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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100리연도에 울린 불멸의 혁명송가
어버이수령님과 영결해야 할 주체83(1994)년 7월 19일 아침이였다. 한밤을 지새운 수도시민들은 길량쪽에 늘어서서 상상해본적도 없고 있어서는 안될 그 시각을 가까이 하고있었다. 그러면서 이제 바야흐로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귀중한 혁명동지들이 떠나갈 때마다 울리던 그 추도가가 울릴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미여지는것처럼 쓰리고 아픈 가슴을 안고 저저마다 어쩔바를 몰랐다. 그런데 전혀 상상밖의 일이 펼쳐졌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장중한 선률이 점점 가까이 들려오더니 해빛같이 환히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대형초상화가 우렷이 안겨오는것이 아닌가. 영결행사가 아니라 마치도 외국방문길에서 방금 돌아오시는 어버이수령님을 맞이하는듯 장엄하게 울리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주악,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신 어버이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 평양시안의 100리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가슴깊이 새길수록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품속에서 끝없이 행복하게 살아온 지난날이 감회깊이 떠올라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인류력사가 흘러 수천년, 그 언제 절세의 위인의 영결식에 고별의 노래, 추도곡이 아니라 장중한 송가음악, 혁명의 노래가 울려퍼진적이 있었던가. 우리 인민들은 후에야 가슴뜨거운 사연을 알게 되였다. 영결행사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일이 다 헤아려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 날 일군들에게 영결식을 할 때 영구차행렬에 밝고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대형초상화를 모시고 나가는 조건에서 추도곡이 아니라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연주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중음과 저음을 기본으로 하며 폭이 넓고 장중하게 그리고 리듬이 부드러우면서도 좀 느리게 편곡하여 연주할데 대한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영결식날에 울려퍼진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천만군민의 철석같은 신념의 분출이였으며 어버이수령님을 길이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불타는 맹세의 메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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