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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 명 일 화
인민을 믿고 시작하신 항일전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빛나는 혁명력사는 영광스러운 선군혁명력사이다. 하다면 우리 수령님께서 무엇을 믿고 선군혁명을 개척하시였으며 항일대전을 벌리시였는가. 그에 대한 해답을 주는 하나의 혁명일화가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8(1929)년 가을 뜻밖에도 일제의 부추김을 받은 반동군벌당국에 체포되시여 길림감옥에서 옥중생활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옥안에서 초기공산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을 총화하시였고 그 교훈에 기초하시여 조선혁명의 앞길을 구상하시였다. 주체19(1930)년 5월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감옥에서 출옥하시여 맨 처음으로 손정도목사의 집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길림에서 혁명활동을 하시던 전기간 손정도목사는 수령님을 친혈육에 못지 않게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었고 수령님의 옥바라지를 일곱달동안 꾸준히 해드렸던것이다. 손정도목사는 출옥하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자 기쁨을 금치 못하였고 그이의 신상을 걱정하면서 일제의 만주침공이 시간문제로 되고있는것 같은데 장차 어떻게 할 작정인가고 하였다. 《저야 다른 길이 있습니까. 군대를 크게 조직해가지고 일제놈들과 결판을 내자고 합니다.》 옥중투쟁을 벌리시면서 이미 확고한 결심을 품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명쾌하게 말씀하시였다. 《총으로 일본과 맞서보겠다는건가?》 손목사는 놀라와하였다. 《그렇습니다. 그 길밖에야 다른 출로가 없지 않습니까.》 《일본이 세계 5대강국의 하나라는걸 명심하라구.의병이나 독립군도 일본의 신식무장앞에서는 맥을 못추고 주저앉았네.》 손목사의 말은 무엇을 믿고 무슨 힘으로 일본을 타승하겠다는것인가 하는 마음속의 의문을 그대로 내비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노엽게 생각지 않으시였다. 자신께서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그 대답을 찾기 위하여 사색과 탐구로 밤을 지새우군 하시였다. 무엇을 믿고? 대답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몇자루의 총을 가지고 일본과 같은 군사강국에 감해 대항해나선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의병도 독립군도 장학량의 30만대군도 모두 일본군대의 위력앞에서 풍전등화의 운명을 면치 못하였는데 우리가 무엇을 믿고 그들을 타승하려고 하는가, 우리에게 주권이 있는가, 령토가 있는가, 재부가 있는가?》 일부 동지들도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하나하나의 문제들을 두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시며 낮과 밤이 따로 없으시였다. 이러한 나날에 그이의 사색과 탐구는 지난 시기의 우리 나라와 세계유격전쟁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으로 이어졌다. 임진조국전쟁을 승리에로 장식한 우리 나라 의병들의 투쟁이 성공한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나뽈레옹군대와의 전쟁에서 빨찌산투쟁으로 이름떨친 로씨야의 농민무장부대는 무엇으로 하여 력사에 당당한 흔적을 남길수 있었는가? 그런데 망국이후의 의병운동은 왜 실패하였으며 독립운동은 또 어째서 실패한 의병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시는 과정에 인민에게 의거하면 승리하고 인민을 멀리하면 패한다는것을 페부로 절감하시였다. 이렇게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면서 항일대전승리의 결정적담보가 무엇인가를 밝혀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전쟁을 선포한 력사적인 명원구회의에서 신심에 넘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국권도 령토도 자원도 다 빼앗긴 망국노의 아들들이다. 지금은 남의 나라땅에서 곁방살이를 하는 적수공권의 청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주저없이 도전해나섰다. 무엇을 믿고? 인민을 믿고 항일전쟁을 시작하려고 결심하였다. 인민이 국가이고 인민이 후방이며 인민이 정규군이다. 싸움이 시작되명 전민이 병사가 되여 일어날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벌리게 될 유격전을 인민전쟁이라고 말할수 있다.》 무엇을 믿고? 인민을 믿고! 그것은 심원하고 과학적이며 시대지향적인 사색과 탐구의 빛나는 결실이였고 시대가 제기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였다. 이처럼 10대에 벌써 시대가 제기한 물음에 대한 명철한 해답, 인민을 믿고 항일전쟁을 개시할 담대한 결심을 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야말로 진정 하늘이 낸 전설적위인이시였다.
강 국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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