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6(2007)년 6월 14일 《청년전위》에 실린 글

 

 

오직 수령님만을 위하신 숭고한 충정의 세계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령도하시던 나날에 있었던 불멸의 이야기중에서(1)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때로부터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장구한 기간 조선혁명은 얼마나 멀리 전진하여왔으며 우리 당은 또 그 얼마나 세련되고 강위력한 백전백승의 강철의 당, 불패의 전위대오로 강화발전되여왔던가.

우리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당을 정력적으로 령도해오시는 력사의 그 나날에 한 일군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이야기, 아직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몇가지 사실들을 여기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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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55(1966)년 10월 21일 저녁이였다.

황해남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날 신천군안의 유가족들을 넓은 마당에 모이게 하시고 밤이 깊도록 그들과 마주 앉아 담화를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인민들사이에 뜨거운 사랑과 충정의 마음이 혈연의 정으로 융합되고있었다.

감동적인 사연이 끝없이 펼쳐지고있던 그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데리시고 담화장소주변을 돌고도시며 어버이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리고계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모신 끝없는 영광과 행복에 넘쳐있는 녀인들의 모습과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리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의 가슴은 뜨거워오르지 않을수 없었다.

(한없이 자애로운 어버이를 모시고 환희에 넘쳐있는 저 녀인들은 자기들이 행복에 겨워 웃고있을 때 이 행복의 자리를 어느분이 지켜주고계시는지 알기나 하는지…)

이런 속생각을 하며 일군은 경애하는 장군님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밤이 퍼그나 깊어서야 유가족들과 담화를 마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과 함께 숙소로 돌아온 일군은 장군님께 밤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인사를 올린 후 별생각이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이어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굳잠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가 잠에서 깨여나 밖에 나갔을 때는 벌써 이른새벽이였다.

새벽공기를 들여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쾌한 기분에 휩싸여 주위를 둘러보던 일군은 그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정원쪽에서 걸어나오고계시였는데 신발과 바지아래부분이 화락하니 젖어있었던것이다.

(아니 또 한밤을 지새우시였구나!…)

어버이수령님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며 한밤을 지새우시는것쯤은 례상사로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또 한밤을 지새우시는것도 모르고 편안하게 자고난 일군은 자신이 더없이 민망스러웠다.

예로부터 《신로군일》이라는 말이 전해져오고있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로신일》로 새벽을 맞이하신것이였다.

전사의 도리를 지키지 못한 자책에 일군은 머리를 들수 없었다.

이제라도 도덕의리를 다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용기를 내여 경애하는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좀 있으면 날이 밝겠는데 잠시만이라도 주무셔야 하겠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나는 이렇게 새벽이슬을 맞으며 수령님가까이에서 새날을 맞을 때가 제일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한동안 조용히 걸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하시는 뜻깊은 말씀이 새벽고요를 조용히 흔들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황해남도 인민들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으로 인하여 입은 상처가 큰데 대하여 지적하시고나서 황해남도는 전쟁으로 하여 주민구성이 매우 복잡해졌다고, 전쟁으로 하여 입은 물질적피해보다도 이 고장 인민들의 가슴에 서리고 맺힌 마음의 상처와 고통이 더 크다고, 이 모든 죄악의 장본인은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 미제국주의자들이며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지 않는 한 우리 인민들은 어느 한 순간도 평화로운 삶을 누릴수 없다고 미제를 준렬히 단죄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미제에 대한 치솟는 증오로 달아오른 마음을 식히시려는듯 조용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일군은 무엇이라고 할말을 찾지 못하며 경애하는 장군님을 따라 조심히 걸음을 옮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잠시후 걸음을 멈추시며 절절한 음성으로 수령님께서는 이 고장 인민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시기 위해 어제 저녁에도 유가족들을 만나 오래동안 담화를 하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전쟁으로 상처입은 이 고장 인민들과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끝없는 로고 그리고 인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가시는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리시려 한밤을 꼬박 새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열렬한 충정이 가슴가득히 안겨와서였다.

그런것도 모르고 한밤을 편안히 발편잠을 잤다고 생각하니 일군은 심한 량심의 가책으로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였다.

때늦은 후회감이 일군이 옮기는 발자욱마다에 어리는듯싶었다.

어느덧 동녘하늘이 밝아오고있었다.

일군은 더는 지체할수 없다고 생각하며 경애하는 장군님께 잠시라도 휴식하셔야겠다고 거듭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안녕을 위해 우리가 열백밤을 지새운들 뭐랍니까? 나는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 초소에서 새날을 맞을 때가 제일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혁명가나 위인들도 지닐수 없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류다른 행복관이 일군의 심장을 쿵 울려주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숭고한 행복관을 자기의 행복관으로 심장깊이 간직하고 어버이수령님의 안녕을 보장해드리는 일에 한몸을 깡그리 바쳐가려는 신념이 일군의 가슴에 깊이 뿌리내리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우러러모시고 받드는데서 숭고한 실천적모범을 보이시였을뿐아니라 일군들이 이 사업에서 사소한 빈틈이라도 있을세라 세심히 일깨워주시군 하시였다.

주체56(1967)년 9월 5일 저녁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일군을 데리고 수도 교외의 어느 한 지구로 떠나시였다.

