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3(2014)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하 수

(제 2 회)

 

판매부원은 지나온 생활의 소중한 한페지를 번지듯 말마디들을 흘릴세라 력점을 두기에 애썼다.

《그때도 지금처럼 꼭 두차량이였어. 처음엔 나자신도 배부른 아이들의 투정이라고, 너무 쉽게 자재를 해결받으니 인사불성이라고 생각했지. 저마다 요구하는것이 강재라 그때는 수송이 긴장해서 어지간한 불량화차는 자체로 수리하여 쓰군 했지. 그런 화차도 한번 배정받는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어. 그런데 이것보라구, 수길이 그 사람이 제 공장으로 떠나가려던 행장을 아예 화차수리장에 풀어놓을줄 어찌 알았겠나. 그 추운 겨울에 독감이 채 가셔지지 않은 몸으로 용접기까지 끌어다놓고 화차수리에 합세했지. 그 광경이 억이 막혀 제발 이러지 말라고 나뿐이 아닌 옆사람들까지 만류했더니 〈사람이 자기 일에만 만족을 느끼면서 그쯤한것이야 하고 눈감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 땅에 발붙일 자격은 물론 살아간다는것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야.〉 하질 않겠나. 그 모습을 보니 내가 꼭 무슨 죄를 지은것 같이 생각되더구만. 그렇게 화차를 수리하고 설날을 이틀앞둔 날에는 그 공장 강재를 실었지. 떠나는 렬차를 미안스레 바래주며 오래동안 서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몰래 심심히 반성되는것이 있었소. 무슨 일이나 제가 한 일에 만족을 느끼군 하던 나의 그릇된 관점을 말이요.》

광수는 머리를 끄떡였다.

옳은 말이다. 사람은 자기를 반성하는것도 좋지만 자기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것은 또 얼마나 고상한것인가.

생각이 깊어졌다. 한때는 광수자신도 아바이가 하는 일을 두고 범상하게 여긴적이 있었다.

… 《그 아바이를 만나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됩니다. 바쁜 일이 어떻게 많은지 며칠씩 묵어 이따금 한번씩 오는걸요. 우스운 말이지만 그 아바이한텐 이 려관이 짐보관장소랍니다, 호호…》

같이 일해보자는 사장의 따뜻한 권고에 동감의 문이 열린 광수가 출장지에 도착한 날 려관관리원이 한수길을 두고 한 소리였다.

광수는 생소한 지역을 눈에 익힐겸 여기저기 물어보며 그가 가있다는 어느 한 탄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탄광의 판매과를 비롯한 업무일에 필요한 련관부서들을 찾아다니던 광수는 저녁무렵에야 탄부들과 함께 안전모를 쓰고 막장에서 나오는 수길을 만날수 있었다.

《혹시 탄부로 아예 돌아앉은건 아닙니까?》

《그렇다쳐도 괜찮네. 우리 비료공장이 활성화되면 온 나라 농장벌에 풍작이 오듯이 모든 일은 다 유기체와 같이 뗄수없이 련관되여있거던. 내가 여기에서 한그람의 석탄이라도 더 캐내면 탄을 쓰는 우리 공장이 좋으면 좋았지 나쁠건 뭔가, 허허…》

《참 아바이두… 생산계획을 해마다 넘쳐한다는 이 탄광에서 그게 무슨 큰 도움이 되겠다고…》

《모래알도 성을 쌓는데는 크게 쓰인다네.》

그때 광수는 상사일군들의 실적은 련관부서사람들을 빨리 사귀여 공장에 필요한 자재를 제때에 끌어들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뿐이였다.

그런데…

어느 공장에 가면 중요설비의 부속도 자진하여 맡아 해결해주고 어떤것은 직접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기술혁신조에 망라되여 창의고안도 하고 자재를 주지 않는다고 타발하기 전에 걸린 문제를 풀려고 현장에 들어가 생산자가 되고…

현실에 발붙이고 한수길한테서 하나하나 배우며 일을 터득하던 나날의 충격은 예상밖이였다. 그 충격은 일시적인것이 아니였다. 평범한 생활속에서 진심이란 말의 뜻을 배우는 나날이기도 하였다.

