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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김 승 제 14일간, 이것은 한 인간에게, 그의 인간됨에 자석처럼 끌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낮과 밤들이 아닐가? 허나 삼수발전소 가물막이공사의 마감을 장식하던 그 14일동안을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을것이다.
정심동무와의 첫날
내가 정심이를 처음 만난것은 삼수발전소 가물막이공사를 기한전에 끝내기 위해 온 건설장이 말그대로 불도가니처럼 끓어번지고있던 8월보름께의 어느날이였다. 북변의 험준한 계곡을 뒤흔들며 착공의 발파소리를 온 세상에 울린 그날이 어제런듯싶은데 어느새 벌써 석달이 흘렀다. 우리 618건설돌격대원들은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그처럼 방대한 가물막이공사완공을 이제 눈앞에 바라보고있었다. 《심장을 바치자 백두성지건설장에》 《청년들이여, 더 높이, 더 빨리》… 붉은기가 펄펄 수풀처럼 휘날리고 이런 심장의 웨침들이 끊임없이 터져오르는 여기 발전소건설장. 가물막이언제쌓기공사를 맡은 우리 려단도 완공의 그날을 향해 한사람같이 총돌격전을 벌리고있었다. 그런 날 오전의 짧은 휴식참이였다. 삼복은 지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찌는듯 한 무더위가 우리의 몸에서 동이채로 땀을 앗아가고있었다. 모두들 땀에 푹 젖은 몸을 퍼더버리고 앉았는데 언제쪽 샘물터에 물을 길러갔던 경준의 나는듯이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얼굴에 의례 그 넉살좋은 성미가 그대로 비낀 《싱검둥이웃음》이 가득 실려있는것이 또 무슨 롱지거리감이 생긴 모양이다. 아니나다를가 경준은 다가오자마자 나의 얼굴을 향해 능청스럽게 한쪽 눈을 껌벅거리는것이였다. 《소대장동무, 우리 소대에 기딱막힌 처녀가 한명 날아들었네. 그 동무 대대장동무와 같이 지금 막 여기로 오고있는 길에 내 먼저 만나보았는데 평양의 어느 피복공장처녀라는지…》 이름은 리정심, 조선로동당원, 보름간의 휴가를 다름아닌 바로 우리 소대에서 바치기로 했다는것이다. 경준은 처음 처녀를 하늘높이 한바탕 비행기를 태워놓았다. 그다음엔 밑도끝도없이 이제부터 자기가 나와 그 처녀의 그 무슨 《오작교》가 되겠노라고 온 소대앞에 엄숙히 선포했다. 그리고는 그 우습강스러운 웃음이 내밴 눈으로 동무들을 쭉 둘러보며 《아, 두고보라니까.》라고 쾅 그루까지 박는것이였다. 《하하하.》 온 작업장이 떠들썩하게 웃음판이 터졌다. (이런, 제길…) 나는 무작정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 동무들. 작업시작!》 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껄껄 큰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친구인지 이자 방금 본 처녀를 놓고도 너스레떠는걸 보면… 노죽덩어리! 올해 서른둘에 난 경준은 나이로는 나와 비록 한살터울이지만 벌써 두살잡이 딸의 아버지인지라 생활상에 있어서는 곧잘 손우 《형님》노릇을 하려 들었다. 그래서 사실 말끝마다 《로총각》인 나를 걱정하고 관심해주는 그의 말에 나나 동무들이나 어지간히 면역이 생긴터였다. 하지만 괜히 조금이라도 자칫하다가는 그 처녀가 단단히 경준의 놀림가마리에 들수 있었다. 더우기 나에게는 처녀에게 신경을 쓸 꼬물만 한 겨를도 없었다. 대대의 기둥소대라는게 다른 소대들에 비해 열흘째나 그냥 작업실적이 처지는 바람에 내가 잔뜩 열이 오른 상태이기때문이였다. 또 이제 보름후면 떠나가버릴 처녀인데 하는 생각이 나를 꿈만하게했다. 나는 끈질기게 내곁에 바싹 붙어서서 말을 붙여오는 경준에게 부러 더욱더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만! 이젠 됐소. 나한텐 아무리 그래야 소귀에 경읽기니까. 그리고 주의를 주건대 이번 전투기간에 다시한번 더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들고다녔다간 크게 문제를 세울줄 아오.》 그런데도 가물막이언제우에 혼석을 쏟고 돌아서는데 경준이가 서슴없이 내 옷섶을 툭툭 잡아당기는것이였다. 《아, 온다, 와. 저기 저 성실동무와 함께 자네앞으로 곧추 오는 저 처녀. 어때, 내 말이 하나도 그른데가 없지?》 허참, 그놈의 그 능글맞고 소힘줄처럼 질긴 성미를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는 성실이와 함께 내앞으로 걸어오는 처녀를 보았다. 가뜬한 작업복차림새에 달덩이처럼 환한 얼굴, 나볏한 몸매며 인상적인 볼샘… 그 처녀였다. 정심동무였다.
