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3(2014)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하 수
(제 1 회)
그 청년에 대한 첫인상은 ᆼᆼ비료련합기업소 자재상사 부사장인 광수에게 별로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크지 않은 키에 철색의 거무죽한 얼굴, 애티가 나는 체소한 몸, 어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왔다는 청년을 마주하는 순간 왜서인지 설익은 과일을 손에 들었을 때의 심정을 야기시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광수는 좀전에 로동과장한테서 오는 전화를 받았었다.
부탁대로 적임자를 한명 골라보냈으니 만나보라며 기분이 뜬것 같은 목소리가 수화기의 진동판을 울렸다.
《그래?… 거참 반가운 소리군. 그러지 않아도 ㅍ지구의 인원보충이 한시가 바쁘네. 부탁할 멋이 있거던. 내 만나보고 결심하지. 좌우간 고맙네.》
기분이 좋을 때마다 늘쌍 하는 버릇대로 아래턱을 문지르며 송수화기를 놓았었다.
얼마 안있어 한 청년이 문을 두드리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로 배치받았습니다.》
그 청년은 다가와 손에 들고있던 파견장을 광수에게 내밀었다.
광수는 파견장을 받아쥐며 청년을 바라보았다.
왜서인지 이전에 어디선가 본듯이 느껴지는게 깊숙이 파묻힌 삭막한 기억속의 어덴가 있는듯 한 이상한 감정을 불러왔다.
허나 이런 감정도 잠시잠간이였다.
파견장에 눈길을 박은 광수는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감이 들었다.
지금 기업소에서는 비료생산계획을 넘쳐하면서도 새 비료생산공정건설을 통이 크게 벌려놓았다.
생산정상화와 건설에 필요한 자재수요량은 실로 대단하여 그것을 맡아보는 상사일군들의 어깨우에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짐이 실려있었다. 더우기 서해안의 중부에 위치하고있는 ㅍ지구는 기업소에 필요한 각종 전기자재들과 고무제품, 인발관과 형강을 비롯한 여러 흑색금속을 가지고있어 생산활동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있는 소홀히 할수 없는 지대였다.
중앙과 성의 여러 부서들을 오가면서 계획에 반영된 자재들을 호상 맞물리고 련결하며 긴급자재들을 시급히 추진해야 되는 부사장인 자기가 현재까지 중요한 ㅍ지구를 함께 담당하고있었다.
그런데 인민경제대학 재교육강습을 떠난 사장의 사업까지 맡아안고보니 광수는 부득불 공장의 실정을 잘 알고 책임성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그곳에 내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동년배인 로동과장에게 부탁한것인데 보내온것이 대학을 갓 졸업하고 현실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런 신입생이다.
그런데 광수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확신에 넘쳐 이야기한다.
《저를 ㅍ지구에 보내주십시오.》
어디서 ㅍ지구에 사람을 파견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청년은 자기의 생각을 내놓았다. 의사를 표현하는것이 아니라 결론에 가까운 비장한 말투였다. 어찌보면 절대적이며 응당하다는듯 오연한 자세로 광수를 바라보기까지 한다.
《?…》
광수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찌프러졌다.
《저는 초보적으로 료해를 했습니다. 상사에서 ㅍ지구에 파견할 사람을 물색하고있다는것을 알고 연구도 했습니다.》
《동무가?… 허참.》
광수는 저도 알수 없는 빈 소리를 터쳤다. 그러다가 속생각을 묻어둔채 년장자다운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청년의 손에 들려있는 파란색표지의 책이 유표하게 안겨왔다. 광수자신이 뜬금으로 외우고있는 자재기술편람이였다.
벌써 업무일군이 다 된것처럼… 광수는 입을 다셨다.
하긴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것을 믿으려 하지.
허나 여기 일이 다른데와는 달리 장기출장직업이라는걸 알기나 하는지…
《젊음이 부럽구만. 그 나이엔 꿈도 많고 희망도 클텐데…》
광수는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말을 건넸다.
호두맛을 보자면 껍질을 까보아야 한다.
아닌게아니라 청년은 자기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며 인차 대답했다.