공장에서 새 기술도입으로 절연원료가 돌발적으로 제기되였을 때였다. 계획에도 없는 생소한 자재였다.

출장지에 있으면서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한수길이 자진하여 스스로 맡아안았다.

어느 광산에 가면 가져올수 있다는것이였다.

렬차를 타고 본선에서 얼마, 다시 간이역으로 가는 렬차를 타고… 또 걸어서 수십리…

《아바이, 그 광산이 여기서 어디라고… 맡겨진 일도 다 하기 아름찬데 괜히 나설게 있습니까?》

 아바이와 함께 다년간 같이 있으면서 그곳을 대체로 알고있는 광수는 이렇게 만류했다.

《누구든 해야 될 일이 아닌가, 걱정말게. 내 듣자니 그쪽방향으로 질러가는 령이 있다더군.》

아닌게아니라 그 이튿날에 수길은 원료를 가득실은 자동차를 공장으로 떠나보냈다.

광수뿐아니라 공장사람들도 놀랐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다는 알지 못했다. 퍽 후날에 그 광산을 다녀보고야 광수는 그 일이 헐치 않은 길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때 광수는 그곳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야 늦게나마 그가 넘어갔을 령길을 제나름으로 그려보았다.

오죽했으면 지고령이라고 했겠는가. 산세가 너무 가파로와 오를 때는 앞에 지고 내릴 때는 등에 지지 않고서는 내릴수 없다는 령, 새벽에 떠난 걸음이 저물녘에야 도착했다니 그가 겪은 고생은 령만이 알고있으리라. 그때 한수길은 옆집에 나들이 다녀온듯 흔연하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업무일군들의 경우엔 출장을 다녀오면 서로 마주앉아 고생과 락, 힘겨움과 보람에 대하여 즐겁게 회포를 나누는것은 례사로운 일이다. 그러나 한수길의 행동은 언제나 변함없었는데 그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어깨에 한손을 얹고 한두번 흔들어주는것으로 끝난다.

공장에 들어오는 수백수천가지 자재들, 바늘처럼 눈에 띄지 않는것으로부터 산처럼 쌓여 돌아가는 하많은 자재들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지 광수는 깨끗한 량심과 성실한 땀을 말없이 바치는 한수길의 모습을 보며 더 깊이 알게 되였다.

집떠나 먼곳에서 혼자서 묵묵히 일해야 되는 말못할 섭섭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닐줄 알았던 이곳에서 한수길처럼 자기를 다정히 대해주고 도와주지 못해 애쓰는 뭇시선들앞에서 광수는 생활의 보람과 긍지를 느꼈고 그것이 어데서 오는것인지 실지체험을 통해 알게 되였다.

그 체험이 스스로 자각을 불러왔고 사회앞에 충실하도록 채찍질했다.

겨울이 되여야 솔잎 푸른줄 안다고 한수길이 년로보장으로 들어가고 어엿한 일군으로 성장한 오늘날에야 광수는 그가 자기 인생의 첫 발자국에 얼마나 큰 작용을 하였는가를 때없이 절감하군 한다.

그후에도 한수길은 집에서 집짐승을 기르며 출장길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라고 여러가지 물자들을 가지고 찾아올적마다 광수는 한생을 변함없이 살아가는 그앞에서 뜨거움을 삼켰다.…

광수는 황철나무가 서있는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그는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거뭇한 형체가 그쪽에서 움직이는것이 보였던것이다.

기다린듯 허리를 펴며 움쭉 일어서는 모습을 알아보는 순간 광수는 저으기 놀랐다. 낮에 소리없이 나갔던 그 청년이 서있는것이 아닌가.

《여태… 여기서 기다렸나?》

너무도 생각밖이여서 광수는 목소리마저 어정쩡해졌다.

자세히 보니 어데서 주어왔는지 나무둘레에 하얀 조약돌을 깔고있었다.

