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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포전길을 걸으시며
주체의 영원한 태양이시며 만고절세의 위인이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경모의 정이 온 나라에 파도쳐흐르는 7월의 하루하루가 흐르고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령도따라 피눈물의 대하를 헤쳐넘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며 강성대국건설의 높은 령마루를 점령하기 위한 총진군을 다그치는 오늘까지 남녀로소모두가 언제 한번 수령님을 잊은적 있었던가. 만경대사립문을 나서시여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그때로부터 한평생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을 생각할수록 우리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시려고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포전길을 걷고 또 걸으시던 수령님의 그 영상을 영원히 잊을수 없는 우리들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인민모두가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도록 하시려는것이 수령님의 평생의 소원이였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면서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려는것이 자신의 평생소원이라고 하시면서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하여 농장에서 농장으로, 포전에서 포전으로 끊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어버이수령님, 때로는 10여일간의 전례없는 규모의 농업부문 일군협의회를, 때로는 천여리 렬차행군을 하시면서 어둑새벽부터 이어가신 잊을수 없는 현지지도의 나날에, 때로는 변천된 정세에 대처한 새로운 농사작전과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오신 어버이수령님의 로고의 크기를 하늘의 높이에 비기랴, 바다의 깊이에 비기랴.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시려고 80고령에도 농촌현지지도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신 어버이수령님의 로고의 자욱자욱을 되새겨보는 이 시각 하나의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적셔준다. 주체79(1990)년말에 진행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당시) 제9기 제3차회의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침땅의 지력을 높이기 위하여 전당, 전군, 전민을 흙깔이전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부식토가 섞인 흙은 물론 생흙에도 농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여러가지 미량원소가 들어있으므로 흙깔이를 하면 그만큼 지력을 높일수 있었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흙깔이방법과 단계별 목표, 그 수행방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면서 흙깔이전투를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나에게 기쁨을 드리겠다고 하는데 모든 논밭의 지력을 높여 정보당 알곡을 많이 생산하면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 될것이라고, 말로만 기쁨을 드리겠다고 하지 말고 일을 잘하여 인민들을 잘 살게 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나는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려는 우리 인민의 념원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바라고있습니다, 인민들이 잘 살게 되면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하게 될것이며 나도 장수할수 있습니다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인민들이 잘 살게 되면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하게 되며 나도 장수할수 있다! 바로 이것이였다.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도록 하는것이 평생의 소원이여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토록 농사일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이 나라 포전길을 끊임없이 찾고 또 찾으신것 아니랴. 새 조국건설의 벅찬 나날에는 해야할 일, 기다리는 일 많고 많았건만 몸소 농민들과 함께 모도 내시며 농사일을 의논해주시였으며 진눈까비를 맞으시며 몸소 홰불봉을 드시고 저수지자리도 잡아주시고 길없는 간석지의 감탕판에 첫길도 내시며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일수만 있다면 무엇을 가리겠는가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 그래서 80고령에도 쉬지 않으시고 제일 힘든 농사일을 직접 맡아 지도하시며 험한 포전길을 걷고걸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농사를 직업으로 하는 농민들의 경우에도 나이 60이 되면 손에서 농사일을 놓고 자식들의 뒤바라지나 해준다. 하지만 우리 수령님은 80고령에도 포전길을 걸으시였으니 언제인가 황해남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우에서 하시던 수령님의 그 말씀 오늘도 뜨겁게 울리여온다. 《나는 황해남도의 농사가 중요하기때문에 어떤 때에는 국가주석을 그만두고 황해남도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도하는 고문노릇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군 합니다.》 정녕 세상에는 령도자가 많아도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들의 먹는 문제에 마음쓰시며 80고령에까지 포전길을 걸은 이 또 어데 있었던가. 우리 수령님 생애의 마지막시기인 주체83(1994)년 6월 19일에 하신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에 대한 현지지도는 오늘도 우리모두를 얼마나 숭엄한 추억에로 불러주고있는가. 30℃를 오르내리는 이상고온현상이 열흘나마 지속되고있던 그때 이러한 이상기후현상을 두시고 누구보다 마음쓰신분은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이날도 아침 일찌기 일어나시여 일기상태를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오늘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에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일군은 선뜻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 그날은 일요일인데다가 그나마 반나절은 어느 한 나라 대표단과 접견하게 되여있었던것이다. 일군이 수령님의 건강을 념려하여 일요일의 다문 반나절이라도 쉬셔야 한다고 간절히 말씀올렸건만 어버이수령님의 그 마음을 막을수는 없었다. 력사에 어버이수령님의 마지막 일요일현지지도로 기록된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에 대한 현지지도는 이런 숭고한 로고속에 마련되였다. 이날 30℃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농장에 도착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포전에서 쨍쨍 내리쬐는 땡볕을 한몸에 받으시며 가물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하나하나 세워주시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해 6월 21일에는 대성구역의 협동농장을 찾으시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이틀후인 23일에는 또 대성구역에 있는 어느 한 남새포전을 찾으시여 가물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의 그 헌신의 로고속에 이 땅우에 자주, 자립, 자위로 빛나는 주체의 사회주의나라로 일떠섰고 그 위대한 령도의 손길아래 우리 농촌의 천지개벽이 이룩되였거니 그 불멸의 업적, 불면불휴의 로고 천년이 간들, 만년이 간들 잊을수 있으랴. 오늘도 우리 인민과 청년들은 한평생 인민을 잘 먹이고 잘 살게 해주시려고 포전길을 걸으신 수령님의 그 영상을 가슴에 안고산다. 경애하는 김정일잔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평생소원을 실현시키시려 수령님의 모습으로 선군조국의 사계절을 가꿔가신다. 위대한 헌신의 그 자욱따라 이 땅우에 당의 농업혁명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전국의 토지가 일망무제한 규격포전으로 정리되는 천지개벽이 일어났으며 우리 식의 새로운 물길이 굽이굽이 뻗어나가게 되였다.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수령님의 유훈은 더욱 활짝 꽃펴날것이며 이 땅우에는 멀지 않아 사회주의강성대국이 보란듯이 일떠설것이다.
본사기자 원 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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