정심동무와의 나흘째날
장마때라지만 그렇게 한치앞도 가려볼수 없게 억수로 비가 쏟아지기는 처음이였다. 공사용도로는 순간에 가로세로 깊숙이 패여나가고 검붉은 흙탕물로 차고넘쳤다. 장화를 신은 발들에 천근만근으로 진흙떡이 매여달린것 같아 빈몸으로도 걸음이 잘 짚어지지 않았다. 옛날에는 가랑비만 살짝 내려도 누구건 아예 바깥출입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이 고장이였다. 굴착기며 화물자동차들은 모두 멎어섰지만 우리는 질통을 메고 그냥 줄기차게 내달리고있었다. 현장방송차에서는 벌써 몇번째나 녀동무들만이라도 작업에서 손을 떼라고 안타깝게 호소하고있었다. 나도 목이 쉬게 명령을 내렸건만 그 어느 녀동무의 대답을 들어봐도 한목소리뿐, 《우리도 돌격대원입니다.》 평시엔 그렇게도 수집음 잘 타고 온순하던 녀동무들이 우리 사나이들과 꼭같은 권리와 평등을 돌격대원의 자격으로 당당히 요구해나서는것이였다. 나는 경준에게 소리쳐 물었다. 《부소대장동무, 지금 몇탕째요?》 《열한탕째요.》 비발속에서 경준의 목소리가 퍽 갈리게 들리여왔다. (열한번째라… 모두들 얼마나 힘들어할텐가. 그래, 이젠 휴식구령을 내리자.) 《휴식!》 휴식이라야 길녘의 아름드리 큰 이깔나무밑에서 비를 긋는것이 전부였다. 나는 아무곳에나 털썩털썩 무너져앉는 동무들을 속이 상해 바라보았다. 성실이 돌아가며 그들의 입에 사탕알을 물려주고있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너나없이 지치고 피로한 기색이 너무도 짙게 드러나있었다. (지쳤어. 너무나 지쳤어.) 나는 경준과 등을 기대고앉아 여전히 기를 쓰고 비를 퍼부어대는 하늘만 원망스레 올려다보았다. 무심결에 머리를 떨구는데 내앞에 멎어서는 빨간색장화와 풀색장화, 고개를 쳐드니 파리해지다못해 까마스름한 입술을 잘근잘근 짓물며 정심이와 성실이가 서있는것이였다. 《무슨 일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소대장동무, 저… 우리 이런 때 한번 온 일판이 들썩하게 오락회를 벌리는것이 어떻습니까? 시작은 우리 둘이 먼저 떼겠어요.》 품속에서 붉은 술이 달린 하모니카를 꺼내들며 정심이 나직이 하는 말이였다. 어깨를 나란히 한 성실이도 비옷앞섶을 꼭 여며쥐였다. 《뭐, 오락회?》 나는 정심에게서 애써 눈길을 돌리며 저도 모르게 코를 울리지 않을수 없었다. 철없는 생각, 과연 우리들 어느 누구에게 이런 줄대비속에서 노래부르고 춤을 출 기운이 남아있을텐가. 그러나 경준은 대번에 반색을 지으며 정심의 손을 덥석 더위잡았다. 《정심동무가 정말 좋은 생각을 했구만. 어디 한바탕 해보기요. 소대장동무, 어떻소?》 나는 고개를 외로 틀었다. 전번 려단적인 사회주의경쟁에서 우리가 우승한것은 짬시간도 아껴가며 일하고 또 일한 결과다. 이번 가물막이공사에서 우리 소대가 앞장서나가는것도 노래가락에 실려나가는것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 하나 동무들에게 1분1초라도 휴식할 시간을 더 주고싶은것이 이 소대장의 마음인데 뭐 오락회?… 식당근무를 서라는데도 한사코 현장에서 일하겠다고 고집하던 처녀… 기껏 보름간만 우리와 함께 있을 처녀가, 돌격대생활을 잘 알지도 못하는 처녀가 처음부터 너무 나서는것 같다는 감정까지 겹쳐들었다. 그 찰나 나는 상그라니 웃음을 담고 나의 눈을 들여다보는 정심의 눈과 부딪쳤다. 다음순간 나는 나로서는 거스를수 없을 힘과 믿음에 통채로 사로잡혔다. 그 눈길앞에 어쩔새없이 주눅이 들고 별스레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했던것이다. 돌격대에 입대하여 지금껏 소대장을 하면서 불같이 손탁이 드세고 담벽도 문이라고 내미는 배짱군, 그 어떤 난관앞에서도 바위처럼 굳센 대틀이라는 평판만을 들어오던 나에게 있어서 이런 일은 정말이지 처음이였다. 음, 리정심? 《좋을대로 하오. 그러나…》 나는 뒤말을 씹어문채 덤덤히 뒤돌아섰다.… 나는 자주 그날의 오락회를 감회깊이 돌이켜보군 한다. 정심의 하모니카독주 《혁명가요련곡》으로 시작된 그날의 오락회, 나중엔 온 려단이 우리의 오락회에 뛰여들어 참으로 굉장했었지. 정심의 그 자그마한 하모니카가 마치 무슨 요술이라도 부리는듯싶었다.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 빨리 나가자 …