《예, 부사장동지의 일에 방해를 주고싶지 않아서…》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음을 다잡은듯 웃음을 지으며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부사장동지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계시는지 제가 알아맞춰보랍니까?》

《?…》

역시 꿍질줄 모르는 활달한 성격이 그대로 안겨왔다.

《애젊은 저 청년이 여기 일에 꽤 몸을 잠그어낼가. 이를테면 잠간 앉아보고 날아갈 계절조가 아닌지 하는…》

허, 이것봐라, 신통한걸. 처음에 생각했던 자기의 속생각을 환히 들여다본것 같은 청년의 예민한 감각이 참으로 놀라왔다. 이붓자식 눈치 어른 찜쪄먹는다고 오랜 출장기간 일하면서 한두마디의 말에 맞선 상대의 심리를 어지간히 꿰들줄 안다던 광수도 감탄할 일이였다.

《그렇다면?…》

그를 다시 만난것이 무등 반가와 광수는 얼굴에 웃음을 띠운채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리라고 믿었던듯 청년도 씩 따라웃었다.

《선배들처럼 일하겠다면 반대가 없으실줄 압니다.》

그래, 선배들처럼 일하겠다는것은 좋은 생각이다.

이전의 자기도 한수길을 따라배우며 일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 말엔 나도 동감일세. 그것이 떡먹듯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량심과 자각만 있으면 그것이 문제로 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광수는 이 청년에 대한 믿음이 점점 더 확고해짐을 느끼게 되였다.

뭔가 호흡이 맞아돌아가는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즐거워진 광수는 슬며시 아래턱을 문질렀다.

내쳤던김에 좀더 알아보고싶었다.

《량심과 자각이라… 사유가 실천의 전제이라는 의미에서는 그럴듯한데 그 자체가 실천은 아니거던.》

《그 말씀에는 저도 찬동합니다. 그렇다면 부사장동지, 제가 량심의 추동으로 여기에 왔다면 그 자체가 실천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광수는 머리를 끄떡였다. 타당성있는 청년의 말은 무엇인가 시사해주는듯싶었다.

《아무렴, 그렇구말구. 확실히 우린 구면친구처럼 통하는데가 있거던. 헌데 그 량심의 추동이란 어떤것인지 말 좀 해줄수 있겠나? 어쩐지 이야기를 나누고싶구만. 자, 우리 저기 좀 앉자구.》

광수는 황철나무밑의 긴 나무의자에 앉았다.

청년도 동감인듯 스스럼없이 옆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거침없이 말하던 청년은 주눅이 든 사람처럼 무릎우에 두손을 마주 비비며 한참 바재이더니 퍽 낮아진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것을… 정말 들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마주앉지 않았나?》

《거북스럽긴 하지만 저의 지난 생활입니다. 솔직히 저는 철부지시절엔 아버지를 원망도 했습니다.》

이렇게 첫시작을 뗀 청년은 부끄러운 지난날을 이야기해야 되는 자기의 처지를 리해해달라는듯 광수를 미안스레 바라보았다.

… 《어머니, 난 무엇을 전공할가요?》

대학추천을 받고 기분이 들뜬 춘길의 목소리다.

어머니의 얼굴에도 넘실넘실 기쁨이 흘러넘쳤다.

《글쎄… 오늘 아버지가 오시는데 물어보렴.》

춘길의 볼이 밤알을 문것처럼 불어났다.

《자식문제같은건 안중에도 없는 아버지에겐 싫어요.》

《누구보다 바쁜 아버지라는걸 뻔히 알면서두… 에그, 언제면 철이 들겠는지 원.》

《됐어요. 언제봐야 어머닌 아버지편인걸. 난 뭐가뭔지 모르겠어요. 공장일엔 그렇게 바삐 뛰여다니는 아버지가 제 자식을 위해 해놓은것이 뭐예요? 몇년 안있으면 년로보장나이가 되겠는데 자식에게 넘겨줄것이 무엇이 있나 말이예요. 길가에 떨어진 한그람의 석탄도 손수건에 싸들고 공장에 가면서도 집안생활은 전혀 관심이 없고… 또 어머니만 고생시키고…》

《너 정말?… 다 자래워놓으니 인젠 아무 말이나 망탕…》

성이 난듯 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제잡담 장판바닥에 앉아 종알대던 춘길의 눈이 대뜸 커졌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아버지가 내려다보고있지 않는가.