《옳습니다. 솔직히 남보다 더 큰 꿈을 꾸고싶고 나의 희망도 꼭 실현하고싶습니다. 그래서 청춘이 아닙니까?…》
청년의 길쑴한 얼굴에 웃음이 비꼈다. 그 모양은 가까운 사람과 마주앉은것처럼 허물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아무렴, 그렇구말구. 헌데 그 희망이 어떤것인지 자주 집을 떠나 출장으로 사는 이런 곳에서 꽤 실현할수 있을가?》
《그건 걱정마십시오. 전 이미 다 알고 왔습니다.》
청년의 스스럼없는 대답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먼 주로가 소꿉시절 징검돌 뛰여넘듯 어렵지 않게 여기는것 같은, 남들이 하는 일이라면 다 해낼것처럼 욕망으로 뜬 청년의 행동에 광수는 신중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한것은 출장길을 긍지로운 길로 착각했던 젊은 시절의 자기를 보는것 같았다. 안착을 못하고 조만간에 날아가버릴 계절조가 온것 같은 위구심이 슬며시 가슴에 차올랐다.
아득히 흘러간 옛시절, 비료련합기업소라는 거대한 실체를 움직이는데 윤활유와 같이 중요한 사명을 안고있는것이 상사일군들의 일이라는 귀맛당기는 소리에 포부를 안고 제딴의 곬을 찾아 여기로 왔던 광수였다. 들뜬 기분에 얼마동안 앞으로 해야 할 일거리들을 찾아보니 이게 웬일인가, 허파에 찬 바람에 끝없이 솟구치던 욕망이 물거품처럼 사그라들고 상대적으로 더욱 불어나는것은 커다란 실망이였다.
나이많은 사람들의 지긋한 성격에나 맞을 출장생활, 자재해결을 위해 혼자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며 흘리는 남모르는 땀방울…
무수한 눈길들이 집중되는 대건설장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고 젊은 시절에는 참으로 답답할것 같은 이런 일에 몸을 잠근다는것은 암만 해도 격에 맞지 않았다.
다른데로 가자. 종당에 내린 결심이였다.
물론 청년을 앞에 세워놓고 그전의 자기처럼 쉽게 단정하지 말라고 설복할수는 없었다.
《결심도 좋고 각오도 좋은데 이보라구, 인생길은 한때의 흥분이나 순간의 감정으로 결정짓는게 아니요. 더우기 여긴 화력지원도 보장성원도 대리라는 말도 없이 기업소의 운명을 걸머지고 묵묵히 일해야 되는 곳이요. 책임적이고 자각적인 의무감을 요구하는 곳이란 말이요. 그 누가 보는이 없는 타곳에서 혼자서, 말하자면 청춘들이 바라는 값높은 명예나 화려한 꽃다발이 없이 일하는 곳이니 덤비지 말고 신중하게 잘 생각해보오.》
광수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파견장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청년에게서 대뜸 반응이 일어났다.
《아니, 그럼?…》
무엇을 느꼈는지 청년은 록록치 않게 말했다.
《저한텐 더 생각해볼것이 없습니다. 단지 일을 제대로 하겠는지 근심스러울뿐입니다. 그러나 엄지소도 송아지시절은 있는줄로 압니다.》
광수는 사람좋게 웃으며 손을 들어 청년을 가볍게 제지시켰다.
《아, 흥분하지 마오. 젊은 시절에 사고를 리성적으로 하고 인생의 좌표를 바로 정하길 바라는 나이먹은 사람이 주는 충고일세. 하지만 명심할건 체통이 크다고 다 엄지소가 아니구 뿌리를 내린다고 다 거목이 되는건 아니요.》
광수는 어찌하여 이 순간 언젠가 한수길아바이한테서 들은 소리를 곱씹었는지 알수 없었다.
한수길은 광수의 선배였다. 그저 나이많은 사람으로가 아니라 스스로 존경하게 되고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광수가 상사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새로 지은 건물의 앞마당을 넓히느라 도랑을 메우고 풀을 뽑으며 수평고르기를 한적이 있었다.
《이크, 하마트면 죽일번 했군.》
뒤를 돌아보니 자기가 뽑아놓은 풀속에서 한뽐이나 될 자그마한 황철나무를 손에 든, 방금 출장길에서 돌아온듯 한 아바이(그에게는 그렇게 보였다.)가 채 뽑지 못한 풀밭에 있는 여러그루의 황철나무잎새를 정히 어루쓸고있었다. 그러더니 광수와 함께 그 나무를 조심히 떠서 마당의 한쪽변두리에 심자고 했다. 그가 한수길이였다.