아예 비옷이며 웃동까지 활 벗어제낀 몇몇 남동무들이 처녀들의 손을 잡아 춤판으로 이끌어냈다. 여기저기 빙그르르 원을 짓고 흥겨운 춤판이 벌어졌다. 좀전까지 그들의 얼굴에 가득 실렸던 지친 기색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단숨에 하늘이라도 떠박지르고 바다도 메울 기세였다. 나는 텅빈 이깔나무밑에서 그들과 함께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정심의 모습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불이였다. 불덩어리였다. 창대같이 내리꽂히는 비발속에서도 그의 온몸에서는 그 열정의 불꽃이 더욱 다채롭게, 기운차게 튕겨오르고있었다. 《소대장동무, 뭘하고있소?》 혼자생각에서 깨여나지 못하고 얼떨해있는 나를 경준이가 기어코 정심이앞으로 끌어냈다.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몸을 정심의 날렵하고 맵시있는 춤동작에 맞추느라 나는 몇번이나 그의 발등을 밟고야말았다. 《아이참, 소대장동문 꼭… 호호호.》 철부지소녀처럼 그리도 티없던 그 웃음, 그 웃음소리… 우리 소대는 그날 더없이 불리한 조건에서도 맡겨진 전투과제를 훨씬 넘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심동무와의 닷새째날
그날도 하늘에서 바께쯔로 막 쏟아붓는것 같은 장마비는 조금도 그칠줄 몰랐다. 우리 소대가 금방 아침식사를 끝내고 작업장으로 진출하려는데 대대장동무가 급히 나를 찾는다는 련락이 왔다. 《소대 폭풍!》 명령은 급박한것이였다. 소대를 이끌고 달음질쳐가는 나의 귀전엔 대대장동무의 말이 그냥 쾅쾅 증폭되여 울리고있었다. 《1소대는 오늘 혼석나르기작업을 중지하고 이제 당장 3소대동무들의 가배수로 물길굴뚫기장으로 가야겠소. 정황이 몹시 위급하오. 례년에 없는 장마비로 오늘 새벽 굴에서 큰 붕락사고가 나고 물까지 터져 갱이 위험하다는 비상련락이요.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다는것 같소. 1소대장동무, 그들을 도와야겠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물길굴을 구원해야 하오. 산사태로 전화선이 모두 끊어져 련락이 닿은것은 우리 대대 하나뿐이요. 알만하오? 소대전원을 데리고 30분안으로, 무조건 30분안으로 가닿아야 하오.》 우리가 숨이 턱에 닿아 합수목의 나무다리어귀에 거의 이르렀을 때였다. 《어마나, 저걸 어쩌나.》 녀동무들이 아츠럽게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그 자리에 그만 우뚝 멈춰서버렸다. 무섭게 불어난 강물이 금시 공사용림시다리를 삼키고있었던것이였다. 물살이 아름드리통나무들도 성냥개비처럼 가볍게 떠박지르고 와― 와 뒤몰려가는데 몇순간후엔 강우에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품치며 날뛰는 멀기와 물보라밖에는 그 무엇도. 한초한초 귀중한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가건만… 경준이가 나의 어깨를 그러잡고 부르짖었다. 《소대장동무, 독골쪽 여울목으로 가보자구.》 바람처럼 달려가보니 며칠전까지만 해도 징검돌을 짚고 춤추듯 건늘수 있었던 그 여울목도 어찌나 눈뿌리가 쑥 뽑히게 드넓어지고 사나와졌는지 몰랐다. (어떻게 할것인가?) 온몸의 피줄기들이 심장을 향해 도화선처럼 타드는듯싶었다. 이제 강상류에 놓인 공중다리를 건너 물길굴에 이르자면 시간반은 실히 걸릴것이다. 그렇다면?… 아니,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명령앞에서 절대로 뒤걸음치거나 한치도 에돌수 없다.