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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 명 일 화 위대한 태양의 력사를 돌이켜보며 숭고한 조국애, 민족애를 지니시고
주체82(1993)년 9월 하순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동군 강동읍에 있는 옛 단군릉을 찾으시였다. 크지 않은 무덤은 오랜 세월 눈비를 맞으며 거칠어지고 낮아져 볼품이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릉을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돌아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단군릉이 요란한줄 알았는데 실지 와보니 작습니다. …나는 그래도 리조 500년시기에 무엇을 좀 꾸려놓은것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아무것도 해놓은것이 없습니다.》 이윽하여 릉을 다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단군릉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단군릉자리를 좋은 곳에 정하고 잘 개건해야 하겠다고, 내가 릉의 자리를 보아둔 곳이 있는데 거기에 가보자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행과 함께 대박산기슭에 이르시여 차를 멈추시였다. 그이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대박산기슭의 봉긋한 야산을 한동안 유심히 살피시였다. 대박산을 끼고 앉은 야산은 앞이 탁 틔여 시원하고 다듬어놓은듯 자태가 방정하고 아름다웠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만족하신 어조로 단군릉을 개건할 자리로는 문흥리 고인돌유적이 있는 이 야산마루가 제일 좋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대성산혁명렬사릉과 같이 앞이 탁 틔여 멀리까지 바라보이고 도로에서도 가까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참관하러 오기도 편리하기때문에 여기에 단군릉을 건설하면 좋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에 로학자가 격정을 금치 못해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버이수령님, 여기가 참으로 명당자리입니다.》 로학자의 이야기를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래 명당자리야, 여기에 단군릉을 척 앉히면 참으로 멋있겠소라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 일군들에게 단군릉을 잘 개건하는것은 우리 나라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오랜 력사국이고 우리 민족이 생겨난 때로부터 하나의 피줄을 이어온 단일민족이며 혁명의 수도 평양이 단군의 태가 묻힌 조선민족의 원고향이라는것을 보여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단군릉복구위원회까지 조직해주시였다. 그리고 릉개건공사의 방향을 일일이 가르쳐주시면서 형성시안을 조선민족의 시조왕의 릉답게 손색없이 만들도록 이끌어주시였으며 단군릉복구위원회에서 제기한 최종형성안을 구체적으로 검토완성해주시고 친히 비준해주시였다. 그날이 바로 주체83(1994)년 7월 6일이였다. 친필존함의 그 비준문건은 7월 7일의 조국통일문건과 함께 우리 수령님께서 마지막으로 비준해주신 친필문건이였다. 그것은 성스러운 조국애, 민족애의 위대한 정화였다. 피눈물의 그해 10월 11일에 성대한 단군릉개건식이 진행되였다. 중국과 일본, 남조선에서는 물론 멀리 아메리카주에서, 유럽에서 그리고 오세안주에서 수많은 동포들이 평양으로 달려왔다. 단군릉개건비 비문을 읽는 해설원의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사람들을 울리였다.
동방의 유구한 나라 옛 조선의 기상을 안고 주체조선의 푸른 하늘아래 거연히 솟아오른 단군릉 여기에 내 나라 우리 민족을 내세우신 수령님의 숭고한 뜻 깃들어있어라 …
김 영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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