승용차가 고르로운 소리를 내며 달리고있을 때였다.

어제는 동무를 찾아 밤늦도록 전화를 하였는데 종시 찾지 못하였습니다. 어디에 가있었습니까?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밖의 물으심에 일군의 심장은 뚝 멎는것 같았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업에 큰 지장을 주었다는 생각이 가슴을 쳐서였다.

눈앞이 새까매진 그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평소에 가까이 지내며 우정을 나누던 동무에게 일이 생겨 그에게로 갔다온 사연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셨다가 심중한 음성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고있는 동무가 그럴수 있는가고, 동무의 자유주의적행동이 무슨 일을 저지를수 있었는지 생각이나 해보았는가고 질책하시였다.

자신이 범한 엄중한 과오에 대해 심각히 뉘우친 일군은 용기를 내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깊은 회오에 잠긴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근엄한 음성으로 동무들은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보장하여드리는것을 순간도 어길수 없는 사업과 생활의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시며 그러자면 모든 문제를 심사숙고하여 처리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절절한 그 말씀에 일군은 자신을 되게 타매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결 누그러지신 음성으로 동무들은 임무수행의 특수성으로 보아 순간도 자기 위치를 떠나서는 안된다, 무슨 일이 제기되여 자리를 뜰 때에는 반드시 자기 위치를 알리고 결론을 받아 행동하여야 한다고 력점을 찍어 강조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친구들사이의 우정문제와 혁명동지들사이의 동지애에 대하여 몰리해하고있는 그를 깨우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지적의리와 사랑은 우리들이 사업과 생활에서 더없이 귀중하고 소중하다고, 그것은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혁명대오의 통일과 단결이 혁명승리의 담보로 되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혁명투쟁이 단결로부터 시작되고 단결의 힘에 의거하여 전진하고 승리하는것은 혁명의 원리입니다.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통일과 단결이 가장 공고하고 생활력이 있는것으로 되자면 수령님의 혁명사상에 기초하여 수령님을 중심으로 하여 혁명대오의 통일과 단결이 이룩되여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귀중한 말씀은 일군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통일단결의 기초가 수령의 혁명사상이고 그 중심도 수령이라는것을 명철하게 밝혀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은혜로운 사랑의 한품에 안아 혁명의 믿음직한 일군들로 키워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은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슬하에서 자란 혁명전사들은 수령님의 대해같은 은덕에 충성으로 보답함으로써 혁명전사의 의리와 본분을 다해나가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귀한 말씀을 심장깊이 새기며 일군은 뼈아픈 자책으로 얼굴이 뜨거워오름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러는 그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장구한 세월 곡절많은 조선혁명을 이끄시여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시고 오늘도 건장하신 모습으로 우리 혁명의 진두에 서계실수 있은것은 수령님을 충성으로 받들어모신 항일혁명투사들과 같은 혁명의 충신들이 있었기때문입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은 꺾이지도 굽히지도 않는 투철한 의리와 신념으로 수령님을 결사적으로 옹호보위하고 추호의 동요도 없이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받들어나갈줄 아는 배심있고 대바른 혁명가들입니다.

일군의 눈앞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내세워주신 신념과 의리가 강한 항일혁명투사들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가 위대한 수령님을 티없이 맑고 깨끗한 신념과 의리로 받들고 옹위한 진짜배기 혁명가들이였다.

일군은 책에서 알고 직접 만나보아서 아는 항일투사들의 사상정신세계와는 너무도 차이나게 행동한 자기가 참으로 민망스러웠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책감에 잠겨있는 일군에게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많이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결사옹위하고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간 항일투사들의 신념과 의리는 수령님께서 지니신 위대한 사랑과 너그러운 포옹력, 숭고한 인간애에 매혹되여 수령님을 숭배하는 과정에 그들의 심장속에 억센 기둥으로 뿌리내린것이라고, 오늘의 혁명전사들도 바로 그런 신념과 의리를 간직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우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수령님을 모시고 일하는 동무들은 동지적우정을 먼저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동무들은 첫째도 둘째도 수령님의 안녕과 만수무강을 보장하여드리는 원칙에서 일해나가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혁명전사는 위대한 수령님을 어떻게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신것은 이날뿐이 아니였다.

언제인가는 그 일군에게 수령님을 모시는 동무들의 마음에 틈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동무들은 언제 어떤 환경속에서도 수령님곁을 뜨지 말고 임무수행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고 수령님께서 동무들을 믿으시고 내세워주시기떄문에 동무들의 삶이 빛나는것이라고, 수령님의 전사로 일하는 순간순간이 동무들의 한생에서 가장 값있고 의의있는 순간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일깨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실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 귀중한 말씀들은 일군의 사업과 생활에서 강령적지침으로, 좌우명으로 되였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만을 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충정은 이렇듯 뜨겁고도 열렬하였으며 장군님께서 바쳐가시는 그 숭고한 충정속에서 수령결사옹위의 전위투사들이 수없이 자라나 우리 당은 수령님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령도체계가 확고히 선 김일성주의 당, 불패의 당으로 강화발전될수 있었다.

하기에 일군은 생의 마지막시기에 남긴 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이 날에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혁명전사들모두가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평생토록 구현해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본사기자   리  혁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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