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처럼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물길굴을 뚫어나가고있는 동무들, 《물길굴을 관통하기 전에는 백두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는 신념의 맹세를 암반벽에 새기고 지쳐서 쓰러지면서도 두손에 꽉 틀어잡은 함마와 정대만은 놓지 않은 그들이였다. 나는 경준의 두손을 으스러지게 부여잡았다. 경준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무들앞으로 성큼 나서며 한손을 높이 쳐들었다. 《남동무들은 대렬 3보 앞으롯!》 나는 불을 토하듯 웨쳤다. 《내 결심은 이렇소. 남동무들만 여섯명씩 조를 무어 바로 여기서 죽으나사나 기어이 명령받은 시간안에 강을 건늡시다. 녀동무들은 공중다리까지 급보로 달려 한시간반후에 물길굴에 도착하시오.》 홱 뒤돌아서던 나는 뜻밖에도 정심과 날카롭게 부딪치는 나의 눈길을 느꼈다. 어느 찰나 나의 눈길이 그에게 붙들렸는지 몰랐다. 그에게서, 그 눈에서 황급히 떨어지려는 순간은 이미 늦은 뒤였다. 정심이가 나의 앞으로 막 달려왔던것이였다. 《소대장동무, 우리도 같이 강을 건느겠습니다.》 《뭐요?》 나는 당장에 잡아먹을것처럼 무섭게 정심을 노려보았다. 《정신나갔소? 녀자가 저속에 뛰여들 엄두를 다 내다니… 이건 정말 셈판이 없다니까.》 경준이도 버럭 큰소리를 뿜으며 두눈을 지릅떴다. 《죽자 그러오? 지금 저 강바닥으론 바위돌들도 막 구을고있을거요. 한발자욱이라도 미끄러지거나 물살에 밀리면 그땐…》 《생명이 위험하다는거지요. 그렇지요? 부소대장동무.》 《…》 《우리 처녀들을 비겁쟁이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모두를 백두산이, 백두산이 지켜보고있지않습니까?》 나는 가슴노리를 쾅 걷어채운 사람처럼 그만 멍하니 굳어져버렸다. 《소대장동무.》 뒤전에 밀려났던 녀동무들도 우리 주위를 빙 에워쌌다. 《우리도 다같이 강을 건느겠습니다.》 《건늘수 있습니다.》… 드디여 우리는 남동무들 넷에 녀동무들 둘씩 한동아리로 뭉쳐 강을 건느기 시작했다. 하나의 큰 성벽으로 다져진 가슴들앞에서 그렇게 기를 쓰던 강물도 끝내 무릎을 꿇고야말았다. 우리는 모두 무사히 건너편 기슭에 올랐던것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슬며시 정심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그 그윽한 볼샘에서 노을처럼 고요히 피여오르는 미소… 따뜻했다. 아름다왔다. 나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허, 그참, 이건 손님이 웃으면서 주인의 뺨을 친다더니…)
정심동무와의 열흘째날 ―방성실의 이야기―
밤늦게야 식당근무를 마친 나는 가만히 병실문을 열다말고 문가에 주춤 굳어져버렸다. 모두들 곤히 잠든속에서 아무소리도 못들은채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정심언니의 모습이 나의 발걸음을 멈춰세운것이였다. 그의 앞에는 동무들의 작업복이 무드기 쌓여있었다. 우리 돌격대처녀들의 옷차림은 언제 어디서나 깨끗하고 단정해야 한다며 단추 한알, 실밥 한오리도 그저 지나칠줄 모르는 언니였다. 그 일에 어찌나 온 정신을 쏟아붓고있는지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은 언니의 모습에서 나는 좀처럼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방그레 미소까지 띄운 그 얼굴, 땀에 젖은 탐스런 중발머리 몇오리가 이마전에 흘러내렸는데 상큼한 코등우에도 땀방울이 도도록이 구을고있었다. (아이, 어쩜 저리 고울가. 저러니 부소대장동무가 한사코 소대장동무한테 붙여주지 못해 몸살나 하지. 