《다행스러운 일이지. 잡관목신세를 벗어났으니 인젠 알게야. 뿌리를 내렸다구 다 거목이 되지 않는다는것을… 두고보라구, 저것들도 자기를 품어준 은공을 잊지 않거던. 이제 자라면 무성한 잎새를 펼쳐 온갖 새의 보금자리로 되고 무더위엔 그늘이 되여주지.》
그때가 한수길이와의 첫상면이였음에도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 리유가 있었다. 지내볼수록 그는 사심이 없고 성실성과 헌신적인 자각이 줄기차게 뻗어오르는 황철나무처럼 계속 이어져 때없이 련상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두팔을 엇걸은채 생각에 잠겨 창가로 다가섰던 광수는 뒤에서 자기를 바라보고있을 청년을 예감하며 돌아섰다.
헌데 청년은 어데론가 가고 새 자재절충안을 가지고 계획부서에서 온 난데없는 두명의 부원이 서있었다.…
저녁이 되여 사업으로 분망하던 사무실이 조용해지는가싶더니 전화종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송수화기를 드니 로동과장이 웃음섞인 목소리로 제잡담 늘어놓았다.
《청년을 만나보니 어떤가. 아마 마음에 꼭 들거네. 아무렴, 그렇구말구. 눈이 똑바로 배겼다니까. 쉽지 않은 청년이야.》
《허, 이거 그 청년에 대한 인상이 이만저만 좋지 않군 그래. 제 자식보다 더 칭찬하누만.… 잘 아는 청년인가?》
《그럼… 첫눈에 알아봤지.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구내선에 세워놓은 화차방통우에서 아바이라 부르며 나를 찾더구만. 올려다보니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바람에 펄럭이는 방수포의 한쪽귀통이를 붙잡고 어쩔줄 모르지 않겠나. 자칫하면 거기에 실은 비료가 비를 맞을 판이지. 끊어진 포장끈을 련결하자니 한사람의 손이 필요했던거네. 무척 감동되더구만.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니 글쎄 그가 우리 로동과에 나타나질 않았겠나. 문건을 보니 대학을 졸업했기에 제꺽 자네 생각이 나더구만.
그래서 출장이 잦은 곳이라고 슬쩍 귀뜀했더니 뭐 자기는 어려서부터 그런 일을 많이 보아왔노라며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가가 문제인것이 아니라 어떻게 일하는가가 문제라고까지 하지 않겠나?
잘 이끌어주라구.》
로동과장의 이야기는 끝났으나 광수는 손에 든 송수화기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 청년을 다시 만나보고싶은 생각과 함께 다시 오지 않을것 같은 위구심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왜 로동과장처럼 이끌어줄 생각부터 먼저 하지 않았을가?…)
또다시 지나간 생활이 눈앞에 떠올랐다.
…다른데로 가겠다고 떼질쓰려고 문을 열려던 광수는 안에서 들리는 사장의 목소리에 문손잡이를 쥔채 굳어졌다.
《참, 광수가 제발로 우리에게 온것이 너무도 기특해 앞으로 기둥감으로 키워볼가 했더니 속이 궁근 녀석인줄 몰랐거던.》
(뭐라구?…)
광수는 채 닫기지 않은 문짬에 눈을 가져다댔다.
사장이 한수길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사람이 스스로 자각한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속이 좀 궁글었으면 우리가 그속에 진짜를 채워줍시다. 키워주는 나무 비뚤게 자라는 법이야 없지 않습니까?!》
《그럼 동무에게 맡기겠으니 함께 힘써보기요.》…
퇴근할 생각을 까맣게 잊고 광수는 어둠이 짙은 청사앞마당을 거닐었다.
서늘한 바다바람에 해감내가 함께 풍겨왔다. 소리없이 떠나간 청년에 대한 생각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지금 아들과의 약속을 어기고있다.
…《넌 밥은 먹지 않고 뭘 하고있니?》
중학교졸업을 눈앞에 둔 아들은 지망을 써낸다며 빈 종이장을 앞에 놓고 뚫어지게 노려보는데 그 표정이 어찌나 진지한지 광수는 보다못해 물었다.
아들은 두눈을 뜨부럭거리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아버지에게 눈길을 돌렸다.
