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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농사의 본보기고장으로 꾸려주시려고
눈뿌리 아득하게 펼쳐진 백두삼천리벌의 감자포전이 바다마냥 설레인다. 한평생을 오로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사랑과 로고를 뜨겁게 노래하는가 끝없이 설레이는 감자포전, 보면 볼수록 그 옛날 사람 못살 고장이던 대홍단군을 인민의 락원으로, 감자농사의 본보기고장으로 꾸려주시기 위해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기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이 가슴뜨겁게 안겨와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다. 돌이켜보면 항일의 피바다만리, 눈보라만리를 헤쳐오시던 그때에 벌써 대홍단을 인민의 락원으로 꾸리실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였으며 불비쏟아지는 전화의 나날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그려보시며 농장을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홍단군이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걸음걸음 손잡아이끌어주시였으며 대홍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고장으로 꾸려주시기 위해 80고령의 몸으로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오시지 않았던가. 하기에 대홍단군의 전체 인민과 청년들은 잊지 못할 그날의 감격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며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세세년년 길이 빛내갈 일념으로 가슴불태우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대홍단군종합농장에 깃들어있는 수령님의 로고와 심혈을 잊지 말아야 하며 수령님께서 이룩하여놓으신 불멸의 업적을 대를 이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주체81(1992)년 7월 28일, 이날 량강도안의 경제부문 사업을 료해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홍단군의 책임일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이렇게 동무들을 오라고 한것은 군의 감자농사형편에 대하여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감자농사에서 제기되고있는 퇴비보장문제, 비료문제, 기계화비중문제를 일일이 알아보시고 자신께서 대홍단군농사를 밀어주겠으니 본때있게 농사를 지어 전국의 본보기가 되라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였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난 8월 중순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홍단군의 신덕분장(당시)을 찾아주시였다. 8월의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무성하게 자란 감자포전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정보당 감자소출이 얼마나 날것 같은가, 벌레는 먹지 않았는가 일일이 알아보신 후 대단히 기뻐하시며 포전을 배경으로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어 신흥분장(당시)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신흥분장사적비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뽀얗게 덮였던 안개도 절세의 위인을 백두대지에 모시는 영광의 그 시각을 기다린듯 사적비를 감싸돌며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였다. 차에서 내리시여 마중나온 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신 후 무연하게 펼쳐진 감자밭을 부감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사적비문을 가리키시며 거기에 무엇이라 썼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으로부터 사적비문의 내용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자신께서 주체43(1954)년 7월 9일에 여기에 와보았을 때에는 바람막이숲이 조성되여있지 않았다고, 그때 종파분자들은 이 지대의 땅이 바람이 세게 불어 농사를 짓기 곤난하다고 하면서 농장을 없애자고 하였다고, 그래서 자신께서 여기에 와서 일군들에게 농장을 없앨 생각을 하지 말고 바람막이숲을 조성하라, 부침땅면적이 제한되여있는 우리 나라 조건에서 이런 땅을 버리면 어디에 곡식을 심어먹겠는가, 농장을 없애면 안된다고 말해주었다고, 그때는 5호농장이라고 하였는데 자신께서 현지지도한 다음 일군들이 신심을 가지고 달라붙어 바람막이숲을 조성하게 되였다고 하시며 그때를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는 일군들에게는 잊지 못할 그 나날들이 돌이켜져 가슴뜨거움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그때 어버이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에 의하여 대홍단땅에 창설된 5호농장(당시)은 반당종파분자들의 책동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반당종파분자들은 여기는 부석층이기때문에 농사를 지을수 없다, 시험농장정도로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페지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나무를 망탕 찍게 하고 산림을 마구 불태워버리게 하였으며 나무뿌리도 제대로 뽑지 않아 농사를 지을수 없게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어버이수령님께서 페허나 다름없는 농장에 찾아오시여 이 지대는 자신께서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부터 북변의 대알곡생산기지로 구상한 곳이라고 하시며 바람막이숲을 조성하는 등 5호농장(당시)이 나아갈 방향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현명한 령도가 없었더라면 대홍단군종합농장(당시)의 전변에 대하여 생각조차 할수 없었다. 숙연한 감정에 휩싸여 그때를 돌이켜보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 바람막이숲이 그때 심은 나무들인가고 다정히 물으시고나서 환하게 웃으시며 잘 가꾸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감자포전가까이로 다가가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소출이 얼마나 날것인가 알아보시고 포전에서 감자 한포기를 파오도록 이르시였다. 몸소 이슬낀 감자포기를 받아드시고 한알, 한알 세여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며 일군들이 일을 알심있게 잘하였다고 치하하시면서 대홍단군이 감자농사에서 전국의 앞장에 서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시종 만족하신 표정으로 드넓은 감자포전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홍단군종합농장의 농사에서 기본은 감자농사입니다. 대홍단군종합농장에서는 감자농사를 잘하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라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군의 감자생산목표를 정해주시고 일군들에게 포전에 부식토가 얼마나 깔리였는가고 물으시였다. 20~30cm 깔려있다는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홍단군종합농장(당시)에서는 감자가 제일이라고 다시금 말씀하시면서 대홍단군 토질상태를 보면 높은 수확을 거둘수 있는것이 감자작물이라고, 여기에 힘을 집중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그루바꿈을 하지 말고 미량원소를 비롯한 여러가지 비료를 넉넉히 주어 땅의 지력을 높일데 대한 문제, 모든 작업을 기계화할데 대한 문제, 부침땅면적을 더 늘구어 많은 감자를 심을데 대한 문제 등 대홍단군에서 농사를 잘 짓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이렇듯 감자농사를 잘하여 생산을 늘일수 있는 대책적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친어버이심정으로 농사에서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제기하라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목이 꽉 메여올랐다. 80고령의 우리 수령님께서 안개낀 이른아침에 포전을 찾으시여 감자농사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환히 가르쳐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다시금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제기하라고 하시니 사랑이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일군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래워드리며 기어이 감자농사를 잘 지어 그이께 기쁨드릴것을 마음속으로 다지고 또 다지였다. 하지만 그때 일군들은 다는 몰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아침식사도 못하시고 그날 대홍단군을 찾으시였다는것을 그리고 도로상에서 간소한 식사를 하시고 함경북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는것을, 진정 어버이수령님의 그 헌신의 길이 있어 그리고 그이의 높으신 뜻을 꽃피우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이 있어 오늘 대홍단군은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감자농사의 본보기고장으로 될수 있었다. 우리 청년들은 내 조국땅 그 어디에나 깃들어있는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깊이 새기고 우리 당의 농업혁명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선봉대, 돌격대의 영예를 남김없이 떨쳐나가야 한다. 김 광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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