그런데 언니한텐…) 같은 처녀로서도 시샘이 날만큼 두드러진 그 모습은 그동안 해볕에 타서 좀더 까무슥해졌을망정 한폭의 그림처럼 가슴가득 마쳐오는것이였다. 하면서도 발볌발볌 그에게로 다가가는 나의 마음속에선 은근히 약이 올랐다. (오늘 하루는 절대안정하라구 그만큼 당부했는데두…) 어제 정심언니는 혼석을 나르다가 작업장에 그대로 쓰러지고말았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불돌처럼 뜨거웠다. 《이거 안되겠소. 너무 무리해서 몸살이 온것 같은데… 성실동무, 당장 병실에 눕히오.》 무엇인가 말하려고 애쓰는 언니에게서 단호히 돌아서며 소대장동무가 나를 향해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밤새껏 고열속에 시달리던 정심언니는 오늘 오후에야 정신을 좀 차렸었다. 그런데 저렇게 또… 나는 한숨을 호 내그었다. 나는 손에 들었던 약봉투며 사탕알들을 그의 옆에 되는대로 쏟아놓으며 막무가내 그에게서 바느실을 앗아들었다. 《누가 언니더러 이런걸 하랬어요?》 《쉿, 조용! 모두 깊이 잠들었는데…》 하지만 나는 그냥 뾰로통해서 내쏘았다. 《언닌 자기밖에 생각할줄 모르는 나쁜 녀자야, 나쁜 녀자. 소대 모든 동무들이 얼마나 걱정한다구.》 그러나 잠시동안이 지나 나도 별수없이 그의 곁에 가지런히 무릎을 맞대고 같이 앉을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를 무슨 말로 어떻게 이길수가 있담. 우리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일손을 이어나갔다. 《저, 언니 하나 물어도 좋아요?》 《물으렴.》 《실례가 아니라면… 언니한텐 물론 애인이 있겠지요?》 《애인? 호호. 성실동무도 참…》 그는 다소곳이 머리를 수그렸다. 《아니, 아직은… 난 사랑에선 1학년생이예요.》 언니는 그 이상 더는 말이 없었다.
정심동무와의 열이틀째날 ―함경준의 이야기―
《살긴 살가?》 나는 못미덥게 정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정심의 둘레로 쭉 어깨성을 쌓은 동무들도 저마끔 웅성거렸다. 《살아요. 꼭 산다니까요. 정성이면 돌우에도 꽃을 피운다지 않나요.》 정심은 노래라도 부르듯이 랑랑히 대답했다. 이제 서너뽐이나 겨우 될가말가한 애어린 분비나무… 산비탈면을 깎아 혼석을 보장하다보면 이런 돌박산에도 용케 뿌리를 내린 종비며 분비들을 이따금씩 볼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한번 그런데 주의를 돌려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심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숱한 일손들을 멈춰세운것이였다. 《우리 이 나무를 언제쪽 저 큰길가에 옮겨심자요. 부소대장동무, 그렇게 하지요?》 정심은 발뒤꿈치까지 돋우며 큰길쪽을 가리켜보였다. 《챠, 이 동무 명령하는 말투를 좀 보지. 제법 신통히 군인같은데…》 하면서도 나는 멋적게 뒤더수기를 매만졌다. 그러며 무심결에 머리를 돌리던 나는 하마트면 삽자루를 놓칠번 했다. 아, 류달리 정채롭게 빛나는 정심의 그 눈동자, 그 웃음, 그 얼굴… 참 이상한 일이였다. 그의 말과 웃음속에는 과연 그 무슨 류별난 힘이 깃들어있어 나나 대국이가 매번 감심하고 압도당할수밖에 없는것일가, 스스럼없이 모든 동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틀어잡는 그의 매력은 어디에 뿌리를 둔것일가, 무엇이 저 정심이라는 처녀를 저렇듯 밝고 아름답게만 비쳐주는것일가? 생기발랄하고 명랑한 불꽃처럼 튕겨오르기도 하고 티한점없이 맑은 옹달샘처럼 대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정심이라는 한 처녀가 소대에서 너무나 급속도로 차지하는 그 커다란 인간적위치와 견인력이 그저 놀랍기만 할뿐이였다. 그럴수록 나에게는 엊그제 성실에게서 들은 말이 더더욱 즐겁게만 들렸다. (그러니 애인이 없는건 확실하단 말이지.