《음… 아버진 제가 뭘하길 바라나요?》
허, 제 생각은 어디다 두고…
《글쎄…》
광수는 모르겠다는듯 머리를 외로 틀었다.
《야참 아버지, 아들의 전망문젠데 그렇게 머리를 흔들면 어떻게 해요. 래일까지 바쳐야 해요.》
《아, 그거야 네 머리로 생각을 해야지.》
아들은 피씩 웃으며 재롱스럽게 두눈을 올리떴다.
《그럼 좋아요. 내가 생각한걸 오늘 저녁에 말할테니 반대하진 않지요?》
아침출근길에 나서는데 아들은 그 무슨 중대사나 되는것처럼 오늘 저녁 일찌기 들어와달라고 몇번이나 당부했다.
아버지인 광수조차 아직 채 여물지 못한 가슴에 남이 하는것은 다 하겠다는 욕심으로 헤덤벼치는 아들을 놓고 앞으로 무엇을 시켰으면 좋을는지 묘연하였다. 그 애의 지향이 마음에 든다 해도 뭔가 말은 해줘야 되겠는데…
남한테는 인식을 정립해준다고 리성적인 사고요, 라침판이요 하고 헐하게 말했지만 정작 제 자식에게는 그것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해줘야 하는가.
철두철미 앞서간 선대가 전생을 바치며 얻은 생활의 좌우명과도 같은, 그래서 후대들의 앞길에 귀중한 지침으로 되는것이여야 할것이다.
문득 광수는 낮에 만났던 그 청년의 옆에 아들을 나란히 세워보았다.
물론 나이차이는 있어도 현실에 자기를 세울줄 알고 지향성이 강한것 같은 그 청년만큼이라도 앞으로 마음이 자란다면 걱정할것 같지 않았다.
한줄금의 바다바람이 획 볼을 스치자 마당의 변두리에 병풍처럼 서있는 황철나무잎새들이 솨- 소리를 내며 어둠의 정적을 깨뜨렸다.
밤하늘에 무성한 잎새를 한껏 펼쳐든 거목의 황철나무를 바라보며 광수는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내그었다. 청년을 순간이나마 저울질한 미안한 감정에서 오는것이였다.
뒤이어 철없이 헤덤비던 어제날의 자기도 애어렸던 저 나무와 함께 돌기돌기 년륜을 감으며 오늘날엔 일군으로 자라지 않았는가 하는 자격지심이 들면서 성장의 첫걸음을 떼던 잊지 못할 일들이 눈앞에 어려왔다.
…
《그렇게 훌 가버리면 이 텅 빈 가슴은 어떻게 채우라오?…》
《이거 안됐구만, 잔뜩 고생만 시키다가…》
《아주버니, 저녁에 집에 꼭 들리시우. 이렇게 그냥 가면 우리 령감한테 경을 친다우.》
담당지구의 공장과 탄광을 비롯한 여러 단위들을 다니며 작별인사를 나누는 한수길에게 뭇사람들이 한 소리였다. 마치 오랜 기간 한가마밥을 먹으며 일하다가 헤여져야 하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가득 비낀 말들이였다.
부사장으로 임명되여 한수길이가 담당지구를 인계하고 떠날 때 이 후더운 감정은 광수가 앞으로 출장지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말없는 충고였다.
평범한 날엔 다 알지 못하던것을 한순간에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언제인가 한번은 자재의 추가계획도 있고 또 현재까지 받은 자재의 수량도 재확인할겸 자기가 거처하고있는 소재지로부터 수십여리 떨어진 제강소로 향한적이 있었다. 떠날 때까지만 해도 흰구름이 피여오르던 하늘에서 폭양이 쏟아지더니 절반길을 넘어서서는 예고없이 들이닥친 검은구름에서 대줄기같은 소낙비가 쏟아져내렸다. 할수없이 내리는 소낙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광수는 제강소의 판매과에 도착하였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나이지숙한 판매부원은 흘러내리는 비물을 연방 훔치며 들어서는 광수를 아연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계획수량을 제때에 주면 이런 걸음을 하겠습니까?》
광수는 자기를 바라보는 부원을 향해 악의없는 실눈을 지으며 짜장 속에 없는 불평을 부리였다.
갸름한 얼굴에 고지식한 성미가 엿보이는 판매부원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물었다.