엄마앞에서는 생각나는대로 우둘렁거리던 춘길은 아버지의 눈길을 보자 덜컥 겁이 앞섰다.

아버지의 푸릿푸릿한 얼굴이 단번에 돌미륵이 되여버렸다.

《덜된 녀석, 못된 송아지 엉치에서부터 뿔나온다더니.…》

방안의 공기를 순간에 일축시키며 머리우에 떨어지는 벼락같은 소리.…

청년은 이야기하다말고 광수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두운 밤의 장막속에 그린듯이 앉아있는 광수의 행동이 가늠되지 않는지 조심히 물었다.

《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건 아닙니까?…》

광수는 제꺽 수긍해나섰다.

《아니요. 귀맛이 도누만. 계속하라구.》

청년의 목소리는 한층 밝아졌다.

《전 아버지를 무서워했습니다. 언제한번 큰소리를 친적도, 회초리를 든적은 더구나 없었는데 이상하게 아버지가 어려웠고 앞에 서면 숨소리마저 저어됐습니다. 언제봐야 무슨 생각에 잠긴듯이 두눈을 반쯤이나 가리운 속눈섭, 꾹 다문 입은 언제가야 열릴줄 모르고… 이따금씩 주름잡힌 가장자리에 웃음살이 비끼면 그것이 너무도 신기해 이상스레 바라보던 저였습니다. 그저 스스로 느낀것은 〈오늘 떠나야 하오.〉 혹은 〈집에 들어올것 같지 못하오.〉 하고 한두마디 하면 말없이 필요한 모든것을 깐깐히 준비해주는 어머니의 모습이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끝내 아버지앞에 나서지 못한 춘길은 대학으로 떠났다. 당당한 대학생으로(이제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자부로) 된 오늘날에 와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큰소리까지 듣고나니 까닭모를 설음이 가슴속에 차올랐던것이다.

대학에서 한해, 두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왜서인지 그러한 감정은 점차 없어지고 오히려 아버지가 무척 보고싶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였다.

그 나날에 년로보장을 받은 아버지는 집에서 집짐승을 기르며 수십마리의 염소와 함께 매일 산으로 올랐다.

춘길은 자식된 도리를 지켜 평생 일밖에 모르며 고지식하고 청렴하게 살아온 아버지를 말년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리고싶었다. 방학이 되여 집으로 온 춘길은 어린시절 좁다하게 뛰여놀던 정든 마당가에 숙연한 심정을 안은채 들어섰다. 때를 같이하여 마치 오랜 기간 아들의 발자국소리에 귀를 기울인듯 방문이 열리며 낮고 푸근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춘길이 왔느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도 변할수 있단 말인가.

안으로 휘여든 두어깨, 반백의 머리, 얼기설기 패이고 더 굵어진 이마의 주름살, 평시에 보기 힘든 미소…

아버지는 분명 웃고있었다.

이날 저녁 춘길은 아버지에게서 난생처음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것은 지나온 생활에 대한 후회의 깨달음도 아니요, 늙으면 입이 헤퍼진다는 리유에서 오는것은 더더욱 아니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육체의 생존에서 없어서는 안될 피와 살처럼 삶의 근본에 대한 견해가 심장에 깊숙이 자리잡게 하는 이야기였다.

…해방의 기쁨속에 건듯 들린 행복의 추녀들이 미제에 의하여 재더미로 변한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 천대받고 버림받던 삶이 해방과 함께 가져온 그 행복을 지켜 산악같이 일떠선 이 나라 인민들…

동해안을 낀 함주벌과 산업의 집결처인 함흥땅을 련결하는 불붙는 성천교로 한대의 자동차가 서슴없이 뛰여들었다. 자동차가 불을 날리는지, 다리가 불을 올리는지 분간 못할 화염이 기둥까지 휩싸안고 타래쳐올랐다. 금시 무너질듯 기우는 다리…

과연 저 차에 조국의 운명이 판가리되는 생사라도 있단 말인가. 그랬다. 조국의 래일이 있었다.