…) 혼자 흐뭇이 닭알낟가리를 가려올리고있는 나의 등뒤에서 대국의 성칼진 목소리가 날아드는 바람에 나는 펀뜩 상념에서 깨여났다. 《이건 뭐요?》 소대장들의 주간모임에 참가했던 대국의 거친 숨소리가 나의 얼굴을 후려쳤다. 둘러선 대원들을 사나운 눈초리로 할퀴며 대국은 그냥 시퍼래서 큰소리쳤다. 《빨리 작업을 계속하오. 3소댄 벌써 마지막계선이요. 그런데 우린 대대의 기둥소대라는게 제일 뒤꼬리란 말이요. 이거야 어디…》 그러나 동무들은 대국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그냥 쭈밋거릴뿐… 나는 대국의 팔소매를 슬그머니 나꾸어챘다. 《소대장동무, 정심동무랑 두세동무 떼서 나무를 옮겨심기요. 정심동무 말은…》 《뭐라구? 난 뭐 동무들만 못해서 이러는줄 아오. 저 여린 뿌리를 이제 떠옮겼대야 살것 같소? 못살아. 이런 장마철에 도대체 살려낼 방도가 없단 말이요. 그리고 우리가 결의한 가물막이공사완공날까지는 이제 3일밖에 안 남았소. 정말 1분1초가 새롭단 말이요. 1분1초가, 동무.》 대국은 정심에게로 홱 돌아섰다. 《동문 우리 일에 너무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란 말이요. 내 이자 대대장동무한테서 다 듣고오는 길이요. 뭐 언제봐야 이 소대장의 얼굴인상이 지내 차고 시퍼렇다느니, 소대앞에서 너무 큰소리를 자주 치고 동무들에게 뜨겁지 못하다느니 한 동무의 그 조언과 충고들을 말이요. 몹시 고맙긴 하지만 내일은 내가 알아 처리할테니 우리 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방해는 놀지 말란 말이요. 허참, 굴러온 돌이 배긴 돌을 보고 자리를 내라고 한다더니 조용히 우리 일손이나 돕다가 떠나갈 노릇이지 이건 중뿔나게… 에익.》 대국은 오른손을 머리우에서부터 휙 내리긋고는 씨엉씨엉 우리앞에서 멀어져갔다. 《소대장동무.》 나는 무안쩍게 정심에게로 돌아섰다. 그 순간 나는 정심의 눈가에 핑 하고 어리는 눈물방울을 보았다. 왜서인지 그 눈물이 나무를 심고나서도 오래도록 아프게 심장을 쏘는것이였다. (대국이, 자네도 참…)
정심동무와의 마지막날
오전 11시, 전체 돌격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려단이 맡은 가물막이언제공사는 성과적으로 끝났다. 저저마다 얼싸안고 볼을 부비며 터치던 환호성, 눈송이처럼 내려앉던 꽃보라, 꽃보라, 끊길줄 모르던 취주악소리. 눈물이 핑그르 솟구쳤다. 그런데 정심이가 쪽지편지 한장을 남기고 가뭇없이 사라졌다는 성실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전에 날아들었다. (뭐라구? 정심동무야 원래 래일 떠나가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왜서인지 오늘같은 날에 기어코 식당근무를 맡아나서면서 동무들을 언제로 떠밀어주며 그리도 밝게 웃음짓던 정심이였다. 병실문을 벌컥 열어제끼던 나는 그 자리에 그만 무춤 굳어지고말았다. 방안의 분위기가 자못 엄엄하고 숙연했던것이다. 나보다 한발 앞서 도착한 소대동무들이 말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첫눈에도 남다른 지성을 듬뿍 고인것이 느껴지는 음식상, 병실한가운데 쭉 차려놓은 그 상우에는 감자떡이며 감자지짐, 언감자국수 등의 특식들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데 드문드문 생화묶음까지 꽂아놓아 상을 더욱 이채롭게 했다. 그 음식상앞에 묵직하게 서있던 대대장동무며 려단장, 정치부장동지들이 나를 향해 무거운 눈길을 던졌다. 《으―흠.》 마침내 납덩이같은 침묵을 깨뜨리며 려단장동지가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그러니 끝내 한마디말도 없이 떠나갔단 말이지.》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정심동무가 무조건 비밀을 지켜달라고 너무 사정하기에… 설마 정심동무가 이렇게 조용히 떠나가리라고는…》 대대장동무가 머리를 푹 떨구었다. 