《그때문에 폭우속을 뚫고왔단 말이요? 에익, 사람두… 전화라도 한통 걸어볼것이지. 그러지 않아도 방금전에 비료공장이 받은 계획분의 마지막강재를 두차량의 방통에 전부 실어 출발시켰네. 하여튼 내 비료공장사람들한텐 두손 바짝 들었어.》
광수는 누가 묻기라도 한듯 줄줄이 엮어대는 판매부원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아참, 자넨 모를수 있지. 어유, 말두 마오. 나때문에 생사람을 고생시킨 생각을 하문… 제집일인들 그렇게 하겠나?》
부원은 가슴속에 들어앉은 묵직한것을 꺼내듯 잠시 숨을 내긋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양력설을 앞에 둔 12월도 며칠 안 남은 어느날이였다.
때이르게 내린 폭설에 눈보라까지 터져 례년에 없는 강추위가 웅웅 강산을 울리고있었다.
사람들로 붐비던 제강소의 판매과가 한해치고 제일 조용한 때는 지금이다. 장기출장을 나와있던 사람들도 이때는 년간사업총화와 함께 다음해의 새 과업으로 대체로 거의 떠나가고 없었다.
이따금씩 눈보라가 창유리를 때릴뿐 정온한 사무실에서 판매부원이 사무를 보고있었다.
갑자기 나들문이 찬바람을 몰아오며 열린것은 한나절이 거의 지나갈무렵이였다.
온몸에 눈가루를 뒤집어쓴 눈사람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일별하던 판매부원은 불에 덴 사람마냥 와뜰 놀라며 일어섰다.
《이게 누구요? 비료사람이 아닌가?》
《그렇네, 한수길이네. 헌데 왜 그렇게 놀라나?》
《앓는다더니 몸은 좀 어떤가?》
《아픈건 병때문이 아니라 평온치 못한 이 마음일세. 하나 묻자구. 다른데로 떠나게 된 강재화차를 우리 기업소로 돌려놓았다는게 사실인가?》
수길은 침중한 표정으로 얼어서 푸릿푸릿해진 입술을 힘겹게 놀렸다.
그제서야 판매부원은 깨도가 된듯 머리를 끄덕이며 의자를 권했다.
《그렇게 됐네. 자네의 행동이 우릴 감동시켰지.》
《나의 행동이?…》
《그렇네, 화차수리에 필요한 부속을 해결하느라 밤잠을 잊고 뛰여다니다 몸져누웠다는 소리를 듣고 깊이 생각되더구만. 그렇게 긴박하게 제기된 자재면 우리에게 먼저 말하면 못쓴다던가?》
《음… 생각해주어 고맙네만 난 그런 값싼 동정을 바란적 없네. 그리구 내가 뭐 당장 목이 메서 그런건 아니란 말일세. 자넨 언제부터 이쪽돌을 뽑아 저쪽구멍을 메우는 그 땜때기식일본새를 배웠나? 참 가슴아픈 일일세.》
수길은 답답한듯 목단추를 열어제끼더니 판매부원을 안타깝게 바라보는것이였다.
《그 강재를 받게 된 공장도 우리 나라 공장인데 저마다 제 욕심과 리해관계를 놓고 사고하고 행동하면 조국이라는 큰집을 위해 우리가 바쳐야 할 량심은 도대체 어데 있다는건가. 한사람의 불찰로 그 공장 년간자재계획에 빈구석이 생기는것은 후에라도 메꿀수 있지만 태줄을 묻은 이 땅에 바치는 량심의 빈구석은 어떻게 메꾸겠나? 명심하게, 가책을 느끼라구.》
방안의 공기마저 흐름을 저어하게 만드는 정숙한 분위기를 몰아오며 울리는 수길의 말을 어안이 벙벙하여 듣고있던 판매부원은 뭐가 눌리운듯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그거야… 자네를 위해서…》
《오해하지 말게. 불량화차수리를 도와준건 우리 공장이나 나자신이 바빠서 한 일이 아닐세. 어디서나 필요한 강재를 하루빨리 보내주고싶어 이 마음이 스스로 찾아한 일이네. 참으로 나라를 위한다면 어찌 네 일, 내 일 따로 있겠나.》
병색이 짙은 몸을 힘겹게 움직이며 노성을 터치던 수길은 침통한 기색으로 어기적거리며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