승리한 조국땅을 떠메고나갈 이 나라의 미래가 있었다.

미제의 함포사격에 무너져내린 집속에서 인민군대에 의해 구원된 돌을 갓 넘긴듯 한 아이는 이렇게 자동차에 실려왔고 적십자표식을 단 야전천막에서 다시 살아났다.

준엄한 전쟁속에서 전재고아들을 키우는 조국의 품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하늘에 드리운 검은구름을 몰랐고 우리 말을 익힐 때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부러움이 있을세라 보살펴주는 따뜻한 품속에서 자기가 어떻게 이 땅을 활보하며 성장하는지 소년은 알지 못했다. 수십년세월이 흐른 뒤에야 출생증과 공민증에 새겨진 이름도, 지어는 생일날도 나라에서 주었다는것을 철이 드는것과 함께 알게 되였다.…

《이것은 비단 아버지의 지난날이라고만 생각지 말아라. 나라가 있고 제도가 좋으니 사회가 화목하고 모두가 복락을 누리지. 무엇이든 바라면 이루어지고 소원하면 풀리는 이 좋은 사회에서 근심걱정을 모르며 내가 살아왔고 너희들이 살고있다. 생의 씨앗을 품어준 이 땅, 알게모르게 행복한 삶을 가꾸어주는 그 고마운 품에서 말이다. 그러니 조국이 있어 네 삶이 있는것이다. 그 품에서 대학공부도 하고… 사람은 량심이 있어 도덕과 의리에 충실하니라. 말로써는 다할수 없는 의리, 맹세로써는 다할수 없는것이 애국일진대 생의 젖줄기를 주고 삶의 피줄기를 이어준 조국을 어머니라 부르려면 어머니가 준 심장을 어머니를 위해 불태우는것이 량심에 사는 인간이다. 흙 한줌을 떠옮겨도 자기 삶을 꽃피워주는 이 땅에 진정한 량심을 가지고 사랑을 심으면 그만이다.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참다운 사랑은 경중이 따로 없다. 새겨둬라. 네가 무엇을 배우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이 아버지는 탓하지 않겠다. 어디서나 량심껏 일하고 사랑을 불태우면 고마운 조국에 자기 삶을 바칠 헌신이 나온다는것을!…》

아버지는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웃으며 반긴 아버지의 모습은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은 응당 그렇게 되여야 한다는 엄엄한 목소리였고 푸근한 목소리는 인생길에 탈선을 허용치 않는 엄격한 요구의 메아리였다. 결코 아버지는 적적한 마음을 달래느라 집에서 집짐승을 키우지 않았다. 그 모든것은 나라를 위하는 아버지의 진심에 떠받들려 사회주의건설장으로 떠나갔다.

높은 비료생산실적과 함께 혁신자들이 배출되면 그것을 자기의 긍지로 여기며 한생을 집떠나 출장의 먼길을 걸은 나의 아버지!

춘길은 아버지의 마음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삶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삶을 보았다.…

광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름이 실한 황철나무에 한손을 얹고 무성한 우듬지를 점도록 올려다보았다.

삶의 자양분을 주는 이 땅에 아름다움을 더해주고저 애쓰는 황철나무를 바라보느라니 깊어지는 생각속에 집에서 기다릴 아들한테 해줄 말도 명백하게 안겨왔다.

《어려서부터 꿈을 키우고 희망을 높이 세우는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알아야 할것은 삶에 대한 견해이다. 나서자란 이 땅에 보답할 헌신으로 시작된 삶, 그렇게 이어진 꿈과 희망만이 량심에 사는 고상한 인간의 리상이다.》

그는 서서히 청년에게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꽉 그러잡고 의미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훌륭한 아버지의 손에서 자랐으니 난 자네도 꼭 훌륭해지리라고 믿네. 암, 그렇구말구. 우리는 달리 살수 없는 사람들이지.》

래일의 벅찬 생활을 이어주는 밤은 밝은 려명을 약속하는 아침을 향해 소리없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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