경준이 나의 손을 꽉 틀어잡으며 어깨를 들먹였다. 그의 손에서 받아든 정심의 쪽지편지. 《돌격대원동무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를 하루빨리 완공된 발전소언제우에 높이 모시고 크나큰 기쁨과 만족을 드려주십시오. 경례를 표합니다. 조선인민군 병사 리정심.》 아, 병사!… 그럼 그가 군인이였단 말인가? 나의 눈앞으로 정심이와 함께 보낸 나날들이 영화화면처럼 흘러갔다. 소낙비 쏟아지던 그날의 오락회, 파도세찬 강물을 앞장서 웃으며 헤쳐넘던 정심의 모습, 언제봐도 절도있고 기백이 느껴지던 그의 모든 말과 행동거지, 팔소매를 걷어붙일 때마다 유표하게 드러나군 하던 군인내의… 대국이, 너야말로 정말 눈뜬 소경이였구나. 《사실 정심동무는 여기 건설장과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린접해있는 녀성구분대의 병사요. 여기 삼수발전소건설장에 늘 마음을 잇고 살던 그는 표창휴가를 받고 평양으로 가는 길을 돌려 우리한테로 달려왔소. 그동안 지휘부에서 일해달라는 우리의 요구도 굳이 마다하고 현장으로 그것도 가장 어려운 전투단위로 보내달라면서 바로 대국동무네 1소대에 배낭을 풀어놓았던거요.》 한동안 말을 끊고 창밖 어딘가 멀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정치부장동지는 다시 웅글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정심동무를 속보판에도 큼직하게 내고 현장방송으로도 불겠다고 하자 그는 오히려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절절히 말하더군. 〈그러지 마십시오. 저는 돌격대원동무들도 모두 병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 모든 아들딸들의 진정한 초소는 백두산과 잇닿아있는것이 아닙니까. 제가 여기서도 장군님의 병사로서의 신성한 의무를 변함없이 수행할수 있게 해주십시오.〉 코마루가 시큰해지더군. 동무들과 티끌만 한 간격도 없이 생활하겠다며 그저 자기를 어느 피복공장처녀라고 동무들앞에 소개해달라고 할 때 우리는 그앞에 저도 모르게 머리가 숙어졌소.》 두눈을 슴벅이던 려단장동지가 우리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우리는 오늘 비록 정심동무에게 꽃목걸이 하나 걸어주지 못했지만 백두산을 빛내이는 길에 병사의 자욱, 참다운 복무의 자욱을 남겨준 그를 영원히 잊지 않을거요.》 나는 목청껏 부르고싶었다. 정심이, 정심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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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이가 떠나간 뒤 우리는 소대를 병실의 안팎은 물론 대렬적인 면모나 일솜씨, 문화정서생활에서도 그야말로 돌격대의 기둥소대라고 떳떳이 자랑할수 있도록 멋쟁이로 꾸려놓았다. 그 사이 우리는 소대앞으로 보내온 정심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우리모두에게 혁명적군인정신과 군인품성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게 하였다. 그것은 오로지 아버지장군님을 위하여 이 세상가장 아름답게 피여나는 선군시대 꽃송이의 진정한 향기였다.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 그 향기는 비오나 눈이오나 언제 어디서나 한생토록 변함없이 소중하게 간직되여있을것이다. 우리 시대 참다운 청춘의 향기, 내 삶의 영원한 향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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