵 열렸다. 나는 문지방앞에 선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의 손에는 수첩장만 한 종이뭉테기가 쥐여져있었다. 《충일아, 너 어쩌면…》 어머니의 입술은 노기로 떨고있었다. 그것은 수매증들이였다. 《어머니…》 《그만해라. 넌 어쩌면 이리도 내 속을 태우는거냐!》 《어머니…》 《난 이런걸 바라지 않았다! 너희들이 나라의 역군이 되길 바랐다! 자기 가정이나 생각하는 그런 속물로 키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 넌 정말… 너무하구나.…》 나는 어머니의 품에 와락 안기며 소리내여 울었다.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우리를 키우시는 어머니의 심정을 우리가 너무 몰랐어요.… 용서해…줘…요.…) 눈물은 두볼로 줄줄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뜨거웠다. 아, 우리들의 눈물은 이렇듯 뜨거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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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으로 떠나가는 나와 일순이를 어머니는 흰 저고리를 입으시고 동구길에서 바래워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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